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솔길 끝 바다
닐 게이먼 지음, 송경아 옮김 / 시공사 / 2014년 6월
평점 :
품절


  얼마 전 유치 야요미의 [후쿠야당 딸들]을 다시 읽었다. 450여년 동안 교토에서 제과점을 가업으로 삼았던 후쿠야 집안의 세 자매들의 성장담이 그려져 있는 이야기인데, 그 마지막 장면이 상당히 인상적이다. 가족들과 자신을 맞춰가며 또 부딪쳐가며 부모가 된 그들은 자신이 아이었던 일을 잊어버리고, 그들의 어머니가 그랬듯 자식들을 대하고 있는 장면.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또 다시 자기 나름대로의 답을 찾으며 성장해 가지만.


  그러니까, 그런 일은 계속 반복되는 게 아닐까 싶다. 당연히 지금 이 시점에서는 당시 부모님들이 어떤 마음으로 잔소리를 한 건지 이제는 이해를 할 수 있으니까. 자식이 아프면 그저 건강하게만 자라길 바라는 것이 부모 마음이고, 또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식이 잘 되는 마음에서 끊임없이 잔소리를 하게 되는 것 역시 부모의 마음이 아닌가 싶다. 그럼에도 역시 이런 이야기를 내가 할 소리는 아니지만. 공감과 실천은 또 다른 문제이겠지만, 어쨌든 '공감'은 할 수 있으니까.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역시 내가 나이가 들었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 중 하나는 어린 시절에는 전혀 공감이 가지 않았던 어른들의 한 마디를 어느새 나도 공감하고 있을 때. 분명 어릴 때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는 '나는 어른이 되어서도 꼭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해 줄거야' 하고 다짐을 하지만, 아 물론 이해를 못 해주기보다는, 그냥 어른들의 시선에 공감을 해 버리고야 만다. 나 역시 절대로 이 마음이 사그라들지는 않을 것이라는, 할머니가 되어서도 아마 god를 안 좋아할 수는 없을거라고 다짐을 했지만, 지금은 역시 그 중학생 시절의 열정적인 마음을 그냥 어느 한 구석에 조용히 남겨두고 있지는 않은가. (물론 8월에 다시 꺼내 들 준비는 마쳤다!ㅎㅎ)






  닐 게이먼의 [오솔길 끝 바다]는 이런 감상을 불러일으킬 성장 소설이라 할 수 있다. 물론 내가 위에 말한 것처럼 마냥 아름다운 감상만 흘러나오지는 않을테다. 오솔길 끝 바다로 나아가면, 분명히 가지고 있었지만 어느새 잊고 있던 나의 어린 시절의 다양한 감정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오솔길 끝 바다]가 훌륭한 이유는 환상 소설이라는 틀 속에서 그 다양한 감정들을 건드리는 요소를 자연스럽게 배치함으로써 책을 읽는 누구나 마음 속 어딘가를 건드리는 무언가가 있을 것임을 자신하는 것이고, 그리고 자신의 마음 속에 가라앉았던 무언가를 건져냈을 때 그 형태가 다양한 빛을 낼 것이 틀림없음에 있다.



  말하자면 이런 식이다. 소설 속 화자는 누군가의 장례식에 가는 길에 문득 자신이 어린 시절을 보냈던 집을 찾아가고 싶어 고향으로 운전대를 돌린다. 자신의 집으로 향하는 동안 일곱살의 자신이 살고 있었던 집의 형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거기에 개축을 한 집마저 자신의 추억과 달리 집주인의 취향에 바뀌어있음을 알아차린다. 그러나 문득, 왜 지금까지 자신이 까맣게 잊고 있었는지 모를 정도로 생생한 기억이 떠오른다. 그렇다, 이 오솔길을 따라 쭉 내려가면 헴스톡 가의 농장이 있었고, 그곳을 돌아 나가면 레티 헴스톡이 말하곤 했던 '대양'이 있었다. 조그마한 연못처럼 보였는데, 레티는 그 대양을 건너 자신들은 먼 나라에서 건너왔다고 이야기하곤 했다.


