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광수 경제연구소 김광수 소장의 명성은 익히 들어왔지만, 그의 책을 읽어보거나, 강의를 들어본 적은 없었다. 얼마 전에 읽었던 프레시안 인터뷰가 전부였다.
([인터뷰] 김광수 소장 "문제는 정치다, 이 바보야!")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100113190318§ion=02)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경제에 문외한인데다가, 직장인이 아닌 학생이라 현실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한 흐름에도 관심이 없었기에 유료 보고서와 전문적인 학술 서적을 내놓는 김광수 경제 연구소의 작업을 선뜻 접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경제에 조예가 깊지 않은 다른 독자분들에게도 입장은 마찬가지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김광수 경제연구소가 달라졌다. 지난해 선대인 소장의 위험한 경제학부터 김광수 소장의 경제학 3.0까지 대중에게 접근 가능한 경제교양서들을 폭발적으로 내놓기 시작했다. 연구소의 쌍포 가동에 대한 대중들의 반응은 뜨거웠고, 그 열기는 이번 강연장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강의를 시작하기 전에 앞서 일종의 온, 오프라인 시민교육센터라 할 수 있는 김광수 경제포럼에 대한 소개가 있었다. 위의 인터뷰 제목에서 볼 수 있다시피 김광수 소장은 요즘 경제가 잘못되는 것은 “위정자들의 잘못된 정책 운용 때문이다.”라고 진단하고 있다. 이 날 강의에서도 지난 민주화 이후 정권들이 10년간 각각 보수와 진보를 표방했지만, ‘성장 우선주의’를 내세우며 무능한 경제정책을 펴온 것은 마찬가지라고 날 선 비판을 했다. 이 때 마다 객선에서 뜨거운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그는 “민주주의 시장경제를 발전시킬 수 있는 자원이라고는 사람과 지식·시간이 전부인 한국이지만 정부는 이를 간과하고 ‘엉뚱한 짓’만 하고 있다.”며 “ 때문에 전문성과 도덕성을 갖춘 20~40대 지식세대를 중심으로 새로운 정치 세력을 형성하고 과감한 권력 세대교체를 이뤄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치의 판을 새로 짜기 위해, 그럼으로써 경제의 판을 새로 짜기 위해 김광수 경제 연구소는 미래 세대를 양성하고, 시민들을 교육하기로 했다. 그러기 위해서 준비한 공부방이 김광수 경제연구소 포럼 (http://cafe.daum.net/kseriforum)이다. 포럼에서는 경제는 물론 교육ㆍ복지ㆍ문화 등 다양한 분야의 강의를 전국에서 진행할 예정이다.
본격적으로 강의에 들어간 그는 신간 “경제특강”의 부제인 미래를 읽는 기술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를 밝혔다. 출판사에서 판매를 위해 부제를 붙였지만, 사실 본인은 경제에 있어서 미래를 읽는 다는 것이 현명하지 않은 행위라고 꼬집었다. 왜냐하면 미래를 ‘읽으려면’ 그것은 미래에 어떤 상태로 있을 것이라는 것을 전제하는 것인데, 사실 경제는 인간 행위자와 따로 떨어져서 객관적으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경제는 희소한 자원을 보다 이익이 많이 나도록 만드는 인위적 행위이기 때문에 미래는 ‘읽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며, 인간이 경제의 미래를 만들지 못할 때 문제가 생긴다. 그러한 사례가 10년 전 동아시아 금융위기, 80년대 말 일본의 부동산 버블, 플라자 합의로 인한 ‘잃어버린 10년’, 71년 금태환이 중지되고 73년 변동환율제로 복귀한 브레튼우즈 체제의 붕괴, 그리고 서브-프라임 사태로부터 촉발된 미국의 금융위기였다. 세계적으로 경제는 주기적인 위기를 겪고 있으며, 그 규모는 점점 더욱 확대되고 있는 추세라고 한다.
