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데니스 간젤
출연:위르겐 포겔 (라이너 벵어 역), 프레데릭 로 (팀 역), 제니퍼 울리히 (카로 역)
별점: ★★★★
오늘은, 알라딘 영화DB가 없는 영화를 소개해 볼까 한다. 바로 독일 영화 <더 웨이브>란 영화다.(알라딘에 DB가 있었다면 난 이 글을 당연 리뷰로 썼을 것이다. 하지만 그도 그럴 것이 이 영화는 우리나라 개봉관에서 상영하지 않았던 것으로 안다. 분류도 제3세계의 음악을 월드 뮤직이라고 따로 분류하는 것처럼 이 영화도 세계 영화로 분류하는 것 같다. 약간 갸웃할 일이지만 암튼).
내가 이 영화를 보면서 느낀 것은 파시즘은 아직도 살아있다는 것이다.
고교 교사 벵어는(정확히 무엇을 가르치는 교산지는 알 수가 없다. 사회나 역사를 가르치지 않았을까?) 우연한 기회에 전체주의 수업을 맡아 가르치게 된다. 우리나라 같으면 역시나 주입식으로 일갈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벵어 교사 무슨 열심인지 이것을 머리가 아닌 직접 느끼게 살아있는 교육을 실시한다. 즉 그의 시간 만큼은 벵어 선생님이라 부르지 못하게 하고, '벵어님'이라고 부르게 하며, 태어나서 여간해서 입어보지 않았을 교복의 의미로 그 시간만큼은 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등교하도록 했으며, 그들만의 표식도 만들고, 독특한 인사법을 개발해서 서로 인사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에게 고유명사가 부여됐다. 그것은 바로 '디 벨레'다.
이것은 아이들에겐 너무 자유롭다 못해 다소 나른한 학교생활에 활력을 주기에 충분했고 적지 않은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 잡았다. 나는 여기서 다소 놀라웠다. 한없이 자유를 추구하고, 구속당하기 싫어할 것 같은 아이들이 오히려 이런데서 오는 구속감을 더 좋아하더라는 점이다. 그런데 그도 그럴 것이 이것은 아이들에게 이전엔 없는 새로운 경험이며, 뭔가 구별되기를 좋아하는 그래서 그 안에 일원이 된다는 점이 매우 끌리는 점이 되는 것이다. 그것은 확실히 이 수업을 찬성하는 아이들에겐 더 없는 결속력을 요구하는 것이며, 수업에 반대하는 학생들에겐 굉장한 반감을 갖게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당연히 아이들의 전체주의는 그것을 반대하는 같은 반 아이 카로를 표적을 삼기도 하고, 또한 그것을 반대하는 세력들과 마찰을 빚기도 한다. 이것은 어찌보면 내가 2년전쯤 다시 보았던 해리 훅 감독이 만든 <파리대왕>을 연상시키는 부분이기도 하다. 또한 카로와 뜻을 같이해 반전체주의 운동을 했던 아이들은 우리나라의 민주화 운동을 연상케도 한다.
그런데 아이들의 벵어님은 어떤가? 그는 아이들의 숨통을 트여주고,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저<죽은 시인의 사회>의 키팅 선생님을 연상케도 한다. 하지만 그의 수업은 이미 통제불능의 상태가 되어버렸다. 수업은 교실을 넘어 학교 전체를 공포로 몰아간다. 뿐만 아니라 그동안 전체주의를 추종했던 아이들 사이에서도 균열과 갈등이 일어난다. 뭔가 이것은 잘못됐다는 자각을 하는 아이들이 생겨난 것이다. 벵어는 사태를 바로잡아 보고자 자신의 전체주의 수업을 듣는 아이들을 강당으로 몰아넣고 그들의 꿈과 환상에서 깨어나게 하고자 노력한다. 물론 그의 지혜로 일은 잘 수습된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사건은 바로 그 순간 일어났다. 그동안 학교의 왕따였고, 또라이였던 팀이 이 수업을 들은 뒤로 처음으로 인간대접을 받았던 것이다. 그는 '디 벨레'의 이름으로 그것을 거부하는 세력으로부터 보복을 받을 때 보호를 받았던 것이다. 그건 그에게 특별한 경험이었다. 그런데 벵어 선생님은 낮잠 한번 잘 자다 깬 것처럼 모든 것을 없었던 것으로 하려고 하니 얼마나 기가막혔을까? 그는 안된다고 절규했고, 그때까지 장난감 총이라고 속였던 총을 친구에게 난사하고 스스로 총을 물고 자살을 한다. 이것은 보기에도 충격스럽기도 하지만, 지난 몇 년 간 그리고 지금도 끊이지 않고 일어나는 미국의 총기난사 사건 그것도 특별히 지난 2007년 버지니아 공대의 조승희 사건을 떠올리기에 충분한 부분이기도 하다.
물론 벵어는 전체주의를 신봉했던 사람은 아니었을 것이다. 지난 200년 동안 전체주의가 인류에게 씼을 수 없는 상처로 남아 있다는 것을 히틀러와 파시즘이 너무도 잘 증명 해주고 있지 않는가? 그러나 전체주의의 망령은 오늘도 곳곳에 남아있다. 그것은 사람을 특별하게도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매력적이기도 하다. 하지만 사람들은 전체주의의 위험성은 말하기는 좋아 하지만 그것을 반대했다고 해서 민주화된 사회를 행복해 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더 많은 소외와 계층간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영화의 도입 부분에서 보면 흰셔츠에 청바지 착용이 우스웠던 카로가 평상시처럼 옷을 입고 등교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녀는 그것으로 인해 반 아이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고 발표에서도 제외되기도 한다. 벵어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손을 든 카로를 무시했던 것이다. 이것은 확실히 전체주의의 전형을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전체를 위해 소수가 희생당해야 하는 현실. 그러나 민주주의의 정신을 그렇지 않다. 아무리 다수의 힘이 클지언정 소수를 희생시키지 않아야 한다. 이런 민주화된 나라에서 과연 그것이 온전히 지켜지고 있는가는 이 영화를 보는 사람들마다 묻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결국 이 수업에 참여한 한 영혼이 죽어갔다. 감독은 단순히 전체주의의 망령과 폐해를 말해주기 위해 이 영화를 만들지 않았을거라고 본다. 오히려 우리가 그렇게도 경계해 마지않는 파시즘 즉 독재주의가 판치지 않기위해 민주화를 어떻게 지켜나갈 수 있을 것인가 묻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영화는 상당히 잘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영화의 어느 부분은 마치 뮤직 비디오를 보는 것처럼 감각적으로 잘 만들었고, 전체적으로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