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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만에 윤후명 소설가를 만난다. 적지 않은 소설을 읽어 온 내가 읽은 윤후명 작가의 작품은 1996년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작인 '천지간' 한 편이다. 한국 현대소설에 대한 독서가 부족함을 느끼지만, '천지간'의 '죽음이 죽음을 알아보듯 사랑은 사랑을 알아본다'는 구절이 부족함을 용인하는 하나의 동인으로 작용한다. 약간의 무관심의 허용, 잊혀질 권리와 찾아낼 기쁨을 허락해주는 것이 소설의 참됨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하는 동인 중 하나.


 11년 만에 장편소설을 쓴 윤후명 소설가를 나는 20년 만에 문자가 아니라 실물과 목소리로 읽는다. 그러고 싶었고, 딱 그러고 있는 중이어서, 그랬다. 문학동네에서 작가와의 만남을 연 상수역 이리카페, 오후 7시 30분. 밤이 골목을 점령하고, 창 사이로 백열등 불빛이 뿜어나온다. 몇 명의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서 등불을 들듯 '피에로들의 방'을 들고 선생님의 부끄러운 소회를 듣는다.


 최근 윤대녕 소설가와 비슷한 시절에 이상문학상 대상을 수상한 박상우 소설가도 만났는데, 그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느낌을 받는다. 보다 서정적이지만, 그 역시 한 명의 중년 남성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나고 할까. 윤대녕 소설가는 '독자들이 자신을 만나서 기대가 깨질까봐 앞으로 책만 내고 이런 자리를 갖지 않고 싶다'고 말하는데, 소설이 환상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곁에 있는 것을 알게 된 계기가 된다.

 

 

 녹취를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노트에 적지도 않는다. 소설 수업을 듣는 것도 아니고 취재를 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나만의 시간을 이리카페에서 다시 찾고, 윤대녕 소설가와 문학동네 잡지와 소설 단행본 편집자(사회) 분은 충족시켜준다. 그러고 보니 이리카페를 찾은 것도 거의 6년 만이다. 

 

 그래도 간략하게 스마트폰에 적은 것을 중심으로 풀어보면, 선생님은 24절기라는 신화의 세계 속으로 빠져들어가고 그것을 소설에 반영한다. 일제 강점기 이후로 그 이전 시대에서 보이던 고요한 삶의 미풍양속이 훼손되고, 자본주의 사회가 고도화되면서 경쟁이 치열해져 자본을 위계로 한 수직사회가 형성된 것에 대해 문제의식을 드러내고, 삶의 복원을 추구하고자 한다고 말한다. 그것을 이번 작품을 통해 형상화한 것으로 생각한다. 


 또 선생님은 소설의 분위기와 톤을 유지하기 위해 같은 음악을 한 달이고 두 달이고 반복해서 듣는데, 이번에는 바흐의 음악을 그렇게 들어서 부인 분이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많은 말들을 흘려보낸다. 이리카페 창밖에서 안을 들여다보는 몇 명의 젊은 커플들을 바라보며 꿈을 그린다. 음악인 것처럼 프랑스 소설에 대한 질문과 답변, 소설가가 꿈인 대학생의 질문과 답변들을 듣고, 같은 공간에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시선을 준다. 


 강연과 질의응답까지 끝나고 사람들이 선생님 앞에 사인을 받으러 가는 사이, 나는 어두운 거리에서 점점이 뿜어나오는 이리카페의 빛을 뒤로 하고 거리로 나온다. 선생님의 얼굴을 슬쩍 보고, 편할 때, 마음이 원할 때 윤대녕의 소설을 읽어야지 생각한다. 그리고 이리카페 골목 전에 있던 갤러리에서 6800원에 젊은 화가의 작은 그림 프린트본을 종이 액자에 넣어 산다. 내 돈으로 그림을 산 것은 이 날이 처음인데, 어느 때보다 그 작은 그림을 사고 싶다. 이어폰으로 쟈넷 잭슨의 음악을 들으며 지하철 역으로 들어가, 달리며 멀어지며 가까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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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창비 책읽는당 페이스북 그룹에서 활동하고 있다.

