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데워줄 한 모금의 음악들을 들으면서 이 글을 쓴다. 토요일 오후부터 으슬으슬 몸살 기운이 돌았다. 동네 의원들도 토요 진료를 마감했을 때라 코로나 백신 접종 후 먹고 남은 타이레놀을 먹으면서 자연치유를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출근했던 월요일에 상태가 점점 안 좋아져서 조퇴를 하고 병원에 갔더니 의사는 5일간 안정가료하라고 진단해 주었다. 병명은 감기는 아니고, 직업병의 일종이며 일을 할 수 없는 상태라서 의사가 이번 주 쉬라고 해 줌. 


5년 전에 같은 질병에 걸렸을 때는 출근해서 검정 소(흐구흐구)처럼 일을 했다. 아픈 상태로 일을 한지라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었고 문제가 발생했고, 회사는 "왜 출근했냐? 병가 내고 쉬지."라고 하며 모든 책임을 나에게 전가했다. 그러게 왜 출근했을까? 나에겐 몇 십일의 유급병가(급여 100% 받음)가 있는데! 심지어 이 질병은 회사 때문인데!! 


어제 병원에 갈 때만 해도 그냥 주사 맞고 약 처방이나 받아서 빨리 회복해야지 싶어서 회사에 <가부장제의 창조> 두고 퇴근했다. 나는 책을 읽든 읽지 않든, 공부 안 하는 학생이 영어사전 국어사전 매일 들고 다니면서 그 행위에서 위안을 얻는 것처럼 책을 들고 다니는데, 책 모서리가 닳는 게 아까워서 어제는 두고 퇴근. 이 황금같은 휴가(병가)에 뭘 읽어야 하나?? 집에도 사 두고 읽지 않은 책이 많긴 하지만 나는 병렬독서는 최대한 지양하는 편이라서... 내가 티백이 되어 책 속에 품 담기고 싶은 욕망이 있기에!!! 1권의 책을 깊이 있게 읽었을 때, 10권의 책을 읽은 것과 같은 지력 상승이 생긴다고 여기기도 하고. 


연속 6일(주말포함)의 휴가(?)라면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의 노마드가 연휴 내내 1300쪽 분량의 사회학책을 완독해내는 것처럼 뭔가 굵직한 책을 읽어내야 할 거 같은데... 디즈니 플러스를 결제해서 <무빙>과 <비질란테>등등을 정주행할까 생각도 했지만, 요즘 나는 웹툰 원작의 너무 자극적인 건 보고 싶지가 않아서. <마스크걸>을 보고 난 후 더 이상 이런 건(잔인한 것, 복수) 보지 말자 다짐했다. (<마스크걸>의 염혜란 배우 외모 설정이 넘넘 에에올의 제이미 리 커티스랑 같아서 내내 맘에 걸림. 캐릭터의 욕망도 유사했고)


여성의 '사회' 진출이 사실상 공사 영역에 걸친 이중 노동이라는 현실 때문에 여성들은 과로와 경력 단절을 피해 비혼을 선택하고, 이는 저출산과 동물과의 반려 인생으로 이어졌다. 도대체 언제까지 '성차별 있음'을 증명해야 하는가.

<다시 페미니즘 도전/ 정희진>

서재친구의 100자 평에서 인용. (정희진의 페미니즘 도전과 다시 페미니즘 도전 세트 장바구니에 넣음. 12월 되면 12월 굿즈와 함께 구매해야지!)


지금처럼 사소하게 아플 때 더더욱 내가 1인 가구라는 것에 안도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플 때 혼자 인 게 서럽다고 하는데, 나는 아플 때 오직 내 육신만 신경 쓰면 되는 '혼자'상태가 오히려 편하고 좋다. 특히 내가 아플 때, 내가 돌봐줘야 하는 자녀가 있다고 생각하면...이건 휴가 같은 병가가 아니라 재택 요양하는 병원24시 아닌가!!! 내가 기댈 수 있는 배우자가 있는데 그 배우자가 내 기대만큼 나를 병수발해주지 않는다면 그 상실감은 어떻게 할 것인가?? 애초에 기댈 수 있는 배우자가 없기에 상실감도 없다. 그냥 단독자로서의 아픈 서러움만 느끼면 된다. 아프면 누구나 서럽다. 배우자가 있든 없든, 자녀가 있든 없든, 아픈 인간은 서럽다. 


이제 점심 먹고 약이나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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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에서 오현경은 책으로 배우면 안 되는 것을 책으로 배운다. 화장하는 법, 키스 잘하는 법 같은 걸 책으로 배운다. 2023년의 배움과 지식의 <바벨의 도서관>(보르헤스 전집 2 픽션들. 2007년 6월 21일 구매 ㅋㅋㅋㅋ 미치겠다. 책을 구매한 날짜를 쓰던 시절. 고백하자면 읽지 못했다. 그 당시 너무 어려워서 포기.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 국내 출간되자마자 샀다. 2004년 6월 2일. 책에 써둠. 여태 읽지 않고 있음. 초판 1쇄인 줄 알았는데 초판 2쇄네. 내가 이렇게 허세(결여)가 심각한 인간이다. 이게 다 '결여'때문이다라고 라캉이 말씀하셨다!!)인 유튜브에서 나는 라캉을 배우고 있다. 라캉 책 읽은 거 한 권도 없지만(그래도 <현대사상 입문>에서 라캉 챕터 완독!!, <욕망이론>조금 읽음)아무튼 나는 유튜브로 라캉을 배우는 중이다.


