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문장 나쁜 문장 살림지식총서 376
송준호 지음 / 살림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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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느끼고 생각하는 존재다. ‘느낌’과 ‘생각’이야말로 삶의 본질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글은 살아가면서 얻은 생각과 느낌을 정리해서 표현하는 중요한 방식이다. 다양하고 풍부하게 느끼고 체계적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힘의 원천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진정 인간다운 삶은 글쓰기에서 비롯된다. - P. 3
 

  문고판의 특징과 효과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소매물도 등대섬에 올라본 사람과 못 올라본 사람.’ 통영에 간다는 말에 친구가 장난스런 문자를 보냈다. 이런 식의 장난으로,「삼중당 문고」를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으로 나눌 수도 있다. 나이를 묻는 것일 수도 있지만 책이 많지 않던 시절에 지적 호기심과 문학에 대한 열정을 채워주던 추억의 문고판으로 기억하는 분들이 많다. 장정일의 시 ‘삼중당 문고’를 읽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세대와 그렇지 않은 세대로 나누어진다는 것은 또 하나의 농담이다.

  이렇게 문고판은 책이 등장한 이후 세계 여러 나라에서 싼 가격에 다양한 상식과 읽을거리를 제공한다. 영국의 ‘펭귄북스’가 문고판의 원조에 해당하며, 독일의 ‘레클람문고’, 프랑스의 ‘크세주문고’가 대표적이다. 시공사의 시공디스커버리총서가 된 프랑스 갈리마르 출판사의 ‘발견 총서’등이 국내에 번역되기도 한다. 70~80년대 호황을 누린 문고판은 명맥을 유지하다가 최근들어 다시 각광을 받고 있다. 페이퍼백이 원형이지만 다양한 판형과 독특한 시리즈를 구성해서 독자들을 사로잡는 경우도 많다. 가격과 판형, 분량에 따라 어디까지 문고판으로 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저렴한 가격과 휴대의 편리성으로 인해 사랑받는 문고판의 계속되지 않을까? ‘문고판 시리즈의 가능성(http://blog.naver.com/amelrian/150001598908)’을 정리해 놓은 블로거의 글을 참고해도 좋다.

  400권을 눈 앞에 두고 있는 ‘살림지식총서’는 ‘책세상문고’와 함께 이제 대표적인 국내 문고판 시리즈가 되었다. 100페이지를 넘지 않는 적은 분량에 한 가지를 주제를 간명하게 풀어내고 있기 때문에 부담없이 가볍게 접근할 수 있는 장점을 지닌다. 커피전문점의 커피 한 잔 값도 안 되는 가격으로 책 한 권을 구입해서 읽는 동안 사람들은 책과 친해지고 책읽는 습관을 들일 수 있다. 이 시리즈는 ‘네이버 지식in’과 닮았다. 다양한 주제와 편안한 접근성으로 독자들이 손쉽게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프라인 서점을 둘러보다 몇 권쯤 들고 나와도 부담이 없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많다. 제한된 분량 때문에 상세한 설명이나 폭넓은 접근이 불가능하다. 또한, 전문적이고 심층적인 내용을 다루기 어렵다. 말하자면 이 시리즈는 본격적인 책읽기를 위한 관문이거나 가볍고 경쾌한 책읽기를 즐길 수 있는 너른 마당으로 활용하면 좋다.


