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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사회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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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뻔 하게 시작해본다. 한병철의 <투명사회>를 읽기 전에, 읽으면서, 그리고 읽고 나서 문득 드는 뻔 한 생각이 '투명 인간'이었다. '투명 인간'은 우리가 한번쯤 어렸을 때 동경(?)했던 존재(?)였다고나 할까? (하도 오랜만에 리뷰를 쓰니 어휘력이 꽝이 됐는지, 적절한 단어들이 떠오르지 않는다. 아마도 이 리뷰는 물음표 천지가 되지 싶다.) '투명 인간'이란 특이한 발상은 꽤 오래되었지 싶다. 검색해 보니, 1897년에 영국의 소설가 웰스가 쓴 공상 과학 소설 <투명 인간>이 그 시초가 아닐까 싶다. 투명해 지는 약을 개발해 먹고 못된 짓 하다가 죽는다는 내용이란다. 신기하게도 1969년, 내가 태어나기도 무려 10년 전에, 그 당시 내로라하던 신성일, 허장강, 서영춘, 그리고 요즘 대세 이순재 선생 등 한 가닥씩 하는 분들이 출연해 만든 <투명 인간>이라는 영화가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걸 알았다. 2000년에는 미국에서 <투명 인간>이라는 드라마가 방송됐다. 그런데 내용은 잘 모르겠다. KBS에서는 <투명인간 최장수>라는 드라마도 했다. 외국에서는 <투명인간 그리프>라는 영화도 있었다. 찾아보면 더 많을 것이다. 그만큼 '투명 인간'이라는 화두(?)는 이래저래 유행이었더랬다.

 

  지금은 '투명 인간'이라는 비현실적인 화두를 들어보기는 어려운 듯하다. 대신에 공상이 아닌 현실로서의 '투명 인간'의 가능성이 언뜻 언뜻 보도를 통해 들려오기는 한다. 투명 망토 같은 것을 개발할 수 있다고 하는 것 같은데, 우리 어렸을 적, 그런 망토가 있으면 투명 인간이 될 수 있을 거야 하는 허무맹랑한 생각이 곧 현실이 되는 걸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러면 진짜 신기할 거 같다. 투명 인간이 되는 방법들은 우리 상상 속에서 여러 가지가 있었다. 약 같은 것을 개발하려 하다가 잘못해서 투명 인간이 되거나, 투명 망토를 걸치면 투명해지는, 뭐 그런 것을 생각했었다. 그렇게 우리는 투명해 지고 싶었던 것이다.

 

  투명 인간이 되어서 우리는 무엇이 하고 싶었을까? 여탕에 들어가는 걸 최우선으로 꼽을 수 있겠고, 은행에 가서 돈을 잔뜩 들고 나오는 것, 대강 유치찬란 뽕짝 같은 상상들에 그치고 만다. 그러다 정의를 위해 악당을 물리치고 해피엔딩?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투명해진다는 것은 불편한 점이 더 많을 듯하다. 요즘 같은 세상에 내가 보이지 않는다면, 죽거나 다치기에 딱 좋지 싶다. 길을 걸을 때도 아무도 나를 보지 못하니 열심히 피해 다녀야 할 판이다. 잠시 잠깐 한눈이라도 팔았다가는 차에 치여 죽기 딱 좋지. 아무데서나 잠을 자는 것도 피해야 할 것이다. 내가 자는 데 누구라도 덜컹 앉아버리거나, 무거운 짐이라도 쿵 내려놓는다면? 어익후!!!

 

  보통 공상 과학류의 주인공들은 한 때 신나게 즐기다가도 남과 다른 나를 느끼며 외로워지고 슬퍼진다. 뻔 한 스토리지만, 뻔하다는 것은 일반적이고 보편적이고 자연스러운 귀결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내가 투명인간이 되어도 당근 슬퍼지고 말 것 같다.

 

  상상을 넓혀서 투명해지는 약 혹은 망토가 개발되어 세상 모든 사람들이 투명해진다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 아무도 아무를 보지 못하는 세상은, 투명한 인간들이 제 아무리 빨빨거리며 돌아다닌들, 그건 아무도 없는 세상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 인간 모두가 투명해지면, 세상은 아무도 없는 세상이 되고 만다.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無.

 

  한병철은 말한다. "투명한 관계는 모든 매력, 모든 활기를 잃어버린 죽은 관계이다. 완전히 투명한 것은 오직 죽은 자뿐이다."(p.19) <투명사회>에서 말하는 투명한 인간과, 내가 지금까지 주저리 떠들었던 '투명 인간'은 출발점이 다르지만, 어쩌면 결과는 동일해지는 듯하다. 인간 모두가 투명해지면 그건 아무도 없는 세상, 죽은 자만 널린 세상, 아무 것도 아닌 세상, 아무 것도 없는 세상, 無.

