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이라는 시간의 틀 속에서 나는 계속 살고 있다. 내가 일주일이라는 시간의 틀 속에서 살고 있는 이유는 세상이 일주일을 기준으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주 1회 욕실 청소, 주 1회 반신욕, 주 1회 세탁기 돌리기, 주 1회 장보기, 주 1회 마사지 등등을 하고 나면 매주 책 한 권 읽기, 매주 영화 두 편 보기 같은 걸 할 시간 없다는 것을 깨닫고 울곤 한다. 


오랜만에 조퇴하고 biff 영화를 보러 갔다. 총 3일을 조퇴하고 영화 또는 무대인사를 보러 갔는데 그 3일은 눈 뜨자마자 오후에 있을 영화 혹은 배우의 무대인사에 대한 기대로 설레고 하루종일 즐거웠다. 그래서 깨달았다. 내가 왜 20대의 한 시절에 그토록 행복했었는지를. 그리고 지금은 왜 행복하지 않은지를. 그때 나는 거의 매일을 퇴근하고 cgv 또는 시네마테크로 달려가서 영화 2편을 연속으로 보고 밤 11시 전후로 귀가하는 생활을 했었던 것이다. 집도 아니고 회사도 아닌 다른 장소에 가서 무언가 즐거움을 얻는 게 큰 행복이었나보다.


저녁 8시에 야외 오픈 시네마를 보고 밤늦게 집에 와서 기절하듯 잠들었다. 다음날 여느 출근하는 날처럼 5시에 벌떡 일어나서 모닝홈트(절대 거를 수 없다!)를 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왜냐 난 오늘도 조퇴하고 biff 영화를 보러 갈 것이기 때문!! 어제 영화는 4시 40분이었는데, 오늘 영화는 1시 30분. 3시간 빠른 설렘으로 인해 나의 신경은 온통 극장에 가 있었고, 업무는 마이동풍 그 자체였다. 이날 메인 영화는 <지구 종말이 오더라도 너무 큰 기대는 말라>였고 같은 상영관에서 이 영화 앞에 상영하는 영화인 <본인 출연, 제리>라는 영화는 꼽사리로 예매한 것인데 이 영화가 올해 biff에서 가장 좋았다. 영화적으로 훌륭했던 건 아니고, 개인적으로 많이 와닿았다. 


<본인 출연, 제리>는 제목 그대로다. 제리라는 70대 노인(아메리칸드림을 꿈꿨던 대만계 미국 이민자)이 제리 자신으로 영화에 출연하여 자신이 당한 보이스피싱 사연을 연기한다. 그는 이미자로 미국에서 살면서 열심히 일하여 번 돈 약 10억(아마도 현재 물가를 생각하면 그 이상일 듯)을 보이스 피싱으로 다 날린다. 제리 왈 "일해서 돈을 모으기만 했어요. 돈을 써 본 적이 없어요. 아들들 결혼할 때 돈을 보태주려고 했는데, 이젠 그것도 못하게 됐어요. 쓰지 않는 돈은 의미가 없어요. 통장에 적힌 숫자일 뿐이죠."라고 말한다. 다음 영화 <지구 종말이 오더라도 너무 큰 기대를 말라>는 제목이 맘에 들어서 예매했다. 러닝타임 163분. 결론부터 말하면 난 이 영화를 끝까지 보지 않았다. 왜냐하면 영화가 끝나면 7시 30분일 텐데 백화점은 8시 마감이고, 샤넬 매장은 7시 반이면 마감할 것이기 때문에. 


사실 전날 영화가 4시 30분이어서 시간이 좀 있었다. 요즘 나는 샤넬 핑크색 가방이 갖고 싶다는 욕망에 부글거리고 있었고 마침 요즘 샤넬은 대기 시간 0분. 그래서 영화 시간도 남은 김에 샤넬에 가서 핑크색 가방을 이것저것 메보고 결제 직전가지 갔다가 이성의 끈을 부여잡고 멈췄다. 매장 직원은 늘 그렇듯이 "새 제품 재고 1개뿐이다."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다음 날 <본인 출연, 제리>는 나에게 "쓰지 않는 돈은 의미가 없어요. 통장에 적힌 숫자일 뿐이죠."라고 했다(정확히 이렇게 말했는지는 가물가물하다. 저건 사실 늘 내가 소비할 때 하는 말이다. ㅋㅋㅋㅋㅋ 통장에 적힌 숫자는 숫자일 뿐이다라고) 마침 <지구 종말이 오더라도 너무 큰 기대를 말라>는 서사가 있는 영화가 아니었고, 사례 변주를 끝없이 하길래 이것은 영화 그만 보고 샤넬 가라는 계시라고 내 맘대로 해석하고, 생애 처음으로 극장에서 자의로 영화를 끝까지 보지 않고 나왔다. 


