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 19 - 5부 3권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나남출판) 19
박경리 지음 / 나남출판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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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40년대를 이야기하고 있는 토지의 5부를 읽는 것은 조금은 버거운 일인 듯하다. 막바지를 향하고 있는 토지의 결말보다도, 이야기 속에 녹아 있는 40년대의 풍경이 아찔하고 적막하게 가슴을 죄어온다. 역사시간에 배운 단편적인 일제강점기의 그 약탈과 수탈의 역사의 실체를 두 눈으로 확인하고 있는 듯하다. 최고조에 이른 그 절망과 불안의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삶과 마주하며 나 역시도 몸을 움츠리게 된다. 적막한 고요 속 숨죽인 울부짖음이 피부에 와 닿는 것처럼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지 않는다.

 

서울의 명희를 둘러싼 주변의 이야기 (친구 여옥과 최상길)를 시작으로 지리산 소지감이 머물고 있는 절로 정양을 위한 떠나는 임명빈 일행의 이야기가 <토지 19권>의 서두였다. 그리고 갑작스럽게 등장한 ‘모화’라는 인물에 어리둥절하다가, 몽치의 등장과 예상 밖의 전개가 무척 흥미로웠다. 그리고 토지의 악의 축이었던 ‘조준구’의 죽음으로 그 무언가가 일단락 된 듯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일 뿐이었다. 혼란의 시기, 개개의 이야기들도 혼란의 연속이었다. 그 중에서도 ‘양현’과 ‘영광’ 그리고 ‘윤국’의 어긋난 인연이었다. 모든 사실을 고백하고 떠난 양현의 이야기가 오리무중 속으로 사라진 느낌이다.

그리고 다른 이야기는 홍이의 딸 ‘상의’를 통해 막바지에 이른 일제강점기 학교의 풍경이 적나라하게 그려지고 있었다. 또한 조준구를 뒤를 잇던 ‘김두만’의 이야기, 그 반전이 또한 흥미로웠다. 반대로 석이의 딸 ‘남희’의 갑작스런 등장과 그 내막을 확인하는 것으로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그 혼란과 절망의 시간이 오히려 아득하게 끝없는 것처럼 다가왔다.

 

이야기의 끝을 향해가면서 마음이 한없이 무거워진다. 다가올 해방의 막연한 기우 속의 사람들의 삶, 그 이야기가 낯설고 자꾸만 고개를 돌리고 싶어진다. 다가올 그날이 안개 속인 듯한 그들의 이야기는 소제목처럼 ‘통곡하는 산하’ 그 자체였다. 그럼에도 그 삶 자체만으로도 ‘생명’이 여전히 꿈틀되고 있는 듯하여 한없이 가라앉는 마음을 붙잡을 수가 있었다.

 

 

... 병신자식 하나를 돌보면서 가난하게 지내던 할머니, 함께 풀을 매면서 일이 보배라 하던 그 할머니에게 새들은 겨울에 뭘 먹고 살지요? 조그마한, 저기 날아가는 철새는 어떻게 강남까지 가는 걸까요? 하고 물은 적이 있었다.

천지조화가 살게 허는 것이여. 가게 허고 오게 허는 것도 천지조화지 뭣이겄어? 사람을 몰러, 모른단 말씨.”

“할머니가 이 고생을 해오신 것도 아드님이 불편한 몸이 된 것도 그러면 천지조화의 탓인가요?

“그것이 아니지라. 사램이 천지조화를 어긴 때문이여.”

...

“천지조화는 공평하들 않는감?”

“아드님 불편한 몸도 사람이 불공평해서 그런가요?”

