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된 언어 - 국어의 변두리를 담은 몇 개의 풍경화
고종석 지음 / 개마고원 / 199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고종석이란 이름은 내게 낯선 이름이다. 이전에 아는 바 없었고, 지금도 제대로 아는 바 없는, 내게는 그런 인물이다. 알라딘에 거하면서 그 이름을 은근히 자주 보게 되었던 것이 이 책과 나의 인연을 맺어주었을 것이다. 특정의 누구를 거론하진 않겠지만, 이 자릴 빌어 그 분께 감사를 드려야겠다. 나름대로 괜찮은 책 한 권 읽게 해 주었고, 글 잘 쓰는 한 저자를 알게 해주었으니 말이다. <감염된 언어>를 읽고 난 후의 지금, 나는 고종석의 다른 책들에 기웃거리고 있다. 그만큼 <감염된 언어>를 통해 무엇인가 고종석이란 이름에 적잖은 매혹을 경험했다고 해야겠다.

다소 빈약해 보이고(요즘 책들은 양장본이 아니더라도 책 표지가 반양장처럼 다소 딱딱해 어느정도 무게감이 있다.) 글자 크기도 좀 큼지막한 듯 하고(재보지는 않았다.), 쪽수도 몇쪽 안되는(271쪽에 달하긴 하다. 비슷한 쪽수를 가진 다른 책과 비교해보니 이 책의 두께는 2/3정도 밖에 안된다. 그만큼 안돼보였나 보다.) 이 책을 대면한 첫 느낌은, 그저 그랬다고 해야겠다. "감염된 언어-국어의 변두리를 담은 몇 개의 풍경화"라는 제목이 그만큼 가벼워지고, 별반의 흥미를 더해주지 못했다는 얘기다. 어쩌면 요즘 책들의 화려한 외장에 내가 너무 익숙해져 있는 탓이기도 하겠지만, 이 책의 외장은 확실히 요즘의 책들보다 좀 떨어진다. 그러나!

책장을 한 장 두 장 넘기면서 그 외장 두로 숨겨둔 고종석의 유쾌한 필력에 빠져들어야만 했다. 개마고원의 편집자는 그것을 이렇게 귀뜸해 주고 있었다. "편집자 주 - 본문에 나오는 외래어의 표기는 필자의 요구에 따랐습니다." 한 권의 책이 저자와 출판사의 이름을 달고 대중에게 팔리려 할때에 그 책은 사적 소유에서 공적 소유로 그 성질을 달리한다고 할 수 있다. 으례히 한글맞춤법과 외래어표기법 등에 맞추어 출간하는 것이 당연한 일일 터, 굳이 이런 편집자 주를 단 것은 저자가 어떤 사람인가를 궁금하게 한다. 그리고 이렇게도 들린다. "이 책을 읽으려면 단단히 각오하고 읽으시기를." 과연 어떻길래?

무엇인가 의미있는 책에서는 무엇하나 남다르지 않은 것이 없다. 책의 서문에서부터 독자들을 압도하는 책치고 나쁜 책이 없다고 본다. 누가 감사하고, 누가 고맙고, 누구의 덕이라느니 하는 인사치례만 늘어놓은 서문들을 나는 경멸한다. <감염된 언어>의 서문은 내가 경멸하는 그런 종류의 서문이 아니다. '서툰 사랑의 고백'이라지만, 강력한 '자유주의자' 선언처럼 여겨진다. "그(언어) 변화의 과정은 곧 감염의 과정이었다. 외국어와 외국 문화의 감염 말이다. 문화사는 곧 감염의 역사고, 그 문화를 실어나르는 언어의 역사도 감염의 역사다. 인공 언어가 아닌 한 감염되지 않은 언어는 없다."라고 말하는 그에게서 그 '감염된 언어'에 대한 '사랑의 고백'을 듣는다. 순수 국어를 주창하는 우리 국어학자들이 들으시면 목을 잡고 쓰러질 일이다. '민족주의자'가 아니라고 말하는 그에게서 "민족주의자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건 왜 일까? 그만큼 누구 못지 않은 한국어 사랑을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감염된 언어'를 사랑한다는 고백에서 우리는 저자의 붓이 어디로 흐를 것인가를 조금은 짐작할 수 있으면서도, 그것이 어디로 흐를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서문에 난 매력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이 책에서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볼 대목은 '영어공용어화 논쟁에 대하여" 다루고 있는 "우리는 모두 그리스인이다"라는 대목이다. 271쪽의 이 책에서 이 부분이 100쪽이 넘으니, 가히 이 책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부분이라 하겠다. 그만큼 필자가 이 대목에 할애한 사고의 분량이 많을 것이리라. 나는 '영어공요어화'를 반대하는 입장이다. 결사반대쯤이라고 해두자. 내 눈에 흙이 들어오고 난 다음에 그 때 가서나 해라 정도라고 해두자. 그런데 저자는 그렇지 않다. 그렇다고 영어공용어화를 쌍수들고 찬성하는 쪽도 아닌듯하다. 영어공용어화 논쟁을 촉발시킨 당사자 복거일이 자신의 스승이라고 밝히고 있으면서도 그는 어느쪽에 치우치지 않고 그 논쟁을 차분히 바라보고 있다. 그러면서 일관된 '개인주의', '자유주의자'의 자신의 견해를 투영해 간다. 그런 그에게 나와 다른 생각을 가졌다손 치더라도 미움이 가지는 않는다. 이 대목에서 내가 느낀 것은 '영어공용어화'에 대한 나의 생각을 보다 차분히 정리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관심을 가져야할 대목이라는 얘기다.