대기시간 0분의 샤넬매장은 쾌적했고, 나는 또 이거 저거 메보고 어제 사고 싶었던 가방이 아닌 다른 핑크 가방을 샀다. 나의 쇼핑 메이트 남동생에게만 자랑을 했고, 남동생은 샤넬을 핑크로 사다니 제정신이 아니다고 비평했다. 나는 "샤넬은 핑크지!"라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아끼고 아껴서 통장에 숫자로 간직하다가 노인 돼서 보이스피싱 당할 바에는 샤넬 핑크색 가방에 돈 쓰는 게 현명하다!"라고 덧붙여 주장했다.


그리고 매일 출근할 때 샤넬 핑크를 메고 있다. 그래봤자 내가 샤넬 가방을 메는 시간은 5분도 되지 않는다. 가방에든 것은 폰, 차키, 립밤, 카드지갑 전부다(보통의 남자들이 바지 주머니에 넣고 다는 소지품 ㅎㅎ). 가방의 1차 기능은 주얼리, 2차 기능은 주머니. 


그렇게 매일 5분씩 주얼리 기능을 하는 주머니를 들고 다녔다. 일상이 조금은 핑크빛으로 물들었다. 하지만 조퇴를 하고 영화를 보러 가는 것만큼 즐겁진 않았다. 그래서 즐거움과 설렘을 느끼고자 어제(금요일) 조퇴를 하고 영화에 전당에 가서 <어파이어>라는 영화를 봤다. 이 영화는 베를린 영화제 은곰상(심사위원 대상, 독일 영화다) 씨네21 전문가 평점 8.43의 어마무시한 작품이다. 이런 타이틀이 아니더라도 이 영화는 매우 훌륭하다. 특히 글쓰기에 대한 욕망이 드글드글하는 사람들을 뼈를 아주 가루로 만들어 주는데, 그게 너무 좋다. 약간 영화 <베르히만 아일랜드> 생각도 남. 


드라마<더글로리>같은 걸 쇼파에 드러누워서 넷플릭스로 보면 그 순간은 너무너무 재미있지만, 그것이 끝났을 때 내 마음은 회색의 재가 되어 있다. 반대로 시네마테크에서 상영하는 영화들을 보고 나면 마음이 파스텔톤이 된달까, 충만해진달까, 가득 채워진 느낌이랄까. 내 마음을 채워줄 훌륭한 영화를 만날 거라는 기대가 내 하루를 설렘으로 가득차게 한다. 회사 주차장을 나와서 영화의 전당으로 운전하던 그 길이 어찌나 설레던지. 심지어 애인을 만나러 가던 때보다 더더더 설렜다. 그리고 이 점에 나는 매우 큰 충격을 받았다. 내가 사람을 그렇게까지 안 좋아하나 싶어서. 


이번 biff에서 처음 본 영화는 <우먼 오브>라는 영화다. 주인공 아니엘라는 남자의 몸에 갇힌 채 안제이로 살면서 결혼하여 두 아이의 아빠로 살아간다. 아니엘라는 안제이가 주는 모든 정상성을 포기하고 사회의 탈구축(미셸 푸코)을 시도한다. 그리하여 직장도 잃고, 가정도 잃게 된다. 대신 자기 자신 아니엘라로 살 수 있게 된다. 두 번째 본 영화는 <애니멀 킹덤> 이 영화도 마찬가지로 사회의 탈구축(<현대사상입문>의 미셸 푸코 사회의 탈구축을 알게 되었고)이 주제다. 심지어 이 영화는 비유도 상징도 없다. 인간이 그냥 동물이 되어 버림!!! 사회(문명)는 동물이 되어버린 인간을 감금하려고 하는데, 동물이 되어버린 인간들은 이를 거부하고 탈출하여 동물로 살고자 한다!!! 세 번째로 본 영화는 <본인 출연, 제리> 마지막으로 본 영화는 <지구 종말이 오더라도 너무 큰 기대를 말라>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과로에 시달리면서 미쳐가고 있다. 그 스트레스를 부캐(얼굴 변조?) 동영상을 찍어서 해소한다. 욕과 여혐이 난무하는 동영상이다. 욕과 여혐은 이 여성 노동자가 주로 도로에서 남자들에게 당하는 욕설과 여혐의 패러디다. 영화 속 루마니아는 선팅이 연했다. 한국처럼 선팅을 찐하게 해서 운전자의 성별을 알아볼 수 없게 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했던 영화 ㅋㅋㅋ 


이번 28회 biff에서 본 영화들을 6글자로 요약하면 '사회의 탈구축'!!!


