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의 탄생 - 최초의 국어사전 만들기 50년의 역사
최경봉 지음 / 책과함께 / 2005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올해로 반포 561주년을 기념하는 한글날이 며칠 전이었다. 5백여년 전에 훈민정음이라는 이름으로 이땅에 태어난 우리의 문자는 그 자체로 일대 사건이었다. 28개의 글자로 세상의 모든 소리들을 적어낼 수 있는 문자가 우리 손으로 탄생한 것이다. 음소문자에서 한층더 진화하여 자질문자의 탄생이었다. 과학적이며 논리적 체계로 가장 단순하고 간명하면서 그 소리의 가짓수는 풍부한 문자가 탄생한 것이다. 이전에도 우리에겐 말이 있었지만, 훈민정음의 탄생과 더불어 새로 태어남을 얻었다고 할 수 있다.

500여년을 지내오면서 어느덧 전국민의 90% 이상이 문자생활을 영위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세상의 어느 문자도 이렇게 단기간에 최강의 성능을 발휘하지는 못하였다. 한자를 보자. 기원전 2~3세기에 한반도에 전해졌다고 하지만, 수천년을 지내었어도 그 문자를 아는 사람은 30%에도 지나지 않았다. 로마자는 또한 어떠한가? 그 문자의 역사도 수천년이다. 그러면 그 글을 쓰고 읽을 수 있는 사람은 한글을 아는 이에 못미친다. 사실 한글의 전래는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한 후 조선왕조 내내 미약하게나마 전달되었을 뿐 그 사용이 전폭적인 것은 아니었다. 언문, 반절이란 다소 저급스런 이름으로 불리우면 아녀자들의 규방에서나, 어린 아이들의 글놀이에서나 쓰여 왔을 뿐, 그 시대의 지배적 문자로 기능하지는 못하였다.

그런데 지금 이 문자가 전국민의 90% 이상에게 사용될 수 있었던 시간은 최근 100년 간의 일이지 싶다. 우리는 이것을 우리말의 제2의 탄생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개화기말 제국열강의 위협속에 시달리던 시절, 일본 제국주의의 먹이감이 되어 강제 합방을 당하게 된 시 시절에, 이 반도의 지식인들은 저마다의 국민 계몽을 꿈꾸었다. 부국강병을 외치기도 하였도, 전 민족적 각성을 외쳤다. 그런 지식인들의 한편에서는 또다른 계몽과 각성의 일환으로 우리말 우리글을 정리정돈하는 일을 소중히 여긴 사람들이 있었으니, 그들은 조선의 말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조선어사전을 편찬하고자 열망했던 것이다. 이로부터 우리말은 또한번 새롭게 탄생하게 되었다고, 그 당시의 사전편찬의 과정과 경위를 조사하여 밝힌 저자 최경봉은 말한다. 여기 이 책 『우리말의 탄생』을 읽고 나면, 어느새 저자의 그 말에 동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말의 제2의 탄생. 그것은 어느 개인의 노력으로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나의 사전을 만든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그 당시 어떤 체계나 자료도 있지 않은 상태에서 한 나라의 말을 총체적으로 수집 정리한다는 것은 맨땅에 헤딩하는 것에 다름없다. 그러나 그들은 헤딩하기로 마음먹었다. 각계의 인사들 또한 우리말 사전의 필요성을 절감했고 사전 편찬에 적극적으로 동조했다. 당대의 지식인들은 계파를 막론하고 이 사전의 발간을 후원했는데, 여기에는 최남선의 이름도 보인다. 주시경의 영향을 받은 그의 제자들이 모여 만든 조선어학회를 위시해서 우리말 사전 편찬을 위한 여러 노력들은 이루 말하기 힘들 정도의 매우 번거롭고 힘겨운 것들이었다.

각계의 후원과 동조가 있긴 했지만, 일제 강점하의 시기에서 위축될대로 위축된 우리말의 사전을 편찬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결국 일제시기에 그 사전이 빛을 보지는 못했다. 일제의 억압에 의해 일제말기에는 사전 편찬에 치명적인 사건, 즉 조선어학회 사건이 일어나 사전 편찬에 각고에 노력을 다한 이윤재 선생을 비롯한 많은 이들이 옥사를 하기까지에 이른다. 우여곡절의 사전 편찬 작업은 이런 사건으로 인하여 그 원고까지 잃어버리면서 모든 것이 숲으로 돌아가는 듯 보였지만, 해방과 함께 잃어버렸던 원고를 다시 찾으면서 결국은 그 사전이 해방후 빛을 보게된다. 사전은 총 6권으로 10여년에 걸친 작업끝에 완간되기에 이른 것이다.

왜 이런 피나는 노력을 그들은 했던 것일까? 그깟 사전이 무슨 소용이길래 이렇게도 많은 이들이 동참하고 죽음에까지 이르는 고통을 감수했던 것일까? 그것은 어떤 사명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세종대왕이 이름하여 '훈민정음'이라고 하였듯이, 이 당시의 지식은들도 우리말을 통한 조선 민중의 각성을 통해 다시금 잃어버린 민족과 조국을 되찾고자 하는 기반을 마련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것은 가히 우리말이 새롭게 태어나는 일이었다. 그것이 민족주의적이고 부르주아적이었던 일이라고 치부할 수만은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끝끝내 그 시작을 함께한 이들이 그 사전의 탄생을 지켜보지 못했지만 대를 이어 결국은 빛을 발하게 된데에는 그들의 이런 정신과 사명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리라.

얼마전 금강산에서 남북의 지식인들이 통일 사전을 편찬하기로 합의를 보았다. 이는 어쩌면 우리말의 제3의 탄생을 예고하는 것은 아닐까? 저자가 이 통일사전을 간절히 바라는 것처럼, 우리에게 있어 남과 북, 그리고 해외동포들의 말과 글을 아우르는 이 사전은 또 한 번은 우리말의 탄생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반포 561돌을 지내면서 세종대왕의 위대한 유산인 한글은 그 자체로 가치있는 것임을 기억한다. 그러나 그 우리말, 우리글의 가치를 더욱 높인 것은 일제시기 우리말 사전에 각고의 노력을 아끼지 않은 이들이다. 그 노력은 아직 끝나서는 안된다. 통일 사전을 위하여, 우리말이 다시금 새롭게 태어날 날을 위하여, 우리 모두 최초의 국어사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 그들의 정신을 되새김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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