 

  한병철이 말하는 '투명사회'의 속성은 '긍정, 전시, 명백, 포르노, 가속, 친밀, 정보, 폭로, 통제'다. 이렇게 보면 도무지 무슨 사회인지 알 수가 없다. '긍정, 명백, 친밀, 정보'만 보면 대단히 좋은 사회인 듯싶고, '포르노'를 보면 흥미롭게 야한 사회이기도 한 듯싶다. 이 사회에서도 인간은 투명해진다. 오늘날 '정보사회'라고 하는 이 시대에 인간은 '투명'하다는 얘기다. 이 '정보사회'에서 발생하는 중요한 문제가 정보 유출인데, 비단 몰래 빼가는 유출만이 아니라, 나도 모르는 사이 자연스럽게 노출되는 정보의 유출, 그로 인해 나의 일거수일투족 모든 것이 낱낱이 읽혀지는 그런 정보사회가 '투명사회'다. 누군가 나를 속속들이 알고 있다. 나의 모든 정보가 투명하게 누군가에 의해 읽혀진다. 그래서 나는 투명하다. 아니 이 사회의 인간 모두는 점점 투명해진다. 그리하여 투명해진 인간이 된다. 투명인간. "투명사회는 정보사회다. 정보는 어떤 부정성도 알지 못한다는 점에서 투명성의 현상이다. 정보는 긍정화되고 조작 가능하게 만들어진 언어다."(p.83)

 

  "아감벤의 테제에 따르면 아담과 이브는 원죄 이전에 벌거벗지 않았다. "은총의 옷" "빛의 옷"이 그들의 몸을 덮고 있었기 때문이다. 원죄로 인해 그들은 신성한 옷을 빼앗기고 만다. 완전히 벌거숭이가 된 아담과 이브는 몸을 가리지 않을 수 없었다. 따라서 벌거벗음이란 곧 신이 내린 옷의 상실을 의미하는 셈이다."(p.49-50)

 

  태초에 하나님이 계셨고, 아담과 이브를 창조했더랬다. 그러나 그들은 벌거벗었지만 "벌거벗지 않았다." '신성한 옷'을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담과 그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하니라."(창세기 2장 25절) 그러나 그들은 벌거벗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고하였느냐?"(창세기 3장 11절) 그 부끄러움을, 부정성을 그들은 옷을 만들어 가렸다. 그리고 그들은 숨어 버렸다. "아담과 그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창세기 3장 8절) 그러나 오늘은 인간은 부끄러움을 가린 그 옷을 실오라기 하나까지 훌훌 벗어버린다. 부끄러움에 숨지도 않고 자신 있게 드러낸다.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한다. '긍정', 그리하여 만인에게 자신을 드러낸다. '전시'. 야한 사회, 이것은 '포르노'다. "아무것도 덮거나 숨겨두지 않고 시선에 내던지는 투명성은 외설적이다. 오늘날 모든 미디어의 이미지들은 어느 정도 포르노적이다."(p.59)

 

  "투명성의 강제는 기존 시스템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데 매우 효과적으로 작용한다. 투명성은 그 자체로 이미 긍정적이다. 투명성 속에는 기존의 정치경제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의문시하는 부정성이 들어 있지 않다."(p.25) 이러한 투명성은 결국에는 '통제'에 있어 최적화된다. "투명성의 독재 속에서는 주류에서 벗어나는 의견이나 일반적이지 않은 아이디어는 아예 입 밖으로 꺼내기도 어려워진다. 과감한 도전은 거의 시도되지 않는다. 투명성의 명령은 강력한 순응에의 강제는 낳는다. 사람들은 카메라의 지속적인 감시 속에 있을 때처럼 관찰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투명성의 명령에는 파놉티콘적 효과가 있다. 그것은 결국 커뮤티케이션의 획일화와 동일한 것의 반복으로 귀결된다."(p.141) 이것을 한병철은 '디지털 파놉티콘'이라 명명한다.

 

  21세기에 우리 인간은 자유를 만끽하고 있다. 아니 만끽하는 것만 같다. 아니 만끽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 디지털은 우리의 발자취를 낱낱이 기록한다. 길을 걸어도 우리도 걸음 하나하나는 수많은 차들 앞유리창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블랙박스에 녹화된다. 거리마다 빌딩마다 달려있는 cctv에 의해 촬영된다. 우리가 버스를 타도 어디에서 어디로 가는지 모든 정보가 남는다. 인터넷의 바다를 유영해도, 백화점엘 가도, 그 어디를 가도, 이 정보사회는 우리를 벌거벗게 만든다. 이것을 어느 누가 보고 있다면, 그는 우리를 '통제'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감시되는 것이다. 한병철의 투명사회의 속성을 하나 추가하면 '감시'가 되는 이유다.

