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 나다 - 첨단 패션과 유행의 탄생
조안 드잔 지음, 최은정 옮김 / 지안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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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이 14세를 그린 그림을 들여다보다가 구역질이 났다. 환갑이 넘은 나이의 노인네가 각선미를 드러내기 위해 망토를 들추고 있다. 다이아몬드로 장식된 화려한 의상과 뮬을 신고 있는 그의 모습은 기괴하다. 미의 기준이 아무리 주관적이고 상대적이라 할 지라도 결코 아름답게 보이지 않는다. 17세기에 지구상에서 가장 멋진 사내였던 그를 바라보는 일은 괴로움에 가깝다.

 조안 드잔의 <스타일 나다>는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유행의 근거지로 루이 14세를 지목한다. 가볍게 읽어낼 수 있는 미시사에 해당되는 이 책은 헤어드레서와 패션, 구두 부츠에서부터 샴페인, 거울, 우산, 향수에 이르기까지 프랑스를 대표하는 물건과 패션에 관련된 일들을 망라하고 있다. 그 기원을 찾는 일은 우리가 살고 있는 모습의 환영을 제거할 수 있다는 기대를 갖게 한다. 거품과 허상이 빚어낸 꿈들을 꾸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참고가 될만한 책이다.

 전우익 선생이 어느 인터뷰에서 사람들은 무언가 사기 위해 산다고 말했다. 그걸 사면 버리고 또 사고 그리고 또 버리고 그러다 사람들이 죽는다고 했다. 물건의 노예가 된다고. 같은 물건이라도 같은 스타일이라도 모방 심리와 집단적 무의식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는 안간힘은 사람들에게 획일성과 유행이라는 선물을 안긴다. 일종의 정신병적 현상이다. 무리 사회에서 혼자만 고립된다는 두려움은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그것을 이겨낼 만한 이념도 철학도 가지고 있지 않다면 더욱 그러하다. 생각해보면 얼마나 다른 사람들과 섞여 살면서 얼마나 비슷한 것들을 추구하는지.

 전근대 사회에서 왕을 중심으로 한 귀족들의 사치와 허영을 들여다보는 일은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일이다. 그들이 머리 모양이나 옷, 구두에 관심과 애정을 가질 수 있었던 토대를 마련했던 민중들의 삶은 검은 밤의 커튼 뒤에 가려져 있다. 생존을 위한 노동과 인간 이하의 삶을 살았던 대다수 사람들의 모습은 이면으로 사라지고 밝고 화려한 왕과 귀족들의 생활이 전면에 등장한다. 사람들은 그들을 동경하고 자연스럽게 모방하며 그들이 선도했던 패션과 스타일은 유행이 된다.

 그렇게 시작된 미용 산업과 패션 등 전체적인 스타일을 위한 소품들은 하나의 산업이 되었고 그 중심에 선 사람들은 또다시 자본의 노예가 된다. 일상에서 부딪히는 소소한 옷에 대한 관심과 생필품에 가까운 물건들이 걸어왔던 길을 돌아보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목적이 되고 전부가 되어버린 현실은 어지러운 환각처럼 느껴진다.

 첨단 패션과 유행을 탄생시킨 루이 14세가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프랑스의 문화가 있었고, 그것을 흉내 낸 유럽의 문화가 탄생했다면 결코 기꺼운 마음으로 책장이 넘어가지 않는다. 하나의 현상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들이 필요하겠지만 마음 한 구석 삐딱한 시선을 지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쨌든 이 책은 패션과 유행에 관한 ‘스타일’에 대해 관심과 흥미를 가진 사람에게는 필요한 책이다. 루이 14세와 당시의 프랑스를 중심에 놓고 그 이면과 역사를 들여다보는 일은 역사에서 다루지 못한 부분들에 대한 꼼꼼한 정보와 흥미로운 이면사가 펼쳐진다. 스타일로 자신을 말하 수는 없지만, 그 사람의 스타일이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일상과 현실에서 만나는 일들에 대한 단순한 호기심으로 출발한 책들이 많다. 특히 여성들의 입장에서 매일 매만지는 머리나 뿌리는 향수 그리고 보석이나 거울 하다못해 접는 우산에 이르기까지 그 기원을 들여다보는 일은 재미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 책은 ‘그것이 알고 싶다’에 대한 대답과 같은 책이다.  ‘스타일, 그것이 알고 싶다’