공평하다믄 병신이라도 다 살아가는 길이 어찌 없을 것인여? 손발 없는 배암도 묵고 살고 물 속의 개기도 묵고 사는디, 일찍이 가고 더디게 가는 거사 천지조화,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닌께로.” (3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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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18 - 5부 2권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나남출판) 18
박경리 지음 / 나남출판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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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40년대의 상황이란 것이 얼마나 암울하고 비통한 것인지, 새삼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전쟁으로 치닫는 상황 속, 많은 등장인물들의 두려움과 절망감이 고스란히 전해지면서, 희망을 이야기하는 그들의 이야기에 두 손을 불끈 쥐게 된다. 18권의 이야기, 그 모든 것이 침체된 분위기에도 홍이를 둘러싼 석이네(성환 할매), 천일네, 야무네의 일사분란한 점심 상 차리는 풍경이 있어, 모든 이야기를 상쇄하고 신바람난 그들처럼 신나고, 흥미진진하게 가슴을 뜨겁게 하였다. 삶을 옥죄는 고통 속에서도 작은 희망의 씨앗만으로도 펄펄 나는 듯, 생기를 찾는 그네들의 이야기가 짧지만 강렬했다. 시간이 지나도 <토지>의 여러 이야기, 풍경 중에서 으뜸으로 각인될 듯하다. 정지에서 폴폴 나는 밥, 닭찜, 참기름 냄새를 마치 나의 기억, 추억처럼 잊지 못할 것 같다.

 

환국과 순철의 만남, 서희를 찾은 홍성숙과 배설자의 이야기로 시작된 <토지 18권(5부 2권)>은 홍이의 이야기와 오가다와 인실의 이야기였다. 홍이는 예기치 못한 사건에 휘말려 조선으로 돌아온 뒤, 그를 둘러싼 이야기가 내내 가슴을 졸이게 하였다. 신경에서 통영으로 배경이 바뀌면서 다시금 휘와 영선, 영광의 이야기 그리고 양현의 이야기로 전개되는 과정을 바라보면서 끊임없이 애를 태우게 되었다. 이미 영광과 양현의 슬픈 사랑이 예고되어 있는 탓에 그 전개에 절로 관심이 쏠리고, 귀를 기울이게 된다. 또한 또 다른 비극적 사랑의 당사자인 오가다와 인실의 해후와 여전히 비극적인 상황들이 시대 상황에 맞물려 더욱 비통하게 다가왔다.

이야기를 시작과 끝을 장식하고 있는 배설자란 인물이 어떤 만행을 저지르면 악의 축에 설지, 우개동의 악행보다 관심이 쏠린다. 또한 만주로 떠난 상현의 이야기가 여전히 베일 속이었다. 그런데 명희를 통해 전해진 상현의 소식에 벌써부터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와 함께 양현의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다시금 19권에 대한 기대가 한층 높아진다.

 

<토지>를 읽으면서 마음이 줄곧 롤러코스트를 탄 듯 심장이 벌렁벌렁, 두근두근 뛰었다. 아직 남은 시간을 저울질하면 잠시 느긋하게 읽으려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느긋함은 뒤로하고, 시대가 갖고 있는 아픔과 비통함에 절로 느린 걸음을 하게 된다. <토지>의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다는 아쉬움이 앞서다가도, 책을 펼쳐들면, 해방을 앞둔 시점에서 더욱 치열해진 삶의 단면들, 그 속의 절망과 애끓은 고통들에 마음이 절여온다. 그러면서 지난 시간들을 뒤돌아보고, 그간 <토지>로 인해 변화된 나의 마음의 구석구석을 살펴보게 된다. <토지>를 통해 그 자체로의 삶과 생명의 소중함이 내 안에 새롭게 자리하고 있음을 느낀다. 외눈으로 바라보면 편견에 사로잡혔던 숱한 생각들의 경계가 무너지면서 훨씬 느긋해지고 평온해 졌다는 생각에 일상의 많은 것들이 감사하게 다가온다. 아무래도 <토지>가 있어, 삶의 굽이굽이, 힘겨움 속에 많은 위안이 될 듯하다. 매 권마다 느꼈던, 고통 속에 심어진 희망의 메시지를 되새기며 일어설 용기와 지혜를 품게 될 듯하다.

