씩씩한 남자 만들기 - 한국의 이상적 남성성의 역사를 파헤치다
박노자 지음 / 푸른역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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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군생활 당시(2001~2003)에도 잘 부르지 않았던 군가 중에 '진짜 사나이'란 노래가 있다. "사나이로 태어나서 할 일도 많다만 / 너와 나 나라 지키는 영광에 살았다. / 전투와 전투 속에 맺어진 전우야 / 산봉우리에 해 뜨고 해가 질 적에 / 부모형제 나를 믿고 단잠을 이룬다."는 대중적으로 익숙한 '대중 군가'라고나 할까? 가슴아프게도 '사나이'는 할 일이 많다. 하지만 나라를 지키고 부모형제를 지키는 사나이가 바로 '진짜 사나이'라는 것인데, 이는 총과 칼로 적과 싸워 지키는 것 뿐만 아니라, 나라경제를 지키고 부모 자식을 먹여 살려 지키는 것까지를 포괄한다. 재미삼아 몇 절을 더 불러보자. 

   
  입으로만 큰소리 쳐 사나이라드냐?
너와 나 겨레 지키는 결심에 살았다.
훈련과 훈련 속에 맺어진 전우야
국군용사의 자랑을 가슴에 안고
내 고향에 돌아갈 땐 농군의 용사다.

겉으로만 잘난 체 해 사나이라드냐?
너와 나 진짜 사나이 명예에 살았다.
멋 있는 군복 입고 휴가 간 전우야
새로운 나라 세우는 형제들에게
새로워진 우리 생활 알리고 오리라.
 
   

2절과 3절이다. 이게 언제적 노래인지 알게 해주는 대목이 있다. "농군의 용사"란 노랫말을 봤을때 한참 전에 지어진 노래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를 현대적으로 해석하면 "산업의 용사"쯤으로 바꾸어 부를 수 있다. 다를 건 없다는 뜻이다. 군 생활이 암만 새로워져도 그게 부럽다는 사람은 없지만, 그래서 더욱 3절은 처량하다. 아직도 휴가 간다고 군복에 세 줄 잡고, 전투화에 불광내는 군인들이 있다는 사실이 말이다. 

여하간 '진짜 사나이'가 나라 지키고 부모 형제 지키는 나라의 일꾼이라고 노래를 부르지만, 진짜 사나이들이 너무 많아져서인지, 진짜 사나이 중에서도 우리는 '멋진 사나이'가 되고자 한다. 역시 출처는 군대일까? 특히 해병대에서는 '멋진 사나이'를 이렇게 정의한다.

   
  멋있는 사나이 많고 많지만 
바로 내가 사나이 멋진 사나이
싸움에는 천하무적 사랑은 뜨겁게 (사랑은 뜨겁게)
바로 내가 사나이다 멋진 해병대

멋있는 사나이 많고 많지만
바로 내가 사나이 멋진 사나이 
명령에는 호랑이 대화는 정답게 (대화는 정답게)
바로 내가 사나이다 멋진 해병대
 
   

적에 맞서 싸움을 잘하고 2번을 강력하게 강조해도 모자랄 정도로 여인에 대한 사랑은 '뜨겁게'하는 사나이가 진짜 사나이 중에서도 '멋진 사나이'라는 것이다. 역시나 여기서의 '싸움'은 적과의 싸움, 나아가 나라 경제의 최전선에서 벌이는 산업 전쟁이어야만 한다는 전제가 있다. 그러나 간혹 이를 망각하고 언제 어디서나 지들이 천하무적인 줄 알고 빨간 옷 입고 설치는 이들이 문제가 되기는 한다. 

군대에서도 시대의 발전상을 반영하고 있는 부분이 있어 흥미로운데, 우렁찬 목소리가 상징인 '진짜 사나이'는 그것도 때와 장소와 상대(특히 뜨겁게 사랑해야할 여인)를 가려 정다움을 내보여야 '멋진 사나이'가 될 수 있다. 이런 사나이라야 '남성 넘버원'이다. 

다들 한 물 간 사나이 타령이지만, 의미심장하게도 이는 여전히 우리에게 내재된 사나이스러움이다. 나라 경제의 대들보로서 사나이, 곧 남성은 전투력을 배가시켜야 하고, 이는 나라를 지키고 내 부모와 처 자식을 지키는 원칙이다. 곧 경제력 있는 남성이 '진짜 사나이'고 여기서 좀 더 부드럽게 그러나 사랑은 뜨겁게 하는 남성이 '멋진 사나이'라는 사실, 이는 진리 아니면 자연접칙이다. 

대세는 꽃미남이라고? 짐승 아이돌이 꽃미남 얼굴에 근육질을 자랑하며 설쳐대지만, 얘네들한테서 돈을 빼놓으면 그냥 루저일 따름이다. 얼굴 파먹고 사는 것 아니고, 근육 뜯어먹고 사는 것 아니라는 것이 우리의 상식이잖은가? 요즘 대부분의 매체들이 연예인들을 내세워 근육질 꽃미남을 남성의 이상형으로 선전하고 있지만, 이는 지극히 상업적 노림의 일환일 뿐이다. 교묘한 경제력의 다른 이름이라고나 할까? 노골적으로 "돈 있냐"를 물어보기는 쑥스러우니, 우회하고 있을 뿐이다. 꽃미남은 타고나는 것도 어느 정도 있지만, 근육질은 솔찮이 돈을 들여야 하니 말이다. 

각설하고, 박노자 교수의 근간 중에 그다지 주목받지 않았던 책 한 권을 소개해야 하겠다. <씩씩한 남자 만들기>란 책이다. "한국의 이상적 남성성의 역사를 파헤치다"라는 부제가 달려 있는 이 책은 1890~1900년대에 집중적으로 만들어진 '이상적 남성성'을 추적하고 있다. 다양한 자료와 문헌을 통해서, 역사적 사실과 사건들을 통해서 근대와 함께 어떠한 남성성이 요구되어지고 만들어졌는지를 끄집어낸다. 이를 통해 현대에 이어지는 '이상적 남성성'에 대한 '계보 캐내기'를 시도하고 있다. 

