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역 최고령 시인은 누구일까? 그는 바로 이기형 시인이다. 이기형? '아 「낙화」를 쓴?' 시인은 이형기 시인이다. 이형기 시인은 2005년에 작고했지만, 이기형 시인은 그 보다도 연배가 높다. 1927년 생이니까 올해 아흔세 살의 老老 시인이다. 그럼에도 그의 이름은 조금 낯설다. 아무튼 최고령 시인의 '늙지 않은' 시혼이 다시 불탔다. 가장 '늙은' 시인의 아흔 둥이가 태어났으니, 이건 망령일까? 그렇다 하더라도 새생명은 귀하다. 그의 시도 그렇다. <경향신문>(2009년 1월 17일)에서는 단신으로 이 소식을 전했는데, <연합뉴스>에 보다 세세한 소식이 있어 옮겨 놓는다. 더불어 얼마 전에 고은 시인은 산문집 출간 소식을 전한 바 있는데, 고은 시인의 시작 50년의 정수를 김형수 시인이 엮은 시선집 『오십 년의 사춘기』가 출간됐다는 소식도 함께 옮긴다. 

신작 낸 최고령 시인 이기형
"젊은 시인들, 통일문제에 관심 가졌으면" 

 "이 나이에도 여전히 매순간 시가 터져나옵니다. 죽는 순간까지 시를 쓸 것입니다"
'통일시인' 이기형 시인이 열 번째 신작시집 '절정의 노래'(들꽃 펴냄)를 출간했다. 올해 우리 나이로 아흔세 살이 된 이씨는 지난해 시집을 낸 황금찬 시인보다도 한 살이 많은 국내 최고령 현역 시인이다.

망백(望百)을 넘은 나이가 믿기지 않을만큼 풍채도, 목소리도 정정한 이씨는 "'해연이 날아온다' 이후 불과 1년 9개월 만에 내는 시집이라서 태작이라 빈축을 사지나 않을까 전전긍긍했다"며 "그러나 단 한 편도 억지로 쓴 것이 없고 스스로 터져나온 것들"이라고 말했다.

1917년 함경남도 함주에서 태어난 이씨는 도쿄 일본대학 예술부 창작과에서 2년간 수학한 후 1947년 '민주조선'지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몽양 여운형 선생 서거 후 작품 활동을 중단하고 칩거하다가 33년 만인 1980년 다시 시작 활동을 재개했다.

"남북이 분단되고, 친일정권이 들어선 잘못된 세상에서는 글을 쓰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러나 60세를 넘기고 친구들이 하나둘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 시라도 남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어머니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시 속에 담기 시작했던 시인은 이후 재야 민주화 통일운동에 참여하며 현실참여적인 시를 꾸준히 발표했다. 1989년에는 시집 '지리산'으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되기도 했다.

북쪽에 어머니와 처, 아들, 딸을 둔 채 월남한 시인에게 가장 큰 시적 관심사는 '통일'이다.

통일에 대한 염원은 이번 시집에서도 짙게 묻어난다.

    오늘을 사는 형제들아
    언제까지 분단 순응이 미덕일까
    사천만이 손에 손을 잡고
    막힘의 봇물은 터 주고
    통일과 평화의 성문은 열어 젖혀야 할지니
    백두 성산 해돋이를 가슴에 품고 떠난다
('해돋이를 가슴에 품고' 중) 

이미 백발이 된 북쪽 딸은 2003년과 2005년 시인이 평양을 방문했을 때 만났지만 어머니와 아내는 분단 이후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채 저 세상으로 보내고 말았다.

    조국 해방 싸움에 생이별 36년만에
    슬픈 사연 많은 삶을 접고
    차마 감아지지 않는 눈을 감았다고
    망백 나이 허망한 세상
    그대 높은 혼령 앞에
    구만리  장천을 바라 터지는 가슴
    내 뭔 말 하리오
('북쪽 아내에게' 중) 

경색된 남북관계와 자본주의의 위기에 대한 날선 비판을 시집 속에 담아낸 시인은 요즘 젊은 시인들이 통일을 비롯한 사회문제에 좀 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이 못내 아쉽다고 한다. 

