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25일, 노희준 작가가 강연회에 다녀왔다.  

그는, 최근 <오렌지 리퍼블릭>(자음과 모음)이란 장편소설을 냈고, 출간을 기념하여 강연회를 갖게된 것이다. 하지만, 강연은 그것과는 상관없는, 소설창작에 관한 강연이었다(그는 실제로 한 인터넷 대학을 비롯해 몇 군데에서 소설 창작을 강의 한다고 한다) .  

사실, 소설 창작은 보통 6개월 또는 1년을 강의해도 다 못하는 것인데, 주어진 짧은 시간에(1시간 반 정도) 강의를 하기란 애초부터 불가능해 보인다. 그저, 모인 사람들이 공통의 관심사(소설가 지망생인만큼 소설 창작에 관하여)를  가진만큼 그도 한때는 소설가 지망생이었을 테니, 그냥 편하게 차나 마시면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눠보자는 취지가 더 맞을 것이다(그래서 장소도 어느 카페였던 게지).  

 

고전은 반드시 읽어야 하는 것인가? 

확실히 요즘의 젊은 작가들은 예전의 작가들과는 그 외모에서 차이가 느껴진다. 예전의 작가들(386세대의 전형을 떠올리겠지만)은 자신이 무슨 옷을 입든 외모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2000년 이후에 등장한 작가들(굳이 나눌 생각은 없지만)은 옷을 훨씬 잘 입는 편이다. 노희준 작가도 아주 럭셔리 하다고는 할 수 없어도, 결코 빠지지 않는 옷차림으로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먼저, '책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를 첫 화두를 잡았다.   

작가가 글을 잘 쓰려면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말일 것이다. 그 역시도 누구못지 않게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이다.  그런데, 그 계기가 재미있다. 그는 위로 형과 누나가 있는데, 그들에게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책을 읽기 시작했다고 한다. 더구나 사춘기 시절, 한 번은 학교에서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부모님 호출을 받았다고 한다. 학교에서 교내 백일장을 해 참가를 하게 됐는데, 그가 써 낸 원고가 소위 말하는 90년대 이전의 빨간책들에서 인용한 책들이 많았다고 한다.  지금 생각하면 웃지 못할 해프닝이겠지만, 당시로는 부모님이 담임 선생님으르부터 그런 경고를 받았으니, 속이 상한 아버지가 그에게 책을 읽지 못하도록 했고,  그때까지 집안에 있던 모든 책들을 불태우는 이름하여 '분서갱유 사태'를 맞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그후에도 책에 대한 관심과 열망을 놓을 수가 없어,  이불 속에서 조그만 불빛에 의지하여 책을 읽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은, 자신이 '왜 책을 못 읽어야 하나' 고민했다고 한다.  

그런 것으로 봐, 그는 확실히 여느 사람과는 조금은 다른 사춘기 시절을 보낸 것 같다. 보통 우리네 사춘기란 게 오히려 부모님이 책읽기를 권해도 잘 안 읽는 시기 아니던가? 하긴, 누구라도 작가와 같은 상황이었다면 열심히 읽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원래 사춘기란 청개구리 속성의 시기라, 누가 그렇게 책 읽기를 마다했으면 기를 쓰고 열심히 읽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오늘의 그가 있을 수 있는 건, 그의 가족 때문은 아니었을까? 

그는, 책은 하나의 우주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단언한다.  책 읽는 행위가 스트레스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그런데 기성 세대들은 툭하면, 요즘 애들은 책을 안 읽는다고 말한다.  특히 고전은 더더욱 읽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것에 대해 그는 이의를 제기한다.  고전 읽기가 얼마나 어려운데 그것부터 읽힐 생각을 하고, 안 읽으면 그같은 타박을 하냐고.

특히 우리는 고전을 읽어야 한다는 강박이 너무 강하다고 한다. 그것은 예전에 고전은 반드시 읽어야 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실제로 그 책들을 읽고, 나이들어 기득권 세력이 되어 그렇게 말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보단 고전은 꼭 읽어야 할 사람만 읽고, 책 읽는 일은 무엇보다 즐거운 일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나 역시 그의 말에 동감이다. 하지만 이즈음 되면 간혹 고전도 읽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그러니까 어떤 책이든 관심을 갖고 즐겁게 읽고 그 영역을 확장시켜 나가면 되는 일이 아닐까? 그러므로, 꼭 고전을 읽어야 한다는 강박에 매이지는 말자.     