박노자 교수는 '남성성-남자다움에 대한 사회적 이상'을 "생물학적인 남성다움을 둘러싼 사회적 구성물, 복잡한 권력관계의 망에 의해 지탱되고 지배적인 문화의 틀과 이데올로기를 통해 구체화되는 패러다임"으로 정의하면서 '남성다움의 담론'의 역사를 추적한다. 

1890~1900년대 세계 제국 열강의 위협과 왕조의 존망의 위기 앞에서 서구 근대적 남성성에 대한 지향이 어떻게 우리에게 적용되었는지를 중심으로 하면서, 이전 시기의 유교주의에 입각했던 지배계층의 전통적 이상적 남성성, 이와는 다른 측면을 보이는 일반 서민의 이상적 남성성과 대비하고 있다. 이를 통해 근대화와 함께 형성된 이상적 남성성은 국가에 대한 자기희생적 정신을 바탕으로한 정신적인 힘(전장에서 죽을 태세)과 신체적인 힘(무쇠골격, 팔다리 민활)을 모두 구현하는 것이다. 이를 테면 부국강병을 위한 남성성을 강력히 요구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1890~1900년대 이루어진 이상적 남성성의 민족주의적 재구축은, 대체로 이 같은 가치들을 차용하여 왕조국가를 "민족/국민"으로 재정의하고 이전에 효라는 관념이 차지했던 최상의 지위를 "민족/국민"에 부여하는 한편, 여성에 대한 남성 지배의 구조는 근본적으로 손대지 않음으로써 이루어졌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전통과 근대의 접목을 통해 이상적 남성성 이데올로기의 성립을 예리하고 밝혀내고 있다. 

이는 꾸준히 그 논리와 수사를 변용하면서 지속되는데, 나라 존망의 위기에서 대두되었던 강인한 체력의 훈련된 민족 전사라는 이상형은, 박정희 시대를 거치면서 산업 전사로서 모습만을 바꾸게 된다. 조금씩의 변화는 있지만, 앞서 살폈던 대중군가(?)에서 보이듯이 오늘날의 진짜 사나이, 멋진 사나이, 스러움과 그다지 다르지 않은 이상적 남성성의 요구는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박노자 교수는 현대 한국의 남성성 '경제화'된 남성성으로 규정한다. "학력 자본의 소유자"와 "경제 능력의 소유자"가 이상적 남성성이라는 것이다. 학력과 경제력은 오늘날 거의 등가를 이루고 있는 현실에선 이는 곧 '경제력'으로 수렴되는 것이라고 할 때, 역시나 오늘날 남성들에게 요구되는 덕목은 경제력에 다름 아닌 게 되었다. 경제력 하에서 꽃미남도 되고 근육질 남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 변화라면 변화일 뿐이다. 

씁슬한 현실이다. 박노자 교수는 미래의 이상적 남성성으로 다소 엉뚱한 제안을 내놓는다. "바람직한 씩씩한 남성상은 배려하는 남자, 돌봄을 할 줄 아는 남성"이어야 한다는데, 나는 다소간 뚱~하다가도, 이내 수긍이 간다. "적극적인 배려의 생활은 상당한 체력을 요한다. 정기적인 운동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이런 점에서 배려는 과거의 근대적 이상들과의 단절이 아니라 발전적 계승이다."라며 자기의 주장을 강화하고 있다. 그렇게군. 이를 내식대로 해석하면 이상적 남성성도 이상적 여성성도 없어야 한다는 것이 아닐까 한다. 다만 이상적 인간성이 필요하다는 것은 아닐까? 

이 시대 여성만큼이나 남성도 피곤하고 힘겹다. 학력과 경제력으로 결정되는 경제력자 천하지대본은 이 시대의 인간성을 말살시키고 있잖은가? 이 시대의 진정한 루저는 180이 안되는 키의 남성이 아니라, 수천만원의 연봉을 받지 못하는 남성이다. 그녀는 다만 돌려 말했을 뿐인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상적 인간성을 찾는 것이다. 우리 한국의 남성들이여 인간이 되자. ㅎㅎ

 



 
 
 

가라타니 고진이 '근대문학의 종언'을 고한 이래, 혹자는 '문학의 위기'를 경솔한듯 한 누군가는 '문학의 죽음'을 말하며 애통해했다. 어쩌면 21세기는 모든 것의 '종언'을 고하는 시대인지도 모르겠다. 역사의 종언을 기점으로 이런저런 종언과 죽음에 대한 선언이 늘어간 것 같다. 그것은 사멸을 의미하기도 하고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기도 한다. 문학의 죽음은 문학의 사멸을 말하는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시작을 말하는 것인가? 

오늘날 문학이 죽었다고 운운하는 이들에게 진정으로 문학이 죽었길래 그런 소리를 하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혹여 오늘날 문학이라는 물건이 잘 팔리지 않아, 자신들이 죽게 생겨서 흔히 즐기는 문학적 기교로서의 표현이 아닐까? 어떤이는 거창해야할 문학이 심심풀이 땅콩 수준으로 떨어져버린 현실을 애통해하며, 죽음을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문학이 어느 시기를 기점으로 뚝딱하고 생기지 않은 이상에, '문학'이라고 하는 실체는 변해온 것이 사실이다.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한시도 같은 문학이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앞선 시대에서 김시습의 조선 최초의 한문소설은 '문학'이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 문학이지 못한 다종다양의 잡다한 글들이 그 시기에는 문학이기도 하였다. 이것은 문학의 범주가 변했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이렇듯 문학의 변해만 가는 것인데, 변하는 것에도 죽음은 있을 수 있겠지만, 아직 내 서가에 꽂혀있는 그 문학'들'을 보고 있노라면 아직은 살아있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생각건대, 글자가 남아있는 한, 혹은 그에 준하는 어떤 표기형식이 남아 있는한 문학은 그 말의 표면적 의미가 가지는 그대로 여전히 변화해 갈 것이다. 