글쓰기는 인간다운 삶의 시작이다

  이 시리즈의 376권 『좋은 문장 나쁜 문장』은 실전 글쓰기에 필요한 연장통이다. 저자는 대학에서 ‘소설창작’과 ‘글쓰기지도법’을 강의하고 있다. 이론적 토대도 관념적 논쟁도 없다. 정확한 단어와 정확한 문장이 무엇인지 말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읽는 동안 무엇보다도 내 글들을 돌아보았다. 글을 쓰는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하는 내용이기 때문에 군더더기 없이 명확한 원칙들이다. 기본에 충실하지 못하면 개성적인 글쓰기도 불가능하다. 변화는 단단한 기본기를 거쳐 만들어지는 것이다. 자신만의 문체는 정확한 문장쓰기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지극히 평범한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참신한 단어와 세련된 문장을 쓰고 나면 이제 연결 문제가 남는다. 당연한 순서지만 단어에서 문장으로 그리고 하나의 단락으로 이어진다. 단락이 모여 한 편의 완성된 글이 되는 동안 부분과 전체는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문장부호와 띄어쓰기까지 잘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면 이제 자신만의 글이 된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거창한 문장론이나 글쓰기 비법을 말하지 않는다. 모든 운동의 기본은 체력이다. 잘 뛰지 못하는 축구선수나 물을 두려워하는 수영선수를 상상할 수 없듯이 단어와 문장의 정확한 활용 즉, 우리말의 사용법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없다면 글을 잘 쓰는 것은 불가능하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기초 체력을 길러준다. 정확하고 참신한 단어, 맛깔스럽고 읽기 좋은 문장이란 무엇인지 알려준다. 실제 생활에서 글을 쓰지 않는 사람은 없다. 시인이나 소설가만 글을 쓴다는 생각은 착각이다. 거의 모든 사람은 매일 글을 쓴다.

  읽고 쓰는 능력은 현대인의 생존 도구와 같다. 좋은 문장과 나쁜 문장이 무엇인지 구별할 줄 알고 좋은 문장을 쓰는 연습을 해야 한다. 처음부터 뛰는 사람은 없다. 걷는 연습을 하고 조금씩 연습해보자. 이 책은 그 연습을 위한 첫걸음이면서 기본적인 원칙이다. 익히 알고 있는 내용들, 자주 틀리는 단어와 용법들이 나열되기도 하지만 자신의 글을 다시 점검하고 글을 쓸 때 활용할 수 있는 실용서이기도 하다. 자, 그럼 이제 뭐든 써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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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이 2010-01-25 0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체의 기초체력은 젬병이지만 글쓰기의 기초체력을 위해 저도 읽어봐야겠습니다.

sceptic 2010-01-27 10:40   좋아요 0 | URL
^^ 편안하게 참고하실 만합니다.
 
나를 바꾸는 글쓰기 공작소 - 한두 줄만 쓰다 지친 당신을 위한 필살기 이만교의 글쓰기 공작소
이만교 지음 / 그린비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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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나 글을 쓰지만 목적은 다르다. 아무나 글을 쓰지만 관심의 정도는 다르다. 어쩔 수 없이 써야 하는 글이 있고 자발적으로 쓰는 글이 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글을 쓰지 않거나 읽지 않고 살아가는 것은 이제 거의 불가능해졌다. 독해력은 단순히 문자나 언어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매체가 다양해지면서 전통적인 글 읽기 능력과 구별되는 다양한 해석 능력도 요구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문자를 통한 의사소통과 읽고 쓰는 행위로부터 자유로워질 수는 없다. 목적이 다르고 관심사가 제각각일 수는 있지만 읽고 쓰지 않으면서 세상을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최근들어 글쓰기에 관한 책이 다양하게 쏟아지고 있다. 대입에서 논술고사가 중요한 관문으로 부각되면서 ‘논술 열풍’이 불기 시작했고 초등학생용 동화책에도 ‘논술대비’라는 관용구가 따라 붙는다. 고전과 명작들을 짜깁기 하거나 요약본이 아닌 생략본 시리즈를 발간하며 청소년에게 독서의 즐거움과 고전의 참맛을 훼손하기도 한다. 물론 이 책들도 모두 ‘논술대비’다. 홈쇼핑에서도 책을 판다. 물론 ‘논술대비’용 도서라는 타이틀이 따라붙는다. 논술대비가 붙은 책이 모두 나쁜 책은 아니지만 글을 쓰기 위해 논술을 잘 하기 위해 따로 읽어야 하는 책은 없다. 무엇을 읽고 어떻게 쓸 것인가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생각해보면 대한민국의 입시와 논술은 괴물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쉽게 알아차리게 된다. 문제를 알면서도 개선하지 않는 것은 청소년들에 대한 범죄다.

