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부터 읽기 시작한 <감시와 처벌>을 이제야 절반 읽었다. 1부 신체형, 2부 처벌까지 읽음.


#1. 독후감

1부 신체형은 하드고어물 소설처럼 읽으면 된다. 1부 신체형의 내용을 요약하면 범죄는 왕의 권력에 대한 반역이자 도전이다. 왕은 자신의 권력에 도전한 반역자의 신체를 처벌하고 전시 공연한다. 왕은 신체형을 통해 자신의 권력을 백성들에게 과시한다. 신체형은 권력 과시의 수단이므로 신체형이 잔인하고 고통스러울수록 왕의 권력이 강하다는 증거가 된다. 이에 시민들은 필요이상으로 잔인한 신체형을 실시하는 왕에 대한 반감이 생기게 되었다 정도로 요약.


2부 처벌을 읽는 것에 가장 큰 장벽은 인용문이다. 인용문이 40% 이상(더 적을 수도 있지만... 체감상 40% 정도)인데 미셸 푸코가 이 인용문을 긍정하는지 부정하는지, 긍정도 부정도 아닌 단순 고증일 뿐인지, 그 심중을 헤아리는 게 좀 어렵다. 반복해서 꼭꼭 씹어 읽어도 이게 푸코도 이렇게 생각한다는 것인지, 그 시대의 법학자(법집행자)의 생각이 이러했을 뿐이라는 건지 애매함.


147~167쪽이 핵심이다.

나는 이 페이지들을 수 차례 반복해서 읽고, 밑줄 긋고, 요약하고, 타이핑하면서 '사형 왜 안 돼?? 왜 안 돼??' 하는 생각만을 곱씹었다. 이 책 <감시와 처벌>은 1975년에 출판되었고 지금은 2023년이다. 2023년 8월의 한국을 살고 있는 나는 사형만으로는 한없이 부족하다. 단두대도 부족하다. 우선 너클을 꼈던 그 손부터 절단해 버리자. 그리고 성기(성기라고 불러주는 것도 과하다. 걍 좆!!)도 잘라 버리고. 눈알도 뽑아 버리자. 그리고 치료도 해 주지 말자. 그냥 과다 출혈이나 패혈증으로 죽게 내버려 두자. 며칠 만에 죽는지나 알아보자. 731부대의 악랄함을 갖추고 이 놈으로 생체연구나 하자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2. 본문 곱씹기: 사형 왜 안 대대대대????


범죄와의 관련에서가 아니라, 그것이 재발할 수 있는 반복성과의 관련에서 형벌을 측정해야 한다. 지나간 범행에 대해서가 아니라, 앞으로 있게 될 무질서에 목표를 두어야 한다. 범죄자가 되풀이하여 범행을 저지를 생각을 못하게 하고, 범행을 모방하는 자가 나올 가능성을 없애도록 조치해야 한다. 그러므로 처벌은 효과를 노리는 기술이 된다. 형벌의 크기를 범행의 크기와 대조시키기보다 오히려 범죄 이후에 일어나는 두 가지 계열 관계, 즉 범죄 자체의 효과와 형벌의 효과를 맞춰 보아야 한다. (151쪽)


벌을 받지 않을 수도 있다는 기대야말로 법의 장치를 가장 취약한 것으로 만든다.(157쪽)


형벌이 그 확실성이 결핍으로 덜 무서운 것이 되면 될수록 그만큼 폭력성을 통해 형벌을 더욱 두려운 것으로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157쪽)


어떤 형벌에 종료 시기가 없다고 한다면, 그것은 모순된 형벌이 될 것이다. 즉, 형벌이 수형자에게 가하는 모든 구속은, 그가 나중에 착한 사람으로 돌아간 후 그러한 구속의 체험을 이용할 수 없게 된다면, 육체적인 형벌에 불가한 것이 될 뿐이다. 더구나 사회적 측면에서도 그를 감화시키기 위한 노력이란 모두 헛수고와 낭비가 될 것이다. 교정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을 제거하도록 해야 한다.(174쪽)


신체형이 극심한 폭력성을 보이게 되면, 범죄가 무거운 것일수록 그 벌은 점점 더 단기간이 될 결과를 초래할 위험이 있다. (175쪽)


이제는 시간의 문제가 징벌 고유의 효력을 거두어야 한다. 장기간에 걸친 일련의 권리 박탈 상태는 인간에게 고문의 공포를 주지 않으며, 일시적인 고통의 형벌보다 훨씬 더 죄인에게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 박탁 상태는 그것을 목격하는 사람들에게 보복적인 법의 기억을 끊임없이 되살리게 하고, 유익한 공포를 언제나 소생시킨다. 시간은 형벌을 운용하는 요인이 된 것이다. (175쪽)


관념성 충족의 법칙(154~155)

- 처벌의 핵심에서 괴로움을 주는 것은 고통의 감각이 아니라, 괴로움, 불쾌감, 불편함에 대한 생각이다. 즉 '괴로움'의 생각 때문에 겪는 '괴로움'이다. 따라서 처벌은 신체를 대상으로 할 필요가 없고 표상을 대상으로 하면 된다.


- 즉, 극대화해야 할 것은 형벌에 대한 표상이지, 신체에 가해진 형벌의 실제 내용이 아니다.


자유을 박탈하여, 과거에 자신이 사회에 끼친 손실을 보상하는 데 여생을 바치게끔 하게 될 사람을 계속 우리들의 눈앞에서 본보기로 삼아 징계하는 것은 사형보다 훨씬 더 설득력 있는 방법일 것이다.(177쪽)


<감시와 처벌 / 미셸 푸코>



즉, 신체형으로 대표되는 사형을 실시하여 금방 잊히는 것보다는 자유를 박탈하는 감금형을 하고, 그 감금 상태를 전시하고(표상화), 모든 징벌을 교훈담(183쪽)과 구경거리(183쪽)로 만들어 학생들이 범죄자의 감금 상태를 현장체험학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 ㅠㅠ 감옥을 현장체험학습한다고? 아동학대 아닌지 ㅋㅋ 지나치게 사회화 된 진보단체들이 교도소 현장체험학습을 반대할 것 같다만... 유나바머에게서 내가 유일하게 동의하는 것은 지나친 사회는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저지르는 가장 잔인한 짓이라는 주장..나 역시 200% 동의함. 


결국 중요한 것은 두 가지 방법 모두 복종하는 개인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철저한 시간표에 의한 품행교육, 좋은 습관 들이기, 신체의 구속은...(206쪽)



실체가 없는 명예를 훼손한 범죄에 대해서는 공개사과형을 내리고, 살인에 대해서는 사형을, 방화에 대해서는 화명을 내려 처벌해야 한다. 독살자에 대해서는, "사형 집행인이 독배를 들어서 그의 얼굴에 독액을 뿌리고, 그러한 얼굴 모습을 본인에게 보옂어 대죄의 공포를 지겹도록 깨닫게 한 후, 부글부글 끊는 열탕 솥 속에 거꾸로 집어넣어야 한다.(171쪽)

범죄의 성질과 처벌의 성질 사이에는 정확한 대응관계가 필요하고, 범행이 잔인했던 자는 신체형을 받아야 하고, 나태한 자는 중노동을 해야 하고, 비열했던 자는 명예형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171쪽)


현대의 처벌은 감금, 벌금형, 금지(취업금지, 접근근지 등) 셋 중 하나인 것 같다. 고대 바빌론의 함무라비 식의 처벌은 구식(개새끼)이고, 현대의 우리는 세뇌하겠다. 즉 나이스한 개새끼의 방법을 사용하겠다는 것. 드라마 <더 글로리>에서 전재준은 개새끼, 하도영은 나이스한 개새끼인데. 누가 더 개새끼냐면 하도영!!! 아무튼!!!!


내가 궁금한 것은 표상화를 이해 못 하는 사람들이나 표상화가 불가능한 사람들에 대한 것이다. 쉽게 말해 왕이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한 왕의 dna 소유자들(왕은 못되어도 극 우뇌이므로, 극우 뇌를 가지게 될 지도. 그리하여 절대권력을 추종하면서 자신이 왕이라고 착각하여 자신보다 약한 사람들을 괴롭힐지도 모르지),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 성향의 인간들, 적대적 반항장애(품행장애)가 분명한 금쪽이들에게 세뇌나 표상화가 효과적인가 하는 것이다.


머릿속이 인류애 가득한 꽃밭인 사람들에게는 유감스러운 진실이겠지만, 자신이 타인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타인이 그 폭력으로 인해 괴로워하는 것을 천진난만하게 즐거워하는 아동들이 있다. 그들은 교육될 수 없다. 사회화될 수 없다. 그들은 약물로나마 겨우 치료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이 책 <감시와 처벌>이 1975년에 발간되었다는 것이 유의미하다고 생각한다. 만약 미셸 푸코가 2023년에 이 책을 집필 했더라도 표상, 복종, 교훈이라고 말할 수 있었을까?


나에게는 3부 규율과 4부 감옥이 남아 있지만, 

만약 푸코가 2023년에 이 책을 마무리했다면 5부 치료를 집필했을 거라고 감히 말해 본다. 교정되지 않는 사람들은 제거대상이 이니라 치료대상이다라는 문장이 이 책에 씌여 있었을 거라고 주장해 본다. 간단히 말해서 특정 약물을 주입하여 그 어떤 의욕도 없는 식물인간과 비슷한 상태로 만들어 버리는 것. 



#3. 아아. 미셸 푸코여!! 

사회화될 수 없는, 품행장애 등등의 인간은 소수이나 태어나며, 이 소수는 사회를 해체하고 소멸시킬 역량이 충분히 있는 유의미한 숫자입니다. 얼마 전 도심에 나타난 암사자는 발견되자마자 사살되었습니다. 사회화(복종)가 불가능한 인간은 그의 범죄행위가 발견되자마자 제거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습니다. 과거에는 사형제가 있었지만 현재 사형제는 더이상 실시되지 않고 있지요. 사람들은 기우제를 지내는 제사장처럼 착한 인간들만 태어나게 해 주세요 하고 기도만 하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답답하고 멍청한가요. 사람꼴을 하고 있으니 사형(제거)할 수 없다면 그들을 약물로 처치하여 그들의 유해성을 제거해야 합니다. 