<현대사상입문>이라는 세상 친절한 책의 3장 푸코: 사회의 탈구축에서 내 마음은 뼈가 가루가 되도록 맞아서 매우 몹시 심각하게 방황 중이다. '자기를 감시하는 마음의 탄생', '자발적으로 얌전해짐', '생명정치(이것은 영화 <애니멀 킹덤> 그 자체)' 등등으로 인해 읽기 일시정지 상태. 마음을 추스려야 한다!!


사회는 정규직, 연애(와 결혼), 샤넬을 지나치게 미화시켰다. 자발적으로 얌전한(안전한) 삶을 선택한 나의 얌전한 반항은 23fw샤넬핑크를 구입하는 것 정도. 핑크의 톤도 매 시즌 다르니까. 매시즌 똑같은 블랙클래식을 내가 왜 사?하는 소심한 반항. 불경기에 금리도 높은데 그런 게 다 무슨 상관인가! 그래서 샤넬 대기 0분. 아껴봤자 노인되서 보이스피싱으로 다 날릴 숫자일 텐데!! (퇴근 아니고) 조퇴하고 시네마테크용 영화 보러 가는 게 가장 큰 설렘이고 즐거움인 정규직의 삶.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그동안 평일에는 체력을 아껴야 하니까, 소파에 드러누워서 65인치 tv로 넷플릭스 보는 것도 충분히 즐거우니까 하면서 지냈다. 체면에 걸린 듯 연애도 했지만, 내가 깨달은 것은 이성애에서는 항상 여자가 손해라는 것. 회사는 익숙해져서 다닐만한 것일 뿐이고. 돈을 버는 이유를 몰라서, 돈을 체감하고 싶어서 가끔 디올에 들러서 뭔가를 샀고(샤넬은 대기가 길어서 잘 안 감). 이것은 그야말로 자발적으로 얌전한 삶. 그래서였을까 나는 작년에 biff 오픈 시네마에서 본 <미래의 범죄들>이라는 영화를 1년째 곱씹고 있고, 이 영화를 봤던 공간과 시간이 올해 영화제 전까지의 시간들에서 가장 설레고 행복했던 순간이었다. (그래서 올해도 부족한 체력임에도 오픈 시네마를 예매했다. 결과는 성공적!) 이 영화의 주인공 3총사 레아 세이두, 크리스틴 스튜어드, 비고 모텐스(영화 <반지의 제왕>의 아라곤. 개인적으론 내가 상상했던 아라곤보다 늙고 못생겨서 엄청난 실망을 안겨준 배우, 내 상상 속 아라곤 돌려줘!!)가 굉장하기 때문에 당연히 개봉할 줄 알았는데, 안 함.


일주일이라는 시간의 틀 속에 갇혀서 주 5일 출퇴근 반복, 주말에는 밀린 집안일을 하고 나면 읽고(영화 감상 포함), 쓰는 방식으로 존재할 시간이 거의 없다. 잠도 충분히 자야하고, 운동도 매일 해야 한다. 이건 생존의 조건이라서 아니할 수 없다. 성실히 출퇴근을 한 댓가로 번 돈의 의미를 찾고자 부지런히 소비를 하는 것이 더 이상 나에게 설렘이나 즐거움이 아니라는 것을 이번에 완벽히 깨달았다. 


이제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10월 알라딘 굿즈 고양이 쿠션이 갖고 싶어서 <멜랑콜리아>(굿즈 받으려고 산 노벨문학상 수상작), <가부장제의 창조>(이제서야 알게 된 훌륭한 책! 역시 이웃을 잘 만나야 함), <한나 아렌트의 생각>은 언제 읽나... 미셸 푸코, 한나 아렌트도 읽고 싶은데. 이것들을 충분히 읽으려면 출퇴근 하는 시간을 읽고 쓰는 시간으로 바꾸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 도나 해러웨이!!(역시 이웃을 잘 만나야 함!)도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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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24 16: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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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28 09: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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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28 19: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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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자기 자신에 관해서 얘기해서는 안됩니다. 순전한 이기주의로 보더라도 안됩니다. 왜냐하면 마음을 털어버리고 나면 우리는 보다 가난하고 보다 고독하게 있게 되는 까닭입니다. 사람이 속을 털면 털수록 그 사람과 가까와진다고 믿는 것은 환상입니다. 사람과 사람이 가까와지는데는 침묵 속의 공감이라는 방법 밖에는 없습니다.