 

 

 



"젊은 시인들은 내 시를 보고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저는 요즘 시인들이 포스트모더니즘에 침잠해서 헤매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문학적 재주가 뛰어나면서도 역사, 사회문제에 무관심한 것은 학교에서부터 인성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에요"
시인은 해방 후 동신일보, 중외신보, 민주조선, 농민신문 등에서 기자 생활을 하며 김구, 이승만 등 임시정부 요인들과 김남천, 임화, 안회남 등 월북문인들을 가까이 지켜봤기 때문에 우리 근대사의 산 증인이기도 하다.

"그 시대를 경험한 몇 안 되는 사람으로서 이를 증언해야할 책임감을 강하게 느낍니다. 주위에서 회고록을 쓰라는 권유도 많은데 아직도 다른 일이 많아서 선뜻 손대지 못하고 있네요. 꼭 써야할 이야기가 많기 때문에 언젠가 꼭 기록으로 남길 작정입니다"
시인은 "젊은 시절부터 술, 담배를 일절 하지 않고 1초도 쉬지 않고 움직이며, 늘 낙천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건강 비결"이라며 "여러 문학행사와 통일행사에 참여해 낭송했던 80여 편의 기념시를 모아 올 봄 새로운 시집을 한 권 더 묶어낼 예정"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2009.01.16. 

<고은 詩의 정수를 만나다>
시선집 '오십 년의 사춘기' 출간

고은 시인의 시력(詩歷)은 한국 현대시 역사의 딱 절반이다.

그 반백 년의 기간에 시인이 이뤄낸 문학적 성취는 그 깊이도 깊이지만 양에 있어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간간히 쓴 소설과 산문, 평론까지 포함하면 고은 시인의 저서는 150여 권에 이르기 때문에 뒤늦게 고은이라는 산에 올라보려고 마음 먹은 독자들도 어디서부터 출발해야 할지 헤매기 십상이다.

'오십 년의 사춘기'(문학동네 펴냄)는 이렇게 만만치 않은 고은 문학의 성취를 후배 문인이 고른 고은 시의 정수(精髓)들을 통해 살펴볼 수 있게 한 시선집이다.

시인 겸 소설가, 평론가인 김형수 씨는 고은 시인이 1960년 펴낸 첫 시집 '피안감성'부터 지난해 등단 50주년을 맞아 내놓은 '허공'까지 전작을 통틀어 "그의 문학적 유골로 추정될 몇 토막"을 추려낸다.

고은 시인의 50년을 세 시기로 나누고 여기에 고은 시인의 역작인 '만인보' 수록 작품들을 따로 묶어 총 4부에 걸쳐 66편의 시를 담았다.

'허무주의'로 특징 지워지던 시인의 초기 시에는 생에 대한 실존적 고민이 깊게 자리잡고 있다면 중기라고 할 수 있는 1970-1990년대의 시에는 뼈아픈 현실 인식이 반영됐다.

중기 시 가운데에는 2002년 김영사에서 출간한 고은 전집에는 빠졌던 '벽시'도 수록됐다. 1980년 '실천문학' 창간호에 '무단'이라는 가명으로 발표된 시다.

    오오 두근거림으로 그리움으로 오랜 세월 흘긴 눈 원한으로
    우리가 모든 거짓과 깡패 쫓아낸 자리에
    아픔의 시여 아픔으로 읽는 시여 진리의 울음이여
    어떤 신놈도 어떤 우상놈도 지우지 못하는 민중의 시가 되자
    시인이여 마지막 진실이여
    오오 어이할 수 없이 열렬한 향기의 인내인 밤이 가면 새벽인 담벼락이여
('벽시' 중) 

김 시인은 "국민적 애송시가 된 것들을 찾아서 모으면 되겠다 싶었는데 막상 해보니 오판이었다"며 "답답한 시대의 기슭에서 귀신이 쓴 시를 발견한 느낌이던 옛 감동의 기억들을 줄 세우기가 얼마나 어려웠는지…"하고 후기를 밝히기도 했다. 

<연합뉴스> 2009.01.14.

김영사에서 2002년에 펴냈다는 고은 전집을 알라딘에서 찾지 못 했다. 어쩌면 그것을 찾지 않아야하는지도 모르겠다. 이미 그것은 전집이 아닌 셈이 되어버렸으니까. 지금부터 좀더 착실히 그러면서도 빠르게, 고은 시인의 전집을 준비해야하지 않을까? 고은 시인의 그 방대한 시적 결과들만 아울러도 엄청난 양이 될 것이다. 그래도 한국 시문학사에 있어 걸죽한 한 이름임에는 분명하니까, 그의 오롯한 전집을 기다리는 것은 그에 대한 예의에 다름이다. 아직 살아계신 분한테 이 무슨 망발? 아참, 비슷한 의미에서 신경림 시인의 전집도 이른감이 있었다. 제대로된 전집이 아직 나올 수 없다는 사실, 그것이 감사한 일임은 분명하다. 