 
 
 
15조원의 육체산업 - AV 시장을 해부하다
이노우에 세쓰코 지음, 임경화 옮김 / 씨네21북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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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국과 일본의 포르노 업체에서 한국인 네티즌을 상대로 고소를 해와 논란이 되고 있다. 자신들의 재산이 포르노 영상을 무단으로 인터넷에 유포했다는 죄목으로 말이다. 그 사실 자체는 부인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이 사건을 처음 맡은 경찰에서는 포르노 자체가 불법인만큼 그에 대한 지적재산권을 보호할 근거가 없다는 판단에서 수사를 하지 않기로 해 일단락되는가 싶었는데, 검찰에서 이를 번복하고 미국과 일본 업체의 고소를 다시 받아서 수사한다고 한다. 일차로 5만여명의 업로더들을 추려 고소했는데, 이번에 다시 추가로 수천명을 고소했다고해서 재삼 논란이 커지고 있다.  

그간 나는 미.일 업체가 고소한 업로더에 해당되지는 않기에 이번 고소에 대해 긴장하거나 하지는 않지만, 고소당한 이들의 시혜를 어느 정도 받아왔기에 이번 논란과 검찰의 수사결과에 주목하고 있다. 내심으로는 계속해서 이 시혜를 누렸으면 하지만, 또 한편에서는 이번 논란을 계기로 포르노 및 성인 비디오물에 대한 사회적 법적 인식을 재고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미.일 업체는 자신들의 지적재산권인 포르노 영상을 무단으로 인터넷에 유포하는 한국네티즌으로부터 피해를 입었다는 주장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의 법적 테두리 안에서는 그 피해를 보전해야할 이유는 없어보인다. 지적재산이라고 주장하는 포르노 자체가 불법임으로 인터넷 등에 유포하는 행위는 형사적 불법행위일 뿐이지, 지적재산에 대한 침해의 불법은 성립할 여지가 없는 것이 당연해 보인다. 이러한 점에서 경찰은 수사하지 않겠다고 결정한 것일터다. 그러나 검찰의 생각은 다른 것 같다. 나로서는 법률적 지식이 거의 전무하므로 어찌 되가는지의 추이에 주목할 뿐이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대한민국의 성인남성치고 야동이라고 일컫는 이 불법 포르노 영상을 보지 않은이를 찾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일본의 AV를 보지 않은이 나오라고 한다면, 난 나가지 못할 것이고, 아오이 소라를 아느냐는 물음에는 눈을 크게뜨고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여하간 우리 생활속에서 마음먹고 이 영상들을 찾는다면, 몇 분 걸리지 않고 아주 쉽게 찾을 수 있다. 중고생들의 접근도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우리의 인터넷은 야동으로 넘쳐나고 있지 않은가? 

이러한 현실에서 현재 불법으로 묶어놓고 있는 포르노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필요하지 않은가 생각한다. 굳이 표현의 자유 운운할 필요 없이 변화된 사회 현실 속에서 구시대적 잣대만을 들이대기는 어려운 노릇이다. 미국이나 일본만큼은 아니지만(구체적으로 확인할 수는 없지만) 우리 사회는 어느 정도 성적 개방이 이루어진 상태고, 성에 대한 인식도 크게 변화해온 것이 사실이다. 일본에서는 AV로 대표되는 보다더 노골적인 영상(모자이크 처리된 영상)까지를 허용하고 있다. 어디까지를 보여줄 것인가를 놓고 생각할 때, 나는 보여주지 못할 것이 무엇인가하는 의문을 갖지만, 우리 사회의 합의가 일말의 변화가 있으리라고 생각할 때, 현재의 불법에 대한 기준은 분명히 진일보해야 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청소년들의 성인 영상물 접근을 일체 차단해야한다고도 생각지 않는다. 기존의 온갖 야동들이 우리들의 젊은 시절 성적 인식에 어느 정도 왜곡을 가져다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그외의 영상물들이 아주 바람직한 인식을 준다거나, 그러한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전혀 많은 것이 아니다. 어쩌면 우리 청소년들의 성적 인식을 키운 것은 팔할이 포르노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현실인 것을 아닐까 의심된다. 만약 그러하다면, 내용을 좀더 달리한 영상물을 제작 보급할 수 있도록 변화의 노력을 하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너무 앞서간 얘기지만, 섹스에 대한 인식과 방법을 보다 바람직하게 이끌어 줄 영상물이 나올 수도 있다고 본다. 

2002년 일본에서 출간된 『AV산업-1조 엔의 메커니즘』(이노우에 세스코)이란 책이 최근 『15조원의 육체산업-AV시장을 해부하다』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출간됐다. 일본에서는 15조원에 육박하는 시장을 형성한 이 AV가 산업으로 인식되고 있다. AV 뿐만 아니라, 섹스산업이라고 통칭할 수 있는 매매춘 등을 포함한 여타의 것들을 헤아릴때는 가히 천문학적인 액수의 거대한 산업이랄 수도 있을 것이다. 한국의 현실 또한 그다지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일본에서도 그러한 시장은 본격적으로 탐구하고 연구한 책들은 그다지 많지 않은 것으로 안다. 저자가 밝히듯이 그것은 뭐하러 취재하고 다니느냐는 주변의 물음을 수차례 들어야했을 정도라고까지 한다. 그러나 저자는 이미 산업이라고 일컫을 정도로 성장하고 우리의 생활에 밀접하게 연관된 AV 시장을 연구하고 해부하면서 이에 대한 인식과, 그 안에 가려진 불합리함을 개선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함을 인식하고 이 책을 펴냇다고 한다. 