이러한 세계적 규모의 경제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2010년 세계 경제포럼(다보스 포럼)에 세계 각국의 지도자들과 경제 지도자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그들은 한 목소리로 ‘세계경제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외쳤다. 고삐 풀린 채로 돌아가는 금융 중심의 세계 경제를 인간의 경제로 전환시키기 위해서는 현 경제질서에 대한 근본적인 1. 사고전환(Rethink), 2. 재설계(Redesign), 3. 재구축(Rebuild)가 필요하다.
그는 현재 자본주의 시스템을 10%의 금융자본이 90%의 실물경제를 뒤흔드는 위험한 경제 시스템으로 진단한다. 본래 금용은 실물경제의 거울로서 시장이 원활하게 작동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금융자유화가 글로벌 스탠다드가 되면서 수단과 목적이 전치되어 금융 자본이 그 자체로 목적이 되고 있다. 60년대 실물경제 성장이 한계에 부딪히고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자, 70년대 금융혁신으로 금융자유화가 실시된다. 이러한 흐름은 과거 정부의 적극적 후원 아래 지속되었었다. 정부가 보증하는 주택저당증권(MBS[mortgage backed securities])은 자본의 흐름을 가속화시켜 거품을 창조해냈다. 이러한 상황에서 소위 대마불사가 판치고 있다. 금융기관들이 투기를 조장하고, 덩치가 커지면, 나중에 거품이 붕괴하게 될 경우 전체 국민경제가 함께 붕괴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공적자금을 투자해서 그들을 회생시켜주기 때문에 투기가 지속된다는 것이다. 결국 거품이 붕괴돼도 국가의 지원으로 회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금융기관들은 도덕적 헤이에 빠지고, 계속 투기를 지속한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파산 위기에 처한 CITY 은행과 AIG에 대한 공적자금 투입이 있었다. 김소장은 이러한 공적자금 투입이 과연 옳은 것이냐고 질문한다. 금융기관은 대출자의 채무이행 가능성에 대한 평가를 하고, 리스크에 대한 평가를 한 뒤 스스로 대출을 결정하는데, 국민의 세금이 투입되는 공적자금 지원은 이러한 금융기관의 자기책임원칙에서 벗어난다는 것이다.
투기 -> 거품 -> 정부보증 -> 투기 로 이어지는 악순환 속에서 건실하게 세금을 내는 국민들을 제물삼아, 실제 경제에는 아무 것도 기여한 바가 없는 금융회사들의 배만 부르고 있는 것이다. 돈은 돌고 돌아 실물경제로 뒷받침 되지 않는 유령과도 같은 부를 생산한다. 자본회전이 10번 이루어지면, 실제로 같은 양의 부가 10번 생산된 것과 같은 효과를 갖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경제의 근간인 투자와 저축은 줄어들고, 자산시장만 부풀어 오른다. 생산적인 투자의 이윤율은 낮고, 자산시장에서 이윤이 보장되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돈 놓고 돈 먹는 길을 택한다. 실로 합리적인 버블인 것이다. 하지만 실물경제로 뒷받침되지 않는 버블은 언젠가는 붕괴하게 되어있고, 거기에는 실물경제의 붕괴라는 참상이 드리워져 있다. 실제로 버블이 붕괴한 나라에서는 실물경제의 동력이 고갈되어 있어서, 버블이 깨진 뒤에도 다시 경제가 살아나기 어렵다고 한다.