 <고은 시인의 세상 보기> 
고은 에세이 '개념의 숲' 출간

"광기 : 예술에 반드시 필요하다. 권력에 반드시 불필요하다." "시 : 시는 17세부터 나의 북극성이다. 시는 나에게 길을 걸어가는 자이게 한다."
고은 시인이 여러 개념들에 대한 단상을 정리한 철학 에세이 '개념의 숲'(신원문화사 펴냄)을 출간했다. 

이 책에는 250여 개의 단어에 대한 시인만의 사유가 간결하게 담겨있다.

시인은 '절대'라는 단어에 대해 "만약 절대에 갇혀 있다면 이 세계는 얼마나 부자유하겠는가. 다행히도, 대지에 절대가 없는 것처럼 인간에게 절대가 없다. 절대는 무(無)이다. 있는 것은 오직 상대를 벗어나려는 바닥 모를 욕망이 있을 뿐이다"라는 단상을 풀어냈다.

'정의'에 대해서는 "정의는 힘인가. 아니, 정의는 가장 힘 있는 꿈인가.", '미래'에 대해서는 "너무 많이 미래에 내맡겼구나. 미지의 미래야말로 얼마나 나를 도취하게 하고 얼마나 나를 거짓말쟁이로 만들었는가."라고 말한다.

'인간'이라는 제시어에 대해서는 "인간을 정의하지 말자. 인간은 개념화가 불가능하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번 에세이집에는 시인이 그간 일간지에 연재했던 산문과 함께 지난해 시인이 등단 50주년을 맞아 열었던 그림전 '동사를 그리다'에서 선보인 35점의 그림도 수록돼 있다. 

<연합뉴스> 2009.01.09.

'고독은 인간에 남겨진 유일한 육친'… 고은式 개념사전
고은 에세이집'개념의 숲'… 김형수가 엮은 고은 시선집 '오십년의 사춘기'도 

시집 50여 권을 포함한 저작이 200여 권을 헤아린다는, 그것을 셈할 시간에 차라리 무언가를 쓰거나 읽는다는, 다산성의 문필가 고은(76) 시인이 저작 목록에 또 두 권의 책을 보탰다. 에세이집 <개념의 숲>(신원문화사 발행)과 평론가 김형수씨가 엮은 그의 시선집 <오십년의 사춘기>(문학동네 발행)다.

<개념의 숲>은 수년 전 프랑스의 한 출판사에서 고은 시인을 포함한 세계의 지식인 20여명에게 250여 개의 개념어를 지정해주고 그 풀이를 요청해와 만들어진, 일종의 '고은 식 개념어 사전'이다. 이 사전에는 고은 시인의 시적 상상력의 토대를 유추할 수 있게 하는 절묘한 비유와 수사의 흔적이 아로새겨져 있다.

그는'고독은 인간에게 남겨진 유일한 육친이다'(고독), '인간에게 남은 마지막 육체이다. 그러나 부상 당한 육체이다'(혼),'이것은 인간의 자(尺)이다'(죄책감),'나는 말한다. 환상은 내 반려자라고'(환상2)와 같이 인생과 예술에 대한 사색에 잠기기도 했다가, '소수 민족의 비애가 있는 한 세계는 비애의 행성이다'(마이너리티), '신경증은 문명의 선물이다/ 현대인 전체/ 네티즌 전체가 신경증의 친구이다'(신경증),'서구인에게 세계는 서구였고, 서구의 부록인 오리엔트가 있다'(서구)와 같이 역사와 문명에 대한 통찰을 보이기도 한다. 한편으로'어린 시절 먼 길의 가로수 포플러나무, 또는 겨울밤 별들'(영원), '두고온 꽃'(순결)처럼 메마른 감성을 적셔주는 낭만적 아포리즘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청탁을 받은 뒤 일필휘지로 달려 이 책을 썼다는 시인은 "지금 쓰면 또 다를 것이다. 멋대로 적어봤다"고 했는데, 그 같은 겸사에도 불구하고 그의 에세이집은 멋대로 쓴다는 것 혹은 빨리 쓴다는 것이 대충 쓴다는 것과 등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책에 실린'꽃대궐' '어느 부부'등 지난해 9월 그가 등단 50주년을 기념해 열었던 그림전시회에 내놓았던 작품 35점도 특별한 볼거리다.  



