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세상에서가장먼길은머리에서가슴까지가는길 (인식의힘 서재)</title><link>http://blog.aladin.co.kr/cognize</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전복(顚覆)을 전복하는 책읽기와 글쓰기 그리고 걷기 </description><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Fri, 10 Feb 2012 20:40:08 +0900</lastBuildDate><image><title>인식의힘</title><url>http://image.aladdin.co.kr/Community/myface/pt_722704164725937.jpg</url><link>http://blog.aladin.co.kr/cognize</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인식의힘</description></image><item><author>인식의힘</author><category>철학</category><title>삶의 조건들에 대한 철학적 성찰이 필요하다 - [철학, 삶을 묻다]</title><link>http://blog.aladin.co.kr/cognize/5393998</link><pubDate>Wed, 01 Feb 2012 22:4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cognize/539399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2976008&TPaperId=5393998"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444/60/coveroff/897297600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2976008&TPaperId=539399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철학, 삶을 묻다</a><br/>한국철학사상연구회 지음 / 동녘 / 2009년 08월<br/></td></tr></table><br/><!--StartFragment-->
I`m just a little bit caught in the middle 
난 잠시 중간에 멈춰있을 뿐이에요 
&nbsp;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o:p></o:p>
Life is a maze and love is a riddle 
인생은 미로같고 사랑은 수수께끼같죠 
&nbsp; <o:p></o:p>
I don`t know where to go I can`t do it alone I`ve tried 
난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어요 혼자서는 할 수 없어요 시도는 해봤지만 
&nbsp; <o:p></o:p>
And I don`t know why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nbsp; <o:p></o:p>
Slow it down 
속도를 늦춰요 
&nbsp; <o:p></o:p>
Make it stop 
그리고 멈춰요 
&nbsp; <o:p></o:p>
Or else my heart is going to pop 
안그러면 내 심장이 터져버릴거예요 
&nbsp; <o:p></o:p>
`Cause it`s too much 
왜냐하면 너무나 
&nbsp; <o:p></o:p>
Yeah, it`s a lot to be something I`m not 
그래요 그건 너무 내가 아닌게 되잖아요 
&nbsp; <o:p></o:p>
I`m a fool 
난 바보에요 
&nbsp; <o:p></o:p>
out of love 
사랑에서 
&nbsp; <o:p></o:p>
`Cause I just can`t get enough 
충분히 얻을 수 없기 때문이에요 
&nbsp; <o:p></o:p>
I`m just a little bit caught in the middle 
난 잠시 중간에 멈춰있을 뿐이에요 
&nbsp; <o:p></o:p>
Life is a maze and love is a riddle 
인생은 미로같고 사랑은 수수께끼같죠 
&nbsp; <o:p></o:p>
I don`t know where to go I can`t do it alone I`ve tried 
난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어요 
&nbsp; <o:p></o:p>
And I don`t know why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nbsp; <o:p></o:p>
I`m just a little girl lost in the moment 
난 한순간에 길을 잃은 한 소녀일 뿐이예요 
&nbsp; <o:p></o:p>
I`m so scared but I don`t show it 
난 너무 무서워요 하지만 그걸 보여주진 않아요 
&nbsp; <o:p></o:p>
I can`t figure it out 
난 알아낼 수 없어요 
&nbsp; <o:p></o:p>
It`s bringing me down I know 
그게 나를 힘들게 해요 알아요 
&nbsp; <o:p></o:p>
I`ve got to let it go 
그냥 놔두려고 해요 
&nbsp; <o:p></o:p>
And just enjoy the show 
그리고 그냥 쇼를 즐기면 되겠죠 
&nbsp; <o:p></o:p>
The sun is hot In the sky 
하늘의 태양은 뜨거워요 
&nbsp; <o:p></o:p>
Just like a giant spotlight 
마치 큰 스포트라이트처럼 
&nbsp; <o:p></o:p>
The people follow the sign 
사람들은 표지판을 따라가죠 
&nbsp; <o:p></o:p>
And synchronize in time 
동시에 말이죠 
&nbsp; <o:p></o:p>
It`s a joke Nobody knows 
이건 우스운 일이에요 아무도 모르죠 
&nbsp; <o:p></o:p>
They`ve got a ticket to that show 
그들이 그 쇼의 티켓을 가졌단걸요 
&nbsp; <o:p></o:p>
Yeah 
예... 
&nbsp; <o:p></o:p>
I`m just a little bit caught in the middle 
난 잠시 중간에 멈춰있을 뿐이에요 
&nbsp; <o:p></o:p>
Life is a maze and love is a riddle 
인생은 미로같고 사랑은 수수께끼 같죠 
&nbsp; <o:p></o:p>
I dont know where to go I can`t do it alone I`ve tried 
난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어요 혼자서는 할 수 없어요 시도는 해봤지만 
&nbsp; <o:p></o:p>
And I don`t know why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nbsp; <o:p></o:p>
I`m just a little girl lost in the moment 
난 한순간에 길을 잃은 한 소녀일 뿐이에요 
&nbsp; <o:p></o:p>
I`m so scared but I don`t show it 
난 너무 무서워요 하지만 그걸 보여주진 않아요 
&nbsp; <o:p></o:p>
I can`t figure it out 
난 알아낼 수 없어요 
&nbsp; <o:p></o:p>
It`s bringing me down I know 
그게 나를 힘들게 해요 알아요 
&nbsp; <o:p></o:p>
I`ve got to let it go 
그냥 놔두려고 해요 
&nbsp; <o:p></o:p>
And just enjoy the show 
그리고 그냥 쇼를 즐기면 되겠죠 
&nbsp; <o:p></o:p>
Just enjoy the show 
그냥 쇼를 즐기면 되겠죠 
&nbsp; <o:p></o:p>
I`m just a little bit caught in the middle 
난 잠시 중간에 멈춰있을 뿐이에요 
&nbsp; <o:p></o:p>
Life is a maze and love is a riddle 
인생은 미로같고 사랑은 수수께끼같죠 
&nbsp; <o:p></o:p>
I dont know where to go I can`t do it alone I`ve tried 
난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어요 혼자서는 할 수 없어요 시도는 해봤지만 
&nbsp; <o:p></o:p>
And I don`t know why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nbsp; <o:p></o:p>
I`m just a little girl lost in the moment 
난 한순간에 길을 잃은 한 소녀일 뿐이예요 
&nbsp; <o:p></o:p>
I`m so scared but I don`t show it 
난 너무 무서워요 하지만 그걸 보여주진 않아요 
&nbsp; <o:p></o:p>
I can`t figure it out 
난 알아낼 수 없어요 
&nbsp; <o:p></o:p>
It`s bringing me down I know 
그게 나를 힘들게 해요 난 알아요 
&nbsp; <o:p></o:p>
I`ve got to let it go 
그냥 놔두려고 해요 
&nbsp; <o:p></o:p>
And just enjoy the show 
그리고 그냥 쇼를 즐기면 되겠죠
&nbsp; <o:p></o:p>
&nbsp; <o:p></o:p>
Lenka의 ‘The show’가 아니라 영화 &lt;머니볼(moneyball)&gt;에서 빌리 빈(브래드 피트)의 딸(캐리스 도시)이 부른 ‘The show’를 잊을 수가 없다. 간결한 기타 소리, 함께 맑은 눈동자, 간결한 기타 연주 그리고 감정이 배제된 덤덤한 목소리가 남긴 여운이 길다. 좋은 선수는 다른 구단에 죄다 빼앗기고 돈이 없어 쩔쩔매는 메이저리그 만년 최하위 ‘오클랜드 애슬랜틱스’의 단장 빌리 빈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보스턴 레드삭스의 천문학적 스카우트 비용을 거절하고 팀에 남는 마지막 장면의 배경으로 ‘The show’를 다시 한 번 들려준다. 쇼를 즐기라고 인생은 쇼에 불과하다고. 최고의 고교 선수였지만 길을 잃었던 빌리 빈에게 야구는 낭만적이지 않을 수 없는 그의 인생이다. 선수가 아니지만 전대미문의 20연승을 달성하는 과정은 우리들 삶을 의미심장하게 상징한다. 잃어야 얻을 수 있고 도전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와 새로운 길을 걷는 사람의 외로움을 보여준다. 
&nbsp; <o:p></o:p>
우리는 때때로 철학에게 묻는다, 삶이 뭐냐고. 한국철학사상연구회의 『철학, 삶을 묻다』는 이 질문에 답한다. 그러나 지금도 여전히 철학자들은 똑같은 질문에 답하려고 노력할 뿐 어디에도 정답은 없다. 열두 명의 철학 전공자가 우리들의 삶과 관련된 다양한 분야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내는 이 책은 짧은 분량이지만 각각의 주제를 깊이 있고 진지하게 다루고 있다. 대중적인 철학서를 표방하지만 쉽고 재미있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 대신 주제에 대한 명쾌하고 정확한 접근으로 읽는 재미를 더하고 있다. 
&nbsp; <o:p></o:p>
‘건강한 욕망, 병든 욕망’이라는 주제로 1장을 열어주는 윤구병 선생님의 글은 삶의 본질과 바탕인 생명과 공동체적 삶에 대해 깊이 성찰하게 한다. 2장부터는 디지철 시대의 소통과 관계 맺기, 사랑과 결혼과 가족, 다문화, 소외, 자유, 상품 생산과 소비, 대중문화, 환경과 기술 문명, 인권, 종교 등 우리들이 매일 겪고 있는 삶의 문제와 직접 관련된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단순해 보이지만 현상과 본질이 뒤섞이고 알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사이에서 헤맬 때가 많다. 철학은 때때로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에 대해 딴지를 걸고 의문을 제기한다. 하지만 이 책은 혼란스런 생각들을 정리해 주고 미처 생각해 보지 못한 부분들에 대해 꼼꼼하게 짚어준다. 사는 건 그냥 사는 것과 열심히 사는 것이 크게 다르지 않다. 결과로 말할 수 없고 과정만으로도 평가할 수 없는 것이 삶이다. 자신의 삶에 대한 만족감은 어떤가. 주체적인 삶은 어떻게 가능한가. 그것은 주체적인 사유 방식에 따라 달라지는 것은 아닌가. 그것은 디지털 시대에도 마찬가지 아닌가.
&nbsp; <o:p></o:p>
누군가가 엿보기 전에 스스로 자기를 드러낸다. 드러냄으로써 타인과 과감하게 상호 소통한다. 불특정 다수에게 자신을 드러내고 자신에게 관여할 기회를 스스로 제공하는 것이다. 심지어 자신의 내면의 일기 또한 이러한 방식으로 드러낸다. 자신만을 위한 독백이 아니라, 누군가와 공유하기 위한 심경 고백을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이버스페이스 공간에서 일어나는 관계 맺기의 특징이다. - 48쪽
&nbsp; <o:p></o:p>
철학사상연구회에서 내놓은 책들이 괜찮았다면 주저 없이 선택해도 좋은 책이고 읽은 적이 없다면 직접 확인하고 살펴가며 책을 고르는 수고를 거쳐야 한다. 철학자들의 주저와 고전을 섭렵하기 전이거나 가벼운 마음으로 철학에 관한 2차 저작들에 관심을 가진 독자라면 몇 장이라도 직접 읽어보고 문장의 난이도와 내용, 책 전체의 방향과 목적을 확인하고 읽는 것이 좋다.
&nbsp; <o:p></o:p>
대부분 교수가 직업인 사람들의 글은 아카데미즘과 저널리즘의 위험한 줄타기를 시도하다가 실패하기 쉽다. 이도저도 아닌 글을 만날 때의 낭패감을 피하고 싶다면 꼼꼼하게 직접 살피는 것은 최선이다. 이 책의 저자들은 대부분 적절한 난이도를 유지하며 균형을 맞추고 있다. 보다 대중적이고 편안한 모임과 연구들이 보편화되고 다 함께 읽고 쓰는 일이 일상화될 수 있으려면 조금 덜 일하고 다함께 나누려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 시작은 내 삶의 주인이 나라는 사실을 자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철학사상연구회 연구원 김성우는 ‘허용된 자유와 허용되어야 할 자유’에서 이렇게 말한다.
&nbsp; <o:p></o:p>
신자유주의는 계몽이 약속한 성숙과 책임과 해방보다는 계몽적 근대성의 본질인 도구적 합리성의 지배와 억압을 계승하고 있는 것이다. 신자유주의는 미래 사회의 진정한 대안이 될 수 없다. 신자유주의는 경제적 자유와 시장의 맹신 하에 본래적 의미와 인간의 자유를 보장해 줄 인권의 민주주의를 결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 137쪽
&nbsp; <o:p></o:p>
가장 절박한 이 시대의 이데올로기 신자유주의의 폐해가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국민 대다수가 노동자가 되기 때문에 학교에서 노동법과 노사협상 과정을 가르치는 유럽과 친기업 정책으로 철저하게 대기업의 이익을 보호하는 대한민국의 미래는 어떻게 달라질까. 떡볶이, 순대까지 군침을 흘리고 3대, 4대로 이어지는 재벌들의 파렴치한 자본의 욕망은 끝을 모른다. 중소기업의 납품 단가를 후려치고 기술을 도둑질하며 기술개발 의지를 꺾는 대기업을 위축시키지 말라고 공언하는 대통령을 가진 나라 대한민국의 미래는 어떠한가.
&nbsp; <o:p></o:p>
철학은 이데올로기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들의 밥숟가락 문제다. 선악의 문제가 아니라 상식의 문제다. 세상을 어떻게 볼 것인가의 문제는 이 시대를 어떻게 볼 것인가의 문제이며 나와 너를 바라보는 시선의 문제이다. 들리는 대로 듣고 보이는 대로 보는 일차원적 사고 방식으로는 현상과 본질을 구별할 수 없으며 내 삶의 주인이 될 수 없다. 이 책은 철학이 삶에게 묻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는 삶의 영역에 대한 철학적 성찰이다. 가슴이 아닌 머리에게 물어볼 시간이다. 
&nbsp; <o:p></o:p>
&nbsp; <o:p></o:p>
120201-011]]></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444/60/cover150/8972976008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2976008</link></image></item><item><author>인식의힘</author><category>철학</category><title>열 네명의 철학자에게 직접 듣는 철학 수업 - [철학의 교실]</title><link>http://blog.aladin.co.kr/cognize/5388805</link><pubDate>Mon, 30 Jan 2012 23:2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cognize/538880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642126X&TPaperId=5388805"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1133/11/coveroff/899642126x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642126X&TPaperId=538880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철학의 교실</a><br/>오가와 히토시 지음, 안소현 옮김 / 파이카 / 2011년 04월<br/></td></tr></table><br/><!--StartFragment-->
니콜 키드먼의 &lt;래빗 홀&gt;과 브래드 피트의 &lt;트리 오브 라이프&gt;를 보면서 말할 수 없는 생의 불가해함을 읽어내야 했던 것일까. 아니면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의 마음을 헤아려 봐야 하는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기독교적 세계관으로도 해결하지 못하는 슬픔에 대한 분노와 허무를 생각해야 하는 것일까. 이창동의 &lt;밀양&gt;과 또 다른 관점에서 두 편의 영화를 들여다보면 사람마다 다른 생각을 하게 될 것 같다. &lt;웰컴 투 마이 하트&gt;는 그 슬픔에 대한 미국식 해법과 위로를 보여준다. 네 편의 영화는 단순히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의 관점이 아니라 ‘죽음’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철학은 죽음을 연습하는 행위’라고 한 말을 기억한다면 누군가의 죽음은 철학의 시작이다. 그것이 생물학적 죽음이든 &lt;자전거 탄 소년&gt;의 시릴처럼 이별과 부재로 상징되는 존재론적 죽음이든 말이다. 
&nbsp;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o:p></o:p>
오가와 히토시는 『철학의 교실』에서 죽은 철학자들을 교실로 호출한다. 고등학교 2학년 학생 3명과 30대 미혼 직장인 그리고 40대 초반 주부에게 철학을 이야기하는 철학자를 생각해 보자. 첫 시간에 등장하는 하이데거. ‘죽음’을 통해 자신의 철학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그 핵심을 설명한다. 청중은 고교생과 직장인과 주부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독자 수준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런 형식을 갖춘 책이라면 난이도와 깊이가 충분히 이해가 될 것이다. 아주 쉽고 간단하게 중요한 철학자들의 사상을 접할 수 있다. 마지막 열 네 번째 시간에는 저자인 오가와 선생인 등장한다. 전체 열 네 개의 강좌로 이루어진 이 책에는 헤겔, 칸트, 퐁티, 레비나스, 아렌트, 롤스, 플라톤, 알랭, 푸코, 마르크스, 사르트르, 니체가 등장한다. 
&nbsp; <o:p></o:p>
이들이 무작위로 호출당한 것은 아니다. 철학은 현실과 동떨어진 곳에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철학자들은 철학교실에서 ‘삶’을 이야기하고 ‘사회’를 설명하며 ‘타인’과의 ‘관계’를 말한다. 영화 &lt;웰컴 투 마이 하트&gt;에서 말로리는 더그에게 전화를 걸어 우리에게 아직 ‘희망’이 있는 거냐고 묻는다. 그것은 질문이 아니라 스스로에 대한 다짐이다. 하이데거는 첫 시간에 ‘마지막 순간까지 희망을 놓지 않는 것, 그것이 삶입니다.’라고 말한다. 삶은 죽음에 대한 정확한 인식에서 시작된다. ‘꿈’을 이야기하는 헤겔, ‘이성과 욕망’을 이야기하는 칸트, ‘고민’을 이야기하는 메를로 퐁티……. 한 시간에 하나의 주제에 집중하며 그들의 주장을 간략하게 도식화 시켜놓은 메모는 독자의 이해를 도울 뿐만 아니라 관념적일 수 있는 철학을 명쾌하게 제시한다. 복잡하고 다양한 사유의 흔적들을 몇마디 개념어와 화살표로 정리하는 것이 자칫 위험할 수도 있지만 철학이 막연하게 어렵거나 두렵다고 느끼는 독자에겐 친절한 안내서가 될 수 있겠다. 
&nbsp; <o:p></o:p>
그렇다고 해서 살을 발라내고 뼈대만 세운 핵심 요약집은 아니다. 간략한 분량이지만 핵심적인 내용과 개념들을 정확하고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한 권도 읽지 못한 철학자도 있지만 책을 몇 권 읽은 철학자의 강의는 알기 쉽고 간명하게 이야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헤겔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nbsp; <o:p></o:p>
개인이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세상이라면, 국가가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는 것이겠죠. 그래서 국가는 늘 국민이 이상을 실현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 55쪽
&nbsp; <o:p></o:p>
이 책이 장점 중 하나는 저자의 목소리가 배제된 채 철학자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가상공간이지만 교실에 둘러앉아 철학자의 이야기를 직접 듣는 느낌이다. 딱딱한 교실이 아니라 철학 카페로 설정했다면 조금 더 분위기가 부드러워졌겠지만 어쨌든 일방적인 강의가 아니라 중간 중간 등장인물들과의 대화가 이어진다. 고교생 다운 질문과 영화를 좋아하는 이사무의 이야기가 생기를 불어넣는다. 일장적인 강의가 아니라 편안한 대화로 진행되기 때문에 그 자리에 앉아 토론 수업을 하는 기분이 든다. 
&nbsp; <o:p></o:p>
평범한 일상에서 우리는 문득문득 ‘왜’라는 질문을 한다. 반복되는 생활, 지루한 업무, 하기 싫은 일들 속에서 우리는 ‘의미’를 찾기도 한다.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왜’ 그런지 질문하고, ‘의미’를 생각해 볼 수 있게 배려한 저자의 노력이 돋보인다. 플라톤이 들려주는 ‘연애’ 이야기, 니체의 ‘인생’ 이야기를 통해 우리들의 삶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매일 반복되는 ‘노동’과 ‘일’의 차이를 생각해 볼 수 있고 다른 내일을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nbsp; <o:p></o:p>
노동은 살아가기 위한 자연적인 활동과 관련이 있습니다. 즉 음식을 만들거나 빨래를 하거나 이른바 생계에 필요한 것을 만들어내는 활동입니다. 이에 비해 일은 비자연적인 활동을 가리킵니다. 일을 통해 만들어내는 것은 도구나 건축물 같은 공작물입니다. - 159쪽
&nbsp; <o:p></o:p>
그리하여 다람쥐처럼 맹목적으로 쳇바퀴를 굴리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탈주’를 꿈꿀 수 있는, 두근거리는 삶을 살아야하지 않을까. 철학자들에게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지식이나 개념이 아니라 바로 이러한 삶의 태도와 구체적인 방법이 아닐까. 러셀이 말했듯이 정답을 찾는 대신 끝없이 ‘질문’을 던지면 되지 않을까. 
&nbsp; <o:p></o:p>
프랑스의 현대 사상가 들뢰즈는 ‘탈주’를 이야기했습니다. ‘탈주’는 기존 질서에 의문을 던지고 그곳에서 일탈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행위입니다. - 164쪽
&nbsp; <o:p></o:p>
&nbsp; <o:p></o:p>
120130-010]]></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1133/11/cover150/899642126x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642126X</link></image></item><item><author>인식의힘</author><category>한겨레신문 연재</category><title>1. 문학의 즐거움 - ① 문학에 접근하는 태도와 방법</title><link>http://blog.aladin.co.kr/cognize/5388737</link><pubDate>Mon, 30 Jan 2012 22:5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cognize/5388737</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01135647&TPaperId=5388737"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1461/91/coveroff/8901135647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StartFragment-->
 