 

“이 서방, 파도가 눈에 뵈지 않는다고 바다가 조용한 건 아닐세. 상어떼가 무리를 지어 날뛰고 피라미 한 마리 숨을 곳이 없다면 조용한 그 자체는 더 무서운 것 아니겠나? 그러나 절망하지 말게.” (320) 범석이 홍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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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그러면 아비규환
닉 혼비 외 지음, 엄일녀 옮김 / 톨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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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별로 주목하지 않은 책이었다. ‘이름만 들어도 호기심이 동하는 영미권을 대표하는 스타 작가’라고 책을 소개하고 있지만 내가 기억하는 이름이라고는 ‘닉 혼비, 닐 게이먼, 스티븐 킹’ 이렇게 세 명의 작가가 전부였다. 호감을 갖지 않은 상태로 책을 받아보고선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 부피감에 입이 절로 벌어졌다. 더 솔직히 말하면, ‘오싹한 이야기Thrilling Tales’를 테마로 쓴 소설집이라기에 결코 읽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불편하고 거북한 이야기, 오싹함은 끔찍한 피의 현장일 것만 같고 특정 장르소설을 연상하며 내키지 않음 마음이 컸는데 결코 그렇지가 않았다. 그리고 책에 대한 찬사가 결코 거짓이 아니었다. 선입견에 마음을 닫고, 방구석에 처박아 두었다면 크게 후회할 뻔했다. 읽기 전에는 알 수 없는 일이니 결코 후회하진 않았을까? 여하튼 나는 스스로도 의아할 정도로  커다란 호기심에 휩쓸렸다. 20여 명의 작가들이 풀어낸 이야기는 참신하고, 그렇다고 가볍게 읽기에는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기묘한 사건, 기발하고 황당한 이야기가 끊임없이 호기심을 자극하였고, 내내 흥미진진한 시간을 만끽하였다.

 

“노력이라는 것은 치열하게 꾸준히 해야 하는 것” (180)

 

가장 인상적인 이야기 하나를 정리할까 한다. 그것은 바로 ‘데이브 에거스’『정상에서 천천히 내려오다』이다. 항상 귀차니즘에 빠져 안일했던 삶에 강렬한 균열을 일으키며 뒤흔들었다. 최근, 나를 괴롭히던 어떤 일에 대해 다시금 마음을 단단하게 다잡고 흔들리지 말라고 속삭여주었다.

킬리만자로로의 하이킹을 떠난 후 일련의 과정을 이야기로 풀어내고 있다. 오래 전에 동생과 함께 준비했던 킬리만자로, 하지만 홀로 떠나왔다. 부정적이고 회의적이며 끊임없이 불평불만에 사로잡혀, 자신의 목적을 읽고 방황하고 있었다. 주인공 ‘리타’는 분명 꽤나 무력하고 따분함에 빠져있었다. 산행을 시작하고도 여전히 겉돌고 있었다. 그런데 한 밤중, 달빛 아래 드러난 킬리만자로 정상을 보고 그녀는 정상까지 오르기로 결심을 하다. 그녀의 놀라움과 그 성취감에 들뜨는 그 마음이 오롯이 내게도 전해졌다. 그녀의 마음이 새롭게 의지와 열망으로 불탔다. 킬리만자로의 산행을 예전에 tv에서 본 적이 있었는데, 그 때의 이미지가 겹치면서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지는 듯, 압도적이었다. 힘겨운 상황들 속에서도 끝까지 정상에 도달하는 과정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날씨는 말할 것도 없고, 산행의 과정은 고통의 연속이었고, 그들의 산행을 함께 했던 짐꾼의 죽음 그저 희열, 환희에 들뜬 수도 없어 가책에 빠지기도 하였다. 그녀는 의욕도 없이 어쩔 수 없는 상황에 휩쓸리듯 시작된 산행, 그 며칠 동안의 힘겨운 시간의 이야기를 통해, 그녀의 변화로 인해 내 마음도 뜨거워지는 듯했다. 그럼에도 또 주저하고 흔들렸다. 짐꾼들과 이대로 캠프에 머물면서 마지막 등정을 포기할까 잠깐 고민한다. 킬리만자로에 대한 사진도 있고, 아이맥스 영화도 있다. 정상에 오르지 않아도 그녀는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 리타는 자신이 해낼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데 진절머리가 난다. 오랫동안 그녀는 노상 자신의 깜냥을 벗어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어떻게든 해보려다, 매번 느닷없이 포기하고는 그저 열심히 했다는 데에 만족해왔다. 성공과 실패 사이, 성취하고 이룬 목표와 조정된 목표 사이의 그 미묘한 지점에서 위안을 발견했다.”(184~185) 아~ 그 어떤 문장보다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나 또한 지금껏 그러했다는 자각에 몸서리쳐졌다. 올 해 초 어떤 목표를 세우고 최근에 많이 흔들리고 있었다. 1 년여의 장기 레이스에 몸과 마음이, 아니 마음이 많이 지쳐가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갈등, 그녀의 변화가 내 마음을 다잡아주었다.