아래는 라캉 귀신에 씐 내가 최근 본 애니와 영화다.

1. 최애의 아이
요아소비를 알게 되고, <조금만 더>라는 노래에 홀딱 반하게 된 나는, <최애의 아이>까지 보게 된다. 노래로만 들었을 때는 <아이돌>은 별로였다. <조금만 더>가 만 배는 더 좋았다. 그리고... 나는 <최애의 아이>2화에서 라캉과 프로이트 대참사를 만나고, 이 애니를 애니로 즐길 수 없게 되어버렸다. ㅅㅂ

오오 라깡 망령이시여. 나에게 왜 이러시나요?

왜 나를 ㅜㅜㅜㅜㅜㅜㅜㅜㅜ 즐기기 못하게 하시나요???????

작가가 라캉 이론과 프로이트 이론을 뼈대로 이야기를 쓴 거라면 당신은 라캉의 회빙환 그 잡채!!!!!!!!! 

루비와 아쿠아마린은 아이(엄마)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아이(엄마)의 자녀로 태어난다. 엄마를 사랑하는(사랑하기에 모유수유를 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엄마의 젖가슴조차 빨 수 없는) 아쿠아마린은 아빠를 찾아서 엄마의 복수를 하기로 결심한다. 비유도 상징도 없는 오이디푸스 컴플렉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미치겠다 진짜. 
그리고 루비!!! 루비는 엄마의 결여를 채우기 위해 엄마처럼 아이돌이 되기로 하고, 첫 무대에서 아이(엄마)를 커버한다!!!!!!! 대상A 따위 없다. 대상 그 자체!!!!!!!!!!! 루비는 여자라서 대상 그 자체(엄마 아이 가능) 아쿠아마린은 남자라서 복수에 집착한다. 흑흑... 이런 정신 상태로 내가 어떻게 <최애의 아이>를 애니로 볼 수 있겠냐고요. 음란마귀 라캉..


진짜 라캉, 가짜 라캉 따로 있나?
해석하기 나름이지 요즘 라캉~~
핍진한 영혼, 잉여 향유~~
나의 결핍 채워주는 요즘 라캉!!
(현숙 <요즘 여자 요즘 남자> 개사. 노래, 불러 주세요!!)


2.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원작, 감독, 감본 : 미야자키 하야오(1941년 생)
씨네21 전문가 평점 : 7.9
나의 평점: 5
나의 세 글자 평: 은퇴작

이 영화는 시작과 동시에 2가지 큰 충격을 주는데 1) 그림이 너무 별로다 2) 주인공이 소년!!!(나는 주인공 소녀가 등장하길 기다렸으나 나오지 않았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에서 주인공은 언제나 소녀였다. 그리고 소년은 거들뿐. 
소년은 거들뿐이며 소녀가 주인공인 작품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모노노케 히메> <천공의 성 라퓨타> <마법소녀 키키><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하울의 움직이는 성> <마루밑 아리에티> <벼랑 위의 포뇨> 그리고 감독은 아니지만 내 최애 지브리 애니인 <귀를 기울이면>(감독은 요절함. 미야자키 하야오가 후계자로 키우고 싶어 했다지...)

그런데 이번 작품에서는 엄마를 잃은(화재로 죽음, 소년의 불타는 주이상스???? 또 음란마귀 라캉 등장 ㅠㅠㅠㅠ흐어흐어 영화를 영화로 볼 수가 없다 )소년이 주인공이고, 엄마를 그리워하다 엄마(대상a) 찾아 삼만리 하는 내용이다. 그 와중에 엄마랑 꼭 닮은 엄마의 여동생(대상a, 아니 왜 처제랑 재혼을??? 문화 충격!!!)이 엄마로 등장한다. 그래서 소년은 이모를 이모로 부르지도 않고 엄마라고 부르지도 않고 현명하게도 이름으로 부른다!!! 하긴 전 세계 어디에도 한국처럼 가부장 기준의 친족 명칭이 세분화되어 있는 국가는 없을 것이다. 일본은 고모, 이모, 숙모, 며느리 등등으로 부르지 않고 그냥 이름+짱 정도로 부른다고 알고 있다. 

기쁘다 라캉 오셨네 
만 작가 맞으라
온 작품이여
다 쓰여져 다 라캉하여라
다 결여하여라 
다 결여 결여하여라
<기쁘다 구주 오셨네 개사>

ps. 라캉이 어머니의 결여 블라블라 땜에 이 애니가 재미가 없었을까??  싶지만, 그것과 별개로 진짜 별로였다. 