수험생과 문학교사들 사이에는 전설 같은 현실이 전해진다. 2002년 수능에 신경림의 ‘가난한 사랑 노래’가 출제된 적이 있다. 우리 민족의 전통적 정서와 농촌 현실을 잘 표현한 시로 사랑받는 시인에게 자신의 시를 바탕으로 출제된 문제를 풀어보게 했더니 열 문제 중 일곱 문제를 틀렸다고 한다. 2010년 수능 대비 6월 모의평가에 ‘대설주의보’가 출제된 적이 있는 최승호 시인은 다섯 문제 중 네 개를 틀렸다고 한다. 시인의 의도를 묻는 문제를 틀렸다고 하니 문제를 잘못 출제한 것일까 아니면 정답이 틀린 걸까. 최승호 시인은 서울시 교육청에서 주최한 중등교사 연수에서 “시에서 이미지는 살, 리듬은 피, 의미는 뼈인데, 살과 피는 빼고 학교 교육에선 ‘뼈’만 얘기한다. 그런 나쁜 가르침은 가래침과 같다”는 말로 일침을 가했다. ‘가르침’을 ‘가래침’으로 라임을 맞춘 비유가 시인다워 피식 웃은 기억이 난다. 시인의 말이 다소 지나친 면이 있지만 대한민국 문학교육의 현주소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로 이해된다. 왜냐하면 문학은 즐겁고 행복한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대학진학을 위한 수단 혹은 걸림돌이 되어버린 현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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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거꾸로 생각해 보면 점수를 높이는 방법과 문학을 감상하는 방법이 전혀 다른 것은 아니다. 최승호 시인이 말한 것처럼 문학에서 뼈에 해당하는 ‘의미’만 배울 수 있는 방법이 있는 걸까. 아니다. 그렇지 않다. 문학은 살아있는 유기체와 같아서 총체적인 대상으로 접근해야 한다. 기계처럼 전체가 각각의 부품처럼 환원될 수 없는 것이 문학이다. 문학은 언제나 부분의 합보다 크다. 시는 소리 내어 읽으면서 귀로 들어보고 마음속에 그려지는 이미지를 떠올려 보고 의미를 생각해 보는 것이 좋다. 그 전체적인 울림이 시인의 의도가 아니겠는가. 사건의 원인과 해결 과정에만 관심을 두고 소설을 읽는 것이 아니라 등장인물들의 심리와 사건이 일어나게 된 시간과 장소, 시대 상황까지 들여다보고 나의 느낌과 생각을 정리한 후에 작가가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문학에 접근하는 가장 나쁜 방법은 작품을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은 채 높은 점수를 얻기 위해서 참고서에 실린 해제를 암기하고 문제만 푸는 것이다. 문학에 대한 올바른 감상 태도와 방법은 자발적이고 즐거운 마음이 우선이어야 한다. 그러면 점수도 자연스럽게 올라간다. 왜냐하면 수능 언어영역은 암기력 테스트가 아니기 때문이며, 내가 ‘공부’하지 않은 작품이 출제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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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언어영역을 위해서는 빨리, 많이 읽을수록 좋은 걸까. 줄거리만 읽고 핵심만 공부해도 되지 않을까. 읽지 않고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이런 사람들을 위한 책을 한 권 살펴보자. 프랑스의 피에르 바야르는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을 알려준다. 마치 알라딘의 요술램프처럼 세상을 살아가는데 없어서는 안 될 책처럼 끌리는 제목이다. 읽어도 끝이 없는 책을 읽는 대신 읽은 것처럼 말할 수 있는 비법이 숨겨진 책이 아닐까. 전혀 읽지 않은 책, 대충 훑어 본 책, 귀동냥한 책, 내용을 잊어버린 책을 비독서로 규정하며 담론 상황에 대해 ‘부끄러워 말 것, 자신의 생각을 말할 것, 책을 꾸며낼 것, 자기 얘기를 할 것’이라고 충고한다. 짐작하겠지만 이 책의 작가는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이 아니다. 독서의 수고로움과 기억의 한계 그리고 내면화된 책읽기 방법에 대해 역설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즐겁게 읽으면서 책을 완전히 나만의 것으로 소화하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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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일본 작가 히라노 게이치로는 ‘슬로 리딩(slow reading)’을 권한다. 『책을 읽는 방법』이라는 책에서 단 한권을 읽더라도 뼛속까지 완전하게 빨아들이라고 말한다. 스피드가 승부를 좌우하는 세상에서 ‘빨리빨리’를 외치며 살아온 우리들 아닌가. 빠르게 많이 읽는 것이 상식이 되어 속독법을 익히고 경쟁적으로 많이 읽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작가는 ‘느림’을 강조한다. 양적인 독서에서 질적인 독서로의 전환을 권한다. 두 권의 책을 통해 우리는 천천히 음미하며 읽고 완전히 소화시켜 내면화하는 것이 문학에 접근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결론을 얻게 된다. 소설 한 권을 읽는 재미, 시 한 편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면 비로소 문학은 즐거움의 대상이 될 것이며 평생 내 곁을 지켜주는 소중한 친구가 되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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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제 천천히 문학의 숲을 거닐어 보자. 무엇이든 처음 시작하는 사람에게는 멘토가 필요하다. 『정여울의 문학 멘토링』은 ‘1+1=2’처럼 명쾌한 답이 없어서 문학이 싫다고 말하는 청소년들을 위한 책이다. ‘단 하나의 정답으로만 존재할 수 없는 우리의 다채로운 삶을 담아내는, 크기도 모양도 일정하지 않은 그릇’이 바로 문학이다. 이 책은 문학의 비밀을 알려주는 18개의 열쇠를 준비했다. 각각의 방에는 패러디, 시점, 은유, 상징에서부터 악당, 모험, 욕망, 환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학의 ‘기법’과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시작하기에 앞서 문학의 ‘역할’을 알기 쉽게 설명한 1부는 에피타이저에 해당한다. 중고등학생들의 바이블이 되어 버린 문학 참고서와 일반인들이 거의 찾지 않는 문학 이론서 ‘사이’를 더듬고 있는 이 책은 시중에 쏟아지는 ‘공부법’, ‘학습법’류가 아니다. 문학평론가인 저자는 청소년들의 멘토를 자처하고 나섰다. 이 책을 읽는 멘티들은 넉넉하고 편안한 마음을 준비하고 멘토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자. 이론에 대한 알기 쉬운 설명은 물론 주옥같은 작품들이 적절한 사례로 등장한다. 문학은 어렵지도 낯설지도 않은 대상이다. 평생 우리 곁에서 울리고 웃기며 진한 감동과 깨달음을 전해줄 좋은 친구를 사귄다는 마음으로 문학을 마주하자.) 읽은 책은 고개를 끄덕이며 읽지 않은 책은 메모해 가며 천천히 걷다보면 어느새 문학은 여러분의 ‘베프(best friend)’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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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은 언제나 열린 마음으로 우리들에게 삶을 이야기하며 세상을 보여주고 꿈꾸게 한다. 문학과 나누는 그 즐거운 대화를 포기할 수는 없다. 세르반테스의 말대로 우리 모두 “이룩할 수 없는 꿈을 꾸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고, 싸워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움을 하고,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디며, 잡을 수 없는 저 하늘의 별을 잡자.”
&nbsp;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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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1461/91/cover150/8901135647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01135647</link></image></item><item><author>인식의힘</author><category>사회</category><title>한국에서 태어난게 잘못이야 - [미국에서 태어난 게 잘못이야 - 일중독 미국 변호사의 유럽 복지사회 체험기]</title><link>http://blog.aladin.co.kr/cognize/5374698</link><pubDate>Tue, 24 Jan 2012 23:3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cognize/537469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0511811&TPaperId=5374698"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1349/29/coveroff/896051181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0511811&TPaperId=537469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미국에서 태어난 게 잘못이야 - 일중독 미국 변호사의 유럽 복지사회 체험기</a><br/>토머스 게이건 지음, 한상연 옮김 / 부키 / 2011년 10월<br/></td></tr></table><br/><!--StartFragment-->
민주주의 앞에 ‘자유’가 붙이려고 목숨 거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하여 ‘자유 민주주의’를 대한민국의 정체로 삼아야 한다는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 언제까지 대한민국을 지배할 것인가. 과연 21세기형 ‘빨갱이’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nbsp;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o:p></o:p>
민주주의는 ‘자유 민주주의’와 ‘사회 민주주의’로 양분될 수 없다. ‘민주주의’는 가치가 아니라 제도에 불과하다. 개인이 모여 사회를 이루고 그 사회를 어떻게 이끌어 갈 것인가의 문제는 국가의 정체성을 나타내기 이전에 개인의 삶을 결정짓는 중요한 기준이 될 수도 있다. 인류의 역사는 수많은 정치 제도를 실험해왔다. 현재까지 검증된, 가장 인간적인,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정치제도는 ‘민주주의’다. 하지만 이 제도는 시대와 국가에 따라 변형된 형태를 띠며 변화해왔다. 정치 제도는 시대적 가치를 반영하며 변증법적 발전을 거듭할 것이다. 상황과 맥락에 따라 천변만화하는 것이 정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 제도에 최선은 없다. 정치권력의 부침과 선택에 따른 결정일 뿐이다. 우리는 현재 어떤 ‘민주주의’를 선택하고 있으며 그것의 장단점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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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최근 100년간의 근현대사를 들여다보아야 한다. 19세기 말부터 현재까지! 낡은 이념대립의 시대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경제라고? 바보야 문제는 안보야!’라는 헤드라인을 단 인터넷 신문이 국내 최대 포털사이트 첫 화면에 걸리는 나라에 살고 있는 우리의 현실을 가만히 생각해 보자. 이것은 좌우의 대립이 아니라 안철수식으로 말하자면 ‘상식’의 문제다. 자괴감이 드는 이유는 모든 갈등과 대립이 ‘이념’의 문제로 환원되는 대한민국 사회의 단순성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우리들의 모습 때문이다. 우리의 과거를 돌아볼 때 ‘미국’은 다른 어떤 나라와도 비교할 수 없는 의미로 다가온다. 이웃한 일본과 중국과는 또 다른 이미지의 나라를 떠올려 보자. 가깝게 ‘한미FTA’를 위시해서 대한민국의 모든 제도와 문화의 기준은 미국이 아닌가. 아메리칸 드림은 여전히 우리 가슴속에 살아 숨 쉬는 현재 진행형의 꿈이 아닌가. 하지만 우리의 준거집단 미국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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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가장 선진적이고 완전한 사회라고 볼 수 있을까. 가장 잘 사는 나라, 완벽한 안보를 갖춘 나라, 민주주의가 완전하게 실현된 나라가 미국일까. 미국 시카고의 노동 전문 변호사로 하버드대학교와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한 토머스 게이건의 『미국에서 태어난 게 잘못이야』는 우리에게 ‘미국’에 대한 선입견을 수정해 줄 수 있는 최선의 방법 중 하나를 제공한다. 한국의 사회학자의 미국 비판, 한국 유학생의 유럽 이야기 등 한국인의 입장에서 이야기하는 서양 이야기는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콤플렉스로 비춰지기 십상이지만 미국 사람이 이야기하는 미국 이야기는 어떤가. 그것도 대한민국 사람들이 지구에서 가장 좋은 대학교로 생각하는 하버드대학 출신의 이야기가 아닌가.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이 하버드 교수가 아니었다면 대한민국 사람들이 그토록 열광했을까라는 의심어린 눈초리는 논외로 하더라도 미국의 변호사가 전하는 미국과 유럽 이야기는 귀 기울여 들을만하지 않은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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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미국 사람이 이야기하는 미국 사회에 대한 비판이 아니다. 초점은 유럽에 맞춰져 있으며 그중에서도 ‘독일’에 집중되어 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독일 통일되면서 분단국가인 우리나라의 모델이 될 만한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독일의 통일과정과 이후의 상황에 대해 너무 무관심하지 않았을까. 미국 변호사 토머스 게이건은 미국식 삶과 유럽식 삶을 적나라하게 비교한다. 그간 수많은 책들을 통해 끝없이 비교해 왔던 방식과는 많이 다르다. 통계적인 방법으로 계량적 접근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책보다도 가장 적나라하게 그리고 실감나게 미국과 유럽을 비교체험 할 수 있는 책이라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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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하게 2부로 구성된 이 책은 미국과 유럽을 비교하는 1부를 앞세워 베를린에서 직접 체험한 일들을 통해 구체화 시킨다. 개인의 직접 체험을 일반화시키는 오류는 이 책의 한계일 수 있지만 피상적인 현상에 머물지 않고 문화적 바탕과 인문학적 사유를 토대로 한 비교 체험은 작가의 주장에 신뢰를 부여한다. 미국과 유럽, 아니 미국과 독일은 신자유주의를 바탕으로 한 ‘자유민주주의’와 유럽식 ‘사회민주주의’와의 비교 체험이다. 1%를 위한 나라와 99%를 위한 나라, 선택은 잔인하지만 우리는 번번이 상식을 선택하지 않는다는 아이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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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나방처럼 모든 국민이 대학을 나와야 한다는 생각, 경쟁에서 이기기만 하면 된다는 이기심, 부와 권력을 가진 자들의 초법적 욕망, 노동자를 무시하는 풍토, 직업에 대한 잘못된 인식 등 일일이 열거할 수도 없는 대한민국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점검해 보는 것은 ‘긍정적인 마인드’를 주장하는 사람들과 ‘성공 신화’에 목매는 사람들에게는 부정적이고 패배적인 관점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미국 사람에 의한 미국 사회에 대한 심각한 경고이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대한민국은 건강한가를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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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지도 않은 강을 살려야 한다며 수십조를 쏟아 붓는 대통령은 죽지도 않은 경제를 살려줄 것이라고 믿는 국민들이 선택했다. 자기 수준에 맞는 정치 지도자를 갖게 마련이라지만 우리에겐 지나치게 가혹하다. 한미 FTA, 인천공항 매각, KTX 민영화 추진 등 ‘그들’이 추진하는 경제 정책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우리는 곰곰이 따져 본 적이 있는가. 대한민국의 주인은 누구이며 ‘그들’은 누구를 위해 정치를 하고 있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이 책은 우리에게 다시 한 번 묻고 있다. 미국식인가 유럽식인가, 아니 미국식인가 독일식인가. 그것은 가치와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매우 냉정한 현실의 문제이며 우리들 삶의 문제이다. 선택은 잔인하고 결과는 참혹하다. 우리에게 ‘미쿡’은 과연 무엇인가. 미국은 우리의 미래인가, 반면교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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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124-007]]></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1349/29/cover150/8960511811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0511811</link></image></item><item><author>인식의힘</author><category>철학</category><title>철학 예찬? 사랑을 위한 선언? - [철학을 위한 선언]</title><link>http://blog.aladin.co.kr/cognize/5365661</link><pubDate>Wed, 18 Jan 2012 22:5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cognize/536566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4450140&TPaperId=5365661"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762/89/coveroff/896445014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4450140&TPaperId=536566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철학을 위한 선언</a><br/>알랭 바디우 지음, 서용순 옮김 / 길 / 2010년 08월<br/></td></tr></table><br/><!--StartFragment-->
잊었다, 왜, 무엇 때문에 알랭 바디우를 읽고 싶어졌는지. 미루어 짐작컨대 어떤 책을 읽다가 인용 부분이 좋았거나 그의 철학 사상을 설명하는 부분이 인상 깊었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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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때때로 삶의 도피처가 되거나 가장 실용적이지 못한 논쟁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이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여전히 높은 지적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생각하는 인간 – 그것이 인류의 문명과 역사를 웅변하는 가장 적절한 표현은 아닐까. 철학은 그 생각의 갈피를 잡아주고 삶의 목적과 방향을 고민하게 해 주는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그래서 여전히 우리는 철학을 밥과 물만큼이나 꼭 필요한 무언가로 여겨야 하는 것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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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우리가 철학자들을 우리 시대를 위한 독창적이고 확인 가능한 연료를 제시하는 사람들로 이해한다면, 또한 주석가들과 필수 불가결한 원로들, 공허한 에세이스트들을 무시한다면, 철학자는 열 명 정도밖에 남지 않는다. - 『철학을 위한 선언』, ‘가능성, 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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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을 위한 선언』과 『사랑 예찬』을 연달아 읽으면서도 1989년과 2009년의 ‘사이’만큼이나 철학과 나 사이의 ‘거리’는 좁혀지지 않은 것 같다. 20년의 시차를 둔 책들이지만 문제적 철학자의 생각은 낯설지 않았다. 두 책의 내용과 성격이 달라서 그럴 수도 있지만 철학의 방법과 태도가 『철학을 위한 선언』이전만큼 달라지지 않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것은 삶의 태도와 방법에 급격한 변화가 없었다는 뜻이고 사회적 상황 등 외적인 조건들이 주는 충격도 없었다는 뜻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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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진리가 아니라 [진리와 관련된] 정세를, 다시 말해 진리들의 사유 가능한 결합(conjonction)을 발언하는 것이다. 철학은 시대의 균열에 대해 사유하고, 자신을 조건 짓는 것을 반성적으로 비틀기 때문에, 대체로 불안정하고 미성숙한 조건에 의해 지탱한다. - 『철학을 위한 선언』, ‘조건들’, 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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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바디우의 지도로 박사 학위를 받은 서용순의 해제가 우리를 먼저 기다린다. 바디우 철학의 흐름과 『철학을 위한 선언』의 지위를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해 주는 이 글은 본문을 위한 에피타이저로 적절하다. 현존하는 프랑스 최고의 철학자로 평가받는 바디우의 지적 연대기를 그의 저작과 함께 소개하고 있어서 다른 책을 읽으면서도 도움이 될 듯하다. 바디우는 사르트르와 알튀세르에게 깊은 영향을 받았으나 68혁명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인 알튀세르와 결별하고 마오주의에 경도된다. 마르크스-레닌주의와 70년대의 마오주의를 거쳐 바디우의 철학을 가능케한 『존재와 사건』은 그의 주저가 된다. 하지만 그의 철학적 담론을 고스란히 드러낸 것은 바로 『철학을 위한 선언』이다. 이 책은 철학의 종말 운운하던 당대에 던져진 일종의 도발이다. 어찌 보면 생뚱맞은 제목이다. 모든 ‘선언’은 도발이다. 재미있는 것은 다른 철학자들과 달리 바디우는 ‘수학, 정치, 예술, 사랑’ 등 네 가지를 진리 생산의 절차로 수용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랑 예찬』은 그를 이해하는 아니, ‘사랑’을 이해하는 독특한 방식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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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만남이라는 사건에 대한 충실성 속에서 이루어지는 둘에 대한 진리의 생산이다.’(『철학을 위한 선언』, ‘사건들’, 123쪽)는 정의는 사랑에 대한 시각이기 전에 철학에 대한 관심이다. 세상에 진리는 존재하는가. 바디우는 ‘모든 진리는 대상이 없다.’(『철학을 위한 선언』, ‘문제들’, 134쪽)는 말로 답을 대신하다. 주체와 대상에 대한 철학의 오래된 논쟁에 종언을 고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는 결국 어느 한 쪽으로 환원될 수 없는 무엇이거나 존재할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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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대해서 우리는 사랑이란 만남을 넘어서 사랑이 기초 짓는 순수한 둘에 대해 충실하다고 선언하고, 남성과 여성이 있다는 유적 진리를 만들어낸다는 것을 알고 있다. 
철학은 오늘날 유적인 것 그 자체에 대한 사유이다. 그것은 시작되고 있고, 시작되었다.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말이다. '과거의 어두움처럼, 정체 모를 화려함이 펼쳐지리라.' - 『철학을 위한 선언』, ‘유적인 것’, 1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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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말미에서 사랑에 대해 그리고 철학에 대해 이렇게 선언한다. 바디우는 20년 만에 『사랑 예찬』을 내 놓는다. “사랑은 재발명되어야만 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아르튀르 랭보,『지옥에서 보낸 한 철』, ‘착란Ⅰ’)라고 랭보를 앞세운 채. 바디우는 “사랑에서 시작하지 않는 자는 철학이 무엇인지 결코 깨닫지 못할 것이다.”라는 플라톤의 말을 인용하여 철학에서 ‘사랑’이 어떤 의미인지 웅변한다. 한마디로 사랑을 모르는 자 철학을 논할 자격이 없다는 선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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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여기서 우리는 예컨대, 보험 계약서의 안전과 제한된 쾌락이 가져다주는 안락이라는, 사랑의 두 가지 정적(政敵)을 발견하게 됩니다. - 『사랑 예찬』, ‘위협받는 사랑’,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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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철학뿐만 아니라 진리와 정치, 예술과도 연애를 한다. 안전과 안락이라는 정적을 물리치고서. 이 책은 대담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강연이나 대담을 엮어낸 책의 단점은 전체적인 구성이 탄탄하지 못하고 지엽적인 부분에 매달리기 쉽다는 점이다. 대화를 이끌어가는 질문자의 의도와 방향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디우의 ‘사랑’ 이야기는 세계를 해석하는 또 하나의 관점을 제시한다. 사랑이란 도대체 무엇이며 어떻게 기능하는가. “세계는 사실 새로운 것들로 가득 차 있으며, 사랑도 마찬가지로 이러한 혁신 속에서 취해져야만 할 것입니다. 안전과 안락에 대항하여 위험과 모험을 다시 창안해야만 합니다.”(『사랑 예찬』, ‘위협받는 사랑’,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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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에서 당신은 타자라는 매개를 통해 결과적으로 당신 자신과 관계를 맺게 될 뿐입니다. 타자는 당신이 쾌락의 실재를 발견하는 데 이용될 뿐이라는 것이지요. 반대로 사랑 속의 타자라는 매개는 그 자체로 가지를 지니고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사랑의 만남입니다. 다시 말해 타자를 있는 그대로 당신과 함께 존재하게 하기 위해서 당신은 타자를 공략하러 간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랑이 섹스의 실재에 관한 상상적 그림일 뿐이라는, 정말이지 진부할 뿐인 그런 개념보다 훨씬 더 심오한 개념적 접근에 해당됩니다. - 『사랑 예찬』, ‘철학자들과 사랑’, 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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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는 것, 그것은 온갖 고독을 넘어서 세계로부터 존재에 생명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모든 것과 더불어 포획되는 것입니다. 이 세계에서 저는 타자와 함께하는 행복의 원천이 나에게 주어지는 것을 직접 봅니다. “나는 너를 사랑해”는 내 존재를 위해 네가 있는 그 원천이 이 세계에 있다는 것이 됩니다. - 『사랑 예찬』, ‘결론’, 1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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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관한 한 사람들은 모두 철학자가 아닌가. 철학자가 감히 사랑을 논하다니! 다른 건 다 양보해도 사랑만큼은 철학자에게 묻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 타자에 대한 사랑은 ‘나’의 고독으로부터 촉발된 공격이고 도전이다. 내 존재를 위해 네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고독한 존재들의 허탈한 몸부림은 아닌지. 그 최면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은 굳은 신념은 아닌지. 옮긴이는 이런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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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일, 그것은 결핍을 끌어안은 그 상태 그대로 삶을 살아나가는 자그마한 경험들, 시련과 위험을 삶의 조건으로 삼아 내 경험과 타자의 경험을 매일 그 길 위에 포개놓으려는 자그마한 노력은 아닐까? - 조재룡, ‘옮김이의 말’, 1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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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핍을 끌어안고 길 위에 포개놓으려는 욕망과의 시간차. 『철학을 위한 선언』의 번역을 맡은 서용순은 『사랑 예찬』의 해제에서 바디우의 사랑을 이렇게 요약한다. 사랑은 ‘돌’이다. 어떤 알레고리로 ‘돌’을 사용했든지 그 의미들의 ‘차이’를 헤집어 내는 것은 오롯이 독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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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대한 바디우의 사유는 ‘돌’을 견지하는 것으로 결론지어질 수 있다. ‘돌’의 지속을 사유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바디우의 철학이 요구하는 사랑에 대한 성찰이리라. - 서용순, ‘바디우의 철학과 오늘날의 사랑’, 16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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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18-005, 006]]></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762/89/cover150/8964450140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4450140</link></image></item><item><author>인식의힘</author><category>문학</category><title>우연에 기댈때도 있었다 - [웃는 동안]</title><link>http://blog.aladin.co.kr/cognize/5358046</link><pubDate>Sun, 15 Jan 2012 22:2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cognize/535804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22550&TPaperId=5358046"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1420/71/coveroff/893202255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22550&TPaperId=535804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웃는 동안</a><br/>윤성희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12월<br/></td></tr></table><br/><!--StartFragment-->
작가는 독자를 자신의 소설에 취하게 할 의무가 있다. 독자는 작품을 통해 한 작가를 가슴에 품게 되고 오래 기억하며 그의 작품을 찾아 읽게 된다. 그것은 소설의 재미뿐만 아니라 작가의 세계관, 인간과 사회에 대한 관점 등 독특한 개성에 기인한다. 여러 작품을 통해 점점 빠져들게 되는 작가도 있고 베스트셀러에 오른 작가의 작품이기 때문에 괜찮아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첫 눈에 반해 버리는 작가도 있다. 처음 만나는 독자들의 가슴 속에 펼쳐지는 그 다양하고 내밀한 반응이 궁금할 때가 있다. 
&nbsp;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o:p></o:p>