  입시나 각종 시험에 대비한 글쓰기는 관점과 방법이 사뭇 다르다. 정해진 규칙과 틀이 있고 ‘선발’을 위한 채점자를 위한 모범 답안이 존재한다. 즐거움과 무관한 글쓰기는 실용적 관점으로만 접근해야 한다. 이만교의 <글쓰기 공작소>는 이와 같은 글쓰기와는 지구 반대편에 있다. 소설가의 글쓰기 수업은 ‘연구 공간 수유+너머’의 강좌라는 사실만으로도 독특한 매력을 주었다. 물론 나의 개인적 취향이지만 직접 강좌에 참여하지 못하는 한을 풀기위해 출판되는 책으로 스스로를 위로한다. 이 책은 글쓰기의 본질적인 측면에 대해 깊이있게 그리고 즐겁게 이야기한다. 작가 나름의 노하우를 전수받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는 책이다.

  강자는, 진리를 단지 알고 있는 자가 아니라 좋아하고 즐기는 자여서, 자신보다 진리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자들을 보면 참으로 측은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다.
  글쓰기 역시 마찬가지다. 감상적 · 도식적 · 윤리적 · 일상적 · 상투적 · 통념적 언어질서에 복종하는 글쓰기는 약자의 글쓰기다. 반면 스스로의 감각과 사유와 상상을 생성해 내고 즐기며 기성문법을 넘어서는 새롭고 낯선 소수언어를 만드는 자가 비로소 작가고 예술가다. 그런 점에서 글쓰기란 언제나 소수언어로서의 창작언어를 탄생시키는 일이다. 창작언어를 탄생시키는 일이란, 기성질서와 언어에 저항하고, 기성질서와 언어를 전복하고, 무엇보다 기성질서와 언어보다 더 강해지고 넉넉해진다는 뜻이다. 그런 점에서 창작언어는 자연스레 글쓴이의 개성이 묻어나는 언어니고 저항의 언어이고 전복의 언어이고 강자의 언어이고 난장(亂場)의 언어다. - P. 238


  저자가 말하는 글쓰기는 창조적 언어의 사용이다. 일상적 언어와의 만남이 아니라 명징하고 새로운 의미 부여가 글쓰기의 기본이라는 말이다. 하늘아래 새로운 언어를 창조해서 사용하는 일이 글쓰기의 시작이 아니라 사물을 낯설게 바라보고 감수성을 살린 표현과 언어의 의미를 새롭게 조명하는 것이 글쓰기를 즐길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글쓰기의 유일한 도구이자 무기인 언어 사용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지 않는다면 글쓰기의 즐거움은 맛볼 수 없다. 저자가 말하는 글쓰기가 무엇인지 이해하려면 우선 자신이 글을 쓰는 목적과 방법에 대해 돌아볼 필요가 있다. 반성적 태도로 지금까지 습관들을 꼼꼼하게 살펴보면 자연스럽게 답이 나온다.

  구체적이고 상세한 부분들에 대한 관심과 지적은 부차적인 것일 수도 있다. 근본적인 목적이나 방향 그리고 언어와 문장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글쓰기가 시작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그 과정에 이르는 지난한 방법들을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설명한다. 실제 지도하는 과정에서 마주쳤던 습작들을 난도질하며 함께 읽고 고민하고 대안을 제시한다. 저자 스스로 공부하는 자세로 함께 고민해보자는 취지로 시작한 글쓰기 강좌라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그런지 꽤 두꺼운 분량이지만 책장은 쉽게 넘어가고 책을 읽는다기보다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편안하게 공감할 수 있었다.

  문제는 천천히 운전하는 것과 여유있게 운전하는 것, 신속하게 운전하는 것과 조급하게 운전하는 것, 열심히 읽는 것과 초조하게 읽는 것, 깐깐하게 공부하는 것과 소심하게 공부하는 것, 치열하게 쓰는 것과 욕심을 부려 쓰는 것,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과 고지식하게 고민하는 것, 자부심을 갖고 행동하는 것과 자만심을 갖고 행동하는 것, 게으르게 시간을 지체하는 것과 여유롭게 때를 기다리는 것…… 등을 나누어 분별하기가 좀체 만만치 않다는 사실이다.
  호흡지간(呼吸之間)에 생사가 갈린다고 했다. 숨 한 번 돌리자 사랑이 욕정으로 바뀌는가 하면 욕심이 노력으로 바뀌기도 한다. 숨 한 번 돌리는 사이에 무욕이 게으름으로 변하는가 하면 순정이 맹목으로 변하기도 한다. 딴엔 의식적으로 치열하게 열심히 읽고 썼지만, 그것이 다만 조급한 욕심에 불과한 것일 수가 있어서, 마치 <잠입자>의 ‘고슴도치’처럼, 스스로 속는 경우가 얼마든지 가능하다.
  경험으로 미루어 보건대, 참으로 많은 학생들이 그리고 나 자신조차도 참으로 자주, ‘열심히’와 ‘조급히’를 혼동하고, ‘최선을 다해’와 ‘욕심을 다해’를 혼동한다. ‘자기만의 생각’과 ‘자기만의 고집’을 혼동하고 ‘독장적인 글쓰기’와 ‘독선적인 글쓰기’를 혼동한다. ‘고독한 창작생활’과 ‘고립된 창작생활’을 혼동한다. - P. 365