"어떤 텍스트를 선정해도 흐르는 강에서 한 바가지를 퍼오는 격밖에 되지 않는다"는 선자(選者) 김형수씨의 변명에도 불구하고 고은 시인의 시선집 <오십년의 사춘기>는 국맛을 보려 할 때는 한 국자로도 충분하다는 옛말의 의미를 곱씹을 수 있는, 고은 시의 고갱이들을 벼려놓았다.

김씨는 고은 시인의 생애를 세 시기로 나누고 여기에 그의 기념비적 인물시집인 <만인보> 수록작품을 따로 묶어, 4부에 걸쳐 66편의 시를 담았다. '언제나 오는 것은 없고 떠나는 것뿐이다'같은, 불가에 귀의한 20대 젊은 사내의 뼛속깊은 쓸쓸함이 구절마다 스며있는 등단작 '폐결핵'(1958)을 비롯해 '우리 모두 화살이 되어/ 온몸으로 가자/ 허공 뚫고 온몸으로 가자/ 가서는 돌아오지 말자'('화살')과 같이 강렬한 현실참여 의지를 드러낸 1970~80년대의 작품들, '소월 형/ 지용 형/ 당신네들 어렴풋이 알았을거요/ 인류 맨 처음의 언어가/ 아아/ 였던 것'('눈 내리는 날')처럼 시인으로 걸어온 자신의 인생을 반추하는 근작시까지 그의 시력(詩歷) 50년의 전모를 한눈에 톺아볼 만한 시들을 모았다. 

고은 시인은 <만인보> 완간을 위해 경기 안성 자택에서 시작에 몰두하고 있다. 30권을 목표로 한 이 시집은 현재 26권까지 나왔다. 그는"올해초부터 사람 만나는 것도 사절하고 이 안에만 있다"고 근황을 전했다. 

<한국일보> 2009.01.17.



 
 
L.SHIN 2009-01-18 06:28   댓글달기 | URL
저렇게 오랫동안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열정을 쏟아 부을 수 있는 것이 정말 대단합니다.

고고씽휘모리 2009-01-19 09:08   댓글달기 | URL
마흔에도 자신의 스물을 부정하는 사람이 천지인 세상에서 아흔에도 자신의 젊은 날을 부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참 아름다운 일인듯 합니다.

"젊은 시절부터 술, 담배를 일절 하지 않고 1초도 쉬지 않고 움직이며, 늘 낙천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건강 비결" → 저도 맑은 정신으로 죽는날까지 버티려면 술좀 줄여야 할텐데요.
 
김경미 시집, 『고통을 달래는 순서』(창비)

<한겨레21>(744호)에 실린 신형철 문학평론가의 '시 읽어주는 남자' 코너를 옮긴다. 얼마 전 <한겨레>에 실렸던 김경미의 『고통을 달래는 순서』의 출간 소식을 이미 전한 바 있다. '시 읽어주는 남자'에서는 이 책에 대한 좀 더 진한 리뷰인 셈이다. 

고통스런 사람에게 병 주고 약 주고 [2009.01.16 제744호]
[시 읽어주는 남자]
원망과 자책이 서로 갉아먹어 없어지기를 기다려야지, 김경미의 <고통을 달래는 순서> 

글 쓰는 이들에 대해서 애초 그 무슨 환상 같은 것 품어본 바 없지만, 사람 사는 동네이기는 마찬가지라, 여기에도 남의 말 하기 즐기는 이들 있다는 것 확인하는 일은 유쾌하지 않네. 삶이라는 게 뜻대로 되지 않는 사업임을 깊이 깨달은 이들이 문학을 한다고 알고 있는데, 제 삶이 그랬다면 타인의 삶 역시 그러했으리라 따뜻하게 넘겨짚을 줄 알아야지, 타인의 삶을 함부로 해석·재단·평가하는 데 거리낌 없는 이들이 문학을 한다면 이건 의아스러운 일. 누군가의 한숨 하나에도 참 많은 맥락들이 있을 터인데, 하물며 수십 년의 삶 속에는 얼마나 많은 불가피함들이 뒤엉켜 있겠나. 잔혹하고 쓸쓸한 그 불가피함들에 겸허한 사람은 남의 말 함부로 못할 것이네. 이런 생각들 하느라 연말연시의 어느 순간들이 쓸쓸했는데, 이런 시를 읽었네.

