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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그러면 아비규환
닉 혼비 외 지음, 엄일녀 옮김 / 톨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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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별로 주목하지 않은 책이었다. ‘이름만 들어도 호기심이 동하는 영미권을 대표하는 스타 작가’라고 책을 소개하고 있지만 내가 기억하는 이름이라고는 ‘닉 혼비, 닐 게이먼, 스티븐 킹’ 이렇게 세 명의 작가가 전부였다. 호감을 갖지 않은 상태로 책을 받아보고선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 부피감에 입이 절로 벌어졌다. 더 솔직히 말하면, ‘오싹한 이야기Thrilling Tales’를 테마로 쓴 소설집이라기에 결코 읽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불편하고 거북한 이야기, 오싹함은 끔찍한 피의 현장일 것만 같고 특정 장르소설을 연상하며 내키지 않음 마음이 컸는데 결코 그렇지가 않았다. 그리고 책에 대한 찬사가 결코 거짓이 아니었다. 선입견에 마음을 닫고, 방구석에 처박아 두었다면 크게 후회할 뻔했다. 읽기 전에는 알 수 없는 일이니 결코 후회하진 않았을까? 여하튼 나는 스스로도 의아할 정도로  커다란 호기심에 휩쓸렸다. 20여 명의 작가들이 풀어낸 이야기는 참신하고, 그렇다고 가볍게 읽기에는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기묘한 사건, 기발하고 황당한 이야기가 끊임없이 호기심을 자극하였고, 내내 흥미진진한 시간을 만끽하였다.

 

“노력이라는 것은 치열하게 꾸준히 해야 하는 것” (180)

 

가장 인상적인 이야기 하나를 정리할까 한다. 그것은 바로 ‘데이브 에거스’『정상에서 천천히 내려오다』이다. 항상 귀차니즘에 빠져 안일했던 삶에 강렬한 균열을 일으키며 뒤흔들었다. 최근, 나를 괴롭히던 어떤 일에 대해 다시금 마음을 단단하게 다잡고 흔들리지 말라고 속삭여주었다.

킬리만자로로의 하이킹을 떠난 후 일련의 과정을 이야기로 풀어내고 있다. 오래 전에 동생과 함께 준비했던 킬리만자로, 하지만 홀로 떠나왔다. 부정적이고 회의적이며 끊임없이 불평불만에 사로잡혀, 자신의 목적을 읽고 방황하고 있었다. 주인공 ‘리타’는 분명 꽤나 무력하고 따분함에 빠져있었다. 산행을 시작하고도 여전히 겉돌고 있었다. 그런데 한 밤중, 달빛 아래 드러난 킬리만자로 정상을 보고 그녀는 정상까지 오르기로 결심을 하다. 그녀의 놀라움과 그 성취감에 들뜨는 그 마음이 오롯이 내게도 전해졌다. 그녀의 마음이 새롭게 의지와 열망으로 불탔다. 킬리만자로의 산행을 예전에 tv에서 본 적이 있었는데, 그 때의 이미지가 겹치면서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지는 듯, 압도적이었다. 힘겨운 상황들 속에서도 끝까지 정상에 도달하는 과정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날씨는 말할 것도 없고, 산행의 과정은 고통의 연속이었고, 그들의 산행을 함께 했던 짐꾼의 죽음 그저 희열, 환희에 들뜬 수도 없어 가책에 빠지기도 하였다. 그녀는 의욕도 없이 어쩔 수 없는 상황에 휩쓸리듯 시작된 산행, 그 며칠 동안의 힘겨운 시간의 이야기를 통해, 그녀의 변화로 인해 내 마음도 뜨거워지는 듯했다. 그럼에도 또 주저하고 흔들렸다. 짐꾼들과 이대로 캠프에 머물면서 마지막 등정을 포기할까 잠깐 고민한다. 킬리만자로에 대한 사진도 있고, 아이맥스 영화도 있다. 정상에 오르지 않아도 그녀는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 리타는 자신이 해낼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데 진절머리가 난다. 오랫동안 그녀는 노상 자신의 깜냥을 벗어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어떻게든 해보려다, 매번 느닷없이 포기하고는 그저 열심히 했다는 데에 만족해왔다. 성공과 실패 사이, 성취하고 이룬 목표와 조정된 목표 사이의 그 미묘한 지점에서 위안을 발견했다.”(184~185) 아~ 그 어떤 문장보다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나 또한 지금껏 그러했다는 자각에 몸서리쳐졌다. 올 해 초 어떤 목표를 세우고 최근에 많이 흔들리고 있었다. 1 년여의 장기 레이스에 몸과 마음이, 아니 마음이 많이 지쳐가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갈등, 그녀의 변화가 내 마음을 다잡아주었다.