이 책에서는 그간의 일본 성인 비디오가 어떻게 형성되었고 어떻게 거대한 시장을 형성하게 되었는지, AV의 간략한 역사를 살펴보고, AV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어떠한지를 조사한다. 그러부터 AV업계가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를 추적한다. 또한 현재의 AV에는 어떠한 문제들이 있는지를 파헤친다. AV에 만연한 성폭력과 강간 등의 폭력적 성문화, 나아간 그 안에 내재된 AV 여배우들에 대한 반인권적 행태, 그것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동참하는 AV 소비자들의 인식의 문제들을 지적한다. 이를 토대로 저자는 AV 시장이 어떻게 변화해야하고 또한 새로운 성문화를 창출하기 위한 과제를 제시하며 마무리한다. 비록 간략하고 부족하긴 하지만, 나름의 의미를 지닌 저서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현실에서는 아직 시기상조라고 할 수 있지만, 범람하고 있는 불법 야동들을 그저 막으려만 하는 것은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밖에는 안된다고 볼 때, 좀더 이른 시기에 좀더 변화된 기준을 갖고 판별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 적합한 기준이 무엇일지 제대로 논의되고 있지도 못한 현실은 여전히 왜곡된 성문화를 우리 사회 어둡고 칙칙한 곳에서 불법적으로 체험하는 범죄자들만 양산하는 것은 아닐까? 여하튼 이번 포르노 유포 논란이 우리 사회의 변화된 성인식을 재검토하여 보다 바람직하고 시의적절한 성문화 창출을 위한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saint236 2009-09-16 14:59   댓글달기 | URL
하하! 아오이 소라! 유명한 분이시죠. 아마 님의 태그 때문에 "아오이 소라"를 검색하시는 분 중에 분명히 당황하실 분이 있을 것입니다.^^

멜기세덱 2009-09-16 19:20   URL
파란 하늘이란 뜻이래요. 아름답지 않습니까? ㅋㅋㅋ

마노아 2009-09-16 15:02   댓글달기 | URL
그런데 뜬금 없이, 서재의 저 여인네는 누구인가요? 소용녀가 딱! 떠올랐어요.

멜기세덱 2009-09-16 19:22   URL
맞아요. <신조협려 2006>에서의 소용녀에요. 양과는 황효명이 맡았는데, 나이차이가 엄창나보여서리...ㅋㅋ
너무 예뻐서 찾아봤더니 이름이 유역비, 선검기협전, 천룡팔부에도 출연했더군요. 중국과 일본에서 음반도 내고 가수로 활동했대요. 우리나라는 안 오는지 몰라요.ㅋㅋ 천룡팔부의 왕어언, 요새 이거 보고 있어요...ㅋㅋㅋ

Jade 2009-09-16 15:33   댓글달기 | URL
멜기님이 간만에 올리신 리뷰가 AV책이라니....어쩐지 웃음이 나와요 ㅋㅋ

멜기세덱 2009-09-16 19:23   URL
AV보고 웃으면 음...쫌 변탠데...ㅋㅋ

이매지 2009-09-16 16:45   댓글달기 | URL
멜기님의 오랫만의 글이 야동을 허하라라니 ㅎㅎㅎㅎ
저도 어쩐지 재미있는 걸요 ㅎㅎ

멜기세덱 2009-09-16 19:24   URL
야동쯤이야...뭐...건전한 야동이 나라를 살린다는.....ㅋㅋ

마늘빵 2009-09-17 00:22   댓글달기 | URL
오랫만에 글 쓰셨는데 그 동안 AV 본 거 아녀요? =333

아오이 소라는 내한 때 하도 언론에서 떠들어서 누군가 찾아보고 알았어요. 정말요.

멜기세덱 2009-09-17 00:59   URL
흥!!! 그 소릴 누구보러 믿으라고?ㅋㅋ

순오기 2009-09-17 00:39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메인에 뜬 이름이 반가워서 로그인했는데~ 잘 사십니까?
AV가 뭔가 했어요~ ^^

멜기세덱 2009-09-17 01:00   URL
제가 그나마 할 줄 아는게, 그냥저냥 사는겁니다. 자알 살지는 못하고요...ㅎㅎ
평안하시죠? ㅎㅎ

고고씽휘모리 2009-09-17 09:08   댓글달기 | URL
AV배우들은 한국사람이면 누구나 봤을 듯..
길바닥에 막 뿌려져 있잖아요.
오빠 전화주세요 하면서 ㅎㅎㅎ

막는다고 막아지지도 않을 일이고,
다 자란 성인이 저런거 본다고 그대로 하려고 할 일도 아니고 보면..

멜기세덱 2009-09-17 21:08   URL
그대로 할수도 있겠죠.ㅎㅎㅎ
어쩔 수 없으니 그냥 내비둬, 이런건 아니에요.
말하자면, 굳이 이걸 어째야 하느냐, 이런 것에 의문을 갖는 거죠.ㅎㅎ

알리샤 2009-09-18 08:55   댓글달기 | URL

음-그러니까 멜기님은 음화반포죄로 처벌하는 형사법의 규정이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하시는거죠? ^^
업자들이 포르노를 가지고 지적재산권 주장을 하고 있는지는 몰랐어요. 저작권의 보호대상이 사상,감정의 창작적 표현임에 주목한다면 단순 상업적인 성격이 매우 강하고, 성적호기심을 자극하는 정도에 그치는 표현물인 포르노를 저작권의 대상으로 보기는 좀 어렵지 않을까 생각해요. (좀 기계적인 접근이죠?) 서사구조가 있다면 또 달라지겠지만요. 그런데 대체로 포르노가 가진 '전형적인' 스토리는 창작성을 인정받기가 어려워요.(이러니까 야동 즐겨보는 사람같네! ☞☜) 뭐가 포르노고 예술인지 사실 그 경계 자체가 모호하기는 하지만. ^^

태그가 인상적이네요. 후훗.

