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문화의 음란한 판타지 - 문화는 어떻게 현실에서 도망가는가? , 컬리지언 총서 13
이택광 지음 / 이후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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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는 음악이나 미술 혹은 영화나 사진 등 예술의 한 장르나 어떤 특정한 생활양식을 이르는 말로 이해된다. 이러한 개념은 자연 상태와 상반된 것으로 이해되며 물질적, 정신적인 인간의 역사적 축적물을 통괄한다. 종교나 언어, 풍습, 행동 양식에 이르기까지 그 범위와 개념은 폭넓게 정의되고 사용된다.

  문화의 영역과 범위는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 인류가 축적해 온 모든 생활 양식과 삶의 태도를 포괄하는 개념으로서 문화는 한 마디로 정의하기도 힘들다. 그 범위와 개념이 포괄적이기 때문에 문화는 대단히 모호한 의미로 사용된다. 이택광은 문화 비평을 하고 있지만 사실 영화와 문학을 중심으로 한국 사회를 분석하고 있다. 이 분석이 타당하게 보이는 것은 문화를 만들어가는 한국인에 대한 성찰과 태도가 고스란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문화는 그 사회를 반영하는 거울이다. 자연 상태가 아닌 인간의 모든 인위적인 행위가 만들어 낸 현상들과 행위들은 문화라고 볼 수 있다. 특히 대중성을 확보한 영화나 만화, 드라마 음악, 소설 등은 한 사회의 흐름을 이해하는 중요한 요인들이다. 이것을 우리는 문화 현상이라고 부를 수 있다. 구체적인 문화 현상들을 이택광은 몇 가지 개념들로 묶어 내면서 하나의 흐름을 파악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한국 문화의 음란한 판타지>는 바로 이러한 문화 현상에 대한 비판적 글쓰기의 결과물이다.

  프롤로그에서 밝히고 있듯이 ‘서사의 무덤에 새겨진 묘사라는 비문’ 우리 사회의 문화 현상들을 서사와 묘사의 차이점을 통해 기발하게 분석해내고 있다. 그것은 모범답안처럼 제시되는 리얼리티는 문화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는 순수-참여 논쟁과 같은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려는 저자의 의도에서 비롯된다. 단순하게 고급문화와 하위문화를 구분하거나 현실이 어떻게 문화 현상에 반영되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왜’ 반영되는가에 관심을 두고 있는 듯하다.

  자본주의와 결합된 문화 상품들은 한 마디로 정의하기 어렵고 리얼리티의 문제를 거론할 필요도 없다. 서사가 죽어버린 시대에 가상현실에 대한 묘사가 오히려 설득력을 얻고 있다. 문화와 정치는 다르다. 현실생활에서 140억을 가진 유인촌의 재산 3분의 1은 부인이 가진 현금이다. 이것은 문화예술인으로 분류되는 유인촌과 무관한 현실적인 생활인으로서의 모습이다. 하지만 우리는 정치가 아닌 문화와 예술 행위를 통해 환상과 신기루를 만들어가기도 한다. 그것은 몽환적 환타지로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불어 넣어주는 거짓이다.

  저자는 자본과 결합한 문화의 상품화를 철저하게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이 전제 조건에서 벗어나고자 할 때 우리는 허위의식을 가진 채 실제 현실과 문화 현상 사이의 모호한 환상을 쫓게 된다. 보수주의는 문화를 통해 음란한 환타지를 만들어준다. 이분법적 사고가 아니라 실제 현실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상황들이다.

  저자의 말대로 서사가 초월의 욕망이라면 묘사는 환상적인 비극에 불과하다. 묘사는 보이지 않는 대상을 치밀하게 재현한다. 서사는 더 이상 사람들에게 설득력을 얻지 못한다. 서사가 죽고 묘사의 시대가 도래했다. 그래서? 재현된 욕망의 판타지가 펼쳐진다. 그것이 사실이든 환상이든 중요하지 않다. 스펙터클과 포르노그라피, 해리포터와 반지의 제왕, 친구와 텔미썸딩 등 우리들 눈에 비치는 모든 문화는 현실로부터 탈주한다. 현실과의 미세한 차이는 반복되고 정착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한 집요한 시도는 문화 현상과 관객들의 끊임없는 질주로 이어진다.