3. 코미디 퀸 (제12회 스웨덴 영화제 상영작, 11/1~11/19 서울, 부산, 인천, 광주, 대구 순회중), 검색해 보니 Daum 영화에서 볼 수 있는 거 같다. 강추입니다!!!

세 작품 중 유일하게 어머니의 결여를 극복한 주인공이 나온다!!!!!!!
우울증으로 자살한 어머니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13세 소녀 사샤. 

절대 눈물을 흘리지 않기로 결심하고,
엄마와 닮은 것이 싫어서 삭발을 하고,
엄마가 늘 책을 읽고 우울해하던 것이 싫어서 집안의 책을 버린다.
그리고 슬픔에 빠진 자신과 아버지를 구원하고자 스탠드업 코미디언이 되기로 한다. 

오오 너는 안티고네!!!!
위대한 소녀!!!

ps. 전형적인 북유럽 백인의 금발을 가진 소녀. 긴 머리였을 때는 그저 그랬는데 삭발 후 눈이 부시게 예뻤다. 삭발은 금발이 해야 예쁜 건가... 삭발 욕망(다 결여탓이니라~~~)이 타오른다.


4. 참고 유튜브. 
라까니언 프랙시스 <정신분석 특강 "공백 앞에 선 주체의 환상들" Chat GPT 새로운 신>

이 영상에서 백상현은 라캉을 이렇게 설명한다.
인간은 원초적으로 결여를 가지고 태어난다라고.
뭐야, 내가 극혐 하는 기독교의 원죄설잖아!!!
시발 뭐 어쩌라고
시발 시발 시발 무한반복

라캉, <최애의 아이> 작가 아카사카 아카, 미야자키 아야오의 공통점 : 젠더 남성
코미디 퀸 감독: 젠더 여성 (원작 소설이 있는 작품인데 원작 작가의 젠더가 궁금해지는...)
즉 위의 세 작품 중 유일하게 어머니의 결여를 극복한 주인공은 사샤라는 거. 주인공이 여자(성)인 것도 코미디퀸이 유일하구나...


라캉 말인데, 너무 만능키 같아. 그래서 사기꾼같아.
원죄설이랑 너무 똑같아. 
내가 니체를 싫어하는 이유가 뭔데?
신은 죽었다 라고 하면서 슈퍼맨(초인)을 만들어내는거야.
신은 죽었으니 내가 신(bgm 슈퍼주니어 슈퍼맨. 슈퍼주니어는 맨 자만 빠진 이름하여 힘센돌이 ㅋㅋㅋㅋㅋ)이 되겠다고 하잖아. 그게 뭔 소리냐고?? 타인의 욕망을 살지 않고 나의 욕망을 살겠다??


그래서 난 불교가 좋다.
결여? 아 됐고요.
귀찮아서 결여 채우지 않을 거고요
고집멸도, 공이라고요 공. 
결여를 채우려는 욕망? 헛되고요
윤회의 사슬을 끊고 무로 돌아갈랍니다.

여기서 한 가지 아쉬운 것 싯다르타 남...자일까 남..성일까.. 맨 자만 빼자..힘쎈..까지만 하자. 

5. 요즘여자 요즘남자 작사:김상범
가사 전부가 라캉의 음란마귀다!!!!!!!!!!!

여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모든 것을 참고 살아가지만
그게 여자의 일생이라면 무엇으로 보상받나
당신이 내게 무심코 던져버린 그 한마디에
웃고 우는 여자 웃고 우는 여자
요즘 여자랍니다~~~
(당신: 대상a)


6. 현대사상 입문 / 지바 마사야 지음
(현숙 요즘여자 요즘남자 개사)

옛날 철학 현대 철학 따로 있나
해석하기 나름이지 현대 철학
행복한 인생 변함없이
지켜주는 그런 철학 요즘 철학

욕망 없는 철학이 어디 있나
해체 없는 철학이 어디 있나

당신의 해석 이해 하는 그런 철학
바로 내가 요즘 라캉

결여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모든 것을 욕망하며 살아가지만
그게 인간의 일생이라면 무엇으로 보상받나
라캉이 내게 무심코 던져버린 그 한마디에(결여!결여! 랩 삽입)
웃고 우는 인간 웃고 우는 인간
요즘 라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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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3-11-12 1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진짜 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일단 음란 마귀 라캉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라캉 치트키 인생에 도입하신 분 응용 문제 계속 너무 쉽게 풀면 안돼요. 프로이트가 무의식 발견하고 모든 걸 성욕으로 다뤄서 (범성욕설로 여전히 변퇴 취급 받고 있다.) ㅋㅋㅋㅋ 물론 그런 프로이트의 제자를 자처한 게 라캉이지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얻게된 그 라캉 렌즈 축하드립니다. 당분간은 더 잼난 영화리뷰로 ㅋㅋㅋ

먼데이 2023-11-14 16:40   좋아요 1 | URL
저도 이 일기 쓰면서 계속 웃었어요.
괜히 현숙 노래에 꽂혀가지고 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3-11-12 14: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캉 안 본 저도 딱 저 2화까지만 보고 스톱입니다 ㅋㅋ

먼데이 2023-11-14 16:41   좋아요 1 | URL
저는 넷플릭스에 있는 건 다 보긴 했어요.
라캉을 모르고 보면 재미있을 거 같은데 2화에서 스톱했군요.
 