  성장통의 시작은 호주에서 오팔을 채굴해 한탕을 노리던 남자가 '나'의 집(정확하게는 '나'의 부모님의 집)에 세입자로 들어온 뒤였다. 그 남자는 '나'의 소중한 새끼 고양이를 차에 치여 죽게 만들고는, 고양이를 소중히 묻어줄 틈도 없이 알아서 처리하고는 다른 고양이 '몬스터'를 데려와 이걸로 보상이 되었느냐고 물었다(물론 지금과 달리 동물에 대한 인식이 달랐기에 소년 역시 수긍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남자는 '나'의 아버지의 차 속에서 죽은 채 발견된다. 돈에 눈이 멀어 자신의 돈과 친구의 돈까지 모두 도박으로 날려버린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었다. 작은 마을에 찾아온 그 균열은 '나'와 레티 헴스턴과의 인연의 연결고리가 되었으나…….


  레티와 맞잡았던 손이 잠깐 떨어졌던 그 순간 이후, 둘 다 일을 하러 나가야 하는 부모님 대신 '나'와 동생을 봐 줄 베이비시터 어슐러 몽턴은 '재앙'이 되어 찾아온다. 그녀는 '나'를 집 밖으로 나가 레티를 만나지 못하게 방에 가두어두었고, 아버지와의 외도를 목격하게 만들었으며, 더 나아가 아버지의 심한 체벌을 겪게 한다. 그런 상황만 놓고 보았을 때는 혹독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있는 소년의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지만, 닐 게이먼은 거기에 다른 세계의 요소를 가미함으로써 소설 속 배경을 이색적으로 그림과 동시에 소년에게 찾아온 '흉기(?)'를 변주해 낸다.





  그렇게 일곱 살의 소년은 빠르게 성장한다. 빠르게 성장한 만큼 그 시절을 뒤돌아 볼 사이도 없이 잽싸게 잊곤 한다. 그러나 닐 게이먼은 그 망각 속의 추억을 '환상'을 통해 복원할 밑그림을 그려낸다. 그러나 역시 누구나 오솔길 끝 바다에서 마주치게 되는 무언가는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각자 나름의 변주곡을 함께 즐길 수 있기를.




 

그것은 농장 뒤쪽에 있는, 오리가 사는 연못일 뿐이었다. 그리 크지도 않았다._p.9



어른들은 길을 따라간다. 아이들은 탐험한다. 어른들은 같은 길을 수백 수천 번 걸어가도 만족한다. 아미 어른들에게는 길을 벗어나고, 진달래 덤불 아래를 기어가고, 울타리 사이의 공간을 찾아낸다는 생각이 아예 떠오르지 않을 것이다. 나는 어린아이였고, 그것은 우리 집 대문 밖을 벗어나 오솔길로 들어갈 수 있는 서로 다른 방법을 십여 가지는 안다는 뜻이었다._p.95~96




우리는 오래된 나무 벤치에 아무 말 없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나는 어른들에 대해 생각했다. 그 말이 진짜인지 궁금했다. 그들은 모두, 사실은 어른의 몸에 싸인 어린이이들일까? 그림도 대화도 없는 지루하고 긴 어른 책들 사이에 숨겨진 어린이 책 같은?_p.185




나는 보통 아이었다. 그건 말하자면, 이기적이며 나를 제외한 다른 사물의 존재를 완전히 인식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또한 나는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라고 확신했다. 바위처럼 단단한, 흔들리지 않는 확신이었다. 이 세상에서 나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었다. (...) 나는 진짜 죽고 싶지 않았다. 그걸 이해해 주었으면 한다. 그러나 파괴를 멈출 수 있는 힘이 있는데 모든 것이 파괴되도록 놔둘 수는 없었다._p.252~253




억울함이 번뜩였다. 그냥 사는 것만으로도, 세계에서 살아남고 세계 속에서 자기 자리를 찾는 것, 그렇게 그럭저럭 살기 위해 해야 하는 일들만으로도 힘들었다. 무슨 일을 했을 때 그 일이 누군가의 것을...... 죽지 않았다 쳐도, 그녀의 생명을 기꺼이 내줄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었는지 생각하지 않고 살아도 힘들었다. 이건 공정하지 않았다._p.269




두 번째 달의 환영이 어디서 왔을까 궁금했지만, 한순간이었다. 곧 나는 그것을 마음속에서 털어버렸다. 아마 잔상이나 환영이었으리라. 잠시 동안 내 마음을 흔들어놓은 무엇인가의 환영. 너무나 강력해서 진짜라고 믿었지만 이제는 사라져버린 것. 잊힌 기억처럼 혹은 황혼 속에 녹아드는 그림자처럼 과거 속으로 희미해져버린 것._p.287







_20140728




* 이미지 출처 : 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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