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영에게는 용산구나 성동구의 아파트로 이사를 가겠다는 더욱 구체적인 목표가 생겼다. 한영은 잠까지 줄여가며 임장을 다녔다. 함께 쓰는 유튜브 계정으로 부동산과 셀프 인테리어 관련 채널들을 구독해놓았다. 지금의 집을 떠나 새집을 사고, 그곳을 꾸며 완전히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을 거라는 기대. 그 실낱같은 빛줄기가 그를 숨쉬게 하는 것 같았다.
<믿음에 대하여 / 박상영>
이번 주말에는 넷플릭스에서 영화 2편을 봤다. <스탠바이미>와 <어디갔어, 버나뎃>. 그리고 박상영 연작 소설< 믿음에 대하여>를 읽었다. 이 책이 출판되었을 때 사서 연작 중 앞의 2편만 읽다 말았다. 오늘 갑자기 요즘 한국 소설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시 읽었다. 작년에는 술술 읽히지 않았는데 오늘은 너무 잘 읽혀서 순식간에 다 읽어버렸다. 코로나를 배경으로 동시대를 살아가는 내 또래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는 재미가 이런 것이었나 싶었다. 다시 말해서 잘 쓴 소설이다. 내가 아무 생각 없이 마스크 끼기 싫다는 타령을 하면서 기계적으로(마치 소설 속의 한영처럼)일을 하는 동안 박상영은 이런 소설을 썼구나. 사실 한국 소설을 읽어도 그 소설 속의 인물들이 나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아본 적은 별로 없다. 예를 들면 장류진의 <달까지 가자>를 재미있게 읽긴 했지만, 나는 주식 부동산 코인 등의 재테크를 전혀 하지 않기 때문에 내 마음에 와닿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 소설 속 한영과 황은채의 직장 생활은... 흑흑. 특히 나도 한영처럼 내가 원하는 새집을 가지게 되면 불멸의 행복까진 아니더라도 적어도 덜 불행하거나 대체로 만족한 기분을 느끼면서 살아갈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고작 이게 다 인가?'하는 의심을 자주 한다.
이런 소설집을 쓴 사람이라면 엄청 행복하고 좋을 거 같은데 팟캐스트 <영혼의 노숙자>에 나오는 박상영을 보면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내가 부러워하는 것만큼 즐거워 보이지는 않았다. 나라면 내가 쓴 소설책 몇 권 있으면 정말 행복할 거 같은데... 오지은도 그렇고 박상영도 그렇고 수면제의 도움으로 잠을 잔다고 했다. 하긴 세상 어느 인간이 인생의 고를 피할 수 있을까.
나는 객관적으로는 너무나 잘 지내고 있다. 말 그대로 바른생활, 근면 성실. 집안일을 미루는 법도 없고, 청소 빨래 설거지를 제 때에 한다. 쓸데없는 물건을 막 사지도 않는다. 식습관도 좋다. 술 담배도 하지 않는다. 물리적인 집의 모습뿐만 아니라 생활의 리듬 자체가 미니멀라이프 다큐에 나가도 될 정도로 정갈하다. 재정상태도 좋다. 빚은 없고, 당장 실직을 해도 몇 년은 무리 없이 지낼 수 있는 현금도 있다. 현대 사회의 모든 불행의 근원인 sns도 하지 않는다. 불면증도 없다. 변비도 없다. 그러니까 나는 현대의 현자들이 말하는 불안과 불행의 요소가 없는 생활을 하고 있다. 아직은 집중력도 좋아서 영화 1, 2편 정도는 쉬지 않고 볼 수 있고, 심지어 오늘은 오후 내내 소설책 1권을 몰입해서 읽어내기까지 했다.
쉽게 말해서 나는 내가 상상했던 제 앞가림을 잘하는 훌륭한 어른이 되었다. 그런데 딱히 즐겁지가 않다.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고 주로 혼자 있어서 그런 걸까 하는 의심도 하지만 사람과 어울리는 건 더 피곤하다. 그나마 혼자 있으니까 지금처럼 안정적으로 살아 내고 있는 것이다. 혼자 영화 보고 책 읽고 내가 본 것들에 대해서 곱씹고 일기 쓰고 하는 게 그나마 좋다. 영화<어디갔어, 버나뎃>의 주인공 버나뎃도 인간관계에서 극심한 불안증을 느끼는 사람인데, 그녀는 뭐 천재 예술가라서 그런 거고... 난 도대체 뭘까...
영화<스탠바이미>의 소년들처럼 나에게도 모험이 필요한 걸까? 소년들은 일상의 무료함을 없애기 위해서 무모한 모험의 길을 떠난다. 아니면 버나뎃처럼 창작을 해야 하는 걸까. 버나뎃에게 창작은 또한 모험이다. 창작을 위해서 남극점에 가는 모험을 하게 되니까!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이처럼 나만을 위해 글을 쓰는 습관은 글쓰기의 좋은 훈련이 된다는 신념이 나에게는 있다는 사실이다. 글쓰기는 근육을 이완시켜준다.
<울프 일기 / 버지니아 울프>
ps. 이번 주말 금토일이 올해 들어서 가장 행복(?)하고 편안한 주말이었다. 좋은 영화 2편, 좋은 소설 1편, 그리고 솔직한 일기 1편. 드립 커피와 쿠키, 간단한 식사. 그리고 오직 나만 있었다. 카톡 0건. 아무도 나를 찾지 않았고 나 역시 아무도 찾지 않았다. 만약 내가 금요일 밤에 갑자기 죽는다면 월요일에 출근 시각이 지나서야 내 죽음 사실을 외부인이 알게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만약 내가 휴직을 하게 된다면... 뭐 어차피 죽은 거 언제 발견되는 게 뭔 상관인가. 그건 살아있는 사람들이 몫일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