멜기세덱 2009-09-17 21:16   URL
제가 지적재산권이라고 표현했는데, 정확하게 그들이 고소한 내용이 그것인지는 잘 모르겠네요. 아무튼 그런 종류의 권리를 주장하고 있는 것은 확실합니다. 포르노를 포함한 그런 종류의 영상들이 창작성이 떨어진다는 건 상대적인 것이겠죠. 전형적인 서사구조를 보여주는 것들에는 대중문학에서도 여럿 볼 수 있구요. 아무튼 그것은 또다른 논의가 필요하겠구요.
제가 생각할 때 궁극적으로는 어떠한 표현의 형태라도 규제되거나 제한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지만, 현재에 있어서 그것을 극단적으로 주장하지는 않습니다. 음란물에 대한 기준이 좀 유순해질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죠. 일본처럼 시민사회에서 자체적인 심의 기구 같은 것들이 만들어져 그러한 기준을 정하게 하는 것도 필요할 것 같구요.(일본의 경우라고 해서 그것이 100% 민간기구라고 하기는 어렵겠지만요.)

알리샤 2009-09-17 22:43   URL

영상물이라면 저작권을 이유로 전시,배포권 침해를 주장했을 가능성이 커요.
지적재산권은 크게 특허,상표,의장,디자인 등 아이디어 보호등을 내용으로 하는 산업재산권과, 사상이나 감정의 창작적 표현을 보호하는 저작권으로 나누어볼 수 있는데. (무엇이 아이디어고 무엇이 표현인지 그걸 명확히 구분하기는 사실 어렵습니다.) 말씀하신대로 포르노의 창작성에대한 논의는 필요한 것이겠고요. (사실 이 부분이 굉장히 흥미로워요!)

음란물에 대한 기준이 유연해질 필요가 있다는 점엔 동의하는데, 문제는 어떻게, 어디까지 이겠군요. 사실 음란물의 성적 표현의 하한이 어디까지 열려있어야 하는지, 구성원들의 합의 아래 합법성 안으로 포섭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감이 잘 안와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멜기세덱 2009-09-18 00:24   URL
그나저나....
커피는 언제 사 주실 거에요? ㅋㅋㅋ
곧 추운 겨울이 다가온답니다....ㅋㅋ

심술 2009-09-17 21:40   댓글달기 | URL
av랑은 관계없는 얘긴데 사전에서 용호상박을 찾아보면 '용과 호랑이가 싸운다는 말로 강자들끼리의 다툼을 가리킨다' 라고 돼 있는데 실제로 사람들이 쓰는 걸 들어 보면 막상막하나 난형난제랑 같은 뜻으로 더 많이 쓰거든요. 왜 이런 일이 생기죠?

멜기세덱 2009-09-18 00:21   URL
저한테 이런 걸 물어보시면....ㅎㅎ 곤란한데요....ㅋㅋ
용호상박의 정확한 출처는 제가 모르겠지만, 용과 호랑이가 싸울 땐 쉽게 승부가 나기 어렵기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용의 전설 속의 동물이고, 호랑이도 흔히 산신과 같이 인식되었으니까요. 용호상박과 비슷한 말로 양웅상쟁(兩雄相爭)이란 것을 언급하고 있는 것을 보면 확실하죠. 승패를 가리기 어려운 강자들의 싸움은 막상막하의 승부가 될 것이고, 용과 호랑이는 결국 난형난제가 되겠죠. 의미의 차이는 조금 있겠지만 문맥에 따라 비슷한 의미로 사용될 수 있다고 보여지는데요.ㅎㅎ

가넷 2009-11-04 01:41   댓글달기 | URL
제가 생각하는(?) 깊은 내용을 담은 것 같지는 않네요. 그래도 궁금하긴 하군요.

그나저나, 유역비는 국내에도 팬들이 많은 모양입니다. 선검기협전을 본 적이 있는데, 다른 작품에서 보다 정말 이쁘게 나오더라구요. 그런데 연기는 아직 별로인 것 같아요. 뭐 중드가 손발 오그라들게 만드는 요소가 있어서 더 그렇게 느끼는지도 모르겠네요;;;
 
불멸의 신성가족 - 대한민국 사법 패밀리가 사는 법 희망제작소 프로젝트 우리시대 희망찾기 7
김두식 지음 / 창비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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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사법계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그들은 현재 굴욕까지는 아니더라도 시련 혹은 당혹의 시간을 맞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 틀림없다. 우리사회에서 사법부에 대한 불신은 뿌리 깊지만, 한때의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우야무야 넘겨오면서 그럭저럭 넘겨온 것이 사실이고, 그 사이 조금씩의 변화는 있었지만, 어쩔 수 없이 많은 부분들은 가리워지고, 여전히 많은 시민들이 그들을 불신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또 한 번의 폭풍이 닥쳐왔으니, 그들이 당혹해 할 것은 분명한 것이다. 신영철 대법관이 일으킨 그 파동은 사법부 전체를 뒤흔들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으로 검찰은 끝모를 굴욕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는 지금, 사법계는 당혹스럽고, 굴욕적인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또한 언제나 처럼 '이 시련의 시간'이 지나가면 괜찮을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늘 하는 얘기지만, 이 위기를 계기로 자성하고 반성하면 커다란 변화를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일지도 모른다. 