『거기, 당신?』으로 처음 만난 윤성희의 소설은 따뜻함이었다. 차마 긴 이야기로, 거짓 소설로 담아낼 수 없어 짧은 시의 언어가 지배했던 80년대를 기억하는 독자들은 현실 사회주의 몰락과 절차적 민주주의를 획득한 90년대 소설을 어떻게 떠올리고 있을까. 거대 담론의 소멸과 여성 작가들의 등장은 한국 문학의 새로운 이슈가 되었다. 미시적 관점과 내면의 문제에 대한 섬세한 관심은 여성 특유의 감각적인 문장과 1차적인 관계망을 실핏줄처럼 상세하게 그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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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이 되었다고 해서, 새로운 밀레니엄이 도래했다고 해서 사람들의 생활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IMF라는 전대미문의 경제적 충격 이후 신자유주의의 확산과 자유경쟁 질서의 고착은 삶의 양상과 태도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문학 외적 조건들이 작품에 반영되는 데는 시간이 조금 걸리는 듯하다. 사실주의 문학이라고 볼 만한, 주목할 만한 작품들은 등장하지 않고 있다. 김진숙의 『소금꽃나무』나 정도상의 『모란시장 여자』 정도를 제외하고는 여전히 소설은 사소하고 소소한 일에 머물며 때로는 독자들을 칙릭(chic-lit)에게 빼앗기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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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위기는 가리타니 고진의 『근대 문학의 종언』 이전에도 이후에도 계속된다. 그것은 다양한 통신 매체의 발달과 흥성거리는 볼거리와 놀거리 때문이 아니다. 중심을 잃어버리고 주변인들에 대한 위무와 개인의 슬픔과 아픔에 호소하는 일관된 방식 때문이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윤성희의 소설은 거대한 흐름 바깥을 찾아볼 수는 없다. 하지만 『웃는 동안』이 보여주는 풍경은 익숙하지 않고 현실 안팎이 뒤섞인 만화경을 연상케 한다. 가령 ‘3시 40분이었다. 점심을 먹기에는 너무 늦었고 그렇다고 저녁을 먹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었다.’고 말하는 문장에서는 건조한 모래 바람이 인다. 감정은 메말랐고 익숙한 풍경은 낯설게 느껴진다. 그리고 이런 문장을 찾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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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이란 한 인간이 태어나서 경험할 수 있는 가장 멋진 일이라는 것을 첫사랑에게 배웠다고 적으리라. - '부메랑'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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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에서 강동호는 ‘영원히 우연적인 것이 기적을 구원한다’는 모호한 문장을 낳았지만 윤성희의 우연은 기적을 갈망하는 것이 아니라 기적을 기대하는 모든 ‘희망’을 조롱한다. 빈번하게 등장하는 죽은 사람 혹은 유령 들은 현실 바깥에서 현실을 들여다보는 역할을 하지만 그 현실이 특별히 뒤틀리거나 낯설게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주인공 혹은 관찰자가 이물스럽다. 그것은 정교한 시스템 바깥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 대한 연민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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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집에는 열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감기』 이후에 오랜 만에 만난 그녀의 소설들은 무미건조한 물맛이다. 공간을 가득 채우는 커피향처럼 은은하지도 않고 찬 냉수처럼 마시는 순간 감각을 깨우지도 않는다. 하지만 조용하게 그리고 막힘없이 스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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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 인간처럼 서로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단편과 단편들 사이를 넘나드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소설을 위해 탄생한 개성적 인물들이 아니다. 특별히 이 시대 밖으로 쫓겨난 소외된 이웃도 아니다. 평범에 기대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다. 주목 받는 인생도 아니고 특별한 존재도 아니라서 뭐라 명명하기도 어렵다. 주변인? 아니다.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이다. 가만히 들여다 보면 아주 재미있고 나름의 특징을 가진 듯 보이지만 조금 거리를 두고 보면 모두 투명인간이 아닐까. 그래서 놀란 라이언처럼 강속구를 주무기로 하는 선수가 아니라 아주 느린 공을 던지는 ‘형’은 투명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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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의 최대의 무기는 느린 공이었다. 너무 느려서 아무도 치질 못했다. 형이 공을 던졌다. 나는 그 공이 날아오는 것이 선명하게 보였다. 느린 공이었다. 아주아주 느린 공, 나는 손바닥이 아픈 것처럼 엄살을 피웠다. 그리고는 말했다. "볼이야.“ - ‘느린 공, 더 느린 공, 아주 느린 공’, 2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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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들을 다 읽고 나니 스토리는 사라지고 이미지와 밋밋한 문장의 뼈다귀만 남는다. 형체없는 주인공들과 유령들도 사라지고 헛된 일상과 현실 바깥일이 궁금해진다. 소설을 읽는 일은 현실의 메트릭스 안에서 허우적대는 우리들의 우스꽝스런 모습을 비춰보는 일이다. 열정도 냉소도 없이 바라보는 텔레비전 화면처럼 멀건 눈으로 창밖을 보는 일은 억지로 의미를 부여하는 인생처럼 덧없다. 소설을 ‘해석’하려는 헛된 노력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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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은 필연일까, 아니면 우연일까. 필연처럼 움직이는 소설의 주인공이나 우연의 무질서를 온몸으로 받아내야 하는 인간이나 마찬가지다. 우연과 필연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일이 삶의 진실은 아닐까. 긍정도 부정도 없이 묵묵하게 오르고 다시 올라야 하는 시찌프스의 신화를 연상시키는 등산객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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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연의 사슬에 결박되어 있기보다, 우연이라는 무질서의 너울 위에서 표랑하는 경우가 다반사인 것이 인간의 삶이다. - 강동호, 해설 ‘영원히 우연적인 것이 기적을 구원한다’ 첫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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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15-004]]></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1420/71/cover150/8932022550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22550</link></image></item><item><author>인식의힘</author><category>과학</category><title>지적 설계에 대한 단호한 거절 - [왜 종교는 과학이 되려 하는가 - 창조론이 과학이 될 수 없는 16가지 이유]</title><link>http://blog.aladin.co.kr/cognize/5345870</link><pubDate>Tue, 10 Jan 2012 18:1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cognize/534587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5616287&TPaperId=5345870"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1433/52/coveroff/895561628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5616287&TPaperId=534587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왜 종교는 과학이 되려 하는가 - 창조론이 과학이 될 수 없는 16가지 이유</a><br/>리처드 도킨스 외 지음, 존 브록만 엮음, 김명주 옮김 / 바다출판사 / 2012년 01월<br/></td></tr></table><br/><!--StartFragment-->
한 이론이 수많은 검증을 견뎌내고 수많은 옳은 예측을 했을 때 그것은 과학적 사실이 된다. 곧 어떤 이론이 대단히 강력한 지지를 받아서 모든 합리적인 사람이 그것을 받아들인다는 의미다. - 제리 A. 코인, 17쪽
&nbsp;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o:p></o:p>
종교와 과학의 오해 혹은 진실
&nbsp; <o:p></o:p>
사실(fact)와 진실(truth)은 다르다. 객관성을 기초로 한 사실은 언제 어디서나 누구나 동의하는 것이지만 진실은 컨텍스트(context)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기 때문에 주관적이다. 예술의 영역에서는 객관적 사실보다 주관적 진실을 드러내는 데 목적을 두고 있지만 과학의 영역에서는 검증 가능한 객관적 사실이 학문의 토대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반복 실험이 가능하거나 논리적이고 합리적으로 증거가 필요한 과학이 세상의 모든 진실을 드러낼 수는 없다. 정상과학에 대한 도전과 새로운 증거들은 토마스 쿤의 말대로 ‘패러다임의 전환’을 가져오며 과학혁명을 일으켜 왔다. 이론의 합목적성을 달성하기 위한 과학자들의 연구와 노력은 오늘도 여전히 과학의 발전을 추동하며 인류 문명의 바탕을 이루고 있다. 
&nbsp; <o:p></o:p>
그러나 21세기에도 여전히 종교와 과학이 충돌하고 있다는 사실은 놀랍기만 하다. 인간 이성의 발달과 과학 문명의 발달로 인해 근대 이후의 종교는 중세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신의 역할을 규정하는 것이 아닌가. 이미 오래 전에 각자의 영역에 대해 합의가 된 것이 아닌가. 종교가 있든 없든 혹은 어떤 종교를 가지고 있든 종교의 순기능과 역기능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으며 현실 세계에서도 매일 확인하는 것이 아닌가. 
&nbsp; <o:p></o:p>
당대 최고의 과학 출판 에이전트이자 편집자로 평가받는 존 브룩만이 엮은 『왜 종교는 과학이 되려 하는가』는 아직도 끝나지 않은 과학과 종교의 갈등에 대한 현실을 잘 보여준다. 여기서 과학과 종교의 갈등은 ‘창조론’과 ‘진화론’이라는 아주 오래된 갈등으로 구체화된다. ‘창조론’은 다시 ‘지적 설계’라는 변형된 이론으로 대표된다. 미국의 펜실베이니아 주에서 벌어진 키츠밀러 대 도버 학군 사건은 이 책의 핵심 논쟁에 대한 현실적 충돌이다. 2005년 12월 연방법원 판사 존 E. 존스 판사가 지적 설계를 공교육 기관에서 진화론과 함께 가르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림으로써 지적 설계는 과학이 아니라는 법적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종교와 과학의 문제를 법으로 제한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더구나 사람들의 생각을 통제할 수는 없다. 
&nbsp; <o:p></o:p>
어쩌면 진화의 신비는 생명 세계에서 특별하고 신비로워 보이는 모든 것들을 일상적인 생물학적 과정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우리의 설명들을 증거를 통해 검증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다. - 닐 슈빈, 123쪽
&nbsp; <o:p></o:p>
그러면 1859년 다윈의 『종의 기원』 이후 인류의 기원에 대한 논쟁은 인접 학문 분야의 발달과 오랜 검증을 거쳐 핵심적인 이론으로 뿌리를 내렸다. 하지만 사람들은 오랫동안 전지전능한 신에 의해 창조되었다고 믿었던 인간의 조상이 원숭이라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받아들여야하는 발상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누구에게나 쉽게 수용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당대에는 그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창조론을 믿어 의심치 않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진화론은 수용 불가능한 것일까?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nbsp; <o:p></o:p>
각 분야의 세계적인 과학자 열여섯 명은 한 목소리를 낸다. ‘지적 설계는 과학이 아니다’라는 명제에 대해서 말이다. 지적 설계론이 사실인지 아닌지 혹은 진실인지 그렇지 않은지의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과학’이냐 아니냐의 논쟁은 더 이상 불필요할 만큼 명확해 보인다. 그러나 과학이 요구하는 어떤 절차적 검증도, 연구도, 논문도 없는 상태로 ‘주장’만 난무한 이 이론이 여전히 이슈가 되고 법적 판결을 받아야 할 만큼 심각한 이유는 ‘신’과 ‘과학’의 대결 때문이 아니라 ‘진화론’이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 때문이다. 생명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혹은 진화의 과정에 발생하는, 아직 증거가 없는 빈 구멍들은 지적 설계론의 빌미를 제공할 수 있는 여지가 남아 있다. 아직 인간의 과학으로 인류가 쌓은 지식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세계의 빈자리를 모두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지적 설계로 메워버릴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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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도킨스, 스티븐 핑거 등 세계적인 과학자들은 분명하고 자신 있는 목소리로 지적 설계를 허구성을 폭로하고 결국 과학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신’이라는 존재를 숨긴 채 지적 설계라는 명분을 내세우는 사람들에게 일격을 가한다. 명확하고 논리적인 증거와 그간의 과학적 발견을 통해 지적 설계가 얼마나 무모한 주장인지 확인하는 일은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다만 우리는 이들의 주장을 통해 과학의 역할과 종교의 의미를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또한 생명의 기원과 우주의 신비가 주는 철학적, 존재론적 질문에 대해 고민해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과학이 종교의 자리를 대신할 수 없으며 종교는 더더욱 과학의 자리를 탐낼 수 없다는 자명한 사실을 받아들이는 대신 과학과 종교로 해결되지 않는 질문에 대해 진지한 성찰이 필요하다. 그것은 게으르거나 회피한다고 해서 누군가 해결해 줄 수 있는 문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nbsp; <o:p></o:p>
영구적인 논리적 해법이나 사실적 해법이 없는 인간 존재의 문제들을 다루는 데에 과학은 유독 적합하지 않다. 예컨대, 죽음을 피하고, 외로움을 극복하고, 연인을 찾고, 정의를 확보하는 문제들이 그렇다. 과학은 이렇게 해야 한다거나, 이래야 한다고 말할 수 없다. 과학은 오직 이렇게 할 수 있다거나, 이렇다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 스콧 애트런, 166쪽
&nbsp; <o:p></o:p>
&nbsp; <o:p></o:p>
20120110-003
&nbsp; <o:p></o:p>]]></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1433/52/cover150/8955616287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5616287</link></image></item><item><author>인식의힘</author><category>문학</category><title>누가 언어의 사다리를 걸어놓고 기어오를 것인가 - [아메바 (일반판)]</title><link>http://blog.aladin.co.kr/cognize/5337359</link><pubDate>Fri, 06 Jan 2012 22:1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cognize/533735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13780&TPaperId=5337359"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859/44/coveroff/895461378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13780&TPaperId=533735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아메바 (일반판)</a><br/>최승호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01월<br/></td></tr></table><br/><!--StartFragment-->
노래와 시가 되고 시가 노래됨을 어렴풋이 알려준 광석이형 16주기. 
&nbsp;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o:p></o:p>
시는 노력만으로 쓸 수 없다고 하는 말이 있다. 타고난 감수성과 언어의 활용 능력은 연습만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시를 만날 때 떠오르는 생각이다. 사춘기에 접어들 무렵 『서울의 예수』에 실린 시인의 눈빛에 감전된 것은 감수성의 백열등이 깜빡이기 시작했기 때문일까. 황지우와 이성복의 시를 처음 만나던 순간, 김영승의 『반성』과 김승희, 최승자의 시를 읽던 느낌, 나른한 5교시 박노해를 낭송해주시던 선생님의 떨리던 목소리 그리고 기형도의 『입속의 검은 잎』, 최승호의 『대설주의보』와 『세속도시의 즐거움』을 뒤적이던 밤은 소리도 없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어렴풋이 예감한다. 먼지 묻은 책장의 앨범처럼 가슴에 남아있거나 무턱대고 과거로 회귀하거나. 아주 오래된 기억의 편린들. 그리고 가끔씩 오래된 친구의 소식을 기웃거리듯 빛바랜 시집을 꺼내들거나 근황을 궁금해 하거나.
&nbsp; <o:p></o:p>
최승호의 시집 『아메바』는 낯설다. 기존에 썼던 시들에 대한 반성적 고찰 혹은 그림자 연습. 시인이 스스로 밝히고 있듯 이 시집은 ‘일종의 문체 연습 같은 것’이라고 볼 수도 있고, 언어와 이미지를 먹고사는 아메바 같은 시들의 향연이라고 할 수도 있다. 낯선 시집을 읽으며 예전의 시들과 다시 만나고 변형된 이미지, 생경한 리듬, 낯선 의미와 부딪친다. 시의 이미지는 살이고 리듬은 피요, 의미는 뼈에 해당한다고 했던 인터뷰 기사가 떠오른다. 수능 모의고사에 출제된 자신의 시 문제를 풀었다가 모두 틀렸다는 항변으로 시교육의 문제를 지적하기도 했던 최승호는 이제 대학교수다. 상황이 변했거나 나이가 들었거나 그의 시를 추동할 만한 내적 긴장과 감수성이 증발되고 있거나.
&nbsp; <o:p></o:p>
아주 오랜만에 최승호의 시집을 읽고 나서 몇 편을 옮겨본다. 그의 실험이거나 게으름에 대한 반성이거나. 혹은 살아있는 시인에 대한 그리움이거나 쓸쓸한 뒷모습이거나. 
&nbsp; <o:p></o:p>
&nbsp; <o:p></o:p>
03 나의 두개골
&nbsp; <o:p></o:p>
나의 두개골 안에
불타는 가시덤불의 거센 불길이
느껴지는 이 싱싱한 밤
&nbsp; <o:p></o:p>
03-1
&nbsp; <o:p></o:p>
밤이면 흐느적거리는 시의 촉수들,
뜨거운 두개골의 창문 밖으로는
오월의 장미넝쿨이 흘러내린다
&nbsp; <o:p></o:p>
&nbsp; <o:p></o:p>
04 문자
&nbsp; <o:p></o:p>
문자에 스민 그의 피, 그의 숨결, 그의 고통, 때로 얼음의 책 속에서 웃음소리가 들여온다. 그는 아직 얼음 속에 살아 있는 것이다. 
&nbsp; <o:p></o:p>
04-1 
&nbsp; <o:p></o:p>
방산 속의 허연 유령처럼
밖을 내다보는 희미한 얼굴,
얼음의 책의 저자
&nbsp; <o:p></o:p>
&nbsp; <o:p></o:p>
14 붕괴
&nbsp; <o:p></o:p>
붕괴된 백화점
철거되지 않은 거대한 벽면이
폐허 위에 기우뚱하게 서 있던 것과
전봇대를 삼키듯 휘감아버렸던 나팔꽃덩굴을 너는 기억한다
&nbsp; <o:p></o:p>
14-2
&nbsp; <o:p></o:p>
불립문자(不立文字)라는 붕괴된 벽에
누가 언어의 사다리를 걸어놓고 기어오를 것인가
&nbsp; <o:p></o:p>
&nbsp; <o:p></o:p>
19 우리는
&nbsp; <o:p></o:p>
우리는 거대한 증발접시 안에서 속이 타는 물방울 같은 존재들인지 모른다
&nbsp; <o:p></o:p>
19-4
&nbsp; <o:p></o:p>
우리는 먼지들의 러시아워 속에 붐비는 먼지 같은 존재들이다
&nbsp; <o:p></o:p>
&nbsp; <o:p></o:p>
36 연중강우량 1mm
&nbsp; <o:p></o:p>
연중강우량 1mm
아이쿠 사막에선
모래에 뿌리 박은
가시 돋친 혀들이 선인장처럼 자라면서
뚱그런 철퇴 모양 번쩍이는 해 아래 이글거린다
&nbsp; <o:p></o:p>
36-1
&nbsp; <o:p></o:p>
아이쿠 사막에선
태어날 때도 아이쿠!
죽을 때도 아이쿠!
&nbsp; <o:p></o:p>
&nbsp; <o:p></o:p>
40 벽
&nbsp; <o:p></o:p>
벽에 머리를 대고
혼자서 가만히 우는 아이가 있다
&nbsp; <o:p></o:p>
40-2
&nbsp; <o:p></o:p>
절벽에서 돋아난
마애불(磨崖佛)의 얼굴을
지우개도 없이 지우는 것은 바람이다
&nbsp; <o:p></o:p>
&nbsp; <o:p></o:p>
43 살
&nbsp; <o:p></o:p>
살이 얼마나 질긴지
때밀이수건에 먼저 구멍이 났다
&nbsp; <o:p></o:p>
43-4
&nbsp; <o:p></o:p>
뜨거운 무의 목욕탕
거기 들어앉았다 나온 사람은 사람이 아니다
&nbsp; <o:p></o:p>
&nbsp; <o:p></o:p>
49 한낮의 골목
&nbsp; <o:p></o:p>
한낮의 골목 텅
텅
빈 골목을 꾸부정하니
지팡이를 짚은 늙은 고독이 지나간다
&nbsp; <o:p></o:p>
49-2
&nbsp; <o:p></o:p>
골목, 골목, 골목들이 점점 사라져간다
사막에는 골목이 없다
&nbsp; <o:p></o:p>
&nbsp; <o:p></o:p>
58 아직 태어나지 않은 책
&nbsp; <o:p></o:p>
아직 태어나지 않은 책은 물렁하다. 뭐라고 말할 수 없는 반죽덩어리, 그 물렁물렁한 책을 베개 삼아 나는 또 시상(詩想)에 잠긴다
&nbsp; <o:p></o:p>
58-1
&nbsp; <o:p></o:p>
물감을 베고 누운 화가처럼
물렁물렁한 책을 베개 삼아
나는 시상에 잠긴다
&nbsp; <o:p></o:p>
&nbsp; <o:p></o:p>
20120106-002]]></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859/44/cover150/8954613780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13780</link></image></item><item><author>인식의힘</author><category>자기계발</category><title>1%의 삶을 꿈꾸는 사람들을 위한 자기계발서 - [소셜 애니멀 - 사랑과 성공, 성격을 결정짓는 관계의 비밀]</title><link>http://blog.aladin.co.kr/cognize/5337354</link><pubDate>Fri, 06 Jan 2012 22:0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cognize/533735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5960185&TPaperId=5337354"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1411/20/coveroff/896596018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5960185&TPaperId=533735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소셜 애니멀 - 사랑과 성공, 성격을 결정짓는 관계의 비밀</a><br/>데이비드 브룩스 지음, 이경식 옮김 / 흐름출판 / 2011년 12월<br/></td></tr></table><br/><!--StartFragment-->
인간은 태어나는가, 만들어지는가
&nbsp;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o:p></o:p>
나 자신은 물론 타인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은 흥미롭다. 새해가 되면 토정비결부터 사주, 별자리 등 올 한 해가 궁금하기만 하다. 개인적인 삶은 물론 정치와 경제, 사회와 문화, 전 세계의 동향까지 너무 복잡해서 예측 자체가 무의미한 일들조차 다양한 전망들이 쏟아진다. 그 전망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결국 예측가능한 개인의 행동과 심리 그리고 타인과의 관계로 요약된다. 정치적 행위든 경제적 활동이든 모든 사람은 사회화된 패턴 속에서 움직이고 새로운 변화와 흐름을 받아들이며 보다 나은 삶을 욕망한다. 이기적인 태도와 비합리적인 움직임의 소비기호는 늘 자본주의 사회의 판매자들을 긴장시키고 급격한 사회변화는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렵게 만든다. 그래도 여전히 우리는 내일이 궁금하다. 내일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nbsp; <o:p></o:p>
마이크로 트렌드와 메가트렌드 중 어느 쪽이 더 중요한가의 문제는 현재 사회를 분석하고 미래를 예측하고 싶은 사람들의 관심일 뿐이다. 넓은 범주에서 개인은 언제나 ‘따로 또 같이’ 움직인다. 인간을 사회적 동물이라고 말하지만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고 있는 기질은 쉽게, 아니 절대 변하지 않는다. 그것을 천성이라 부르든 팔자라고 부르든 말이다. 유전적 정보를 통해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성향과 우주의 시공간 속에 운명적으로 결합된 명운이 합해져 세상에 태어난 인간은 태어난 순간부터는 ‘사회화’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러면 내면적 자아는 사회화되는 과정에서 얼마나 혹은 어떻게 달라질까. 우리는 ‘나’에 대해서 말할 때 내가 알고 있는 자아(anima/animus)와 사회적 자아(persona)를 일치시키는가. 아니면 어느 한 쪽을 선택하는가. 그것도 아니면 두 개의 자아가 드리운 그림자의 영역을 말하는가. ‘나는 누구인가’의 문제는 인간은 태어나는가 만들어지는가의 문제를 이해하는 핵심이라고 볼 수 있다. 자기의 무의식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무의식의 억압된 요소를 다른 사람들에게 투영한 후 자신의 결점을 자각하지 못하고, 오히려 자신의 결점을 남에게 전가하여 공격하고 비판한다. 칼 융이 말한 인간의 무의식 영역은 이후의 정신분석학자와 심리학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든 인간의 삶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있다. 
&nbsp; <o:p></o:p>
부모를 통한 가정교육으로부터 또래집단, 학교교육, 사회화의 과정을 거치는 동안 인간은 조금씩 다른 모습을 가지게 된다. 동일한 사안에 대한 서로 다른 반응, 사회를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 인간에 대한 상반된 태도 등 수많은 조합으로 이루어진 개인들이 탄생하게 된다. 현대사회의 특징을 한 마디로 정리하는 일은 무의미하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과거와 현재를 돌아보고 미래를 성찰하는 일은 피부에 닿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금 현재 ‘나’의 삶을 돌아보기 위해 혹은 ‘나’의 미래를 알기 위한 수단으로 타인과 사회를 들여다본다. 그것은 주객이 전도된 것이 아니라 관찰의 주체와 대상이 뒤바뀔 뿐 개인과 사회 어느 쪽이 분석의 대상이 되든 무관한 일인 것 같다. 
&nbsp; <o:p></o:p>
‘자기’는 ‘계발’될 수 있는가
&nbsp; <o:p></o:p>
데이비드 브룩스의 『소셜 애니멀』을 보면서 두 가지 의문이 생겼다. 인간은 스스로 계발되는가, 아니면 언제나 외부의 조건, 타인에 의해 변화되는가. 또 하나는 인생에서 ‘성공’이란 무엇인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모든 인간의 삶의 토대를 이루는 관심사이다. 데이비드 브룩스는 폭넓은 공감대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주제를 가지고 보다 많은 사람이 읽어낼 수 있는 방식으로 이 책을 꾸미고 있다. 
&nbsp; <o:p></o:p>
먼저 외모를 평가해보자. 567페이지의 두툼한 분량의 책을 코팅표지로 무선제본했다. 결과는 2만 5천원. 어떤 ‘물건’과 비교해도 책값은 항상 가장 저렴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지만, 책값은 더구나 번역서는 다양한 가격결정 요소가 있지만, 내용에 어울리는 외모를 가졌는지는 따져볼 일이다. 한마디로 너무 비싸게 포장했다. 소장한 후 자주 찾아보고 참고하다가 자손대대로 물려줄 만한 내용은 아니라는 뜻이다. 자기계발서를 낮잡아 보는 것이 아니라 소설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읽히고 나름의 운명대로 흘러갈 책으로 보이지만 책의 표지와 디자인은 잔뜩 힘을 주고 권위를 가지려고 애쓰고 있어 안타깝다. 
&nbsp; <o:p></o:p>
전체 22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은 스토리텔링 기법을 잘 활용하고 있다. 에리카와 해럴드는 이 책의 주인공이다. 말하자면 소설처럼 두 주인공의 부모님부터 연대기적 서술에 의존하고 있다. 마치 고전소설을 읽는 느낌으로 부모님부터 시작된 이야기가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는 두 주인공을 통해 구체화된다. 에리카와 해럴드는 어떻게 일과 사랑을 이루며 그들의 성격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저자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그 비밀의 열쇠를 찾는다. 방대한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큰 틀과 체계를 세우지 않고 연대기적 소설 기법을 활용한 것은 이 책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가상의 주인공의 내세워 이해하기 쉽고 재미있게 풀어내는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가독성은 뛰어나지만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은 간과하기 쉽다. 책의 내용은 사실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다양한 심리학적 요소를 설명하고 다방면의 전문가와 방대한 저서가 소개된다. 핵심적인 내용을 짚어내고 간략하며 설명하며 두 주인공의 심리상태, 관계를 맺는 양상, 선택의 순간에서 발휘되는 능력 등을 적절하게 결합시키고 있어 이해하기 쉬운 장점이 있다. 반면에 특정한 주제나 내용을 장으로 구별해 놓았으나 선명하고 구체적으로 손에 잡히지 않고 읽고 나서도 남아 있는 게 별로 없다. 음식점으로 치자면 개인적으로 가장 싫어하는 뷔페에 해당되겠다. 넓고 고급스런 인테리어, 온갖 종류의 음식, 즉석요리와 다양한 음료, 신속한 서비스와 만족스런 사람들의 표정. 그러나 문을 나서는 순간 뿌듯한 포만감이 아니라 잔뜩 먹었는데 뭘 먹었는지 알 수 없는 허전함. 
&nbsp; <o:p></o:p>
이 책은 결국 비범한 성취와 행복으로 이끄는 조건, 과정, 방법들을 다양한 측면에서 두루 살피고 있다. 의사결정과정, 인간관계, 학습, 재산, 문화, 지능, 자기통제력, 실수, 집단사고, 도덕, 본능, 정서 등 두 주인공의 생활을 통해 다른 자기계발서와 달리 실제 생활에서 확인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생생한 현장감은 미국사회의 가장 화려한 면을 부각시키며 기회의 땅에서 성취할 수 있는 가장 성공적인 삶을 이끌어 낸다. 그러나 그것이 삶의 목표와 가치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은 아닌가. 1%의 행복에 도전하는 이 책은 2011년 미국사회를 뒤덮고 있는, 신자유주의의 피로가 극대화되고 있는 99% 현실을 반영하지는 못한다. 1%가 아니라 99%를 위한 세상을 고민할 시점에 1%의 삶을 꿈꾸며 그것이 ‘성공’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그 안에 도달하기 위한 방법론을 제시하는 이 책을 어떻게 평가해야할지 난감하다. 나쁜 책은 아니지만 누군가에게 읽어보라고 권하지는 않고 싶은 애매~한 책이다. 
&nbsp;
&nbsp;
20120103-001
&nbsp;]]></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1411/20/cover150/8965960185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5960185</link></image></item><item><author>인식의힘</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책을 주문하다가...</title><link>http://blog.aladin.co.kr/cognize/5337340</link><pubDate>Fri, 06 Jan 2012 22:0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cognize/5337340</guid><description><![CDATA[
책을 주문할 때 사람들은 타인의 서평이나 신문기사를 얼마나 참고하는지 궁금하다. 
혹은 유명 서평가와 북로거(파워블로거)의 글이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알라딘에 책을 주문하러 가면 구매하지 않은 사람들의 서평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특히 신간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왜냐하면 빌렸을 리 없고 서평용 도서를 받았거나 관계자이거나 친인척이거나.
그리고 내용은 객관적이지 않고 주례를 세울 확률이 높다. 
공짜로 책 받고 악평을 썼다가 먹게 될 욕의 양과 받게 될 불이익에 대한 발빠른 손익계산으로 머리가 복잡해질 것이다. 
특히 각 인터넷 서점, 각 포털의 우수, 파워블로거들이 거의 비슷한 시기에 같은 책의 서평이 올라온다면,
십중팔구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책이다. 서평을 참고할 필요가 없는 광고다. 
회당 10만원, 주당 1~2회 서평 제의를 하는 사이트부터 다양한 제안을 하는 프로모션 업체까지.
그 분들은 몇명이 혹은 누가 제안에 응하고 있으며 얼마나 수익을 올리고 있는지 친절하게 안내를 해주기도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차피 운영하는 블로근데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다만 문제는 공개여부다.
그리고 그 서평과 책 구매여부의 상관관계다. 순수한 매니아와 책벌레를 찾는 일은 그래서 더욱 어렵다.
대형출판사가 아닌 경우 몇몇 인터넷 서점 메인을 점령해야 하는 어려움, 광고홍보비의 부담 등 여러가지 이유로
블로그 마케팅을 하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작가가 직접 쪽지를 보내 책을 보낼테니 주소를 알려달라는 일까지 벌어진다.
숨어있는 좋은 책을 찾아읽고 함께 나누고 광고에 휩쓸리지 않고 옥석을 가리고 내 몸에 맞는 옷을 고르듯 내게 필요한 좋은 책을
골라 책 표지를 넘기기까지는 많은 수고로움을 이겨내야 하고 깊은 안목도 필요하다. 
어디 책 뿐일까마는 쉬운 일은 하나도 없다. 
그리고 갈수록 어렵기만 하다. 