 어떤 패션과 유행이든 실용적인 목적과 미의식에 바탕을 두겠지만, 그것을 누리고 향유할 수 없는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상상할 수 없는 가격과 소위 명품에 눈이 먼 사람들의 ‘욕망’에 대해서는 또 다른 책과 현실에서 그 답을 찾아야 한다. 정신 병리학적으로 접근해야 할 문제이기도 해서 재미있는 주제가 될 수 있겠다. 푸른 하늘과 하얀 구름, 추적 추적 내리는 빗소리로 충족되지 않는 사람들의 욕망의 실체를 들여다보는 재미는 책 속에서 직접 찾아야 한다. 이 책도 어떻게 볼 것인가는 결국 독자의 몫일 뿐이다.


070216-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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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꿀라 2007-02-16 1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고 갑니다. 설 잘보내시기를.......

sceptic 2007-02-21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도 건강하고 즐거운 날들 보내세요...
 
역사 미셀러니 사전 - 동서양을 넘나드는 거의 모든 것의 역사
앤털 패러디 지음, 강미경 옮김 / 보누스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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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나간 시간들에 대한 모든 일들을 적어 놓은 책은 있을 수 없다. 한 권의 책에 한 가지씩 나누어도 전부 담을 수는 없다. 어차피 모든 역사책은 취사 선택의 결과물이다. 객관적인 역사 서술 방법은 있을 수 없다고 믿는다. 그 역사가 어떤 관점으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듯 무엇을 적을 것인가에 이미 사관이 개입된다. 역사를 통해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는 어리석은 인간에 대한 무수한 충고들 속에서도 우리는 이미 오래된 미래를 간과하기 쉽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역사의 중심에 인간이 놓여야 한다는 것도 일종의 편견이다. 지나온 시간들을 인간을 중심으로 파악하는 것도 이기적인 인간들의 모습일 뿐이다. 수많은 시간들 속에서 얼마나 많은 것들이 명멸했겠는가. 앤터 패러디의 <역사 미셀러니 사전>은 조금 색다른 시각과 방법으로 역사에 접근한다. ‘동서양을 넘나드는 거의 모든 것의 역사’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책에 대한 자신감이라기보다는 특징을 드러낸다. 그렇다고 빌 브라이슨이 쓴 <거의 모든 것의 역사>을 연상하면 곤란하다.

 자연사, 문화사, 생활사, 과학사 등 네 가지 영역으로 나누어져 있는 이 책은 잡학 사전과 같은 성격을 띠고 있다. 깊이 있는 지식을 전달할 목적이 아니다. 사전이라는 제목을 달고 나왔지만 저자의 이름처럼 패러디와 풍자를 특징으로 삼고 있다. 재미있게 역사에 접근하자는 말이다. 머리 아프고 복잡한 이야기가 아니라 단순하고 쉽게 세상에 관한 역사를 조금씩 다른 시각과 방법으로 접근하자는 의도이다. 하나의 주제를 아주 짤막한 형식으로 정리해 놓는 방법으로 서술되어 있다. 누구든 쉽게 심심풀이용 혹은 잡학 상식 사전용으로 읽으면 된다.

 저자의 다른 책을 읽고 이런 방식의 글쓰기나 지식에 대한 접근 방식이 내키지 않는 독자라면 물론 읽을 필요가 없는 책이기도 하다. 역사를 수필로 풀어내는 논문을 쓰든 독자 입장에서는 형식보다 내용이 중요한 법이다. 간단하고 명료한 방식으로 핵심을 전달하기 보다는 가볍고 재치있게 전해주는 내용이 그리 달갑지 않다. 개인적인 취향이겠지만 다시 같은 형태의 책을 보고 싶은 생각은 없어진다.