매월 창비에서 정한 창비책 한권을 읽는 북클럽인데, 3월 선정 도서는 안소영 작가의 <시인 동주>였다.

작년에 나온 책이지만 지난 2월 영화 <동주>가 개봉했기도 했고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초판본 등 윤동주 관련 서적이 인기던 때이기에 즐겁게 함께 읽었다.

 

 

 

 

 

 

 

 

 

 

 

 

 

 

 

 

평소에 전기 소설보다는 역사 사료로 직접 인물을 접하는 것을 좋아하는데다가

안소영 작가의 책들은 성인보다 청소년에 더 타깃이 맞춰져 있다고 생각해

<시인 동주>로 그의 책을 처음 읽어 보았다. 책은 예상했던 것처럼 읽기 쉬웠는데 책을 읽고 너무나 작가가 궁금해졌다.

엄청난 취재량과 그 자료를 정갈하게 정리해 독자들에게 보여 주고 책 속에 나왔던 동주의 지인들을 한 사람 한사람 정리해 다시 보여주는 섬세함이란. 대상(윤동주)에 대해 보통 애정과 열정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중 운좋게 알라딘에서 연 <시인 동주> 안소영 작가와의 만남 이벤트에 초대되어

감사한 마음으로 다녀오게 되었다.

 

 

평소처럼 합정역에서 내려 창비서교사옥에 가는데 알라딘 중고 서점 합정점 발견!!

COFFEE라고 써 있는 걸 보니 카페도 겸하는 것인가??

이 날 사진 찍고 아직도 못 가봤다. 곧 가겠지.

 

 

 

로비에서는 <위니를 찾아서>를 한창 주력 홍보하고 있었다.

이날 작가와의 만남 참석자에게는 <위니를 찾아서> 책갈피를 줬다.

 

 

강의 전에 시간 여유가 좀 있어서 카페 창비에서 다시 책을 훑어보며 커피를 홀짝였다.

 

 

혹시 책을 당일 사올 사람을 위해 카페 창비에 마련되어 있었던 <시인 동주> 매대

 

 

 

 

안 갔으면 두고두고 한이 맺혔을 만한 열강이었다.

창비에서는 간단히 책에 대해 소개하고, 동주의 시를 함께 나누고, 질문을 좀 받고, 사인회까지 해서

1시간반~2시간 정도의 행사를 예상했던 것 같은데

책과 꼭 닮은 안소영 작가님 책에 대하여 동주에 대하여 얼마나 주옥 같이 귀한 말씀을 많이 나눠주시던지

정신 없이 듣느라 바빴다. 질문이 끊이질 않아 강의만 1시간 반이 훌쩍 넘어, 사인회까지 끝나니 10시가 넘어 있었던 것 같다.

 

처음 작가님은 <동주와 몽규>로 책 제목을 짓고 싶었다고 했다.

송몽규라는 존재를 나도 이 책을 보고 처음 알았는데

 

1. 자료가 너무 적어서

2. 취재한 내용만으로 책을 끌고 나갈만한 작가로서 역량이 부족해서

3. 취재하면 할수록 윤동주란 인물이 너무 매력적이어서

 

윤동주에 집중한 <시인 동주>를 썼다고 한다. 

 

제목에 대해서 굉장히 많이 고민하셨다고 하는데

'시인'이란 말을 꼭 붙여주고 싶어서 이렇게 지었다고 했다.

"윤동주는 그토록 시인으로 불리길 꿈꿨으나 단 한번도 시인으로 불리질 못하고 죽은 청년입니다."

