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아주 사적인 궁궐 산책 - K-궁궐을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김서울 지음 / 놀 / 2021년 5월
평점 :
지방에서 서울로 거주지가 바뀐 나같은 지방 출신러에게 서울의 문화재인 궁궐들은 꼭 방문 해야 할 버킷리스트 속 장소들 중 하나였다. 또한 전공이 미술관련인지라 미술사, 건축사에 자주 등장하는 궁궐은 이론적으로나마 아주 친숙한 곳이다. 더구나 어른이 되고 가지게된 사진찍기라는 취미 덕분에, 책에 나온 궁 중에 경희궁을 빼고는 참 여러번 방문 했더랬다.
그랬기에 처음엔 이 책에 관심이 갈거라고 생각치 못했다.
내 주변엔 궁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여럿 있고 그래서 유물을 공부 한다는 이가 궁을 싫어할거란 생각은 해본 일이 없었다. 아마 그 사실이 오히려 이 책에 주목하게 한 요인이 아닐까 싶다. 궁을 싫어하면서 궁에 대한 책을 써볼 생각을 하다니, 궁 러버들이 들으면 얼마나 기겁할까 ㅋ
하지만 궁에 여러번 방문을 하게되어 점점 가까와지면서 서서히 궁며들었다는 작가의 말에 ‘그럼 그렇지, 유물 좋아하는 사람치고 궁을 싫어할 수는 없지’ 하며 흐뭇한 미소를 띄고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책은 서울의 5개의 대표 궁궐의 소개로 시작이 된다.
경희궁 빼고는 꽤 많이 가보았기에 작가가 이야기하는 대부분의 내용을 어느정도 알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며 읽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더 많은 걸 알게되었다.
각 공간을 방문하면서 열심히 보고 즐기긴 했으나 궁끼리 어떤식으로 이용이 되었던 것인지, 어떤 관계들을 맺었던건지 궁이 사용되었을 시절을 기준으로 바라볼 생각은 해보지 않았던 것이다.
책을 읽고나서야 지도를 넓게 켜서 궁의 위치들을 살펴보았다. 경복궁을 중심으로 동궐 서궐이 어디쯤 어떻게 만들어지게 된건지 몇백년전 과거를 떠올려보며 상상해보니- 어쩐지 내가 원래 알던 곳이 아니라 새로운 곳을 맞딱들인 느낌이 들었다.
또한 궁의 재료인 돌과 나무로 궁을 낱낱히 뜯어서 해주는 이야기도, 본디 궁 속에 있었을 물건들을 가지고 풀어내는 이야기도 새롭고 재미있었다. 오히려 작가가 궁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그런 시선으로 바라보았기에 가능한 접근방식이 아니었을까.
‘싫어하는 것도 결국 사랑’이란 마지막 작가의 말이 떠오른다. 관심이 없는 것이야 말로 정말 아무런 화학작용이 일어나지 않는 일일테니, 싫은 감정은 언제고 반대로 튕겨져 나갈 수 있는 일인가보다.
어쩐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모든 종류의 것들에게 유연한 마음이 들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책장을 아쉽게 덮었다.
+
이 책의 또 다른 묘미는 유연발랄한 작가의 시선 뿐 아니라 궁의 아름다움을 잘 담아준 사진작가의 작품들이다. 책 초입에 작가가 말했던 ‘광화문을 통과하면 다른 차원의 세상이 펼쳐진다. 주변의 공기가 돌연 차분해지는 그 순간이 좋다’라는 문장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한 아득하고 고요한 느낌이 사진 속에 담겨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