 다만 이 책은 같은 대상이나 항목에 대해 다른 책에서 찾아볼 수 없는 전혀 다른 시각과 방법을 제시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도구’를 ‘인간의 부질없는 욕심을 실현시키는 수단’이라고 정의하거나, ‘화장실’을 ‘정보와 소식을 주고 받았던 모임 장소’로 설명하는 방식 등이 그렇다. 같은 사물에 대한 다른 설명이 가능한 것은 주관적인 판단이나 견해가 아니라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이다. 생각해 보면 모든 것에 대한 역사 서술 방식은 앤털 패러디처럼 독특하고 뚜렷한 관점이 아니라면 별 의미도 재미도 없을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가볍고 재밌는 잡학 상식 사전 이상을 기대하면 돈을 다칠 수 있다. 화장실에 비치해두고 읽을 만한 책이다. 저자의 목적이 그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강하게 든다. 역사를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는 수많은 방법 중의 하나를 선택했을 뿐이다.

070117-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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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꿀라 2007-01-19 2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고 갑니다. 한번 사서 봐야 겠네요. 행복한 주말 되세요.

sceptic 2007-01-21 0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심심풀이로 읽을만 합니다. 즐거운 시간들 보내세요.
 
초콜릿 이야기 - 이국적인 유혹의 역사 살림지식총서 251
정한진 지음 / 살림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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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전히 초콜릿과 아이스크림을 좋아한다. 달콤한 맛의 유혹과 부드러움에 대한 강렬한 이끌림을 떨치기 힘들다. 어떤 형태로든 초콜릿에 대한 기억들을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 외래 음식은 먹는 기호 식품이라기보다 하나의 상징이다.

보통 발렌타인 데이는 크리스마스와 더불어 제과 업체들이 노리는 대목이다. 19세기말 영국의 캐드버리사에 의해 시작된 발렌타인 데이의 선물용 포장 초콜릿은 이제는 보편적 현상이 되었다. 사랑을 고백하는 날에 초콜릿을 선물한다는 것은 그만큼 초콜릿의 맛과 향이 사랑과 닮았기 때문일 것이다. 달콤하고 부드러운 유혹은 초콜릿의 기원과도 무관하지 않다. 카카오 열매에서 분리된 씨앗을 갈아 마시는 초콜릿 음료는 멕시코에서 시작되었다. 잉카와 아스텍 족에 의해 신들의 음식으로 불리워진 이 음식은 콜럼부스가 1502년에 발견했지만 스페인 정복자 에르난 코르테스에 의해 본국에 전파된다. 이후 유럽으로 서서히 확산되었다.

이탈리아와 프랑스에 이어 영국과 네덜란드 스위스로 퍼져 나가면서 초콜릿은 특권층만이 향유할 수 있는 음료였고 주로 몸에 좋은 약용이나 최음제의 효력이 있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그래서 카톨릭에서 종교인들 사이에서는 오랫동안 논란이 되기도 한 음료이다. 지금 우리가 먹는 판형 초콜릿은 1830년경 영국 프라이사와 캐드버리사에 의해 생산되기 시작했다. 이후 밀크 초콜릿과 액상 초콜릿을 부드럽게 하는 ‘콘킹’ 기술이 개발되어 지금에 이르게 된다. 벨기에나 미국 등 전 세계에서 다양한 제품이 개발되었고 특히 1920년대 미국의 허시에서 대량생산되기 시작한 키세스 등에 의해 대중화 획일화되기 시작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은 병사들에게 군용식량으로 초콜릿 바를 지급한다. 육이오 전쟁을 통해 우리나라에도 초콜릿이 전해진다. 일반적으로 대량 생산된 초콜릿의 경우 설탕과 유제품의 함량이 많아 카카오 고유의 맛과 향을 느끼기 어렵다. 질 낮은 바닐라 향을 첨가한 초콜릿은 카카오에서 추출된 본래의 맛을 떨어뜨린다. 초콜릿은 당과류나 과자류로 변형되어 다양한 형태의 제품을 생산하기에 이르렀다.

얼마전 롯데 제과에서 나온 ‘드림 카카오 56’는 대량생산 초콜릿의 맛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켰다. 일본에서는 진작부터 56, 73, 85, 99 등 카카오의 비율이 상당한 초콜릿을 판매 했으며 카카오의 성분이 건강에 이롭다는 말 한마디에 판매량은 나날이 늘어가고 있다. 카카오 99% 초콜릿은 블랙에 가깝고 단맛은 거의 없으며 향이 강하고 거의 쓴맛에 가깝다. 차안에 두고 출출할 때 답답할 때 한 알씩 녹여먹는 비상 식량으로 손색이 없다. 드림 카카오 56은 자이리톨 이후 롯데의 대박 상품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책에는 초콜릿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종류 그리고 먹는 방법까지 다양하고 간단하게 소개되어 있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생리학과 심리학적 관점에서 초콜릿이 주는 의미를 살펴보는 부분이나 현재와 미래를 살펴보는 부분이 너무 소략해서 아쉽지만 전체적인 궁금증을 풀어주는 데는 손색이 없다.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음식이나 좋아하는 음식들에 대해 호기심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짧고 간단하게 읽어낼 수 있는 시리즈의 장점을 잘 살린 책으로 평가할 수 있다.