 

<책만 읽는 바보>, <다산의 아버님께>, <갑신년의 새 친구>, <시인 동주>

지금까지 쓴 책이 전부 전기 소설인 게 궁금하였는데

작정한 것은 아니었지만, 과거 사람들의 삶이 궁금해져서 사료들을 보다가 이덕무로 시작해 문제의식과 관심이 점점 현대로 향해가고 있다고 하셨다. 개화기의 청년을 다룬 <갑신년의 새 친구>를 쓰며 그렇다면 식민지 현실에서 청년들의 삶은 어떨지에 대해 궁금해졌고, 생각 끝에 택한 사람이 윤동주였는데 취재를 하며 윤동주에 대해 너무도 아는 게 없음에 깜짝 놀랐다고 한다. 아직 시작하지는 않았지만 차기작이 된다면 대한민국 어느 시대의 청년의 삶을 다뤄보고 싶다고.

 

안소영 작가는 자신의 책이 소설로 볼 수 있을까란 말을 했는데

객석에서도 이 책을 역사책으로, 국문학 자료 등으로 보며 수업에서 활용하거나 공부한다는 의견들이 나왔다.

 

우리가 지금 배우는 윤동주 이미지 대부분은 1976년 <나라사랑>이란 잡지에서 동주의 연희전문학교 벗들이 회고한 것을 바탕으로 한다는 것을 듣고 놀랐다. 노인이 나라는 비록 암흑기였지만 인생에 가장 혈기 왕성하고 빛났던 청춘을 떠올리며 친구를 생각하다보니 윤동주는 자연스럽게 실제보다 더 청초하고 맑고 순한 사람으로 포장되었다고 한다.

 

안소영 작가가 윤동주 시인에 대해 책을 쓰기 전 가장 궁금했던 점이

한 사람이 어떻게 서정시인과 저항시인이 가능할까였다는데 그래서였다.

실제 윤동주는 훨씬 내면이 강하고, 이지적이며, 무언가를 끝까지 파고드는 성품이었다고.  

 

책에 이미 있는 내용들을 다시 살피기도 했지만

작가가 어떻게 책을 썼는지 많이 알게 되어 좀 더 책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을 한껏 얻어간 강연이었다.

 

덕분에 책을 다 읽고나서 책과 작가가 더 좋아졌다.

좋은 강연을 듣게 해 준 알라딘과 창비 관계자에게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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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많은 공부법, 독서법, 자기계발서를 읽으면서 스스로의 공부방법에 대해 고민을 했고, 최근에 제 눈을 사로잡고 바로 구입해서 읽은 책은 "꼼수공부법"이었습니다.

정답을 먼저 보라고? 의아하지만 그렇게하면 괜찮기도 하겠네? 라는 생각으로 첫장을 펼쳤고 순식간에 저자의 노하우를 읽어내려갔습니다. 읽으면서도 막연하기만 했던 공부방법에 대해서

직접 강연회에 참석하여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저자는 결과를 내기 위한 공부법을 강조했습니다. 항상 공부를 열심히하고, 잠도 줄여가면서

틈틈히 기본서를 봤지만 항상 성과를 내지 못했기에 말한마디 한마디가 뇌리에 박혔습니다.

 

"배우는 것이 아니라 합격!!하는 것이 목적이다."

 

 

시험준비를 하면서 나도 모르게 망각하게 되는것이 바로 저 부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학자가 되려고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인 "합격"을 위해서 공부를 하는 것임에도 늘 기본서부터 수차례 정독을 하고 문제를 풀고, 문제가 안풀리면 아직 기본서를 완전히 익히지 못했다고 생각해서 다시 기본서에 매달리는 패턴으로 공부를 했습니다. 보통 학생들이 대부분 이런 공부법으로 공부를하고 있을겁니다.

 

그러나 저자는 짧은 시간 x 횟수 x 공부량 = 기억력 임을 강조했습니다.

