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강화
이태준 지음, 임형택 해제 / 창비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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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가 이태준의 문장강화(文章講話)는 시대적 의미를 벗어날 수 없다. 1939년 ‘문장’지에 연재되던 글들을 이듬해 출판했고, 1946년 증정판을 출판해으며 1988년 창비에서 신판을, 그리고 2005년 개정판을 냈다. 60여년간 끊임없이 이 책이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는 쉽고 간결한 내용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이 책은 문장과 작문에 관한 기초 입문서 정도의 내용이다. 문장과 언어의 차이를 비롯해서 문장의 종류, 산문과 운문의 차이, 퇴고의 이론과 실제, 문체 등 다양하고 꼼꼼한 실용적 글쓰기에 대해 정리하고 있다.

  시나 소설류의 문학적 글쓰기를 따로 다루지 않았으나 기본적인 글쓰기에 대한 전반적인 형식과 내용은 골고루 포함되어 있다. 물론 이것이 저학년용 글쓰기 교본 정도로 취급될 수는 없다.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고려할 때 우리말에 대한 관심과 글쓰기에 대한 최초의 교본 역할을 할만한 책이 전무했으리라는 짐작은 어렵지 않다. 이태준의 계몽적 의도가 일부 포함되어 있겠으나 해방을 전후해서 우리말과 글에 대한 안내와 길잡이 역할을 톡톡히 할 수 있었다는 추측은 어렵지 않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풍부한 예문이다. 딱딱한 이론서가 범하기 쉬운 오류를 극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을 극복했다. 본격적인 현대문학의 개화기였던 1930년대의 작품들의 풍부한 인용과 고전문학에서 빌려온 예문들이 풍성하다. 실제 글쓰기 상황에서 어떤 형태로 나타나는지, 이론은 어떤 형태로 실제에 적용되는지를 적절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당대의 문장가들의 문장을 통해 글쓰기의 실제를 보여주는 방법은 가장 적절한 형식이 아니었을까 싶다.

  60여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어휘와 표현이 많이 바뀌었고, 특히 빈번하게 사용되던 한자어 표현이 사라졌기 때문에 예문들이 오히려 어렵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임형택 교수는 한자어에 대한 명확한 해설과 의미를 밝히는 해제 작업을 통해 이 책을 현재화했다. 원본에 손상이 갈만한 시도를 하지 않았다고 분명히 밝히듯이 이태준의 의도나 내용이 주는 간결하고 담백한 형식이 훼손되지는 않았다.

  일상 생활에서 끊임없이 부딪히는 글쓰기는 전문가만의 영역이 아니다. 일기에서 이메일, 하다못해 이런 아마추어 서평과 독후감에서 비롯하여 각종 글쓰기의 영역과 범위가 넓어진 이 시대에 학교교육의 문제점을 새삼 거론하고 싶지는 않다. 깊이 생각하고 바르게 글을 써서 자신의 생각과 정서를 올바로 표현할 수 있는 기본적인 국어교육의 부제도 탓하고 싶지 않다.

  글쓰기의 기초와 개념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들의 지침서 역할을 해 줄 수 있는 책이 우리에겐 다양하게 필요하다. 이 책이 전부를 해결 해 줄 수는 없지만 여전히 의미를 갖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어떤 상황에서든 글을 쓰는 행위는 전문가들만의 영역이 아니며 일상 속에서 그 수많은 글쓰기가 오히려 소중하고 삶의 일부를 이룬다고 믿는다. 이태준의 ‘문장(文章)에 대한 이야기식 강의는 그래서 편안하게 독자들을 글쓰기의 세계로 안내한다. 가볍고 기꺼운 마음으로 글쓰기의 ㄱ부터 시작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며 나의 초보적인 글쓰기를 돌아보는 반성의 기회를 삼을 수 있었던 것은 물론이다.


2005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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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지 10장을 쓰는 힘
사이토 다카시 지음, 황혜숙 옮김 / 루비박스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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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손가락이 저주스러울 때가 있다. 무슨 생각으로 이 책을 주문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사이토 다카시의 <원고지 10장을 쓰는 힘>은 한심스럽다. 주먹만한 글씨와 수준이하의 삽화 그리고 각 장의 제목을 한 페이지로 잡아 156페이지 분량의 한 권의 책으로 묶은 재주가 용하다.