 

  "오늘날 우리는 우리를 노예처럼 부리고 착취하던 산업 시대의 기계에서 해방되었지만, 디지털 기기가 낳은 새로운 강제, 새로운 노예제에 직면하고 있다. 디지털 기기는 이동성을 무기로 모든 곳을 일터로, 모든 시간을 일의 시간으로 만듦으로써 우리를 더욱 효과적으로 착취한다. 이동성이 가져온 자유는 어디서나 일해야 한다는 치명적인 강제로 돌변한다."(p.163) "더 많은 자유를 약속하는 스마트폰에서 하나의 치명적인 강제가 생겨난다. 커뮤니케이션에의 강제. 사람들은 최근 들어 디지털 기기와 거의 강박적 관계에 빠져들었다. 여기서도 자유는 강제로 전도된다. 소셜네트워크는 커뮤니케이션에의 강제를 엄청나게 강화한다. 결국 그러한 강제는 자본의 논리로 소급된다. 더 많은 커뮤니케이션은 더 많은 자본을 의미한다. 커뮤니케이션과 정보의 순환이 가속화되면 자본의 순환도 가속화된다."(p.164) "우리는 오늘날 자유 자체가 강제를 촉발하는 특수한 역사적 단계에 처해 있다. 자유는 본래 강제의 반대 형상이다. 그런데 강제의 반대 형상이 강제를 낳는 것이다. 그래서 더 많은 자유는 더 많은 강제를 의미한다. 그것은 자유의 종말일 것이다."(p.181)

 

  디지털 파놉티콘의 무서운 점은 이렇듯 자유로운 통제, 감시라는 점이다. 아니 더 정확히는 자발적이라 해야 옳을지 모르겠다. "디지털 파놉티콘의 주민들은 수감자가 아니다. 그들은 자유롭다는 환상 속에서 살아간다. 그들은 자발적으로 스스로를 전시하고 훤히 비추어줌으로써 디지털 파놉티콘에 풍부한 정보를 제공한다."(p.212) 우리의 정보를, 우리가 자발적으로 자유롭게 드러내놓은 정보를 누군가가 독점한다면, 그는 우리를 통제할 수 있다. 이전의 통제가 권력을 위한 것이라면, 오늘날의 통제는 무엇을 위한 것일까? 결국은 '돈'이다. 오늘날은 '돈'이 곧 권력이니, 그 근본은 같다.

 

  "내가 한 모든 클릭은 저장된다. 내가 디딘 모든 발걸음은 역추적될 수 있다. 우리는 도처에서 디지털 발자취를 남긴다. 우리의 디지털적 삶은 네트워크 안에 정확히 모사된다. 삶의 완벽한 프로토콜이 남겨질 수 있는 가능성으로 인해, 신뢰는 완전히 통제로 대체된다. 빅데이터가 빅브라더의 자리를 차지한다. 삶의 완벽한 프로토콜화는 투명사회를 완성한다."(p.211)

 

  한병철은 현대 사회의 '디지털화'에 초점을 맞춰 이를 '투명사회'로 분석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현대 사회는 투명사회'화'되고 있다. 어느 순간엔 완성될. 여기저기 막그냥 확그냥 정보가 넘쳐난다. 그러나 우리에겐 이야기가 사라진다. "오늘의 사회를 지배하는 긍정성의 과잉은 이 사회에서 서사성이 사라졌음을 방증한다."(p.69) 우리의 서사가 사라진 사회에서 빅브라더는 우리에게 이야기를 부여하고, 우리를 그의 이야기에 따라 지배하게 될 것이다. 서사가 없는 이 사회는 결국엔 비극이 될 것이다.

 

  몇 가지 아쉬운 점? 아니면 궁금한 점? 이도 아니면 그냥 궁시렁 몇 자 적으며 마무리하자. (내가 지금까지 무슨 말을 장황하게 했는지 정리도 안 된다.)

 

  1. 투명사회라는 테제는 한병철이 서문에서도 이야기했듯, 불합리하고 비합법적인 불투명성과 싸우는 투명성과 겹쳐진다. 정치권력, 자본권력에 강력히 요구되는 투명성, 투명한 사회에의 요구는 이 사회에 필수적인 부분이다. 이것이 자칫 한병철의 '투명사회'라는 비판에 의해 퇴색될까 하는 우려가 생긴다. 프레임이라고 했던가? 비판적 의미로서의 '투명사회'라는 한병철의 명명을 비판적 의미가 좀 더 부각되는, 그래서 조금 더 적절한, 권력과 자본의 투명성에 대한 요구와 겹쳐지는 않는, 그런 명명이 필요해 보인다. '디지털 파놉티콘' 같이 말이다.

 

  2. 투명사회가 완성되기 전에, 우리는, 우리사회는 무엇을 해야 할까? 어떻게 완전한 통제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피로사회>에서 제기된 현대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분석이 <투명사회>로 완성되었다면(?) 이제는 '불(不)투명' 사회로 되돌아 갈 수 있는 길을 알려주어야 하지 않을까?