  이 책에서 저자는 제임스본드와 오우삼을, 이문열과 이인화를, 김영민과 강준만과 김용옥과 김지하와 이진경과 진중권과 김규항을 분석한다. 앞서 펼쳐놓은 영화와 소설이 보여주는 우리 사회와 문화 현상들을 거시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면 이제 대중 속에 어필하고 있는 작가들을 점검한다. 단순하게 글을 잘 쓰거나 필력이 좋은 사람들이 아니라 끊임없이 비교 대조되는 사람들도 결국 문화 상품으로 포장되어 ‘잘 팔리는’ 욕망하는 기계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저자의 날선 비평들은 긍정과 부정의 문제가 아니다. 2002년에 출판된 이 책은 세기말의 징후들을 읽어낼 수 있는 또 하나의 자료가 될 것이다. 이제 시간이 또 한참 흘렀지만 우리가 소비하고 있는 모든 문화라는 이름의 상품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의 의식과 생활과 현실을 녹여내고 있다. 모든 것을 팔아치우는 자본의 논리에 따라 모든 문화는 재편되고 있다.

  보수와 진보를 나누는 어리석은 이념 공방이 아니라 내가 소비하고 있는 문화는 도대체 무엇이며 어떤 것인가 그 실체에 대한 궁금증이 이 한 권의 책으로 해결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왜 이런 분석과 노력들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한 의문은 조금 풀리는 듯하다.

  내용과 무관하게 시계를 거꾸로 돌려놓는 경험들이 - 지나간 영화에 대한 추억들, 사라진 여배우들, 현재에도 건재한 글쟁이들 - 가능했던 책이다. 이 책도 소비의 대상이지만 무엇이 같고 다른지, 그 의미와 논리는 무엇인지 믿을만한 저자의 눈을 잠시 빌려보는 것도 재밌는 경험이 될 것이다.


08022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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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지식채널 - 가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본의 모든 것
조양욱 지음, 김민하 그림 / 예담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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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가깝고도 먼 나라로 표현되는 일본은 우리와 특별한 관계에 있다. 지정학적으로 서로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으며 역사적으로 결코 가깝게 지낼 수 없는 나라가 일본이다. 국가 간의 교류나 외교가 개인 간의 관계처럼 감정적으로 처리될 수는 없지만 어떤 형태로든 과거사는 여전히 정리되지 않았다. 근대화 초기에 식민지 시절을 경험한 우리 역사는 일본에 대한 객관적 거리와 시선이 불가능할 지도 모르겠다. 식민지 사관의 논리나 민족 사관의 논리나 그것이 긍정적이냐 부정적이냐의 논의를 떠나서 일본은 여전히 멀게만 느껴진다.

  21세기에 접어들었다고 하지만 식민지에서 벗어난 지 불과 60년을 겨우 넘기고 있다. 일제의 잔재는 우리 생활과 문화 곳곳에 뿌리 깊게 배어 있다. 특히 언어처럼 사회성과 역사성을 동시에 지닌 경우 쉽게 바뀌지 않는다. 황대권의 <빠꾸와 오라이>처럼 일본어의 잔재를 굳이 찾아서 정리하지 않더라도 여전히 일본어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한 용어들은 많이 있다. 뿐만 아니라, 라면이나 초밥 등 음식에서부터 닌텐도, 도요타에 이르기까지 우리들 일상에서 일본의 영향은 절대적이다.

  조양욱의 <일본 지식 채널>은 일본을 대표하는 전통, 생활, 문화, 언어, 정치, 역사, 사회를 대표하는 핵심 키워드를 정리한 책이다. 하나의 키워드를 한 장의 사진과 함께 간단하게 설명하고 있는 책이다. 저자의 판단과 대상에 대한 인상이 간략하게 부연되고 있지만 주된 내용은 용어에 대한 설명이다. 이 책은 잡다한 박물지와 같다. 108 단어를 통해 일본이라는 나라를 상세하게 들여다 볼 수 있는 책이다.