  글쓰기 전략에 관한 지침서나 활용서가 아니라 필자가 현재 운영하고 있다는 학원에서 직접 활용하고 있다는 초등학생용 교재로 복사해서 나눠줄 정도는 되겠다. 이런 식으로 많은 책을 쓰고 그 책들을 출판한다면 우리 모두 글쓰는 일에 종사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책 내용에서 어쩌면 이런 반응을 기대했는지 모르겠다. 모든 사람이 일정 분량의 글을 쓸 수 있으며 끊임없는 노력과 전략적 훈련을 통해 원고지 10장을 완성하면 아무리 긴 글도 쓸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는 설명. 무려 9,500원. 왠만하면 책값 얘기는 잘 안하는 편인데 입맛이 많이 쓰다.

  개인적으로 글을 잘 쓰든 못쓰든 전문적인 글쓰기가 아닌 다음에야 무엇이 중요하랴. 솔직하고 진실한 이야기들을 가슴에서 풀어놓고 삶을 풍요롭게 하는 과정이라고 믿는다면 행복하지 않을까싶다. 물론 경우에 따라 실용적 목적의 글쓰기가 필요한 경우는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이 책에서는 일반적인 글쓰기 능력을 향상 시키는 방법을 소개할 목적이었지만 남는게 없다.

  그래서 여전히 실용과 거리가 먼 기억력의 한계를 극복하고 사색의 도구로서 글쓰기를 선택한 많은 사람들에게는 의미없는 책이 될 듯하다. 여러권의 책을 주문하다가 끼워넣은 나의 실수였다는 말로 책의 평가를 대신한다.

  2001년부터 거의 모든 책을 예스 24에서 주문하기 시작했고, 읽은 책에 대한 간단한 서평을 올리기 시작한 것은 이제 겨우 8개월 남짓된다. 머리가 나빠 오래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 책을 읽을 때 좀 더 꼼꼼하고 내면화된 독서를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의 서평 원칙은 단순하다. A4 2매 이내 그리고 1시간 이내. 1,600자로 제한되어 서평이 너무 길다고 짤리는 겨우가 있지만 그런 경우엔 대충 짤라고 올리고 나머지는 블로그에서 수정을 눌러 전부 올리며 된다. 사실 그렇게 긴 서평을 쓴 것도 많지 않고 쓸 능력도 안되지만. 그리고 시간의 문제다. 잘 쓰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시간이 많이 투자되고 부담이 되며 또하나의 일이 되어버릴 듯한 생각에 1시간 이내의 원칙을 고수한다. 그래서 나중에 우연히 다시 읽어보면, 오탈자도 많고 문맥의 호응이 엉망인 경우도 많다. 하지만 어떤가, 이렇게 자유로운 글쓰기가 훨씬 나를 행복하게 한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누굴 위해 글을 쓸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인물과 사상 20 - 한국 문학의 위선과 기만>에서 강만길 교수가 지적한 문단 권력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 떠오를 때가 있다. 책을 선택하기 위해 서평들을 읽다보면 그렇다. 주례서평과 비판없는 상찬들이 그렇다. 좋은 책들이 대부분이라서 그렇겠지만 정확한 평가가 아쉬울 때가 많다. 여러 계층의 독자들을 위해 나름의 평가가 더해진다면 뒤사람들에게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

  이 책의 저자가 요구하는 ‘원고지 10장을 쓰는 힘’은 개인차가 심하다. 원고지 10장이면 2,000자다. 대략 A4 두 장 분량이다. 내가 자주 쓰는 패턴이다. 그래서 이 책에 관심을 갖고 주문했을 것이다. 자기만의 개성과 취향대로 일상적인 글쓰기 속에서 문체를 만들어내고 알맹이를 채우기 위해 부단한 독서로 정신을 살찌우는 것만이 방법이라고 믿는다. 저자는 뭔가 시작하려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려고 했을 것이나 책으로 묶어낸 방법이나 내용이 맘에 들지 않는다. 실제 예문을 통한 글쓰기 방법을 제시하거나 특별한 노하우가 없는 일반론 수준에서 접근해서야 누구에게 도움이 될까 싶다.