 

  3. 한병철의 우려는 약간의 기우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과연 이 디지털 사회에서 부정성이 완전히 사라졌는가? 이야기가 없는가? <투명사회>를 읽어가면서 긍정성의 강요, 부정성의 소멸(?)이라는 견해에 부분적으로 동의하면서도 과연 그런가? 정말 그런가? 꼭 그런 건가? 아닐 수도 있지 않나? 여전히 나는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데? 하는 의문들이 든다. 인터넷을 통해 자기의 의견을 개진하고 비판하고 토론하는 장이 확대되고 있고, 건전하고 생산적인 만남으로 이어지고 있기도 하지 않은가? 그런 부분에 대한 의도적인 무시가 있지는 않은가? 하는 의문이 남는다. 한병철의 후기 작업을 기대하는 부분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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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사회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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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한 관계는 모든 매력, 모든 활기를 잃어버린 죽은 관계이다. 완전히 투명한 것은 오직 죽은 자뿐이다.-19쪽

투명성의 강제는 기존 시스템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데 매우 효과적으로 작용한다. 투명성은 그 자체로 이미 긍정적이다. 투명성 속에는 기존의 정치경제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의문시하는 부정성이 들어 있지 않다. 투명성은 시스템의 외부를 보지 못하고, 그저 이미 존재하는 것을 확인하고 최적화할 뿐이다. 따라서 투명사회는 포스트정치와 일치한다. 완벽하게 투명한 것은 오직 탈정치화된 공간뿐이다.-25~26쪽

아감벤의 테제에 따르면 아담과 이브는 원죄 이전에 벌거벗지 않았다. "은총의 옷" "빛의 옷"이 그들의 몸을 덮고 있었기 때문이다. 원죄로 인해 그들은 신성한 옷을 빼앗기고 만다. 완전히 벌거숭이가 된 아담과 이브는 몸을 가리지 않을 수 없었다. 따라서 벌거벗음이란 곧 신이 내린 옷의 상실을 의미하는 셈이다.-49~50쪽

아무것도 덮거나 숨겨두지 않고 시선에 내던지는 투명성은 외설적이다. 오늘날 모든 미디어의 이미지들은 어느 정도 포르노적이다.-59쪽

오늘의 사회를 지배하는 긍정성의 과잉은 이 사회에서 서사성이 사라졌음을 방증한다.-69쪽

투명사회 역시 시인이 없는 사회, 유혹도 변신도 없는 사회이다. 시인이란 누구인가? 시인은 연극적 환상, 가상의 형태, 제의적, 의식적 기회를 생산하는 자, 적나라한 사실에 예술작품Artefakten(인공물), 반反사실Antifakten을 맞세우는 자인 것이다.-81~82쪽

투명사회는 정보사회다. 정보는 어떤 부정성도 알지 못한다는 점에서 투명성의 현상이다. 정보는 긍정화되고 조작 가능하게 만들어진 언어다.-83쪽

존경할 줄 모르는 사회, 거리의 파토스가 없는 사회는 스캔들 사회로 전락한다.-116쪽

투명성의 독재 속에서는 주류에서 벗어나는 의견이나 일반적이지 않은 아이디어는 아예 입 밖으로 꺼내기도 어려워진다. 과감한 도전은 거의 시도되지 않는다. 투명성의 명령은 강력한 순응에의 강제는 낳는다. 사람들은 카메라의 지속적인 감시 속에 있을 때처럼 관찰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투명성의 명령에는 파놉티콘적 효과가 있다. 그것은 결국 커뮤티케이션의 획일화와 동일한 것의 반복으로 귀결된다.-141쪽

커뮤니케이션의 소음을 만들어내는 디지털 매체의 가산적 특징은 정신의 걸음걸이와는 거리가 멀다.-143쪽

스마트폰은 즉흥성과 근시안적인 태도를 장려하고 긴 것과 느린 것을 소외시킨다.-146쪽

오늘날 우리는 우리를 노예처럼 부리고 착취하던 산업 시대의 기계에서 해방되었지만, 디지털 기기가 낳은 새로운 강제, 새로운 노예제에 직면하고 있다. 디지털 기기는 이동성을 무기로 모든 곳을 일터로, 모든 시간을 일의 시간으로 만듦으로써 우리를 더욱 효과적으로 착취한다. 이동성이 가져온 자유는 어디서나 일해야 한다는 치명적인 강제로 돌변한다.-163쪽

더 많은 자유를 약속하는 스마트폰에서 하나의 치명적인 강제가 생겨난다. 커뮤니케이션에의 강제. 사람들은 최근 들어 디지털 기기와 거의 강박적 관계에 빠져들었다. 여기서도 자유는 강제로 전도된다. 소셜네트워크는 커뮤니케이션에의 강제를 엄청나게 강화한다. 결국 그러한 강제는 자본의 논리로 소급된다. 더 많은 커뮤니케이션은 더 많은 자본을 의미한다. 커뮤니케이션과 정보의 순환이 가속화되면 자본의 순환도 가속화된다.-164쪽

셀 수 없는 것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다.-165쪽

우리는 오늘날 자유 자체가 강제를 촉발하는 특수한 역사적 단계에 처해 있다. 자유는 본래 강제의 반대 형상이다. 그런데 강제의 반대 형상이 강제를 낳는 것이다. 그래서 더 많은 자유는 더 많은 강제를 의미한다. 그것은 자유의 종말일 것이다.-181쪽

이 사회는 우리를 따로따로 떼어놓는 성과사회다. 성과주체는 쓰러질 때까지 스스로를 착취한다.-182쪽

우리는 디지털 매체로 인해 실제로 멀리 있는 사람에 대해 생각하고 가까이 있는 사람을 만지는 법을 잊어버리지 않을까?-189쪽

투명사회에도 이면이 있다. 투명사회란 어떤 의미에서 표면적 현상이다. 투명사회의 뒤편, 또는 그 아래에서, 모든 투명성을 벗어나는 유령들의 공간이 생겨난다.-193쪽