책 한 권 주문하기도 험난하고 숨어있는 책을 보물찾기는 더욱 어렵고 어느덧 책이 떨어지면
늦은 겨울 밤 담뱃갑이 빈 취객처럼 마음이 급하다. 미리 목록을 준비하고 계획을 세우고 책을 살펴두지 않으면
즉흥적으로 주문하게 되는 책이 끼어들고 광고에 속거나 본전을 헤아리게 된다. 어쩔 수 없는 게으름의 대가! 
미리 준비하고 계획세워가며 계통과 주제를 생각하고 분류해 놓은 빈 구멍을 메우지 않더라도 조금 다른 방식으로
책을 읽고 쓸 수밖에 없는 상황들이 다가온다. 호흡을 가다듬고 준비운동을 하고 천.천.히.
]]></description></item><item><author>인식의힘</author><category>인문</category><title>모든 세계의 종착역 - [우리는 어떻게 죽고 싶은가? - 첨단 의학 시대에 우리가 알아야 할 죽음의 문화]</title><link>http://blog.aladin.co.kr/cognize/5318278</link><pubDate>Fri, 30 Dec 2011 19:0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cognize/531827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6251614&TPaperId=5318278"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1407/64/coveroff/895625161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6251614&TPaperId=531827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우리는 어떻게 죽고 싶은가? - 첨단 의학 시대에 우리가 알아야 할 죽음의 문화</a><br/>미하엘 데 리더 지음, 이수영 옮김 / 학고재 / 2011년 11월<br/></td></tr></table><br/><!--StartFragment-->
시작과 끝
&nbsp;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o:p></o:p>
모든 ‘것’에는 시작이 있을까. 생명의 기원, 우주의 근원, 세상의 시작은 언제 어디에서부터일까. 눈에 보이지도 손에 잡히지도 않는 연속적인 흐름을 분절시켜 놓은 인간의 시간 단위. 만남은 이별을 전제로 하듯 탄생은 죽음을 예비하고 시작은 끝을 맞이한다. 어느덧 ‘시작과 끝’이 아니라 ‘끝과 시작’이 맞닿는 시간이 되었다. 길이 끝난 곳에서 길은 다시 시작된다. 인위적인 인간의 시간이든 편리에 의한 단위이든 한해는 저물고 새해는 밝는다. 
&nbsp; <o:p></o:p>
무한 반복되는 ‘시간’과 달리 생명을 가진 것들은 탄생, 성장, 소멸을 반복한다. 개체는 계통발생을 반복하며 다음 세대에게 유전자를 남긴다. 식물이든 동물이든 그 흔적들이 시간을 견디고 또 변화하며 이전의 흔적들을 지운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하루에도 수많은 세포들이 죽고 머리카락이 빠지고 손발톱이 자란다. 말하자면 한 우리의 존재 자체도 매일 매일 사라지고 다시 태어나는 일을 반복하다가 완전히 소멸하게 된다. 
&nbsp; <o:p></o:p>
인간이 만든 모든 사물과 제도도 마찬가지다. 만들어지고 사라지고. 그렇게 이룩한 문명은 세월을 견디고 인류의 문화가 되고 지식으로 축적되고 세상을 변화시킨다. 그 목적과 방향에 대한 무수한 철학적 고민과 무관하게 우리는 오늘을 살고 세계는 존재한다. 시작과 끝은 매 순간 반복되며 그 모든 ‘것’의 시작은 알 수 없으나 그 ‘끝’은 예정되어 있는 것만 같다. 그러한 무지(無知)의 지(知)를 얻기 위해 인간은 종교와 철학을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nbsp; <o:p></o:p>
그러나 그 모든 세계와 무관하게 한 인간의 탄생은 죽음과 더불어 모든 것을 소멸케 한다. 주체적인 ‘나’를 확인하고 세계는 인식하는 순간부터 존재하게 된다. 그러므로 세계는 내가 존재하는 순간에만 존재한다는 좁은 의미의 존재론이 가능하다. 이전의 시작과 끝은 무의미하며 내 죽음과 함께 모든 세계는 점등된다. 
&nbsp; <o:p></o:p>
죽음, 존재의 소멸과 또 하나의 세계
&nbsp; <o:p></o:p>
인간의 죽음은 시대와 문화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받아들여졌다. 우리는 죽음에 대한 태도와 인식방법, 장례절차와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지 않은가. 동양문화에서는 죽음을 터부시하는 오랜 전통에 따라 여전히 삶이 끝나는 순간 죽음이 시작된다는 불연속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삶과 죽음이 하나이며 삶의 그림자가 곧 죽음이라는 연속적 세계관을 가진 문화와는 차이가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죽음은 통곡의 대상이며 건너고 싶지 않은 두려움의 강이다. 
&nbsp; <o:p></o:p>
김열규는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에서 한국인에게 죽음은 너무 먼 곳에 있다는 사실을 역사와 문화적 전통을 통해 확인시켜 준다. 또한 최준식의 『죽음, 또 하나의 세계』는 ‘한국죽음학회’ 창립 이후 근사체험을 통해 삶과 다른 영역으로서의 죽음에 대해 문화와 종교적 측면에서 접근하고 있다. 다치바나 다카시의 『임사체험 (상), (하)』은 세계 각국의 임사 체험자를 면담하여 동서양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통해 사후세계에 대해 실증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이에 비해 독일인 의사 미하엘 데 리더의 『우리는 어떻게 죽고 싶은가?』는 매우 현실적으로 읽힌다. 앞서 언급한 책들이 시대와 문화 혹은 임사체험자들을 통해 죽음 자체에 대해 성찰하고 있다면 이 책은 살아 있는 사람들이 맞이해야할 죽음에 대해 다루고 있다. 
&nbsp; <o:p></o:p>
생명을 아주 짧은 시간 연장할 수 있다 해도, 단 1퍼센트의 가능성만 있어도 치료를 하려 드는 것이 의료계의 일상적인 형태다. 그러나 때로는 실낱같은 가능성이라는 미명 아래 엄청난 불행을 안겨준다. - 25쪽
&nbsp; <o:p></o:p>
30년간 응급의료 전문가로 일하면서 죽음을 맞이하는 방법과 태도에 대해 깊이 고민한 저자의 생각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문장이며 이 책의 화두가 되는 생각이다. 생명 연장의 꿈은 인간의 본능이다. 살고 싶다는 기본적인 욕망에서 출발하는 의학은 우리에게 좀 더 긴 삶의 시간을 선물한다. 그러나 끝까지 버틸 수 있을 때까지 생명을 연장하는 것만이 옳은 일인가.
&nbsp; <o:p></o:p>
우리에게는 인간답게 죽을 권리, 고귀한 삶의 연장선에서 품위 있게 죽음을 맞이할 권리가 있는 것이 아닐까. 첨단의학 시대에 살면서 인간의 생명은 그 어느 시대보다도 연장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어떻게’ 죽고 싶은가의 문제는 우리에게 깊은 고민을 남겨 놓았다. 넓은 의미에서는 안락사의 문제까지도 언급되고 있는 이 책은 소극적 안락사에 대한 고민과 일부를 공유한다. 
&nbsp; <o:p></o:p>
정확한 기준을 마련할 수 없으나 소생 불가능한 뇌사, 고통만이 남아있는 치유 불가능한 질병 등 세상에는 오로지 죽음만을 기다리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원하는 것에 대해 귀 기울여야 하는 것은 아닐까.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한 의사들이 단 하나의 목적이 생명 연장에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는 저자는 우리 사회에서도 충분히 논의해야할 문제들을 제기한다. 
&nbsp; <o:p></o:p>
죽음이란 무엇인가. 의학적으로 심장사와 뇌사의 의미를 살펴보고 우리가 죽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먼저 숙고해보자. 임종을 앞둔 환자에 대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지 못하는 환자에 대한 죽음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 간병을 받으면서도 비참한 죽음을 맞는 사람들, 통증 치료와 죽음의 문제, 완화의학의 경계 등 죽음에 이르는 과정과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애매한 경계와 논쟁들이 독일 사회를 배경으로 진지하게 설명되어 있는 이 책은 의료복지가 제대로 갖추어진 선진국 의사의 배부른 투정으로 볼 수는 없다. 기초의약품이 없어 하루에도 수백 명씩 죽음을 맞이하는 아프리카의 현실과 동떨어진 이 책은 또 다른 측면에서 우리에게 생각거리를 제공한다. 
&nbsp; <o:p></o:p>
기본적으로 사람들은 인간답게 살다가 품위 있게 죽고 싶어 한다. 하지만 가족의 태도, 의사의 결정, 사회적 제도에 따라 죽음을 앞둔 사람에게 선택권이 없을 수도 있다. 환자와 가족, 의사만 합의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이 책에서는 풍부한 사례들을 중심으로 다양한 측면에서 사람답게 죽는 방법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대책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있다. 죽음을 받아들이고 죽음 가꾸고 죽음과 함께 살아가는 태도는 건강한 우리들의 삶을 위해서 더욱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책이다. 
&nbsp;
&nbsp;
20111230-123]]></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1407/64/cover150/8956251614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6251614</link></image></item><item><author>인식의힘</author><category>글쓰기</category><title>삶, 사주명리와 글쓰기로 풀어보기 - [몸과 삶이 만나는 글, 누드 글쓰기]</title><link>http://blog.aladin.co.kr/cognize/5310418</link><pubDate>Tue, 27 Dec 2011 23:1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cognize/531041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6829824&TPaperId=5310418"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1400/89/coveroff/8976829824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6829824&TPaperId=531041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몸과 삶이 만나는 글, 누드 글쓰기</a><br/>고미숙 외 지음 / 북드라망 / 2011년 11월<br/></td></tr></table><br/><!--StartFragment-->
습관이란 몸이 지닌 리듬과 탄성, 혹은 강밀도다. 거꾸로 말하면 과거부터 이어져 온 욕망과 훈련의 결정체, 그것이 곧 나의 몸이다. - 12쪽
&nbsp;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o:p></o:p>
펜과 칼 그리고 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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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en is mighter than the sword. 기억도 가물가물한 영문법 책의 예문으로 추측한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격언은 인간이라는 존재를 육체와 영혼으로 나누어 생각한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때로는 육체적 고통보다 정신적인 고통을 견딜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영혼을 지배하는 말과 글은 인간이 사용하는 두 가지 종류의 언어다. 그러면 말과 글은 어떻게 다른가. 아니, 어떤 것이 더 치명적인 상처를 낼 수 있을까. 세 치 혀를 함부로 놀리는 일을 경계하고 그 두려움을 아는 사람은 흔치 않다. 그것은 사실과 진실을 구별하지 못하고 팩트와 소문을 분간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즐기는 인간의 본능적 욕구 때문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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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글의 가장 큰 차이는 기록과 상대의 유무일 것이다. 일회적으로 흘러가는 말과 달리 영원히 기록되며 반드시 다른 사람이 있어야 가능한 말과 달리 글은 혼자서도 쓸 수 있다. 그래서 글쓰기는 자신과의 대면을 의미하며 반성과 성찰의 시간이고 자기 고백의 수단이다. 기본적으로 글을 쓰는 동안 내면의 나를 돌아보게 된다. 나의 생각은 무엇이며 내 삶은 어떠했는지 그리고 고통스러웠던 삶의 순간들을 떠올리게 된다. 그것이 글쓰기의 가장 근본적인 목적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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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숙과 그의 친구들(?)이 함께 쓴 『누드 글쓰기』는 ‘몸, 삶, 글’이라는 &lt;감이당&gt;의 모토가 그대로 반영된 책이다. ‘수유+너머’에서 독립하여 인문의역학 공부모임이라는 &lt;감이당&gt;의 결과물들이 책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이 책은 사주명리학과 글쓰기의 만남이다. 이름하여 누드 글쓰기라. 알몸을 드러내는 일은 누구에게나 부끄러운 일이다. 그것보다 더 힘든 일은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는 일이다. 고미숙, 김동철, 류시운, 손영달, 수경, 안도균은 사주팔자를 들여다본다. 사람이 태어난 연월일시는 음양오행과 더불어 인간의 몸과 기질의 특성을 결정짓는다. 미래를 점치는 일도 아니고 미신이라 할 수도 없는 사주팔자. 과연 믿을 만한 것인가. 그리고 그것은 얼마나 우리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가. 그리고 그것을 들여다보는데 글쓰기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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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삼스러운 말이지만, 독서의 최종목표는 글쓰기다. 책을 읽는 건 삶의 길을 찾는 탐색이다. 그 ‘길찾기’는 반드시 자신의 언어로 표현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글쓰기란 존재의 가장 기본적인 표현형식에 속한다. 읽기와 쓰기가 하나로 이어져 있는 이 순환의 사이클이 바로 ‘책의 매트릭스’인 것. - 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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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주팔자와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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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태어난 연월일시가 네 개의 기둥이며 그에 해당하는 여덟 글자. 그 중에서도 일(日)에 해당하는 간지 중에서 천간에 해당하는 글자가 주인이다. 심심풀이로라도 운세나 토정비결을 본 적이 없었지만 이 책을 보면서 내 사주를 확인해 보았다. 중심글자는 신辛. 음양오행에 따르면 신辛은 음陰에 해당하는 금金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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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금辛金(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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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카롭고 예리한 금속이나 보석을 상징한다. 침착하고 예리한 판단력과 논리적인 언어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일을 깔끔하고 명확하게 마무리한다. 그러나 그런 만큼 예민하고 자기중심적이며 냉소적인 면이 있다. 타인은 물론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실수를 용납 못할 정도로 엄격한 내면의 잣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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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찾아보다가 덮고 말았다. 아직 누드 글쓰기를 할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인가 보다. 하지만 손영달, 김동철, 수경, 류시성은 사주팔자를 풀어놓고 자신의 삶을 ‘쓴다’ 고미숙이 누드 글쓰기의 존재론에 대해 이야기하고 안도균이 사주명리학의 개요를 설명한 후 각각 ‘비겁, 관성, 식상, 재성’이 강한 네 사람이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는 형식으로 엮인 이 책은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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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통상적으로 ‘책’이라고 했을 때 요구하는 내용과 기대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고미숙과 안도균의 글을 제외하고 실제 자신의 삶을 사주명리학으로 풀어내는 누드 글쓰기를 들여다보는 일은 한 편의 소설을 보는 것처럼 흥미롭기도 하지만 타인의 생을 들여다보는 불편한 일이기도 하다. 사주명리학을 풀어내는 예문으로 적절할지 모르겠지만 그것을 통해 자신과의 대면을 시도하는 일이 얼마나 가능할 것인지는 의문이다. 읽는 사람에 따라 제각기 다른 반응을 보일 것 같은 독특함만은 인정해 줄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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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는 시인이나 소설가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몸과 삶이 만나는 글이라는 누드 글쓰기가 왜 필요한지 어떻게 하는 것인지 시작해 보는 것은 어떨지 모르겠다. 치유하는 글쓰기는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다. 입 속의 검은 혀가 아니라 온몸으로 누드로 글쓰기를 시작하라는 저자들의 이야기는 독자들 각자가 판단할 일이다.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갈 수 있다고 믿거나 운명 따위와는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그리고 영원히 살 것처럼 사는 사람들에게 성찰과 겸손을 선물하는 책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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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순환은 단선 레일 위를 유유히 달리는 것이 아니라, 주체와 조건이 만나는 틈새로 새로운 복수(複數)의 길을 여는 과정이다. 인생은 그렇게 주체와 조건이 중층으로 얽혀 있는 다차원의 세계다. 넓고 평평한 도로와 비포장도로가 섞여서 나타나기도 하고, 막다른 골목과 틈새의 길이 동시에 주어지기도 하며, 갈림길인가 하면 어느새 길이 모이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삶이란 알다가도 모르고 잡힐 것 같으면서도 종잡을 수 없는 것. 그러므로 눈을 뜨면 역설이요, 감으면 모순인 인생의 길들은 그 자체로 지극히 정상적인 순환의 논리 안에 들어와 있는 셈이다. 따라서 자신의 삶을 보고자 한다면 뫼비우스의 띠 같은 이 모순과 역설의 논리를 익혀야 한다. - 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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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27-122
&nbsp;]]></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1400/89/cover150/8976829824_2.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6829824</link></image></item><item><author>인식의힘</author><category>문학</category><title>반복되는 일상성과 동일성의 세계 - [저녁의 구애 - 2011 동인문학상 수상작]</title><link>http://blog.aladin.co.kr/cognize/5304275</link><pubDate>Sun, 25 Dec 2011 22:0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cognize/530427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21856&TPaperId=5304275"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1113/1/coveroff/893202185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21856&TPaperId=530427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저녁의 구애 - 2011 동인문학상 수상작</a><br/>편혜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03월<br/></td></tr></table><br/><!--StartFragment-->
소설의 경우, 책을 선택하는 데는 몇 가지 경로에 따른다. 다른 분야의 책도 마찬가지 경로를 따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대개의 경우 작가의 명성, 전작의 우수성, 출판사의 홍보, 각종 문학상 수상, 주변의 추천 등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일반인의 경우 평론집을 통해 책을 찾아 읽는 경우가 거의 없다. 더구나 한국 문학 전체의 흐름을 읽고 신진 작가와 기성 작가의 작품을 두루 읽고 그들의 신작을 적절하게 선택하거나 평가하는 일은 쉽지 않다. 최근 몇몇 통계를 보면 책을 읽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의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읽는 사람은 1인당 평균 독서량이 작년보다 증가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더 줄었다. 10명 중 6명은 1년에 한 권도 읽지 않으며 베스트셀러의 집중 현상은 점점 심화되고 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할 것인가는 책 읽는 사람 입장에서 쉽지 않은 고민이다. 
&nbsp;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o:p></o:p>
『재와 빨강』으로 처음 만난 편혜영의 소설 『저녁의 구애』는 주목할 만한 작가의 발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재와 빨강』에서 보여준 작가 색깔과 문장이 작가 고유의 것으로 육화될 것인지 중간에 힘을 잃어버릴 것인지 지켜보는 일은 소설을 읽는 즐거움 중 하나이다. 독자는 언제나 여러 선택지 중에서 최선을 희망한다. 합리적인 소비에 버금갈 만큼 책의 선택은 자신의 시간과 영혼에 미치는 영향이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소설 한 권 읽는데 뭐 그리 복잡할 것 있냐고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분야별로 제대로 읽어나가고 즐기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고려할 만한 사항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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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혜영의 소설집 『저녁의 구애』에는 8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소설집은 한 작가의 작품세계를 일정기간 동안 정리하는 의미가 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시간이 흐른 만큼 성장하고 변화하는 것은 자연스런 인간의 모습이다. 작가도 마찬가지다. 내적 변화와 외적 상황에 따라 작가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성장한다고 믿는다. 이 소설집은 편혜영의 한 시기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소설집일 것이다. 그것을 무엇이라 평가하든 말이다. 통상적으로 하나의 문장 혹은 몇 개의 키워드로 작품 세계를 드러낼 수도 있다. 김형중은 해설에서 그것을 ‘동일성의 지옥’이라고 표현했지만 독자들이 그렇게 읽어낼지는 의문이다. 그렇다면 편혜영의 『저녁의 구애』는 어떻게 읽어낼 수 있을까. ‘지루한 세상에 불타는 구두를 던’지라는 신현림의 말대로 그것은 시대와 무관하게 반복되는 일상성에 대한 도전이며 그 간극을 뛰어넘는 한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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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성과 일상성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삶에서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며 시찌프스처럼 무한 반복되는 일상을 견디는 일이 인간의 삶이라는 비극적 인식은 편혜영 소설의 기본 전제이다. 하지만 그 일상은 모든 사람에게 조금씩 다르다. 같은 공간 같은 시간에 함께 생활하면서도 서로 다르게 받아들이고 반응할 수 있다. 편혜영은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비틀어보아야 하는 소설가라는 직업에 충실한 듯하다. 기다릴 무언가가 있고 해야 할 일이 있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을 ‘행복’이라고 한단다. 사람마다 행복의 기준이 조금씩 다를 수 있겠지만 소설가는 행복을 말하지 않는다. 아니 그것을 우회적으로 드러내거나 허망한 실체를 드러내는 것이 소설의 역할인지도 모른다. 편혜영도 마찬가지다. 넓은 의미에서 편혜영의 소설은 희망 없는 시대,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 적나라한 보고서로 읽히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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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 누구나 이기적이므로 누구에게든 이기적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어떤 경우에도 타당하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 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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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이라는 것은 애정의 정도와는 아무 관계가 없으며 자신에게 헌신적이거나 유익할 때에만 유효한 감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모든 지나간 일을 되새기는 과정이 그렇듯 과거의 어떤 일이 미친 결과나 상처는 아무런 파동 없이 떠올랐고 그러는 과정에서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버린 것에 대한 서글픔과 뻔한 회한만 남았다. - 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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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제작 ‘저녁의 구애’의 몇 문장이다. 인간과 삶에 대한 통찰은 소설의 가장 큰 미덕이 아닐까. 소설을 읽으면서 밑줄을 치는 일은 때로 우스꽝스럽게 여겨진다. 소설보다 더 극적인 생을 사는 사람들, 현실보다 밋밋한 소설들, 사람과 책 사이에서 현실과 허구의 매트릭스를 경험하는 우리에게 책읽기는 현실에 대한 확인이며 꿈이다. 그래서 때때로 ‘너무 상투적이고 진부해서 진심으로 여겨지지 않는 말’의 홍수를 견디는 일이 현실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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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기를 하는 동안 김은 여자에게 말한 것들이 이제껏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임을 깨달았다. 자신의 말은 모두 어디서 읽거나 누구에게 들은 얘기 같았다. 너무 상투적이고 진부해서 진심으로 여겨지지 않는 말이었다. 반면에 그래서 진심처럼 들리기도 했다. - 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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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의 묘’와 ‘동일한 점심’과 ‘산책’에서 확인할 수 있는 지루함과 건조함, ‘저녁의 구애’에서 보여주는 허망함과 피곤함, ‘관광버스를 타실래요?’와 ‘정글짐’의 낯설음과 불분명함, ‘크림색 소파의 방’을 통해 확인되는 안타까움과 불안, ‘통조림 공장’의 그로테스크함과 우울한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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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카토처럼 짧게 던져지는 문장과 모래바람이 불 듯 서걱이는 건조함은 희망없이 미래를 바라보아야 할 우리들의 모습을 지극히 현실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 소설의 아이러니는 현실에 대한 풍자와 비판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이렇게 시니컬하게 비틀고 무미건조하게 툭툭던지는 문체에서 비롯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들뜬 감정을 가라앉히고 냉정한 시선으로 우리의 삶을 돌아보고 생의 비의(悲意)를 확인하고 싶다면 편혜영의 소설이 제격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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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를 끊으면 그는 누군가 자신을 낯선 도시로 내몰았고,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도록 공교히 음모를 꾸몄으며 자신은 순진무구하게도 그 유혹에 쉽게 넘어가버렸다는 생각을 했다. 늘 구군가에 의해 설계된 인생을 살아온 느낌이 되살아나면서 화가 났다. 자신을 통제하는 대상이 있다는 생각 때문만은 아니었다. 자신이 그 통제에 안도감을 느낀다는 것 때문이었다. - 167쪽