또한 단순한 개인적 성취의 이야기만은 아니었다. 그 누군가의 말없는 희생이 짐꾼의 죽음으로 구체적으로 표현되고 있었다. “일이 죄 틀어졌는데도 왜 올라간 것일까? 짐꾼들은 매일 앞서 올라갔고, 지독히 춥고 바람이 무지막지 불어도 경치 좋은 장소까지 등산객들이 오르는 것을 도왔으며, 빌어먹을 수박과 커피를 날랐다.”(194) 그런데 힘겹게 짊어지고 올라갔던 수박이 그냥 버려졌던 것을 기억하게 된다. 그녀는 결코 혼자 힘으로만 그 정상에 오른 것만은 아니었다. 한 편이 짧은 이야기였지만, 삶의 진솔한 단면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할 삶의 속살을 여지없이 그려내고 있었다.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고, 노력하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다시금 해본다. 그럼에도 앞으로 수없이 흔들릴 것이다. 하지만 ‘리타’의 이야기를 되새기면서 굳건해질 것이다.

그리고 킬리만자로는 아닐지언정, 푸르른 가을 하늘, 오색의 들과 산으로, 따사로운 가을 햇살 속으로 내달리고 싶어진다.

 

“그녀와 정상 사이에는 오직 시간과 숨결밖에 없다.

그녀는 젊다.

그녀는 할 것이고, 해낼 것이다.”

(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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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린세스 바리 - 제2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박정윤 지음 / 다산책방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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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바리’라는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그 자체로도 호기심이 마구마구 터졌다. 가냘픈 모습의 한 소녀, 올이 풀어진 스웨터를 입고 있는 소녀는 왠지 애처롭다 못해 뭔지 모를 스산함이 느껴졌다. 어떤 이야기일지 좀처럼 감도 잡을 수 없고, 알 수 없음에도 ‘바리데기’를 모티브로 한 이야기 자체가 흥미롭게 느껴졌다. 신간 소개에서 <프린세스 바리>를 보자마자 예전에 몇 번이나 읽었던 <바리데기>(황석영, 창비 2007)가 떠올랐다. 처음 알게 된 ‘바리데기’는 신화 속 특히 무속신화로 전래되는 인물이란 점에서 무척 인상적이었다. 또한 기존에 전래동화라며 읽었던 그 어떤 이야기보다 새롭고, 뒤늦은 만큼 호기심을 갖게 되었다. 아비를 위해 신비의 묘약을 찾아 저승으로 떠났다는 신화 속 ‘바리데기’가 저 멀리 돌고 돌아 우리 곁으로 돌아온 것 같았다. 그가 가져온 신비의 묘약은 어쩌면 지금의 우리들을 살릴지도 모르리란 막연한 기대, 착각, 환상이 내 속에서 툭 터져나왔다.