 

하루종일 기본서를 붙들고 있는것이 아니라 정답을 보고, 출제경향이 어떠한지를 먼저 파악하는 겁니다.

 

강연회 이후 제 공부방법에도 변화를 주고 곧 있을 시험에 대비하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저서에 사인을받고 열심히 공부하라고 화이팅 해주시는 저자님에게서 좋은 기운을 얻고 왔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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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를 존경하면서 그 대상을 이상화 하지 않는 것이 가능할까요.

 

 요즘 논어를 다시 읽고 있는데 유난히 맘에 걸리는 구절이 있습니다.

 

 공자의 14년간의 천하주유 중, 고생에 비하여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기간이 길어지자 제자들 사이에서 공자를 향한 불만 어린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하자 공자는 자로, 자공 그리고 안회를 불러 물어봅니다.

 

 시경에 이르기를 코뿔소도 아니고 호랑이도 아닌 것이 저 들판에서 헤매고 있구나,’라고 하였으니, 나의 도가 잘 못된 것인가? 그렇지 않다면 나는 무엇을 어찌해야겠느냐?”

 

 자로와 자공은 자신의 이상이었던 공자도 실패와 좌절을 겪는 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래서 자로는 선생님의 도가 잘못되었기 때문에 사람들의 믿음을 얻지 못한다고 대답하며 자공은 선생님의 도가 어려워서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못한다며 어째서 도를 낮추지 않냐고 반문합니다. 공자와 그렇게 오래 함께하고 가까이서 지켜본 자로와 자공이지만 자신의 스승을 이상적인 존재로 만들고서는 자신이 생각한 이상대로 나아가지 못하는 모습에 그만 스승의 모습을 부정하게 된 것이죠.

 

 하지만 안회의 대답은 다릅니다. 세상이 공자의 도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선생님의 잘못이 아니며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에게 치욕인 것이라고. 받아들여지지 않은 다음에 더욱 군자는 세상에 드러나는 법이라고.

 

 당연히 공자는 안회의 대답에 기뻐합니다. 이는 단순히 자기를 위로하는 답이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을 이상화 하고서 그것을 강요하는 제자들과 달리 인간적인 자신을 받아들여주고 이해하는 안회가 고마웠기 때문일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구절을 곱씹으며 저는 요즘 다시 부쩍 생각하게 되는 그분을 떠올렸습니다. 신영복 선생님은 제가 너무너무 존경하는 분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분을 제 이상에 끼워 맞추고 맘에 드는 부분만을 보고 있는건 아닐까요. 제가 본받고 싶은 건 그분의 성찰하는 자세와 많이 회자되는 인품입니다. 하지만 전에도 너무 거대하신 분이셨고 이제는 너무 멀어지시기까지 하신 분입니다. 그런데도 그 분을 제대로 본받고 이해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처음처럼의 개정판을 읽으면서 그 생각은 더욱 강해졌습니다. 짧게 남은 글귀 만으로도 압도되고 마는데 어떻게 하면 거기에 휩쓸리지 않고 진정한 그 분을 알 수 있을까요.

 

 주인공이 없는 북콘서트인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본인이 없는 자리에서 그 기억은 변형되기 쉬운 법이죠. 하지만 책이 아닌 다른 기회로도 선생님을 알아보고 싶었던 저에겐 정말 기꺼운 자리였습니다.

 

 그 중 심실 선생님이 신영복 함께읽기에서 본인이 쓴 부분을 기억과 함께 읽어 주셨습니다. 멋들어지게 차려 입고 를 하며 들어오던, 어렸던 형제들과 함께 놀아주던, 운전기사 아저씨를 위해 차고 문을 열어주던, 그리고 너무너무 화가 많던 본인에게 따뜻한 바람이 되라며 열심히 생각한 답을 주던 그러한 신영복 선생님을 기억과 함께 읽어 주셨습니다.