우리는 맹수와 같은 인간에 대하여 귀납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양손에 너클을 끼고 사람을 때려죽이고, 성폭행을 한   자는 사람이 아니고 맹수다. 이 자에 대한 처리법은 2가지뿐이다. 물리적 제거(사형) 또는 유해성 제거(맹수와 같은 폭력성을 제거하는 약물 처치). 그런데 이 자에게 성수를 뿌리고, 축복을 주고, 죄를 용서해 주고, 먹여주고 입혀주고, 직업교육시켜 주는 행위는 아직 발견되지 않은 맹수 같은 자들에게 '벌을 받지 않아도 된다는 기대감'만 심어줄 뿐이다. 아동이니까, 촉법소년이니까, 초범이니까 하면서 계속 용서해주고 기회를 주면 사람이 착해질까?? 순진하다, 너무 지나치게 순진해서 바보와 잔혹 범죄는 세트 상품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ps. 너클 강간살인범 뉴스로 인해 내 마지막 남은 인류애의 1방울 마저도 사라졌다. 이제 뉴스 안 볼 거다. 뉴스=고문. 인간 세상 너무 지옥임. 뉴스를 보는 거 자체가 건강에 너무 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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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22 17: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8-23 10: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우리의 차이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K는 참 부지런한 살림꾼이다. 꽤 오랫동안 영화 작업을 하지 못하고 있음에도 매일 청소와 빨래를 하고, 잘 모르는 레시피를 찾아 요리하기도 즐긴다. 친구들을 불러다 자신이 만든 요리를 먹이는 것을 좋아한다. 언젠가는 생일을 챙기지 않고 혼자 집에 누워 있는 나를 불러다 파스타와 미역국을 해 먹인 적도 있다. 내 경우는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가사노동만 하고 산다. 옷은 벗은 자리에 뒤집힌 채 화석처럼 굳어 있기 일쑤이며, 설거지도 하기 싫어서 좁아터진 집에 식기세척기까지 들였지만, 버튼을 누르기가 귀찮아 컵과 젓가락이 쉬이 쌓인다. K는 이런 나를 퍽 추잡하고 한심한 사람으로 여긴다.

반면에 '직업' 혹은 '창작'이라는 영역에서는 우리 둘의 모습이 완벽히 뒤바뀐다. 앞서 소개한 대로, 7년 동안 장편 시나리오를 '준비'만 하고 있는 K와 달리, 나는 여섯 권의 책과 장편 드라마 한 편을 썼으며, 사이사이 라디오와 방송 프로그램에도 출연했다(물론 K도 여러 편의 영화 현장에서 스태프로 일하며 생활비를 벌긴 했지만 6개월 이상 꾸준히 다닌 직장은 없었다). K는 이런 나를 보며 항상 질린다는 듯한 표정으로 "도대체 언제 쉴 작정이야? 죽으면?"이라고 말하곤 했다. 내 입장에서는 쓸데없는 일(이라고 하기에는 일상을 영위하는 너무 중요한 일들이긴 하지만... 아무튼)을 하느라 정작 자신이 가장 하고 싶어 하는 일(그러니까 장편 시나리오 집필)을 등한시하는 K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때문에 우리는 만날 때마다 서로의 가치관이나 라이프스타일을 비방하는 데 꽤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순도 100퍼센트의 휴식 / 박상영>


내가 기준에서는 박상영도, K도 과락이다. 박상영은 가사일에서 F, K는 직업(자아실현?)에서 F!!


서울에 사는 두 동생집을 차례로 방문하고 돌아왔다. 사는 꼬라지가 둘 다 미쳐있고, 내 맘에 들지 않았다. 둘 중 누가 더 문제냐면 그건건 당연 여동생!!!!!



1. 남동생

남동생은 살림을 잘한다. 집도 깔끔을 넘어 모델하우스처럼 해 두고 지낸다. 옷장은 고급의류매장 쇼룸처럼 해두었다. 같은 종류의 옷걸이, 옷과 옷 사이의 충분한 간격, 컬러 배치까지(남동생과 나는 의생활이 매우 중요한 부류이고, 나 역시 옷장 정리는 완벽하게 해 둔다.) 내 맘에 쏙 들었다. 맘에 드는 건 여기까지.


식탁 스위치 위에 뭔가가 붙어 있어서 "이게 뭐고?" 했더니 식탁 스위치로 조명을 켜고 끄는 게 귀찮아서 블루투스를 설치하고, 폰으로 조정한다고 했다. 모든 가전의 on/off를 스마트폰 어플, 입(클로버, 지니, 하이엘지 등등)그리고 특정 제스처(팔을 쭉 뻗는다든가)로 실행하고 있었다. 작년에 입주를 한 새 아파트라서 상대적으로 스마트홈 기능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집이 스마트하지 않다고 했다. 더 완벽한 스마트 하우스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그리고 스마트 하인(클로버, 지니 등등)들을 하나로 통폐합하고 싶다고도 했다. 


싱크대 위에 흰색의 정육각형 모양의 뭔가가 있어서 "저건 뭔데?" 했더니 행주 세탁기라고 했다. 마음에 드는 디자인과 적당한 가격을 두루 갖춘 행주 세탁기를 찾는데 시간이 매우 걸렸다고 했다. 그리고 행주 세탁기를 관리하는 것에도 품이 조금은 든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그러느니 그냥 손세탁을 하겠다."라고 했더니 그게 더 귀찮다고 함. 


반면 나는 제법 넓은 세탁실(여동생 왈, 엄청난 빨래터!! 요즘 아파트에서는 상상도 못 할 공간 낭비다.)이 있다. 세탁실에도 싱크대가 설치되어 있고 상부에는 손빨래용 세면대가 설치되어 있다. 보조주방을 세탁실로 만들었다고 보면 됨. 행주 세탁기와 손빨래를 위한 세탁실 중 누가 더 미친 자 일지... 서로를 비방해 보자!!


아무튼 남동생은 생활 속에서 몸을 사용하는 것을 최소화하는 것이 문명(더 발전한 미래)이라고 여기고 계속해서 그 방면으로 생활을 업그레이드하고 있다. 모든 불편은 기계로 대체한다, 3분 이상 걷는 거 아니다. 대중교통 절대 이용 안 함. 운동은 운동시간을 만들어 집중적으로 하는 것이지, 생활 속에서 운동한다고 엘베 대신 계단으로 걷고 하는 건 어리석다. 등등 . 탄소발자국 엄청 찍고 다니는 놈이다. 환경 파괴의 주범인 주제에 자녀는 낳는 어리석은 자. 내가 늘 "너는 베이비도 낳을 거면서 왜 니 아이가 살아갈 환경을 보호할 생각을 전혀 하지 않냐?"라고 하면 "어차피 다 망했는데."라고 할 뿐, 자신의 자녀가 살아낼 세상은 그저 꽃밭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거 같았다. 이런 한심한 인간이 나의 이촌이라는 사실에 통탄을 금할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니 픽사 애니 <월 e>에 나오는 엑시온 사람들처럼 되는 게 장래희망이가? 그거 보면 재킷 입혀주는 로봇도 있다. 사람들이 걷지 않고 공중부양하는 의자 타고 다닌다(몸을 전혀 사용하지 않아서 모두가 비만). 그게 니가 바라는 '철이의 기계인간'(남동생은 은하철도 구구구를 너무 좋아해서 철이와 메텔이 프린트된 옷만 입고 다닌 적이 있었다.)이가?" 라고 했더니 "월 e가 뭐고?" 라고 했다. 아 무식한 새끼. 월 e도 안 봤단 말인가!!! 




2. 여동생

여동생이 이사를 했다. 여동생이 서울 온 김에 자기 집에도 들려서 집 정리정돈 좀 해달라고 했다. 나 역시 여동생 집을 체험해 보고 싶었는데, 그것은 최신 구조의 새 아파트라서가 아니라 그 집이 5*층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정리도우미 겸 초고층(50층이 넘는) 하우스 체험을 위해 나의 휴가를 기부 및 사용하기로 했다. K장녀의 일생이란 무엇이며, 이촌이란 도대체 뭔가(외면하기 참 어렵)...


여동생은 청소는 잘하는데(집이 더럽지는 않다), 정리정돈을 할 줄 몰라서 집이 늘 어질러져 있다. 이전에 살던 집도 신축 아파트에 입주한 거였는데 그런 깔끔한 새 집을 잔뜩 어질러두고 창고처럼 사용했었다. 두 식구 사는데도 집이 가득 찼었다(동생 남편은 심각한 호더, 집이 넓어졌으니 이제 또 얼마나 사 모을지 생각만 해도 공포 ㄷ ㄷ ). 나는 "너네 옆 집은 4인 가족에 반려견까지 있다며? 그 집은 도대체 어떻게 사는 거?"라고 물었더니 "어쩔 수 없으니 그냥 가는 거지. 서울은 집이 너무 비싸니까..."라고 했다.


이사 간 집은 더 넓었고 현관과 거실에 각각 제법 넓은 팬트리가 있었다. 거실 뷰는 압도적이었다. 서울 시내가 파나로마로 펼쳐졌고 저 멀이 롯데타워가 화룡정점처럼 우뚝 서 있었다. 거실 창문의 방충망을 열고 사진을 찍었다. 방충망을 여는 순간 여기가 5*층이라는 생각이 들어 팔에 소름이 돋고 속이 약간 울렁거렸다. 폰 떨어뜨리면 아주 박살이 나겠구나...하는 생각을 잠시 했다. 저녁에 롯데타워를 중심으로 펼쳐진 서울 시내를 보면서 빅씨스 홈트를 하니 나도 이것이 맨해튼 맛인가 싶었다.. 유튜버 빅씨스는 뉴욕 맨해튼의 초고층 아파트에 사는데 그녀의 홈트 영상의 배경은 언제나 맨해튼 시내였기 때문.