&nbsp;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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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25-121]]></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1113/1/cover150/8932021856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21856</link></image></item><item><author>인식의힘</author><category>책갈피</category><title>생명이란 무엇인가 • 정신과 물질, 에르빈 슈뢰딩거, 전대호 옮김, 궁리, 2007</title><link>http://blog.aladin.co.kr/cognize/5293113</link><pubDate>Tue, 20 Dec 2011 21:5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cognize/5293113</guid><description><![CDATA[우리 각자는 자신의 경험과 기억 전체가 한 단위를 형성하며, 그 단위가 다른 어떤 사람의 단위와도 다르다는 명백한 느낌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그 단위를 ‘나’라 부른다. 과연 그 ‘나’는 무엇일까? - 148쪽
&nbsp;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o:p></o:p>
과학은 ‘진술한다’. 과학의 유일한 목표는 대상에 대해 옳고 적절하게 진술하는 것뿐이다. 과학자가 강요하는 것은 오직 두 가지, 진실과 성실뿐이다. - 19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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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o:p>
물질세계는 자아, 즉 정신을 배제함으로써만, 제거함으로써만 구성될 수 있었다. 정신은 물질세계의 일부가 아니다. 그러므로 정신이 물질세계에 작용을 가할 수도 없고 물질세계의 어느 부분이 정신에 작용을 가할 수도 없다. - 19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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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o:p>
세계는 내게 단 한 번 주어진다. 존재하는 세계가 주어지고, 또 지각되는 세계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주관과 객관은 단지 하나이다. 물리학이 이룩한 최근의 성과로 주관과 객관 사이의 장벽이 무너졌다는 말은 옳지 않다. 애초부터 그 장벽은 존재하지 않았다. - 208쪽
&nbsp;
<o:p></o:p>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생각이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만들 뿐이다.” 자연적인 사건은 그 자체로 좋지도 나쁘지도 않으며 아름답지도 추하지도 않다. 가치는 찾아볼 수 없으며 특히 의미와 목적을 찾아볼 수 없다. 자연은 목적에 따라 행동하지 않는다. - 226쪽
&nbsp;
<o:p></o:p>
이런 이론화 과정은 우리가 사실들을 질서 있는 패턴으로 기억하는 데는 매우 유용하지만, 실제 관찰과 그로부터 나온 이론 사이의 구분을 은폐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실제 관찰은 항상 감각이기 때문에 우리는 쉽게 이론이 감각을 설명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당연한 얘기지만 이론은 감각을 전혀 설명하지 않는다. - 265쪽
<o:p></o:p>
&nbsp;]]></description></item><item><author>인식의힘</author><category>과학</category><title>생명 그리고 정신과 물질의 관계 - [생명이란 무엇인가.정신과 물질]</title><link>http://blog.aladin.co.kr/cognize/5293106</link><pubDate>Tue, 20 Dec 2011 21:5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cognize/529310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8200987&TPaperId=5293106"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93/77/coveroff/895820098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8200987&TPaperId=529310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생명이란 무엇인가.정신과 물질</a><br/>에르빈 슈뢰딩거 지음, 전대호 옮김 / 궁리 / 2007년 07월<br/></td></tr></table><br/>우리 각자는 자신의 경험과 기억 전체가 한 단위를 형성하며, 그 단위가 다른 어떤 사람의 단위와도 다르다는 명백한 느낌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그 단위를 ‘나’라 부른다. 과연 그 ‘나’는 무엇일까? - 148쪽
&nbsp;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o:p></o:p>
1944년 9월에 쓴 에르빈 슈뢰딩거의 서문이 낯설다. 67년이라는 시간의 간극 때문이 아니라 그간 상전벽해 해버린 과학의 발달 때문이다. 오스트리아의 이론 물리학자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여전히 막막하다. 생명이란 무엇인가? 이론적 정의보다 우선 그 의미를 생각하는 버릇 때문에 쉽게 답을 떠올리기 어려운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는 슈뢰딩거 방정식을 발견하여 파동역학을 수립하고 물질의 파동이론과 양자역학의 한 축을 담당한 공으로 1933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으며 말년에 과학철학에 몰두했다. 
&nbsp; <o:p></o:p>
과학자의 입장에서 바라본 생명은 무엇일까. 더구나 생물학자가 아니라 물리학자가 던지는 호기심은 근본적이고 원론적인 질문이다. 살아있는 세포의 활동과 역할을 고찰하는 일은 단순히 환원주의 입장에서 원자와 분자 수준의 물질을 탐구하는 일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 2500여 년 전부터 철학자들이 했던 고민과 현대 물리학자들의 고민이 근본적으로는 달라진 게 없다. 세상은 무엇으로 만들어졌으며 인간의 생명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 
&nbsp; <o:p></o:p>
그 수많은 질문 중에 하나는 다음 세대로 이어지고 과학자와 철학자들에 의해 끊임없이 궁구하게 만든다. ‘DNA 이중 나선 구조’를 밝히는 과정을 재미있는 소설처럼 풀어낸 제임스 왓슨의 『이중 나선』에 소개된 슈뢰딩거의 『생명이란 무엇인가』는 일단 재미가 없다. 과학자들이 극찬하는 고전이면서 많은 연구자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은 책이고 제임스 왓슨 때문에 읽게 됐지만 『이중 나선』처럼 술술 읽히는 책은 아니다. 그러고 보면 최재천이나 제임스 왓슨처럼 재미있고 쉽게 전달할 수 있는 글쓰기 능력은 그들을 빛나게 한다. 
&nbsp; <o:p></o:p>
이 책은 궁리하는 과학 시리즈 네 번째 책으로 ‘정신과 물질’을 함께 묶었다. 두 권을 한 권으로 묶는 데는 분량의 문제 뿐 아니라 내용의 흐름도 고려했을 것이다. 옮긴이 전대호의 말대로 생명의 본질에 대한 탐구는 자연스럽게 정신과 물질의 관계를 살펴보는 내용과 연결된다. 
&nbsp; <o:p></o:p>
우선 ‘생명이란 무엇인가’는 전체 7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고전 물리학의 접근 방법에서 시작하여 유전의 매커니즘과 돌연변이, 양자역학적 증거를 살펴 본 후에 질서와 무질서 그리고 엔트로피를 통해 생명의 물리학 법칙들을 점검한다. 생명은 일정한 계통에 따라 순차적으로 개체가 발생하는 기계가 아니다. 20세기 중반까지 밝혀진 과학의 이론에 입각해서 생명의 본질에 대해 진지하게 탐구하는 슈뢰딩거의 이야기는 전문지식이 없어도 들어볼 만하지만 역시 쉽게 이해되거나 재미 있지는 않다. 
&nbsp; <o:p></o:p>
오히려 ‘정신과 물질’이 이해가 빠르다. 과학이 아니라 철학에 가까운 이야기로 가득한 ‘정신과 물질’은 유물론과 관념론의 논쟁처럼 어디까지 혹은 무엇을 인식하느냐에 따라 우선순위도 달라지고 영역도 분리된다. 정신은 무엇이며 그 정신을 만들어내는 것은 무엇인가. 물질은 객관화 될 수 있는 것인지 또 그것이 정신과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 가만히 들여달 볼 필요가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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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에 묶여 있어 자연스럽게 두 권을 함께 읽을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대신 개념적인 용어와 이론들이 들장하기 때문에 마음을 단단하게 먹어야 할 책이기도 하다. 대상에 대한 객관적 사실을 나열하거나 하나의 현상을 밝히는 책이었다면 고전이 되었을 리가 없다. 모든 고전은 궁극적인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그 질문은 시간을 견뎌내며 여전히 우리에게 유효하고 정답은 없지만 언제나 진지하게 고민할 가치가 있는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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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은 위대하다. 이 명제 앞에 나약한 인간은 고개를 숙이고 그 신비로움에 대한 경외감에서 종교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인간은 이성이 발달하면서 과학기술은 눈부시게 발달했으며 지구상에 가장 오만한 생명체가 되었다. 자연은 스스로 그러하다. 선악이 없으며 인위가 없다. 돌연변이 조차도 하나의 흐름이며 생명의 신비에 해당한다. 그래서 ‘자연은 목적에 따라 행동하지 않는다’는 슈뢰딩거의 성찰은 생명과 정신과 물질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에 대한 출발이다. 목적은 없지만 본능적인 호기심을 견디지 못하는 것이 인간이기 때문에 자연의 일부인 생명이란 무엇인지 여전히 탐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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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것도 나쁜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생각이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만들 뿐이다.” 자연적인 사건은 그 자체로 좋지도 나쁘지도 않으며 아름답지도 추하지도 않다. 가치는 찾아볼 수 없으며 특히 의미와 목적을 찾아볼 수 없다. 자연은 목적에 따라 행동하지 않는다. - 2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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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20-119]]></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93/77/cover150/8958200987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8200987</link></image></item><item><author>인식의힘</author><category>문학</category><title>공감과 희망 없는 시대의 꿈 - [아무도 펼쳐보지 않는 책]</title><link>http://blog.aladin.co.kr/cognize/5287489</link><pubDate>Sun, 18 Dec 2011 20:5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cognize/528748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37216&TPaperId=5287489"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1424/80/coveroff/893643721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37216&TPaperId=528748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아무도 펼쳐보지 않는 책</a><br/>김미월 지음 / 창비(창작과비평사) / 2011년 12월<br/></td></tr></table><br/>비평과 서평 사이
&nbsp;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o:p></o:p>
문학 연구자로 작품과 작가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면 그 결과는 학문이 될 것이다. 문학사와 문학 이론은 물론이고 사회학과 역사학에 대한 폭넓은 지식과 철학적 사유가 뒷받침 되지 않은 비평은 어느 작가의 비유처럼 소 잔등위에 앉은 파리처럼 귀찮기만 할 뿐이다. 이론적 기준에 입각한 정치한 글쓰기는 일반 독자를 쉽게 설득할 수 없고 이해하기 어려운 용어와 개념들은 비평을 읽을 만하지 않은 그들만의 언어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쉽다. 그러나 비평은 여전히 문학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작품의 안과 밖을 두루 살피며 객관적인 검증 절차로 받아들이느냐 개별 비평가의 주관적 평가로 받아들이느냐의 문제는 일반 독자의 입장에서 늘 애매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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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비평의 시대를 넘어 서평의 시대가 도래했다. 평론가들의 비평 기능과 역할이 2000년대 이전과 같지 않다는 것은 다양한 매체의 발달과 능동적인 독자들의 참여가 결정적인 이유 때문이다. 즉각적인 피드백이 이루어지고 인터넷에 소설을 발표하는 시대에 문학 비평의 역할은 설 자리가 좁아졌고 문단 권력과 주례비평에 대한 반성과 비판들은 일반 독자들과 비평의 거리를 더욱 멀어지게 했다. 그렇다고 해서 비평의 역할과 의미가 축소되는 것은 아니다. 예술로서의 문학이 지향해야 할 방향 혹은 창작되는 작품들에 대한 총체적인 분석과 해석은 여전히 평론가와 학문 연구자들의 몫으로 남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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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시대의 문학에서 서평의 의미와 위치는 ‘애매~하다.’ 개별 독자들의 단순한 독서감상문으로 보기에는 그 깊이와 영향이 상당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비평과 서평을 큰 틀에서 볼 때 ‘객관적’일 수 없다고 본다면 백락청과 김현 같은 스타 평론가의 시대는 이제 다시 오지 않을 지도 모르겠다. 그 기능의 상당 부분은 신문 서평란의 전문 기자와 서평가들의 활발한 활동으로 채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서평가들은 전문 연구자들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고 출판평론가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새로운 전문 직업군이기도 하다. 기존의 작가들이 겸업하는 경우고 있으며 일반인 중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는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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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월의 소설집 『아무도 펼쳐보지 않는 책』을 읽으면서 비평과 서평에 대해 이런 저런 생각이 떠오른 것은 신진 작가에 대한 접근 경로와 판단 때문이었다. 평론가는 최근에 출판된 한국 소설을 두루 읽고 그 흐름을 파악하며 한 작가의 탄생과 성장 그리고 작품세계를 꾸준히 살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일반 독자의 경우에는 어떤 작가가 주목할 만한 작가인지도 판단하기 쉽지 않을뿐더러 전체 작가의 작품을 고루 읽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작품에 대한 평가가 지극히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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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팔리고 이름이 알려진 작가지만 김애란의 초기작에서 느꼈던 발랄함과 감각적인 언어, 즐거운 상상력은 첫 번째 장편소설에서 실망으로 바뀌었다. 지극히 주관적인 취향이겠으나 돈을 주고 책을 사서 읽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다음 소설을 살 것인가 말 것인가, 읽을 것인가 말 것인가의 기로에 서게 된다. 그러다보면 자연스럽게 베스트셀러 코너만 기웃거리고 영화를 보고 책을 구입하는 우스운 상황이 연출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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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난 김미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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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무관한 이야기로 시작한 김에 한 가지 더! 시집과 소설책 날개의 작가 소개에 학력표기는 필요한가? 중졸 학력이나 박사학위를 가진 작가의 이력이 작품을 읽는 데 어떤 영향을 미칠까? 한 작가의 작품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것은 그가 살아온 내력, 개인적 관심사와 취미, 집안 분위기, 인상 깊은 성장과정의 에피소드, 정치적 성향, 현재 하고 있는 일 등이 아닐까? 천편일률적인 학력 소개와 펴낸 책 소개는 표정 없는 증명사진처럼 의미도 재미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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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에서 태어났다, 는 소개는 강릉에서 태어나서 몇 살까지 성장했는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왜냐하면 소설 곳곳에 배어있는 ‘서울’에 대한 느낌과 서울 살이에 대한 생경함 때문이다. 자연스러운 작가의 관찰과 경험인지 잘 설정된 주인공의 몸에 어울리는 상상력인 궁금했기 때문이다. 소설집과 장편 소설을 각각 한 권씩 펴내고 두 번째 소설집으로 처음 만나는 김미월의 소설은 가능성과 잠재력을 엿보인다. 9편의 단편들이 가진 각각의 얼굴은 따로 또같이 잘 어울린다. 조금씩 다르면서 어우러져 화음을 내고 있기 때문이다. 일정 기간 발표한 단편들을 묶어낸 소설집의 경우 내용이 다양하다는 즐거움이 있을 수 있지만 일관된 성격이나 흐름을 확인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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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소설집은 표제작에 나오는 표현을 차용하자면 베스트셀러 코너에 오르긴 힘들지만 그 뒤편 서가 구석에 꽂혀 ‘아무도 펼쳐보지 않는 책’이 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시인지망생이었던 편집자, 가난해서 대학에 가지 못하는 여고생, 불법취업 외국인, 다문화가정, 취업준비생 등 우리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지만 주목받지 못하는 이웃들과 있어도 표나지 않는 개성도 특징도 없는 사람들이 주인공이다. 새롭고 신기한 이야기로 가득하거나 개성이 뚜렷한 주인공이 등장하지도 않는다. 기막히고 놀라운 사건이나 인상 깊은 장면으로 독자를 사로잡지도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풉’하고 미소 짓게 하는 상쾌한 비유, 물 흐르듯이 편안하게 읽히는 문장, 어색하고 딱딱하게 관념을 드러내지 않는 표현, 황망하지 않는 결론 등 김미월이라는 작가의 분명한 빛깔을 만들어 갈 수 있는 분명함은 숨길 수 없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자유였다. 아무것도 되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처럼 누구나 한 번쯤 떠올렸을 생각들을 문장으로 확인하는 기쁨을 줄 수 있다는 것은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라 대다수 평범한 ‘우리’에게 작가의 시선이 고정되어 있다는 따뜻함을 확인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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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희망이 없는 시대라고 하지만 그 말은 어느 시대에나 통용되는 것은 아니었을까. 겨우 ‘29200’일 밖에 살지 못하면서도 영원을 살 것처럼 욕망하는 사람들이나 아무도 펼쳐보지 않을 것 같은 책을 쓰고 있는 작가의 심정이나 ‘달리’ 할 것도 없는 사람의 미래를 담담하게 들여다 볼 줄 알고 위로할 수 있는 자세를 지닌 작가의 소설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 ‘공감과 소통’이 시대의 키워드로 떠올랐으나 그 말 또한 언제나 필요한 삶의 조건이 아니겠는가. 작가는 언제나 시대를 뛰어넘는 위대한 소설을 꿈꾸겠으나 그것은 지금 여기에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가장 치밀한 관찰과 애정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니겠는가. 비록 누추하지만 ‘희망’ 혹은 ‘꿈’을 영원히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멈추지 않기를. 모든 것이 우중충하지만 쨍쨍한 햇볕에 잘 마른 빨래처럼 팽팽한 내일을 함께 고민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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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우중충했다. 저 남자애는 곧 학교에 도착할 것이다. 곧 졸업을 할 것이고 저 아저씨들처럼 넥타이를 매고 출근할 것이다. 시간이 더 흐르면 레깅스를 신은 아가씨들 중 한 명과 결혼하겠지. 두 남녀는 아파트 대출금과 자동차 할부금을 갚기 위해 낮밤 없이 일할 것이다. 주말에는 주중에 밀린 잠을 자기 바쁠 것이고. 드디어 아파트를 장만하고 자동차를 소유하게 되면 아마 나이 쉰쯤 됐으리라. 그때쯤이면 둘 중 하나는 암에 걸려 있을지도 모른다. 당뇨나 허리디스크, 우울증도 피해갈 수 없겠지. 아아, 정말이지 너무나 우중충한 미래였다. - ‘29200분 1’, 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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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18-118]]></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1424/80/cover150/8936437216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37216</link></image></item><item><author>인식의힘</author><category>철학</category><title>覇와 禮가 아니라 民과 仁의 차이 - [관중과 공자 - 패자의 등장과 철학자의 탄생]</title><link>http://blog.aladin.co.kr/cognize/5281320</link><pubDate>Thu, 15 Dec 2011 21:5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cognize/528132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8285818&TPaperId=5281320"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1357/69/coveroff/8958285818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8285818&TPaperId=528132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관중과 공자 - 패자의 등장과 철학자의 탄생</a><br/>강신주 지음 / 사계절출판사 / 2011년 11월<br/></td></tr></table><br/><!--StartFragment-->
내가 ‘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nbsp;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o:p></o:p>
단지 하나의 생명체로 태어난 어린 아이를 떠올려본다. 제 힘으로 몸을 움직일 수도 없고 혼자서는 제대로 먹을 수조차 없다. 미숙한 인간은 조금씩 움직이고 뒤집고 기고 서고 걸으며 제 몸 하나를 겨우 나누기 시작한다. 그리고 문명의 혜택을 받는다면 듣고 보고 읽고 쓰기 시작한다. 세상의 모든 정보를 받아들이고 지식을 습득하며 삶을 영위해 나가는 인간의 모습은 나약하기 그지없다. 이렇게 오랜 시간에 걸쳐 조금씩 사회화되는 과정에서 나름의 생각이 만들어진다. 어쩌면 이 불완전함이 인간의 가장 큰 특징인지도 모르겠다. 세상은 알 수 없는 것 투성이고 무언가를 ‘안다’고 말하는 것조차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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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직접 경험하지 못한 모든 지식은 절대적이라고 말할 수 없다. 아니, 우리의 모든 감각 기관조차 확실치 않을 때가 많다. 더구나 과거의 역사와 철학, 문화와 전통은 습관적으로 체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학교에서 배웠던 수많은 지식들 겨우 걸음마를 뗀 후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대부분 교과서를 통해 인류의 축적된 지식을 배운다. 이 과정이 맹목적인 주입식으로 이루어질 경우 주체적인 판단력과 사고력 따위를 기대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결과가 아닐까. 생각하고 질문하고 호기심을 가지고 스스로 찾아보고 토론하는 과정이 중요한 이유는 비판적인 사고력과 논리적인 설득력 그리고 종합적인 판단력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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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안다’고 믿었던 세상이 하나의 프레임 속에 갇혀 있을 뿐이라는 자각 혹은 삶의 패러다임 전체가 흔들리는 지적 충격을 받은 적이 없다면 나는 ‘안다’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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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백가의 귀환 두 번째 책, 강신주의 『관중과 공자』는 앎의 세계에 대한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관중과 포숙의 교우 관계를 일컫는 ‘관포지교(管鮑之交)’ 정도로 알고 있는 관중은 누구인가. 또한 500년 조선 왕조를 지배하며 우리의 전통 문화의 사상적 배경으로 확고부동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공자는 어떤 사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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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주의자 관중과 이상주의자 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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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의 두 인물을 비교하는 일은 많은 책에서 시도해 왔고 나름대로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공자는 다른 인물들과 조금 다르다. 사마천의 &lt;사기&gt;에서 제후들처럼 따로 다루고 있을 정도로 공자는 여느 철학자들과는 조금 다르다. 그만큼 공자는 위대한 철학자일까. 학교에서 배운 혹은 공자에 대한 막연한 의심은 춘추전국시대와 그의 삶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시대의 행운아로 보이는 관중도 마찬가지다. 후세 사람들에게 평가 절하된 관중은 어떤 상황에서 제나라의 환공을 패자(覇者)로 만들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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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이런 수많은 질문들에 답하고 있다. 두 사람이 살았던 시대를 통해 인물의 생애를 조망한 후 그들의 사상을 비교 분석하고 있다. 우선 혼란스런 중국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 지금으로부터 2500여 년 전을 더듬는 일은 어떤 책보다도 흥미롭다. 근대적인 의미의 국가 체제를 갖추지 않은 춘추전국시대의 상황과 1권에서 다루었던 ‘인人’과 ‘민民’의 관계는 2권을 읽는데도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것은 ‘제자백가의 귀환’ 시리즈를 관통하는 하나의 관점이 될 것이다. 강신주가 제자백가를 다루는 다양한 방법이 기대되면서도 끝까지 이 시리즈를 읽어내게 하는 힘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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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중은 제나라 환공을 패자(覇者)로 만든 인물로 기억된다. 그가 가졌던 정치적인 능력과 꿈이 어떤 식으로 펼쳐지고 현실이 되는지 살펴보는 일은 당대의 정치와 사회를 아우르는 작가의 통찰력을 빌리는 일이기도 하다. 폭넓은 인문학적 사유와 적절한 원문의 인용은 이 책이 단순히 알기 쉽게 풀어 놓은 해설서나 쉽고 재미있는 입문서를 넘어서는 이유다. 우리가 관중에게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민民’에 대한 태도 때문이다. 제나라의 상황을 읽어내는 능력 뿐만 아니라 경제가 민民에게 미치는 영향을 간파한 관중의 전략은 여전히 우리에게 시시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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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철학 구분