<생의 한가운데 / 루이제 린저>


비록 인간관계에서 연결이 필요하다고 해도 거기에는 일정한 거리가, 더 강하게 말하면 무관계성이 없으면 우리는 서로의 자율성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즉, 무관계성이야말로 존재의 자율성을 가능하게 하는 것입니다. 관여할 필요가 있어도 너무 관여하지 않는다는 안배가 요구되는 것입니다.

버림받고 불행한 일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회 비판적 인식에서 보면 좀 더 관여해야 한다는 말은 맞는 말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너무 관여만 하게 되면 그로 인해 감시나 지배로 변질될 위험성이 있고, 그것에 대한 균형으로서 너무 관여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할 필요도 있다는 것이 제가 들뢰즈에게서 끌어내고 있는 중요한 주제입니다. 

다만 이 "너무 관여하지 않는다"라는 것을 "관여하지 않아도 좋다"라고 받아들여 버리면, 사회가 냉담해져 버립니다. 그건 제가 하고 싶은 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더 따뜻한 사회를 지향하기 때문에, "지난치게 ~하지 않는다"가 필요하다는 것이 제가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현대사상입문 / 지바 마사야>


일찍이 루이제 린저 언니는 니나 붓슈만의 입을 통하여 저런 엄청난 말을 하셨다. 그때 나는 막 대학에 입학한 신입생이었는데, 저 문장이 진짜 너무너무 멋있다고 생각했다. 저 문장 때문은 아니었겠지만, (이렇게 일기는 쓰고 있지만) 나는 사람(들)에게 나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시시콜콜하게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어떤 친구는 "너는 비밀이 너무 많아."라고 했고 어떤 친구는 자신에 대해서 시시콜콜 묻지 않아서 좋다고 했다. 


나는 내 앞에 있는 당신이, 내 주변에 있는 타인들의 이력과  MBTI가 전혀 궁금하지 않다. 더 정확히는 그들의 개인사와 개성에 대한 정보가 나의 두뇌 용량을 차지하는 것이 싫다. 두뇌 용량이 무한한 게 아니니까. 또한 니가 어떤 사람이든 상관없이 나는 내 방식대로 너를 대할 거니까. 


스무 살 이후부터 나는 타인을 인상파 화가가 풍경과 사물을 파악한 방식으로 파악하고 있다. 오직 지금 현재 내 눈에 보이는 모습과 언행만으로 그 사람을 파악한다. 특히 내가 확인할 수 없는 어떤 화려한 이력을 늘어놓는 인간은 신뢰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여행을 굉장히 많이 다녔다고 자신을 소개하는 사람이라고 하자. 그 여행의 결과물로서의 언행이 꼰대라면 나는 내가 확인할 수 없는 여행 이력을 늘어놓은 인간의 여행 이력을 허풍이라고 여긴다. (아니면 슬쩍 공항이름 같은 걸 물어보겠지 ㅋㅋㅋ)


당신이 그렇게 잘난 사람이라면 왜 나랑 여기서 마주하고 있는가. 애초에 vip 주차장은 진입로부터 다른데? 엘리베이터마저도 vip용은 따로 있는데. 그러니까 굳이 니 이력 따위 늘어놓지 마라고. 지금 나와 마주하고 있는 게 인상파적 니 이력이다, 인마.


오은영의 인기 탓일까, 또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살면서 받아온 상처의 내용을 줄줄이 늘어놓으면서 타인이 자신을 이해해 주고 배려해 주길 바란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 정말 피곤하고 싫다. 나는 아이돌의 서사도 피곤해서 안 본다. 연예인의 사생활도 피곤해서 안 본다. 그런데 내가 장삼이사일 뿐인 너의 서사를 들어주고 공감해 주고 이해해 주고 배려해줘야 하나? 진짜 미쳤나? 


정말 궁금한 점은 타인의 공감, 이해, 배려가 그렇게 중요한 가 하는 것. 나는 타인의 무관심이 제일 편하고 좋은데. 나한테 인사하지 마, 너의 인사받아주는 거에 에너지 낭비하고 싶지 않아. 물론 나도 인간이기에 공감, 이해, 배려가 필요하다. 단 그것은 어디까지나 내가 나의 울타리 안에 들여놓은 타인 한정이다. 그것은 매우 소수이며 대체로 5명을 넘지 않는다. 내 울타리 밖에 있는 타인은 그들이 나를 칭찬을 하든 험담을 하든 나로선 아무 상관이 없는 다른 우주에서 벌어지는 일 일 뿐. 