또한 단순한 개인적 성취의 이야기만은 아니었다. 그 누군가의 말없는 희생이 짐꾼의 죽음으로 구체적으로 표현되고 있었다. “일이 죄 틀어졌는데도 왜 올라간 것일까? 짐꾼들은 매일 앞서 올라갔고, 지독히 춥고 바람이 무지막지 불어도 경치 좋은 장소까지 등산객들이 오르는 것을 도왔으며, 빌어먹을 수박과 커피를 날랐다.”(194) 그런데 힘겹게 짊어지고 올라갔던 수박이 그냥 버려졌던 것을 기억하게 된다. 그녀는 결코 혼자 힘으로만 그 정상에 오른 것만은 아니었다. 한 편이 짧은 이야기였지만, 삶의 진솔한 단면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할 삶의 속살을 여지없이 그려내고 있었다.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고, 노력하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다시금 해본다. 그럼에도 앞으로 수없이 흔들릴 것이다. 하지만 ‘리타’의 이야기를 되새기면서 굳건해질 것이다.

그리고 킬리만자로는 아닐지언정, 푸르른 가을 하늘, 오색의 들과 산으로, 따사로운 가을 햇살 속으로 내달리고 싶어진다.

 

“그녀와 정상 사이에는 오직 시간과 숨결밖에 없다.

그녀는 젊다.

그녀는 할 것이고, 해낼 것이다.”

(172)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김연수 지음 / 자음과모음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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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지난 해, 일본의 쓰나미를 tv에서 처음 봤을 때, 놀라움에 앞선 눈으로 보고도 이해할 수 없어 의아했던 것은 바로 그 ‘시커먼 덩어리’들 자체였다. 끈적끈적한 검은 그 실체는 눈으로 보고도 믿기 어려웠고, 입을 벌린 채, 그 참상, 그 비극을 막연하게 바라보았다. tv 영상 속, 그 불가사의한 이미지가 바다라는 사실을 이해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그것은 우리가 알던, 때로 그리워하던 바다의 푸른빛이 아니었다. 바다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 것이 전부인 냥, 착각 속에 살아왔다는 사실이 지난 해 쓰나미가 몰고 온 첫 번째 충격이었다. 그 심연의 바다 속의 제 빛깔은 상상 조차 못했던 전혀 다른 빛으로 나는 그 심연의 실체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사람 또한 마찬가지이리라. 아니 우리는 그 심연의 존재 자체를 망각하였다. 아닌 자각한 적이 있기는 할까? 그래. 설사 알고 있다면? 그렇다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그 깊은 심연을 어떻게 넘나들 수 있을까? 심연을 건너 타인에게 오롯이 가닿을 수 있는 마법의 날개가 있다면? 그 희망은 타인을 그리고 자신을 평안하게 할 수 있을까? 그런데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을 읽으면서 나는 ‘그렇다’라고 대답을 해야 한다. 일시적이나마. 마법의 날개가 내 등에. 오늘 앞뒤 정황과 그 사람의 성향에 대한 이해에 앞서, 그저 어떤 문자에 노발대발 화를 낼 뻔했다. 천만 다행이도, 나는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을 들고 있었고, 그래서 그의 마음과 상황을 헤아리고, 마음속의 분란을 잠재울 수 있었다. 그렇듯 사람과 사람 사이, 그 관계 속에서 수많은 갈등과 오해는 사람 사이의 심연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저 심연보다는 드러나는 일부의 외양이 모든 것인 듯 우리는 쉽고 편리하게 많은 것들을 합리화하기 바쁘다.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는 것, 그 감각의 예리함에 앞서 그저 우리가 보고 싶고, 듣고 싶은 것으로 왜곡한다. 동시에 타인에게는 더욱 매서운 잣대로 제단할 뿐이다. 그러나 그 심연의 존재, 그 심연 속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의 날카로움의 칼끝이 나를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온 피부로 느끼는 시간이었다. 또한 가슴 먹먹한 이야기로 나는 평안을 얻을 수 있었다.