초콜릿은 여전히 달콤하고 부드러운 이미지로 남아있기를 바란다. 독특한 맛과 향을 지닌 다양한 제품들이 선보이고 다양한 가공 방법들이 생기겠지만 먹는 음식을 넘어서 하나의 상징이 되어버렸다. 사회적 기호로서 초콜릿을 대하는 방식보다는 맛있는 음식으로 입안에서의 미각으로 먼저 다가오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커피와 더불어 생산과정에서 아프리카 노예들의 강제 이주와 노동으로 점철되어온 역사를 생각하면 입맛이 쓰다.

초콜릿이든 아이스크림이든 뭔가 달콤한 맛이 생각나는 날이다.


070109-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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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꿀라 2007-01-10 0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늘은 초콜릿이나 단팥이 든 빵, 단 것을 먹고 싶어지는 밤이네요.
잘 읽고 갑니다. 행복하세요.

sceptic 2007-01-10 1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일 행복하게 보내고 싶어요...님도 오늘은 초콜릿 한 조각 드세요...
 
이이화의 한국사 이야기 1~22 세트 이이화의 한국사 이야기
이이화 지음 / 한길사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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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에게 있어 가장 큰 비극은 지나간 역사에서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한다는 데 있다. - 아놀드 토인비

   역사를 대할 때마다 내가 되새기는 가장 인상깊은 금언이다. 금붕어와 같은 인간의 기억력 탓일까? 왜 우리는 지나간 역사에서 현실적 문제들의 실마리들을 찾아내지 못하는 것일까?

   개인의 저작으로는 가장 방대한 저술로 볼 수 있는 이이화의 『한국사 이야기』는 모두 22권으로 완결되었다. 이 책의 저자인 이이화의 이력은 제도권에서 벗어나 있다. 제도적 규범에 따른 학문적 성취나 어느 교수 계보에 의한 편협성을 찾아 볼 수 없다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 서술에 있어 보다 자유롭고 새로운 관점을 지녔을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1권 『우리 민족은 어떻게 형성되었나』에서는 인류의 진화와 우리 민족과 뿌리를 찾아 단군과 함께 민족의 근본에 대한 탐구로 흥미롭게 시작된다. 2, 3권에서는 삼국과 가야, 4권에서는 『남국 신라와 북국 발해』를 다루고 있다. 이 책은 우리 나라 최초의 통일국가를 신라로 보아 ‘통일신라’라는 개념을 거부하고 있다.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은 결국 당의 힘을 빌어 신라가 통일했으나 북쪽에는 고구려의 후예들이 발해를 세워 완전한 통일로 볼 수 없다는 논리이다. 우리는 현재 김부식의 『삼국사기』와 일연의 『삼국유사』를 통해 삼국의 역사를 살펴보는 것이 일반적인 관점이다. 그러나 역사는 승리자의 편에서 서술되는 것이 당연하며 사관(史觀)에 따라 얼마든지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보다 객관적이고 분석적인 역사 해석이 다양하게 인정되어야 함을 알 수 있다. 

   5~8권은 고려시대의 역사이다. 『고려사』로 대표되는 역사를 바탕으로 지방 호족 세력이었던 태조 왕건으로부터 무신정권의 생성과정과 그 폐해를 당시 집권세력들간의 세력 다툼과 왕권의 측면에서 객관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또한 몽골의 침략과 30년간의 끈질긴 항쟁을 통해 우리 민족의 저력을 보여주는 대목은 차라리 처절했다. 생존의 몸부림과 백성들의 피해는 상상을 초월했다. 936년에 건국된 고려는 1392년 이성계의 역성혁명으로 457년만에 멸망하고 만다.