보수 정당과 언론에서는 뭐 별일 아니라고 여기는 듯하고, 진보 쪽에서는 또 대단히 야단이다. 뭐 그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어쨌든 이번 사태의 결론이 단순히 신영철의 사퇴, 검찰의 반성 등으로 매듭지어진다고 하더라도, 우리 사법계가 대단히 옳은 방향으로 변신하여 전국민의 신뢰와 사랑을 듬뿍 받게 된다고는 그 아무도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마당에 입 아프게 사법계에다 대고 떠들어봐야 그다지 변화하는 것은 없으니 답답할 노릇이다. 그게 그렇게 변화하기 쉬운 것은 아니니 그렇다고 조용히 입닥치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말이다. 어리석고 무모하고, 바보같은 노릇이지만, 자꾸자꾸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떠들고 지적해야 하는 것은 고금의 진리이되, 좋은 소리는 듣지 못하고 미움을 받는 일이어서, 큰 맘 먹고 덤비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어쩌면 김두식 교수도 그런 맘을 먹고 이 책 『불멸의 신성가족』을 펴낸 것인지도 모르겠다. 

김두식 교수는 우리의 사법계를 '신성가족'에 비유하고 있는데, 이는 마르크스의 언사를 따온 것이다. 이는 둘 다 그 말이 보이는 외면의 거룩함을 뒤로한 채 비판적 의미를 가지고 있어서, 썩 좋은 말은 아니다. 오늘날의 사법계가 말 그대로 신성한 어떤 것이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지들 스스로 무언가 신성한 것처럼 여기고 남들고 구분하며 지들끼리만 지지고 볶고 하는 행태를 비판하기 위한 것일 터이다. 이를 지나친 표현, 무례한 표현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적절하고 적확한 표현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이유를 대라고 하면, 그걸 몰라서 묻냐고 반문하기에도 딱 좋다. 여하튼 우리는 그들이 이룩한 '신성가족'의 외부에서 모든 것을 듣고 보고, 느끼고 체감하며 한편으론 부러워하면서, 한편으론 욕을 하면서 그렇게 저마다 그 특별나신 나리님들의 신성한 영역에 대한 공포를 가지고 있다. 

박원순 변호사가 이끄는 희망제작소의 <우리시대희망찾기> 프로젝트 중 하나를 김두식 교수가 맡아 내놓은 결과물이 바로 이 책이다. 이 프로젝트가 뭐 대단한 작업이고, 표방한 대로 그 희망을 찾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지금까지 교육, 노동 등의 다양한 영역에서 작업한 결과물이 나와 있고, 사법 영역을 다룬 이 결과물이 그 프로젝트의 7번째 작업이다. 김두식 교수의 주도로 이 작업은 사법계 안팎을 구성하는 다양한 사람들과의 인터뷰를 통해서 사법계의 '풍경'과 내면을 탐구하고 있고, 프로젝트 명과 같이 그러한 작업을 통해서 어떤 희망을 보기 위함일 터이지만, 이 책이 담고 있는 영역은 사법계의 다종다양하고 뿌리 깊은, 여전히 변하지 않고 있는 문제점들을 보다 깊이 있게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많은 이들을 상대로 하는 설문조사와는 다르게, 조사 인원은 적지만 보다 내밀한 부분까지 엿볼수 있는 조사방법을 택했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장단점이 있겠지만, 이 책이 보여주는 사법계의 문제점들은 그다지 신선하다거나 충격적이라거나 하지 않다. 또한 그리 내밀해 보이지도 않고 비밀스럽지도 않다. 왠지 우리 모두 다 아는 사실을 그저 나열한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확인해 주고 있는 것같다. 오히려 불쾌했던 점도 있는데, 그것은 애써 예전보다는 그나마 많이 나아졌다고 수차례 강변하는 언설이 곳곳에 있었다는 점이다. 예전엔 이렇게 나빴는데, 지금은 많이 좋아졌지만, 아직 이런이런 문제가 있다 정도에 그치고 있는 부분이다. 

우리가 뻔히 알고 있는 전관예우의 문제들, 당연히 알고 있는 브로커의 문제들, 드라마를 통해서 오히려 구구절절 드러나는 판검사가 부자집 아가씨를 찾는 문제들 등등, 뭐 뻔히 들어 알고 보아 욕하는 뻔한 문제들을 반복한 것이라는 비판도 가능해보인다. 그러나 문제는 문제고 그것을 재확인하는 데에서 오는 아픔은 배가되게 하는 책으로서, 그 나름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최후의 성역 법조계 최초 인터뷰"라는 데에 그 의의를 높이 사주기로 하자. 앞서 말했듯이 자꾸자꾸 떠들어 대고 욕을 해야 조금이라도 변화하니까 말이다. 

김두식 교수는 이 책의 말미에서 그간 많은 변화와 노력으로 뿌리깊은 악습과 관행을 벗어버리기는 했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문제들이 새삼 지적하면서, 그러한 문제들이 "서로 꼬리에 꼬리를 물며 연결된 까닭에 정확히 무엇이 뿌리인지 진단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대략 요약하면 그 뿌리는 "의사소통의 부재와 원만함이라는 신성가족 이데올리기"라고 지적한다. 그러니까 의사소통의 부재라는 것은 판검사나 변호사의 부족하기 때문에 그런것이고, 원만함의 문제는 '관계'에서 오는 문제라는 단순한 지적인데, 이게 그리 우리의 뇌리를 자극하는 어떤 뛰어난 지적과 냉철한 분석이라고 보기에는 심히 어려워만 보인다. 누가 그걸 몰라서 이 야단인가 말이다. 어쩌면 김두식 교수로서도 이런 결론이 쑥스러운 듯, 이 프로젝트의 결론 혹은 목표를 "억지로 찾아본 희망"이라 명명한다. 이 말은 어쩌면 희망이 없다에 다름아닐지 모르겠다는 뉘앙스다. 그렇게 억지로 찾아 내놓은 희망이란게, '시민'이라고 한다. 참 너무 억지로 찾은 것은 아닌지 모르겠고, 어쩌면 김두식 교수의 냉혹한 비판이 반어적으로 담긴 표현이 아닐까 하면서 혀를 내두리게 된다. 도대체 어쩌라는 거니? 