 

여고생 ‘정지은’은 미혼모로 한 아이를 낳았고, 그리고 그녀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가 수면 위에 떠 있는 어떤 일부의 사실이다. 그리고 한 여선생은 ‘정지은은 아빠가 자살하는 걸 무력하게 지켜봤지요’라고 증언한다. 하지만 그 날 그녀는 ‘난 최선을 다할 거야’를 외치며 어둠을 달리고 있었다. “거기 고통과 슬픔이 있었다면, 그것은 그 아이의 고통과 슬픔이었다. 우리의 것이 될 수 없는 고통과 슬픔은 고통스럽지 않고, 슬프지도 않다. 우리와 그 아이의 사이에 심연이 있고, 고통과 슬픔은 온전하게 그 심연을 건너오지 못했다. 심연을 건너와 우리에게 닿는 건 불편함뿐이었다.” (286) 그리고 많은 우리들은 늘 그렇게 타인의 고통과 슬픔에 외면하고 자신의 불편함만을 자각할 뿐이다. 하지만 실타래처럼 엉키고설킨 관계의 틈 속에서 과연 타인만의 고통과 슬픔일까? 그렇게 타인만의 고통과 슬픔인 채로 20여년의 시간 속에서 그들은 행복했을까? 그리고 우리는 행복할까?

 

전체적으로 보면, 이 책의 전반적인 분위기 역시 푸른빛이다. 안개가 자욱하게 깔린 도시의 회색빛이 감도는 푸른빛, 그런데 점점 마음은 평온하고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우울의 깊은 수렁이 아닌 차분한 마음으로 이야기 속 여정에 빨려 들어간다. 진실에 가까이 다가가고픈 호기심에 앞서, 마음 끝을 간질이는 표현들에 설레고, 여러 인물들이 빚어내는 진실의 다른 빛들에 가슴을 쓸어 내렸다.

 

내가 작가 김연수의 알게 된 지는 조금 오래되었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를 만나 본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첫 느낌은 모호한 것이었다. 뭔가 매력적이라면서도 낯설고 애매했다. 그리고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이란 신간을 접하면서도 ‘음~ 나중에 읽어야지’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런데 양 갈래머리를 한 소녀의 뒷모습이 호기심을 자극하였다. 그래도 거기까지였다. 그런데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너를 생각하는 것은 나의 일이었다.’라는 문구에 마음이 조바심을 쳤다. ‘너를 생각하는 것은 나의 일이었다.’ 이 가을의 찬바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살랑살랑 흔들리며 따끈따끈 아련한 연애소설을 탐하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은 전혀 다른 방향의 이야기로, 그 의아함은 더 큰 호기심을 낳았다. 그리고 ‘카밀라’라는 한 입양아가 자신의 뿌리를 찾아 나선 여정, 그리고 미혼모인 엄마를 찾는 과정 속 많은 이야기들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정도로 충격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또 다른 진실들이 고개를 들 때면, 그 이야기 자체에 함몰되었다. 그리고 굉장히 속도감을 느끼면서, 그 어떤 사랑이야기보다 가슴이 시려왔다. 단지 진실을 드러낸 듯 툭 던지고 끝을 맺는다. 그리고 다음을 기약하는 서술에 시선을 사로잡혔다. 또한 충격적 진실이 ‘아니길’ 바라는 마음에 앞서, 그 드러난 사실 이면의 진실을 원했다. 그리고 다른 이들의 증언과 이야기 전개는 마지막 순간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도록 팽팽하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이야기를 이끌던 그 힘이 무엇이었는지 설명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무척이나 흥미진진하게, 그 미지의 심연의 세계를 탐하고자 했다. 그런데 나는 작가가 쓰지 않은 이야기를 읽었을까? 그는 묻지만 나는 대답할 수가 없다. 그것이 아쉬워 나는 다시금 펼쳐 본다.

 

 

 

 

 



 
 
 
[굿바이 동물원]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굿바이 동물원 - 제17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강태식 지음 / 한겨레출판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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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눈길을 끌었던 <굿바이 동물원>이었다. 고릴라복장의 탈을 벗은 한 사내의 모습을 외면할 수가 없었던 것인지 모르겠다. ‘제17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이란 것만으로도 충분히 믿고 읽을 만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처절한 경쟁 사회에서 밀려난’ 주인공이란 말에 결코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아 맹렬하게 읽고 싶어졌다. 그러나 그저 이야기를 통해 별다른 것 같은 평범한 삶에 자족하고, 공감하며 단순한 위로 차원이었다.