관중

공자


정치 논리

가족 논리 ≠ 국가 논리

가족 논리 = 국가 논리


정치 주체

군주

군주 + 귀족층


정치 대상

귀족층 + 민중

민중


정책의 우선순위

경제 → 이데올로기

이데올로기 → 경제


민중에 대한 인식

능동적 사회계층

수동적 사회계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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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 비해 공자는 어떠한가. 주나라의 ‘예禮’를 숭상하며 오랜 시간을 견뎠으나 그의 이상은 결국 현실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철저한 현실주의자였던 관중과 공자가 비교되는 지점이다. 공자의 사상을 대표하는 ‘인仁’에 대한 오해와 진실은 김경일의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의 관점과 유사하게 서술된다.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양비론(兩非論)과 양시론(兩是論)이다. 공자에 대한 해묵은 논쟁이 모두 옳거나 모두 그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당대 사회의 관점에서 공자를 바라보거나 현재적 유용성으로 공자를 해석하거나 정확한 사실을 이해하는 일이다. 우리 모두가 먼지 묻은 중국 고전의 원문을 읽고 그 의미를 해석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이런 책이 필요하지 않은가 싶다. 누구의 해석과 관점이 정확하다고 순위를 매기자는 말이 아니다. 강신주의 해석과 관점에도 여전히 의문이 남는 부분이 많다. 지면의 한계도 있겠으나 아쉬운 면도 있다. 그러나 컨텍스트는 텍스트의 의미를 규정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내가 ‘안다’고 말할 수 없었던 것들에 대해 스스로 아주 조금 ‘안다’는 생각이 든다면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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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15-117
&nbsp;]]></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1357/69/cover150/8958285818_2.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8285818</link></image></item><item><author>인식의힘</author><category>청소년</category><title>몸에 대한 인문학적 사유 - [몸, 태곳적부터의 이모티콘]</title><link>http://blog.aladin.co.kr/cognize/5278663</link><pubDate>Wed, 14 Dec 2011 18:4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cognize/527866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8202254&TPaperId=5278663"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1401/71/coveroff/895820225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8202254&TPaperId=527866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몸, 태곳적부터의 이모티콘</a><br/>이유명호 외 지음 / 궁리 / 2011년 11월<br/></td></tr></table><br/>사춘기와 인문학
&nbsp;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o:p></o:p>
개별 생명체는 모두 아름답다. 눈부신 태양아래 태어난 생명은 그 자체로 경이로움이다. 이것은 창조론과 진화론이라는 관점의 차이를 넘어선 명제다. 물론 그 생명 탄생의 신비는 죽음과 소멸이라는 결과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더욱 빛난다. 생명 자체의 신비를 넘어 인간은 ‘의미’를 추구하는 사춘기를 겪는다. 통과의례나 단순한 성장의 한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사춘기는 ‘나’에 대한 의식이 생기면서 시작한다. 우리가 아닌 개별적 존재에 대한 인식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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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충만한 생명감과 성인의 단계를 도와줄 만한 사람도 공간도 책도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청소년은 모두 학생은 아니다. 학교에서는 ‘삶’을 가르치지 않는다. 학원에서는 말할 필요도 없다. 그래서 대안학교가 생기고 공동체들이 만들어지는지도 모르겠다. 대한민국의 모든 청소년의 목표가 이름난 대학 진학, 돈 잘 버는 학과 합격은 아니라고 믿는다. 어른들이 심어준 잘못된 믿음과 거짓 신화에 속았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꽤 많은 시간이 걸린다. 아니다, 그렇지 않다. 그것은 삶의 목표와 방식의 차이일 뿐 거짓이나 신화가 아니라 냉정한 현실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러한 삶이 행복을 가져다주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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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은 인간에 대해 고민한 역사의 결과물이다. 인류가 걸어온 길은 멀고도 험했지만 인간의 지혜는 고스란히 축적되었다. 그러나 실용적 지식에 목매는 우리에게 인문학은 먼지 묻은, 냄새나는, 고리타분한, 쓸모없는, 골치 아픈, 추상적인, 어려운 대상이라는 생각이 일반적이다. 더구나 공부할 시간도 없는 학생들에게 말해 무엇 하랴. 하지만 사춘기의 고민은 인문학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모든 고민의 흔적들이 녹아 있고 근본적인 답을 찾고 싶다면 인문학에 길을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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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인생을 시작하는 단계라면 말할 필요도 없겠다. 어떻게 살 것인가,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나는 어디서 태어나서 어디로 가는가,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등 마치 만병통치약을 선전하듯 어른들은 청소년들에게 인문학을 권하고 읽히고 고민하게 할 의무가 있다. 쉽고 단순한 답은 누구나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근본적이고 궁극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얻으려면 그만큼 깊고 넓게 고민하고 생각하고 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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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가장 인간적인 이모티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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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emotion)과 상징(icon)의 합성어로 만들어진 이모티콘은 음성언어와 문자언어의 경계를 허문다. 어색한 상황이나 할 말이 없을 때도 사용하고 자신의 감정을 숨기기 위해 이용하기도 하지만 이모티콘은 자신의 정서를 드러내는 도구로 사용된다. 하지만 대면 상황이라면 이모티콘이 필요 없다. 우리들 몸짓이 고스란히 이모티콘이 되기 때문이다. 기쁘고 슬프고 화나고 당황스럽고 어색한 모든 감정들이 몸으로 표현된다. 비언적적 표현이 때로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하지만 몸은 가장 인간적인 이모티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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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몸’을 주제로 길담서원에서 청소년인문학교실을 열고 강연과 질의응답 내용을 책으로 묶어낸 『몸, 태곳적부터의 이모티콘』을 펴냈다. 한의사 이유명호부터 철학자, 물리학자, 연극인 등 7명의 ‘몸’ 전문가의 이야기는 남성과 여성의 문제에서 시작하여 생명의 근본적 문제까지 인문학적 성찰을 시도한다. 청소년들의 눈높이에서 강사의 책을 미리 읽고 강연을 듣고 질문과 대답을 하는 과정에서 삶에 대한 자신감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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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일, 돈, 밥, 집 등 주제별로 인문학교실을 진행해온 길담서원의 두 번째 책은 서울 통인동 인왕산자락의 이야기다. 우리에게 진짜 공부는 무엇인가, 인생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생각하고 알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인문학은 청소년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에 대한 답을 고민할 시간이다. 장회익의 말대로 우리의 삶은 온생명 차원에서 40억 년간 지속되어 왔다. 릴레이 주자와 불과하지만 앞선 주자들의 삶을 이해하고 왜 달리고 있는지 알고 뛰어야 하지 않겠는가. 인문학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최소한 경쟁과 승리만을 위해 무한 질주하는 것이 우리들의 삶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의 화두는 던져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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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문제가 아닌데 인생에 무슨 정답이 있겠는가. 인문학은 거창하고 어려운 분야가 아니다. 알고 보면 우리가 매일 살아가면서 겪는 문제들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들이다. 좀 더 쉽게 그리고 가까운 곳에서 이런 모임과 책읽기와 강연들이 이어지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글을 쓰는 과정에서 자신만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인문학의 진정한 의미가 아닐까 싶다. 사색에 잠기기 좋은 깊은 겨울밤, ‘삶’에 대한 고민을 이 책으로 시작하는 것은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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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몸 철학이라는 것은 몸에 관해서 철학적으로 생각을 하는데, 그 핵심은 ‘행동이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생각과 행동은 대체 어떤 관계가 있는가’ 하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철학을 한다는 데 있습니다. - 조광제, 29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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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13-116]]></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1401/71/cover150/8958202254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8202254</link></image></item><item><author>인식의힘</author><category>청소년</category><title>이 시대의 우화 - [지금은 없는 이야기 - 최규석 우화]</title><link>http://blog.aladin.co.kr/cognize/5278657</link><pubDate>Wed, 14 Dec 2011 18:4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cognize/527865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8285869&TPaperId=5278657"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1389/65/coveroff/895828586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8285869&TPaperId=527865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지금은 없는 이야기 - 최규석 우화</a><br/>최규석 지음 / 사계절출판사 / 2011년 11월<br/></td></tr></table><br/>&nbsp;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o:p></o:p>
이 시대의 죽음 또는 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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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버스를 타러 가다가 
걷기가 귀찮아서 택시를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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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할 일이 많아
죽음은 쉽게
택시를 탄 이유를 찾았다
&nbsp; <o:p></o:p>
죽음은 일을 하다가 일보다
우선 한잔하기로 했다
&nbsp; <o:p></o:p>
생각해보기 전에 우선 한잔하고
한잔하다가 취하면
내일 생각해보기로 했다
&nbsp; <o:p></o:p>
내가 무슨 충신이라고
죽음은 쉽게
내일 생각해보기로 한 이유를 찾았다
&nbsp; <o:p></o:p>
술을 한잔하다가 죽음은
내일 생각해보기로 한 것도
귀찮아서
내일 생각해보기로 한 생각도
그만두기로 했다
&nbsp;
술이 약간 된 죽음은 
집에 와서 TV를 켜놓고
내일은 주말여행을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nbsp; <o:p></o:p>
건강이 제일이지 -
죽음은 자기 말에 긍정의 뜻으로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이고는
그래, 신문에도 그렇게 났었지
하고 중얼거렸다 
&nbsp; <o:p></o:p>
- 오규원
&nbsp; <o:p></o:p>
‘인격화한 동식물이나 기타 사물을 주인공으로 하여 그들의 행동 속에 풍자와 교훈의 뜻을 나타내는 이야기’가 우화(寓話)에 대한 사전적 정의이다. &lt;이솝 우화&gt;보다 오규원의 시가 먼저 떠오른 것은 우화에 대한 어떤 정의보다 분명하게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비유와 상징을 통해 대상을 비틀어 웃음을 주거나 깨달음과 감동을 주는 이야기를 우화라고 한다. 나그네의 옷을 벗기는 것은 강한 바람이 아니라 따뜻한 햇볕이다. 우화는 정교한 논리와 합리적인 대안으로 머리에 차가운 물을 들이 붓는 것이 아니라 가슴을 따뜻하게 만든다.
&nbsp; <o:p></o:p>
소설과 시나리오처럼 특별한 형식과 기교가 필요하지 않고 누구나 쉽게 만들거나 전할 수 있기 때문에 우화는 아주 오래된 문학의 한 양식이다. 짧고 간단하지만 큰 감동과 울림을 주는 이야기를 우리는 잊지 못하는 법이다. 머리를 움직이는 것도 어찌 보면 가슴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까. 가장 이성적인 동물인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상세한 설명과 논리적인 호소가 아니라 때로는 한토막 우화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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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른한 토요일 눈을 뜨고 최규석의 『지금은 없는 이야기』의 책장을 넘기다가 눈물을 흘릴 뻔하다. 사람마다 웃음의 코드가 조금씩 다르듯이 눈물이 많건 적건 슬픔이 아닌 ‘눈물샘’은 제각기 다른 뇌의 영역과 연결된 것은 아닌가 싶었다. 『100°C』와 『울기엔 좀 애매한』을 통해 최규석의 만화를 읽고 주목하고 있던 차에 새 책 『지금은 없는 이야기』를 읽고 그에게 감동했다. 하지만 책의 내용은 감상적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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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책도 없고 손에 잡히지도 않는 이야기를 듣고 나면 허무하다. 풍성하고 화려한 말의 잔치 속에는 뼈가 없다. 삶의 지혜를 전한다는 수많은 영적 지도자들의 책이나 명상가와 종교지도자들의 책도 마찬가지다. ‘긍정’의 힘만 강조하고 모두 네 탓이니 마음을 닦으라는 말도 그렇다. 듣고 나면, 읽고나면 자신의 모습이 한없이 부끄러워지거나 헛된 용기와 희망만 불어넣는 이야기와 최규석의 우화는 어떻게 다른지 읽어보면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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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화는 기본적으로 표면적인 이야기 뒤에 숨은 이야기를 읽어낼 수 있어야한다. 만약 이면의 이야기가 닿지 않는다면 어린 아이들에게 읽힐 만한 재미있는 만화책보다 못하겠지만. 김규항의 &lt;고래가 그랬어&gt;에 연재된 ‘코딱지만 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든 책이라고 하지만 나이와 무관하게 우리가 발 딛고 있는 현실은 물론 삶의 태도, 타인과의 관계까지 다시 한 번 생각할 기회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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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다수결, 법치주의, 경쟁, 차별, 자본, 꿈, 나눔…… 등이 두서없이 떠오른다. 최규석의 우화는 텍스트뿐만 아니라 적절한 만화 그림이 어우러져 읽고 보는 즐거움을 함께 느낄 수 있다. 순식간에 넘어가고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읽을 수 있는 책이지만 감동은 길고 여운은 오래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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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대로 우리는 너무 어려운 이야기, 두꺼운 책, 딱딱한 이론, 이해하기 힘든 논쟁, 쓸데없는 이념으로 각을 세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조금 더 쉽고 간단한 이야기가 더욱 큰 설득력을 얻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다. 최규석은 그림을 잘 그리는 기술자가 아니다. 그는 작가다.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낼 줄 알기 때문이다. 비판적으로 이해하고 창조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작가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잊을 수 없는 변화를 가져온다. 그것은 살이 빠지고 얼굴이 예뻐지는 변화가 아니라 삶의 태도가 달라지고 영혼이 성숙하는 변화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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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 가서 비닐에 포장된 이 책을 뜯어보지 말자. 책값을 아까워하는 사람은 영혼이 가난해진다. 아무리 값이 오르더라도 세상에서 가장 싼 물건은 책이다. 더 재밌는 만화 더 좋은 글 더 값진 책이 나올 수 있도록 작가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짧지만 긴 여운을 남겨 준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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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11-115
&nbsp;]]></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1389/65/cover150/8958285869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8285869</link></image></item><item><author>인식의힘</author><category>글쓰기</category><title>이야기와 시나리오 - [Story 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title><link>http://blog.aladin.co.kr/cognize/5268499</link><pubDate>Fri, 09 Dec 2011 23:1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cognize/526849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273550X&TPaperId=5268499"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37/27/coveroff/898273550x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273550X&TPaperId=526849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Story 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a><br/>로버트 맥키 지음, 고영범.이승민 옮김 / 민음인 / 2002년 08월<br/></td></tr></table><br/><!--StartFragment-->
영화 같은 삶을 꿈꾸는 사람들
&nbsp;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o:p></o:p>
중학교에 입학하고 사춘기가 찾아왔다. 방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고 사람들이 싫어지기 시작했다. 세상에서 들려오는 모든 소리는 소음에 불과했으며 하루하루의 일상들이 낯설어지던 시절이었다. 토요일 오후, 우연히 집 근처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lt;해바라기&gt;라는 영화를 보았다.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 소피아 로렌 주연의 &lt;해바라기(1969)&gt;는 이전에 보았던 영화들과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영화를 보는 내내 주체할 수 없는 감정들이 쏟아져나왔고 알 수 없는 흐느낌과 응어리진 뭉텅이가 요동치는 바람에 가슴 속 깊은 곳에서 견딜 수 없는 통증이 전해졌다. 그것은 영화에 대한 감동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불꺼진 극장에 혼자 앉아 있는 사춘기 소년이 감지했던 생의 고통 때문이었을까. 달리는 차장 밖으로 하늘과 맞닿아 지평선을 이루어 끝없이 펼쳐진 해바라기의 강렬함 때문이었을까. 그것이 무엇 때문이었든 소피아 로렌의 ‘슬픔’에만 감정이 이입되어버린 토요일 오후의 어느 날.
&nbsp; <o:p></o:p>
사람들은 영화 같은 삶을 꿈꾼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담아낼 수 있는 영화라는 매체는 2차원의 어두운 벽면에 4차원의 공간을 환상적 이미지로 가득 채운다. 과학기술 발달로 인해 가장 극적인 예술장르가 탄생했고 우리는 그 지극한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 영상 매체는 감각적으로 우리의 상상을 실현해 주고 그 상상이 때론 현실이 되기도 한다. 어두컴컴한 극장을 찾아 현실 밖으로 여행을 떠나는 관객들은 반드시 현실로 돌아와 안도하며 꿈과 현실 사이를 걸어간다. 
&nbsp; <o:p></o:p>
그렇다면 영화의 본질은 무엇일까. 영화는 기본적으로 이야기다. 영화의 바탕이 되는 시나리오는 소설과 마찬가지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다. 무엇이 우리를 영화로 이끄는지 궁금하다면 시나리오부터 살펴 볼 필요가 있다. 로버트 맥키의 의 『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는 우리에게 이 궁금증을 완벽하게 해소시켜 준다. 원제 ‘STORY’가 말해주듯이 시나리오는 영화를 만들기 위한 이야기를 말한다. 하지만 소설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달한다. 언어를 본질로 하는 소설과 달리 시나리오의 본질은 이미지다.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하는 시나리오는 어떻게 상상하게 할 것인가의 고민에서 시작하는 소설과 다른 방식의 글쓰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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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시나리오를 쓰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시나리오 작가와 시나리오 작가를 꿈꾸는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읽어야 할 책이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영화같은 삶을 꿈꾸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보여주려는 모든 것은 인간의 삶이다. 있는 그대로의 현실에 바탕을 둔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영화에 담겨 있다. 결국 시나리오는 인간의 삶과 꿈의 경계를 허물고 이야기의 기능을 극대화한다. 
&nbsp; <o:p></o:p>
어떤 사건이 일어나면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주인공의 삶의 균형을 깨뜨린다. 이로 인해 주인공의 마음속에는 깨진 삶의 균형을 회복하려는 의식적, 무의식적 욕망이 일어나고 주인공은 자신을 방해하는 모든 적대적인 힘들(내적, 개인적, 초개인적)에 맞서가면서 자신의 욕망의 대상을 추구해 나가게 된다. 주인공이 자신의 목적을 달성할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 이 과정을 간단히 일컬어 이야기라 한다. - 29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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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와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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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 쓰기의 기본을 &lt;말하지 말고 보여줘라&gt;는 말로 요약할 순 없지만 이 책은 시나리오에 관한 가장 핵심적인 이론과 실제를 정교하게 보여주고 있다. 피상적으로 인물의 대사를 통해 이야기를 이끌어간다는 통념에서 벗어나 영화라는 매체가 가진 특성을 깊이 고민하며 이 책을 읽어나간다면 시나리오를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 시나리오를 쓴다는 행위는 ‘보여주기’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뜻이다.
&nbsp; <o:p></o:p>
전체 4부 19장 600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책이지만 단숨에 읽어버릴 수 있을 만큼 매력적인 글 솜씨가 이 책의 명성을 증명한다. 책 전체를 일관되게 이끌어 가는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은 영화를 좀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 이야기의 구성요소와 이야기 구성의 원칙 그리고 작가의 실제 작업 과정을 다양한 실제 사례를 통해 보여주기 때문에 이론과 실제가 정확하게 이해된다. 
&nbsp; <o:p></o:p>
시나리오를 ‘쓴다’는 행위는 글을 쓰는 행위에 바탕을 둔다. 다만 언어의 힘과 기능보다 이야기의 구성과 이미지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는 특성이 일반적인 서사 문학과 다를 뿐이다. 120분을 기준으로 정교한 흐름과 구성이 각각의 등장인물과 사건과 배경을 어떻게 배치하느냐에 따라 관객을 울고 울릴 수 있다. 정밀하게 계산된 도발적 사건들이 어떤 장면을 만들어내고 그것이 전체 상영 시간 안에서 어떻게 배치되느냐의 문제는 관객의 몰입도와 영화의 완성도를 결정한다. 좋은 시나리오를 쓴다는 것은 기발한 아이디어와 기막힌 상상력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고유한 글쓰기의 체계를 익히는 일이다. 
&nbsp; <o:p></o:p>
이야기는 삶의 은유이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나 시나리오를 쓰고 싶은 사람은 물론이고 창조적 상상력과 장르에 맞는 글쓰기를 배우고 싶은 사람에게 그 풍부한 비유와 상징으로 다가간다. 매체의 특성을 고려한 시나리오는 인간의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에서 출발한다. 저자는 이야기가 가진 특징을 통해 시나리오를 어떻게 쓸 것인가를 보여주고 있지만 그것을 통해 우리는 글쓰기의 기본자세를 배울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영화를 보다 재미있고 다양하게 즐길 수 있는 방법도 익히게 된다. 고전으로 꼽히는 영화들과 인상 깊게 본 영화들의 특징을 시나리오의 힘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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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아릴 수 없이 많은 영화를 통해 수많은 이야기들이 전해지고 여전히 상상할 수 없이 많은 영화가 만들어지고 있지만 성공(?)하는 영화는 많지 않다. 바꿔 말하면 기막힌 시나리오를 쓰는 일이 그만큼 어렵다는 뜻이다. 이 책은 시나리오를 위한 책이지만 우리들 삶의 일부인 이야기에 관한 책으로 읽을 수도 있다. 좀 더 재미있고 좀 더 감동적인 이야기를 꿈꾸는 사람들이라면 피해갈 수 없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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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한 줄, 한 장 한 장, 한 시간 한 시간 날마다 글을 써라. 항상 이 책을 가까이에 둬라. 타고난 재능만큼이나 이 책의 원칙들이 자연스러워질 때까지 이 책에서 배운 것을 지침으로 삼아라. 겁이 나더라도 감행하라. 다른 무엇보다 상상력과 기술보다도 더 세상이 작가에게 요구하는 것은 용기다. 거부, 비웃음, 실패를 무릅쓸 수 있는 용기다. 의미 있고 아름답게 씌어진 이야기를 찾아 모험하면서 신중하게 탐구하되 대담하게 글을 써라. 그러면 저 우화의 주인공처럼 세상을 눈부시게 할 춤을 추게 될 것이다. - 59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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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09-114]]></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37/27/cover150/898273550x_2.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273550X</link></image></item><item><author>인식의힘</author><category>문학</category><title>환상과 현실 사이의 문학 - [픽션들]</title><link>http://blog.aladin.co.kr/cognize/5263544</link><pubDate>Wed, 07 Dec 2011 20:2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cognize/526354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2753&TPaperId=5263544"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1373/13/coveroff/893746275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2753&TPaperId=526354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픽션들</a><br/>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11년 10월<br/></td></tr></table><br/><!--StartFragment-->
첫 번째 원리는 ‘도서관’이 ‘태곳적’부터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에서 우리는 세계의 미래 역시 영원하리라는 것을 곧바로 추리할 수 있다. 합리적인 사고의 소유자라면 그 누구도 그것을 의심할 수는 없다. 불완전한 사서인 인간은 우연이나 개구쟁이 조물주의 작품일지도 모른다. - ‘바벨의 도서관’, 99쪽
&nbsp;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o:p></o:p>
읽고 싶은 책과 읽어야 할 책 사이에는 독서의 목적과 방법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다. 즐겁지 않은 책읽기는 고통이지만 자극과 도전이 필요한 책도 있다. 조금 어렵고 난해한 책의 경우 이해되지 않는다고 해서 손대지 않기 시작하면 자기계발서와 감성적인 에세이 그리고 재미있는 소설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소설도 그 층위가 다양하기 때문에 쉽게 이해되지 않고 문장이 만만치 않으며 사건과 갈등이 중심이 아닌 경우이다. 흔히 고전의 경우에 그런 소설을 만나기 쉽다. 
&nbsp; <o:p></o:p>
보르헤스의 『픽션들』이 이에 해당하는 소설이다. 열일곱편의 단편이 어느 하나 만만치 않다. 쉽고 재밌는 소설에 익숙한 독자라면 읽을 이유가 없고 그의 명성 때문에 읽는 것도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럴 때 좋은 방법 중 하나가 해설을 먼저 읽는 방법이다. 시나 소설의 경우 평론가의 해설이 더 난해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책을 옮긴 송병선의 해설은 스포일러가 없고 보르헤스 문학이 가진 장점과 소설의 의미 그리고 그가 추구하는 문학 세계를 알기 쉽게 정리해 놓았다. 
&nbsp; <o:p></o:p>
20세기의 명민한 사상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었고 기호학, 해체주의, 후기 구조주의, 포스트 모더니즘 등 다양한 현대 사상의 선구자라고 평가받는 이유를 이 한 권의 소설로 이해할 수는 없다. 하지만 70년 전에 남미 작가가 쓴 소설들이 어떤 내용인지 그리고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궁금한 독자라면 천천히 음미할 필요가 있는 책이다.
&nbsp; <o:p></o:p>
환상문학이라고 명명되는 보르헤스의 소설들은 일반적인 소설의 문법과 거리가 멀다. 현실에 존재하는 작가와 철학자가 등장하지만 허구의 인물과 책들이 교묘하게 뒤섞여 있다. 주목할 만한 사건은 보이지 않고 갈등은 찾아보기 힘들다. 풍부한 부사와 형용사의 사용으로 수식어를 꾸며주지만 피수식어의 의미는 오히려 모호하다. 표현과 문장을 알기 쉽게 풀어내지 못한 번역가의 고민을 해설에서 확인할 수 있었지만 독자의 입장에서는 만만치 않은 집중력과 기초적인 배경지식이 요구되는 소설이다. 
&nbsp; <o:p></o:p>