 


2005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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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멋대로 써라 - 글쓰기.읽기.혁명
데릭 젠슨 지음, 김정훈 옮김 / 삼인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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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시절 ‘심상사’에서 ‘청소년 문학 창작학교’ 캠프에 갔을 때 박동규 교수를 비롯한 많은 시인과 소설가들의 이야기는 하나의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었다. 첫째 고정관념을 버려라. 둘째 낯설게 바라보라. 물론 내가 나름대로 얻어낸 결론이지만 문학적 글쓰기의 기본 토대라고 생각한다. 반대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했거나 낯설지 않은 작품은 감동을 주지 못했다. 그 후로 접하게 되는 시나 소설을 평가하는 잣대가 되었고 지금도 가끔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해 생각할 때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말들이다.

  4차 교육과정 시절이었다. 교과서는 ‘바이블’이었고 마르고 닳도록 암기하고 또 외우면 된다. 교과서 이외의 지문은 학력고사에 출제된 적도 출제될 필요도 없던 시절이었다. 신동엽의 <금강>을 밤새워 읽지 않는 대학생의 되지 말라는 고 3 담임이었던 국어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대학보다 <금강>을 먼저 만났다. 인생이 도움이 될만한 국어 교육과 글쓰기 교육은 그 후로 단 한번도 만나보지 못했다. 스스로 찾아 나서지 않으면 우리 나라의 교육 과정상 정상적인 글쓰기 교육을 받는 것은 불가능하다. 고교 교육 과정상 ‘쓰기’의 심화 과목인 ‘작문’이라는 과목이 있지만 대개의 경우 고 3에 배치해서 언어 영역 문제집을 풀거나 ‘작문의 절차 5단계’의 지식 전달 교육으로 끝난다. 초등학교 시절 일기와 중학교 시절 의무적인 독후감 제출이 전부로 기억된다.

  열악한 글쓰기 교육이 현재도 다름없음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체계적이거나 전문적인 글쓰기 교육이 없거나 불가능한 현실을 비추어 볼 때 대입에 반영되는 ‘논술’ 시험은 국민 전체가 암묵적으로 용인하는 사기극이다. 고등학교 과정에서 가르칠 수 없거나 ‘작문’을 선택하지 않으면 배울 기회조차 없는 ‘논술’을 언제 누가 가르치고 배워야 하나? 글쓰기를 통해 그 사람을 판단한다는 취지에 적극 동감한다. 하지만 현실적 대안과 방법론의 문제를 간과할 수 없다. 모두가 고민하고 방법을 바꿔야 한다.

  데릭 젠슨의 <네 멋대로 써라>의 가제를 ‘어떡하면 안 가르칠까’였다는 후기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동의한다는 말이다. 글쓰기는 삶의 모습이어야 하며 사고 과정의 반영이어야 한다. 붕어빵틀처럼 동일한 방식의 주입식 교육을 받고 부모로부터 일찍부터 경제교육이라는 미명아래 자본주의 속성과 경쟁 원리를 몸에 익힌 학생들은 수입과 직결된 직업을 선망하며 때로는 어른보다 더 속물적 성향과 배타적 이기주의를 드러낸다. 지나치게 부정적인 견해일까? 그렇지 않다.

  데릭 젠슨은 높이 뛰기 선수로 활약했으며 캘리포니아 북부 해안가에서 살면서 산업화로 인한 문명이 자연을 파괴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고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심각한 눈으로 바라볼 줄 아는 선생이자 농부이며 양봉업자이기도 하다. 여러 대학과 교도소 등에서 글쓰기를 가르친 방법과 내용을 아주 쉽고 자연스럽게 풀어 나가고 있다. 항목별로 설명하고 있지도 않으며 특별한 방법을 제시하지도 않지만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가 제시하는 첫 번째 글쓰기 원칙은 ‘읽는 사람을 지루하게 하지 마라’는 것이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무척 어려운 일이다. 글의 종류와 쓰는 목적과 방법에 따라 다르겠지만 지루하지 않은 글을 읽고 싶은 마음은 모든 사람의 공통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지루하지 않은 삶과 생각을 끊임없이 이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다르게 바라보고 비판적으로 생각하며 조금 더 깊이 고민하는 방법이다. 다양한 방식으로 학생들과 실제 수업 사례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글을 쓰고 다듬는 방법의 핵심 원리는 경험적, 실천적 글쓰기라고 말할 수 있다. 자발적인 글쓰기가 선행되어야 하며 진심을 담아야 하고 온몸으로 글을 쓰되 자신만의 이야기를 해야한다.