드라마 <마스크걸>의 마지막 장면의 대사는 "제 꿈은 모두에게 사랑받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였다. 나는 살면서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싶다(잘 보이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아마도 내가 나를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남들이 나를 사랑하지 않을 거라는(미워할 거라는) 생각 자체를 하지 못했던 게 아닐까. 나도 모미처럼 엄마에게 예쁘다는 말을 단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다. 오히려 못생겼다는 말만 많이 들었다. 심지어 내 엄마는 내 이마가 못생겼다고 하면서 항상 앞머리를 잘라줬다. 나는 어떤 사람이 되었냐하면, 모미와 정반대로 엄마(그리고 모든 타인)의 심미안과 안목을 무시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타인이 나에 대해서 어떤 품평을 늘어놓아도 다 개 짖는 소리 취급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그 누구에게도 잘 보이고 싶지 않다. 나 자신에게만 잘 보이고 싶다. 타인의 기분을 맞추는 건 너무나 힘들고 어려운 일. 그래서 타인의 기분을 맞춰주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공평하게 타인이 내 기분을 맞추어주길 바라지도 않는다. 그래서 나는 sns도 하지 않고(못하고), 그 어떤 온라인 커뮤니티 활동도 하지 않는다. 그 무수한 타인들 속에서 댓글을 주고 받고, 커뮤니티에 맞는 페르소나를 만들어서 활동하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피곤하다. 유일하게 가능한 것은 블로그(서재) 정도. 블로그는 화자가 1명이라서 그나마 견딜 수 있는데, 불특정 다수의 화자가 많은 커뮤니티는 불가능. 


나는 사람들이 타인에게 인정받고(사랑받고) 싶어서 그토록 비굴하고 처절하게(심지어는 자살을 할 정도까지) 사는지 몰랐다. 미움받을 용기가 아니라, 나는 누가 나를 미워하는지 좋아하는지 관심도 없어서 용기를 낼 것도 없는데. "저리 가, 너한테 관심 없어." 사랑받기 불가능한 존재라는 내면의 깊은 자각에서 나온 방어기제라고 누군가 나를 분석할지라도. 나는 그 분석조차 관심없다(그건 니 생각이고).


최근에 나는 내 언행에 대한 타인의 반응 자체를 생각하지 않고 거침없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말하고 행동한다는 것을 자각하게 되었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남에게 좋은 이미지로 남고 싶기 때문에 하기 싫은 것도 수용하고, 남 눈치 보고 자신의 언행을 제어하는 데, 나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걸 알았다. 또한 나는 타인에 대해서, 타인의 언행에 대해서 아무 가치판단도 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 사람이 어떤 언행을 하든 그게 나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 그 사실 자체는 인식하지만 그 점에 대해서 판단하거나 기억해 두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하기도 바빠서 타인의 언행에 대해서 곱씹고 잘했니 잘못했니할 겨를도 없다.


"니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대해 관심 없다. 다만 내 영역에 허락 없이 침범해서 나에게 이래라저래라, 이거 해달라 저거 해달라, 이해해 달라 배려해 달라, 그런 거 하지 마." 


<현대사상입문>에서 저 구절을 읽으면서 무릎을 쳤다. '아하, 그랬구나. 내가 바랐던 건 바로 무관계성에서만 가질 수 있는 자율성(자유)였구나!' 


내가 일기를 쓰는 이유는 내가 나 자신에게 이해받기 위함, 배려받기 위함이지 이 일기를 읽는 타자에게 이해(공감, 배려)받기 위함이 아니다. 라캉 이론은 1% 정도 알지만, 이쯤에서 내가 내린 결론은 내가 믿어야 할 대타자는 나 자신 말고는 없다는 것. 


p.s1. 일기를 쓰는 행위는 옷장을 정리하는 것과 같다. 옷장을 정리한다고 해서 없는 옷이 더 생겨나는 것은 아니지만 정리하는 과정에서 내가 가지고 있는 옷이 정확이 무엇인지 다시 확인할 수 것처럼 일기를 쓴다고 해서 없던 생각을 더 하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나 자신에 대해 가진 생각을 더 명확히 할 수 있으므로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된다. 적어도 우울증 예방에 큰 도움이 된다. (백상현에 의하면 라깡이 그랬다던데. 자신을 표현할 언어가 부족해서 우울증에 걸리는 거라고)


p.s2. 이런 내 생각을 다른 사람과 대화로 풀어내는 것보다 혼자 일기를 쓰는 게 만 배는 더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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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09 19:5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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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10 08: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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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10 18: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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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12 08: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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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하는 것은 빅씨스 10분 공복 모닝 홈트. 