마지막 일기가 10월 21일이었다니... 3주 전.

3주 동안 본 영화 6편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달리랜드> <코미디 퀸> <편견과 오만, 스웨덴 퀴어 영화사><너와 나> <두 사람을 위한 식탁>


넷플릭스에서 본 것 <최애의 아이> <프록시마 프로젝트>


읽기 시작한 책 <가부장제의 창조>


구매한 책 <영장류, 사이보그 그리고 여자><쿼드러플 오브젝트><2666>(볼라뇨 20주기 특별합본판)


구매한 옷 1)아디다스 운동복 세트 5벌. 전부 온라인에서. 특히 올가을 신상이었던 셋업 한 벌은 거의 다 품절이어서 겨우 열혈 검색해서 구함. 이거 검색하고 구입하는데 토요일 하루를 다 씀.  2)영화 보러 갈 때마다 백화점에 잠시 들러서 무료 음료를 받는데, 음료 받고 바로 극장 가면 딱 좋다. 주로 나는 자스민2, 캐모마일1, (가끔 커피를 받기도 함) 영화 시간이 남았던 어느 날 벤시몽에서 너무 예쁜 연분홍 비니를 발견하고 구매하게 된다. 이후 백화점 갈 때마다 다른 컬러를 두 번 더 구입. 총 3장의 벤시몽 비니를 가지게 되었다. 나의 아디다스 운동복 룩이랑 찰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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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이라는 시간의 틀 속에서 나는 계속 살고 있다. 내가 일주일이라는 시간의 틀 속에서 살고 있는 이유는 세상이 일주일을 기준으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주 1회 욕실 청소, 주 1회 반신욕, 주 1회 세탁기 돌리기, 주 1회 장보기, 주 1회 마사지 등등을 하고 나면 매주 책 한 권 읽기, 매주 영화 두 편 보기 같은 걸 할 시간 없다는 것을 깨닫고 울곤 한다. 


오랜만에 조퇴하고 biff 영화를 보러 갔다. 총 3일을 조퇴하고 영화 또는 무대인사를 보러 갔는데 그 3일은 눈 뜨자마자 오후에 있을 영화 혹은 배우의 무대인사에 대한 기대로 설레고 하루종일 즐거웠다. 그래서 깨달았다. 내가 왜 20대의 한 시절에 그토록 행복했었는지를. 그리고 지금은 왜 행복하지 않은지를. 그때 나는 거의 매일을 퇴근하고 cgv 또는 시네마테크로 달려가서 영화 2편을 연속으로 보고 밤 11시 전후로 귀가하는 생활을 했었던 것이다. 집도 아니고 회사도 아닌 다른 장소에 가서 무언가 즐거움을 얻는 게 큰 행복이었나보다.


저녁 8시에 야외 오픈 시네마를 보고 밤늦게 집에 와서 기절하듯 잠들었다. 다음날 여느 출근하는 날처럼 5시에 벌떡 일어나서 모닝홈트(절대 거를 수 없다!)를 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왜냐 난 오늘도 조퇴하고 biff 영화를 보러 갈 것이기 때문!! 어제 영화는 4시 40분이었는데, 오늘 영화는 1시 30분. 3시간 빠른 설렘으로 인해 나의 신경은 온통 극장에 가 있었고, 업무는 마이동풍 그 자체였다. 이날 메인 영화는 <지구 종말이 오더라도 너무 큰 기대는 말라>였고 같은 상영관에서 이 영화 앞에 상영하는 영화인 <본인 출연, 제리>라는 영화는 꼽사리로 예매한 것인데 이 영화가 올해 biff에서 가장 좋았다. 영화적으로 훌륭했던 건 아니고, 개인적으로 많이 와닿았다. 


<본인 출연, 제리>는 제목 그대로다. 제리라는 70대 노인(아메리칸드림을 꿈꿨던 대만계 미국 이민자)이 제리 자신으로 영화에 출연하여 자신이 당한 보이스피싱 사연을 연기한다. 그는 이미자로 미국에서 살면서 열심히 일하여 번 돈 약 10억(아마도 현재 물가를 생각하면 그 이상일 듯)을 보이스 피싱으로 다 날린다. 제리 왈 "일해서 돈을 모으기만 했어요. 돈을 써 본 적이 없어요. 아들들 결혼할 때 돈을 보태주려고 했는데, 이젠 그것도 못하게 됐어요. 쓰지 않는 돈은 의미가 없어요. 통장에 적힌 숫자일 뿐이죠."라고 말한다. 다음 영화 <지구 종말이 오더라도 너무 큰 기대를 말라>는 제목이 맘에 들어서 예매했다. 러닝타임 163분. 결론부터 말하면 난 이 영화를 끝까지 보지 않았다. 왜냐하면 영화가 끝나면 7시 30분일 텐데 백화점은 8시 마감이고, 샤넬 매장은 7시 반이면 마감할 것이기 때문에. 