 

<프린세스 바리>를 읽으면서 ‘바리’, ‘산파’, ‘토끼’, ‘나나진’ 등의 인물들의 그 파란만장한 삶이 전개될수록, 그들의 이야기가 교차되고 이야기의 윤곽이 드러날수록 더욱 마음을 졸였다. 특히 기묘한 분위기, 그로테스크한 어둠의 그림자가 글을 펼친 초반부터 나를 옥죄었다. 그러나 거부할 수 없는 마력처럼 느껴졌다. 뭔가 한없이 불편하고, 거부하고 싶은 마음일수록 더욱 마음을 졸이며 바리의 이야기에 이끌렸다.

읽는 내내 기존의 가치들을 뒤흔들렸고, 나의 마음을 읽어내기에 바빴다. “내가 그곳으로 인도해줄게...”라는 표지의 작은 문구의 의미, 눈에 드러나는 사건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게 되면서 무척 혼란스러웠다. 아니, 나는 내심 그녀의 행동에 동조하고 있었다. 산파’, ‘연슬 언니’, 그리고 ‘청하사’의 죽음과 관련한 바리의 행동에 빈틈을 비집고 들어가 비난의 목소리를 높일 수가 없었다. 그만큼 한 인물을 둘러싼 상황들이 어쩔 수 없는 운명처럼 치밀하였다.

그들의 삶, 철저히 소외되고, 세상 밖에 움츠릴 수밖에 없는 삶, 때론 지나친 이기심과 욕망의 굴레에서 속수무책인 그들의 삶에서 그 어떤 삶보다 진정으로 간절함과 절절함이 느껴졌다. 왜 사냐? 삶이 무엇이냐? 묻기 이전에, 그저 묵묵히 살아지는 거, 살아야 하는 게 삶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저 주어진 생이 다하는 날까지 최선을 다해 살아야한다고, 오히려 자살을 하고, 자살을 이끄는 바리가 큰 소리로 외치고 있었다. 그저 무력하게, 어쩔 수 없이가 아니다. 처절함 속에서도 간절한 열망으로 서로를 보듬는 사람들의 이야기, 소외된 속에서 그들만의 튼튼한 울타리를 통해 단단하게 견디는 그들의 삶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었다. 특히 독거노인의 증가와 그들의 자살, 사회적 연대의 필요성에 대한 최근의 뉴스가 불쑥 튀어나왔다. 몇 번이고 우리가 안고 있는 사회문제로 대두되었지만 그저 단순한 안타까움으로 순간뿐이던 마음들이 크게 동요를 일으켰다. 요원한 일처럼 느껴졌던 그들의 어려움이 절로 피부로 느껴지며 tv 속 이미지가 고스란히 재생되었다. 진정 ‘바리’는 우리에게 생명의 묘약, 그 신비의 묘약을 찾아 돌아온 것이다. 소외된 삶의 단면을 낱낱이 파헤쳐 그 아픔과 외로움을 손끝으로 느끼게 하더니, 문제의 해답을 훤히 드러내놓고 있었다.

 

제목을 확인하면서 호기심을 키우는 순간, 바로 ‘제 2회 혼불문학상 수상작’이란 문구가 눈에 띄었다. 반가웠다. ‘혼불’을 읽으면서 얼마나 마음을 졸이며 아파했던가! 그리고 제 1 회 혼불문학상 수상작인 <난설헌>을 읽으면서도 ‘혼불’을 읽으면서 접했던 그 어떤 비슷한 기류가 느껴져서 많이 애달팠던 기억이 스쳤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엇인가가 그저 나를 자연스럽게 이끌어주었다. <프린세스 바리>를 만나고 나니, 내년 10월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앞으로 매년 10월이면 ‘혼불문학상’이란 수상작의 영예를 안고 우리를 찾아올 새로운 이야기를 들뜬 마음으로 펼쳐들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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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 7 - 돌하르방 어디 감수광, 제주도편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7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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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너무도 친숙한 유홍준 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는 자꾸만 욕심이 나, 탐하게 되는 책이다. 그런데 제주를 담고 있다는 절로 설렘으로 들떠 있었다. 올레의 추억을 가슴에 새기고, 만덕을 만나면서 제주에 대한 관심이 더욱 깊어졌지만, 여전히 나의 일상의 언저리를 결코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책을 읽다보면, 행동이 따르지 않는 수많은 생각들에 종종거리게 된다. 공상, 망상에 그치지 않기를 바라고, 책의 내용을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고, 풍경을 가슴 깊이 새기고 싶은 마음들이 들어찬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7, 돌하르방 어디 감수광> 역시 그러했다. 지금은 떠나기 좋은 계절, 훌쩍 제주를 향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자꾸만 상상하게 되고, 왠지 모를 그리움에 휩싸이게 되었다.

