토포스 Topos - 장소의 철학 철학의 정원 11
나카무라 유지로 지음, 박철은 옮김 / 그린비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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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과제와 직결되는 책 제목이어서 벌써 3년 전에(2014) 사 두었던 책이다. 장소·장·토포스의 문제를 여러 측면에서 고찰했는데, 예상처럼 쉽지 않았지만, 기대한 만큼 소득도 있었던 독서였다.


기억과 기억술의 문제로서 토포스는 1장에서 고대와 중세의 레토릭(수사학)으로서 소개된다. 가장 기본적인 토포스의 개념은 여기서 거의 다 설명되었다. 2장에서는 르네상스 이후 데카르트의 ‘방법’, 그리고 뉴턴의 ‘절대공간’에 의해 장소가 부정되었음을 설명하였다. 물리학의 ‘장’은 내 지적 수준으로 완전한 이해가 어려웠다. 하지만 절대공간이란 것조차도 물리학적 실천에서는 무용하다는 점이 밝혀졌고(40), 자연현상 속에서도 일종의 ‘場’의 개념이(‘에테르’ 가설, 전자기장, 전자장, 양자장 등) 제안되고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3장 역시 어려운 논의였다. 수사학과 물리학의 장에 이어서 생물학에서 ‘장소론’을 다루고 있었는데, 결국 생물과 환경의 관계를 고찰한 듯했다. 개인적으로는 4장과 5장에서 가장 소득이 많았다. 일단 4장에서는 장소로서의 신체 문제가 언급된다. 세계를 지각하는 방법으로 ‘체성감각적’으로 공간을 답파하는 것이 동적인 파악이라면, 자신을 움직이지 않고 ‘조감(鳥瞰)’적인 공간으로 지각하는 것을 정적인 파악이라고 규정한 부분이(90) 와 닿았다. 이를테면 책이나 사진으로 유적지에 관한 지식을 습득하는 것과 직접 발로 걸어서 그곳을 방문하는 것은 전혀 다른 조사의 방법일 것이다. 또 상징공간으로서의 장소, 언어적 토포스를 다룬 두 절은 막연한 공간과 장소의 개념적 차이를 분명히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5장에서 술어논리학, 古논리학, 일본어의 논리 문제 등과 연관된 장소론을 다루었는데 이 장에서 건진 단어가 바로 ‘장면’이다.

 

장면은 주체나 소재와 함께 구체적인 언어 경험의 존재조건을 형성짓고 있다. 그리고 장면의 의미는 예컨대 ‘장면이 바뀐다’, ‘불유쾌한 장면’ 등이라 하듯이 장소의 개념과도 통하지만, 장소의 개념이 단지 공간적·위치적인 데 비해, 장면 쪽은 장소를 채우는 것을 포함하고 있다. 게다가 장면은 “장소를 채운 사물, 情景과 상통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이 사물들, 정경들을 지향하는 주체의 태도, 기분, 감정도 포함하고” 있다. (116)

 

이 구절을 읽기 위해서, 그리고 이 ‘장면’이라는 낱말 하나를 얻기 위해서 이 어려운 책을 굳이 붙잡고 있었던 것 같다. ―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 ‘장면’이란 평범한 단어가 새삼스레 느껴졌다. 책 한 권을 읽고 겨우 단어 하나라니. 이처럼 비효율적인 것이 어디 있겠냐고 할 수도 있으나 오히려 겨우 단어 하나라도 얻기 위해 책을 읽어야만 하는 게 아닐까. 단어 하나가 의미를 띠는 것은 어떤 추상적인 공간 속에 위치하기 때문이 아니라 “시간성의 유무 이전에 그것이 (장소 또는 장이) 균질적이지 않고 방향성을 가졌”(126)기 때문일 테니까. ‘장소’를 다루는 이 책에서 ‘장면’이란 단어가 있었기에 그것이 특별한 의미로 내게 각인되었다는 말이다.

 

… 토포스론을 풍자만화에서 보이는 일시적인 화제(topic)와 결부하는 것으로 새로운 전개의 가능성을 연 것은 케네스 버크이다(『동기의 수사학』). 그는 말한다. 근대 저널리즘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토픽의 목록(토포이 카탈로그)을 만들 필요가 있다. 예컨대 일시적인 공통 화제(commonplace)를 이용한 풍자만화에 관한 토픽의 목록이 그것이다. 그것이 일시적인 것은 거기에 표현된 것이 어떤 특정 환경 속에서 함께 사는 사람들에게 설득력을 가지기 때문이다. 예컨대 실업을 테마로 한 만화는 설령 그것이 발군의 뛰어난 것이어도 완전고용의 시대에는 출판할 수가 없다. 그러한 시대에는 일손 부족을 다루는 것이 선호된다. (99)

… 나의 경우 장소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공연히 주체를 부정해서 없애기 위함은 아니었다. 그런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주체주의 철학에 의해 무시되고 등한시되어 온 장소를 철저히 생각해서 그것과의 관계로 주체를 재파악하기 위해서였다. 주체를 실체가 아닌 활동으로서 파악, 주체에 정당한 위치를 부여하기 위함이었다. 주체가 경직화하거나 쇠약해지지 않기 위한 조건을 찾기 위함이었다. (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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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7-05-02 1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적조하셨습니다.
잘 지내셨습니까?^^

돌궐 2017-05-02 13:28   좋아요 0 | URL
양철나무꾼 님 반가워요.
다들 그러셨겠지만, 만감이 교차하는 시절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