동생은 보름 전 이삿짐센터 사람들이 정리해 준 그대로 생활하고 있었다. 이삿짐센터 직원들이 정리 및 배치를 못한 건 아닌데 뭔가 어긋나 있었다. 예를 들면 싱크대 상부장에는 유리그릇들이, 그릇 수납용 하부장 서랍(그릇 수납용 서랍은 비싸다. 나는 이걸 2세트 설치하고 싶었는데, 가격을 보고는 1세트만 설치하는 걸로 했었다. 이런 귀한 곳에 누추한 위생팩 나부랭이들이 ㅠㅠ)에는 위생장갑, 행주, 고무장갑, 위생팩 등 가볍고 깨어지지 않는 주방용품들이 들어 있었다. 붙박이장의 이불칸에는 침구가 구운 김처럼 쌓여 있었다(이런 수납 정말 극혐이다).


정리는 8시간*2일+야근 2시간 걸렸다. 이 정도 정리면 일당 50만 원*2일+보너스까지 줘야 할 거 같은데, 이촌이 뭔지 무료봉사 해드림. 심지어 요리도 내가 함. 여동생 왈 "언니는 회사 잘려도 걱정 없겠다. 이 실력으로 마린시티(해운대) 가서 입주 가사 도우미 하면 되겠다. 그 집 애들 등하교 도우미도 하고. 학습 튜터도 해주고. 요즘 한국인 가사도우미 구하기 진짜 힘든데. 월 삼, 사백은 충분히 받을 수 있을 거 같은데."라고 아무 말이나 씨부려댔다. 


2-1. 정리 1일차. 주방과 팬트리 2곳 정리.

여기를 정리하면서 나는 동생 남편은 생활 장애 또는 정신이상자라는 결론을 내렸다. 


냉장고에는 검은 액체가 가득 담겨 있는 2L 크기의 유리병 6개가 있었다. 그리고 1.5 패트병 2개. 여동생에게 "저게 뭐야?" 라고 물었더니 제부가 직접 만든 맛간장이라고 했다. "저렇게 많은 걸 누가 다 먹어?" 했더니 주변에 친한 사람들 오면 나눠준다고 하면서 언니도 한 병 가져가라고 했다. 저 간장병 때문에 750L 냉장고가 가득 차서, 반찬통을 테트리스 하듯 쌓아 넣어야 했고, 냉장실 공기 순환이 잘 안 되서 음식이 빨리 상한다고 여동생은 푸념했다. 그게 푸념을 넘어, 일종의 불안이 된 것인지 같은 내용의 말을 수없이 반복했다. 그 엄청난 잔소리에 나는 미쳐버릴 것 같았다. 예를 들면 냉장고에 파프리카 6개 있는데, 그거 빨리 안 먹으면 상한다고, 빨리 먹어야 한다고 계속 말했다. 그래서 나는 "걱정하지 마라, 파프리카 썩기 전에 다 처리해 줄게."라고 말하면 동생을 안심시키는 수밖에 없었다. 파프리카+크래미+삶은 계란+마요네즈로 샐러드를 만들어서 식빵에 얹어 먹는 식으로 일부 처리하고 남는 건 아이스박스에 담아서 가져 왔다(내 집 냉장고에 있다ㅜ). 여동생은 칼질을 하지 않는다, 못한다. 손이 둔하달까... 그래서 내가 채썰기를 하자 "언니는 진짜 못하는 게 없다." 하면서 옆에서 우두커니 지켜 보고 있었다. 그리고 상추도 있었는데, 상추 썩는다고 걱정과 잔소리를 계속... 발사믹 식초(식초가 없었음, 이것은 겉절이 계의 오리엔탈 소스인가!!)+고추가루+수제 맛간장(맛은 좋았다!! 인정)+깨소금으로 겉절이를 만들어서 먹었다. 4끼 정도 겉절이를 먹은 듯. 마지막에 보니 양상추도 있어서 양상추+상추로 겉절이를 해서 처리했다. 


동생 남편은 장보기와 요리만 하는 이기적인 놈이다. 식자재 정리정돈, 요리 재료 재고 정리 및 유통기한 확인, 설거지 등을 아예 하지 않는다고 했다. 주방에 거대한 고오급 에스프레소 기계가 있는데, 그걸 커피를 마시지 않는 여동생이 관리한다. 커피 찌꺼지 조차 한 번도 꺼내서 버린 적이 없다고 했다. 하... 미친 새끼. 내 여동생은 뭐가 절박해서 이런 가사능력 F인 새끼랑 결혼을 한 것일까...(내 추측이지만 여동생은 서울특별시 소재의 그럴싸한 아파트가 필요했던 거 같다...) 


동생 남편은 여러 가지 정신병적 집착이 있는데, 평소보다 식자재가 저렴하면 무조건 구매한다는 것이다. 예의 그 파프리카!! 파프리카가 싱싱한데 세일까지 한다? 대량구매를 하는 것이다. 집에 와서 장바구니에서 물건을 꺼내고 정리하고, 손질해서 냉장고에 넣고 상하는지를 살피는 건 다 여동생의 몫. 그러니 여동생은 계속 불안한 것. 저거 빨리 먹지 않으면 상하는데, 상하는데...하면서도 여동생 본인은 요리를 잘 못하고, 요리하는 것을 싫어하기까지 하니...이런 동생을 보면 안쓰럽기도 하지만 지팔지꼰하는 걸 말릴 수도 없고. 어쩌면 여동생은 서울 아파트 부심 하나로 버티는 거 같기도 하고. 결혼을 하지 않은, 더욱이 시골에서 주택살이를 하는 내 입장에서는 서울 초고층 주상복합 아파트에 사는 싸모님의 마음은 몰라! 알 수가 없어!! 


거실 팬트리를 정리하는데 BOSS 가죽 서류 가방이 빵빵하게 가득 차 있길래 열어보니 태화고무장갑(핑크색) M사이즈 10개씩 2묶음이 들어 있었다. 놀라 자빠지는 줄. 고무장갑이 왜 가죽 서류 가방에?? 여동생 말로는 남편이 대충 아무데나 넣어둔 거 같다고. 싱크대 정리할 때도 고무장갑 2묶음(20켤레)과 낱개 몇 켤레를 발견했다. 그때는 뭐 좀 많네 했는데, 팬트리에서도 발견하자 약간의 공포감이 밀려왔다. 그래서 왜 이렇게 고무장갑이 많냐? 어디서 얻었냐고 물었더니, 남편이 고무장갑 싸게 판다고 50켤레를 샀다고 했다. 와 씨... 정신병자! 사이즈도 전부 M. 본인은 절대 설거지 따위 하지 않겠다는, 배우자만 설거지며 손빨래 시키겠다는 결의인가!! 아니면 남자가 머선 고무장갑이고, 맨손이면 다 되지 하는 기개인가!! 실제로 셀프세차장에 가면 맨손으로 세차하는 남자들이 많다. 나는 "일 년은 52주고 2주에 하나씩 쓴다고 해도 저거 다 쓰려면 2년이 걸리겠다. 고무는 오래 두면 삭아서 버려야 해..."라고 힘없는 목소리로 동생한테 말했다. 동생 역시 힘없는 목소리로 "못 고친다. 그냥 집 안 내력이야. 시부모, 시누이 다 저래."라고 말했다. 저것은 체념인가 해탈인가!!! 


그리고 헬리녹스!!

수 년째 메리어트 호텔 vip 등급(이 등급이 자존감인 사람.. 에효...)을 유지 중인 제부는 단 한번도 캠핑을 간 적이 없다. 사람이 호텔 vip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캠핑을 취미로 하면, 집에서는 언제 자나? 내가 방문한 때에도 동생 남편은 푸켓에 새로 지은 메리어트 리조트로 바캉스를 가고 없었다. 메리어트 호텔 사용 실적을 쌓겠다는 집념으로 일주일 여정의 국외 가족여행(시부모와 시여동생, 부모와 사이 안 좋음)간 것. 난 여동생에게 "니는 왜 안 갔는데?" 했더니 "거길 내가 왜 가. 제주도 2박 3일 정도면 가겠는데 일주일을 시부모랑 여행하라고? 하와이라도 가기 싫다." 라고 했다. 


언젠가는 가고야 말 캠핑(치토스도 아니고)을 위한 캠핑 장비가 현관 팬트리와 거실 팬트리에 가득 있었다. 어떤 것은 포장도 뜯지 않은 채, 택배 박스 그대로. 여동생은 이제 헬리녹스 글자만 봐도 짜증 난다고 했다. 헬리녹스 및 기타 캠핑용품은 모두 현관 팬트리로 이동 시킴. 


다시 호텔 vip로 돌아가 보자. 팬트리에는 에어 비앤비를 부업으로 해도 될 정도의 엄청난 수량의 호텔 어메너티가 있었다. 호텔 일회용 칫솔이 최소 200개 이상 있었음. 호텔 칫솔은 품질이 별로라서 본인 칫솔 가져가서 쓰고, 호텔 칫솔은 집에 가져온다고 했다. 청소할 때 등등 솔로 사용한다고 했는데... 200개를 언제 다 쓰나... 사실 우리 집에도 동생에게 얻은 일회용 칫솔이 30여 개 정도는 있다ㅠ 여동생한테 얻은 메리어트 호텔 비누도 30개 정도 있다. 손 씻을 때, 빨래할 때 쓰는 중. 나라면 다 쓰지도 못할 어메너티는 호텔에 그대로 두고 올 거 같은데, 동생 남편은 그런 면에서 마음이 찢어질 듯한 가난뱅이 짠돌이라서 못 두고 오는 것이다. 버려두고 오기가 너무 아까운 것이다. 이것은 마음이 너무 가난한, 돈 많은 사람의 정신병인 것인가?!! 나로서는 이해불가의 영역. 호캉스 1박 할 돈으로 일일 가사 도우미 고용해서 집을 청소하고 정리하면 될 것을, 집은 창고처럼 방치하고 그 핑계로 호텔에 가는 게 너무 이상하지 않은가!! 여동생은 어디서 이런 정신병자를 고르고 골라 결혼했을까...


캠핑을 가지도 않으면서 캠핑 장비를 계속 사고, 포장도 뜯지 않은 채 방치해두고, 호텔 vip에 집착하고. 하...병자...


그리고 정말 심각한, 문제의 비닐봉지!!!!!!!