내가 한 모든 클릭은 저장된다. 내가 디딘 모든 발걸음은 역추적될 수 있다. 우리는 도처에서 디지털 발자취를 남긴다. 우리의 디지털적 삶은 네트워크 안에 정확히 모사된다. 삶의 완벽한 프로토콜이 남겨질 수 잇는 가능성으로 인해, 신뢰는 완전히 통제로 대체된다. 빅데이터가 빅브라더의 자리를 차지한다. 삶의 완벽한 프로토콜화는 투명사회를 완성한다.-211쪽

디지털 파놉티콘의 주민들은 수감자가 아니다. 그들은 자유롭다는 환상 속에서 살아간다. 그들은 자발적으로 스스로를 전시하고 훤히 비추어줌으로써 디지털 파놉티콘에 풍부한 정보를 제공한다. ~ 자유와 통제의 구별이 불가능해질 때 통제사회는 완성에 이른다.-212쪽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사물들은 우리를 관찰한다.-2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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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가족여행에 동참하여 강원도를 다녀왔다.

갔다와서 좀 쉬고(?) 내일의 출근을 준비하려던 차에,

숙제가 생각났다.

신간평가단 숙제는 문자를 주던데....

이거는 문자를 못 받은 듯 하다.

뭐! 공지되었던 사항이니, 내 잘못이지...

뒤늦게라도 해본다.(알라딘 분들도 휴가가서 아직 확인 안 했으면 봐주셈!! ㅋㅋ)

 

1. 교육과 관련된 책을 골라보자. 5월에는 '스승의 날'도 있으니!

 

사회과학>교육비평

=> 교사, 선생, 스승. 이 말들이 가리키는 대상은 대동소이하다. 그런데, 이 말들은 약간의 위계가 있는 듯 하다. '-님'이란 접미사가 '교사'란 말에 붙지 못한다. '선생님'은 좀 인간적이고, '스승님'은 높은 경지에 도달해야지 싶다. '교사'는 사용 맥락만을 놓고 보면 객관적인 용어가 아닐까 싶다. 가르치는 사람쯤으로 사용되지 싶은데, 교사에서 '선생, 스승'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그런데, 난, '교사'이면 족하지 싶다. 인생을 먼저 산 '선생'이라고 뻐길 필요도 없고, '스승'입네 떠받들라고 강요할 필요도 없는... 교사이면 족하다. 잘 가르치면 되는 것인데, 잘 가르치지 못해 탈이다. 선생이 되어보라는 이 책의 내용을 찬찬히 읽어보고 나도 한번 선생이 되어볼까? 목차를 훑어보니 나의 생각과 실천으로부터는 조금의 거리는 있는 듯 싶다.

 

 

사회과학>교육학

=> 국어를 15년 가르치신 분의 저작이다. 일반적인 테제다. "국어는 기술이 아니"라는 말. 현장에서 15년은 아니지만, 이래저래 합치면 한 10년은 된 것 같다. 국어공부를 전문적으로 한 햇수는 15년은 넘었다. 경험상, 국어는 기술이다. 적어도 고등학교까지는... 수능을 본 나는, 수능을 가르치는 나는. 수학능력시험이 무슨 대단한 창의력사고를 요하고 지금까지의 학습방법으로는 손도 못대는 시험마냥 대하는 것에 큰 이견을 갖고 있다. 수능 국어를 잘 보는 것은 무슨 창의와 논리와 과학적 사고가 필요하고, 문학적 감수성과 탐구능력 등등이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강력히 주장하고 싶다. 적어도 수능 국어를 잘 보는 데에는 강력한 기술적 국어 능력이 필요하다. 나는 그래서 잘못된 국어 선생인지 모르겠다. 이 책을 읽고 반성할 건 반성하자. 근데, 왠지 국어는 기술이 아니라면서 기술을 가르치는 책일 것만 같다. 국어가 기술이 아니기 위해서는 수능 국어가 없어져야만 할 것이다. 그저 그렇다는 말이다.

 

 

사회과학> 사회학

=> 난 중2때 영어 단어 외우는게 넌더리가 나서 포기했다. 수포보다 영포를 먼저 했다. 영어가 그리 중요한가? 중요하다. 필요하다. 나는 현재 그렇게 느낀다. 영어를 못하는 내가 좀 싫긴하다. 영어를 잘하고 싶다. 지금에 와서 영어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도 한다. 중2때 영포를 안 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그랬더니 영포를 안 했어도 마찬가지지 싶다. 우리가 영어에 그리 열을 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영어'만의 문제때문은 아닐 것이다. 입시, 취직, 기타 등등.... 영어의 문제에 대해 이제는 차분히 생각해 볼 때이지 싶다. 지금 내가 영어 공부를 하고 싶다면 지금하면 되는 것이고, 지금 영어 공부를 한들 어디가서 그리 써먹을 상황도 별로 없다. 뭐! 배우면 배운만큼 써먹을 일이 생기겠지만. 강준만은 이책에서 우리나라 '영어교육'의 역사를 되짚고 있는 듯 싶다. 잘 추적해보면 방법이 생기려나?