  그러나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한 잡다하고 일반적인 수준의 피상적인 상식에 불과한 내용들은 실망스럽다. 일본에 대해 알지 못하는 나 같은 독자에게 정보를 제공해 준다는 측면에서는 긍정적이지만 특정 분야에 대해 깊이 생각할 여지도 없고 지나치게 많은 양의 정보를 간략하게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모두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우선 제목을 살펴보자. ‘지식 채널’은 명백한 표절이다. 무임승차를 거두기 위한 제목 선정은 책 전체에 대한 인상을 구겨 버린다. 독특하고 참신한 책이 아니라 잘 팔리고 있는 책의 제목을 등에 업고 무임승차하겠다는 발상은 출판사나 저자의 입장에서 안전한 선택일 수 있지만 독자의 양미간에 주름을 잡아준다. ‘지식 채널’은 EBS에게 맡겨 놓았으면 좋을 뻔했다.

  또한, 군데군데 저자의 보수성과 편견들에 눈살을 찌푸린다. 다음의 인용문을 보자.

일본에는 “마누라와 다다미는 새것일수록 좋다”는 속담이 있다. 새 마누라가 좋은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다다미는 볏집을 엮은 바닥 부분의 위에 골풀로 만든 거죽을 표면에 붙이는데, 새 다다미는 이 골풀의 향기가 신선하다. 일본인들은 새 다다미의 향기나 피부에 닿는 감촉에서 신선함을 느끼며 행복에 젖기도 한다. - P. 51

  일본의 속담을 인용하고 있지만 여성에 대한 배려나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태도 자체가 의심스러워 어이가 없는 표현들이 군데군데 눈에 띤다. 지나치게 예민한 반응일 수 있으나 ‘새 마누라가 좋은 것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는 저자의 말은 문맥상 웃음을 유발할 목적이 아니라면 심각한 수준이다. 문제는 단편적인 견해들이 일본 문화에 대한 적절한 평가나 객관적인 판단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는 데 있다. 일본 생활을 오래 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소개할 수 있는 정도의 수준이거나 특별한 안목과 관점이 없는 단순 설명은 지루한 박물지에 불과하다.

  일본어를 우리말의 발음으로 적고 일본어를 병기하고 있는 각 장의 제목을 보자. 의미를 짐작할 수 있는 간략한 제목들이 붙어 있지만 그 어휘나 대상이 어떤 것인지 분명하게 설명하지 않는 장들이 많다. 그것에 대한 주관적인 해석이나 설명을 읽어가면서 정확한 의미를 파악해야 하는 것들이 많다. 쉽고 간단한 문장이기 때문에 가독성은 뛰어나지만 대상에 대한 정확한 이해는 부족하고 그것에 대한 이면적이 이야기와 문화적 배경들을 설명하고 있지만 감동은 없다. 마켓 포지션은 잡학 사전 쯤 되겠지만 개인적으로 사서 읽고 싶은 생각은 없는 책이다.

  ‘가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본의 모든 것’이라는 부제가 붙었다. 피상적으로 혹은 간단하지만 재미있게 설명되어 있는 것도 있다. 정보 제공의 측면에서는 어느 정도 성공하고 있지만 아쉬운 면이 훨씬 많은 책이다. 목적에 따라 일본에 대한 잡다한 지식과 정보가 필요할 때 손쉽게 읽을 수 있을 만한 책이기는 할 것 같다.


080217-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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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빛깔있는책들 - 즐거운 생활 269
조윤정 지음, 김정열 사진 / 대원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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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판기 커피, 혹은 다방 커피 중독 현상은 담배의 니코틴 중독처럼 카페인 중독에 불과하다. 원두커피나 에스프레소가 아니라 크림과 설탕이 적절히 배합된 커피 믹스에 길들여진 사람들의 입맛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된장 찌개에 김치를 먹어야 밥을 먹었다는 포만감을 느끼는 것과 유사한 느낌이라고 할 수 있다. 커피는 당연히 그렇게 먹는 것인 줄 알았다.