사실 전날 영화가 4시 30분이어서 시간이 좀 있었다. 요즘 나는 샤넬 핑크색 가방이 갖고 싶다는 욕망에 부글거리고 있었고 마침 요즘 샤넬은 대기 시간 0분. 그래서 영화 시간도 남은 김에 샤넬에 가서 핑크색 가방을 이것저것 메보고 결제 직전가지 갔다가 이성의 끈을 부여잡고 멈췄다. 매장 직원은 늘 그렇듯이 "새 제품 재고 1개뿐이다."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다음 날 <본인 출연, 제리>는 나에게 "쓰지 않는 돈은 의미가 없어요. 통장에 적힌 숫자일 뿐이죠."라고 했다(정확히 이렇게 말했는지는 가물가물하다. 저건 사실 늘 내가 소비할 때 하는 말이다. ㅋㅋㅋㅋㅋ 통장에 적힌 숫자는 숫자일 뿐이다라고) 마침 <지구 종말이 오더라도 너무 큰 기대를 말라>는 서사가 있는 영화가 아니었고, 사례 변주를 끝없이 하길래 이것은 영화 그만 보고 샤넬 가라는 계시라고 내 맘대로 해석하고, 생애 처음으로 극장에서 자의로 영화를 끝까지 보지 않고 나왔다. 


대기시간 0분의 샤넬매장은 쾌적했고, 나는 또 이거 저거 메보고 어제 사고 싶었던 가방이 아닌 다른 핑크 가방을 샀다. 나의 쇼핑 메이트 남동생에게만 자랑을 했고, 남동생은 샤넬을 핑크로 사다니 제정신이 아니다고 비평했다. 나는 "샤넬은 핑크지!"라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아끼고 아껴서 통장에 숫자로 간직하다가 노인 돼서 보이스피싱 당할 바에는 샤넬 핑크색 가방에 돈 쓰는 게 현명하다!"라고 덧붙여 주장했다.


그리고 매일 출근할 때 샤넬 핑크를 메고 있다. 그래봤자 내가 샤넬 가방을 메는 시간은 5분도 되지 않는다. 가방에든 것은 폰, 차키, 립밤, 카드지갑 전부다(보통의 남자들이 바지 주머니에 넣고 다는 소지품 ㅎㅎ). 가방의 1차 기능은 주얼리, 2차 기능은 주머니. 


그렇게 매일 5분씩 주얼리 기능을 하는 주머니를 들고 다녔다. 일상이 조금은 핑크빛으로 물들었다. 하지만 조퇴를 하고 영화를 보러 가는 것만큼 즐겁진 않았다. 그래서 즐거움과 설렘을 느끼고자 어제(금요일) 조퇴를 하고 영화에 전당에 가서 <어파이어>라는 영화를 봤다. 이 영화는 베를린 영화제 은곰상(심사위원 대상, 독일 영화다) 씨네21 전문가 평점 8.43의 어마무시한 작품이다. 이런 타이틀이 아니더라도 이 영화는 매우 훌륭하다. 특히 글쓰기에 대한 욕망이 드글드글하는 사람들을 뼈를 아주 가루로 만들어 주는데, 그게 너무 좋다. 약간 영화 <베르히만 아일랜드> 생각도 남. 


드라마<더글로리>같은 걸 쇼파에 드러누워서 넷플릭스로 보면 그 순간은 너무너무 재미있지만, 그것이 끝났을 때 내 마음은 회색의 재가 되어 있다. 반대로 시네마테크에서 상영하는 영화들을 보고 나면 마음이 파스텔톤이 된달까, 충만해진달까, 가득 채워진 느낌이랄까. 내 마음을 채워줄 훌륭한 영화를 만날 거라는 기대가 내 하루를 설렘으로 가득차게 한다. 회사 주차장을 나와서 영화의 전당으로 운전하던 그 길이 어찌나 설레던지. 심지어 애인을 만나러 가던 때보다 더더더 설렜다. 그리고 이 점에 나는 매우 큰 충격을 받았다. 내가 사람을 그렇게까지 안 좋아하나 싶어서. 


