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 라루스 서양미술사 7
제라르 르그랑 지음, 정숙현 옮김 / 생각의나무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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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는 예술의 한 흐름이나 일시적인 사상적 흐름으로 파악되기 보다는 한 시대를 특징짓는 역사적 시대 구분으로 이해해도 좋을 듯싶다. 미술 분야의 르네상스는 문학에서처럼 고전에 대한 향수와 부활의 의미로, 혹은 중세에 대한 극복의 의미로 규정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혁신이나 ‘복귀’(라블레의 표현), 부흥이라는 용어까지도 당시에는 보편적이었을만큼 ‘존재하고자 하는 욕망’이 유일하게 존재했던 시기였다고 샤스텔은 이 시기를 평가하고 있다.

페트라르카로 인해 문학이 되살아났고, 조토와 함께 화가들의 솜씨는 다시 부흥하게 됐다. 우리는 이 두 개의 예술이 완벽에 이르는 것을 보았다고 얘기하는 피„에 이어 에라스무스도 “내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것은 얼마나 굉장한 세기(世紀)인가! 다시 젊어지고 싶구나!”라며 새로운 황금기를 찬양했다. 그 시대에 몸담고 있던 예술가들이 스스로 찬탄할 정도로 생기 넘치는 시기가 바로 르네상스였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시대에 대한 이해는 곧 르네상스 미술을 이해하는 기본적인 관점이 된다.

조토의 <새들에게 설교하는 성 프란체스코>나 <유다의 입맞춤>에서 보여주는 종교적 대중화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나 로렌초 기베르티의 <솔로몬과 시바의 여왕>, 얀 반 아이크의 <아르놀피니 부부 초상화> 등의 작푸미 훨씬 더 현대적 관점에서는 신비스럽고 경외감을 느끼게 하는 작품들이다. 원근법이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회화의 사실성과 다양성이 풍부하게 표현되기 시작했다. <프리마베라 혹은 봄>으로 명명된 보티첼리의 대표작은 여신들의 부드러운 몸의 곡선, 신화적인 분위기가 배어 있어 그림에 문외한인 나의 눈길을 한참 붙들어 놓는다. 르네상의 절정기의 대표적 인물인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수태고지>나 <모나리자>로 너무나 유명하고 <최후의 만찬>은 소설로 만들어져 소설적 재미와 상상력을 배가시키고 있다. 미켈란젤로는 다 빈치보다 스물살이상 어리다. 동시대 인물로 비교되고 있지만 건축이나 회화에서 보다 스스로 조각가라 여겼다. 그에 비해 라파엘로는 백과사전적인 다 빈치와 고뇌하는 반항자인 미켈란젤로 사이에서 별로 관심을 끌지 못했다. ‘사실 그는 다만 다른 사람들이 실현하고자 꿈꿔왔던 것을 실현했다’라는 괴테의 놀라운 말이 더 사실에 가까울 것이다. 고고학자이면서 데생과 건축가였으며 시도 쓰고 조각도 했다. 예술 자체가 분화되지 않아 당시 상황으로서는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이 세명의 천재(?) 예술가들은 르네상스를 한층 더 풍요롭게 해준 대표적 인물들이다.

피렌체에서 로마, 베네치아를 거쳐 유럽으로 확산된 르네상스는 건축과 회화에서 상당한 영향을 끼쳤고 알브레히트 뒤러로 대표되는 새로운 취향의 회화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히에로나무스 보스의 <쾌락의 동산>, 마티아스 그뤼네발트의 <성 안토니우스의 유혹>, 브뢰겔의 <이카로스의 추락>등의 작품은 신과 인간의 관계를 되묻고 있는 듯한 표정이다. 르네상스는 후에 매너리즘으로 변화한다. 자연으로부터 인위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정신, 장난스럽고 괴상하면서도 ‘이상한’ 인간의 발명품으로 예술을 대하는 것이 특징이다. 르네상스의 이상적인 아름다움보다 뛰어난 기교에 대한 열망이 예술가들의 관점을 바꾸기 시작했던 것이다. 어느 예술도 그러하듯이 시간이 흐르고 시대가 변하면서 쇠퇴의 길을 걷게 되는 것이다. 라파엘로의 <아테나 학당>은 ‘철학의 성전’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으로 르네상스를 요약하고 있다. 부드러운 색감과 편안한 구도를 바탕으로 고대의 현자들이 보여주는 모습이 한참동안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이유이다.