결국 이 못난 사회에서는 당연히 '사람'만이 희망이다. 그러나 그 모든 잘못과 죄악 또한 이 모든 '사람'들의 것이 분명하다. 사람이 변화하고 달라져야지만이 모든 것이 변화하고 새롭게 될 것이다. 어떻게 변화해야 하나? 검사에게 당당히 말을 건내라고? 고작 그것뿐인가? 어쩌면 이것은 일반 시민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무책임한 말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순간 불쾌해진다.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 사회의 뿌리깊은 사회구조적 문제 중의 하나가 이 신성가족에게도 예외가 아닌 사실을. 그러니까 우리가 변화해야 한다는 것은 근본적인 대안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런 소리는 누구나 다 한다. 그러니까 누구나 다하는 소리는 함께 같이 하되, 그것만 주구장창 떠벌이면 그건 전문가 쯤 되는 사람들에게는 좀 아니다 싶다는 거다. 구조가 바뀔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을 뱉어내어야 하잖은가? 여러가지 사법 개혁의 제도들을 마련해야 하잖은가? 배심원제의 도입, 판검사 임용의 개혁, 변호사의 확충, 기타등등, 기타등등. 결국은 '시민이 희망'이겠지만, 그건 너무 멍한, 그리고 당연한 결론이기에 아쉬움이 남는다. 역시나 아직은 요원하기만 한 이 신성가족의 해체가 아닐까 한다. 김명민이 열연했던 그 '불멸'한다는 이순신 장군도 수백년전 돌아가셨고, 드라마도 끝났는데, 이 '불멸의 신성가족'은 언제 멸하게 될까? 여전히 궁금하고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이니, 이 책을 읽고는 울화통만 터질 뿐이다.



 
 
반딧불이 2009-06-28 09:07   댓글달기 | URL
세댁님 오랜만에 오셨네요. 어여쁘고 앳된 처자까지 데리고... 울화통이 터지더라도 멸하지 않는 신성가족..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잘읽었습니다.

순오기 2009-07-06 03:00   댓글달기 | URL
아주 오랜만에 리뷰가 올라왔군요~ 블로거뉴스 특종이나 우수리뷰로 팍팍 밀어봅니다.^^
 

박연차 리스트니, 장자연 리스트니 뭐니 해서 시끌벅적하다. 우스갯말로 자연 사랑 못 받고, 연차 수당 못 받으면 이 시대의 진정한 오피니언 리더가 아니란다. 하여간 두 리스트는 아직 끝을 보일 조짐이 없다. 사실상 4월은 뜨거울 것으로 예상됐다. 날씨 얘기가 아니다. 예년에 비해 요즘 날씨가 덥다지만, 내주쯤이면 다시 예년 기온을 회복할 것이란다. 그보다는 4월 말쯤 있을 재보선 때문에 이미 4월은 당연 뜨거울 것이었다. 이명박 정권 1년에 대한 평가라는 큰 명목아래 수세에 몰린 야당은 대반격을 준비해오던 차에, 정동영 전 장관의 불연 재보선 출마 선언에 4월은 더욱 뜨거울 참이었다. 연차와 자연 리스트 때문에 사람들의 관심이 떨어진 상태에서, 올게 오고 말았다. 

며칠 전 민주당은 단호히 정동영에게 공천은 못 준다했고, 정동영은 기다렸다는 듯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토요일(11일) 경향신문은 이에 대해 "끝내 갈라선 鄭-丁"이란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뭐 내가 여기서 정치평론 하자는 것은 아니다. 하여간 이 소식은 민주당 뿐만 아니라 전 야권을 긴장케 하는 사건임에 틀림없다. 민주당의 내분은 반격을 준비하는 야권에게는 치명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여하간 이번 재보선은 예상 외의 다른 구도에서 그 결과가 주목된다. 대반격을 노렸던 야권이 그 구상대로 재보선에서 승리할 것인지, 아니면 민주당의 鄭-丁 갈등이 끝내 야권의 기대를 무너트릴지, 더욱 관심이 가는 것은 鄭-丁 둘 중에 누가 이기고 끝내 살아남을지이다. 

언론에선 이 둘의 갈등을 놓고 향후 결과에 대한 설들을 풀어놓는다. 과연 정동영은 제2의 이인제가 될 것인가? 정세균 대표가 지역구를 포기하면서까지 던진 승부수가 통할 것인가? 등등. 이번 재보선 결과에 따라 정동영이냐 정세균이냐 두 정 씨 중 하나는 골로 갈 가능성이 크다. 두 거물 정치인의 향후 정치생명이 걸렸다 해도 과언이 아닐것이다. 과연 어느 정씨가 오래 갈까? 

사실 이 두 사람은 정씨이지만, 같은 정씨는 아니다. 각종 언론 매체에서 이 둘을 구분하는 것으로 그들의 성을 한자로 표기하는 것을 보면 이 둘은 전혀 같은 성씨가 아닌 것이다. 정동영은 鄭씨이고 정세균은 丁씨이다. 대표적인 우리나라 정씨들이다. 아참 정씨에는 程씨도 있다. 정씨가 이 3개 뿐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대다수의 정씨가 이 셋중 하나다. 丁씨 중에는 다산 정약용이 이 정씨다. 鄭씨에는 누가 있지? 잘 모르겠다. 난 정씨가 아니니까. 

그런데, 鄭도 정, 丁도 정이면 잘 구분이 안 간다. 우리나라에 丁씨의 "본관은 나주(羅州), 창원(昌原), 영광(靈光), 의성(義城) 등 10여 본"있단다. 鄭씨에는 "경주(慶州), 동래(東萊), 연일(延日), 온양(溫陽), 진주(晉州), 하동(河東), 해주(海州) 등 120여 본"이 있다. 헐, 鄭씨가 한참 많구나. 아무튼 같은 鄭씨여도 본관은 저마다 다르다. 그런데다가 한자가 다른 정씨면 말해 무엇하리. 