 

직장을 잃고 여러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가 공무원급 동물원에 취직을 하게 된 주인공의 이야기 자체가 연신 호기심을 자극하며 재미를 더해갔다. 그런데 전혀 예상 밖의 전개는 신선한 만큼 몸서리치게 만들었다. 있을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왠지 모르게 내 몸을 두르고 있는 두툼한 털옷을 발견하게 된다. 소설 속 기막힌 판타지가 바로 눈앞에 펼쳐졌다. 더 이상 물러설 곳 없이 내몰린 이 시대의 많은 이의 모습, 그 우울하고 참담한 상황은 결코 소설 속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런데 그렇게 막다른 길에서 동물원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마운틴고릴라 ‘앤, 만딩고, 조풍년’ 그들의 면면의 삶은 오히려 인간이길 포기한 순간 더욱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는 열망에 빠졌노라고 외치며 내게 강펀치를 날렸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또한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열망이 꿈틀되면서 또한 진정 사람답게 산다는 것이 무엇이냐며 되묻고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돈’이라며 돈 때문에 인간의 삶을 포기해야 했던 삶에서 오히려 ‘돈’ 이상의 또 다른 가치들이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벼랑 끝에 선 사람들은 그들만의 끈끈한 유대와 친밀감으로 오히려 ‘사람답게’라는 진면목의 삶을 그려내고 있었다. 재미있다며 낄낄거리다가, 섬직 놀라며 하얗게 질리다가도, 그 속에서 꿈틀거리는 삶의 희열에 박수를 보내며 나 스스로에게 격려와 용기를 보내게 되었다.

 

기대 이상으로 재미있었고 무척 재미있게 읽었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불편하였다. 소설이 반영하고 있는 현실, 그것은 고스란히 바로 내가 당면하고 있는 현실 그 자체였다. 하지만 결코 현실적일 수 없는 판타지 속에서 그 어떤 이야기보다 노골적으로 현실을 직시하게 만들었다. 과연 이 이야기를 재미있다며 웃고 있는 자신의 모습에 미더운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쓴웃음을 지으며 자꾸만 자신의 모습을 비추게 된다. 그리고 내내 스스로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자꾸만 외면하고 싶은 밑바닥, 그 깊은 수렁에서 한 가닥의 희망을 찾아 활자 사이를 방황하고 헤매고 있는 나를 발견하였다.

 

‘처절한 경쟁 사회에서 밀려난’ 주인공이란 말에 뜨끔했다.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다. 하지만 솔직히 외면하기 바빴던 나의 진짜 모습, 나 스스로조차 인정할 수 없는 지금의 나의 현주소와 대면할 시간이 바로 <굿바이 동물원>에 있다고 느꼈던 것 같다. 읽는 내내 심히 불편했다. 웃고 즐기면서도, 그 희극 속에 내재한 통렬한 비극이 온몸에 날을 세웠다. 그런데 씁쓸한 뒷맛이 강렬한 만큼, 충분히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시간이었다. <굿바이 동물원>과 함께 나 역시 기나긴 방황을 끝내야 할 것 같다. 보약 한 채 든든히 마련하였으니, 이제 슬슬 약발을 받아 더욱 가열차게 한 걸음 내디뎌야 할 것 같다. 칭칭 감기다 못해 내 살이 되어버렸을지 모를 고릴라 털옷으로 무장한 밥벌이일지라도 그 속에서 더욱 사람다운 삶을 위해 열심히 '우우우우' 포효해야 할 것 같다.



 
 
 
[그 남자의 웨딩드레스]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웨딩드레스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다산책방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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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소개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작가 ‘피에르 르메트르’의 책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전에 읽은 <알렉스>의 이야기가 여전히 생생한 가운데 <그 남자의 웨딩드레스>를 읽게 되었는데, 이번에도 그저 빠져들고 말았다. 알렉스에서의 최단신 형사반장 ‘카미유’가 등장하는 이야기인가 내심 기대하기도 하였고, 살인을 서슴지 않는 한 여성의 삶의 이면에 감춰진 어떤 비밀의 실체를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카미유’가 등장하는 시리즈의 책은 아니었지만,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리란 기대, 그리고 전혀 예기치 못한 상황 속에서 끊임없이 ‘왜?’란 의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바로 그것이 <그 남자의 웨딩드레스>를 읽을 수밖에 없는 마력이었다.