소설을 잘 쓰려면 자신의 스타일을 알아야 한다. 

어떻게 하면 소설을 잘 쓸 수 있을까? 이것은 작가지망생이라면 누구나 고민하는 것일 것이다. 그것에 대해 그는, 먼저 자기 스타일을 찾을 것을 조언한다.  소설의 서사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 하나는, 문장과 서사로 이루어진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스토리다.  이중 자신에게 맞는 스타일은 무엇인가를 찾아야 한다. 여기서 필연적으로 하게되는 건 생각이라는 것인데, 생각은 그 자체를 많이한다고 해서 되는 것은 아니고, 그 생각을 왜 하는지, 그 생각을 어떻게 객관화시킬 것인지를 끊임없이 탐구해야 한다고 한다.  특히 그는 인간의 감정에 권력이 들어갔을 때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가를 주시해 보라고 한다. 결국 네가 먹는 것이 너다란 말이 있듯이, 그 사람의 생각이 그 사람을 증명해 주는 법이다.  

그는 이야기 도중, 자신이 겪은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전하기도 했다. 그는 예술가라고 해서 모든 사람이 대화가 잘 통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물론 그에게만 국한된 일일 수도 있겠지만, 그는 무용이나 성악 같이, 꼭 선생이 있어야만 하고, 구간 반복을 해야하는 형태의 예술가와는 잘 이야기가 통하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미술이나, 사진을 찍는 등 선생이 굳이 필요없어도 되는 예술가들과는 얘기가 잘 통한다고 한다. 이것은 꼭 사람을 나누겠다는 의도는 아닌 것 같다. 이를테면 자신의 스타일을 아는 또 하나의 척도로 풀이 된다.  

물론, 자신의 스타일을 찾아가는 과정은 단시일내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또한 안다고 해서 일필휘지로 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는 그에게 물어 봤다. 글을 쓸 때마다 막막함이 들 때가 많은데 그것을 어떻게 극복 하냐고. 사실 그 막막함이란 건 매번 드는 것이라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러려면 글을 쓰지 말아야 할 것이고, 항상 그것과 함께 가는 것이 소설가의 운명 같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통해 무엇을 보여주려 했는가?     

누구든, 작가의 꿈을 이루기까지 지난한 과정을 겪기 마련인 것 같다. 노희준 작가 역시도 나름의 쉽지 않은 과정을 담담하게 들려준다. 대학을 진학하자 동아리를 들어 가야겠는데, 마침 소설 읽기 모임이 있어 들어갔다고 했다. 그런데 있어 보니, 소설 읽기 보다는 소설 쓰기 모임이더란다. 첫 습작품을 써서 보여줬는데, 다 빨간 글씨고 자신이 원래대로 쓴 문장은 간단하게 세어질 정도로 무참하게 깨졌다고 한다. 그래서 오기가나, 다음 번,  또 그 다음 번에도 새로운 작품을 들고 나갔다고 한다. 그리고  매번 새롭게 무참하게 깨지곤 했다. 누구는 아예, 소설 쓰기를 그만 두라며, 등단에 성공하면 자신의 손가락을 자르하고 까지 했단다. 하지만 그는 결국 등단한다. 농담 삼아, 그 사람의 손가락을 잘랐냐고 했더니, 지금 그 사람들은 어디론가 뿔뿔히 흩어져 만날 수 없게 되어버렸다고 했다. 누군지 모르지만 그 사람은 작가의 눈에 띄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것 같다.ㅋ  