   9~12권까지를 조선 전기로 나누어 조일전쟁(1592년 임진왜란), 조청전쟁(1637년 병자호란)이 마무리되는 1645년까지의 역사를 서술하고 있다. 유럽의 중세에 해당하는 이 시기에 우리는 세종이라는 걸출한 임금을 배출하여 문화적 토대를 마련하게 되지만 일본과 7년간의 전쟁을 통해 뒤이어 뿌리깊은 숭명반청(崇明反靑)사상 때문에 실리외교를 멀리하여 청나라의 침입을 받고 삼전도에서 굴욕적인 항복을 하게 된다. 물론 이때에도 집권세력인 양반들의 좁은 국가관과 맹목적인 모화사상(慕華思想)이라는 명분 때문에 백성들은 피눈물을 흘리며 죽어간다.
 

  13~15권은 조선후기, 곧 17세기 중기(1646년)부터 18세기 후기(1800년)까지 150년 가량의 시대사를 담고 있다. 조선후기의 걸출한 두 임금 영조와 정조가 그나마 위안을 준다. 문화군주로 일컬어지는 정조의 개혁에 대한 열망과 문화적 역량에 힘입어 유럽의 르네상스에 견줄만한 변화가 있을 법하다가 죽음과 더불어 또다시 문벌정치에 휘말리게 된다.

   16~19권에서는 조선의 종말과 초기 한국의 근대사를 담았다. 뿌리깊은 당쟁과 파벌싸움, 지역간의 알력은 그 연원을 찾기 힘들 정도로 나라 전체를 뒤흔들었고 그 후유증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까지도 몸소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18세기와 19세기 역동하는 세계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조선은 흥선대원군의 천주교 박해와 쇄국정책으로 일관하다가 결국 힘의 논리에 의해 강제적으로 문을 열게 된다. 이 무렵 일본은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을 통해 근대화의 길로 접어들었으며 빠른 속도로 세계 열강들의 발달된 물질 문명을 받아들이게 된다. 또한 영국과 프랑스 독일과 러시아, 미국등은 제국주의 식민지 정책을 앞세워 중국의 문호를 개방하고 뒤이어 한국의 문을 두드리게 된다. 고종은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변화를 모색하지만 바닥난 국가의 재정과 낙후된 군사력 등 세계 무대에 주체적으로 안착하지 못하고 일본과 청의 간섭과 위협아래 예정된 수순처럼 결국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고 만다.

   20~21권에서는 한국사의 식민지 시대를 다루고 있다. 3·1운동을 위시하여 끊임없는 국내외의 독립운동과 친일세력의 모순속에서 결국 우리는 35년간 치욕스런 식민지 시대를 보내게 된다. 일본의 제국주의 야욕에 힘입어 제 2차 대전의 패전국으로 1945년 8월 15일 드디어 대한민국은 해방을 맞이하게 된다. 그것도 러시아와 미국의 분할점령이라는 또다른 식민지의 형태로 말이다. 정리하면,


1권~4권 : 선사시대부터 남국신라?북국 발해까
5권~8권 : 고려시대13권~15권 : 조선 후
16권~19권 : 조선 근대
20권~22권 : 식민지


로 나눠 총 6차분 22권으로 완간되었다.

  적지 않은 분량이지만 집권자와 승리한 자의 이야기들을 단순하게 서술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지루하지 않았다. 객관적이고 사실적인 せ?서술은 물론이고 소홀히 다루기 쉽지만 쉽게 접할 수 없는 당시 민중들의 삶의 모습을 그려내는데 애쓴 흔적이 역력하며 놀이와 풍속 등 당시의 생활의 한 단면들을 엿볼 수 있는 내용이 많아 실감나는 역사로 읽혀졌다. 학교 교육을 통해 굳어져버린 역사적 용어와 객관적이고 분석적인 이해없이 단순 암기 내지 반복 숙달했던 역사적 사실들을 되짚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음은 물론이다.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일관된 관점으로 우리 역사 전체를 조망해 볼 수 있었다는 것은 가장 큰 수확이었다. 특히 식민지 시기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 벌어졌던 민족진영과 공산주의 진영은 물론 무정부주의를 표방했던 인사들의 행적까지도 가감없이 비중있게 다루어 새로운 시각으로 독립운동의 일면들을 살펴볼 수 있었다.