 

 이렇게 누군가의 마음에서 마음대로 덧붙여지고 마음대로 삭제될 자신의 모습을 선생님께서는 미리 아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그분을 제 마음속에서 마음대로 우상화를 하던 저는 마지막에 들은 신영복 선생님의 말씀에 나도 모르게 찔끔 하게 되었습니다.

 

 마지막 순서인 더숲트리오분들이 노래 등불을 부르기 전에 신영복 선생님과의 이야기 하나를 말해주셨습니다. 신영복 선생님은 우산 같다고 하자 선생님은 자신은 우산보다 등불이 되고 싶다고 하셨다고 합니다. 선생님께서 어떤 뜻으로 하신 말씀인지 정확히는 모릅니다. 하지만 선생님의 길을 잘 표현한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우산은 비가 오더라도 사람이 비에 젖지 않도록 지켜줍니다. 우산 아래서 사람들은 비에 젖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 우산 아래서 수동적인 존재들이 됩니다. 하지만 등불은 다릅니다. 사람을 어둠에 속에 젖도록 그냥 둡니다. 어둠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주지 않습니다. 그래도 우리가 방향을 알 수 없는 어둠 속에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은 앞에 빛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등불의 존재는 우리를 적극적이게 만들어줍니다.

 

 선생님은 시대에서 우리를 지켜주지 못하셨습니다. 선생님은 세상을 구하시는 분이 아니셨고 사람들은 아직도 어두운 세상을 헤맵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자신의 삶을 통해 진정으로 시대의 등불이 되어주셨습니다. 어두워서 뭐가 먼지 알 수 없어 헤매는 세상에서 신영복이라는 등불이 되어 스스로 성찰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셨습니다. 세상의 마찰에서도 등불이 되어 주시려 노력하신 분을 저 마음대로 우산 삼아 우산 밖으로 나오지 않으려 하는 것은 선생님께서 원하시는 바가 아닐 것입니다.

 

 신영복 선생님은 우리의 우산이 아니기에 비 한 방울 젖지 않게 막아 주실 순 없으십니다. 어둠속에서 헤매지 않도록 해주시지도 못하십니다. 하지만 등불이 되어 우리가 길을 찾는 것을 기다려주십니다. 기다리는 분을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것은 그 분을 예쁘게 포장해 전시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신영복을 이해하고 제대로 받아들이고 그보다 더 성장하여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즘도 세상이 많이 어둡습니다. 앞으로도 더 어두워 질 듯 합니다. 그래서 얼마 전 사라진 하나의 등불이 너무나도 아쉽고 그립습니다. 그래도 다시 또 앞사람의 불을 받아 더 커진 불이 앞을 밝혀주리라 믿습니다.

 

언제나 그랬듯이.

 

다시 또 처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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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jacesky1.wordpress.com/2016/03/13/%EC%86%90%EC%A7%80%EC%95%A0-cnn-%EC%84%9C%EC%9A%B8/


요즘에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저의 대학 시절에는 영어 공부를 위해 CNN을 시청하는 것이 유행 중 하나였습니다. (아마도 불법이었겠지만, CNN을 틀어 주는 케이블 TV가 그 때는 있었습니다.) 그 때 CNN을 시청했던 대학생들은 아마도 이 말을 적지 않게 들어 봤을 것입니다.

 

‘Sohn Ji Ae, CNN, Seoul’

 

손지애님이 뉴스의 Ending을 제목으로 책을 출간하셨습니다. 그 만큼 대중에게 그녀의 이름과 CNN은 뗄레야 뗄 수 없는 듯 합니다. 제목을 짓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을 텐데, 대중에게 분명히 각인되는 한 단어가 있다는 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저자 강연회에서 손지애님의 인생 이야기를 들어 보았습니다.