이번 biff에서 처음 본 영화는 <우먼 오브>라는 영화다. 주인공 아니엘라는 남자의 몸에 갇힌 채 안제이로 살면서 결혼하여 두 아이의 아빠로 살아간다. 아니엘라는 안제이가 주는 모든 정상성을 포기하고 사회의 탈구축(미셸 푸코)을 시도한다. 그리하여 직장도 잃고, 가정도 잃게 된다. 대신 자기 자신 아니엘라로 살 수 있게 된다. 두 번째 본 영화는 <애니멀 킹덤> 이 영화도 마찬가지로 사회의 탈구축(<현대사상입문>의 미셸 푸코 사회의 탈구축을 알게 되었고)이 주제다. 심지어 이 영화는 비유도 상징도 없다. 인간이 그냥 동물이 되어 버림!!! 사회(문명)는 동물이 되어버린 인간을 감금하려고 하는데, 동물이 되어버린 인간들은 이를 거부하고 탈출하여 동물로 살고자 한다!!! 세 번째로 본 영화는 <본인 출연, 제리> 마지막으로 본 영화는 <지구 종말이 오더라도 너무 큰 기대를 말라>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과로에 시달리면서 미쳐가고 있다. 그 스트레스를 부캐(얼굴 변조?) 동영상을 찍어서 해소한다. 욕과 여혐이 난무하는 동영상이다. 욕과 여혐은 이 여성 노동자가 주로 도로에서 남자들에게 당하는 욕설과 여혐의 패러디다. 영화 속 루마니아는 선팅이 연했다. 한국처럼 선팅을 찐하게 해서 운전자의 성별을 알아볼 수 없게 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했던 영화 ㅋㅋㅋ 


이번 28회 biff에서 본 영화들을 6글자로 요약하면 '사회의 탈구축'!!!


<현대사상입문>이라는 세상 친절한 책의 3장 푸코: 사회의 탈구축에서 내 마음은 뼈가 가루가 되도록 맞아서 매우 몹시 심각하게 방황 중이다. '자기를 감시하는 마음의 탄생', '자발적으로 얌전해짐', '생명정치(이것은 영화 <애니멀 킹덤> 그 자체)' 등등으로 인해 읽기 일시정지 상태. 마음을 추스려야 한다!!


사회는 정규직, 연애(와 결혼), 샤넬을 지나치게 미화시켰다. 자발적으로 얌전한(안전한) 삶을 선택한 나의 얌전한 반항은 23fw샤넬핑크를 구입하는 것 정도. 핑크의 톤도 매 시즌 다르니까. 매시즌 똑같은 블랙클래식을 내가 왜 사?하는 소심한 반항. 불경기에 금리도 높은데 그런 게 다 무슨 상관인가! 그래서 샤넬 대기 0분. 아껴봤자 노인되서 보이스피싱으로 다 날릴 숫자일 텐데!! (퇴근 아니고) 조퇴하고 시네마테크용 영화 보러 가는 게 가장 큰 설렘이고 즐거움인 정규직의 삶.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그동안 평일에는 체력을 아껴야 하니까, 소파에 드러누워서 65인치 tv로 넷플릭스 보는 것도 충분히 즐거우니까 하면서 지냈다. 체면에 걸린 듯 연애도 했지만, 내가 깨달은 것은 이성애에서는 항상 여자가 손해라는 것. 회사는 익숙해져서 다닐만한 것일 뿐이고. 돈을 버는 이유를 몰라서, 돈을 체감하고 싶어서 가끔 디올에 들러서 뭔가를 샀고(샤넬은 대기가 길어서 잘 안 감). 이것은 그야말로 자발적으로 얌전한 삶. 그래서였을까 나는 작년에 biff 오픈 시네마에서 본 <미래의 범죄들>이라는 영화를 1년째 곱씹고 있고, 이 영화를 봤던 공간과 시간이 올해 영화제 전까지의 시간들에서 가장 설레고 행복했던 순간이었다. (그래서 올해도 부족한 체력임에도 오픈 시네마를 예매했다. 결과는 성공적!) 이 영화의 주인공 3총사 레아 세이두, 크리스틴 스튜어드, 비고 모텐스(영화 <반지의 제왕>의 아라곤. 개인적으론 내가 상상했던 아라곤보다 늙고 못생겨서 엄청난 실망을 안겨준 배우, 내 상상 속 아라곤 돌려줘!!)가 굉장하기 때문에 당연히 개봉할 줄 알았는데, 안 함.


일주일이라는 시간의 틀 속에 갇혀서 주 5일 출퇴근 반복, 주말에는 밀린 집안일을 하고 나면 읽고(영화 감상 포함), 쓰는 방식으로 존재할 시간이 거의 없다. 잠도 충분히 자야하고, 운동도 매일 해야 한다. 이건 생존의 조건이라서 아니할 수 없다. 성실히 출퇴근을 한 댓가로 번 돈의 의미를 찾고자 부지런히 소비를 하는 것이 더 이상 나에게 설렘이나 즐거움이 아니라는 것을 이번에 완벽히 깨달았다. 