이러한 버블은 단순히 금융기관들의 무절제한 탐욕에서 기인한 것만은 아니다. 경제는 언제나 정치가 마련한 틀 속에서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가 잘못 될 경우 경제는 위기에 처한다. 실제로 거품은 집권을 위해 경기를 부양시키려 하는 정부 말기에 격심해진다. 실제로 한국에서도 집권 말기마다 부동산을 통한 경기부양 정책이 이루어졌다. 이렇기 때문에 다보스 포럼에서 프랑스 대통령 사르코지는 ‘차라리 재정문제는 헌법으로 정해두자’라고 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어디서 찾아야 할까? 앞서 말했듯이 경제는 언제나 정치의 틀 속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정치를 바꿔야 한다. 세계 각국 정상들은 허심탄회하게 현재 자본주의 경제질서의 문제점을 토론해보자고 스위스에서 모였고, 오바마 대통령은 금융개혁을 하겠다며 볼커룰을 꺼내들었다. 볼커룰의 골자는 헤지펀드, 사모펀드는 일체 못하게 막고, 파생상품의 경우에는 확실한 책임 속에서 거래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떨까? 세계적으로 금융자유화의 문제가 명백하게 드러났건만, 이명박 정부는 여전히 이 흐름에 역행하여 출자총액제한을 철폐하고, 자본시장을 통합하여 금산분리를 형해화하려고 하는 엇박자를 보이고 있다. (이종태 - 오바마 금융개혁의 의미와 MB-윤증현의 엇박자 http://www.redian.org/news/articleView.html?idxno=17147)
그렇기 때문에 김광수 소장은 정치의 변화를 역설했다. 그는 단순히 이명박 정부만 질타한 게 아니다. 거품을 키우는 경제, 성장 잠재력을 떨어뜨리는 불안의 경제, 근시안적 처방에 머물고 큰 그림을 그릴 줄 모르는 경제를 만들어온 건 소위 진보 10년 보수 10년을 통틀어 민주화 20년 동안 공통된 현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러한 정치는 더 이상 지속되면 안 된다며 비판의 강도를 높였다. 의료보험, 연금을 잘 못 설계해 적자를 내는 무능, 건설로 경기를 부양하는 근시안적 태도, 경기부양을 통해 건설사로부터 비자금을 조달하는 부패 모든 것이 문제다. 그 결과 99년 이후 한국 산업은 공동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매년 4~5%씩 성장하고 있다지만, 체감경기는 좋지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육비는 증가하고, 부동산 가격은 폭등하고, 일자리는 감소한다. 사람들은 불안에 떨며 더욱 더 자신 시장에 매달리게 된다. 이러한 불안의 경제는 이제 끝내야 한다. 사람들이 스스로의 삶을 재생산 할 수 있는 기초 요건인 교육, 일자리, 주거를 국가가 안정시켜 줘야한다. 그래야 투기가 줄어들고, 생산적 투자가 이루어질 수 있다. 또한 경쟁이 더욱 심해지는 국제경쟁 시스템에 맞추어 국가가 적극적으로 산업 클러스터를 조장하는 등 새로운 성장동력을 마련하는데 노력해야 한다. 경제는 점점 첨단산업 중심으로 바뀌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가가 경제의 틀을 잘못 짠다면 10~20년 동안은 경제가 침체를 겪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경제 잘해보라고 뽑아 놓은 정부는 도대체 뭐하고 있는 것이냐며 호통을 쳤다. 그 순간 객석에서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 그만큼 대중들의 ‘경제를 망쳐온’ 기존 정치, 70년대 토건 패러다임으로 첨단산업을 이끌려 하는 ‘CEO 정치’에 대한 염증이 컸던 것이다.
그렇다면 구체적인 대안은 무엇인가? 그는 자세한 내용은 연구소의 보고서들과 시평, 저작들을 참고해달라고 말한다. 정치의 중요성에 대해서 끊임없이 강조했지만, 구체적으로 정치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말을 아꼈다.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연구소를 표방한 만큼 특정 정치색을 띠는 것에 대해서는 극도로 경계하는 눈치였다. 그러면서 그는 다만 연구소의 보고서가 말한 대로 경제가 움직여오고 있다며, 연구소의 역량에 대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뜻 있는 정치세력이 있으면 본인의 연구소에서 정책을 비롯하여, 많은 것들을 얻어가서 제대로 된 정치를 펼쳐보라고 해석해도 될 것 같다.
짧은 2시간의 강의 동안 구체적인 정보나 논리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다만 뚜렷한 그림은 보였다. 금융중심의 경제는 세계적인 위기를 확대하고 있으며, 세계 각국은 이에 대한 대응을 하고 있고, 한국은 이러한 글로벌 스탠다드에 역주행하고 있다. 이를 바로잡아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새로운 경제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새 정치가 필요하다.
자, 그렇다면 우리는 새로운 정치를 어떻게 만들어 나가야 할까? 너무 거창하다고? 경제학 3.0을 집어 드는 것으로 가볍게 시작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