    몇날이고 수도승처럼 눈만 감다가 모처럼 나섰다 
    나서다가 누군가가 머리에 박은
    10센티짜리 대못을 꽂은 채 떠도는
    고양이 뉴스를 봤다
    빼려고 얼마나 부볐는지
    핏속 못이 조금 헐거워졌다고 했다 사람이 동물을
    얼마나 낙담시키는지 이미 잘 알고 있다 

    다정한 모임 속 네가 갑자기 내 머리에 못을 박았다
    그 대못 얼버무리려 괜한 웃음을 웃느라
    이마와 코가 헐거워졌다,
    너무 가깝거나 멀어 몹쓸
    사이도 아닌데 인간이 인간을 얼마나 낙담시키는지
    이미 잘 알고 있다 

    잘 알고 있는데도 뺨으로 눈썹이 흘러내렸다
    나는 확실히
    사람과 잘 안 맞아 어떻게 사람이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죽은 척하는 순간
    고양이가 내 두 손을 지목한다
(‘그날의 배경’ 전문)

김경미의 네 번째 시집 <고통을 달래는 순서>(창비 펴냄)에 실려 있는 시. “이미 잘 알고 있다”는 말의 낮은 울림도 좋지만, 마지막 반전 앞에서 생각이 많아졌지. 사람에게 상처받은 내가 ‘대못 꽂힌 고양이’인 줄 알았더니만 실은 ‘대못 꽂은 그 누군가’였다는 깨달음인데, 이를 시인들의 흔해빠진 반성 같은 것으로 읽지 않는 게 좋겠네. 마음의 고통은 ‘원망’과 ‘자책’의 결합으로 생겨나는 것임을 이 시는 알려주네. 나에게 자책이 없을 때 타인의 못질은 그저 황당한 분노를 낳지만, 어떤 자책이 문득 함께할 때 그 못질은 깊은 고통을 낳는 것이지. 그 자책은, “비천과 험담 그치지 않는 입을 만났다/ 찻집 화장실에 가서 입을 몇 번이고 헹궜다/ 다 헹구고 거울 속 입안을 들여다보니 혀가 두 개였다”(‘무언가를 듣는 밤’ 중)에서처럼, 나에게도 속으로 맞장구친 ‘또 하나의 혀’가 있지는 않았던가 하는 자책이겠지.

    토란잎과 연잎은 종이 한 장 차이다 토련(土蓮)이라고도 한다 

    큰 도화지에 갈매기와 기러기를 그린다 역시 거기서 거기다 

    누워서 구름의 면전에 유리창을 대고 침을 뱉어도 보고 침으로 닦아도 본다 

    약국과 제과점 가서 포도잼과 붉은 요오드딩크를 사다가 반씩 섞어 목이나 겨드랑이에 바른다 

    저녁 해 회색삭발 시작할 때 함께 머리카락에 가위를 대거나 한송이 꽃을 꽂는다 미친 쑥부쟁이나 엉겅퀴 

    가로등 스위치를 찾아 죄다 한줌씩 불빛 낮춰버린다 

    바다에게 가서 강 얘기 하고 강에 가서 기차 얘기 한다 

    뒤져보면 모래 끼얹은 날 더 많았다 순서란 없다 

    견딘다(‘고통을 달래는 순서’ 전문)

고통을 달래려고 앉아서는 시인이 엉뚱한 소리를 하고 있는 것 같지만, 아니네. 토란잎과 연잎, 갈매기와 기러기, 뱉는 침과 닦는 침, 포도잼과 요오드 같은 것들은 앞에서 말한 ‘원망’과 ‘자책’의 변주들이겠지. 고통을 음미하다 보면 어느 순간 너에 대한 원망과 나에 대한 자책이 “거기서 거기”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지. 네가 나빠서이기도 하지만 내가 못나서이기도 하다는 생각, 너를 더 힘껏 미워하는 일은 고스란히 나를 더 학대하는 일이 되고 만다는 낭패감. 그러니까 고통인 거지. 마음을 짓누르는 고통이란 분노·증오·경악 따위와는 다른 것. 그러니 고통을 달래는 일 막막하네. 그저 원망과 자책이 서로를 갉아먹어 제로가 될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순서란 없다, 견딘다.” 사람에게 못질당해 고통스러운 사람에게, 이 시는 병이 되려나 약이 되려나.