  사소한 생각의 차이가 전혀 다른 인생을 만든다. MBC를 손보기로 마음먹은 조선일보를 읽다보면 MBC는 대한민국에서 사라져야할 방송국이다. 대통령과 정부 정책을 오해하고 개인적 감정 때문에 온 국민에게 거짓말을 한 방송이다. 하지만 <신문읽기의 혁명>을 읽어보고 집단지성에 소개된 ‘오마이 뉴스’를 살펴보면 또 다른 시각과 상식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언론의 가장 기본적인 기능과 역할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신문은 쓰레기다. 언론을 왜 사회의 공기라고 했을까? 질식사 하지 않으려면 판단력을 갖춘 뇌와 말할 수 있는 입과 행동할 수 있는 발이 필요하다.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글을 쓰기 위한 손이 필요하다.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쓸 것인가? 그 사소해 보이는 차이들이 우리들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호흡을 가다듬어 보자.

  저자는 에필로그 ‘본질적 감수성’에서 이 문제를 다루고 있다. 생각과 행동의 거리. 너무 늦은 행동은 없다. 미래를 위해서 모든 행동은 빠른 것이다. 다만 후회만이 우리의 뒤를 따를 뿐이다. 후회 없는 삶을 위해 우리들의 본능적인, 본질적인 감수성을 기를 필요가 있다. 보다 많은 이웃과 건강한 사회를 얻기 위한 글쓰기가 참된 글쓰기다. 굶주린 아이들의 급식비를 깎기 위해 놀리는 세 치 혀가 아니라 그들의 만행을 역사에 기록하기 위한 글쓰기가 필요한 시대를 살고 있다. 책읽기와 마찬가지로 글쓰기는 혁명이며 행동이고 우리들의 진정한 삶이어야 한다.

  우리의 글쓰기 역시 결코 늦은 것이 아니다. 늦은 것일 수 없다. 다가올 미래에 대해서는, 지금 읽고 쓰고 성찰하는 우리 각자의 행동이 언제나 가장 빠른 길이다. 나는 나를 이런저런 망상에 빠트리는 이 문구가 너무 좋다. “모든 행동은 그것이 가져올 미래에 대해서는 늦지 않습니다. 언제나 후회만이 늦을 뿐, 행동은 결코 늦지 않습니다.”(고병권, <추방과 탈주>, 그린비, 2009, 194쪽) 인간이 취할 수 있는 가장 빠른 첫 번째 행동은 아마 꿈을 꾸는 것이리라. 그리고 가장 빠른 첫걸음은 이제 읽고 쓰고 생각하는 공부를 시작하는 것이리라. - P. 384

  혼자서 꾸는 꿈은 한갓 공상에 불과하지만, 모두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고 오늘도 믿고 산다.


090625-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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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의 글쓰기 - 상처 입은 젊은 영혼들과의 대화
김성수 지음 / 글누림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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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을 쓰는 행위는 영혼의 내밀한 고백이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글을 쓰지 않는 사람이 없는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작은 액정 화면 안에 채울 수 있는 80바이트. 그 안에 배려와 사랑, 안타까움과 공감, 분노와 고민을 집어넣는다. 휴대폰이 보편화되면서 문자를 보내는 일이 일상화되었다. 소리없는 대화는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 벌어지고 있다. 소통 행위를 넘어 글을 쓰는 행위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편지가 사라지고 이메일이 보편화되었다 하더라도 방법이 바뀌었을 뿐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고 자신의 감정을 옮기는 행위가 그친 것은 아니다. 우리는 매일매일 글을 쓰며 살아간다.