   내년이면 해방 60주년을 맞는다. 일본의 식민지 지배로부터 벗어난지 겨우 60년. 이 짧은 격동의 세월속에서 대한민국은 경제 발전과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으로 몸살을 앓으며 한걸음씩 힘겹게 역사의 수레바퀴를 굴려왔다. 역사는 반복되는 것이며 과거는 미래의 거울이라고 믿는다. 그렇다면 21세기 벽두에서 우리가 고민해야할 우리의 미래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우리는 지나간 역사를 똑바로 읽어 왔으며 그 교훈들을 차치하고라도 과거를 정리하고 반성하는 모습으로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가? 부끄럽고 안타까운 현실이다. 소위 모든 위정자들은 시대의 소명을 부르짖기 앞서 현재의 우리들 모습을 과거를 통해 돌아보고 이땅의 민중들의 모습을 직시했으면 좋겠다는 작은 소망을 가져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부터의 개혁과 투쟁은 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며 소외된 이웃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나눔의 실천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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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읽는 세계사 - 거꾸로읽는책 3 거꾸로 읽는 책 3
유시민 지음 / 푸른나무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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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이 되면 가끔 TV 리모컨으로 장난을 한다. 그러다 우연히 ‘도전 골든벨’이라는 프로를 가끔 본다. 파주의 한 여고생인 지관순은 이름만큼이나 특별하게 어려운 환경속에서 생활하면서도 역사와 자신의 미래에 대해 자신감과 희망을 잃지 않는 소녀로 소개 되었다. 골든벨을 울리게 한 마지막 문제의 정답이 ‘드레퓌스 사건’이었다. 역사에 관심이 깊거나 유시민의 베스트 셀러 ‘거꾸로 읽는 세계사’를 읽은 것이 틀림없다. 그녀는 이제 역사학을 전공하는 여대생이 되었다. 언론을 통해 가끔 그녀의 소식이 전해지기도 한다.

88년에 초판이 나온 이 책은 열혈 지식인 청년의 지적 반항이라고 보기엔 너무나 신선했다. 95년에 개정판이 나온것을 2004년에 다시 개정판을 내놓았다.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소련 동유럽의 사회주의 체제가 무너졌고 베를린 장벽이 허물어지고 독일이 통일 되었다. 이 역사적 사건들을 나는 TV화면을 통해 지켜보았다. 인류 역사의 현장에 가보고 싶은 욕망만 가지고 있다. 10년 안에 가볼 수 있을까?

제 1차 세계대전과 러시아의 10월 혁명, 히틀러, 팔레스타인, 4․19, 베트남 전쟁, 말콤X, 독일 통일들 굵직한 세계사의 단면들을 소개한 교양 서적으로서 의미를 갖는다면 이 책은 별 볼일이 없었을 것이다. 그저 상식이 부족한 사람들을 위한 안내서로 그칠 수도 있을 테니까. 역사에 관한 담론과 시선은 그 시각이 가장 중요하다.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해답은 없을 수도 있다. 유시민은 나름대로 ‘낯설게 바라보기’ 혹은 ‘뒤집어 보기’ 방법을 통해 세계사를 거꾸로 읽는다고 표현하고 있다. 무비판적이고 맹목적인 역사적 사건들의 수용자세를 탓하기 전에 다양한 시각에서 접근하고 있는 방식이나 관점들을 소개하는 책들이 더 풍부해지기를 기대해본다.

100분 토론 사회자를 거쳐 금배지를 달고 노빠 부대의 선봉에 선 유시민을 본다. 스스로의 정체성을 사회민주주의라 밝힌 바 있는 그의 행동과 변화들을 지켜보는 것은 불량스런 시선으로 한 인간을 관찰하는 음험함이 아니라 애정과 신뢰를 담아 보내는 우리 사회의 작은 도전과 실패이기도 한다. 그 작은 점들이 모여 선을 이루고 면을 이룬다면 3차원의 공간이 마련될 것이고 조금씩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할 수 있는 건강성을 담보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서로 다른 이념과 의견들이 받아들여지고 공동의 선을 위해 한 발 물러설 줄 아는 정치 풍토와 발전을 위한 토론과 인식의 전환, 잘못된 과거에 대한 반성과 미래에 대한 희망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똥통에 빠져 허우적대는 정치인들의 몫이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과 나의 책임이 아닐까 싶다

 

2005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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