  그나마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는  머리가 나빠진다(?)는 전설에 근거한 어른들의 협박과 경고에 못 이겨 한 잔도 얻어 마시지 못했다. 유리병에 담긴 커피 알갱이에 큰 유혹을 느꼈던 것은 아니지만 커피를 마신다는 것은 어른이 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던 시절이었나 보다. 대학에 입학해서 드디어 맘껏 커피를 마셔대기 시작했다. 밥을 먹고 나서 마실 수 있는 물 다음으로 저렴한 음료였기 때문이다.

  이제 세상이 달라져 우리는 밥보다 비싼 커피를 들고 다니며 마신다. ‘된장녀’가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지만 확고하게 자리잡은 커피 문화는 하나의 사회적 현상으로 이해해야 하는 시점이 이르렀다. 세이렌의 유혹을 상징하는 ‘스타벅스’를 필두로 볶은 커피 원두를 의미하는 ‘커피 빈’, 이탈리아의 창업자 안토니오 파스꾸찌의 이름을 딴 ‘파스쿠치’, 1998년 국내 순수 브랜드로 출발한 ‘할리스’ 등 고개만 돌리면 커피 전문점들이 눈에 들어온다.

  어두컴컴한 조명, 초이스라는 상표를 메뉴판에 적어 놓았던 이전 시대의 ‘카페’를 떠올리는 사람들은 이제 삼십대 중후반을 넘기고 있을 것이다. 밝고 환한 조명과 통유리로 거리를 내다볼 수 있는 개방감은 안과 밖을 구별하기 힘들다. 사회 분위기나 사람들의 성향이 바뀌어가고 있다는 증거가 될 수도 있겠다. 어쨌든 사람을 만나고 대화를 나누고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으로 여전히 사랑받는 공간은 카페이다. 커피라는 음료는 이제 이국적인 기호 식품으로 받아들이기엔 우리 생활 속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 커피를 이해하는 일은 취향의 문제가 아니다. 커피의 기원과 역사 그리고 커피의 종류나 만드는 방법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에 대해 호기심과 궁금증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조윤정의 <커피>를 읽는다. 광화문 성곡 미술관 옆에서 ‘커피스트’를 운영하는 조윤정의 <커피>는 읽는 맛이 남다르다. 커피를 입이 아니라 눈으로 마시는 느낌이다.

  이 책이 눈길을 끄는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는 김정열의 적절한 사진 덕이다. 책은 종류에 따라 삽화나 그림, 사진이 방해가 되거나 가독성을 해칠 수 있지만 이 책은 조금 다르다. 커피의 종류와 로스팅이나 추출 과정에서 사용되는 다양한 기계들을 보여주고 설명을 해야하기 때문에 산만하지 않게 적절한 사진이 요구되고 본문과의 배치나 편집이 중요하다. 핸드북으로 적당한 분량과 크기로 성공을 거두고 있는 <커피>는 언제 어디서든 가볍게 들고 다니며 반복해서 읽고 정보를 확인하며 눈으로 마실 수 있는 책이다.

  에스프레소espresso란 영어로 익스프레스express, 즉 빠르다rapid,fast는 뜻이다. 추출하는 시간 뿐만 아니라 마시는 시간도 빨라야 한다. 황금색 크레마와 함께 짙은 향과 맛을 음미해야하기 때문이다. 커피의 본질이자 정수인 에스프레소는 단순히 진하고 쓴 커피가 아니다. 에스프레소 한 잔에는 숨길 수 없는 커피 본연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저자의 말에 공감한다. 커피의 맛은 한 마디로 규정하기 어렵다. 쓴맛과 신맛이 어우러져 깊고 풍부한 향기와 함께 원산지와 로스팅에 따라 원두의 맛과 향은 천차만별이다. 일반적으로 핸드 드립식이나 커피 메이커로 아메리칸 스타일을 즐기지만 에스프레소는 커피의 시작이며 끝이다.