이제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10월 알라딘 굿즈 고양이 쿠션이 갖고 싶어서 <멜랑콜리아>(굿즈 받으려고 산 노벨문학상 수상작), <가부장제의 창조>(이제서야 알게 된 훌륭한 책! 역시 이웃을 잘 만나야 함), <한나 아렌트의 생각>은 언제 읽나... 미셸 푸코, 한나 아렌트도 읽고 싶은데. 이것들을 충분히 읽으려면 출퇴근 하는 시간을 읽고 쓰는 시간으로 바꾸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 도나 해러웨이!!(역시 이웃을 잘 만나야 함!)도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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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24 16: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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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28 09: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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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28 19: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사람은 자기 자신에 관해서 얘기해서는 안됩니다. 순전한 이기주의로 보더라도 안됩니다. 왜냐하면 마음을 털어버리고 나면 우리는 보다 가난하고 보다 고독하게 있게 되는 까닭입니다. 사람이 속을 털면 털수록 그 사람과 가까와진다고 믿는 것은 환상입니다. 사람과 사람이 가까와지는데는 침묵 속의 공감이라는 방법 밖에는 없습니다.

<생의 한가운데 / 루이제 린저>


비록 인간관계에서 연결이 필요하다고 해도 거기에는 일정한 거리가, 더 강하게 말하면 무관계성이 없으면 우리는 서로의 자율성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즉, 무관계성이야말로 존재의 자율성을 가능하게 하는 것입니다. 관여할 필요가 있어도 너무 관여하지 않는다는 안배가 요구되는 것입니다.

버림받고 불행한 일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회 비판적 인식에서 보면 좀 더 관여해야 한다는 말은 맞는 말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너무 관여만 하게 되면 그로 인해 감시나 지배로 변질될 위험성이 있고, 그것에 대한 균형으로서 너무 관여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할 필요도 있다는 것이 제가 들뢰즈에게서 끌어내고 있는 중요한 주제입니다. 

다만 이 "너무 관여하지 않는다"라는 것을 "관여하지 않아도 좋다"라고 받아들여 버리면, 사회가 냉담해져 버립니다. 그건 제가 하고 싶은 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더 따뜻한 사회를 지향하기 때문에, "지난치게 ~하지 않는다"가 필요하다는 것이 제가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현대사상입문 / 지바 마사야>


일찍이 루이제 린저 언니는 니나 붓슈만의 입을 통하여 저런 엄청난 말을 하셨다. 그때 나는 막 대학에 입학한 신입생이었는데, 저 문장이 진짜 너무너무 멋있다고 생각했다. 저 문장 때문은 아니었겠지만, (이렇게 일기는 쓰고 있지만) 나는 사람(들)에게 나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시시콜콜하게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어떤 친구는 "너는 비밀이 너무 많아."라고 했고 어떤 친구는 자신에 대해서 시시콜콜 묻지 않아서 좋다고 했다. 


나는 내 앞에 있는 당신이, 내 주변에 있는 타인들의 이력과  MBTI가 전혀 궁금하지 않다. 더 정확히는 그들의 개인사와 개성에 대한 정보가 나의 두뇌 용량을 차지하는 것이 싫다. 두뇌 용량이 무한한 게 아니니까. 또한 니가 어떤 사람이든 상관없이 나는 내 방식대로 너를 대할 거니까. 


스무 살 이후부터 나는 타인을 인상파 화가가 풍경과 사물을 파악한 방식으로 파악하고 있다. 오직 지금 현재 내 눈에 보이는 모습과 언행만으로 그 사람을 파악한다. 특히 내가 확인할 수 없는 어떤 화려한 이력을 늘어놓는 인간은 신뢰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여행을 굉장히 많이 다녔다고 자신을 소개하는 사람이라고 하자. 그 여행의 결과물로서의 언행이 꼰대라면 나는 내가 확인할 수 없는 여행 이력을 늘어놓은 인간의 여행 이력을 허풍이라고 여긴다. (아니면 슬쩍 공항이름 같은 걸 물어보겠지 ㅋㅋㅋ)


당신이 그렇게 잘난 사람이라면 왜 나랑 여기서 마주하고 있는가. 애초에 vip 주차장은 진입로부터 다른데? 엘리베이터마저도 vip용은 따로 있는데. 그러니까 굳이 니 이력 따위 늘어놓지 마라고. 지금 나와 마주하고 있는 게 인상파적 니 이력이다, 인마.


오은영의 인기 탓일까, 또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살면서 받아온 상처의 내용을 줄줄이 늘어놓으면서 타인이 자신을 이해해 주고 배려해 주길 바란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 정말 피곤하고 싫다. 나는 아이돌의 서사도 피곤해서 안 본다. 연예인의 사생활도 피곤해서 안 본다. 그런데 내가 장삼이사일 뿐인 너의 서사를 들어주고 공감해 주고 이해해 주고 배려해줘야 하나? 진짜 미쳤나? 