 

책으로 확인하고자 했던 제주의 역사를 즐거운 이야기를 통해 가벼운 마음으로 만날 수 있어 무척이나 유익한 시간이었다. 인류의 수많은 비극의 사건들 중에서 최근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 바로 제주의 4․ 3사건이었다. 그리고 예상 밖으로 많은 역사의 아픔을 간직한 곳, 그럼에도 제주의 이색적 풍경이 담아낸 신비 등이 어우러져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런데 이번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통해 역사의 상흔의 현장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그 역사의 여러 갈래들의 얽히고설킨 이야기를 쉽게 풀어 놓아 많은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었다.

 

제주를 담은 많은 여행기, 틀에 박힌 유명 관광 명소보다 나의 고된 발품 팔이 없이 결코 속속들이 알 수 없는 제주의 삶이, 그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작은 돌담에 스며있는 제주의 정신, 그 속에서 꽃피는 제주의 문화는 흥미로운 만큼 더욱 제주가 내게 손짓하는 듯한 기분에 젖었다.

 

여행 아니, 관광을 다니면서 늘 품게 되는 많은 아쉬움에 대한 날선 비판과 그만의 해결책을 읽는 내내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듯, 시원함마저 들었다. 특히 기념비 ‘뿔대’에 대한 이야기는 흥미로웠다. 인식하지 못하고 있던 점이기도 하지만, 아니다. 내심 마음 깊숙이 불편했던 바로 그것이었다. 어디 어느 곳을 가나 특색 없이, 아니 하늘 높이 치솟는 특색을 자랑하는 그 수많은 뿔대들, 감흥 이전의 숙연함보다 고압적으로 주변을 무색하게 하는 그 뿔대들의 거북함, 그 비슷비슷한 뿔대들에 어떤 변화의 바람이 불어왔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가져본다. 모든 것이 더욱 제 모습을 찾아가며, 많은 유적지, 명소에서 느끼는 그 불편함이 사라졌으면 좋겠다.

 

아직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모두 만나지 않은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앞으로 기대되는 다음8, 9편을 기다리면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펼치겠다는 마음이 저만치 앞서고 있다. 그리고 최근에 소설을 즐겨 읽고 있었는데 이 책을 계기로 다른 책, 특히 제주에 관한 책들에 절로 눈이 돌아간다. 눈도장만 찍어두었던 제주 관련 책 <새로쓰는 제주사>, <제주 유배길에서 추사를 만나다>들을 시작으로 제주를 들락거려야겠다. 제주를 다녀와서 냉큼 샀던, 그러나 책장이 고이 묵혀두었던 <한라산 편지>가 드디어 책상 위에 펼쳐져 손끝을 간질인다. 그리고 <신정일의 새로 쓰는 택리지 : 제주도>가 출간된 것을 방금 확인하기도 하였다. 두 눈을 의심하면서도 눈이 반짝인다. 왜 이토록 반가울까? 아차차, 그리고 <순이 삼촌>도 도서관에서 확인했었다. 냉큼 읽을 테다!

실제로 쉽게 발걸음을 내딛지는 못할 것이다. 일단 책으로나마 제주의 이곳저곳을 방랑하며 제주를 더 많이 공부하고 싶다. 그리고 다시 제주를 찾게 될 때, 그 풍경 속에서 더 많은 것은 가슴으로 느끼고 되새기면 추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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