  줄쳐진 노트의 줄을 무시하고 대각선으로 길게 편지를 썼던 시절이 있었다. 파란색 볼펜으로 반듯한 사각형 노트나 편지지를 대하는 마음은 누구나 답답하다는 것이다. 일정한 형식과 동일한 방식의 글쓰기는 공장에서 구어낸 공산품처럼 재미없다는 것이 저자의 말이다. 삐딱하게 쓰려면 삐딱하게 바라보아야 한다. 고개를 5°쯤 기울이고 다른 각도와 시선으로 바라보면 된다. 글쓰기의 시작은 거기서 부터다. 현상이 아니라 본질을 파악하려는 노력, 사실이 아니라 진실을 알고 싶은 욕망,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나만의 무엇인가가 가슴에서 폭발하지 않으면 쓰지 않는 편이 낫겠다.

  일상적인 글쓰기는 우리의 생활이다. 이메일을 주고 받으며 하다 못해 문자를 보내고 친구에게 메모를 남기고 일기를 쓴다. 모두가 소중한 개인의 기록이며 의사 표현 행위이고 생각과 삶의 반영이다. 두려워하?말고 저자의 말대로 멋대로 써야 한다. 그렇게 할 것이다.


2005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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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인이 되기 위한 즐거운 글쓰기
루츠 폰 베르더. 바바라 슐테-슈타이니케 지음, 김동희 옮김 / 들녘미디어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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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살아가면서 부딪히는 용어들 중에 개념 자체가 모호하거나 구분하기 힘든 것들이 있다. 이를테면 ‘교양인’이라는 단어가 그렇다. 학력으로 구분하는 것도 불가능하고 지식의 양이나 범위로 구분하는 건 더욱 불가능하다. 객관적으로 시험을 만들어 ‘교양인’ 자격증을 줄 수도 없다. 나는 누가 교양인인가하는 의문을 갖는다. 루츠 폰 베르더와 바바라 슐테-슈타이니케가 공저한 <즐거운 글쓰기>의 부제를 ‘교양인이 되기 위한’이라고 되어 있어 한참을 생각해 보았다. 원제는 ‘Schreiben von tag zu tag’이니 우리말로 간단하게 ‘매일 매일 글쓰기’ 정도가 된다. 그렇다면 우리 나라 사람들은 교양인이 되기 위해서 글을 쓴다는 말인가. 말도 안되는 이야기인줄 알면서도 출판사에서 제목을 그렇게 정한 이유는 대다수 사람들의 의식을 반영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혼란스럽다.

  글은 아무나 쓴다. 전문적인 글쓰기를 하는 사람들은 책임감 있게 써야 하고 사회적 영향이나 독자를 고려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이 책에서도 언급했듯이 작가가 되기 위한 글쓰기가 아닌 다음에야 어려워 할 것은 없다. 다만 마음 속에 부담으로부터 벗어나 그저 자판을 두드리거나 펜을 잡고 손을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모든 것들은 스스로 배워 나가고 조금씩 발전해 나가는 것이 자연스럽다. 특히 일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 책에서 배울 것은 단 한가지 매일 써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길이요 진리다.

  책의 구성 또한 간단하다. 문학적인 글쓰기, 치료적인 글쓰기, 철학적인 글쓰기가 핵심 내용이다. 그러기 위한 준비 단계를 설명하고 매일 매일 써야할 주제나 고민할 내용을 제시한 후 다음 날로 넘어간다. 말하자면 혼자 글쓰기의 진수를 보여주는 책이다. 글을 쓴다는 것 자체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고 있거나 막연한 공포를 느끼는 사람들에게 추천할 만한 ‘글쓰기 자습서’ 정도로 이름을 붙혀 둘 만한 책이다.