  물론 글을 쓰는 목적과 방법은 제각각이다. 개인적인 의사소통과 감정 전달의 수단으로서 글쓰기가 있고 업무를 처리하거나 생각을 전달하기 위한 사회적인 글쓰기가 있다. 보고서나 논문, 기획서 등 형식이 우선시 되는 글쓰기가 있고 편지나 수필처럼 자유로운 글쓰기가 있다. 또한 사설이나 칼럼 등 주장이나 설득을 담아내는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글쓰기가 있고 자신의 감정이나 새로운 시각을 보여주는 문학적인 글쓰기가 있다. 기준과 목적, 방법에 따라 글의 종류는 다양하게 나누어질 수 있다.

  어떤 글쓰기든 우리는 평생 쓰지 않을 수 없으며 쓰는 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도 없다. 인식하지 못하고 의식하지 않으며 살아갈 뿐이다. 연인에게 전하는 짧은 편지나 애틋한 문자 한통이 어떤 소중한 글보다 감동적일 때가 있고 운명을 뒤바꿀 때가 있다. 지식인의 한 줄의 글이 수많은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바꾸기도 하는 것은 물론이다. 그래서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금언이 아직까지 통용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글을 쓸 때 어떻게 쓸 것인가. 정답이 제시되지 않는 질문은 답답할 뿐이다. 글쓰기에도 정답이 있는 것일까. 수많은 사람들이 글쓰기에 대해 다양한 방법과 견해를 제시하지만 그것을 따라하고 배워서 글을 잘 쓰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별로 들어본 적이 있다. 꾸준한 훈련과 습작을 통해 향상될 수는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과의 대화이며 가장 진솔한 고백이다. 여기에서 출발하지 않는다면 타인에게 감동을 줄 수도 없고 설득할 수도 없다. 우리 안에 살고 있는 프랑켄슈타인과의 대화. 그것으로부터 글쓰기는 출발한다.

  김성수의 <프랑켄슈타인의 글쓰기>는 ‘상처입은 젊은 영호들과의 대화’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대학생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치는 과정과 경험과 결과들을 담아낸 책이다. 스무살을 갓 넘긴,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대학생들에게 글쓰기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철저하게 자신과 대면하는 시간이어야 한다.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어야 한다. 중, 고등학교에서 아무리 철저하게 입시위주의 교육시스템에 길들여졌다 하더라도 대학에 입학하면서 마주하게 되는 자신과 세상은 난감하기만 할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을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눠썼다. 1부가 가위손의 글쓰기, 2부가 프랑켄슈타인의 글쓰기다. 1부는 글을 쓰는 가장 기초적인 자세와 방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의 삶을 쓴다는 것이다. 창의적으로 생각하고 영혼을 담아 글을 써야 하며 읽는 사람을 배려하고 글을 쓰는 과정에서 자신의 삶조차 바뀔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당연하면서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실제 사례와 더불어 소개되어 있다.

  2부에서는 사례 중심의 글들을 보여준다. 영혼의 상처를 치유하는 글쓰기를 중심으로 자화상을 그려보고 고통을 치유하며 비판적 문제의식을 드러낼 수 있는 글쓰기가 어떻게 가능한가 보여준다. 홍세화의 ‘그대 이름은 무식한 대학생’이란 칼럼을 통해 현재 대학생의 모습과 생각들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보여준다. 저자는 인터넷 공간을 통해 대학생들과 소통하고 댓글을 통해 타인의 생각을 공유한다. 글쓰기는 전방위적으로 이루어지며 연필로 종이에만 글을 쓴다는 통념을 뒤집는다.