거실 복도 끝에 벽장이 있는데 그 벽장 옆 장식장 아래칸 가득 비닐하우스를 만들어도 될 것 같은 두꺼운 재질의 투명 비닐봉지가 쑤셔 박혀 있었다. 꺼내 보니 2평은 족히 될 듯 큰 봉지였다. "도대체 이런 거대한 봉지를 어디서 구했어?" 하고 물으니 이삿짐센터에서 소파 포장할 때 사용한 거라고 했다. "이건 쓸 일도 없는데 버리지?" 했더니 제부가 이런 건 구하기 쉽지 않다고 소중하게 챙겨둔 거라고 했다. 하... 이건 또 뭔가!!!! 미친놈. "버려도 모를 거 같으니 그냥 버리자."라고 했더니 안 된다고, 이런 유니크한 건 기억한다고 했다. 아... 미친 새끼!! 봉지를 잘 개켜서 벽장 제일 윗 칸에 넣어다. 그 칸을 다 차지함. 


주방 싱크대, 팬트리에서 뭔가가 들어 있는 봉지를 계속 발견했다. 그 봉지 안에 뭐가 들었냐 하면 ㅋㅋㅋ 봉지가 잔뜩 들어 있었다. 약간 두꺼운 검정 봉지(위생팩 M 사이즈 정도 크기) 수 십장(이걸 하나하나 펴고 접어서 적당한 크기의 지퍼백에 수납함), 각종 크기의 면세점 비닐 가방... 그리고 아... 호텔 런드리 봉지!!!!!!!!!!!!!!!!!!!!!!!!!!!!!!! 끝없이 끝없이 나오는 호텔 런드리 봉지 수 십장. 사용한 흔적이 있는 것도 있었고 새 것도 있었다. 여동생은 체념한 목소리로 "이사 오기 전에 내가 엄청 버렸는데, 내가 못 발견한 것이 저렇게 많았네."라고 함. 저건 전부 제부가 다 여기저기 쑤셔 박아 넣은 것이라고 했다. 왜 버리지 않느냐고 했더니 있으면 또 여기 저기 쓸 곳이 많다고 했다. 그리고 이런저런 투명한 큰 봉지들이 많았다. 재활용 쓰레기 버릴 때 쓰려고 그 봉지들은 내가 가져왔다. 20리터(아무튼 거대한) 정도 부피의 봉지들을 3리터 정도로 줄인 듯. 봉지 접느라 손가락 지문이 다 닳아버린 느낌이었다. 빈 선반 없이 꽉 차 있던 팬트리를 50%만 채워진 상태로 정리 완료.


아무렇게나 자리 잡은 물건들을 다 꺼내서 마침맞은 위치에 배치하는 것에는 예상보다 시간이 더 걸렸다. 한 나절이면 충분할 줄 알았는데 8시간 풀타입 정리하고 저녁 먹고 더 정리했으니 ㅠㅠ


2-2. 정리 2일차. 옷장

안방에는 12자(문이 7개)정도 되어 보이는 붙박이장이 설치되어 있었다. 그중 문 1개 칸만 동생 옷이고, 나머지는 전부 동생남편 차지(하부 4칸은 이불칸은 제외). 이게 끝이 아니라 작은 방에 있는 붙박이장도 동생남편 옷이 들어 있다는 것. 그 옷들의 절반은 유행이 너무 지나서 입지 않는, 작아서 입지 못하는 옷들. 안 입는 건 버리자고 해도 다 비싼 옷들이라며 버리지 못하게 한다고 한다. 결코 다시 입을 일이 없는 작아진 청바지들 20여 장을 3단으로 접어서 장롱 제일 위 선반에 넣었다. 신혼집에서는 마루, 브렌따노 같은 브랜드의 옷도 있었는데 그래도 그건 버리고 이사했구나. 태그를 떼지 않은 새 옷, 비닐 포장도 뜯지 않은 새 옷도 많았다. 필요하지 않아도 세일을 하면 산다 함. 그 부모에 그 자식이라고 시부모들도 지나가다가 세일하는 거 있으면 사서 주고(부모가 사준 옷 절대 안 입는데도 불구하고) 여행 가서 아들딸 준다고 기념옷도 계속 사 오고(태그도 뜯지 않은 넘나 예쁜 알래스카 여행 니트를 보고 나는 추모의 눈물을 흘렸다. xs이었으면 내가 얻어 입는 건데.)이라고 했다. 총제적 난국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말 같다.


파우더룸 옆 워크인 클로젯(여동생 전용)에는 이삿짐 센터용의 거대한 봉지 안에 의류 잡동사니(양말, 목도리, 속옷, 손수건, 장갑 등등의 잡화)가 이사 온 날 형태 그대로 들어 있었다. 여동생은 이걸 어디에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아서 그대로 처박아 놨다고 했다. 언니가 올 날을 손꼽아 기다리면서... 하... 미치겠다... 내 동생은 또 왜 이 모양인가!!! 남의 아들 욕할 입장이 아니다. 


그러고 보면 여동생은 어릴 때부터 정리를 못했다. 고등학생 때 침대가 붙어 있는 면을 제외한 3개의 벽면에 벽면을 따라 문제집을 빈틈없이 놓아둔 걸 보고, 내가 방 꼬라지가 이런데 공부가 되냐고, 책장에 문제집 좀 꽂으라고 했더니 다음날 북경대학교 기숙사 사진을 보여 줬다. "원래 공부하는 애들은 정리 안 해."라고 하면서. 모니터 속 북경대 기숙사 방은 온갖  책들과 생필품이 널려 있는, 세상에 이런 일이에나 나올 법한 난잡한 방이었다. 문제지도 출판사별, 색깔별로 정리가 되어 있어야만 공부를 할 수 있었던 내 입장에서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풍경이었다. 


이불 커버 속 오리털 솜은 끈을 걸지 않아서 한쪽으로 다 쏠려 있었다. 이불 커버를 뒤집어서 솜을 넣는 방법과 이불을 개는 방법(퀸 사이즈 이불은 일단 대문 접기하여 큐브 모양으로 만들어서 이불이 단독으로 이불칸에 들어갈 수 있게 해야 함. 그래야 꺼낼 때 쉽고, 다른 이불과 간섭이 없이 정리정돈 됨)을 가르쳐 주고 실습도 시켜줬다. 대문 접기가 뭔지도 모르는 여동생은 하...유치원을 다시 보내야 하나...<TV 유치원 하나둘셋> 김영만 아저씨의 종이접기를 주야장천 봤음에도 불구하고 대문 접기를 모르다니. 


3. 무능

나는 돈 버는 일에만 몰두하여 가사를 소홀히 하는 것은 무능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소설가 박상영도 무능한 것이다. 삶의 프로라면 직업에 자신의 모든 에너지(시간과 체력과 정신력)를 100% 소모하진 않을 것이다. 나는 집안일을 할 에너지는 반드시 남겨둔다, 내 커리어가 망가질 지언정. 커리어가 중요한 만큼 내 생활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특히 회사에서 집안일을 전혀 하지 않는 남자들이 자신이 얼마나 업무적으로 유능한지 은근 과시할 때마다 속으로 '아 저 가소로운 새끼.' 라고 생각한다. 


동생 남편도 무능하다. 그는 살면서 단 한 번도 집안일을 해 본 적이 없다. 세탁도, 청소도, 정리정돈도, 쓰레기 분리배출도. 결혼하기 전까지는 부모님 집에 살았으며, 결혼 후에는 계속 여동생과 살았으므로. 동생 남편이 집에서 제일 많이 하는 일이 물건 찾기라고 했다. 물건을 아무 데나 쑤셔 넣어 두니 필요한 순간에 찾지 못하고 또 새로 구매하는 것의 무한반복. 그러면서도 본전 생각나서 물건을 버리지도 못하는. 제부의 부모님도 호더이며 정리정돈을 못하고, 내 여동생은 호더는 아니지만 정리정돈을 못 하는데 하필 호더 남편을 만나서 아주 그냥 집정리를 포기한 채로 지내는 중이었다. 집 정리정돈을 다 끝내자 여동생 왈 "이런 호텔 같은 집은 난생처음이야. 이런 양말 서랍장은 꿈에서도 상상한 적이 없어."라고 말했다. 



4. (운전할 때)나보다 빨리 가면 미친 놈, 더 늦게 가면 병신

모든 것을 스마트폰과 기계에 의존하는 남동생도 정신이 이상한 거 같고, 물건을 계속 사모으고 버리지는 않는 동생 남편은 모든 면에서 정신병자 같고, 불안으로 인해서 끊임없이 잔소리를 반복하는 여동생도 이상한 거 같고. 정리정돈을 못하는 여동생을 보면 마치 가수 오지은 같기도 하고(단 오지은과 달리 여동생은 청소는 잘 함. 집에 더러움이 없다. 설거지도 미루지 않는다). 내 부모는 진상 부모 그 자체이고. 내 주변에서 정상인은 나 말고는 없는 것 같다. 


나 역시도 타인의 관점에서는 충분히 이상한 사람 또는 정신병자로 보일 것이다. 자신의 생각과 취향이 너무나 견고하고,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으려고 하며, 타인 자체에 대한 신뢰가 없고(신뢰를 가져야 할 대상이었던 부모를 신뢰하지 못했다. 그냥 나는 나를 믿고, 나를 의지하면서 모든 과업을 수행하면서 살아냈다. 타인은 전부 내 짐일 뿐, 다들 나에게 도움만을 요구했다.

''내가 제일 잘났어.' 하는 편이기도 하다. 내가 유능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 점을 남에게 인정해 달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그런 인정욕구는 0에 가깝다. 나는 스스로에게 인정받으면 그만이다. 자기평가가 중요할 뿐. 이런 태도가 누군가에게는 지독하게 외로운, 병신 그 자체로 보일 수도 있다. 같은 이치로 나 역시 타인의 인정을 지나치게 바라고 요구하는 사람을 불쌍한 병신이라고 생각하니까.


내 엄마는 나에게 좋은 부모로 인정받고 싶어했(한)다. 이제 와서 무슨 염치로? 부모가 나를 방임한 만큼 나 자신이 내 부모가 되어 나를 돌봤고, 그 방임이 얼마나 싫은지 절망적인지 알기 때문에 어린 동생들을 지극정성으로 돌봐 주었다. 강자와 약자라는 이분법이 존재한다면 부모는 언제나 강자(또한 나에게 생로병사와 고집멸도의 그 고집을 준 사람들로서 은인이라기보다는 가해자에 가깝다)이며, 동생들은 약자다. 그래서 나는 부모에게는 냉정을, 동생들에게는 애정을 준다. 이렇게 글은 써도 일촌이라는 것은 미스터리해서 이번에 서울 갈 때 엄마를 내 차에 태우고 같이 갔다. 딱히 할 말도 듣고 싶은 말도 없기에 대화는 나누지 않음. 엄마는 여동생 집에서는 밥 한 끼만 먹고 내려갔는데, 여동생 왈. 엄마 있었으면 집 엉망인 거 잔소리 엄청 들었을 텐데, 엄마 없어서 좋다고 했다.