 

책을 쓰게  이유

글은 쓴 순서대로 책에 담겼습니다. 글이 처음에는 조금 어색하다가 후반부로 갈수록 어색함이 덜해지는 듯 합니다. 한국어로 글을 쓰는 것이 쉽지 않았고, 마치 집에서 이야기하는 것과 흡사하게 구어체로 작성했습니다. (그래서인지 글이 더 친근한 느낌이 듭니다.)

1995년, 갓 서른을 넘긴 나이에 CNN 서울지국장이 되었습니다. 어린 여성을 지국장으로 임명한 CNN의 생각이 궁금하고 엉뚱하다는 기사들이 신문에 실렸습니다. 이런 시각은 아직 존재하고 있습니다. 여성이 이 일을 제대로 할까? 갸우뚱한 시선을 받기 쉽습니다.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현재의 어려움을 지혜롭게 극복하고 바꾸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지국장이 되자 책을 내 보자는 제안이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아직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30년 후에 써 보겠다며 거절했습니다. 그런데 마치 하늘의 계시처럼, USC에 1년 간 머무를 기회가 생겼고 드디어 책을 쓰게 되었습니다. 어떤 책을 쓸까 고민했습니다. 기자로서 느꼈던 바를 쓰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지금까지 걸어오며 겪었던 많은 일들이 다른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인생 이야기를 쓰게 되었습니다.

김우중씨의 책 제목처럼 어느 시기에나 항상 할 일은 많습니다. 제 인생이 그래왔습니다. 인생의 모든 단계는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한 준비입니다. 성공했다고 우쭐해서도, 실패했다고 좌절해서도 안 됩니다. 오늘은 내일을 위한 준비입니다.

 

In every job that must be done

There is an element of fun

Spoonful of sugar helps the medicine go down

“A Spoonful of Sugar”, Mary Poppins


(짧지 않은 Epilog를 또박또박, 따뜻하게 읽어 주셨습니다.)

 

인생이란 이런 무경력무경험에서 생겨나는 수많은 일의 연속이다자격이 그리고 경험이 없다고 주저앉는다면 기다리고 있는수많은 모험을 해보지 못할 것이다.

 페이지를 열어놓은 모든 이에게 행운을 빈다.

손지애. CNN. 서울, Page 269-271, 손지애

 

새로운 페이지를 여는 일은 반쯤 두렵고 반쯤 설레이는 일입니다. 그런 마음이 좋습니다.

 

Journalist

New York Times와 CNN 근무 시절에 기억에 남는 일이 여럿 있지만, 첫 사건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김일성이 핵을 개발하기 시작한 시기에 New York Times에 근무하기 시작했습니다. 핵에 대한 기사를 작성하기 위해 관련자와 전화를 하곤 했습니다. 어떻게 젊은 여성이 핵에 대해 그렇게 잘 알 수 있는지 신기해했습니다. CNN에서는 첫 기사가 삼풍백화점 붕괴였습니다. 그 부근을 지나갈 때마다 가슴이 빨리 뜁니다. 기자는 간접 경험을 해야 하므로 너무나 어려운 시절이었습니다.

우리는 뉴스의 홍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얻어야 하는 것,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뉴스도 하나의 역사, 흐르는 역사입니다. 내일 보면 오늘은 어제가 되어 있습니다. 오늘에 매달리기 보다는, 객관적으로 그 흐름을 파악해야 합니다. 역사를 읽는 느낌으로 큰 흐름을 보아야 합니다. 특히 국제 뉴스에 대해서 좀 더 날카로운 관심과 감각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잘 느끼지 못하지만 한국의 전반적 정세에 북한이 많은 영향을 미칩니다. 북한에 관한 뉴스에 대한 관심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1995년만 해도 한국이 세계에 잘 알려져 있지 않았습니다. 한국에서 왔다 하면 South Korea에서 왔는지, 아니면 North Korea에서 왔는지 물어보는 시절이었습니다. 우리는 의아하지만, 외국인들은 North Korea에 관한 뉴스를 더 많이 접했을 것입니다. 북한 때문에 한반도의 뉴스 가치는 높습니다. 뉴스의 초점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군사적 대립과 활발한 경제입니다. 한국은 두 가지 모두 해당됩니다. 이런 나라는 별로 없습니다. 경제가 발전하면 대개 군사적으로 안정적이고, 군사적으로 불안정하면 경제가 발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언론의 입장에서는 한국이 이런 측면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언론인도, 외교관도 한국 근무가 인기가 높은 이유입니다.