https://www.youtube.com/watch?v=efiqud5yKLw


오늘은 진심 침대에만 있고 싶다, 몸 같은 건 그냥 어디 상자에 구겨 넣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한 날도 공복모닝홈트 10분을 하고 나면 활력이 샘솟는다! 저녁운동 건너뛸까 싶은 날에는 빅씨스 유산소 휴식없음 30분 홈트(https://www.youtube.com/watch?v=efiqud5yKLw)를 하는데, 이게 정말 좋다. 운동하는 게 아니라 음악에 맞춰서 춤추는 느낌이랄까. 진작에 운동(몸을 움직이는 것)의 효능을 알았다면 나는 좀 더 건강한 몸을 소유하지 않았을까... 지금이라도 운동하는 게 어디냐 싶긴 하지만. 


모닝홈트를 하고 나서는 머리 감고 머리를 말린다. 머리 말리고 나서 주방에 가서 서서 샐러드 먹으면서 드립커피 내릴 준비를 한다. 드립커피 도구가 올려진 쟁반을 들고 화장대로 간다. 커피를 내리면서 마시면서 화장을 한다. 그리고 내 하루의 유일한 디저트를 먹는다. 공복혈당 같은 거에 관심 없었을 때는 아침에 스타벅스 7레이어 초코 케익을 먹었다. 요즘은 대신 다신샵 초코파이(반 개)를 먹는다. 물론 샐러드만 먹으면 좋겠지만, 모닝커피와 초코 디저트는 내 하루의 가장 큰 즐거움이라서 포기할 수가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화장을 꾸밈노동으로 여기지만, 나에게 있어서 화장은 모닝홈트와 같은 효능이 있는 중요한 행위다. 화장을 하면서 하루를 버틸 에너지를 끌어올린다고 해야 할까? 홈트가 육체의 에너지를 끌어올린다면 화장은 정신의 에너지를 끌어올린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나의 생얼을 볼 자격이 없는 인간들에게 내 본디 얼굴을 보여주기 싫달까? 너네들은 그냥 내가 스스로를 포장한 모습이나 보면서 착각하고 살아. 하는 마음이랄까. 


마지막으로 출근길 운전을 하고 회사 주차장에 주차를 하는 순간 내 하루는 끝이 난다. 나는 매일 이 과정을 반복하는 게 좋다. 그래서 긴 연휴가 지겹다. 


이렇게 내 하루의 모든 즐거움은 아침에 끝이 난다.


어제, 그제는 하루의 쾌락을 2배로 만들어 보고자 저녁밥을 먹은 후에 커피와 디저트(서울 유명 디저트 가게의 호두파이, 남동생은 마스다 미리의 만화 <주말엔 숲으로>의 마유미처럼 오직 서울에만 있는 인스타 맛집의 디저트를 사 온다)를 먹어봤는데 아무 감흥이 없었다. 저녁에 카페인을 섭취해도 잘 시간이 되면 잠은 오신다는 걸 확인했을 뿐.


내 하루는 5시에 시작해서 21시에 끝난다(일찍 일어나고 일찍 자는 게 좀 억울하다 싶을 때면 나는 호주 시간으로 산다라고 생각한다. 호주는 한국보다 1시간 빠름). 퇴근하고 집에 오면 저녁밥을 먹고, 저녁홈트를 약 50분 정도 하고, 씻고, 잔다. 씻은 후에 책을 읽다가 잔 적도 있었지만 요즘은 그냥 잔다. 넷플릭스(영화보기)는 운동을 시작한 후로는 아예 못하고 있다. 넷플릭스 보던 시간에 운동을 하기 때문.


 내 하루의 한계, 내 체력의 한계, 내 욕망의 한계를 이제야 제대로 파악하고 조절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지금 그리고 남은 날들의 나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루틴을 유지하는 것 말고는 없다는 것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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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 커피를 마셔도 밤 9시가 지나면 느닷없이 잠이 쏟아진다. 말 그대로 폭우 후의 폭포수처럼 쏟아진다. 3달 넘게  매일을 빠짐없이 홈트를 해서 체력이 좀 좋아졌다는 판단하에 다시 '듣는 행위'(음악, 팟캐스트 등)를 시작했는데, 이 탓인가. 지금도 노래를 들으면서 일기를 쓰는 중이다(며칠 전에 모건 월렌이라는 유명한 가수를 이제야 알게 된 기념으로 열공 중). 10시간 30분을 쉼 없이 자고 나서야 겨우 몸을 일으킬 수 있었다. 오랜 세월 아침 출근 노동자로 살아온 내 몸은 7시쯤에 잠시 깼지만 '일요일이지.' 하고 다시 잠들어버림.