5. 내집이젤조아

두 동생들의 집에서 가장 맘에 들지 않았던 것은 드라이기였다. 드라이기에 왜 그렇게 인색한지 모르겠다. 다이슨이면 5분이면 될 것을 필립스나 JMW는 10분 이상 걸리니...특히 JMW는 송풍구가 너무 길어서 이건 드라이를 하는 건지 손들고 벌을 서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매일 쓰는 드라이기에 돈을 아끼는 이유는 도대체 뭘까?? 내 집에 와서  다이슨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리는데 그 편안함과 속도감이 100배는 더 좋게 느껴졌다. 또한 '아, 드디어 나의 스윗홈에 돌아왔구나!' 싶었다. 


나는 천천히 드립커피를 내려 마시는 걸 좋아하는데, 남동생집에는 보급형 캡슐 커피가, 여동생집에는 거대한 에스프레소 머신이 있었다. 얼죽아인 사람들이야 캡슐이나 에스프레소가 필수겠지만, 나는 한여름에도 뜨겁거나 따뜻하거나 미지근한, 혹은 상온의 물만 마시는 사람. 드리퍼에 종이 필터를 씌우고 커피 가루를 넣고 드립용 주전자로 물을 붓는 그 과정이 없는 커피는 나에게 커피가 아닌 것이라는 걸 이번에 깨닫게 되었다.


캐나다에서 처음 인도 식당에 갔을 때 나는 손으로 밥을 먹었다. 웨이터가 못마땅하게 바라보면서 "지금 막 배에서 내렸나보군요?"라고 했다. 나는 허옇게 질렸다. 조금 전까지도 음식을 음미하는 미뢰였던 손가락이, 웨이터의 눈길에 더러운 게 되어버렸다. 나쁜 짓을 하다 들킨 죄인처럼 손가락은 얼어붙었다. 감히 손가락을 쪽쪽 빨 수가 없었다. 난 죄지은 듯 냅킨에 손을 닦았다. 웨이터는 그런 말이 내게 얼마나 상처를 주는지 몰랐다. 살에 못을 치는 것 같았다. 나이트와 포크를 집어 들었다. 그런 도구는 써본 적이 없었다. 손이 떨렸다. 큰사슴 고기가 맛이 없어졌다.

<파이 이야기 / 얀 마텔>


비단 음식만이 아니라 모든 일상의 행위에서 나는 이제 익숙한 것이 제일 좋은 사람이 되어버렸다. 다른 장소에서 하루 이상 지내고 집에 돌아왔을 때 점점 더 강하게 집의 편안함을 느낀다. 내 침대, 내 화장대, 내 책상, 내 의자가 제일 편하다. 그 편안함 속에서 안정감과 안도감을 되찾게 된다. 이것이 나이 듦에 따른 보수화인가?


문체부 유튜브에서 잼버리 Kpop 공연 하이라이트 영상을 봤다. 일단 알아볼 수 있는 아이돌이 아이브와 뉴진스 말고는 없어서 충격 ㄷ ㄷ ㄷ. 편집의 사기일 것이 뻔하긴 하지만, 저 청소년들은 새만금 잼버리 기간 동안 엄청난 개고생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어찌 저리 표정이 좋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경험치가 적고(그러니 뭘 경험해도 신기하고 즐거운!), 체력이 좋은 청소년(더욱이 스카우트를 좋아하는 성향까지)이라서 그런 걸까?


대학생 때 나는 여름방학에 일본 여행을 가는 친구들을 도른자라고 생각 했다. 한여름의 도쿄?? 왜 고생을 사서 하나. 내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 여름 여행은 동유럽과 이탈리아였는데, 지구온난화가 덜했던 2000년대 후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체력이 좋은 20대였음에도 불구하고, 오븐에서 익는 듯한 유럽의 더위를 체험(에어컨 없고, 얼음도 없는 ㅜㅜ 로마에서 에어컨과 얼음 음료가 있는 곳은 맥도날드가 유일했다 ㅠㅜ)한 후 나는 다시는 여름에 위도가 비슷하거나 더 낮은 곳에는 절대 여행 가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굳이 간다면 북유럽이나 호주 정도(두 곳 모두 여름 휴가에 다녀옴. 여름에 같은 여름으로 절대 가지 않음. 동남아는 겨울에만 감).

내 마지막 여름 물놀이는 2020년 제주도 모 호텔의 야외 수영장이었다. 그때 잠시 태양빛이 덜 할 때 야외 수영장에서 놀았을 뿐이었는데 탄 자국이 다음 여름이 올 때에야 겨우 회복된 것을 보고는 태양을 두려워하는, 필사적으로 태양을 피하는 사람이 되었다. 나는 피부가 흰 편이었고, 다른 사람보다 덜 탔고, 탔더라도 금세 원래 색으로 잘 돌아와서 태양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었는데... 요즘은 led 조명에서도 피부가 타는 것(천계영 만화 <언플러그드보이>를 보면 현겸왈. 형광등에도 자외선이 있을 수 있잖아 ㅋㅋ) 마냥 피부 톤이 어두워졌다. 노화란 정녕 무서운 것이다. 

물놀이에 큰 흥미가 없기에 요즘처럼 냉방이 잘 되는 시대에는 여름 휴가가 아닌 봄가을 휴가가 더 일반적이 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라고 비분강개하며 주장하는 편이다. 수년 전 추석연휴와 휴가를 이어 붙여서 가을의 로마와 파리를 다녀온 후로는 더더욱 여름 땡볕 여행은 '돈을 줘도 사양합니다.' 하는 인간이 되었다.


이런 나인지라 굳이 자비를 들여 여름 잼버리 캠프에 참가하는 청소년들이 다른 인류처럼 여겨진다. Kpop 공연이 주는 도파민을 고려하더라도 저런 해맑은 미소가 어찌하여 연출되는가? 정말 미스터리!!!!!


6. 타인

얼마전에 '타인은 필요조건'이라는 온라인 친구의 글을 읽었다. 최근에 이 친구의 의견이 옳았고 내가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된 사례가 있었기에, 타인은 충분조건일 뿐 필요조건은 아니다라는 내 생각을 곱씹는 중이다. 타인 뭘까? 나에게 대다수의 타인은 병신 아니면 미친놈인데 ㅠ


p.s. 위에 쓴 글을 기꺼이 들어주고 공감해 줄 타인이 있었더라면 나는 이렇게 긴 일기를 쓰지 않았을 것이다. 나 역시 타인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공감하는 걸 잘하지  못하기에... 그러니 대나무숲에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라고 소리치는 심정으로 계속 일기를 쓸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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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22 17: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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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23 10:4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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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23 16: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8-24 10: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현 정부가 들어서면서 나는 뉴스를 끊었다, 차단했다. 그래서 지난 폭우(2023.7.15.토) 때 오송지하차도 참사, 경북지역 산사태 등으로 약 50명의 사람이 죽어갈 때도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그 토요일 밤 이후로 뉴스를 조금씩 챙겨보는 중에 '서현역 묻지 마 흉기난동 살인사건'에 이어서 '새만금 잼버리 파행'에 이르게 되자, 

하하하하하하하하

넷플릭스 보는것 보다 뉴스가 더 웃기고 더 잔인하고, 더 파괴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주연상: 김현숙(현 여성가족부 장관), 작품상: 새만금 잼버리(제작 현 정부), 감독상: 윤 씨(현 대통령, 나에겐 볼드모트 같은 ㄴ이라서 절대 이른 석 자 불러주고 싶지 않음)


장르: 재난 블랙코미디!!! 

같은 장르의 영화 <화이트 노이즈>(감독: 노아 바움백, 주연: 아담 드라이버)는 <2023 새만금 잼버리>에 비하면 영화과 대학생 졸업작품 수준임. 

ps. 여가부 장관 김현숙은 <옥자>의 루시 미란도(틸다 스윈튼)와 싱크로 200%!!!!! 볼 때마다 너무 루시 미란도 같아서 미쳐버릴 거 같다. 단발머리와 안경(안경은 설국열차의 틸다 스윈튼), 그리고 아전인수 그 자체인 대사들 어쩔 거냐!!! 답변들이 하나하나 너무 주옥같아서 암기하고 싶을 지경!!!


<돌발영상> 코리아 잼버리(야영지 조기 철수...김현숙 장관 "잼버리가 넓어진 것")

https://www.youtube.com/watch?v=s5ntmtdKpxU


(휴가에서 돌아온) 김기현 대표: 대통령, 총리, 장관 누구 하나 빠질 것 없이 책임에서 도망치려 한다. 주말 사이에 민주당이 쏟아내었던 잼버리 관련 입장입니다. 객관적인 사실만 우선 짚어보겠습니다. 2023 새만금 잼버리가 확정된 것은 2017년 8월 문재인 정권 시절입니다. 문 전 대통령이 직접 영상까지 찍어서 홍보에 열중했으며 관련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고.(0:24~)


강민국  수석대변인: 이제는 중앙 정부가 직접 움직이기 때문에, 이제는 새만금 잼버리가 아니라 코리아 잼버리가 되어야 된다는 생각을 우리당에서 가지고 있고. K 히스토리, K컬처, K푸드 등 이 기회를 전화위복으로 삼을 수 있는.(01:10~)


김현숙: 영지 밖 활동을 지자체와 같이 개발해서 그걸 하고 있기 때문에 저는 잼버리가 조금 더 넓어진다 이렇게 좀 말씀드리고 (영상의 3:24~)


<대한민국 위기 대응 역량을 보여줘...김현숙 장관 발언 또 논란>

https://www.youtube.com/watch?v=cbO2CP5gjT8


김현숙: 지금은 오히려 위기 대응을 통해서 대한민국의 역량을 전 세계에 보여주는 그런 시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오히려 대한민국이 갖고 있는 위기관리 능력에 대해서 보여줄 수 있고 부산 엑스포에 그런 부분이 잘 반영될 수 있을 거여서 영향을 주지 않을 거로 생각합니다.