2009년이 밝았건만 무언가 달라질 거란 기대 갖기 힘드네. 위정자들이 분골쇄신의 고배가 아니라 자화자찬의 축배를 들었으니, 우리는 다만 공화국 시민의 책무를 다하면서 2009년의 책을 읽고 2009년의 글을 쓸 따름. 이럴 때 이런 시집 나온 건 괜찮은 일. 병 주는 뜨거운 시집도 있고 약 주는 지혜로운 시집도 있는데, 마음이 넉넉하지 않은 요즘 같은 때에는 전자는 답답하고 후자는 가소로워, 병도 주고 약도 주는 맑은 책이 가장 진실에 가까워 보이기 때문. 그렇다고 이 시집이 뜻만 앞서고 말 부림이 둔한가 하면 전혀 그렇지 않아서, 본래 길었을 문장을 두 번 세 번 깎아낸 흔적들 곳곳에 있으니 읽는 기분 내내 팽팽하네. 근래 이렇게 귀퉁이 많이 접은 시집도 드물어 미처 다 옮겨 적지 못했지만, 뜻이 가물가물 녹아내린 ‘겹’ ‘만유인력’ ‘애인도시’ ‘일몰의 기억들’ 같은 시들의 담담한 향기가 오히려 내게는 더 각별했다는 것 끝으로 말씀드리고 싶네.

신형철 문학평론가



 
 
2009-01-18 00: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1-18 01: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1-18 22:2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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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란 2009-01-17 11:37   댓글달기 | URL
국어선생님인 갑네요잉....
 

얼마 전, 연합뉴스에서 전한 김종철 시인의 『못의 귀향』출간 소식을 옮겨온 적이 있다. 오늘 경향신문(2009년 1월 9일)에 기사가 있어 옮긴다. 아울러, 고은 시인의 에세이집 출간과, 문학용어 사전 출간 소식도 함께 옮겨본다.

고향, 그 지워지지 않는 ‘못자국’
ㆍ김종철 신작 ‘못의 귀향’

“중학교 때 성당에서 영세받기 위해 교리공부를 했는데 그때 수녀님이 못을 박은 후 빼는 걸 보여주면서 못이란 이렇게 뺀 뒤에도 흉하게 자국이 남는 것이라는 말씀을 들려주셨어요. 그 장면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고 내 시의 화두가 됐습니다.”



‘못의 시인’으로 불리는 김종철 시인(62)이 신작시집 <못의 귀향>(시학사)을 펴냈다. <못에 관한 명상>(1992년)후 두번째 연작시집이다.

김 시인은 <해리 포터> 시리즈로 유명한 출판사 ‘문학수첩’의 대표이고, ‘문학세계’ 대표인 김종해씨와 형제시인으로도 유명하다. 어린 시절을 되돌아본 이번 시집에는 그 형과의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실려있다.

    밑에 깔린 형은 코피까지 흘렸습니다
    짓눌린 까까머리통에
    뾰족한 돌멩이가 못 박혀 있었습니다
    어금니를 깨문 채 쏘옥 눈물만 뺀 형,
    새야, 항복캐라, 마 졌다 캐라!
    여섯 살배기 나는 울면서 외쳤습니다.
                                  (시 ‘마, 졌다 캐라’ 부분) 

 

 

 

 

 

 

 



<못의 귀향>이란 제목이 보여주듯 시집에 실린 작품들은 유년의 기억과 그보다 깊은 존재의 심연을 향하고 있다. 이순을 넘긴 시인이 과거를 돌아보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그의 귀향에 대한 해석이 재미있다.