 

인문학>교양심리학

=> 학교에서 학생들 담임을 하면서, 교과를 가르치면서, 가장 걱정스러운 부분은 이 아이들이 의욕이 없다는 것이다. 아니 그렇게 느끼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떻게 하면 이 아이들의 의욕을 이끌어낼 것인가? 늘 고민하는 부분이다. 5월에 출간예정인 이책에서 그답을 얻어낼 수 있을까? 명쾌한 답을 얻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일말의 방법이라도 얻을 수 있기를 바란다. 결국 문제는 '우리 사회'다.

 

 

 

 

 

 

 

2. 세월호 참사! 분노가 끊이질 않는다!

사회과학>사회학

=> 세월호 참사! 삼가 희생자와 실종자, 유족분들께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 단원고 학생들의 안타까운 희생에 너무나 가슴이 아프다. 눈물을 많이 흘렸다. 그런중 나는 생각했다. 학생과 더불어 많은 선생님들께서도 희생되셨다는 것을! 교사 숙소는 5층이었고 학생들은 3~4층에 머물렀다는 보도를 보고, 사고의 순간에 그 분들은 탈출이 아닌 학생들에게로 달려가셨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차! 싶었다. 명색이 나도 선생인데, 그 순간에 그 분들과 같은 행동을 할 수 있었을까? 옷깃을 여미고 머리를 숙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분들은 나에게 참 스승의 모습이 무엇인지를 알려 주셨다. 세월호 참사는 우리사회의 분노를 극한으로 끌어올렸다. 이 책은 분노를 어떻게 다스려야 할지를 말하고 있는데, 조심스럽지만, 우리가 이 비극을 잊지는 말고, 극에 달한 분노는 조금 다스려야 하지 싶다. 분노를 가라앉히고, 이 잘못된 사회의 모순들을 뜯어고쳐야 하지 싶다. 이것은 희생된 이들에 대한 우리의 위로요 예의가 아닐까? 더는 이러한 비극이 없어야 하겠기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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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과학/예술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이것이 몇 년만인가?

지난 2010년 6월 22일. 남아공 월드컵에 대한 글을 올리고서 무려 4년이 흘렀다.

게으른 탓이고, 알고보면 부족한 공력탓이고, 따지고 보면 재미없던 탓이다.

 

부족한 공력을 다시 쌓아보고, 지루한 일상에서 재미를 다시 찾아보고자,

게으른 내가 14기 신간 평가단을 다시 신청했다.

예전에도 한 번 한 적이 있었더랬는데, 억지로 읽는 듯한 책읽기가 영~~~

아무튼 이렇게라도 게으른 나를 깨워 다시금 시작이다.

 

첫번째 과제가 '주목할 만한 신간' 리스트 작성이다.

내가 맡은 분야는 다음과 같다.

 

<인문/사회/과학/예술 해당 분야>

1. 고전 (문학 작품 제외) - 고전에서 문학과 비문학의 경계를 짓기가 쉽지 않은데.

2. 과학 - 내 취약 분야가 과학인데.

3. 사회과학 - 이것도 과학일까?

4. 역사 - 역사를 비틀어보고 싶은 나.

5. 인문학 - 대충 정리하면 인문학 묶음이다.

6. 예술/대중문화 - 참 많기도 하다.

7. 만화 > 교양만화 - 이건 패스다.

 

자! 이제 내 분야를 알아봤으니 리스트를 찾아본다.

 

1. 눈에 확 띈 건 <젤롯>이란 책이다.(3월 중순에 출간된 책인데, 신간 리스트에 포함되어 있어서)

 

나는 사이비 기독교 신자다. 교회 안 나가는 기독교 신자다. 신자는 아니고 그냥 예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럴싸하게 말하면 비판적 크리스찬이다. 예수에 대한 이런 저런 논의들 가운데 하나. 혁명가적 예수의 모습을 찾고 있는 책이란다. 정치적 혁명가였던 예수! 그 모습을 성서와 사료 등을 토대로 추적하고 있을까? 당시에 사람들은 예수를 신으로 인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현대에 누가 나는 신이다라고 떠벌이고 다닌다고 해서, 그가 참으로 사랑스럽고 아름답고 멋지고 고귀한들, 신이라고 인정하고 따를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2000여년 전의 사람들도 그리 멍청하지는 않았을 것임에, 많은 이들은 그를 정치적 혁명가, 자신들의 삶을 바꿔줄 구원자로 여기지 않았을까? 거기에 조금더 진실과 가까운 무엇이 있을 것이다. 이 책이 눈에 띄는 이유다.