  다양한 방식의 블렌딩과 각종 첨가물이 가미된 커피를 마시지만 이것들은 모두 에스프레소를 기본으로 하는 커피들이다. 생두와 원두 에스프레소가 빚어내는 커피의 깊은 맛이 매니아를 양산하고 있으며 와인처럼 급속하게 저변을 확대하고 있다. 자판기나 다방 커피가 아닌 커피 본연의 맛을 즐기려는 사람들에게 <커피>는 재미있고 즐거운 여유 시간을 만들어 준다. 물론 커피를 즐기지 않는 사람에게도 호기심과 궁금증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좋은 안내서가 된다.

  커피에 관한 많은 책들이 있지만 이 책의 두드러진 특징은 영국의 커피회사에서 3년 가까이 일하며 커피와 로스팅을 배운 저자가 ‘커피스트’를 운영하며 실전에서 경험한 노하우가 고스란히 배어있다는 데 있다. 그래서 로스팅과 추출 방식, 핸드 드립과 바리스타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실전을 위한 조언에 가깝다. 커피를 하나의 문화 기호나 연구 대상이 아니라 커피를 직접 만들고 마시며 서빙하는 사람의 애정과 숨결이 묻어 다른 책과 구별된다.

  어떤 커피를 어떻게 마실 것인가는 이제 선택이 되었다. 인터넷을 통해서 혹은 주변에 가까운 커피 전문점에서 구입할 수 있는 다양한 종류의 생두와 원두를 목적과 입맛에 따라 손쉽게 갈아 마실 수 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생두를 볶아보고 싶은 욕심이 생기지만 언감생심이다. 원두나 갈아 크레마의 색깔이나 기웃거리며 에스프레소 한 잔 마시고 싶다. 그것이 커피든 다른 것이든, 선택의 즐거움과 창조의 기쁨은 어디에나 있다.


08021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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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08-02-11 2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고 싶어서 구매해놨는데, 우홋 어쩐지 반가워져요 ^_^

sceptic 2008-02-12 12:43   좋아요 0 | URL
실전용으로, 호기심 충족용으로 다 괜찮았어요...^^
 
성석제의 이야기 박물지, 유쾌한 발견
성석제 지음 / 하늘연못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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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고 싶은 욕구는 인간의 오래된 본능 중 하나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호기심이 많거나 궁금한 걸 참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그래서 백과사전이 만들어졌고 네이버에는 지식in이 생겼는지도 모른다. 별 쓸데없는 잡다한 호기심과 그에 대한 답변들이 사람들의 본능적인 욕망을 일부 잠재운다. 깊이를 더해 전문적인 탐구가 계속되면 인류에게 도움이 되는 연구 성과로 나타날 수도 있고, 지극히 개인적인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데 만족하는 경우도 있다. 주변에 널려있는, 혹은 매일 접하는 신기한 이야기와 사물의 이면들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은 인간과 세상에 대한 지극한 애정과 관심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닐까 싶다.

  성석제의 이야기 박물지 <유쾌한 발견>은 정말 재미있다. 그 재미는 박학다식에 버금가는 잡학다식한 저자만의 개인적 관심과 능력이다. 저자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평소 웃음이 많고 호기심 가득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니 신기한 것과 재밌는 것은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버릇이 한 권의 책으로 묶였다. 소설가로서 소재를 취재하고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능력은 본능에 가까울 것이다. 하지만 모든 이야기가 소설이 되고 훌륭한 문학이 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소설이라는 장르가 고급스런 문화적 취향에서 비롯되기 보다는 단순하고 재미있는 이야기에 대한 사람들의 본능에서 출발했지만 소설이 되지 못한 이야기들도 많을 것이다. 저자는 이렇게 촌철살인의 재미있는 이야기나 신기하고 궁금한 이야기들을 2~3페이지의 짧은 분량에 담아내고 있다.

