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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는 <에티카>에서 사랑과 증오, 희망과 공포 등 정서의 기원과 본성을 정리했다. 그중 혐오와 가장 가까운 것으로 경멸을 들 수 있다. 그에 따르면 경멸은 "인간이 다른 사물에 관하여 정당한 것 이하로 느끼는 데서 오는 기쁨"이다. 경멸이 기쁨이라니, 무슨 말일까? 짐작건대 누군가를 폄훼하는 만큼 내가 그보다는 나은 사람이 된 듯한 기분이 들면서 만족감을 얻는다는 뜻이겠다. 

경멸의 정의를 반대로 바꿔보자. '인간이 자신을 정당한 것 이하로 느끼는 데서 생기는 슬픔'이라고 할 때, 떠오르는 정서는 우울이다. 스피노자는 우울을 '정신과 신체에 동시에 관계되는 슬픔의 정서'로 정의했다. 코나투스의 감소는 슬픔을 유발한다. 감소세가 지속되면 자신을 정당한 것 이하로 느끼면서 우울감이 생성된다. 그렇다면 경멸은 엄습하는 우울감에 저항하는 방어기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중략)

혐오는 경멸의 감정이 보다 폭력적으로 실천 발현된 것이라고 봐야 한다. 더 정학히 말하면 혐오는 만성적 불안과 우울을 추론하는 과정에서 그 원인을 특정의 의인화된 집단에서 찾는 스토리텔링의 산물이다.

<급진의 20대 / 김내훈>



길에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는 사람을 이젠 딱히 인간적(도덕적?)으로 비난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냥 원래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애초에 길에 쓰레기를 버리는 행위가 나쁘다는 것도 자신이 길에 쓰레기를 버렸다는 것도 자각 못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이런 나의 태도도 경멸일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다. 경멸이라기보단 천성이 오만한 탓이겠지(라고 자화자찬한다).


정치에 딱히 관심이 없는 내가 어쩌다 내 손에 들려진 <급진의 20대>라는 책을 읽었다. 작가는 학문적으로 조목조목 따져가면서 20대(90년대생)가 왜 그런지 서술해나갔지만, 나로서는 '20대니까 당연한 거 아냐?' 하는 생각을 했을 뿐이다. 측은지심이라는 성품을 가진 20대가 몇이나 될까... 나 역시 20대 때에는 측은지심은 대부분의 경우 느낄 수가 없었다. 그저 무능한 사람들을 욕하기만 했다. 하지만 지금은 궁여지책으로 세상만사를 측은지심의 관점에서 보려고 한다. 측은지심이 없다면 나 역시 라스콜리니코프(죄와 벌 주인공)가 되고도 남았을지도... 그 노력의 일환으로 무려 나의 소중한 시간, 체력, 시력을 투자해 가면서 이 책을 읽기까지 한 것이다. 과연 저것이 고등교육을 받은 인간일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드는 20대들을 이해해 보기 위해서 읽었다. 


나는 무능한 인간들에게 측은지심을 느낀다. 누군들 무능한 인간으로 태어나고 싶어 태어났겠는가? 태어나보니 잘난 인간들 천지고, 그 덕에 쌓이는 경험치라고는 열등감밖에 없고... 자신보다 더 무능하고 열등한 존재를 찾아서 비교우위를 점하고 싶고, 뭐 그렇고 그런 한심하고 무능한 인간들이 행복해지고 싶어서 행하는 저열한 방식을 택해서 살아가는 인간들을 비난하지 않는다. 다만 측은지심을 느낄 뿐이다. 어쩌겠는가, 그렇게 못난 존재로 태어나버린 것을...


나는 늘 생각한다. 저런 무능한 인간들과 서로 죽이지 않고 협력해서 이 세상을 살아내야만 하는 게 내 운명이자 비극이고, 그래서 여기(이승)가 지옥이라고.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스피노자가 말한 경멸의 한 종류일까? 그렇다 하더라도 어쩔 수 없지. 나 역시 무능한 인간일 테고, 이렇게라도 우울과 불안을 피하고 싶은, 그렇지만 품위는 유지하고 싶어서 측은지심에 매달리는 나약한 존재일 뿐일지도 모르니...




p.s. 태어나지 않는 것 말고는 해결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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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은 기분이 좋았기 때문에 이랑 노래를 들을 기회가 없었다.

이제 그 기분 좋은 나날들은 사라지고 다시 이랑 노래의 절기가 왔다.
기분이 거지 같은 날이 나를 찾아와도 이젠 두렵지 않다!
나에겐 이랑의 노래와 김사과의 책과 영화 시카리오가 있으니.
이 3종이면 살인도 면할 수 있다.

특히 이랑의 <환란의 시대> 노래 가사 중
우리가 먼저 죽게 되면
일도 안 해도 되고
돈도 없어도 되고
울지 않아도 되고
헤어지지 않아도 되고
만나지 않아도 되고
(중략)
한꺼번에 싹 다 가버리는 
멸망일 테니까.