정말 궁금한 점은 타인의 공감, 이해, 배려가 그렇게 중요한 가 하는 것. 나는 타인의 무관심이 제일 편하고 좋은데. 나한테 인사하지 마, 너의 인사받아주는 거에 에너지 낭비하고 싶지 않아. 물론 나도 인간이기에 공감, 이해, 배려가 필요하다. 단 그것은 어디까지나 내가 나의 울타리 안에 들여놓은 타인 한정이다. 그것은 매우 소수이며 대체로 5명을 넘지 않는다. 내 울타리 밖에 있는 타인은 그들이 나를 칭찬을 하든 험담을 하든 나로선 아무 상관이 없는 다른 우주에서 벌어지는 일 일 뿐. 


드라마 <마스크걸>의 마지막 장면의 대사는 "제 꿈은 모두에게 사랑받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였다. 나는 살면서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싶다(잘 보이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아마도 내가 나를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남들이 나를 사랑하지 않을 거라는(미워할 거라는) 생각 자체를 하지 못했던 게 아닐까. 나도 모미처럼 엄마에게 예쁘다는 말을 단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다. 오히려 못생겼다는 말만 많이 들었다. 심지어 내 엄마는 내 이마가 못생겼다고 하면서 항상 앞머리를 잘라줬다. 나는 어떤 사람이 되었냐하면, 모미와 정반대로 엄마(그리고 모든 타인)의 심미안과 안목을 무시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타인이 나에 대해서 어떤 품평을 늘어놓아도 다 개 짖는 소리 취급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그 누구에게도 잘 보이고 싶지 않다. 나 자신에게만 잘 보이고 싶다. 타인의 기분을 맞추는 건 너무나 힘들고 어려운 일. 그래서 타인의 기분을 맞춰주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공평하게 타인이 내 기분을 맞추어주길 바라지도 않는다. 그래서 나는 sns도 하지 않고(못하고), 그 어떤 온라인 커뮤니티 활동도 하지 않는다. 그 무수한 타인들 속에서 댓글을 주고 받고, 커뮤니티에 맞는 페르소나를 만들어서 활동하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피곤하다. 유일하게 가능한 것은 블로그(서재) 정도. 블로그는 화자가 1명이라서 그나마 견딜 수 있는데, 불특정 다수의 화자가 많은 커뮤니티는 불가능. 


나는 사람들이 타인에게 인정받고(사랑받고) 싶어서 그토록 비굴하고 처절하게(심지어는 자살을 할 정도까지) 사는지 몰랐다. 미움받을 용기가 아니라, 나는 누가 나를 미워하는지 좋아하는지 관심도 없어서 용기를 낼 것도 없는데. "저리 가, 너한테 관심 없어." 사랑받기 불가능한 존재라는 내면의 깊은 자각에서 나온 방어기제라고 누군가 나를 분석할지라도. 나는 그 분석조차 관심없다(그건 니 생각이고).


최근에 나는 내 언행에 대한 타인의 반응 자체를 생각하지 않고 거침없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말하고 행동한다는 것을 자각하게 되었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남에게 좋은 이미지로 남고 싶기 때문에 하기 싫은 것도 수용하고, 남 눈치 보고 자신의 언행을 제어하는 데, 나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걸 알았다. 또한 나는 타인에 대해서, 타인의 언행에 대해서 아무 가치판단도 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 사람이 어떤 언행을 하든 그게 나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 그 사실 자체는 인식하지만 그 점에 대해서 판단하거나 기억해 두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하기도 바빠서 타인의 언행에 대해서 곱씹고 잘했니 잘못했니할 겨를도 없다.


"니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대해 관심 없다. 다만 내 영역에 허락 없이 침범해서 나에게 이래라저래라, 이거 해달라 저거 해달라, 이해해 달라 배려해 달라, 그런 거 하지 마." 


<현대사상입문>에서 저 구절을 읽으면서 무릎을 쳤다. '아하, 그랬구나. 내가 바랐던 건 바로 무관계성에서만 가질 수 있는 자율성(자유)였구나!' 


내가 일기를 쓰는 이유는 내가 나 자신에게 이해받기 위함, 배려받기 위함이지 이 일기를 읽는 타자에게 이해(공감, 배려)받기 위함이 아니다. 라캉 이론은 1% 정도 알지만, 이쯤에서 내가 내린 결론은 내가 믿어야 할 대타자는 나 자신 말고는 없다는 것. 


p.s1. 일기를 쓰는 행위는 옷장을 정리하는 것과 같다. 옷장을 정리한다고 해서 없는 옷이 더 생겨나는 것은 아니지만 정리하는 과정에서 내가 가지고 있는 옷이 정확이 무엇인지 다시 확인할 수 것처럼 일기를 쓴다고 해서 없던 생각을 더 하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나 자신에 대해 가진 생각을 더 명확히 할 수 있으므로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된다. 적어도 우울증 예방에 큰 도움이 된다. (백상현에 의하면 라깡이 그랬다던데. 자신을 표현할 언어가 부족해서 우울증에 걸리는 거라고)


p.s2. 이런 내 생각을 다른 사람과 대화로 풀어내는 것보다 혼자 일기를 쓰는 게 만 배는 더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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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09 19:5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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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10 08: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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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10 18: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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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12 08: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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