[오늘 이 뉴스] 군 복무 BTS 멤버들 잼버리로... 여당 의원 요구에 부글부글

https://www.youtube.com/watch?v=TmUaistTSkc

이 영상의 댓글이 좋다.

국방의 의무로 인해 징집당한 군인은 국가의 노예인가? bts도 이런 수모와 치욕을 당하는데 일반 병사는 어떠하겠나 싶다. 현 정부가 국민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알 수 있다. 

국민=내 노예, 내가 원할 때는 언제든 부려 먹을 수 있는 인력자원.


그러니 세월호 때 아이들이 죽으면 "또 낳으면 되지."라고 하고.

이태원 참사(2022.10.29일 22시경) 이상민(현 행정안전부 장관) "경찰이나 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었던 것으로 지금 파악하고 있고요. 서울 시내 곳곳에서 여러 가지 소요와 시위가 있었기 때문에 이런 곳으로 경찰 경비 병력이 분산됐던 그런 측면이 있었습니다."



이태원 참사부터 새만금 잼버리까지 일관 되게 무능하며, 책임 회피에 급급한. 이 모든 것은 개개인 시민의 위기 대응 능력이 부족하여 발생한 사고지, 정부의 책임은 없다고 한다. 

와우, 진심으로 나는 현 정부를 리스펙 하기로 했다. 나는 당신들을 타산지석으로 삼겠다!!


나는 결심하고 또 결심했다. 

현 정부 같은 인간(주로는 진상)을 만나면 내가 더 심하게 아전인수로 대응할 거다!!!!

"야 인마, 너 위기 대응 능력이 그것밖에 안 돼?? 다 니 책임이야. 전부 니 과실이야. 정신 좀 차려."라고 말해 줄 것이다. 

"위기 대응 능력이 그것밖에 안 되십니까? 이번 일(사고)을 기회로 삼아 내면에 철근 몇 개 더 박아 넣었다고 생각하세요. 순살 아파트를 보세요. 와르르 무너지잖아요. 내 덕에 내면에 철근 더 생겼을 겁니다. 다음에 이런 일 당하면 와르르 무너지지 않고, 잘 버틸 겁니다."라고 말해 줘야지!!!!!



몸이 콘크리트라면 정신은 철근이라는 생각을 많이 하는 요즘이다.

철근이 부족하여 와르르 무너지는 철근콘크리트 아파트들을 보면서 나는 사람을, 특히 자살하는 사람에 대해서 계속 생각했다. 악성 민원에 시달리다가 자살하는 사람들, 마음의 병을 얻는 사람들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내 앞에 영웅처럼 여성가족부 장관 김현숙이 나타났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이 한국땅에서는 김현숙처럼 생각하고 살아야만 자살(당)하지 않고, 마음의 병 얻지 않고, 즐겁게 살아낼 수 있다는 것을. 유감스럽게도 아전인수가, 똥도 된장이라고 우길 수 있는 몰염치함이, 내면을 무너지지 않게 하는 철근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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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영혼이 인간 속에 들어가 살면서 인간을 생존하게 만드는 것이고, 그것은 권력이 신체에 대해 행사하는 지배력 안의 한 부품인 것이다. 영혼은 정치적 해부술의 성과이자 도구이며, 또한 신체의 감옥이다.

<감시와 처벌 / 미셸 푸코>


오랜 시간 나는 육체를 방임했다. 심지어 육체무용론을 주장하기도 했으니... 몇 시간씩 앉아서 재미있는 책을 읽거나 주말 이틀간 소파에 누워서 16부작 드라마를 보는 것에 육체는 방해만 될 뿐이기 때문이었다. 먹는 즐거움(몸이 없으면 어떻게 먹냐고, 먹는 게 낙인데 하는 사람을 제법 봤다)에도 큰 관심이 없어서 더더욱 도대체 몸이 왜 필요한가 늘 물음표를 달고 사는 인간이었다. 

"애초에 먹을 필요가 없다면 뱃속에 있는 소화기관이 필요가 없지. 그러면 질병 자체가 없어지는 거야. 장기 하나하나가 다 질병명이라고." 가 내 생각이(었??)다. 여전히 나는 우리 몸에는 너무 많은 장기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중 하나라도 고장이 나게 되면, 운이 좋으면 걍 죽고, 운이 나쁘면 치료를 하면서 고통받으며 서서히 죽어가야만 하는 게 인간의 생로병사라고 나는 주장한다. 


생로병사 사이에 어쩌다 있는 즐거움들이 태어날 이유, 살아야 할 이유가 될까? 전혀, 아니!!!


푸코는 한 영혼이 인간 속에 들어가 살면서 인간을 생존하게 만든다고 했는데, 지금 내 꼴을 보면 그 한 영혼이 인간 속에 들어가 살면서 인간을 병들어 죽어가게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라깡의 픽션 이론을 알게 되었다. 언어, 대타자의 불탄 영토, 핍진한 상태, 그 상태의 증상을 탐하는 쾌락, 내가 창조해 낸 나만의 상징계 등등 그 속에서 내가 즐거움(이걸 도파민이라고 할 수 있을까?) 탐할 때마다 인간(육체)은 병들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처방은 증상을 탐하는 것을 버리고 네가 걸어야 할 곳이 대타자의 불탄 영토일지라도 공백 속을 걸어라, 기꺼이 공백의 상태를 받아들여라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kpop과 팟캐스트 속의 타인(이면서 나만 하는 지인들)이 주는 쾌락을 단박에 끊고 공백 속에서 지냈다. 와와!!!! 그랬더니 체력이 남아서 홈트를 하게 되었고, 홈트를 하게 되자 체력이 더 생겼고, 피곤하지 않았고, 낮 동안에 전혀 졸리지 않았고, 저녁에도 침대에 쓰러져 있지 않게 되고(저녁에 홈트를 함), 잘 시각(밤 10시)이 되면 신속히 잠들게 되었다. 추가적으로 최근에 한 혈액검사결과까지도 인상적으로 좋아졌다!


나는 내 병이 두려웠고, 끔찍한 수술 과정도 알고 싶지 않고 해서 내 병에 관한 그 어떤 유튜브 검색도 해보지 않았다. 얼마 전에야 비로소 용기를 내어 검색해 볼 수 있게 되었다. 내 병의 1번 원인은 노화. 그래서 나는 노화를 또 검색해 보게 되고, (노년)내과 전문의 정희원 교수를 알게 된다. 정희원의 모든 유튜브 영상을 다 봤다. 검색창에 정희원 교수 검색해서 새로 나온 영상도 찾아봤다. 이번 주에는 김작가TV라는 곳에 나왔다. 이 영상의 3부에서 나는 약간 실망했다. 마음 챙김과 번뇌 없는 상태가 중요하다고 했으면서 주식을 하신다고. 소비자본주의 경제원리를 공부하는 의미에서 하는 걸까? 수익은 덤일 뿐. 뭐 그런 건가? 돈에 대한 욕망이 인간 번뇌의 대부분 아닌지. 


영상 속 말만으로는 부족하여 그의 책 2권을 냉큼 구입했다. 알라딘의 익일배송은 정말 엄청난 도파민! 사실 난 배송이 며칠 걸려도 상관없는데. <당신도 느리게 나이 들 수 있습니다> 연관 추천 책으로 <죽음, 이토록 가깝고, 이토록 먼>이 있었다. 일단 <자유 죽음>의 저자 장 아메리의 추천사가 있었고, 구매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정희진도 추천사 씀. <자유 죽음>이 신간이던 작년 이 책을 구매한 나를 알라딘 알고리즘이 놓칠 리가 없지. "너 <자유 죽음> 샀지? 이 책도 안 살 수가 없을 걸." 이라고 말하는 듯했다.


사실 나는 생로병사를 받아들인 입장에서 '죽음'이 매우 궁금하고, 죽음이라는 상황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생각이 궁금하다. 죽겠다, 죽고 싶다 아님. 반출생주의에 200% 동의한다. 여전히 왜 사람이 부모가 되려고 하는지 이해불가. 


그래서 <감시와 처벌>을 잠시 제쳐두고 <당신도 느리게 나이들 수 있습니다>를 읽었다.


더 편하려고 안간힘을 쓸수록, 예컨대 더 비싼 의자를 사서 오래 앉아 있거나 가까운 곳도 차량을 타고 이동하려고 할수록 미래에 더 많은 고통을 얻는다. 사실 매우 비싼 의자를 직원들에게 제공하는 기업의 의도는 건전하지 않다. 몸이 망가질지언정 비싸고 편안한 의자에 더 오래 앉아 일을 더 열심히 하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당신도 느리게 나이 들 수 있습니다 / 정희원>


설마 비싼 의자라 함은 허멀밀러를 말하는 건가? 허먼밀러냐 스트레스리스 사무용이냐 사이에서 마음의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일단은 2년 넘게 식탁의자를 사용하는 중인데(삼성이 직원들에게 제공한 의자가 시디즈 T80이라는 말을 들었는데, 난 시디즈 T80이 내 몸에 크다는 느낌을 받았다. 동생집에 있어서 사용해 봤는데 맘에 들지 않았다.) 저 문장을 읽고 나서 그냥 계속 식탁의자(일룸)를 사용하기로 했다. 이 의자에서는 내가 내 코어 힘으로 허리를 세우고 앉아 있어야 하는데, 이게 건강에 더 좋단 말로 해석되었기 때문.


롤스로이스의 뒷좌석과 허먼밀러 의자로도 소용이 없는 불편한 몸과 마음을 갖느냐, 두 다리만으로 충분한 몸과 마음을 갖느냐는 선택할 수 있다. 