어떤 작품을 하나의 구조적 틀 안에서 이해하려는 방법은 이 소설에서 무의미해 보인다. 현실과 소설의 내용이 중첩되고 곳곳에 허구적 인물과 사건이 배치되어 있기 때문에 때때로 길을 잃고 헤매거나 걸어온 길을 잊기 쉽다. 소설에 등장하는 쇼펜하우어와 칸트 그리고 보르헤스의 동료 작가와 들어본 적도 없는 작품들은 소설을 읽는 동안 그 진위 여부를 의심해야 한다. 소설 자체가 허구라는 순진한 믿음을 넘어 작가는 ‘무한한 세계를 담은 절대적인 한 권의 책’을 꿈꾸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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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이라는 곳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아마 ‘도서관’과 닮았을 것이라는 말을 한 보르헤스는 주목할 만한 소설가가 아니라 현실과 초현실의 세계를 넘나드는 사상가로 보는 편이 적당할 듯 싶다. 그렇다면 보르헤스의 문학이 아니라 수단이 되는 셈이다. 세계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틀을 제공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고 볼 순 없지만 보르헤스는 인간의 상상력과 현실에서 불가능한 환상을 통해 세계 자체의 의미를 어떻게 보여줄 수 있는지 고민한 작가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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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작가와 영화감독 그리고 미국의 많은 작가들에게 수용되면서 다양한 논의가 이루어져 그의 문학은 세계 고전이 되었다. 그것은 새로움에 대한 혹은 낯선 세계에 대한 환호였을지도 모르고 현실에 숨어있는 환상에 대한 호응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어떤 위대한 문학도 현실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작가도 소설도 결국 인간의 삶과 사회를 떠나서 존재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에 현실적 잣대를 들이대자는 말이 아니라 70~80년대에 우리가 보르헤스를 받아들이기 어려운 ‘엘리트문학’으로 치부한 데는 그만한 이유도 숨어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자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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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을 보는 내적 기준에 따라 작품에 대한 평가는 달라질 수 있고 외적인 관점과 사회문화적 맥락에 따라서도 달라질 수 있다.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다르게 읽히는 소설은 읽는 사람에 따라서도 조금씩 다르게 해석된다. 문학에 절대반지는 없다. 보르헤스의 소설도 세간의 평가와 무관하게 읽는 사람 나름의 방식대로 읽어도 좋다. 그 의미와 감동은 각자의 몫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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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때 비오이 카사레스는 우크바르의 어느 이교도 지도자가 거울과 성교는 사람들의 수를 늘리기 때문에 혐오스러운 것이라고 말했던 것을 떠올렸다. - ‘틀뢴, 우크바르, 오르비스 테르티우스’,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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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07-113]]></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1373/13/cover150/8937462753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2753</link></image></item><item><author>인식의힘</author><category>철학</category><title>중국의 고대사와 춘추전국시대 그리고 제자백가 - [철학의 시대 - 춘추전국시대와 제자백가]</title><link>http://blog.aladin.co.kr/cognize/5258790</link><pubDate>Mon, 05 Dec 2011 21:3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cognize/525879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828580X&TPaperId=5258790"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1357/69/coveroff/895828580x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828580X&TPaperId=525879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철학의 시대 - 춘추전국시대와 제자백가</a><br/>강신주 지음 / 사계절출판사 / 2011년 11월<br/></td></tr></table><br/>지식의 조각들과 재구성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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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자가 대중화되기 전, 농경사회에서는 세월과 경험이 쌓일수록 지혜를 얻었다. 노인들은 존경의 대상이었고 그들의 노하우는 다음 세대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지식이었다. 인쇄술과 매체의 발달은 지식의 대중화 시대를 이끌었고 이제는 네트워크 세상이 되었다. 정보는 실시간으로 변화하고 지식은 매순간 새로워진다. 실용성이 없거나 효율적이지 못한 모든 것들은 죄악시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에 자본과 경쟁의 논리가 결합되면 금상첨화다. 그렇다면 21세기에 지식과 정보는 무엇을 말하며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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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 부재한 시대는 없었다. 다만 철학적 고민이 점차 사라지고 있을 뿐. 우연히 『철학, 삶을 만나다』를 읽으면서 탄탄한 문장과 사유의 깊이에 깊이 공감하며 강신주라는 이름을 기억했었다. 이후 어느 순간 가장 대중적인 작가가 되어버렸다. 『상처받지 않을 권리』를 보면서 그가 대중적인 철학자가 되었음을 많은 독자들이 확인했을 것이다. 이후 『철학적 시읽기의 즐거움』과 『철학이 필요한 시간』이 김용규, 김용석, 탁석산, 강유원 이후 가장 주목받는 철학자로 강신주의 이름을 새기게 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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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생각과 삶에 대한 성찰이 필요할 때 우리는 ‘철학자’가 쓴 책을 찾는다. ‘철학’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의미’가 필요한 것이다. 이제는 잡다한 교양과 지식의 조각들을 섭취하기 위해 책을 읽는 사람은 없다. 책보다 훨씬 빠르고 정확한 매체와 방법들이 터치하는 순간 눈앞에 펼쳐지기 때문이다. 우리에겐 지식과 정보를 선별하고 분석과 해석을 통해 재구성할 수 있는 종합적 사고력이 필요하다. 그것은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수단이기 때문이 아니라 산다는 것에 대한 오래된 질문 때문이다. 나는 왜 태어났으며 인간이란 어떤 존재이며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에 대한 질문이 필요한 사람이 철학자의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 그러나 이 말은 특정인에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에 해당한다. 즉, 철학적 삶은 먹고 사는 것 이전의 문제라는 뜻이다. 철학자의 책이 잘 팔린다는 것은 그만큼 세상이 살기 어려워졌다는 의미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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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백가의 귀환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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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주의 새 책 『철학의 시대』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성찰하고 삶의 의미를 고민하기 위한 책이다. ‘춘추전국시대와 제자백가’라는 어지러운 부제를 달고 있는 수천 년 전 중국의 고대역사를 뒤적이는 이 책이 현재적 삶의 유용성을 말하고 있다고 하는 말은 과언이 아니다. 역사와 철학을 공부하는 이유는 어찌 보면 매우 단순하다. 앞서 언급한대로 까마득한 옛날 상나라와 주나라의 이야기를 더듬어 춘추전국시대를 이야기하는 것은 당대의 사회와 사람들의 고민이 지금의 그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은 눈부시게 발전하고 삶의 질은 나날이 발전하지만 행복도 그러한가.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관계와 삶의 형태도 그만큼 발전했는가. 이 책은 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출발하자고 꼬득이는 ‘제자백가의 귀환’ 시리즈의 총론에 해당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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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탁한 ‘백가쟁명百家爭鳴’의 시대는 춘추전국시대를 특정하는 말이 아니다. 우리 근대사, 아니 최근 200여 년간의 인류의 역사를 돌아보면 춘추전국시대를 능가하지 않겠는가. 더 빨리 변하고 더 높이 오르기 위해 경쟁하고 더 멀리 날아가는 속도의 시대는 지금 현재 뿐만 아니라 미래에도 가속되지 않을까. 이 책은 파편처럼 조각조각 여기저기서 읽고 보고 들었던 이야기들을 정리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개별 독자의 배경지식과 앎의 범위에 따라 모든 책은 제각각 다른 소리를 내고 색다른 의미를 가지겠지만 ‘춘추전국시대’는 어떤 시대였으며 ‘제자백가’는 어떤 사람들인지 차근차근 알아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매우 소중한 시리즈가 될 것 같다. 물론 총론에 해당되는 이 책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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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고대사의 낯선 풍경들과 『주역』, 『춘추』, 『시경』 들여다보기 그리고 제자백가를 둘러싼 오해와 진실로 나뉘어 역사와 철학자의 짬짜면을 먹는 듯싶다. 전체 12권으로 구성되어 2권『관중과 공자』가 나와 있는 상태다. 총론으로 끝낼 것인가, 선별적으로 읽을 것인가, 전체를 살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이 책을 읽으면서 해도 늦지 않다. 대중적인 글쓰기의 힘과 동양중국 철학에 대한 깊이가 조화를 이루고 있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즐겁게 해 나갈 듯 몸을 푸는 강신주의 이야기가 기다려진다. 손은 이미 2권을 주문하기 위해 마우스를 잡으러 간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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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고대사 뿐만 아니라 인류의 역사를 보면 ‘야만의 역사’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난혼에서 모계사회를 거쳐 가부장제로 이행하는 과정 때문이 아니라 인간의 잔혹함과 형벌 제도 때문이다. 수잔 손택의 『타인의 고통』에도 언급된 바 있지만 인간을 주체가 아닌 객체로 보는 관점은 시대의 문제가 아니라 철학의 문제다. 기원전 수천 년 전이기 때문이 아니고 21세기이기 때문도 아니다. 전쟁과 평화, 지배와 피지배, 승자와 패자, 가진자와 없는자 ……. 이분법적 구도로 세상을 구별하려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존재자를 구성하는 유전자에 내포되어 있는 것 같은 야만성이 문득 궁금해진다. 아니, 최소한 공자와 맹자를 잘못 이해하거나 주나라가 민본정치를 펼쳤다는 잘못된 믿음과 지식은 버려야 하지 않겠는가. 공자가 아니라 관중부터 만나러 가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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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제국의 복잡했던 정치적 상황을 들여다보면서, 우리는 제자백가에 대한 당시 지성계의 이해가 얼마나 정치적 조건에 의해 좌지우지되었는지를 확인하게 된다. 당시 도가와 유가 사이의 선택의 문제는 단순히 철학적 경향을 정하는 문제를 넘어서 정치적 생명을 건 중차대한 문제였다고 할 수 있다. - 248쪽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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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05-112]]></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1357/69/cover150/895828580x_2.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828580X</link></image></item><item><author>인식의힘</author><category>역사</category><title>'작은 사람들'이 보여주는 새로운 전망 - [나치 시대의 일상사 - 개마고원신서 33]</title><link>http://blog.aladin.co.kr/cognize/5252357</link><pubDate>Fri, 02 Dec 2011 17:4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cognize/525235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5548026&TPaperId=5252357"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42/59/coveroff/898554802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5548026&TPaperId=525235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나치 시대의 일상사 - 개마고원신서 33</a><br/>데틀레프 포이케르트 지음, 김학이 옮김 / 개마고원 / 2003년 07월<br/></td></tr></table><br/>일상사는 무엇을 말해 줄 수 있는가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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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일상사는 무엇을 다루는가? 이 물음을 염두에 두고 포이케르트는 일상사는 새로운 영역이라기보다 “새로운 전망”이라고 말한다. 전망, Perspective, 원근법, 즉 새로운 방향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방향은 바로 “아래로부터의 역사(Geschichte von unten)”를 추구한다는 것에서 드러난다. - 400쪽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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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역사학계에서 논란이 일었던 교과서 문제는 많은 것은 시사한다. 정권의 부침에 따라 좌우되는 교육현실이야 하루 이틀도 아니니 자괴감을 가질 것도 없다. ‘민주주의’와 ‘자유민주주의’의 차이보다 일제 식민지에 대한 관점, 이승만에 대한 평가, 5.18 광주 민주화 운동에 대한 시선이 당황스럽다. 역사는 수레바퀴처럼 쉼 없이 굴러가고 인간의 삶과 더불어 그 평가의 잣대로 수시로 변하기 때문에 고정된 관점이나 실체적 진실을 기대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역사적 평가라는 것은 최소한의 합의를 말하는 것이 아닌가. 자명한 사실 확인과 그 사실의 원인과 결과에 대한 풍부한 논의가 가능해야 역사는 살아 숨을 쉬게 된다. 박제된 역사는 빛을 잃기 마련이고 권력을 가진자들의 해석과 관점은 언제나 자신들이 유리한 방향으로 흐르게 되어 있다. 변증법적 관점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시선으로 현재적 관점에서 역사를 바라보는 일은 지금 발 딛고 서 있는 현실을 제대로 보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자세이며 미래를 위한 이정표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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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자발적인 노력과 관심이 아니라면 거시적 안목으로 역사를 접근할 수밖에 없다. 왕조 중심, 정치와 권력 투쟁 중심의 역사로 우리가 파악할 수 있는 것들은 한계가 있다. 따라서 조금 다른 관점으로 역사를 바라보려는 노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미시적인 관점으로 시대를 통찰할 수 있다는 것은 모순처럼 들린다. 하지만 일상사는 특정 시대의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모습을 통해 보이지 않는 사실을 분명하게 드러내며 정치와 권력, 계급과 자본의 정점에서 바라보는 것과는 전혀 다른 시선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래서 일상사는 연대기식으로 서술되는 역사보다 살아 숨쉬는 시대의 단면을 보여주며 사람 냄새나는 역사로 읽힌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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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뮤직박스&gt;라는 영화가 아우슈비츠에 대한 관심의 출발이었을 것이다. 이후에 &lt;쉰들러리스트&gt;나 &lt;인생은 아름다워&gt;, &lt;파이니스트&gt; 같은 영화와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 같은 책을 통해 끊없이 재생산 되는 히틀러와 유대인 학살 문제를 들여다보지만 먼 나라의 역사에 대한 피상적인 해석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수백만 명을 학살한 인류의 트라우마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제노사이드(genocide)의 잔혹성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근대화 이후 인류의 수적 팽창과 과학 기술의 발달보다도 사회의 계층구조, 계급의 충돌, 감시와 처벌, 규율과 욕망 등 복합적인 원인으로 분석되어야 한다. 제2차 세계 대전의 주인공인 나치와 히틀러에게 표를 던지고 그를 추종한 사람들은 누구인가. 불만을 표시하고 저항한 사람들은 누구이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까.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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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이케르트의 『나치 시대의 일상사』는 이런 질문들에 답하고 있는 책이다. 대량 학살의 과정과 심리 분석, 유대인의 입장에서 바라본 아우슈비치의 참상, 집단적 광기에 대한 분석과 해석 등 지금까지 수없이 다루어졌던 방식과 조금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는 책이다. 1982년의 저작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과거의 특정 시대와 사건에 대한 해석을 주제로 다루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관점을 제공해 줄 수 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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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의 해설에서 인용한(400쪽) 말은 포이케르트의 『나치 시대의 일상사』가 가진 가장 큰 의미이다. 새로운 영역이 아닌 ‘새로운 전망’을 읽어 냈다면 이 책은 충분한 가치가 있으며 또한 ‘아래로부터의 역사’라는 관점에서 ‘작은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면 카프카의 말대로 이 책은 우리에게 도끼 같은 혹은 찬물 같은 역할을 해 줄 것이다. 한 사회의 피라미드 구조에서 하위 50%를 작은 사람들이라고 하지 않는다. 노동조합 안에서도 노조위원장이나 노조 간부들은 큰 사람들에 해당한다. 계급과 계층을 막론하고 ‘작은 사람들’에 주목하며 이 책을 읽는다면 과거의 역사뿐만 아니라 현실의 모습이 조금 다른 관점에서 보일 것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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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 언제까지 ‘빨갱이’라는 전가의 보도를 휘둘러 맘에 들지 않는 사람들을 매장시킬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존재할지 모르지만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는 지나간 일들에 대한 호기심이나 사실 확인의 문제가 아니다. ‘아래’에 해당하는 ‘작은’ 사람들의 생각과 태도, 행동과 실천이 얼마나 중요하게 작용하는지 모른다. 중요한 정도가 아니라 역사는 오롯이 그들의 몫일지도 모른다. 이 책의 저자인 포이케르트는 노동자와 청소년의 일상에 주목한다. 비상사태에 처한 ‘일상’은 어떻게 다른 것이며 민족공동체를 내세운 총통과 나치의 주장이 노동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특히 ‘청소년’들은 어떻게 받아들였는지에 관한 세밀한 분석이 압권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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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경찰인 게슈타포의 내부 보고서에서부터 저항 세력의 문건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인 인용과 사례를 통해 독자들은 실제 그 시대를 살아냈던 ‘작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달 받을 수 있다. 나치 시대를 바라보는 수많은 관점과 이야기들, 다양한 영화들, 소설들이 널려 있다. 그 모든 것들이 지적 호기심이나 타인의 불행에 안도하는 태도로서의 접근이 아니라 우리들의 현실에 적용될 수 있는 지점을 찾아내는 일이 중요하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21세기 대한민국의 일상사는 나치 시대의 그것과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대를 역사는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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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언제나 우리와 무관한 권력자, 가진자, 승리한 자의 기록일 수는 없다. 우리처럼 ‘작은 사람들’이 하루하루 숨 쉬고 살아가는 방식 그리고 현실에 대한 생각과 태도가 우리의 역사를 만든다. 토인비의 말대로 과거에서 무언가 조금 배울 것이 있다고 믿는 사람이라면 천천히 나치 시대의 일상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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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역사 이해를 위해서는 사회와 정치구조를 겨냥하여 일반화하는 접근 방법과 일상의 모순을 담고 있는 경험을 겨냥하여 개별화하는 접근 방법 모두를 포기할 수 없다. - 93쪽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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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02-111]]></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42/59/cover150/8985548026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5548026</link></image></item><item><author>인식의힘</author><category>문학</category><title>소설의 재미와 감동 사이에는 무엇이 있을까 - [7년의 밤]</title><link>http://blog.aladin.co.kr/cognize/5245608</link><pubDate>Tue, 29 Nov 2011 21:5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cognize/524560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6604991&TPaperId=5245608"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988/67/coveroff/8956604991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6604991&TPaperId=524560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7년의 밤</a><br/>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1년 03월<br/></td></tr></table><br/><br />
소설의 의미와 역할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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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론적이고 이론적인 소설에 대해서는 연구자들의 몫으로 남겨둘 필요가 있다. 일반 독자의 입장에서 소설은 ‘재미’가 우선이다.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끌고 가는 서사의 힘은 소설의 가장 큰 미덕이며 의미이다. 재미없는 소설도 있긴 하다. 근대 이후 앙드레 부르통에 의해 ‘초현실주의 선언’이 발표되면서 전통적 가치에 도전하고 굳은 틀에 도전하는 새로운 시도가 문학에 활기를 불어넣었으며 보다 다양한 방식으로 인간의 삶에 접근하기 시작했다. 급변하는 사회와 역사적 발전 과정은 항상 새로운 형식과 기발한 상상력을 갈망했으며 그것은 모든 예술에도 통용되는 요구였다. 하지만 여전히 소설은 가장 대중적이고 쉽고 재미있는 갈래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br />
<br />
소설가들은 항상 낯선 이야기, 새로운 형식을 갈망하며 독자들 또한 미지의 세계를 갈망한다. 익숙한 세계에 대한 재발견과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욕망은 상상력으로 채워지고 작가는 독자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유혹한다. 인간의 내면적 갈등, 타인과의 관계, 세계와의 충돌은 시대의 변화와 함께 끊임없이 새로운 문제를 제기한다. 작가는 이에 대한 새로운 질문과 고민의 흔적을 토해내며 독자들과 함께 해결의 실마리를 성찰하게 된다. 결국 이야기는 끝없이 진화하고 발전해야 하는 숙명을 안고 있다. 인간 자체에 대한 탐구가 선행된다면 이 모든 이야기들의 문법은 다양한 형태로 변주되고 새로움은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를 넘어서야 하는 숙제를 안게 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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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벌어지는 문제 상황과 반복되는 갈등의 양상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는 역할이 소설의 몫은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작가에게 정답을 요구할 수는 없어도 인간의 삶에 대한 진실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은 요구할 수 있다. 그러므로 소설은 우리들의 이야기, 나를 둘러싼 세계에 대한 진실이라고 말할 수 있다. 왜 태어나서 어떻게 살 것이며 인생은 무엇이고 세상은 어떤 곳인가에 대한 요구가 없다면 소설은 의미도 없을뿐더러 제 역할을 다하고 있다고 볼 수도 없다. <br />
<br />
그런 면에서 정유정의 『7년의 밤』은 다양한 의미로 읽을 수 있다. 소설에게 혹은 작가에게 무엇을 기대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겠지만 『7년의 밤』은 우선 강력한 서사의 힘을 지니고 있다. 추리소설처럼 흥미진진하게 사건의 해결과 반전 혹은 결말을 끝까지 파헤치게 만드는 힘있는 소설이라 측면에서 높은 점수를 받을 만한 소설이다. 전직 야구선수 출신 사형수 최현수를 중심으로 등장인물들의 갈등과 사건의 연결고리가 치밀하게 구성되어 있으며 사건이 벌어진 후 7년이라는 시간이 지나서야 ‘사실’ 아닌 ‘진실’이 드러나고 사건이 해결되는 과정은 독자들에게 읽는 재미를 충분하게 선사한다. 게다가 사형수의 아들과 그를 돕는 조력자이자 내부 이야기의 서술자인 승환의 관계, 치과 의사 오영제와 그의 아내와 딸의 관계는 세령호를 중심으로 다양하고 복잡한 갈등의 층위를 만들어내고 있다. 500페이지가 넘는 두툼한 장편소설의 흡인력은 이 소설의 가장 큰 미덕이기도 하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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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의 힘과 남은 고민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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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는 천둥이 치기 전에 뇌에 자극을 느낀다고 한다. 인간의 변연계에도 비슷한 감관이 하나 있다. 재앙의 전조를 감지하면 작동되는 '불안'이라는 이름의 시계. - 정유정, 7년의밤, 18쪽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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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가장 고전적 숙제인 ‘사실’과 ‘진실’ 사이에는 무엇이 존재하느냐에 대한 질문이 작가의 말의 제목이 되었다. 그것은 이 작품이 소설의 문법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최현수가 오영제의 딸을 사망에 이르게 한 사실로부터 출발하는 이 소설은 그 과정과 이후의 사건들을 정밀하게 추적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마치 드라마나 영화를 보는 것처럼 하나의 사건이 앞 선 사건의 결과가 되고 뒤이은 사건의 원인이 되는 구성 때문에 독자의 손에서 책을 내려놓지 못하게 한다. 소설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바로 서사의 힘이라는 사실을 웅변하는 듯하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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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면상으로는 최현수의 이 소설의 중심이지만 그의 아들 서원과 오영제가 그리고 소설가 승환이 이야기의 중심축이다. 서원과 동갑내기 오영제의 딸 세령이나 그의 아내 문하영, 최현수의 아내 강은주는 이야기의 주변에 머물러 있다. 최현수와 안승환 그리고 최서원의 캐릭터는 분명하고 설득력있게 그들의 행동과 사건에 개연성을 부여한다. 하지만 문제는 오영제다. 독특한 유형으로 이 소설의 재미를 불어넣는 인물 오영제의 성격과 행동에 설득력 있는 에피소드와 타당한 연결고리가 부족하다. 소설을 읽는 동안 ‘왜’라는 질문을 여러 차례 하게 되는 것은 개별 독자의 이해력 부족 때문인지도 모르겠으나 이 소설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으로 남는다. 아내와 딸에 대한 집착과 폭력을 묘사하는 부분이나 이후의 행동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만한 개연성이 부족하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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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작은 아쉬움들을 상쇄할 만한 ‘재미’와 ‘흡인력’만으로도 이 소설은 작가의 오랜 준비와 치밀한 구성, 풍부한 상상력을 빛나게 한다. 스킨스쿠버, 댐의 운영방식, 수사과정 등 전문지식이 필요한 부분에 대한 상세한 묘사는 소설에 현실감을 더해주는 역할을 한다. 머지않아 영화로 만들어질 것이라는 추측을 충분히 하고도 남을 만하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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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가진 ‘불안’과 ‘공포’ 그리고 내면적인 ‘충동’과 ‘욕망’에 대한 깊은 성찰은 정유정이라는 작가를 주목하게 하는 또 하나의 힘이다. 천명관의 『고래』 이후에 서사의 힘을 유감없이 느끼게 해 준 소설이지만 소설은 드라마의 대본이나 시나리오와 다른 문체과 스타일의 재미까지 갖추어야 한다. 문장과 표현이 빚어내는 분위기 언어가 갖는 보이지 않는 울림까지 보여줄 수 있다면 아낌없는 박수를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개별 독자의 취향이겠으나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는 이야기를 그의 스타일대로 만들어내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도 또 하나의 즐거움일 수 있겠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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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그런 얘기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인간은 총을 가지면 누군가를 쏘게 되어 있으며, 그것이 바로 인간의 천성이라고. - 정유정, 7년의 밤, 474쪽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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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29-110]]></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988/67/cover150/8956604991_2.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6604991</link></image></item><item><author>인식의힘</author><category>문화</category><title>역사와 건축 그리고 인문학 - [건축과 도시의 인문학]</title><link>http://blog.aladin.co.kr/cognize/5240773</link><pubDate>Sun, 27 Nov 2011 21:3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cognize/524077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1994487&TPaperId=5240773"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1373/74/coveroff/897199448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1994487&TPaperId=524077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건축과 도시의 인문학</a><br/>김석철 지음 / 돌베개 / 2011년 10월<br/></td></tr></table><br/>비움과 채움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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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이 달라지기 시작한 ‘집’이 거주의 목적을 넘어서는 데서 시작되지 않았을까. 르 코르뷔지에나 안도 다다오는 사적인 생활 영역인 ‘집’에서부터 그들의 건축이 시작되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간의 기본적인 생활 조건이며 거주의 목적으로 지어진 ‘집’에서 출발한 건축은 다양한 목적으로 고유의 기능과 아름다움을 담아내기 시작했다. 과학과 기술의 발달은 인간의 상상력을 실현가능한 현실로 바꾸었으며 건축도 예외가 아니다. 유리로 된 반짝이는 건물은 물론이고 둥글고 세모난 모양도 가능하다. 다양한 건축재와 시공법의 발달로 우리 눈앞에 펼쳐지는 건물들은 점점 더 크고 화려해지고 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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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다른 예술과 마찬가지로 건축은 실용적 유용성과 미적 기능이 충돌한다. 순수 음악이나 그림, 조각의 경우는 극단적이고 추상적인 데까지 나아갈 수 있으나 건축은 ‘기능’ 측면에서 다른 예술과 구별된다. 비움으로써 가득 차는 공간을 창출하는 것이 바로 건축의 궁극적인 목적은 아닐까. <br />
<br />
그릇과 마찬가지로 실용적 측면만 살펴보자면 우리는 비어있는 공간만을 사용할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건축에 관해서는 세 가지 관점이 필요하다. 첫째는 말할 것도 없이 기능이다. 얼마나 적절하게 공간을 분할하고 동선을 고려하고 있으며 실용적인가. 둘째는 예술성이다. 유사한 기능과 효용을 갖추고도 심미적인 측면에서 손색이 없어야 한다. 마지막은 주변 상황과의 어울림이다. 도시 한복판의 좁은 공간 빌딩과 빌딩 사이의 공간인지 아니면 자연과 어우러진 곳에 지어질 것인지에 따라 목적과 기능이 달라진다. 그밖에 건축재와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수많은 고려 사항이 더해진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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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결국 건축의 중심에는 ‘사람’이 놓여야 한다. 자산 가치나 기능적 측면만 고려한 건축은 끔찍한 재앙이다. 대한민국만의 특이하고 기형적인 주거문화인 ‘아파트’를 생각해 보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양한 분석과 해석이 나와 있으니 더 이상 언급할 필요도 없다. 다만 시대와 공간을 뛰어넘는 위대한 건축에는 인간 중심의 사고가 선행해야 한다고 믿는다. 근대 이전의 역사적 건축물들이 신과 왕을 위한 것이었다면 이제는 인간을 그 중심에 놓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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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과 건축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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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건축에도 인문학이 필요하다. 건축이 예술로 인정받는 이유는 인간의 꿈과 철학, 미적 본능과 창조적 상상력이 담겨 있기 때문이 아닌가. 어떤 분야라도 마찬가지겠지만 모든 건축의 바탕에는 인간의 삶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담아내야 한다. 건축가는 인문학에 대한 기본적인 소양을 갖추어야 한다. 인간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며 그들의 철학과 삶을 이해해야 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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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철의 『건축과 도시의 인문학』은 한 눈에 독자를 사로잡는다. 인간과 인문학을 이해하고 있는 건축가의 이야기라니 얼마나 매력적인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건축가이며 석학 인문 강좌의 강의 내용을 엮은 책이라서 알기 쉽게 건축과 인문학의 관계와 자신의 건축에 담긴 인문 정신을 잘 담아냈으리라고 기대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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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기대가 너무 컸던 것일까. 김석철이 건축과 도시 계획에 대한 이력을 반복 설명하고 있는 부분이나 그가 담아내려고 했던 각 개별 도시에 대한 기본적인 방향과 목적은 인문학과 구체적인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는 듯했다. 건축가가 설계할 도시에 대한 인문학적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점과 ‘도시’를 설계하는 거시적인 안목을 제시하고 있는 부분은 충분히 공감 할 만하지만 도시가 인간 삶의 중심이 되어야 하는 이유와 지역과 목적에 따른 규모와 적정성에 대한 철학적 깊이에 대해서는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된다. 예를 들어,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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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미디 운하같이 마을과 마을을 연결하는 수로가 없어서 도시는 현대화를 쉽게 이루었지만 농촌은 무너진 것입니다. 농촌이 살아 있지 않은 나라는 부강한 나라가 아닙니다. 이탈리아는 물론 일본, 프랑스, 영국 등 부강한 나라들은 모두 농촌이 강합니다. 우리나라는 농촌을 구제해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농촌을 살리는 일이 4대강 사업이 되어야 합니다. - 73쪽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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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맥을 보면 운하가 없어서 농촌이 없다는 주장이며 농촌을 살리기 일이 4대강 사업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운하 중심의 4대강 사업이 농촌을 살릴 수 있다는 논리로 귀결된다. 그러나 책의 뒷부분에서 4대강 전체를 하나의 뱃길로 오르내릴 수 있는 운하를 만드는 것에는 반대한다는 내용이 나온다. 4대강 사업이 운하 중심인가 아닌가, 4대강 사업이 농촌을 살리는 일에 얼만큼 영향을 미치는가, 농촌과 운하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에 대한 정치한 논의는 구체적으로 제시되어 있지 못해 아쉽다. <br />
<br />
이 책의 전체 구성은 고대, 중세, 르네상스와 산업혁명, 지식산업사회, 한반도 등 크게 다섯 번의 강의 내용을 순서대로 엮고 있다. 예술사에서 확인할 수 있는 기초적인 지식과 건축가의 경험이 함께 어우러져 알기 쉽게 설명된 내용이 대부분이지만 체계적이고 논리적인 흐름이 없어 아쉽고 건축과 인문학에 대한 건축가의 확고한 철학이나 일관된 사유의 깊이가 느껴지지 않아 아쉬움이 많다. 지속가능한 발전과 친환경이라는 거스를 수 없는 패러다임이 필요한 이유와 인간의 삶과 건축이 맺고 있는 필연성에 대한 폭넓은 성찰을 담고 있는 책이 읽고 싶어졌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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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27-109 <br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1373/74/cover150/8971994487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1994487</link></image></item><item><author>인식의힘</author><category>문학</category><title>당신의 텍스트는 나의 텍스트 - [내 생의 중력]</title><link>http://blog.aladin.co.kr/cognize/5237304</link><pubDate>Fri, 25 Nov 2011 20:5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cognize/523730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22402&TPaperId=5237304"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1356/59/coveroff/8932022402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22402&TPaperId=523730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내 생의 중력</a><br/>홍정선.강계숙 엮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10월<br/></td></tr></table><br/>벌써(?) 또 다시 100권이 쌓였다. 문학과지성사 시인선은 1978년 황동규의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로 출발했다. 1990년 100권 째 기념으로 나온 『길이 끝난 곳에서 길은 다시 시작되고』를 감격스럽게 읽었던 기억이 새로운데 벌써 1997년에 200권 『시야 너 아니냐』에 이어 2005년에 300권 『쨍한 사랑 노래』 그리고 2011년 400권 『내 생의 중력』을 읽었다. 다른 어떤 느낌보다도 켜켜이 세월이 쌓이고 생은 저물어 가고 또 다른 생명이 피어나고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것이라는 어렴풋한 감흥. 신비롭고 기묘한 생의 감각. <br />
<br />
시인과 비평가가 걸러낸 시인들의 시를 읽으면서 지난 6년간의 시간이 그 이전 100권의 단위처럼 엮였다. 불연속적인 시간을 분절적으로 사용하고 돌아보고 성찰하는 인간의 습성. <br />
