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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발견 - KTX에서 찜질방까지 ㅣ 문지푸른책 밝은눈 6
김찬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5월
평점 :
1930년대 박태원의 소설 <천변풍경>은 당대의 현실을 카메라에 담듯이 표현하고 있다. 기록 필름이나 영화의 몫으로만 여겨지는 일들이 문학에서도 이루어지고 있다. 이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들까지 상상하게 만드는 언어의 힘에 의해서 가능하기 때문이다. 리얼리즘 소설은 현실의 정확한 세부 묘사와 재현에 역점을 두고 문학 작품으로 성립 가능한 부분들을 적당한 거리에서 바라보게 된다. 생각해보면 아쉽고 그리웠던 시절들에 대한 추억은 아련한 기억으로 남는다. 사진처럼 선명하게 부분을 보여주는 것보다 일련된 하나의 흐름을 통해, 그 상상의 힘을 통해 현실을 드러내는 방법은 독자들에게 훨씬 효과적일 때가 있다.
그런데 그 현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가능하기는 한가? 특히 그 집단에 속한 개인의 입장에서 집단 전체의 문화를 분석하고 묘사하는 일은 어려워 보인다. 숲속 나무 그늘에 앉아 산 전체의 형세를 이해하는 일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김찬호의 <문화의 발견>은 그래서 당돌한 책이다. 그냥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일 뿐인데 그것을 발견했다고 하니 말이다. 무엇을 발견했단 말인가? 그것은 다름 아닌 우리가 알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동시대인들이 우리들 삶의 모습을 모두 이해하거나 제대로 들여다 보기는 힘들다. 알고 있으나 나름의 방식대로 규정짓고 이해하는 일이 많다. 그렇지 아니면 아예 지나쳐버리고 관심을 두지 않는 경우도 많다.
<사회를 보는 논리>로 비판적 시각과 예리한 분석력을 보여주었던 김찬호의 새 책은 ‘KTX에서 찜질방’까지 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우리들 일상에서 늘상 지나쳐왔던 것들을 새로운 시각과 진지한 접근방법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크게 30가지의 주제를 담고 있는데, 작게 여섯 개의 주제로 분류했다. 지하철에서부터 공항까지, 노래방에서 찜질방까지, 편의점에서 시장까지, 아파트에서 경로당까지, 학교에서 교회까지, 화장실에서 병원에 이르기까지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는 모든 공간을 공시적이고 통시적인 관점에서 재미있고 설득력있게 그려내고 있다. 저자는 단순한 역사적 사실이나 객관적 사실들을 나열하는데 그치지 않고 감성적인 문장과 수필에 가까운 접근 방식을 취하고 있다.
각 주제들을 대표할 수 있는 첫머리 인용글들은 다른 시각과 접근 방법을 제시하면서 저자의 폭넓은 독서와 다양한 시각의 기초를 제공하는 역할을 함께하고 있다. 각 장마다 붙어 있는 생각해 볼 문제는 대학 교재나 논술 교재로도 활용될 수 있을 만큼 신경을 썼다. 하나의 문화 현상을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의식과 삶을 대변한다. 유행처럼 번지는 공간과 사람들의 생각은 선악의 기준이 아니라 하나의 흐름, 시대정신으로까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개똥녀 사건으로 인터넷과 세상을 달구었던 일들은 지하철과 핸드폰과 인터넷의 익명성이 결합한 현상으로 네티즌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온라인 무료 백과사전 위키피디아에까지 소개되었다. 된장녀로 불붙은 논쟁의 중심에 서 있는 커피전문점들의 문화적 현상들은 소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자화상을 확인하는 것 같다. 별다방 스타벅스, 콩다방 커피빈에서부터 파스쿠찌, 할리스 커피에 이르기까지 만남과 놀이의 문화가 부재한 현실의 현상들을 아닌가 싶다.
어쨌든 이 책에서 소개하는 주제들의 공통점은 ‘공간성’이다. 저자가 의도했는지 모르겠지만 이동과 교통, 유희와 교류, 유통과 서비스, 거주와 돌봄, 창조와 성장, 몸과 자연으로 구분해서 주제들을 묶어내고 있지만 모두 구체적 공간에서 벌어지는 문화적 현상들을 다루고 있다는 특징을 지닌다. 문화란 시간과 공간의 만남일 수밖에 없다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확인하면서 주변에서 만들어지는 공간에 대해서 좀 더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공간을 보면 문화가 보일 것 같다. 시간의 흐름이라는 관점에서 벌어지는 현상들이 모두 우리들의 문화인 것이다.
우리들이 발딛고 서 있는 삶의 공간과 그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시대와 역사를 만들어간다. 이것을 살펴보는 일은 삶에 대한 성찰이다. 끊임없는 변화와 유동적인 흐름 속에서 목적과 방향도 없이 흔들리는 삶에 대한 경계를 위해서 필요한 책은 아닐까 싶다. 사회를 떠나 살 수 없는 존재가 인간이라면 충분히 그 상황과 맥락 속에서 우리들의 자화상을 진지하게 성찰할 필요가 있다.
070605-0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