어제는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 시사회를 봤다. 영화가 끝난 후 강동원, 허준호 등등 주요 배우와 감독이 무대인사를 했다. 내 자리는 무대와 가까웠다. 이 정도면 강동원 땀구멍도 보이겠는걸 ㅎ. 영화는 이거 그냥 집에서 본다면 진짜 노잼이겠다 싶었지만, 극장 특유의 몰입력과 웅장한 사운드 덕분에 왠지 모르게 시시한 장면에서도 조마조마해졌다. 하지만 주로는 빨리 영화 끝나고 강동원이나 봤으면 싶었다. 


강동원은 헉!!


라깡에 의하면 미와 추도 절대적인 것이 아닌 그저 학습당한 것일 뿐이라고 하는데, 강동원은 뭐랄까. 일상에서는 단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는 다른 인류 같았다. 스트레이트 핏의 연청색 진과 루즈핏의 셔츠를 한쪽만 넣입으로 입었는데 셔츠 단추는 2~3개 정도 채우지 않은. 키 크고 마른, 얼굴까지 잘 생긴 남자가 저렇게 입다니!!! 내가 실사로 마주한 마지막 남자가 오늘의 강동원이게 해 주세요!!!!!!!! 연예인 사생활에 아무 관심이 없는 나는 강동원이 결혼을 했는지 이혼을 했는지도 모르는데, 결혼한 적 없으시다고 ㅎ. 저 얼굴 매일 보고 살면 그냥 해븐, 천국 아닌가? 내가 되고 싶은 것은 강동원 매니저!! 완벽한 직원복지다! 


티모시 샬라메 실사에도 큰 감흥이 없었는데, 너무 멀리서 봐서 그럴지도(2019년 BIFF <헨리 5세> 무대인사), 오래전 흠모하던 조시 하트넷 실사(2009년 BIFF, <나는 비와 함께 간다> 무대 인사, 이병헌, 기무라 타쿠야도 실사로 봄)도 그렇게까지 감동은 아니었는데, 왜 팬도 아니었던 강동원에게(이제 더 이상 젊지도 않은) 나는 인간적으로 반해버렸다. 


사실 이 시사회 표는 내가 예매한 게 아니다. 내가 요즘 얼마나 정신없이 사냐면 올해 BIFF도 잊고 있었을 정도. 예매 오픈도 모르고 있었다. 아직 예매도 안(못)함. 그냥 평일 저녁에 남아 있는 거 볼 생각. 당연히 내 취향이 아닌 추석용 영화 관심도 없고, 강동원 팬도 아니기에 무대인사도 몰랐다. 지인이 예매한 건데 못 가게 됐다고, 자리가 좋아서 취소하기 아깝다면서 나더러 갈 생각 있으면 표 준다고 해서 기분 전환 삼아 간 것. 그런데 기분 전환 이상으로 심장 저격 당함. ㅠㅠㅠ


3 달마다 건강검사 당하면서, 이번에 결과 또 안 좋아서 기분별로 였는데, 죽으란 법은 없는지 '그래 살자, 살다 보면 강동원도 가까이에서 보잖아.' 하면서 나를 다독였다. 


강동원을 가까이서 보고 심장 저격을 당했을 정도로 각성되어도, 잠은 어김없이 나를 찾아와서 BIFF 예매도 못하고(티켓 카탈로그 뒤적이다가) 기절하듯 쓰러져 잤다(잔 날의 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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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24 14: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9-25 08: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공쟝쟝 2023-10-02 2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천박사.....(제 느낌엔 슈퍼 그랑죠) 나도 봤어요... 저는 추석 마다 강동원이 나오는 영화를 챙겨보는 편인데.. 언제나 (비주얼이) 옳아요ㅋㅋ!!! 특히 능글맞은 캐릭터에 매우 적합함 (전우치, 검사내전 ㅋㅋ) 그는 늙어도 여전히 출중하더군요 ㅋㅋㅋ!!