 

여섯 살 레오의 죽음으로 이야기는 시작한다. 왠지 평온한 것 같은 분위기가 감도는 집안, 그 집의 외동아들 레오의 보모로 취직한 ‘소피’는 그 집에서 처음으로 잔 날, 레오의 죽음을 발견한다. 그녀의 운동화 끈에 목이 졸린 채. 아무런 외부 침입자를 확인할 수 없는데, 아무런 기억이 없다는 것이 이야기의 궁금증을 자아낸다.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살인, 그리고 그 용의자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들, 그녀는 도주를 결심하는데, 연달아 또 다른 살인사건에 휩쓸리게 된다. 첫 번째 이야기는 바로 그러한 소피의 상황들, 일련의 도피 과정을 다루고 있다. 1급살인용의자로써 수배대상인 삶은 매순간이 긴장의 연속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위조한 신분을 이용해 결혼을 결심하기로 하면서 이야기를 끝을 맺었다. 하지만 <알렉스>의 이야기에서 보았듯이, 이야기 속 소피의 진짜 이야기가 숨어있으리라 기대했다. 물론 그녀의 살인 자체를 의심하지는 않았고 그녀의 살인 동기의 정당성(?)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녀의 진짜 이야기, 기억이 없는 살인 속에 감춰진 엄청난 비밀이 있을 것이라며 참혹한 살인에도 느긋하게 그녀의 진짜 이야기를 기다린 것이다.

그리고 수사에 난항을 보이는 형사들의 이야기가 시작되리라고 생각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형사들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내심 기대했던 ‘카미유’가 등장하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이미 <알렉스>를 통해 형사 ‘카미유’의 활약상을 다룬 이야기가 시리즈로 출간될 것이라고 했다. 특히, 그의 아내의 죽음을 둘러싼 이야기 말이다.

단순히, 그녀의 도피를 추적하는 예리한 형사, 그가 파헤쳐가는 소피의 삶을 지배하는 어떤 비밀이 조금씩 드러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전혀 다른 방향의 이야기가 전개되었다. 그래서 나는 <그 남자의 웨딩드레스>에 더욱 압도되었다. 정말 난데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기가 막힌 설정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의 차례는 ‘소피, 프란츠, 프란츠와 소피, 소피와 프란츠’로 구성되어 있다. 이야기의 어떤 단서도 찾을 수 없는 구성인 것이다. 그리고 바로 ‘프란츠’란 인물이 주는 반전은 혀를 내두르게 한다. 그 어떤 결말의 반전보다도 더 파급이 강한 반전인 것이다. 이성적으로, 아닌 감정적으로도 ‘왜?’에 대한 합당한 설명, 이유가 필요했고, 그것을 확인하지 않고서는 다른 어떤 생각이 들지 않았다. 바로 ‘왜?’란 의문의 올가미에 갇힌 기분이랄까? 그리고 소피의 상황들, 한 여성의 삶을 낱낱이 재구성하는 과정을 보면서 오늘의 우리가 누리는 이 문명의 무자비함을 또한 엿볼 수 있었다.

 

‘소피’가 기억하지 못하는 살인이기에 어떤 살인의 동기, 그리고 살해 장면들에 대한 세세한 묘사 없이 전개될 수 있어, 스릴러 소설이 주는 부담감, 즉 핏빛으로 물든 잔혹한 살인들이 주는 위압감은 다소 덜했다. 그래서 <그 남자의 웨딩드레스>에 더욱 빠져들 수 있었다. 그 어떤 살인보다도 잔혹한 이야기임엔 분명하지만, 지금까지 읽은 그 어떤 스릴러 소설보다 팽팽한 긴장감을 충분히 즐길 수 있었다. <그 남자의 웨딩드레스>는 ‘왜?’란 의문이 가져온 강력한 흡입력이 압도적인 작품인 것이다

 

 

 

 

 



 
 
 
[별을 스치는 바람]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별을 스치는 바람 2
이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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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수의 얼굴을 한 천사? 천사의 탈을 쓴 야수? 어쩌면 그 모든 것이 그의 진실한 모습일지 모른다. 진실은 때로 수많은 얼굴을 가졌으니까. 우리는 때에 따라, 장소에 딸, 이익에 따라 악인이기도 하고 천사이기도 하며, 교활한 사기꾼이기도 하고 사기를 당하는 자이기도 하며, 간악한 밀고자이기도 하고 밀고의 희생자이기도 하지 않던가? 그 모든 얼굴이 거부하지 못할 우리들 자신의 진실인 것이다. (180)

 