“아무리 성공한 사람이라도 고향에 가면 존경을 못받아요. 고향 어른들은 코흘리개, 오줌싸개, 말썽꾸러기 아이의 모습만 기억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고향은 그리운 곳이기도 하지만 틈만 나면 야반도주하고 싶은 곳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고향은 성숙한 어른으로 자란 시인이 스스로의 자리를 돌아볼 때 남아있는 못자국이다. 그리고 그 못자국은 그리운 어머니의 모습으로, 배고픈 시절 달게 먹던 국수와 비빔밥으로, 신혼 시절 부부싸움을 하던 아내의 모습으로, 그 모든 시간을 되짚어가는 순례자인 시인 자신의 모습으로 다양하게 변주되면서 “지상의 척도와 천상의 척도의 갈등과 조화를 이뤄낸다”(평론가 김재홍).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아무짝 쓸모없는 놈이라고
    손가락질 받았던
    개구쟁이 어린 시절
    버림받은 귀퉁이돌보다
    더 모질고 더 하찮았던,
    그리하여
    환갑 진갑 지나는
    순례의 첫 밤
    그 첫날밤의 꼭두새벽
    두 딸년이 마련해 준 여비로
    일생의 꿈 마무리하듯 기도하다가
    손에 불 덴 아이처럼 쩔쩔매는
    노인네를 보게 되었는데
    그 굽은 못대가리가
    바로 나였다니!
 
                    (시 ‘개똥밭을 뒹굴며’ 부분) 

<경향신문> 2009년 1월 9일 

 

고은 에세이집 ‘개념의 숲’ 출간 

고은 시인(76)에게 시란 무엇일까. 시인은 “시는 17세부터 나의 북극성이다. 시는 나에게 길을 걸어가는 자이게 한다”고 말한다. 

그가 세상살이에 대한 성찰과 사유를 담은 철학 에세이 <개념의 숲>(신원문학사)을 출간한다. 책에는 작가가 특유의 시각으로 풀어쓴 단어 250개에 대한 단상과 신문 등에 연재해 온 글이 담겼다. 또한 지난해 등단 50주년 기념전 <동사를 그리다>에 전시된 35점의 그림이 실렸다.

고은 시인은 책에서 ‘절대’라는 단어에 대해 “만약 절대에 갇혀 있다면 이 세계는 얼마나 부자유하겠는가. 다행히도, 대지에 절대가 없는 것처럼 인간에게도 절대가 없다”고 말했다. ‘정의’에 대해서 “정의는 힘인가. 아니, 정의는 가장 힘 있는 꿈인가”라고 읊조린다. ‘광기’는 “예술에는 반드시 필요하다. 권력에는 반드시 불필요하다”고 그는 말한다.

올해 완간 예정인 연작시집 <만인보>를 통해 우리 민족의 수많은 인간상을 시를 통해 형상화해온 그에게도 ‘인간’은 한마디로 정의하기 너무 어려운 존재다. 그는 “인간을 정의하지 말자. 인간은 개념화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경향신문> 2009년 1월 9일 

문예위 ‘100년의 문학용어 사전’ 출간 

남북한의 문학 현장에서 쓰이는 용어들을 모은 문학용어 사전이 출간됐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엮은 <100년의 문학용어 사전>(아시아)은 한국 근대문학 100년의 흐름을 문학용어 700여개로 정리했다. 문학평론가 염무웅씨와 이상규 국립국어원장을 편찬고문으로 한 편찬위원회는 3년 동안 원고지 4000여장 분량의 사전을 완성했다.

기존의 문학 용어 사전들이 번역과 번안에 그치거나 서양 문학 중심의 개념어 사전에 그쳤다면 이번 사전은 한국 문학 현장의 용어를 두루 수록했다.

또한 분단 후 독자적으로 발전해 온 남북한의 문학용어를 함께 실어 ‘통일문학용어사전’을 목표로 했다. ‘웹2.0’ ‘팬픽’ 등 새로운 문학 용어를 수록하고 서구 문학 용어에 치우치지 않고 ‘옌안 문예 강화’ ‘네그리튀드’ 등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 제3세계 문학 용어를 함께 수록했다.

<경향신문> 2009년 1월 9일 

작년이 아마도 한국현대시, 한국현대문학 100주년으로 잡은 모양이었다. 그러한 100년을 정리하는 작업이 부실하게나마 진행되었던 것 같은데, 이번 『100년의 문학용어 사전』출간 소식은 적잖이 기쁘게 느껴진다. 관심분야이기도 해서인지 책상 한 쪽에 줄곧 놓아두고 간간 찾아보는 것이 문학용어 사전이었다. 기사에서도 나오듯이 "기존의 문학 용어 사전들이 번역과 번안에 그치거나 서양 문학 중심의 개념어 사전에 그쳤"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 것들은 사실 나로서 이해하기도 벅차고 힘들다. 그나마 내가 도움을 많이 받았던 것이 이상섭의 『문학비평 용어사전』(민음사)였다. 이 책은 기존의 문학용어들을 나름대로 한국문학에 적용해 설명하고자 했지만 어느 정도의 한계를 보이고 있다. 이번 『100년의 문학용어 사전』에 거는 기대가 남다르다. 