 

Global

Global citizen은 남을 배려하고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어느 누구나 좋아합니다. 거기에 자국 문화와 역사에 대한 지식과 자부심을 갖고 있으며, 은근히 표현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다른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인간적인 공통점을 살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Career

잡지사에 근무하던 시절에는 작은 규모라 하고 싶은대로 할 수 있었습니다. 6-7년차가 되자 상승세가 꺾이고 바닥을 쳤습니다. 이번 달에 쓴 기사가 지난 달에 쓴 기사보다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그 때 외신 기자로 이동했습니다. 내가 더 이상 성장하지 않는다는 것, 내 역할이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을 때 슬럼프가 옵니다. 내가 있어야 할 자리가 아니라 느낀다면 다른 길을 찾아야 합니다.

직장 초년 시절에 느꼈던 것은 내가 발전하는 것이 직장을 위한 것이라는 점입니다. 직장을 위하다 보면 내가 발전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일을 맡아도 그 일을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배워야 할 것, 내가 잘 함으로써 내가 성장할 것을 생각했습니다. 최선을 다하는 것을 조직은 충성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자신을 위해 열심히 하다 보면 결론적으로 조직을 위한 것이 됩니다. 못하는 일도 많습니다. 잘 하는 일은 잘 합니다. 잘 하는 것을 계속 키우고 못 하는 것을 줄이되, 잘 하는 것을 정말 잘하게 되면 조직이 못 하는 것을 지시하지 않습니다.

Step by step으로 차곡차곡 올라가는 사람이 열 명 중 한 명이 될까요? 그래서 SKY에, 대기업에 들어가야 Fast track을 탈 수 있는 듯도 합니다. 그 길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 길만이 행복하고 성공하는 길은 아닙니다. 사람들이 가는 길만을 가야 하는 것은 거부하고 싶었습니다. 이제는 자신만의 시각을 가져야 할 때입니다.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기존의 시각과 가치는 재고가 필요합니다. 가고 싶은 길을 가야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조금 독특해도, 조금 튀어도 괜찮습니다. 자신감만 있다면.

 

가정과 육아

맞벌이 부부에게 육아는 큰 고민입니다. 한 사람이 고민하고 감당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진정한 파트너로서 두 사람이 함께 노력해야 합니다. 정부의 정책이나 부모님에게 의존해서는 안 됩니다. 배우자를 볼 때 어려움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인지 꼭 봐야 합니다. 스웨덴은 여성이 1년의 출산 휴가를 사용하고, 남성도 6개월에서 1년의 육아 휴직을 사용합니다. 남성들도 휴직 중에 여성과 같이 아기를 양육합니다. 철저히 아빠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여성들은 육아 휴직을 사용할 마음이 없는 남자는 만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Career를 생각하면 아기를 갖는 적절한 타이밍은 없습니다. 하지만 출산을 미루다 후회할 수 있으므로, 결심했다면 그것이 타이밍인 듯 합니다. 육아를 하며 (남편과 협력해) Career의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육아를 위해 Career를 포기해 본인이 불행해진다면 가정이 불행해지는 일입니다.

회사에 나오는 순간 직장인이 되고, 집에 들어가는 순간 엄마가 되어야 합니다. 이 둘이 섞여서는 안 됩니다. 맞벌이로 아기에게 소홀하고 있다는 죄책감을 엄마는 되도록 느끼지 않아야 합니다. 어마가 행복하고 아기에게 잘 해 주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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