1권을 읽으면서 이야기는 점점 고조되어갔다. ‘히라누마 도주, 윤동주’의 등장과 형무소 내의 일련의 어떤 변화가 호기심을 자극하였다. 하지만 그저 호기심만으로 글을 읽기에는 전쟁이 드리워진 시대의 암흑과 그와 더불어 식민지, 그 시대 조선인의 고통이 처절하고 암담할수록 오히려 외면하고 거부하고 싶은 마음과 싸워야했다. 진실을 외면하고 기억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마음이 강해졌다. 그런데 실제로 나는 외면하고 기억에서 지우고 살아왔다. 나치의 생체실험, 학살 등은 뇌리에 박혀있는데 일제에 의한 마루타, 학살 등은 기억 저편 어딘가에 꼭꼭 숨어있었다. 윤동주의 이야기를 읽게 되면서, 후쿠오카 형무소를 기억했지만, 그곳에서 자행된 끔찍한 진실들을 결코 염두해 두지 않았다. 그저 살인자를 추적해가는 과정, 죄수들의 대규모 탈출 기도와 지하에 감춰진 어떤 사건에 대한 호기심만을 키웠다. 하지만 후쿠오카 형무소 내의 실제 했던 어떤 사실, 진실에 이제야 비로소 눈을 떴다. 이제야 ‘진실은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해야 하는 것’이란 명백한 진리가 폐부를 찌르듯 강렬하게 다가왔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자신의 죄를 실토함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더욱 뇌리 깊숙이 박혀 버린 진실, 그 뼈아프고 몸서리쳐지는 진실이 고개를 들었다.

 

<별을 스치는 바람 2>는 살인사건의 진실이 드러났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진실들에 깜짝 놀라며 내친걸음을 내달렸다. 악마 같은 간수 ‘스기야마’의 이면의 진실이 드러날수록 참혹한 시대의 더욱 투명해지는 듯하다. 식민지 시대의 억압이 여전히 우리 삶의 이면을 지배하고 있다는 울분 이외에도 전쟁의 무자비한 참상이 피부로 느껴졌다. 살인사건을 파헤쳐가는 어린 간수병 ‘유이치’가 악마처럼 변모해 전쟁의 피폐함을 온몸으로 증명하게 될까봐 조바심이 났었는데, 나의 우려와는 다른 방식으로 시대의 고통을 대변하고, 그의 숱한 갈등과 고백으로 전쟁의 불편한 진실을 드러내고 있었다. 다른 시선에서 전쟁의 참혹함과 내가 느끼지 못했던 또 다른 애환을 느끼게 되었다.

 

“.... 스스로를 자책하다가 삶을 망쳐 버려선 안 돼. 우리는 살아남아야 해. 살아남아야 이 전쟁이 끝나는 것을 볼 수 있고, 더러운 시대에 침을 뱉을 수 있어. 명심해라. 살아남는 게 승리하는 거야. 시체는 결코 만세를 부를 수도 침을 뱉을 수도 없어.“(168)

 

가장 아름다운 건 살아 있는 거야. 더럽고, 참혹하고, 지옥 같은 이 세상에 살아남는 거지. 천사처럼 순수하고, 영웅처럼 용감하게 죽기보다는 악마처럼 악하고 야수처럼 비열하게라도 살아남아야 해. 악마처럼 간악하게 살아남아야 천사처럼 착하게 죽을 수 있으니까. 살아남아야 더러운 전쟁이 끝나는 것을 보고, 악이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고, 상처 입은 사람들이 위안받는 것을 볼 수 있으니까. (180~181)

 

함부로 눈시울조차 붉힐 수가 없었다. 누구처럼 나 역시 울 자격이 없는 것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유이치는 살아남아, 시대를 증명했다. 그리고 이야기를 통해, 소설로 재구성된 이야기를 통해 윤동주를, 그리고 우리가 기억해야 할 역사의 진실이 무엇인지 뚜렷하게 밝혀졌다. 이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다.

또한 더 분명하게 울리는 하나의 외침이 있었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죄’ 역시 분명한 유죄라는 것을.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 죽느냐 사느냐가 아니란다. 문제는 To be, 즉 ‘가만히 있느냐?’ Not to be, ‘가만히 있지 않는냐’란다. 행동하느냐 행동하지 않느냐? 내게 하나의 숙제로 남았다. 가슴이 그간의 열기보다 더욱 뜨거워졌다. 자유를 향한 열정, 그리고 삶의 대한 뜨거운 의지, 지금 내게 꼭 필요한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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