<당신도 느리게 나이 들 수 있습니다 / 정희원>



음 역시 허멀밀러였다. 넷플릭스 메탈리카 다큐에서 봤는데 메탈리카 작업실 의자 전부가 허먼밀러였음. 그때도 얼마나 견물생심이었던지!!! 내 거실에는 3인용 소파(주로 드러 눕는 용)와 1인용 리클라이너 소파가 있다. 문제의 1인용 리클라이너는 스트레스리스 제품으로 나는 사이드 테이블(제품 크기와 가격을 보면 그냥 호구인증. 일룸에서 어린이 책상 세트 살 수 있는 가격으로 아이패드 정도를 놓을 수 있는 초소형 테이블을 사는 것)까지 구매했다. 그야말로 스트레스리스 상태에서 편안하게 기대어 앉아(누워) 책을 읽거나 맥북질을 할 생각이었다. 이 안락하고 편안 의자에서 내 영혼(라깡적으로 말하면 무의식, 정희원식으로 말하면 도파민에 찌든 육체)은 쾌락을 느꼈을지 모른다. 하지만 한 인간(육체)은 병들어 가고 있었다. 정희원이라면 "당신의 내재역량이 줄었습니다. 가속노화가 매우 빨리 진행되고 있습니다."라고 진단했을지도.


특별히 어떤 일에 집중하고 있지는 않지만 전화벨이나 메신저 알람이 울릴 것을 기대하면서 약간 긴장하고 있는 상태가 그 예다. 그런데 끊임없이 스마트폰 알림이 시달리고, 메일함이나 메신저, 웹브라우저 여닫기를 반복하는 현대인의 뇌에서는 디폴트모드네트워크가 과도하게 활성화되어 있다. 이 때문에 정작 집중해야 하는 일에는 몰입하기가 쉽지 않다. 한 가지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주의력이 분산된 멀티태스킹 상태, 즉 마음 방황 상태가 반복되면서 쉬어도 몸과 마음의 긴장이 풀어지지 않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당신도 느리게 나이 들 수 있습니다 / 정희원>


알람이 나를 방해하는 것이 싫어서 나는 모든 알람을 다 꺼둔다. 알람이 울릴 때 확인하지 않고, 내가 확인하고 싶을 때 확인한다. 그리고 가급적 내 생활을 스마트폰 앱에 기록하지 않으려고 한다. 종이(중고생용 줄공책과 다이어리)와 볼펜, 형광펜 그리고 요즘엔 다꾸 스티커 ㅎㅎㅎ를 사용한다. 모든 중요한 것들은 공책에 기록해 뒀다. 카카오 데이터 센터에 불이나도 괜찮다. 나에겐 내 공책이 있으니까. 그리고 백업용 외장하드도 추가로 사용(웹하드 불신). 남동생은 최신형 아파트에 살면서 모든 가전제품을 홈네트워크로 제어하는데, 나는 그게 정신 건강에 좋은지 늘 의문이었다. 틈이 생길 때  로봇청소기가 집청소를 제대로 했는지 스마트폰 앱으로 확인하는 게 정신 건강에 좋으냐 말이지. 나는 로봇청소기도 안 쓰는데 청소기도 사용 못할 정도로 피곤하다면 그때는 정말 요양병원 아니겠는가 싶어서. 


남동생이 사는 최신형 아파트는 폭우에 물이 새는 고오급 브랜드 아파트. 내가 내 힘으로 지은 내 집은 적어도 물은 안 샌다. 누수는 근본 중의 근본인데, 스마트 옵션과 누수를 교환한다는 게 나로서는 납득이 안 되지만, 이미 서울 아파트 병에 걸려버린 남동생은 남들이 알아주는 동네의 브랜드 아파트에 산다는 것에 만족하여 모든 근본적인 문제에 눈감아 버린 듯하다. 조금의 여지를 준다면 누수인 곳은 주로 주차장 같은 공용공간이라 별 관심 없을지도. 그리고 남동생 소유의 집도 아니고 세입자니까 굳이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는 것일지도.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는 것일지도.


하긴 나도 제정신은 아닌 게 마찬가지여서 "디올 가방 보다 스트레스리스 의자가 더 저렴해. 디올 가방 하나 안 사고 허먼밀러 사는 건데."라고 했을 때 남동생왈. "디올 가방이든 허먼밀러 의자든 둘 다 제정신이 아니다! 차라리 아이맥을 사고 스타일러를 사라. 전자제품이 남는 것!"(전자제품과 장비에 관해서는 다다익선, 거거익선주의자)이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전자제품이 신체와 자연을 대신하는 것(특히 빨래 건조기)에는 불만 많은 사람. 육체무용론자지만 기계에 의존하는 인간의 생활은 싫다. 반대로 남동생은 육체옹호론지만 몸을 귀찮게 하는 모든 활동은 기계에게 외주를 주고 몸은 즐거움만을 경험해야 한다는 주의. 그래서 육체를 옹오하게 된 건가? 하지만 남동생과 같은 생활방식은 가속노화의 지름길!! 


스마트기기로 인해 인간의 뇌가 과도하게 활성화되어 있다는 말은 사실이다!! 내가 귀에서 에어팟을 빼고, 자연의 소리만 듣기 시작하자마자 체력이 남아돌아서 홈트를 하게 된 것으로 증명되었기도 하고.


새벽 5시 기상 - 주방에 가서 오트밀에 물을 부어 둔다 - 거실에 있는 요가 매트를 침실로 가져온다 - 모닝홈트 10분을 한다 - 머리 감고 말리기 - 주방에 가서 샐러드를 만들고 먹는다(맛에 관심이 없어서 올리브유, 발효 식초 뿌리고 그냥 초식동물이 풀을 먹듯 먹는다) - 불려둔 오트밀을 먹는다(난 정말 맛에 아무 관심이 없어서 그냥 물에 불려 먹음) - 출근 준비(화장, 옷입기), 출근, 업무보기, 퇴근 - 저녁 준비하고 먹기 - 바로 설거지하고 치우기 20분 정도 걸림 - 홈트 1시간 또는 산책하기 - 샤워하고 - 홈트 다이어리 쓰기, 매일 1개씩 다꾸 스티커 붙이는 즐거움!! 8mm 반투명(즉 볼펜으로 쓴 글씨가 선명하게 비치는) 7색(요일별) 원형 스티커(딱 3주 치가 있었다)를 다 사용했는데, 다시 사려고 여기저기(10x10 등등) 검색을 해봐도 못 찾음. -  책 읽다가 22시가 되면 잠.


무라카미 하루키가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였나에서 달릴 때 아무 생각도 안 한다고 했는데,  내가 그렇다. 홈트 할 때 아무 생각도 안 한다. 그냥 동작을 계속할 뿐이다. 스쾃 1분 버티기 같은 걸 할 때 아무 생각도 안 한다. 그냥 버틴다. 거실 소파에 드러누워서(소파에 너무 오래 누워 있었다 싶을 때 1인용 리클라이너에 앉고 너무 오래 앉았다 싶으면 다시 소파에 눕곤 했다. 아 진짜 왜 이런 방탕을 했을까. 내 인생 유일한 방탕은 운동을 안 한 것. 하지만 건강할 때는 건강을 지키는 행동을 하는 게 불가능하니 어쩔 수가 없다. 지금이라도 깨닫고 고친 게 어디냐. 매사가 전화위복임을 명심 또 명심하자) 넷플릭스를 하염없이 보던 내가, 거실 테이블을 치운 자리에 요가 매트를 깔고 넷플릭스를 보던 TV로 홈트 영상을 보면서 운동을 하게 되는 날을 맞이할 줄이야!! 이런 순간을 마주할 때면 일단 살고 볼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운동 시작하고 나서 넷플릭스를 안 봤다. 볼 시간이 없고, 보고 싶은 마음도 전혀 생기지 않았다. 


운동을 하게 된 지 3주가 좀 지났는데(누가 보면 3년 정도 한 줄) '와, 이게 진짜 건강한 고독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누구의 연락도 기다리지도 않고(물론 연락이 오지만, 안 오는 게 더 좋고), 그 어떤 것을 사고 싶지도 않고(특히 위치재), 쉽게 말해 번뇌가 없달까? 뭔가를 욕망하지 않는달까? 유일한 욕망은 위에 적은 새벽 5시에서 밤 10시 사이의 루틴을 지켜나가고 싶다는 것 정도. 이 하루를 실천하고 다이어리에 실천 스티커를 붙이겠다는 아이 같은 욕망 정도가 있을 뿐이다. 이 루틴을 실천하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꽉 채워져서 무엇 하나 더할 수도  덜어낼 수도 없는 완벽한 하루, 그 하루가 주는 충만함만 가득할 뿐이다.


육체무용론자인 나 -> 라캉의 상징계와 무의식을 알게 됨(무의식이라도 행복해서 다행이다라고 합리화함) -> 증상에 안주하지 않고 공백을 걷기로 한 후 왜인지 모르게 육체로 걷게 됨 ㅋㅋㅋㅋㅋ(진화론이라면 이거슨 돌연변이의 출현으로 인한 진화) -> 활력이 도는 육체를 가지 됨 -> 영혼은 건강한 고독상태에 진입(번뇌가 거의 없다, 아직은)

 

사실 내가 운동을 거의 안 한 시기는 최근 5년 동안이다. 가장 열심히 했어야 하는 시기였는데, 골든타임을 놓친 것. 20대 때는 10km 마라톤을 꾸준히 한 적도 있다. 주중에 달리기 연습하고 주말에 여기저기 대회 참가하고. 요가를 꾸준히 6년 넘게 했다. 그 요가를 그만둔 게 2018년. 운동을 안 한 5년(그중 3년은 코로나였고 2019년에 거대한 TV를 거실벽에 걸고 본격 넷플릭스 좀비가 되었다.) 사이에 나이가 나이인지라 가속노화가 진행되었고, 결국 대학병원에 주기적으로 가서 혈액검사를 하고 CT를 찍어야 하는 병들어 가는 육체가 된 것이다!!