  산다는 것은 생각한다는 것이다. 어떻게 바라보고 무엇을 지향하며 어디서 행복을 느끼고 생의 참된 의미가 뭐라고 생각하는가. 모두 다른 답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것이 인생의 목표라는 이름으로 표현되기도 하고 가치관이나 인생관이라는 제목으로 일기장에 적히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생각이 아니라 실천일 것이다. 누구나 안다. 하지만 쉽지 않다. 그 실천 방법 중의 하나가 글쓰기라고 두 사람은 우리에게 말해준다. 써라. 일단 써라. 그리고 쓰면서 생각하고 생각하면서 써라. 인생이 달라지고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질 것이며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자아’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무엇을 쓰냐고 묻는 사람에게 권한다. 일기를 쓰라고.

  책에서 권하는 방법대로 매일 정해진 분량이나 내용을 따라 글쓰기를 하게 되면 많이 달라질 것이라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정해진 날짜별로 세 유형의 글쓰기를 대략 합해보면 250여일 정도가 소요될 것이다. 나머지 연습과 도움말을 참고하면서 혼자서 이 책을 완벽하게 실천하는 데 1년 정도의 계획을 잡으면 되겠다. 물론 철저하고 꼼꼼한, 학창시절 모범생으로 자부하던 사람의 경우다. 그렇지 않다면 대략 훑어보고 이런 방식으로 글쓰기가 진행되며 사고 과정에 유의하는 정도로 받아들이면 될 듯싶다. 글쓰기의 궁긍적인 목적과 방향만 정해진다면 사실 문제될 것이 별로 없다. 다만 생의 감동을 적어보거나 자신을 치유하고 철학적인 글쓰기를 통해 ‘자아’를 찾아보려는 노력을 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책이기 때문에 ‘교양인이 되기 위한’이라는 다소 애매한 부제가 붙지 않았나 싶다.

  어쨌든 우리는 거의 매일 글을 쓴다. 문자를 쓰든, 이메일을 쓰든, 쪽지나 메모를 쓰든, 일기를 쓰든 아니면 창조적인 글을 쓰든 뭐든 쓴다. 하다못해 표현하지 않을 뿐 머릿속에라도 매일 쓴다. 쓴다는 행위는 사고 행위의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그 행위들을 통해 변화된 나의 모습과 내안의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 글쓰기의 진정한 의미가 아닐까 싶다. 물론 작가가 되기 위한 사람들이나 전문적인 글쓰기가 필요한 사람들은 또 다른 노력과 시도가 필요하겠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편안하게 시작하면 될 일이다. 특별한 비법은 없다. 이 책의 제목처럼 매일 쓰는 수밖에.


2005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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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혹하는 글쓰기 - 스티븐 킹의 창작론
스티븐 킹 지음, 김진준 옮김 / 김영사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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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하늘이 짙은 먹구름을 껴안고 있다. 차가운 가을비가 내렸고 아침 안개가 짙게 하루가 시작되는 날 사람들은 대부분 내일을 계획하기보다 과거의 시간을 더듬는 일이 어울린다고 생각할 것이다. 따끈한 커피와 감미로운 음악도 좋고 적당한 속도로 국도를 달리는 일도 어울리는 날이다. 시간을 여행하는 가장 좋은 방법 중의 하나가 글쓰기다. 여전히, 살아야 한다면 글쓰기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유혹하는 글쓰기on writing>라는 스티븐 킹의 책에도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이다.

  최근의 글쓰기에 관한 책들을 읽고 있는 중이지만 이 책은 가장 미국적이고 상업적이다. 우선 이 책은 소설 작법에 관한 실전 교범이라 할만하다. 모든 글쓰기는 동일한 측면이 있다. 그 원칙과 방법들에 대해서도 스티븐 킹은 가장 정확하고 쉽고 편안하게 설명해 준다. 그것은 곧바로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소설 창작론으로 연결된다. 먼저 단숨에 그의 글들이, 그의 책이 읽히는 이유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이 책의 구성과 문체가 놀랍다. 스티븐 킹은 먼저 ‘이력서’를 통해 자신의 유년시절과 작가로 살아가는 현재의 모습까지 솔직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연장통’을 통해 글쓰기의 도구인 어휘와 문법에 관해 명확하게 제시한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핵심인 ‘창작론’에서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고. 실제 상황에서 나타나는 문제점과 초보자가 범할 수 있는 오류들을 꼼꼼하고 알기쉽게 지적해 준다.