아무튼 그 과정에서, 이리도 나의 작품을 칭찬해 주는 사람이 없는 건가  정말 서러웠다고 한다. 나 역시도 그런 경험이 아주 없지는 않은데, 있다보면 정말 사람들이 야속하다 못해 야비하다는 생각까지 들 때가 있다. 나중에 그는 자신의 작품에 칭찬을 해 준 한 사람을 만났다고 하는데, 그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고 했다. 역시 칭찬은 고래도 춤을 추게 만드는 힘이 있다. 아마도 그는 그 사람 때문에 작가가 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작가들마다 자신의 작품을 통해서 보여주고자 하는 것들이 다 있을 것이다. 이것은 작가의 세계관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뭐냐고 했더니, 그는, "네가 사는 세상이 과연 맞니? 옳다고 생각하니?"를 묻기 위해 소설을 쓴다고 했다. 그래서도 이번 소설 <오렌지 리퍼블릭>을 썼던 것 같다. 이를테면 '너희가 보는 강남. 네가 보는 게 과연 맞는 거라고 생각하니?'하는 거겠지. 단지, 많은 사람이 이 소설을 성장소설로 보는데, 물론 자신의 이야기가 많이 들어간 것은 사실이지만, 성장소설은 아니라고 말한다.       

한국에서 작가로 살아가기   

이 질문에 꼭 희망적인 대답을 구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그가 느끼는, 한국에서 작가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민지 솔직한 답을 듣고 싶었다. 그는 창작을 강의하는 만큼 많은 작가지망생들을 만나는데, 그들에게 가급적 작가는 하지 말라고 솔직하게 말해준 단다. 작가도 천차만별이긴 하겠지만, 연봉 백만 원이 채 될까 말까 하는 작가도 있으니 말이다(그들이 느끼는 열등감이란 건 얼마만한 것일까? ). 그것은 작가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다른 분야는 몰라도, 우리나라 예술계의 불균형은 생각 보다 심각하다고 한다. 그것에 대해 핏대를 세우고 말하면, 그것만 보지 말고 우리나라 GDP 가지고 말하라고 한단다. 예술이 과연 GDP 가지고 얘기할 수 있는 분야던가? 

그 역시도 그날 그 자리에 앉아 있기까지 만만찮은 이력을 가지고 있었다. 작가라는 타이틀은 가졌어도 내는 작품마다 쓴 잔을 마셨고, 심지어는 모처의 문예지로 등단을 했는데, 그 문예지가 폐간되는(지금은 다행히도 복간되었지만) 일도 있었다고 한다. 모든 일이라는 게 다 그렇듯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것 같다. 

그는 글이 안 써지면 손톱을 기르는 버릇이 있다. 

사람은, 어떤 한 사람이 조금만 유명해지면 그 사람의 버릇을 알고 싶어지는 묘한 심리가 있다. 그는 손톱을 기르는 버릇이 있다고 한다. 과연 그 이유가 궁금했는데,  손톱을 기르면 생활하는 데 불편한데, 특히 열필이나 컴퓨터 자판을 치기는 불편할 것이다.  '너 이러고도 계속 버틸래? 빨리 손톱 깍고 글 써!'라는 자기 외침을 듣기 위해서란다. 재밌지만 나름 현명한 방법인 것도 같다.  

또한, 그는 글을 쓰지 않을 때는 음악을 한다고 한다. 역시 작가 박범신 선생의 말이 맞는 것도 같다. 그분은 어느 책에서, 옛날의 작가들은 글 쓰는 것 하나만 잘했는데, 요즘의 작가들은 글만 잘 쓰지 않더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일까, 그는, 그룹 '말도안돼'의 보컬을 맡고 있으며, 홍대 주변의의 클럽에서 공연도 한다고 한다. 이제 그는 돌아오는 30일 날 공연을 하고, 12월 12일엔 공중파 S 본부의 '김정은의 초콜릿'에도 출연한다고 한다.  

그는 확실히 신세대 작가다(물론 이제 곧 40줄을 탈 모양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는 아직 젊다) . 사고하는 바가 유연하고, 자유롭다는 인상을 받았다.  꺾일 줄 모르는 잡초 같은 폐기도 느껴졌다. 이제 작가로서 겪어야할 나름의 어려움도 잘 극복해 냈으니, 앞으로는 승승장구 내는 작품마다 좋은 소식이 들려지길 진심으로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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