  워낙 뛰어난 입심과 재치로 무장했기 때문에 책을 읽는 내내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의 소설에서 보여주었던 웃음과 재미는 이 책에도 고스란히 묻어난다. 크게 4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재미있는 스토리 중심의 이야기와 일반적이고 관성적인 관점에 비틀어보기 그리고 음식에 대한 이야기가 맛깔스럽게 펼쳐진다. 마지막 4부에서는 명칭과 어휘 등 문자에 대한 어원과 뒷얘기들로 가득하다. 부제 그대로 만물상에 온 듯 풍요롭게 즐거운 이야기로 책 한 권이 가득 차 있다.

  “나는 천성적으로 알고 싶은 것이 많은 사람이다.”라는 저자의 말은 이 책의 성격을 대변해 준다. 소설가로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할 수 밖에 없는 천성을 타고 태어났으니 성석제는 천상 소설가이다. 그의 수첩에 적혀있었을 그 많은 재밌는 이야기 거리와 잡학 사전 같은 내용들이 이 책의 내용이다. 그의 소설을 읽으면서도 그랬지만 읽는 내내 낄낄거리며 혼자 미소짓고 소리내어 웃음을 터트리기도 했다. 공공장소에서 읽을 때는 주변의 시선을 조심해야할 수도 있겠다.

  이 맘 때면  휴가지에서 읽었으면 좋겠다는 책 어쩌구 하는 얘기들이 나온다. 무더운 한 여름 머리 복잡하지 않고 마치 TV를 보듯이 쉽고 재미있게 읽고 싶은 책으로 권할 만하다. 그렇다고 시중에 떠도는 유머집과는 다르다. 유머 자체가 목적이 아니고 이야기 속에 자연스럽게 배어 있는 웃음이기 때문이다. 기 기원과 의미를 깊이 있게 설명하는 내용들은 호기심을 넘어 지식으로 간직할 만한 이야기들도 많다. 저자처럼 잘 웃는 사람, 호기심이 많은 사람에게 선물하면 좋은 책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다 알 수는 없다. 알고 싶어도 한계가 있을 것이고 안다고 해도 세상이 달라지지도 않는다. 알고 싶은 대상의 깊이와 폭이 다르겠지만 우리가 살아가면서 재밌는 이야기로 전해지는 것들과 호기심 사이의 본능적인 욕망들은 삶의 활력소가 된다. 성석제의 이 책은 그렇게 활기찬 생의 재채기와 같다. 유쾌하게 웃고 시원스럽게 박장대소를 터뜨릴 수 있으며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들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사소한 것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우리들 삶에 대한 세심한 눈길과 배려처럼 돋보일 때가 있다. 몰라도 스쳐지나가고,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니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들로 가득한 세상에서 이렇게 공감할 수 있는 웃음으로 혹은 지식으로 사소함을 전달할 수 있는 것도 당연히 저자의 뛰어난 감각이다. 천상 이야기꾼인 성석제의 재미있고 신기한 이야기로 가득한 <유쾌한 발견>을 발견해서 즐거웠다.


070707-0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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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발견 - KTX에서 찜질방까지 문지푸른책 밝은눈 6
김찬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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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0년대 박태원의 소설 <천변풍경>은 당대의 현실을 카메라에 담듯이 표현하고 있다. 기록 필름이나 영화의 몫으로만 여겨지는 일들이 문학에서도 이루어지고 있다. 이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들까지 상상하게 만드는 언어의 힘에 의해서 가능하기 때문이다. 리얼리즘 소설은 현실의 정확한 세부 묘사와 재현에 역점을 두고 문학 작품으로 성립 가능한 부분들을 적당한 거리에서 바라보게 된다. 생각해보면 아쉽고 그리웠던 시절들에 대한 추억은 아련한 기억으로 남는다. 사진처럼 선명하게 부분을 보여주는 것보다 일련된 하나의 흐름을 통해, 그 상상의 힘을 통해 현실을 드러내는 방법은 독자들에게 훨씬 효과적일 때가 있다.