  소설을 써서 대중적인 작가가 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지침서로서 손색이 없다. 하지만 몇가지 염두해 둬야 할 문제가 있다. 우리 나라의 문단 실정과 상황, 출판계의 출판 관행들과는 동떨어진 그의 경험과 노력들은 우리에게 적용시킬 수 없다. 또한 <유혹하는 글쓰기> 자체가 또 하나의 소설이다. 솔직하게 쓰라거나 많이 읽고 많이 쓰라거나 혹은 쓸데없는 부사를 쓰지말고 연습을 게을리하지 말고 매일 쓰며 배경스토리는 중요하지 않다거나 대화를 쓸 때 독자가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주라거나 하는 등의 이야기는 상식선에서 알만한 내용들이다. 말하자면 스티븐 킹은 글쓰기에 관한 책도 이렇게 재미있고 흡인력있게 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듯한 느낌이 든다. 그의 글은 그만큼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그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지루하지 하게 하지 마라고 수없이 외쳤던 <네 멋대로 써라>의 데릭 젠슨의 외침부터 스티븐 킹의 가르침대로 많이 읽고 많이 쓰고 연습을 거듭하고 몇가지 유의사항을 염두에 두면 작가가 될 수도 있을 법하다. 하지만 그들은 작가의 역량에서 중요한 사실들을 언급하지 않은 느낌이다. 물론 처음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으로 가득한 이야기만을 하지는 않았다고 하더라고 자신을 점검해 볼만 충고와 고언을 아끼지 말았어야 한다. 글은 아무나 쓰지만 모두 다 작가가 되는 건 아니지 않는가.

  무엇을 쓸 것인가, 나는 왜 써야 하는가, 나는 쓸 능력이 있는가 하는 아주 단순하고 근본적인 질문에 부딪히면 글을 쓸 수 없게 된다. 물론 이 문제를 해결해야만 글을 쓰겠다는 억지도 우습지만 고민하지 않는 글쓰기는 있을 수 없다. 자기 만족을 위해 스티븐 킹의 말대로 글쓰는 것 자체가 즐겁고 유쾌하며 행복해지기 위해서만 글을 쓸 수는 없는 것이다. 대중적 인기로 엄청난 판매량과 영화 판권등으로 돈방석에 앉아 40여권이 넘는 소설을 펴낸 작가의 글쓰기에 대한 생각은 나름대로 의미도 있고 실전에 도움이 될만한 이야기도 많지만 소설처럼 읽고 서너 마디를 기억할 정도 이외에는 남는게 별로 없다.

  <미저리>, <그린마일>, <쇼생크탈출> 등 재미있게 보았던 영화의 원작자가 쓴 글쓰기에 관한 책에 관심이 가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앞서 언급한대로 재밌는 ‘소설 창작론’에 관한 소설을 읽은 느낌이다. 그것이 스티븐 킹의 의도였다면 이번에도 그는 성공했다. 가상 독자를 설정해 놓고 이야기를 진행시켜 나가는 데는 분명히 상업적 영향력과 판매부수를 염두에 둬야 한다. 킹 자신은 돈을 위해 글을 쓰지 않았다고 쓰지 말라고 말하고 있지만 그가 말하는 글쓰기 방식은 철저하게 자본에 기대고 있다. 물론 어떤 작가도 독자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누군가에게 읽힐 목적으로 글을 쓴다고 하더라도 킹이 제시하는 방법과 목적에는 동의할 수 없다는 것이다.

  글이라는 형식과 책이라는 매체에 대한 시선과 목적이 사뭇 다른 사람들의 다양한 책들이 요즘 재밌게 다가온다. 이태준의 <문장강화>처럼 철저하게 고답적인 방식의 글쓰기 강의가 있는가 하면 같은 소설가이면서도 문화적 토양과 시대가 다른 소설가의 글쓰기에 관한 견해는 많은 차이가 있다. 독자들은 다만 내가 목적한 글쓰기의 방향과 시선을 유지한 채 다양한 법들을 섭렵하고 내 몸에 맞는 옷과 펜을 고르고 써야겠다. 누구나 글을 쓰면서 살아가지만 모두가 다 작가가 될 필요는 없다. 내 글쓰기의 목적과 방향은 무엇인가 점검해 볼 필요가 있는 대목이다.


2005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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