대학에서 영어로 하는 강의의 비율을 높여가고 있고, 나날이 영어의 중요성은 높아져만 가고 있는 현재, 영어공용어화는 논쟁이 아닌 대세로 시나브로 이뤄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결사를 해서 반대해야할 것도 아니고, 그렇게해서 되는 것도 아닐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고종석처럼 차분히 자신의 견해를 정리해 볼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나는 어디까지 그의 논리에 동감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태도에 공감하는 것이다.

그와 내가 달리하는 견해는 또 있다. 국한혼용에 대한 문제이다. 그는 공식적 국한혼용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이다. 나는 역시 그의 입장과 달리한다. "내게는 '대한민국'이 '大韓民國'보다 더 표의적이다. 즉 '대한민국'이 '大韓民國'보다 더 직접적으로 그 뜻이 전달된다. 그게 과장이라면, '대한민국'이 적어도 '大韓民國'만큼은 직접적으로 그 뜻이 전달된다. '대한민국'이라는 글자의 꼴이 '大韓民國'이라는 글자의 꼴보다 더, 또는 적어도 '大韓民國'이라는 글자의 꼴 못지않게, 눈에 익숙한 탓이다."라는 그의 견해와 나는 반기를 들 수 있다. '대한민국'일 때에 그 의미는 사라진다. 단순히 우리나라의 국호로만 기능할 뿐이다. 국호에 담긴 그 이름은 사라진다는 얘기다. '大韓民國'일 때의 큰 나라, 백성의 나라라는 의미가 살아나는 것이다. 이렇게 사사건건 나와는 의견을 달리하는 부분이 많지만, 그의 의견을 또한 존중하고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면서 또한 느끼는 것은 그와 '싸울' 준비를 해야겠다는 강한 위기감을 느낀다. 아마 이것이 고종석의 필력이 가지는 힘이 아닐까 한다.

또한 이 책에서 재밌게 읽을 수 있는 부분은 향가와 고려가요에 대한 저자의 글이다. 무엇보다 모든 글에서 저자의 자유로운 생각의 움직임을 느낄 수 있다. 그 움직임을 나는 꽁무니를 부여잡고 따라갈 필요는 없었다. 다만 그 움직임의 춤사위를 감상하면 그만일 것이다. 거기에 고종석이란 인물의 밉지 않은 생각들을 접하고 웃음지어주는 그만인 것이다. 나를 긴장시키는 그의 글을 나는 계속 읽어야 겠다고 생각한다. 고종석이 나를 동화시키더라도, 나는 고종석에 맞서 싸울 준비를 하기위해 그를 가까이 해야겠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늘빵 2007-01-22 0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상당히 매력있고 설득력있는 글이죠. 그의 다른 글들도 읽어보시면 반하실 겁니다. 고종석 팬들이 많군요.

글샘 2007-02-07 05: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고종석에게 절대로 반하지 않습니다. ^^ 그는 가진자의 논객을 따름이죠.
맘만 먹으면 프랑스에 가서 몇 년 살다 올 수 있는...
극우꼴통은 아니지만, 보수주의자 중에 좀 멋진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근데, 아무리 읽어봐도 마음엔 안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