  일상적인 행위로서 글쓰기는 생활이며 삶이라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면 이제 글쓰기의 대중화는 선언적 의미를 뛰어넘게 된다. 아무도 글을 쓰지 않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매일 글을 쓰며 소통하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문제는 항상 글의 내용과 질에 있다. 사적인 행위로서 최소한의 의사소통 수단으로서 글쓰기가 아니라 자신을 드러내고 불특정 다수와 소통하는 글쓰기는 나름의 문법과 방법이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저자의 경험과 나름의 노하우를 담아내고 있지만 일반론에서 벗어나지 못한 한계가 있다. 자신감이 없는 사람이나 글쓰기 자체가 특별한 능력과 힘이 있는 사람들의 것이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에게 필요한 책이다. 그것은 어쩌면 아무것도 아니다. 가장 진솔한 자신의 이야기가 가장 감동적이고 위대한 글쓰기의 첫걸음이라는 가장 보편적 진리를 확인하고 나면 나머지는 크게 문제 되지 않을 것이다.

  문장을 다듬고 내용을 가다듬고 논리적인 흐름을 생각하고 전체적인 맥락을 고려하는 것은 쓰면서 익히게 되는 기술적인 부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신만의 견해나 관점을 가지고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이 책은 필요 없다. 수많은 글쓰기 책들 중에 하나가 될 것인지, 내게 꼭 필요한 책이 될 것인지는 스스로에게 물어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 책은 모두에게 권할 만한 책은 아닌 것 같다. 그런데도 나는 오늘도 자신과의 대화에 몰두하고 있다.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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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최소원칙
도정일 외 지음 / 룩스문디(Lux Mundi)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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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보화 사회라고 명명되는 네트워크 시대로 접어들면서 글쓰기가 일반화 되었다. 나같은 사람도 목적 없이 끄적이고 있을 정도로 글쓰기는 이제 보편화되었다. 지식인의 전유물도 아니고 특수한 계층만이 지닌 특권도 아니다. 이제 누구나 쓰고 누구나 읽는다. 불과 100여년 만에 천지가 개벽하듯이 근대화의 물결 이후 지식은 보편화되었다. 책을 통해 지식인과 기득권 계층의 비밀이 공개되었다. 이제는 누구나 지식에 접근할 수 있다. 사회는 개방되었다. 칼 포퍼는 <열린사회와 그 적들>을 통해 전체주의에 대항하는 개념으로 ‘열린사회’를 이야기했지만 자유로운 비판이 가능하고 점진적인 변혁이 가능한 진정한 열린사회는 아직도 요원하다. 읽기와 쓰기는 그것이 가능하게 하는 가장 첨단의 도구이다. 컴퓨터와 IT 기술이 아니라 가장 고전적인 방식인 책 읽기와 글쓰기를 통해서만 열린사회는 가능하다고 본다.

  앨빈 토플러가 말한 제3의 물결은 이미 현실을 장악했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특히 블로그의 확산과 1인 미디어 시대는 미래 사회를 예측하기 위한 중요한 단서가 된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바로 그들이 가지고 있는 가능성이다. 누구나 읽고 쓸 수 있다는 가능성. 더 이상 고 읽었다면 생각하고 쓰고 싶은 욕망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개인 블로그의 확산과 더불어 글쓰기의 욕망은 점차 증가하고 있다. 최근 글쓰기에 대한 관심은 당연한 현상이고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이것을 대학 입시에서는 ‘논술’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현행 대한민국의 입시 논술은 글쓰기 능력에 대한 평가라고 보기 어렵다. 무엇보다도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한 출제와 정답이 있는 논술이 글쓰기라고 볼 수 있을까? 그것은 주관식 평가에 다른 이름이다. 모범답안과 점수로 환산되는 글쓰기가 가능한가라는 지극히 원론적인 문제에서부터 논술은 접근되어야 한다. 최근 들어 자체적인 시행착오와 시행상의 어려움들이 문제시되면서 통합논술이라는 괴물도 주춤하고 있다. 강수돌의 <경쟁은 어떻게 내면화되는가>를 통해 그 근본적인 원인을 살펴볼 수 있다. 글쓰기를 배울 수 없는 핑계를 대자면 대입제도 때문이며 대입 제도는 학벌과 헤게모니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사회 시스템의 문제로 귀결된다. 오버했나?

