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을 훔치다
조완선 지음 / 엘릭시르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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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 년을 거슬러 올라가도 옛날이 아니오,

수만 년을 앞으로 나아가도 항상 지금이다.

 

 

‘조완선’이란 이름이 결코 낯설지 않았다. 익숙한 이름은 바로 ‘외규장각 도서의 비밀’에서 연유한 것이었다. 어떤 이야기일지, 역사적 어떤 사건을 이야기에 그려내고 있을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실제 사건(일본 안국사 초조대장경 도굴사건)을 모티브로 이야기를 엮고 있다는데, 모든 것이 생소한 이야기였다.

 

 

일단 도굴꾼들의 이야기라는 것에 반신반의한 점도 있었지만 쉽게 동화되었다. 특히, 2011년은 대장경 조성 천년 기념해였다. 이미 조정래의 <대장경>을 만났다. 그리고 뒤늦게 <천년을 훔치다>를 만나게 되었는데, 이 역시 대장경 기념해와 맞물려있었다. ‘천년’이라는 두 글자가 두 눈에 깊숙이 박혔다. 천년의 시간을 감히 헤아려본들, 그 시간의 끝자락이라도 붙잡을 수 있을까? 그 가늠할 수 없는 시간의 묵직함만이 엄숙하게 다가오면서 어떤 이야기일지 기대되고 설렜다.

 

안국사 원정 도굴사건이 빌미가 되어 책의 실마리를 풀어냈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의 상상력에 기대어, 무척 흥미진진한 시간을 보냈다. 한일 양국의 전설적인 도굴꾼들의 이야기가 멋들어지게 어우러져 생생하게 다가왔다. 영상에 익숙한 우리에게 책 속의 활자들은 수시로 튀어나와 곧장 이미지로 완성되었다. 전설적인 도굴꾼(장기봉, 아라부)의 손자, ‘장재석’과 손녀 ‘하야코’의 도굴 장면들, 그리고 초조대장경의 실체를 찾아 나서는 여정이 끊임없이 교차되고, 서로 다른 경로를 통해 실체에 다가가는 과정, 그리고 그들의 결국 하나의 종착역에서 만나게 되는 과정들은 아귀가 들어맞으면서 쉴 틈을 주지 않았다. 꽤나 많은 분량인 이 한 권에 책에 쉽게 몰입되고, 그 속에 팽팽한 긴장감과 음흉한 계략 속에 숨겨진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서로 믿지 못하면서도 협력하고 그러면서 수시로 뒤통수를 때리면서 각자의 길을 도모하는 그들의 권모술수가 재미를 더했다. 일단, 깊은 밤에 이루어지는 도굴 현장은 손에 땀을 쥐게 하면서, 우리의 문화재를 찾아나선다는 명분 앞에 ‘원정 도굴’,  ‘인간의 탐욕’은 살짝 의미가 퇴색되는 듯, 짜릿함에 전율하면서 이야기는 더욱더 흥미진진해졌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천년을 훔치다>의 여정이 허구라는 사실, 실체가 없는 가상의 이야기임을 분명 인지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그 결과에 대해서는 어쩌면 ‘뻔할 뻔’자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 과정 속의 씨실과 날실을 절묘하게 어우러져, 우리 안의 뜨거운 욕망과 또 다른 인간적 고뇌-‘부성’, 생사의 갈림길, 애끓는 혈육의 정이랄까?-와 마주하게 되고, 결국 빠져들게 만든다. 도플갱어처럼 한일 양국의 전설적인 도굴꾼의 삶과 그들의 대립구도는 숨 가쁘게 경쟁 구도를 만들었고, 도굴꾼이기 이전에 음흉하게나마 문화재를 대하는 그들의 자세와 해박한 지식, 얄팍하게나마 그들의 무서운 집념과, 천년을 지켜온 보물의 이야기는 풍성한 이야기 그 자체였다.

 

 

‘조정래’의 <대장경> 속 이야기 속, 초조대장경이 불타는 장면, 그리고 수년에 걸쳐 팔만대장경이 조성되는 과정들을 떠올리면서, <천년을 훔치다> 속 이야기에 흠뻑 취했다. 대장경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작가의 상상에 기대어 그 의미와 가치를 되새겼음에도 여전히 우리 문화에 대한 나의 관심은 한 걸음조차 내딛지 못한 것 같아 부끄러움에 고개를 숙이게 된다. 하지만 <천년을 훔치다>의 이야기를 통해 다시금 ‘천년의 시간’을 견뎌낸 대장경, 그 속에 담긴 숭고한 열정과 뜨거운 집념이 머릿속이 깊이 각인되도록 되새겨본다.

 

‘이은’의 <미술관 점거사건>과 ‘조완선’의 <천년을 훔치다>이 엉뚱하게도 문화재, 특히 약탈당해 우리 곁에 머물지 못하는 ‘문화재’라는 공통분모가 연결된다는 것이다. 어떤 이야기인지 사전정보 없이 읽게 되었지만, 건봉사로 모여든 주인공처럼 두 권의 책이 시사하는 바는 하나의 맥을 같이 하고 있었다. 아는 만큼 보이고, 알수록 더 깊이 사랑하게 된다고 했던가! 문화재에 대해 우리의 경각심을 일깨운다.

 

 

<미술관 점거사건>, <대장경> 그리고 <천년을 훔치다>는 자연스럽게 문화재에 대한 관심과 애정에 마음이 쏠렸지만, 그 속에서 문화재를 두고 벌이는 인간들의 탐욕과 무자비함에 눈을 흘기기도 하였다. 그렇게, <천년을 훔치다>는 서로 다른 경로로 ‘초초대장경’에 접근하면서, 우리의 탐욕에 대해 날선 경고를 잊지 않고 있다. ‘진실로 나의 소유가 아니라면 비록 털끝만큼이라도 가져서는 안 된다’(361)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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