 

 

2. 다음으로 레이디 가가에서 온 말일 테지? <가가 페미니즘>

 

나는 사이비 기독교인이면서 사이비 페미니스트다. 예수도 페미니스트였음이 분명하다고 나는 말한다. 오! 마리아. 사이비란 글자를 떼어내려면 알아야 한다. 페미니즘이란 무엇일까? 페미니스트란 어떤 사람일까? 여자를 좋아하면 페미니스트? 그렇다면 난 페미니스트다. 이 책은 아마도 최근의 페미니즘적 경향과 행동을 담은 책으로 보여진다. 그래서 주목한다. 단순히 여자만 좋아해서 페미니스트가 아니라, 진정한 페미니스트를 만들어주었으면 좋겠다. 레이디 가가의 노래를 들으면서 이 책을 읽어보아야 겠는데.... 책이 비싼가?

 

 

 

3. 난 종북이냐? <경기동부>

 

나의 정치적 성향은 진보좌파라고 할 수 있다. 아니 겉으로 뽐내고 다니는게 그렇다. 속으로는 알 수 없다. 보수적 사고방식으로 가득차 있으면서, 자본주의적 사회에 최상으로 적응하고 이용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나는 사이비 진보좌파다. 최근 종북논란. 아니 오래된 최근이다. 이석기 사태(사태란 말이 맞나?) 등이 터지면서, '경기동부'가 주목받고 있다. 관심을 갖자기보다는 이 책을 통해서 좀 똑바로 알자가 목적이다. 종북 논란도 지겹고, 그게 먹히는 사회도 뭐같고. 종북이면 또 어떻고.

 

 

 

 

 

4. 그리스로마에만 신화가 있을 턱이 있나! <살아 있는 한국 신화>

 

증보판인듯 싶다, 아 개정판인가? 나는 12000원인가 하는 옛날 책을 가지고 있는데, 이게 삼 만원인가? 비싸졌다. 비싸질만한 가치가 더 추가된 것일터. 그리스 로마 신화에 익숙한 우리에게 신화는 주몽과 단군만 있는게 아니란걸 이책은 알려준다. 그런데 우리 신화는 신화같지 않은 친근함과 아기자기함, 즐거움이 있다. 동화같은 느낌의 신화들. 그리스 로마 신화처럼 이야기성과 스펙터클함이 떨어지지만, 우리가 알지 못했던 우리만의 신화 이야기가 우리를 즐겁게 해줄 수 있을 것이다. 개정판을 다시 보아야할 이유이다. 명색이 국어선생인데, 우리 신화에 대해 잘 알아야하지 싶다. 그러니 아직 사이비 국어선생이다.ㅋㅋ

 

 

 

 

 

5. 이건 덤이다. <삼국유사>

 

고려대출판부에서 나온 3권짜리 삼국유사 번역본이다. 잘 팔리지도 않을 책을 무려 3권으로 출간(예정인듯)할 고려대출판부의 결정에 찬사를 표하면서, 이 책 한 부씩 사두시면 좋으시겠다. 사이비 영업 사원이 된 듯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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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넷 2014-04-03 1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살아있는 한국신화는 괘나 분량이 두툼해져서 개정판이 나왔네요. 솔직히 한국신화는 그리 재미가 있지는 않더라구요. 삼국유사는 역주본 답지 않게 너무 알록달록하네요.ㅎㅎ

멜기세덱 2014-04-04 08:16   좋아요 0 | URL
나는 정감이 가고 아기자기한게 재미있던뎅...제주도에 할망인가, 오누인가들도 그렇고.... 삼국유사의 내면도 나름 알록달록하니 그런게 아닐듯 싶어요...ㅎㅎ

하늘바람 2014-04-03 1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랫만이에요 반가워요

멜기세덱 2014-04-04 08:17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순오기 2014-04-04 0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이게 누구십니까?@@
컴백알라딘~~~~~~~ 환영합니다!!^^

멜기세덱 2014-04-04 08:17   좋아요 0 | URL
ㅎㅎㅎ. 여전하시죠?
 

남아공 월드컵이 한창이다. 즐겁게 시청하고 있던 차에, 얼마전 아르헨티나전 참패 후 한 네티즌의 정확한 예측이 주목받은 적이 있다. 뭐, 나도 심심하던 차에, 주목받지 못하겠지만 행복하게나마 예측 겸 상상해보자. 내 예측의 대상은 16강 이후부터다. 

16강 진출팀 예상  

A조에서 1위 멕시코, 2위 우루과이가 진출할 것으로 예상된다. 두 팀이 전력상 비등해보고 조1위를 두고 용호상박 다툴것으로 예상되는데, 아무래도 더 절실한 멕시코가 이기지 않을까 싶다. 프랑스가 남아공을 크게 이기지 않는한, 두 팀의 진출이 유력하다. 

B조는 아르헨티나가 1위, 한국이 2위로 결승 토너먼트에 진출할 것이다. 반드시. 

C조는 미국이 1위를 하지 않을까 싶다. 현재 1위가 슬로베니아이지만 마지막 상대가 영국이다. 영국이 강팀으로서의 자존심 회복의 기회가 있는 만큼 승리할 것으로 예측된다. 미국은 상대적으로 약체인 알제리를 만난다. 미국이 승리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영국과 승점이 같은 상황에서 다득점에 앞선 미국에 부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2위는 영국 진출 예상.