어떤 알고리즘에 이끌려 나는 노화, 노쇠 전문가 정희원에게 도달했는데, 이 사람의 말 중 제일 충격적인 것은

인생의 마지막 10년을 요양병원에서 콧줄을 끼고 살 것인지, 90세가 되어서도 혼자 힘으로 걷고 생활하는 사람으로 살 것인지 하는 말이었다. 나는 (생)로병사는 피할 수 없고 받아들여야 하며, 죽을병에 걸려 존엄을 잃었을 때는 안락사를 하는 것만이 인류애라고 주장했고 믿었다. 그래서 생활습관을 고칠 생각을 안 했고, 아직 건강할 때 더더 즐겁게 좋아하는 것을 최대한 많이 하자 생각했다(하지만 이것도 다 내 무식의 소치. 과학에 의하면 쾌락의 총량은 일정하다는 것). 그래서 디올을 사고, 마칸을 사고 싶어 했고, 비싼 소파에 누워서 넷플릭스를 탐했다. 건강수치가 계속 나빠져도 받아들였다. 오히려 건강할 때 더 즐기자, 완전 막가파였다. 죽으면 죽지 뭐 했다. 아침 공복에 스타벅스 조각케익과 커피를 먹은 적도 종종 있다. 죽기 전에 마칸이나 사자 싶었다. 한편으로는 죽을 때 죽더라도 죽음이 뭔지나 알아보자 싶어서 죽음에 관한 책을 탐했다. 한심하고 어리석지만 이 과정이 없었다면 최근 3주간의 성스러운 생활을 하는 나 자신에 도달할 수 없기에 이 방탕의 과정도 다 전화위복이라고 합리화 처리했다(라캉식으로 말하면 나만의 픽션 만들기!). 나의 이 전화위복의 합리화 능력을 나는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웬만해선 우울하지 않다. 



건강식 먹고, 홈트하고, 잠 자기 전에 <감시와 처벌> 읽는다.

이 정도면 성직자보다 더 성스러운 생활 아닌가!! 



p.s. '영혼은 신체의 감옥이다.' 이 말이 라캉의 욕망이론으로 해석되는 이유는 뭘까? 영혼의 대부분은 무의식, 그 무의식은 어떤 증상을 탐하고, 그 탐함으로 인해 육체는 병든다. 증상을 탐하는 것이 주는 즐거움(도파민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공백-운동-고독-번뇌 없음의 단계를 거쳐야 한다는 것이 내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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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계속 홈트를 하고 있다. 운동을 이렇게 열심히 꾸준히 해 본 적이 없다. 나의 공복 모닝 홈트 연관 영상으로 강민경의 아침 집밥 7일이라는 영상이 있었다. 이때만 해도 강민경이 누군지도 몰랐다. 다만 분명 건강한 아침밥 영상이겠지 싶어서 보게 되었는데!!! 그냥 부지런히 요리하고 맛있게 잘 먹는 영상이었다. 건강식은 아니었다. 그저 아직은 건강한 젊은 사람의 활력 가득한 식사 영상이었다.(부럽!!!!!!) 아침밥 영상을 다 보고 나니 인기 영상으로 차밥 10끼가 나와서 또 봤다. 그 영상을 다 보고 난 후 나는 강민경의 나이를 검색해 봤다. 도대체 몇 살 이길래 저리 방탕하게 먹고도 건강하게 살아있단 말인가!!!!!! 


그래, 아직은 건강할 나이구나!!!


월요일에는 야심 차게 <감시와 처벌>을 들고 출근을 했다. 월요일에 업무 공백 시간이 있기 때문에. 매주 100쪽씩 읽으려면 하루 20페이지씩 해치워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열차게 읽었다, 월요일만. 현재 45쪽까지 읽음.


내가 미셸 푸코 대신에 선택한 것은 유튜브 지식과 운동(홈트를 매일 1시간 이상씩 함)이었다. 이유는 이번 주에 3 달마다 하는 혈액검사를 했는데 결과가 어메이징 하게 좋았기 때문이다. 대학병원 교수도 놀라서 물었다. "뭐 특별히 한 것이 있나요?"라고. 이 검사를 한 지 만 3년이 되도록 나의 혈액수치는 지속적으로 나빠지고 있었다. 수치가 들쑥날쑥하는 것보다 지속적으로 나빠지는 게 정말 안 좋은 것인데 이번에 처음으로 좋아졌다!! 그래도 건강인의 수치는 아니다. 여전히 위험군. 잘 모르는 사람들은 약 먹으면 좋아지는 거 아니냐, 식이요법 같은 건 없냐라고 묻곤 하는데. 이게 뭐 고혈압이나 당뇨, 심혈관질환인 줄 안다. 아니라고, 아니라고. 검색해 보라고. 증상 없고, 약도 없고, 10에 9명 이상 다 죽고. 수술도 어렵고, 대부분이 손 쓸 수 없는 최후의 상태에 병을 알게 되기에 수술 자체를 할 수 있는 사람도 거의 없다. 뭐 그냥 그런 거라고ㅜ(그래서 조기 발견할 수 있는 내 상황은 억세게 운이 좋은 거라고들 하는데. 인생 운을 여기에 다 쓴 거 같기도. 애초에 나는 이 장기를 약하게 타고난 듯. 인생에 방탕이라곤 없는 사람인데 아픈 걸 보면 ㅜㅜ)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건 술 담배 안 하기, 규칙적인 생활, 7시간 이상 잠자기, 스트레스 피하기, 운동하기, 건강한 음식 먹기 정도밖에 없다. 이번에 내가 새롭게 시도를 한 것은 아침 습관을 바꾼 거였다. 모닝 홈트와 샐러드 먹기. 원래 아침에는 밥과 국만 먹었는데, 밥과 국을 대신 양배추와 녹색 채소, 토마토, 올리브 오일, 귀리를 먹는 것으로 식단을 바꾸었다. 그리고 저녁에는 침대에 누워 있다가 저녁밥 먹고 바로 침대에 다시 누워 있다가 잠 오면 잤는데, 저녁밥을 먹고 나서 1시간 이상 운동을 하고 잠자고 있다. 여전한 의문은 돈 주고 한 필라테스 대기구 운동은 뭐였나 하는 것...


아무튼 고작 2주 하고 이 정도로 건강해지는 거라면 왠지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그래서 유튜브에서 노화, 질병에 대한 영상을 검색해 보다가 정희원 교수(노년내과 전문의, 세상에 노년내과가 있다니!! 진정 고령화시대로다)를 만나게 되었다. 지금 나에게 중요한 건 미셸 푸코도 라깡도 아니고 노년내과 전문의 정희원이었다. 노화지연의 핵심은 근육량 유지(운동)와 음식이었다! 60세 이후에 요양병원에 가는 사람이 되느냐 마느냐!!(뭐 일단 나는 내가 60세까지 살 수 있으냐 마느냐도 불확실한 건강 상태이지만 ㅜ) 노인이 와병이 나서 10일만 누워 있으면 10년을 운동해서 만들 수 있는 양의 근육이 사라지며 허벅지 근육이 없어지면 걸을 수가 없고 걸을 수가 없으면 화장실을 못 가고 기저귀를 차야 한다고 했다. 이 말은 공포 그 자체였다!!!!!! 기저귀를 차고서도 살고 싶은 사람도 있겠지만, 거동을 못해서 기저귀를 차고 살아야 한다면 나는 그냥 안락사하고 싶다. 간신히 거동할 수 있게 되자 투신한 들뢰즈의 심정을 백 번 이해한다. 


다시 한 번 생로병사를 해야만 하는 인간을 낳는 인간들의 이기심에 파르르 떨었다! 


정희원 교수의 세바시 영상 중 충격적인 말은 '즐거움의 총량은 정해져 있다'였다. 과학자들이 이미 증명해 냈다고 함. 나는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를 읽고 난 후 나도 매일 소마 1알을 먹고 싶다고 정말 간절히 생각했다. 하지만 뇌라는 놈은 자극에 익숙해지기(익숙해져야하기) 때문에(자극에 익숙해지지 않으면 인간은 생존할 수가 없다고 하네...) 소마 1알이 소마 2알, 3알, 100알이 되어야 한다고... 그러면 사람은 병에 걸린다. 우선 간이 병들 것이다.  


또한 도파민(즐거움)의 최종 산물은 스트레스라고 했다. 그래서 내가 kpop을 숨 쉬듯 들을 때 극도로 피곤했었나. kpop이 주는 즉각적인 즐거움(도파민)에 나는 쩔어 있었던 거 같다. kpop과 팟캐스트를 끊고 나서야 여유 에너지가 생겨서 운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운동을 하자 몸에 활력이 돌았고 피곤이 사라졌고 (일단은) 혈액검사결과가 좋아졌다. 운동을 해도 도파민이 나오지만, 몸이 허락하는 유일한 도파민은 운동을 통한 도파민이 아닐까? 


즐거움의 총량이 정해져 있다면, 육체가 운동을 통한 도파민만을 허락한다면 마칸을 사야 할 이유가 없다. 마칸이라는 위치재를 통해 즐겁고 싶었기 때문에 나는 마칸을 욕망했을 뿐. 그런데 즐거움(도파민)의 총량은 정해져 있고 그것을 운동을 통해서 채울 수 있다면 운동해서 건강해지고, 하루치 도파민도 충족하고 일석이조 아닌가. 마칸을 사기 위해서 운동할 시간, 잠을 잘 시간을 줄여가면서 억지로 불필요한 노동을 할 이유는 없어졌다. 


내가 여행(국내든 해외든)을 시큰둥해하는 이유도 알게 되었다. 어느 순간 여행(새로움)을 생각하면 즐거움보다는 피곤이 앞섰다. 여행의 모든 경험들은 새롭지만 식상했다. 여행 재미의 절반은 식도락일 텐데, 나에게 맛집의 음식들은 그저 고혈압, 고지혈증, 당뇨로 가는 급행열차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으로 여겨질 뿐이고. 난 그냥 내 집에 있는 동물복지 유기농 계란, 무농약 채소, 좋은 올리브유 같은 걸 먹고 싶을 뿐이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더 글로리>의 하도영이 편의점 삼각김밥이 탄수화물이라는 이유를 대면서 먹지 않았던 이유는 당뇨 위험군이거나 정제곡물은 먹지 않는 방식으로 건강을 관리하는 40대이기 때문인지도. 


내 동년배들은 자녀를 키우고, 아파트 대출금을 벌고, 직업적인 성취를 위해서 가열차게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한국 사회를 이끌어가는 훌륭한 3, 40대의 산업역군으로의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그에 비해 나는 은퇴자의 마음으로 어떻게 하면 노화를 지연시킬 수 있을까, 병에 걸리지 않을 수 있을까에만 골몰하고 있다. 대치동 학원가의 초등학생이 고등학생 수학을 공부하는 것 마냥 나는 인생을 선행학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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