아울러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문학나눔추진단 문학나눔사무국은 '2008 올해의 시'로 문인수 시인의 시집 『배꼽』을 선정했다. '올해의 소설'로는 정지아 소설집 『봄빛』이 선정됐다.(관련기사 <연합뉴스> 2009년 1월 9일) 일본의 주요 시문학 출판사에서 한국 현대시인들의 대표시를 소개하는 시리즈가 출간됐고, '한국 현대시인 시리즈' 기획 첫 책으로, 지난 연말 박주택 시인의 시선집 『시간의 동공』(한성례 옮김)이 출간됐다는 소식도 있다.(관련기사 <연합뉴스> 2009년 1월 9일) 모두 축하할 일이고, 반가운 일이어서 기쁘다. 2009라는 년도를 쓸 때마다 낯설어 자꾸 서툰 지금, 기쁜 소식들로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는 듯 하다. 



 
 
 

安炯男の脳内イメージ


 

예전에 알라딘에서도 했었던거 같은데, 오늘 누가 이짓을 하고있는 걸 보고는 나도 해보았다. 한자 이름을 입력하면 뇌 속을 보여준다는데, 결과를 보니 단순명료한건가? 달랑 2가지 뿐이다. 惱. "번뇌는 별빛이다"라고 할 때의 그 惱다. 고민과 고뇌로 나는 괴로워하고 있다고? 그래서 이 뇌는 괴로워할 惱이기도 하다. 난 무엇으로 고민하고 있을까? 간단치 않다. 

休. 쉬고 싶을 뿐이다. 3월부터는 무한정 쉬겠다고 작정하고 있다. 지금은 너무 쉬고 싶은 게 사실이다. 惱 속에는 무한정 많은 것들이 있을 수 있겠지만, 내 뇌 속의 생각들이 그렇게 惱와 休로 간단히 정리될 수 있을까? 

그런데, 나의 한자 이름은 두 개다. 족보에 있는 한자는 가운데를 빛날 형(炯)으로 쓴다. 그러나 호적 등 모든 행정적 공식용으로는 무식하게 兄자를 쓴다. 아무튼 이 때문에 개명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 여유가 되면 개명 신청을 해볼 생각이다. 여하튼, 다시 한 번 해보았다. 

安兄男の脳内イメージ


 

헐! 이건 또 뭐지? 지금은 그저 쉬고 싶을 따름이다. 쉬면서, 차근차근 생각해보자. 저 愛를 좀 더 키워야할테니까 말이다. 

인터넷 검색하면 금방 나오지만, http://maker.usoko.net/nounai/ 로 가면 확인해 볼 수 있다. 여러 종류의 검사가 있는데, 일본어가 짧아서 뭔소린지는 잘 모르겠고, 거기보면 整形費用이라는 것이 있다. 들어가보니 일본어로 "理想のルックスになるために必要な金額"이란 설명이 나온다. 대충 한자만 봐서는, "이상적인 모양으로 만드는데 필요한 금액"이란 뜻이 아닐까 싶다. 아마도 정형이라는게 우리가 말하는 성형을 뜻하는 것 같다. 말하자면 이건 성형 견적을 뽑는 건다. 내 견적이 자그만치 588만엔이란다. 오늘자 환율로 계산해보니 자그만치 81,420,360원이나 된다. 헐! 이름만으로 성형 견적까지 나온단말인가? 먹고 죽을래도 없는 돈이다. 성형은 무슨.



 
 
심술 2009-01-07 22:22   댓글달기 | URL
멜기님 이름이 안형남이군요. 왠지 쫌 촌스럽단 생각이 드네요. 하하. 이거 땜에 저 미워하실 거 아니죠?

마늘빵 2009-01-08 10:16   댓글달기 | URL
난 전에 비밀 비 자가 가득 나왔던거 같아요. ^^

글샘 2009-01-08 16:52   댓글달기 | URL
하하 좀 쉬시면서 사랑도 키워야 할 것 같군요. ^^
주제넘게도 선물은 잘 받았습니다. 감사히 읽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