D조는 독일이 1위, 세르비아가 2위를 차지하여 16강에 진출할 것으로 예상된다. 독일과 가나가 맞붙는 마지막 경기에서 위기에 몰린 독일이 강팀의 면모를 보여줄 것이 확실하다. 세르비아는 호주와 상대하기때문에 가나보다 유리한 입장이다. 

E조는 네덜란드의 1위가 거의 확정적인 가운데 덴마크가 일본을 누를 것으로 예상한다. 

F조는 파라과이의 1위가 확실시된다. 마지막 상대가 뉴질랜드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경기에서 이탈리아는 슬로바키아를 만난다. 이탈리아의 승리를 조심스레 점친다. 이탈리아가 2위로 진출할 것으로 예상된다. 

G조는 북한이 이미 죽음의 수렁에 빠진 가운데, 브라질이 1위, 포르투갈이 2위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E조는 스페인의 우승후보다운 면모를 다시 세우기 위해 칠레가 희생될 것으로 예상한다. 이 경우 스위스가 2위로 진출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16강이 모두 가려지게 되면 이제부터 결승토너먼트다. 이렇게만 되면 한국이 4강 신화를 다시 재현하는데도 유리한 대진이 완성된다. ㅎㅎ 

우선 16강의 한 쪽 테이블에서의 결과를 예상해보자. 

16강-1경기 멕시코 對 한국 : 한국이 멕시코를 만만하게 생각하는데, 최근 전적도 괜찮다. 8강을 노려볼만 하다. 한국 8강 진출 

16강-2경기 미국 對 세르비아 : 미국이 16강을 진출하지만 세르비아도 만만찮을 것으로 예상한다. 힘겹게 세르비아가 이기지 않을까 예상한다. 세르비아 8강 진출 

16강-3경기 파라과이 對 덴마크 : 파라과이이 쉽진 않겠지만 넉넉히 이길 것으로 예상된다. 파라과이 8강 진출 

16강-4경기 스페인 對 포르투갈 : 스페인이 토너먼트에 들어서면서는 힘을 낼 것으로 예상된다. 포르투갈이 분위기를 타긴 했지만 선수들 면면이 스페인에는 무리이지 싶다. 스페인 8강 진출 

이렇게 8강이 가려지만 8강 대진도 한국이 해 볼만하다. 

8강-1경기 한국 對 세르비아 : 세르비아와는 평가전에서 한 번 이긴 적이 있다. 8강전 상대로는 약팀이기 때문에 아주 해볼만하다. 이렇게 해서 4강 신화가 재현된다. 한국 4강 진출 

8강-2경기 파라과이 對 스페인 : 스페인의 승리 예상. 스페인 4강 진출 

한국과 스페인의 4강. 스페인이 유리하지만 한국도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갖은 상태이기 때문에 쉽게 결판은 나지 않을 것이다. 2002년의 좋은 기억이 있지만, 재현되기는 어렵지 않을까? 

다른 16강 테이블은 간단한 예상만 하자. 

16강-5경기 우루과이 對 아르헨티나 : 아르헨티나 8강 진출 

16강-6경기 영국 對 독일 : 우승후보끼리 일찍 만났지만 독일의 승리를 점쳐본다. 독일 8강 진출 

16강-7경기 네덜란드 對 이탈리아 : 네덜란드 8강 진출

16강-8경기 브라질 對 칠레 : 브라질 8강 진출. 

8강-3경기 아르헨티나 對 독일 : 아르헨티나 4강 진출

8강-4경기 네덜란드 對 브라질 : 브라질 4강 진출

준결승에서는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이 만날 것으로 예상된다. 아르헨티나의 상승세일까? 안정적인 브라질일까? 결승에서 아르헨티나와 우리나라가 다시만나면 좋겠지만, 아무래도 브라질이 결승에서 스페인과 격돌하지 않을까 예상한다. 

결승 스페인 對 브라질 : 스페인 우승. 스페인이 우승의 한을 한번 풀어보라고....인심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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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10-06-22 1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랫만이군요! 저는 브라질이 우승 한 표! ^^ 아르헨티나랑 브라질이 붙지 않을까 싶은데.

멜기세덱 2010-06-22 17:00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오랜만이죠.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이 조1위를 하는 이상 4강에서 만날 확률이 높은데요. 브라질이 포르투갈한테 지지 않는 이상 조1위가 거의 확실해서리.

전호인 2010-06-22 17: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 우리가 브라질 누르고 결승가서 아르헨티나 설욕한번 할까요? ㅋㅋ
간만에 뵙는 듯...

무해한모리군 2010-06-22 17: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멜기님 모처럼 뵙습니다.
뵙고 싶어요 ^^

순오기 2010-06-22 1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멜기님이닷! 반가워서 덥석~~~~~ ^^
나는 한국 16강 진출, 일본은 16강 좌절을 기원하는 심뽀에요.ㅋㅋ
우승은 어디가 될까...점쳐보는 재미도 좋을 거 같아요.^^

멜기세덱 2010-06-22 18:14   좋아요 0 | URL
기원이 아니고, 예상이에요...객관적으로다가....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