이 부분에서 느껴지는 어떤 해방감과 카타르시스가 있다.
진짜 싹 다 한 방에 없어져버렸으면 싶다.
나 포함 전부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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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적당한 인재나 귀인이 나타나는 <오션스8>같은 영화에서는 더 이상 재미를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이런 것이 하이스트 무비의 특징이라는 것은 알지만 왠지 너무 쉽게 술술 해결되는 거 같아서 시시하다. 


오래 사용한 전자기기가 고장이 나면 수리해서 계속 사용해야 할지 그냥 버리고 새것을 사야 할지 늘 애매하다. 특히 수리비가 애매하게 클 때. 


지친다. 살기 위해서 매년 격년으로 해야하는 여러 가지 유사 민원 같은 일들이 나를 지치게 한다. 예를 들면 자동차 보험 갱신 같은 것들. 


다들 이 세상에 어떻게 적응하고 살아가는 걸까? 3년째 마스크를 쓰고 지내지만 아직도 마스크가 낯설고 불편하다.


재미있는 추리 소설이 절실하다. 추리물을 몇 권 연속으로 우적우적 씹어대고 있지만 허기는 가시지 않는다. 더더더 재미있고 강렬한 이야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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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8월이다. 2022년도 반환점을 돌았다. 코로나는 여전하다. 나도 여전하다.


살아 있고, 살아가고 있다. 매일 환경 같은 걸 심각하게 훼손하면서. 오직 나란 인간의 편의와 안위만을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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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은지심말고는 그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다. 내가 김연아도 아닌데, "어때 예림아, 쉽지?" 이 말 말고는 할 말도 없다. 내가 슬램덩크의 서태웅도 아닌데 '으 바보가 전염되면 안되지.' 하는 기분이 너무 많이 든다. 그들이 하고 있는 걸  보고 듣고 있으면 내 지능이 낮아지는 기분이다. 저걸 왜 고민하고, 저걸 왜 의논하는 거지? 


내가 아무리 정상으로 태어나도 주변에 바보들 뿐이면 인생은 지옥이다. 정상으로 태어난 사람은 평생을 바보들 뒤치다꺼리하는 게 운명이다. 내가 저 바보를 돕지 않으면 저 바보가 나를 죽일 테니까. 


유치원생이 나에게 무거운 배가 물에 뜨는 이유가 뭔지 묻는다면, 나는 설명해주려고 하기보다는 크면 배운다라고 말해줄 것이다. 어차피 설명해줘도 이해를 못 할 것이다. 어쩌면 나이가 들어 부력에 대해서 배워도, 실험을 해도, 그 원리를 이해 못 할 것이다. 같은 이유로 나는 너에게 해 줄 조언이 없다.


귀찮음을 극복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귀찮은 그 과정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을 하는 것이다. 편함에는 끝이 없지만 귀찮음에는 끝이 있다. 오늘의 바위를 굴려 올린 시지프는 빨리 내일이 와서 내일의 바위를 굴리기를 원한다. 이런 인생의 비책을 니가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을까?


가수 오지은을 좋아하지만 오지은의 마감 미루기, 청소 안 하기, 무기력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몹시 실망스럽고 점점 공감을 하기 힘들다. 수신제가 치국평천하라고 했는데 왜 40살이 넘은 사람들이 아직도 수신조차도 못해서 징징댄단 말인가? 젊은 날의 수신 못함은 어리니까, 아직 청춘이니까 하고 이해해 줄 수 있지만 솔직히 이제 불혹 넣은 사람들이 수신하나 못해서 징징대는 거 보면 


아, 이것이 내가 받은 형벌이구나.

수신조차도 못하는 인류와 함께 살아내야 하는 게 내가 받는 형벌이구나 하는 생각이 너무 많이 든다.


동생은 스타일러를 샀다. 나는 스타일러는 불필요한 가전으로 가전회사의 양아치 짓이라고 생각한다. 동생은 내게 이런 말을 남겼다. "언니 같은 인간 스타일러는 우리처럼 더러운 사람의 마음을 이해 못 해. 대부분의 사람은 언니처럼 옷을 새것처럼 깨끗하게 입을 수가 없다고." 나는 드라이클리닝조차도 신뢰하지 않기에 옷이란 최대한 깨끗이 입고 더러워지면 버린다 주의다. 대충 더럽게 있고 드라이클리닝을 자주 하는 건 섬유에도 환경에도 좋지 않으며 무엇보다 옷에게 좋지 않다. 


일반적인 사람들의 수준이 내 예상보다 더 훨씬 낫다는 걸 날이 가면 갈수록 알게 된다. 나이 먹을 만큼 먹은 인간들이 아직도 왜 저러나 싶다. 


저 바보들이 나를 시기 질투해서 해하면 안 되니까 측은지심을 가지고 오늘도 나는 바보들을 돕는다.

겸손으로 결계를 만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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