여기서 이 두 정씨를 구분하는 아주 좋은 방법이 있어 소개한다. 그 둘의 성씨에 어쩌면 이 둘의 미래에 대한 예언이 담겨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먼저 정세균의 丁씨의 발음은 [정]이다. 그런데, 정동영의 鄭은 [정:]이다. 이 둘의 차이는? 그렇다 丁은 짧게, 鄭은 길게다. 그런데, 미묘하지만 길고 짧은 것 뿐만 아니라, 발음 자체에 미묘한 차이가 있다. 

깊게 가자면 전문적인 부분까지 언급해야 하겠지만, 간단히 말해, 우리나라의 자모에 대한 발음은 시대에 따라 조금씩 변화해왔다. 바로 언어의 역사성이다. 그러니까, 지금은 [ㅓ]발음과 한 100전의 [ㅓ]발음은 조금 다를 것이다. 국어학자들에 의하면 지금은 모두 'ㅓ'로 표기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발음이 약간씩 다르다는 것이다. 그 다른 발음을 표기에는 반영하지 않고, 다만 발음상에 장음 표시를 함으로써 구분하고 있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이 [ㅓ]발음이다. 대부분의 'ㅓ'는 짧게 발음하지만, 정동영의 鄭은 길게 발음하되, 이는 단순이 [ㅓ]를 길게하는 것이 아니라, [ㅡ]와 [ㅓ] 사이에서 길게 발음해야 한다. 쉽게 말하면, 정동영의 鄭은 [즈엉-] 정도로 구수하게 발음해야 한다. 장음 표시가 된 [ㅓ] 발음이 대충 이와 비슷하다. 뉴스에서 아나운서들이 이런 발음을 가끔 정확하게 하는 것을 보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없다'의 발음이다. 이를 딱부러지게 [업따]로 발음하는 아나운서라면 이는 제대로된 아나운서가 아니다. 대부분의 아나운서들은 애써 정확히 발음한답시고 [읍-따]로 힘주어 발음한다. 

재밌는 것은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어'를 명확히 구분해서 발음하지는 않지만, 무의식적으로 잘 구분되는 단어가 있다는 것이다. 그게 바로 '거지'다. 내가 볼 때 거지를 [거지]라고 발음하는 사람은 잘 보지 못했다. [거:지]라고 발음하거나 혹은 [그:지]라고 발음하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그렇다. '거지'는 [그어-지]다. 거지를 [거지]라고 하면 왠지 거지같지 않다. 이런 [그~지] 같은 넘을 봤나 해야, 진짜 거지를 본 것만 같다. 

우리 일상에서는 잘 구분을 하지 않지만, 이런 예들이 의외로 많다. 더불어 장음으로 구분되는 단어들도 몇몇 있다. 밤, 배, 눈 등등이 그렇다. 어두운 밤은 무서우니까 빨리 지나라고 짧게 발음하고 먹는 밤은 맛있으니까 오래 먹어야하니 길게 발음한다. 저 하늘위에서 내리는 눈은 그 먼데서 오자면 얼마나 오래 와야 하겠는가? 그러니 길게 발음하고, 보는 눈은 작으니까 짧게 발음한다. 배는 좀 많다. 불룩 튀어나온 배는 보기도 좋지 않고 건강에도 나쁘니 쏟 들어가야 좋다. 그러니 짧게 발음한다. 저 멀리 지나가는 통통 배는 조각배모냥 작고 작으니 이도 짧게 발음한다. 먹는 배는 그 얼마나 달고 맛있는가? 누가 뺏어먹을까 두려워 그 발음은 짧아야 한다. 어른에게 절할 때의 배는 몸가짐을 바로하고 천천히 예를 표해야하므로 경망스럽게 후딱 해치워서는 안되는 천천히 길게 발음하고, 한 배, 두 배, 자꼬만 갑절로 많아지는 배는 아시다시피 길게 발음한다. 이런 예들이 허다하지만 이만 줄인다. 

자! "끝내 갈라선 鄭-丁"을 제대로 발음해 보자? 해 보았나? 정답은 "끝내 갈라선 [즈엉~]과 [정]"이다. 잘 했는가? 새삼스러운 것이지만, 우리 일상에서 이런 미묘한 발음차이 하나만도 잘 기억하고 사용하면, 나쁠 것은 없을 것 같다. 그렇다고 거기에 목숨걸 필요는 없다. 아참, 내가 볼 때, 이름만 놓고 보면 이번 재보선 이후 정동영은 끈질기게 살아남을 것만 같다. 丁은 짧고 鄭은 기니 말이다. 맞다. 헛소리다.



 
 
라주미힌 2009-04-12 10:54   댓글달기 | URL
재밌넹...

무스탕 2009-04-12 11:37   댓글달기 | URL
그~으지 같은 즈엉~동영이 읍~따면.. 이라고 丁이 생각했겠어요. ㅎㅎ
재밌습니다 :)

근데 참 오랜만이세요!

고고씽휘모리 2009-04-12 14:19   댓글달기 | URL
오래간만이예요? 잘지내시죠?
역시 정치란 똥통에서 뒹굴어도 길기만 하면 되는 것일까요?

순오기 2009-04-12 17:38   댓글달기 | URL
오랜만이네요~~ 여전히 잘 살고 있으며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믿어도 되는 거죠?^^

마노아 2009-04-13 02:05   댓글달기 | URL
오, 재미난 예시와 함께 오셨군요! 이런 특강(?) 반가워요!

마늘빵 2009-04-13 10:58   댓글달기 | URL
재밌는 한글 수업이었어요. ㅋㅋ 근데 오늘 아침에 그 좃선에서 의원들을 대상으로 소송을 걸었다는 기사가... 으음. 장자연 사건은 왜 수사 안해 자꾸.

승주나무 2009-06-20 16:30   댓글달기 | URL
제목 없음

안녕하세요. 승주나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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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의사를 댓글로 밝혀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강요는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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