  그런데 그 현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가능하기는 한가? 특히 그 집단에 속한 개인의 입장에서 집단 전체의 문화를 분석하고 묘사하는 일은 어려워 보인다. 숲속 나무 그늘에 앉아 산 전체의 형세를 이해하는 일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김찬호의 <문화의 발견>은 그래서 당돌한 책이다. 그냥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일 뿐인데 그것을 발견했다고 하니 말이다. 무엇을 발견했단 말인가? 그것은 다름 아닌 우리가 알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동시대인들이 우리들 삶의 모습을 모두 이해하거나 제대로 들여다 보기는 힘들다. 알고 있으나 나름의 방식대로 규정짓고 이해하는 일이 많다. 그렇지 아니면 아예 지나쳐버리고 관심을 두지 않는 경우도 많다.

  <사회를 보는 논리>로 비판적 시각과 예리한 분석력을 보여주었던 김찬호의 새 책은 ‘KTX에서 찜질방’까지 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우리들 일상에서 늘상 지나쳐왔던 것들을 새로운 시각과 진지한 접근방법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크게 30가지의 주제를 담고 있는데, 작게 여섯 개의 주제로 분류했다. 지하철에서부터 공항까지, 노래방에서 찜질방까지, 편의점에서 시장까지, 아파트에서 경로당까지, 학교에서 교회까지, 화장실에서 병원에 이르기까지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는 모든 공간을 공시적이고 통시적인 관점에서 재미있고 설득력있게 그려내고 있다. 저자는 단순한 역사적 사실이나 객관적 사실들을 나열하는데 그치지 않고 감성적인 문장과 수필에 가까운 접근 방식을 취하고 있다.

  각 주제들을 대표할 수 있는 첫머리 인용글들은 다른 시각과 접근 방법을 제시하면서 저자의 폭넓은 독서와 다양한 시각의 기초를 제공하는 역할을 함께하고 있다. 각 장마다 붙어 있는 생각해 볼 문제는 대학 교재나 논술 교재로도 활용될 수 있을 만큼 신경을 썼다. 하나의 문화 현상을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의식과 삶을 대변한다. 유행처럼 번지는 공간과 사람들의 생각은 선악의 기준이 아니라 하나의 흐름, 시대정신으로까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개똥녀 사건으로 인터넷과 세상을 달구었던 일들은 지하철과 핸드폰과 인터넷의 익명성이 결합한 현상으로 네티즌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온라인 무료 백과사전 위키피디아에까지 소개되었다. 된장녀로 불붙은 논쟁의 중심에 서 있는 커피전문점들의 문화적 현상들은 소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자화상을 확인하는 것 같다. 별다방 스타벅스, 콩다방 커피빈에서부터 파스쿠찌, 할리스 커피에 이르기까지 만남과 놀이의 문화가 부재한 현실의 현상들을 아닌가 싶다.

  어쨌든 이 책에서 소개하는 주제들의 공통점은 ‘공간성’이다. 저자가 의도했는지 모르겠지만 이동과 교통, 유희와 교류, 유통과 서비스, 거주와 돌봄, 창조와 성장, 몸과 자연으로 구분해서 주제들을 묶어내고 있지만 모두 구체적 공간에서 벌어지는 문화적 현상들을 다루고 있다는 특징을 지닌다. 문화란 시간과 공간의 만남일 수밖에 없다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확인하면서 주변에서 만들어지는 공간에 대해서 좀 더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공간을 보면 문화가 보일 것 같다. 시간의 흐름이라는 관점에서 벌어지는 현상들이 모두 우리들의 문화인 것이다.

  우리들이 발딛고 서 있는 삶의 공간과 그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시대와 역사를 만들어간다. 이것을 살펴보는 일은 삶에 대한 성찰이다. 끊임없는 변화와 유동적인 흐름 속에서 목적과 방향도 없이 흔들리는 삶에 대한 경계를 위해서 필요한 책은 아닐까 싶다. 사회를 떠나 살 수 없는 존재가 인간이라면 충분히 그 상황과 맥락 속에서 우리들의 자화상을 진지하게 성찰할 필요가 있다.


070605-0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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