  <글쓰기의 최소 원칙>은 절반의 성공을 거둔 책이다. 일단 여러 명이 공저한 책은 찬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목적과 의미가 분명하지만 필자들의 논의가 제각각이기 때문에 다양성을 확보할 수도 있지만 잡탕이 될 수도 있다. 이 책은 후자에 가깝다. 절반의 실패를 인정해야 하는 책이기도 하다는 뜻이다. 2007년 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 특별강좌로 마련되었다면 학교 현장의 교사들에게 필요한 이야기일 뿐 아니라 글쓰기를 욕망하는 모든 사람에게도 귀중한 이야기들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몇 사람이 산보를 나간다. 다른 사람이 무슨 말을 해도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한다. 청중과 질문자를 외면하는 내용에 또 다시 울컥.

  도정일의 이야기를 김수이가 이끌어내는 첫 번째 이야기 ‘무엇을 쓸 것인가’와 김훈의 ‘문학적 글쓰기는 하나의 전략이다’, 배병삼의 ‘고전, 현재형으로 끊임없이 다시 써야 할 ‘오래된 미래’’, 김영하의 ‘존재․삶․글쓰기’가 읽을만하다. 표지에는 열네명이나 적혀있지만 전공분야의 이야기나 글쓰기와 아주 먼 이야기들을 하고 있다. 그런 식의 이야기라면 도대체 글쓰기와 무관한 이야기가 어딨나?

  제목은 구미가 당기지만 책의 내용과 거리가 멀다. 대담자나 강사로 나온 분들의 면면이나 내용이 읽을 만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다만 글쓰기의 최소 원칙은 몇 가지 얻지 못한다. 이름난 분들의 경우 이 책 저 책에서 반복되는 이야기로 개인적으로 지루한 면이 많았다.

  특별하고 새로운 방법이야 어디에 있겠는가. 다만 현실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정확하게 짚어내고 문제점을 파악해서 대안을 고민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글쓰기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고민해 보아야 한다는 말에는 백번 공감한다. 보다 구체적인 내용과 기본적인 원칙들에 대한 고민들로 채워졌다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핸드폰 문자, 이메일, 댓글에서부터 보고서, 기획안, 논문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매일 읽고 쓰며 살아간다. 무엇을 쓸 것인가와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글쓰기의 시작이다. 정확하고 바른 문장부터 시작해서 읽을 만한 글이 되기 위한 과정들은 누구나 알고 싶어 한다. 글쓰기에 관한 무수한 책들이 나왔고 나올 것이다. 나에게 맞는 책을 찾아 단 한 줄의 영감이나 도움을 얻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글쓰기는 즐거움이어야 한다는 대원칙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책읽기든 글쓰기든 문학적인 글이든 실용적인 글이든 스스로 즐기지 못한다면 건강에 해롭다. 의무감에 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스스로를 자유롭고 행복한 일로 만드는 일이 글쓰기의 최소 원칙이 아닐까?


090203-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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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생각쓰기
윌리엄 진서 지음, 이한중 옮김 / 돌베개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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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에 미친 사람들은 읽는 것만 좋아하는 것일까? 나는 때로 다른 사람들의 독서 습관과 독후 활동이 궁금하다. 암중 모색기를 거쳐 독자가 아닌 작가로 때어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무엇을 쓸 것인가, 왜 써야 하는가, 글을 쓸 능력은 있는가 하는 원론적인 문제에 부딪히게 되면 고민은 깊어지게 마련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 글의 종류에 대해서 문학적인 글인지 실용적인 글인지 결정하는 것은 의외로 간단하다. 시인이나 소설가가 되고 싶은지 다양한 종류의 실용적인 글을 쓰는 작가가 될 것인지 자신의 능력과 취향 그리고 목적과 방향을 결정하면 고민은 쉽게 해결될 수도 있다. 물론 두 영역의 경계를 넘나드는 사람도 있고 어느 정도의 글쓰기 능력을 갖춘 사람이라면 어떤 글이든 가능 할 수도 있다.

  글을 읽는 것과 쓰는 것은 음식에 대해 혀의 반응을 밝히고 맛을 품평하는 것과 음식을 만드는 일 만큼이나 큰 차이가 있다. 맛있는 음식은 누구나 먹을 수 있듯이 독서는 누구나 가능하다. 물론 문식성은 단순히 어휘의 의미를 이해하는 수준부터 재해석하고 논리적인 비판에 이르는 수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긴 하다. 책의 수준과 영역도 차이가 많다. 그래도 글을 쓰는 일보다는 쉽다. 글쓰기는 그만큼 어려운 작업이고 지적 능력의 종착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중요하다.