<br />
광휘의 속삭임 <br />
<br />
저녁 어스름 때 <br />
하루가 끝나가는 저 <br />
시간의 움직임의 <br />
광휘, <br />
없는 게 없어서 <br />
쓸씀함도 씨앗들도 <br />
따로따로 한 우주인, <br />
(광휘 중의 광휘인) <br />
그 움직임에 <br />
시가 끼어들 수 있을까. <br />
<br />
아픈 사람의 외로움을 <br />
남몰래 이쪽 눈물로 적실 때 <br />
그 스며드는 것이 혹시 시일까. <br />
(외로움과 눈물의 광휘여) <br />
<br />
그동안의 발자국들의 그림자가 <br />
고스란히 스며 있는 이 땅속 <br />
거기 어디 시는 가슴을 묻을 수 있을까. <br />
(그림자와 가슴의 광휘!) <br />
<br />
그동안의 숨결들 <br />
고스란히 퍼지고 바람 부는 하늘가 <br />
거기 어디서 시는 숨 쉴 수 있을까. <br />
(숨결과 바람의 광휘여) <br />
- 정현종, 『광휘의 속삭임』(352)에서 <br />
<br />
대가의 숨결과 노련한 솜씨가 자연과 인간과 시간의 비밀을 벗겨 내기도 하고 보이지 않는 것들을 들춰내기도 한다. 내 안의 숨은 그림자와 타인과의 관계를 끝없는 기다림으로 표현하기도 하면서. <br />
<br />
기다린다는 것에 대하여 <br />
<br />
먼 바다로 나가 하루 종일 <br />
고래를 기다려본 사람은 안다 <br />
사람의 사랑이 한 마리 고래라는 것을 <br />
망망대해에서 검은 일 획 그으며 <br />
반짝 나타났다 빠르게 사라지는 고래는 <br />
첫사랑처럼 환호하며 찾아왔다 <br />
이뤄지지 못할 사랑처럼 아프게 사라진다 <br />
생의 엔진을 모두 끄고 <br />
흔들리는 파도 따라 함께 흔들리며 <br />
뜨거운 햇살 뜨거운 바다 위에서 <br />
떠나간 고래를 다시 기다리는 일은 <br />
그 긴 골목길 마지막 외등 <br />
한 발자국 물러난 캄캄한 어둠 속에 서서 <br />
너를 기다렸던 일 <br />
그때 나는 얼마나 너를 열망했던가 <br />
온몸이 귀가 되어 너의 구둣발 소리 기다렸듯 <br />
팽팽한 수평선 걸어 내게로 돌아올 <br />
그 소리 다시 기다리는 일인지 모른다 <br />
오늘도 고래는 돌아오지 않았다 <br />
바다에서부터 푸른 어둠이 내리고 <br />
떠나온 점등인의 별로 돌아가며 <br />
이제 떠나간 것은 기다리지 않기로 한다 <br />
지금 고래가 배의 꼬리를 따라올지라도 <br />
네가 울며 내 이름 부르며 따라올지라도 <br />
다시는 뒤돌아보지 않겠다 <br />
사람의 서러운 사랑 바다로 가 <br />
한 마리 고래가 되었기에 <br />
고래는 기다리는 사랑 아니라 <br />
놓아주어야 하는 바다의 사랑이기에 <br />
- 정일근, 『기다린다는 것에 대하여』(358)에서 <br />
<br />
무언가 기다릴 것이 있다는 것은 아직 삶의 희망이 있다는 뜻이다. 기다린다는 것은 조금씩, 꼭 그만큼씩 사라져 가는 어제와 오늘이 아니라 멀어진 거리만큼 다가오고야마는 미래의 시간들이다. 그것은 알 수 없는 비밀이 아니라 알고 싶지 않는 생의 이면일 수도. <br />
<br />
알 수 없어요 <br />
<br />
내가 멍하니 있으면 <br />
누군가 묻는다 <br />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느냐고 <br />
<br />
내가 생각에 빠져 있으면 <br />
누군가 묻는다 <br />
왜 그리 멍하니 있느냐고 <br />
<br />
거미줄처럼 얽힌 복도를 헤매다 보니 <br />
바다, <br />
바닷가를 헤매다 보니 <br />
내 좁은 방. <br />
- 황인숙, 『리스본行 야간열차』(341)에서 <br />
<br />
의미와 무의미, 희망과 절망, 삶과 죽음, 사랑과 이별, 기쁨과 슬픔, 물과 불, 산과 강. 언어의 반대편 혹은 모순을 들여다보라.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검은 구멍을 들여다보라. 거기에 시가 찾는 진실이 숨어 있다. 아니, 인간의 눈과 귀와 입을 막아버리는 검은 그림자가. <br />
<br />
모순 1 <br />
<br />
삶의 갈래 <br />
그 갈래 속의 수렁 <br />
무수하다 <br />
<br />
손과 발은 열 길을 달려가고 <br />
정수리로 치솟은 검은 덤불은 <br />
수만 길로 뻗는다 <br />
끝까지 갔다가 돌아 나오지 못한 진창에서는 <br />
바글바글 애벌레가 기어오른다 <br />
<br />
봄꽃들 탈골한 길로 <br />
단풍 길 쏟아진다 <br />
<br />
손가락마다 지문을 새겨 살아도 <br />
내 몫이 아닌 흙이여 <br />
- 조 은, 『생의 빛살』(374)에서 <br />
<br />
목소리 높여 옳고 그름을 외치고 적당한 거리와 시선이 만들어낸 착각을 믿으며 달콤한 합리화로 밀어붙이는 힘! 파리는 늘 제자리에서 맴돌고 있다. 죽을 놈과 살 놈을 구별하지도 못한 채. <br />
<br />
파리 <br />
<br />
꿈은 늘 제자리에서 맴돈다 <br />
적당한 거리와 시선이 만들어낸 착각에 <br />
세상은 떠 있다 <br />
밥상머리에 달라붙은 파리들은 <br />
한시도 가만 있지 않는다 <br />
자유로운 어둠을 뚫고 생겨난 생은 얼마나 매혹적인가 <br />
파리채를 들고 가까이 가자 <br />
죽을 놈과 살 놈이 구별되지 않았다 <br />
- 조인선, 『노래』(378)에서 <br />
<br />
그리하여 머나먼 지구별로의 여행자들은 ‘당신’에게 고백한다. ‘사랑하는 당신께’. ‘당신의 텍스트는 나의 텍스트’라고, ‘나의 텍스트는 당신의 텍스트’라고. 내가 당신의 텍스트가 아니라 당신이 나의 텍스트가 아니라 이렇게 네모난 시 안에서 당신과 나와 텍스트가 뒤섞이듯이 혼란스럽게 컨텍스트를 외면한 채 끝없이 나와 당신과 텍스트가 꼬리를 물고 텍스트는 텍스트라고. <br />
<br />
당신의 텍스트 1 <br />
- 사랑하는 당신께 <br />
<br />
당신의 텍스트는 나의 텍스트 <br />
나의 텍스트는 당신의 텍스트 <br />
당신의 텍스트는 텍스트의 나 <br />
나의 당신의 텍스트는 텍스트 <br />
나의 텍스트는 텍스트의 당신 <br />
텍스트의 당신은 텍스트의 나 <br />
당신의 나는 텍스트의 텍스트 <br />
텍스트의 나는 텍스트의 당신 <br />
당신의 나의 텍스트는 텍스트 <br />
나의 당신은 텍스트의 텍스트 <br />
- 성기완, 『당신의 텍스트』(349)에서 <br />
<br />
<br />
20111125-108 <br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1356/59/cover150/8932022402_2.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22402</link></image></item><item><author>인식의힘</author><category>문학</category><title>歡迎 혹은 幻影  - [환영]</title><link>http://blog.aladin.co.kr/cognize/5237301</link><pubDate>Fri, 25 Nov 2011 20:5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cognize/523730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7075666&TPaperId=5237301"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1194/16/coveroff/895707566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7075666&TPaperId=523730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환영</a><br/>김이설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06월<br/></td></tr></table><br/><br />
책의 표지와 제목은 독자에게 많은 말을 건넨다. 이미 알고 있는 작가가 아닌 경우 표지 디자인과 제목, 편집과 분량은 책을 선택하는데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한다. 책의 목적과 방향을 적절하게 드러내거나 내용을 적절하게 압축한 제목은 책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는 속담은 진리는 아니겠지만 여러 가지 상황에 적용될 수 있다. <br />
<br />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들』로 깊은 인상을 남긴 김이설의 장편소설 『환영』의 표지를 본 순간 소설의 제목과 내용과 표지를 한동안 음미했다. 과연 무슨 이야기를 풀어낼 것인가. ‘오는 사람을 기쁜 마음으로 반갑게 맞는다는 의미의 환영(歡迎)인가 아니면 신기루 같은 환영(幻影)을 의미하는 걸까.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은 200페이지가 안 되는 분량의 하드커버의 포장이다. 개인적인 취향이겠으나 허다한 일본 소설류에 손이 가지 않는 이유이기도 한 그릇에 담겨 있어 마땅찮다. <br />
<br />
소설이라는 갈래 자체가 인간의 삶에 대한 비루한 일상을 바탕으로 한다고 전제하면 얼마나 재미있고 즐길 수 있는 대상인가. 보여주고 싶지 않은 남루함, 드러내고 싶지 않은 슬픔, 포기하고 싶지 않은 희망, 끝이 보이지 않는 절망들이 길게 나열되는 소설을 대할 때마다 독자들은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아주 오래된, 국어시간에 한번쯤 들어보았을 감정이입이나 카타르시스는 문학의 즐거움이기도 하다. 어떤 형태로든 소설은 그 한없이 재생산되는 이야기의 이야기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의 삶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무한 반복되는 것처럼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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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설의 소설이 또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지 알 수 없고, 또 어떤 이야기들을 더 담아낼지 모르겠으나 칙릿(Chick Lit)과 거리가 먼 진정성을 담아내고 있어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작가가 나름의 독특한 문체와 개성을 갖춰 나간다는 것은 자신만의 나름의 영역을 구축한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김이설의 개성 혹은 색깔은 어떤 것일까. <br />
<br />
서른셋의 서윤영은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는 남편과 고시원에서 만나 아이를 갖고 옥탑방에서 함께 살기로 한다. 시험 준비를 해야 하는 남편을 위해 도시의 경계를 넘어 물가의 백숙집에서 일을 하게 된다. 병으로 돌아가실 때까지 무능했던 아버지와 가난한 어머니 동생 민영과 준영 모두 윤영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고 기대는 존재들이다. 마치 불행 종합선물세트를 완벽하게 갖춘 것 같은 주인공은 ‘여성’이다. 딸이고 언니이며 누나이고 아내이고 며느리이며 엄마인 윤영이 위태롭게 눈에 보이지 않는 경계를 넘을 때마다 삶은 신산스럽게 부서진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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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사장과 아들 태민 그리고 함께 일하는 이모님과 언니를 둘러싼 일상은 결코 만만치 않다. 독자들 입장에서 삶을 왜 고해(苦海)라고 하는지 깨달을 수 있다면 간접 경험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는 특별한 소설이 될 수 있겠다. 공감의 끄덕임, 동정의 눈물, 안도의 한숨 – 그것이 무엇이든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불편하고 투명한 바닥을 들여다 보았으면 좋겠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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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누구나 알 수 없는 생의 비밀을 궁금해 한다. 누가 말해 줄 수 있는지 모르지만 교회와 절로 때로는 무당을 찾아 답답함을 풀어보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미래를 알고 싶은 욕망과 조금 다른 종류의 것이다. 생을 대하는 태도와 열정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불가해함. 그 비밀의 문을 열고 싶은 욕망을 이겨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소설을 쓰는 것은 아닐까. 삶에 지쳐 문득, 지는 저녁 해를 바라보거나 빗방울이 후드득 소리를 내는 순간 창밖을 내다보는 사람들이 소설을 읽는 것은 아닐까.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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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설의 『환영』은 현실을 바라보는 겹눈처럼 다양하게 읽힌다. 경계를 넘을 때마다 우리를 반기는 ‘어서오세요’처럼 읽힐 때도 있고, 현실은 결국 환영(幻影)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로 읽힐 수도 있다. 다만 그 조건과 상황 그리고 태도에 대해서는 쉽게 말하지 않는다. 이 소설의 시작과 끝이 순환 구조인 것 같은 구성은 뫼비우스처럼 우리의 생이 반복되기 때문이 아니다. 시작도 끝도 없는 인간의 삶에 대한 우울한 샹송 같다. 모든 것은 다 지나간다는 삶의 허무주의가 아닌 아주 작은 ‘시작’과 ‘희망’의 불씨를 조금 아주 조금씩만 보여주는 소설을 기다려 볼 참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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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24-107]]></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1194/16/cover150/8957075666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7075666</link></image></item><item><author>인식의힘</author><category>문학</category><title>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 [꽃은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 - 도종환의 나의 삶, 나의 시]</title><link>http://blog.aladin.co.kr/cognize/5237296</link><pubDate>Fri, 25 Nov 2011 20:4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cognize/523729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431515X&TPaperId=5237296"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1371/72/coveroff/898431515x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431515X&TPaperId=523729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꽃은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 - 도종환의 나의 삶, 나의 시</a><br/>도종환 지음, 이철수 그림 / 한겨레출판 / 2011년 10월<br/></td></tr></table><br/>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br />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br />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br />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br />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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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br />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br />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br />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었나니 <br />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br />
<br />
평론가 김상욱 교수가 함량 미달이라고 했다는 &lt;흔들리며 피는 꽃&gt;은 시적 긴장감이나 문학적 완성도를 떠나 &lt;담쟁이&gt;와 더불어 도종환 시인과 동시에 떠오르는 시다. 『접시꽃 당신』으로 80년대 후반을 풍미했던 도종환 시인. 이제 25년이 지나 시인은 자신의 삶을 이야기한다. 물론 그가 쓴 시와 더불어. <br />
<br />
8월에 홍대앞 상상마당에서 고은, 도종환 두 시인의 ‘북콘서트’가 있었다. 2차까지 함께 할 기회가 있어 맥주 한 잔과 더불어 시인에게 들었던 이야기가 『꽃은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에 담겨 있다. 밝은 표정과 웃음을 잃지 않고 이야기꽃을 피웠던 시인의 삶은 결코 화려하지 않았다. 일평생 교육운동과 민주화 운동에 몸담은 시인의 삶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역사와 민주화운동, 문화운동의 한 부분을 오롯이 보여준다. 그때마다 힘이 되어준 시인에게 시는 어떤 의미였으며 그때마다 어떤 시들이 탄생했는지 살펴볼 수 있는 이 책은 기쁨보다 슬픔이 웃음보다 눈물이 가득하다. <br />
<br />
가난했던 유년의 기억부터 위암으로 아내를 잃은 슬픔을 담은 『접시꽃 당신』의 성공, 그리고 최근의 시집 『세 시에서 다섯 시 사이』에 이르는 과정은 시인의 삶과 시세계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자전적 해설에 해당하는 이 책은 시인의 삶과 시의 관계뿐만 아니라 그가 살아왔던 시대와 우리 사회의 면면을 돌아보게 된다. 우리가 살아왔던 시대를 성찰하는 것은 문학적 진실을 반추하는 기회이며 현재와 미래를 내다보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br />
<br />
문학이 한 시대를 증거한다고 볼 수 있을까. 도종환의 시는 현실과 서정 사이에 멈칫거리는 부분이 있다. 정호승의 시 회색이라고 비판을 받았던 것과 달리 도종환의 시는 『접시꽃 당신』에 대한 최두석의 비판부터 끊임없이 논란이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시인은 문지에서는 지난 25년 동안 단 한 번도 원고 청탁을 하지 않았다는 서운함을 통해 자신의 문학적 성과에 대한 회의를 드러낸다. 하지만 독자들에게 도종환의 시가 과연 함량 미달로 느껴질까. 그것의 판단 기준은 비평가의 몫일까. 여전히 자신의 삶과 시에 열정을 잃지 않은 시인의 작품세계를 평가하는 것은 조금 더 뒤로 미뤄야하지 않을까 싶다. <br />
<br />
이 책은 시인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을 수 있다는 장점과 함께 그의 삶을 통해 작품 세계까지 이해할 수 있는 책이다. 도종환의 시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고개를 끄덕이며 읽을 수 있고 아직 그의 시를 읽어보지 않은 독자라면 이 책을 통해 그의 시에 관심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삶과 문학이 하나가 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인간적인 약점과 한계를 물어뜯고 쉽게 말하는 사람들에게 상처받은 시인의 이야기는 가슴이 아프다. 타인의 불행과 삶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사람보다 그 상처를 잘 견뎌낸 그의 시가 아름답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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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대로 가슴으로 쓴 시는 독자에게 가슴으로 전해지고 울면서 쓰면서 쓴 시는 눈물까지 전달된다. 시는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써야한다는 아주 단순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이야기들부터 군데군데 묻어나는 한숨과 눈물은 그의 시만큼 가슴을 적신다. 한 편의 시는 수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한 편의 소설만큼. <br />
<br />
손잡고 함께 걷는 일은 어렵다. 사람마다 다른 생각, 다른 관점, 내부적 갈등……. 세상은 눈에 보이는 것으로만 판단할 수 없고, 시인 같은 심성만 가진 사람들로 가득하지도 않다.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이 소중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lt;담쟁이&gt;는 도종환의 삶과 시를 보여줄 수 있는 대표적인 시가 아닐까 싶다. <br />
<br />
저것은 벽 <br />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br />
그때 <br />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br />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br />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br />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br />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br />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br />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br />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br />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br />
결국 그 벽을 넘는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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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21-106]]></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1371/72/cover150/898431515x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431515X</link></image></item><item><author>인식의힘</author><category>인문</category><title>병원에는 서사가 없고, 약국에는 이야기가 없다 - [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title><link>http://blog.aladin.co.kr/cognize/5225329</link><pubDate>Sun, 20 Nov 2011 21:1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cognize/522532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6823664&TPaperId=5225329"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1347/41/coveroff/8976823664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6823664&TPaperId=522532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a><br/>고미숙 지음 / 그린비 / 2011년 10월<br/></td></tr></table><br/>생존의 주체이며 생존의 수단이기도 한 몸. 원시사회에서 몸과 현대 사회의 몸은 전혀 다르게 인식된다. 몸에 대한 미적 기준이 달라졌을 뿐만 아니라 신체적 능력에 대한 중요성도 달라졌다. 근대 이후 질병에 대한 관점은 그 이전과 확연히 달라진다. 병원이라는 분리 공간이 생기면서 감시와 관찰의 대상이 된 것이다. 미셀 푸코는 『광기의 역사』를 통해 정신 질환에 대한 서구 사회의 편견을 드러낸다. 이성 중심의 서구 사회가 포용하지 못하고 철저하게 격리, 배척했던 역사를 통해 질병에 대한 음험한 시선을 유추할 수 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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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는 진실의 상실에서 광기를 발견했다. 즉, 자연이 아니라 자유에 속하는 인간에게서 각성과 주의력의 역량만이 문제시되는 온통 부정적인 가능성을 발견했다. 18세기 말은 광기의 가능성을 환경의 구성과 동일시하기 시작한다. 즉, 광기는 잃어버린 자연이고 빗나간 감성, 욕망의 일탈, 척도를 박탈당한 시간이며 매개의 무한 속에서 상실된 직접성이다. - 미셀 푸코, 『광기의 역사』, 586쪽<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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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 중심의 서구 사회는 몸에 생긴 모든 질병을 분리와 치료의 대상으로 보았으며 서양의학은 세포단위로 환원하여 끝없이 세분화하여 처방한다. 해부학의 발달로 우리의 몸은 개인적인 특성과 분리되어 표준화 일반화된 과학적 분석의 대상이 되었고 매뉴얼에 따라 동일한 방식으로 처리된다. 다양한 의료기기의 발달과 의술의 발전은 새로운 질병을 끊임없이 발명해 내고 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어떤 사람도 병원에 가서 정밀 진단을 받아보면 ‘정상’의 범위에서 벗어난 부분이 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우리 모두는 넓은 범위의 ‘환자’로 살아간다. 임신되는 순간부터 산부인과의 도움은 시작되며 의사의 사망선고로 공식적인 생을 마감한다. 우리는 몸의 주인인가, 아닌가. 어떻게 하면 내 몸의 주체적 주인이 될 수 있으며 어떤 관점으로 몸과 병의 관계를 살펴야 할 것인가.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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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 직업개념으로 규정할 수 없으나 가장 자유롭고 진정한 의미의 공부를 실천하며 살아가는 고미숙이 이번에는 몸에 관심을 가지고 『동의보감』을 이야기한다. 그린비의 리라이팅 열 다섯 번째 시리즈로 나온 이 책은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라는 부제로 요약되어 있다. 의학에 대한 관심과 접근이 아니라 우리의 몸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식으로 이해하면 좋을 것 같다. 5편(篇) 106문(門)으로 구성된 허준의 역작을 활용하는 방법과 관점은 다양할 것이다. ‘고전’에 대한 자유로운 접근방식과 다양한 관점을 갖춘 고미숙의 해설은 동의보감이 주는 새로운 의미를 찾아볼 수 있다. <br />
<br />
고전은 언제나 현재적 유용성을 가질 때만 의미가 있다. 우리가 잊고 있는 몸의 중요성에 대해 각성하는 계기를 마련하는 책이 아니라 몸을 둘러싼 모든 것들에 관심을 갖게 하는 책이다. 우리의 몸은 개별적 존재로 살아온 환경, 먹었던 음식 그리고 체질과 생활조건이 다르다. 그렇다면 병의 원인과 치료 방법도 조금씩 달라야 하지 않을까. 콧물이 흐르고 두통이 있고 몸살 기운이 생겨 병원에 가면 한 번에 한 숟가락쯤 되는 약을 지어준다. 감기는 약을 먹으면 일주일 안 먹으면 7일 이라는 말이 있다. 균형과 리듬이 깨진 몸을 돌보라는 신호라는 뜻이다. 심한 경우 합병증이 생기고 심각해 질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에 환절기만 되면 병원은 문전성시를 이룬다. 기계적인 방식으로 병을 치료하고 건강을 지켜나갈 수는 없다. <br />
<br />
의학은 일반인이 접근할 수 없는 신성한 영역처럼 그들만의 암호가 오고가고 언제부터인가 의사는 가장 선호하는 직업이 되었으며 의료산업에서 책정되는 가격은 아무도 적정가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비싼 의료 장비와 수많은 검사와 검사료, 적절성을 상식적으로 판단하기 힘든 수많은 수술요법과 치료약들……. 예를 들어 고미숙은 자궁 적출 수술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자궁 근종 등 여성 질환의 경우 질병의 근원 자체를 없애버리는 수술을 시행하는 데 이것은 원천 봉쇄의 오류가 아닌가. 임신여부와 무관하더라도 자궁은 필요 없는 기관인가를 묻고 있다. 저자가 일관되게 주장하는 것은 지나친 것은 모자란 것만 못하다는 한마디이다. 과잉진료, 과다복용은 자연치유보다 오히려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우리의 몸은 오늘도 안녕한가.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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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8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동의보감』과 허준에 대해 상세히 알아 본 후에 『동의보감』의 구성과 내용을 전체적으로 조망한 후 여성의 몸을 살피는 것으로 끝난다. 책 뒤에 함께 읽으면 좋은 책들을 저자가 직접 소개하고 있다. 본문 내용에서 자주 인용했고 『동의보감』과 허준에 대해 보다 상세한 내용이나 다른 관점으로 접근하고 있는 책을 더 참고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방식의 소개는 독자에게 큰 도움이 된다. ‘정精•기氣•신 神’으로 구성된 우리 몸의 비밀과 음양오행으로 풀어낸 오장육부의 신비 그리고 병과 약의 관계를 순서대로 재미있게 풀어내는 솜씨는 고미숙의 가장 큰 장점인 즐겁고 유쾌한 글쓰기 방식에서 비롯된다. <br />
<br />
한 권의 책에서 깊이와 넓이를 모두 담보하려는 욕심만 버린다면 우리는 한 권의 책을 자신의 관점과 비교하며 즐겁게 읽을 수 있다. 단순히 새로운 정보를 얻고 앎의 세계를 넓히거나 다양한 관점을 얻는다는 추상적인 목적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지금 내 삶의 방법과 관점을 조율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것이 바로 책이다. 고미숙의 책은 ‘근대’에 대한 관심을 넘어 열하일기를 주유하고 공부와 사랑과 공부를 넘어 이제 몸속으로 뛰어들었다. 제한된 틀과 제도권에서 벗어난 고미숙의 삶과 공부에 언제나 부러움을 느낄 뿐이지만 그 결과물인 책과 생각을 공유할 수 있어 다행이다. 최근 감이당을 개설하고 ‘수유+너머’와 결별을 선언한 이후에 활동도 주목된다. 고미숙의 책은 언제나 즐거운 여행과 같다. 늘 새로움과 자유로운 세계를 안내 받고 싶은 욕심이다. 『동의보감』에서 시작된 몸에 대한 관심과 공부를 조금 더 깊이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이 책은 제 역할을 다 한 것이다. <br />
<br />
편작에서 융까지, 치유본능에 충실한 의사들의 전언은 한결같다. “병을 만든 것도, 그 병에 대해 가장 잘 아는 것도, 그리고 그 병을 치유할 수 있는 것도 여러분 자신입니다. 그러니 자기 자신의 의사가 되십시오!” 그리고 그것은 이 기나긴 여정을 이끌어 준 우리들의 멘토인 허준의 전언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그것이 곧 정기신의 발현이자 존재의 원초적 명령이기 때문이다. - 438쪽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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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20-105]]></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1347/41/cover150/8976823664_2.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6823664</link></image></item><item><author>인식의힘</author><category>예술</category><title>인간 삶의 이야기 본능 - [이야기의 힘 - 매혹적인 스토리텔링의 조건]</title><link>http://blog.aladin.co.kr/cognize/5217185</link><pubDate>Wed, 16 Nov 2011 23:0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cognize/521718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4154124&TPaperId=5217185"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1318/87/coveroff/899415412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4154124&TPaperId=521718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이야기의 힘 - 매혹적인 스토리텔링의 조건</a><br/>이창용 외 지음 / 황금물고기 / 2011년 09월<br/></td></tr></table><br/>TV 프로그램, 동영상 그리고 종이책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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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의 지식채널은 짧은 동영상만으로도 한 시간짜리 프로그램 못지 않은 감동과 정서적 충격, 지적 자극을 주기에 충분했‘었’다. 적어도 광우병관련 영상 때문에 경영진으로부터 보복 인사 조치를 받기 전까지는 말이다. ‘기륭전자3년’을 마지막으로 지식채널을 떠난 김진혁PD가 곧 지식채널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시대를 비판하고 각성을 촉구하는 언론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지 못할 때 남은 자들은 낮은 자세로 복지부동하거나 심한 자기 검열에 시달린다. 세월이 하 수상하니 누구를 탓하랴, 다만 국민은 자기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갖게 될 뿐.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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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도 폭발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이후 EBS의 프로그램들은 자주 책으로도 독자들과 만나게 된다. 방송 시간을 놓친 시청자들이라면 다시 보기 동영상을 통해 보는 게 일반적인 생각이 아닌가. 왜 종이로 된 책으로 내용을 살펴보고 싶은 것일까. 그것은 방송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깊이와 구체적인 부분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은 욕망 때문이 아닐까. 다큐 프라임 ‘이야기의 힘’이 책으로 출간되었다. <br />
<br />
책은 책 나름의 원칙과 방법으로 독자와 만난다. 독자들의 입장에서는 그것을 느끼지 못할 뿐이다. 표지 디자인으로 책과 첫 대면을 하지만 기획에서 편집, 교정, 교열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땀과 노력이 숨어 있다. 이것은 물론 책의 ‘꼴’에 대한 부분이다. 책의 ‘속’은 작가가 책임지지만 책의 꼴은 편집자의 몫이다. 그에 앞서 ‘출판기획’이 선행되는 경우도 있지만 독자의 입장에서는 그 모든 과정을 생각하지 않고 마지막 결과물과 마주하게 된다. 그런데 그 결과물에는 가끔 ‘옥의티’가 있을 수 있다. 사극의 배경 하늘에 비행기가 지나가면 분위기가 확 깨는 것처럼. 그러나 그것이 반복될 때 그 책의 속(내용)은 아무리 좋은 것이어도 꼴(형식) 때문에 완전히 실망하게 될 때가 있다. 다음 몇 문장을 살펴보자. <br />
<br />
◆ 경복궁은 말이야, 원래 1939년에 태조 이성계가 만들었어요. 1939년, 참 까마득…… 하지? - 35쪽 <br />
◆ 최고의 로맨스로 이야기되어지는 이 이야기는 잔잔하면서도 깊이 각인되는 기억을 선물해주었다. - 57쪽 <br />
◆ 백호 :(난처해하며) 아니, 그게 아니라…… 범인을 놓쳐가지고……. <br />
남자 : (화를 내며) 됐어요! (아이를 안고 돌아서며) 자, 가자. 많이 놀랐지? - 76쪽 <br />
◆ 인간은 자신의 삶을 방향을 찾는 데 좀 더 적극적으로 변화하고 있으며 – 106쪽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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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 조선을 개국한 이성계는 한양으로 천도하여 1395년에 경복궁을 창건했다. 1939년? 숫자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치명적인 실수다. 두 번째 문장에서 ‘이야기가되어지는 이 이야기’가 무슨 말인가. ‘최고의 로맨스로 인정받은’, ‘최고의 로맨스로 평가받는’ 정도면 어색하지 않은 문장이 되었을 것이다. 세 번째, 대화 상황의 ‘백호’는 범인이다. 이 대사는 분명히 경찰인 ‘대찬’이다. 마지막 문장은 ‘인간은 자신의 삶의 방향을’로 고쳐도 어색하지만 ‘삶을 방향을’을 그대로 둘 수도 없다. 꼬인 문장을 풀어야 한다. <br />
<br />
가독성을 해치고 책의 질을 완벽하게 떨어뜨리는 몇 개의 문장에 표시하며 책을 읽는 동안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책을 쓰고 만들어 본 경험 때문이 아니라 ‘펴낸이’와 ‘기획’은 있으되 ‘편집’은 없는 이 책을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에서는 2011년 11월 청소년권장도서로 선정했다. 입맛이 쓰다. 좋은 책의 절반은 편집자가 만든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좋은 작가만큼 출판사도 꼼꼼하게 따져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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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소설 그리고 스토리텔링(story+tell+ing) <br />
<br />
시간은 인관관계를 공간은 상황과 조건을 만든다. 여기에 사건이 결합되는 전통적 서사구조를 이야기라고 한다. 이야기는 문학이고 역사이며 인간의 삶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하루 종일 뒷담화를 쫓아다니는 사람이나 입만 열면 무수한 소문에 상상력을 보태 전하는 사람처럼 미성숙한 인간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이야기는 인간의 본능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최근에 다양한 매체의 발달과 더불어 ‘스토리텔링’이라는 말이 자주 쓰이다 보니 전통적인 서사와 소설 그리고 스토리텔링 사이의 구분이 모호해졌을 뿐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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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란 ‘어느 순간 삶의 균형을 잃은 주인공이 그 균형을 회복하고자 부단히 노력하지만 그것은 대단히 어렵다.’를 다루는 것이다. 멜로, 액션, 스릴러 등 모든 장르의 영화와 아야기의 뼈대는 바로 이것이었다. - 5쪽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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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맥기는 “이야기란 어떤 사건에 의해 삶의 균형이 무너진 주인공이 그 균형을 회복하고자 여러 적대적인 것들과 맞서면서 자신의 욕망을 추구해 나가는 것이다.”라고 정의했다고 한다. 이제 그의 책을 읽을 차례가 된 것 같다. 드라마와 영화를 기본으로 재미있는 이야기의 기본 골격을 떠올려 보자. 균형을 잃어버리고 적들과 맞서면서 자신의 욕망을 추구하는 과정이라면 그것은 ‘이야기’의 기본 골격이 아니라 우리들의 ‘삶’이 아닌가. 그래서 사람들은 경험해 보지 못한 이야기, 다른 사람의 인생에 열광하는 것일까. 한정된 범위에서 조금씩 움직이고 오로지 안정과 편리를 추구하는 현실 욕망에서 벗어나고 싶은 것이 모든 인간의 욕망은 아닌가.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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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탄한 구조, 개성 있는 등장인물, 반전의 묘미, 비극을 이용한 공감대, 아이러니의 활용 등 재미있는 이야기가 갖추어야 할 요건들은 만화든 영화든 드라마든 소설이든 마찬가지다. 이 책은 이러한 이야기의 기본 조건을 알기 쉽게 설명할 뿐만 아니라 직접 이야기를 만들어 볼 수 있도록 단계와 방법을 제시한다. 스토리텔링 시대를 분석하고 성공사례를 제시함으로써 마케팅과 비즈니스에 이르기까지 점차 그 영역이 확대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준다. PD와 작가가 한 팀이 되어 아이디어를 내고 전체 구성과 구체적인 내용을 재미있게 제시하고 프로그램을 만들었을 과정이 짐작된다. 시청자들을 위해 알기 쉽게 구성했으리라고 추측할 수 있는 부분도 많았다. 다만 매체를 뛰어넘어 시청자가 아닌 독자와 만나기 위해서는 조금 더 충분한 준비와 노력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이야기 혹은 스토리텔링? 어디에 초점을 맞춘 것인지, 그것이 우리들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인지 조금 더 명쾌하고 깊이 있게 전달할 준비가 되었다면 ‘왕과 왕비’ 예문같은 진부한 소설의 이론을 제시하지는 않았으리라.&#160;<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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