먼데이 2023-10-05 08:21   좋아요 1 | URL
전 <전우치>를 CGV 센텀 스타리움관(그 당시 국내 최대 스크린이었을지도, 영화비도 더 비쌌던 듯)에서 봤는데 화면 가득 강동원 얼굴만 클로즈업되면서 강동원이 ˝나는 전우치다˝를 부산 억양으로 해 버려서, 폭소했던 기억이 ㅋㅋㅋ
강동원은 일부러 잘생긴 얼굴이 중요하지 않은 역할을 골라서 연기하는 거 같아요.

강동원 본 이후 아름다운 인류에서 벗어나질 못하여, 이번 biff 김희선 보러 가려고요.

공쟝쟝 2023-10-05 12:06   좋아요 0 | URL
biff너무 부러워 허흥 😭😭😭😭
 

<벤야멘타 하인학교> <필경사 바틀비> <야생 속으로> <과학이 우리를 구원하지 못할 때>를 샀다. 이 4권의 책은 내 나름의 기승전결을 염두에 두고 이번에 구입한 것이다.


<벤야멘타 하인학교>를 읽진 않았지만 이 책이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으로 출판되었을 때 누군가의 서평을 읽고, 읽지 않아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때나 지금이나(아직 읽지는 않았음) 나는 이 책의 주제를 '조용한 퇴사'로 이해하고 있다(어쩌면 아닐지도). 이런 하인학교에서 배우지 않았지만 나는 항상 과락을 면하는 정도만 유지하고자 애쓰면서 지낸다. 더 잘하지 않으려 주의하고 노력한다. 더 잘할 수도 있지만, 더 유능할 수도 있지만 그러지 않는다. 


<필경사 바틀비도> 읽지 않았지만, 읽지 않았더라도 이건 뭐 그냥 다 읽은 거나 다름없지. I would prefer not to 하지 않는 것을 택하겠습니다. 이거면 충분하니까. 하지만 이 말이 의미가 있으려면 소속(사회?)이 필요하다는 걸 알았다. 


그는 변함없이 자기 자리에 머물렀다. 내 사무실의 붙박이였다. 아니, 그는 전보다 더-그것이 가능하기나 하다면-붙박이가 되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그는 사무실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해. 그런데 왜 거기에 계속 있어야 하지? 명백한 사실은 이제 그는 내게, 목걸이로 쓸 수 없을 뿐 아니라 감당하기도 괴로운, 맷돌이 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중략)나는 엿새의 시간을 주고 바틀비에게 무조건 자리를 비우라고 최대한 예를 갖춰 말했다. 그동안 다른 거처를 구할 조치를 취하라고 통고했다. 그가 사무실을 나가기 위한 첫 행동을 취하기만 하면 다른 거처를 구하는 일은 내가 도와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덧붙여 말했다. "그리고 바틀비, 자네가 마침내 여기를 떠날 때 완전히 빈손으로 떠나지 않도록 해주겠네. 이 시간 이후로 엿새일세. 기억하게."

그 기간이 만료되었을 때, 나는 칸막이를 뒤를 살며시 들여다보았다. 그랬더니, 헉! 바틀비가 거기에 있었다.

나는 코트 단추를 끝까지 채우고 몸의 중심을 잡았다. 그리고 천천히 그를 향해 나아가 그의 어깨를 건드리고 말했다. "시간이 다 되었네. 자네는 여기를 떠나야 해. 여기 돈이 있네. 미안하네만 자네는 가야 하네."

"그러지 않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그가 등을 돌린 채로 대답했다.

"그래야 하네."

그는 침묵을 지켰다.

<필경사 바틀비 / 허먼 멜빌>


회사를 언제 휴직하고 언제 그만두나,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다른 일은 없나를 주제로 여동생과 전화통화를 하다가 내가 한 말 "그런데 사회적 내 자리잖아. 내 거란 말이지. 내가 입사할 때 계약한 총 급여와 근무년수가 있잖아. 내가 성범죄, 공금횡령 등의 범죄를 짓지 않는 이상 그들은 나를 해고할 권리가 없어. 오히려 내가 일을 그만둬 주면 더 좋아할 거 같은데. 불복종이 취미인 나 같은 직원이 알아서 사표를 내주면 회사 입장에서는 얼마나 고마울까!!!" 그랬더니 여동생은 "그럼 계속 다녀."라고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나의 이런 바틀비스러운 고집도 <야생 속으로>와 <과학이 우리를 구원하지 못할 때 불교가 할 수 있는 것>을 읽은 후에는 '내 자리, 내 거라는 생각도 부질없다, 인생 공이다 하겠지 ㅋㅋ.' 하게 될지도.


내 안에는 바틀비뿐만 아니라 부처(비슷한 것이라)도 있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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