  그래서 누구나 글을 쓰려고 하지만 쉽지 않다. 그것이 직장에서 쓰는 기획안이나 연애편지, 일기나 메일, 숙제와 보고서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한 글쓰기의 형태가 필요하지만 학교에서는 제대로 배울 기회가 없고 가르쳐 주지도 않는다. 어떻게 할 것인가? 독학만이 살 길인가?

  서점에 가면 글쓰기에 관한 책들이 넘쳐난다. 그만큼 중요하면서도 실전에 적용할 만한 충고나 적용방법들을 제시하고 있는 책을 고르는 것은 쉽지 않다. 더구나 글을 쓰는 목적과 방법은 개인차가 심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나에게 맞지 않는다면 무용지물이다. 윌리엄 진서의 <글쓰기 생각쓰기>는 그런 면에서 독자들의 욕구를 골고루 충족시켜주고 있다.

  오랫동안 읽히고 좋은 평가를 받아왔다는 사실로 책의 내용을 평가할 수는 없지만 대체로 많은 사람들을 만족시켜왔다는 안전장치는 믿을 만하다. 저자는 글쓰기에 대해 조심해야 할 것들에 대해 실전 경험을 통해 정확하고도 직접적으로 위험신호를 보낸다. 몇 페이지 분량의 짧은 글들은 하나의 주제와 충고로 집약되어 있고 그것은 실전에서 필요한 요소로 가득하다.

  나를 발견하는, 간소한, 군더기를 다 버린, 나만의 것만 담은, 나를 위한 글쓰기가 좋은 글이라는 충고로 이 책은 시작된다. 스물 네 가지 작은 원칙들을 제시하고 있는데 시간이 많이 흐른 후에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들이 많다. 문장의 시작과 끝, 통일성에 대한 원칙을 제시한 후 문학, 인터뷰, 여행기, 회고록, 과학과 기술, 비즈니스, 비평, 유며 등의 종류의 구분해서 일상에서 우리가 써야하는 수많은 종류의 글들을 다양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마지막에 제시된 단어와 용법 등은 영어 글쓰기를 위한 조언이기 때문에 편집과정에서 생략해도 좋을 법했다. 책을 읽어가면서 번역자의 고충이 곳곳에 배어있음을 발견한다. 굴절어인 영어와 교착어인 우리말의 차이는 예문을 번역하거나 사례를 인용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후기에서 밝혔듯 일부 오류가 지적되더라도 영어로 글을 써야 하는 사람들을 위한 충고라는 사실을 전제하고 있다는 사실 정도는 감안해야 한다.

  결국, 글쓰기는 자신을 위해 자신의 생각을 가장 솔직하고 간결하게 표현해야 한다는 이야기로 요약될 수 있다. 책 한 권을 한마디로 정리하는 것은 의미가 없겠지만 글을 쓰는 것은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얻어지는 결과물들은 다른 사람에게도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함께 나눌 만한 글이 된다는 저자의 생각에 동의하기 때문에 이 책은 그런 대로 후한 점수를 줄 수 있다.

  내가 저자의 의도를 읽어냈다면 이 책은 글을 써야 하는 사람들에게 큰 방향과 글을 쓰는 자세를 가다듬기 위한 책으로 적당할 것이다.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사항들에 대해 충고하는 책도 많이 있으니 실전 연습용 책으로는 적당하지 않다. 나는 작가가 되고 싶지 않다는 핑계로 글을 쓰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권할 만하다. 누구나 글을 쓰고 생각을 쓴다. 그것이 어떤 종류의 글이든 말이다.

  산다는 일이 온몸으로 생의 의미를 써 나가는 일이라면 굳이 화려한 수사와 기막힌 솜씨로 장식할 필요가 없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과 열정적인 자세를 지니고 있다면 일단 준비는 끝난 상태이다. 무엇을 왜 써야하는지에 대한 고민과 어떻게 언제까지 쓸 것인가를 결정하면 되는 일이다. 글을 쓰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없지만 누구나 해야 하는 일이다. 자, 이제 쓰기 시작하자.


080403-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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