서양미술사 시리즈 두 번째인 이 책은 미술비평가이자 영화평론가인 제라르 르그랑의 설명으로 되어 있다. 제한된 분량으로 설명과 회화를 모두 담기에는 역부족인듯 싶은 아쉬움이 있지만 각 시대별로 일갈하기 위한 압축의 효과를 최대로 거둘 수 있을지 나머지 시대를 기대해본다.

2005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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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의 미학 - 서양미술에 나타난 에로티시즘
미와 교코.진중권 지음 / 세종(세종서적)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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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처럼 진초록의 산길을 더 없이 맑은 하늘을 배경으로 달리는 차안에서 기훈은 창밖으로 손을 내밀어 속도가 만들어준 바람을 만지작거리며 행복하게 노래를 따라 부른다. 행복은 이런 것이라고 보여주듯이……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선악과(善惡果)를 먹은 아담과 이브를 묘사한 성경의 창세기 3장6절. 영화 ‘주홍글씨’는 이 자막으로 시작된다. 모든 유혹과 쾌락의 정점을 보여주었던 영화로 기억된다. 그것은 우리들 삶의 일부이며 드러냄과 감춤의 묘한 대비이다. 누가 거부할 수 있겠는가. 이쪽과 저쪽의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며 하루하루를 견뎌내는 것이 어쩌면 우리들 삶의 다른 모습일지도 모른다.

  서양미술에 나타난 에로티시즘 <성의 미학>은 인류의 근원적 욕망을 반영하고 있다. 미술에 나타난 인류에 대한 욕망의 역사를 보여준다. 진중권의 부인 미와 교코는 남편과 함께 욕망과 쾌락의 미학을 분석하고 있다. 이 책은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몸, 쾌락, 남녀, n개의 성.

  몸 - 구스타브 쿠르베의 ‘세계의 근원’을 시작으로 독자들을 당혹하게 만든다. 여성의 바기나에서 비롯되는 욕망의 근원을 시작으로 여성의 가슴을 만지는 남성들을 주제로 한 그림들을 보여준다.

  쾌락 - 훔쳐보기로 시작해서 신화의 모티브를 차용한 렘브란트의 ‘디아나, 악티온과 칼리스토’를 정점으로 성서의 ‘롯과 딸들’을 주제로 한 그림들이 보여주는 근친상간에 이르기까지 쾌락의 다양한 표현방식들을 제시한다. 백조로 변신하여 레다와 교합하는 주피터를 주제로한 수간에 이르기까지 예술은 왜 외설과 다른가를 설득력있게 보여준다.

  남녀 - 영화로도 잘 알려진 ‘롤리타’ 현상에서부터 ‘다에나’, ‘비너스’를 주제로 한 그림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펼쳐 보여준다. 특히 사내와 정을 나눈 후 그 사내를 파멸시키는 여인들, 흔히 ‘팜므파탈(femme fatale)’이라 부르는 요부로 그려지는 ‘살루메’를 주제로 한 여러 그림들의 다양한 해석과 화가들의 표현방식은 성서의 애매한 해석으로 이해불가능한 인간의 욕망들을 해석하고 있다.

  n개의 성 - 플라톤의 ‘향연’에서 보여주는 어린소년에 대한 사랑의 고결함을 시작으로 ‘아폴론과 히야킨토스’(장 브록)에서 보여주는 일체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준다. 그에 비해 여성들끼리의 동성애는 앵그르의 ‘터키탕’을 위시해서 부정적 대상으로 표현되어 온 남성중심의 의식세계를 통해 본질적인 차이를 설명해 준다. 마지막으로 하나의 몸에 두 개의 성기를 가진 ‘양성구유’를 주제로 한 그림으로 책은 마무리 된다.

  서양미술에 나타난 다양한 현상들을 시대적 배경과 사회 문화적 영향들을 고려해서 다시 들여다보는 작업은 단순히 예술에 대한 이해와 감상 측면에서가 아니라 철학과 문학으로 접근할 수 없는 또다른 인류의 역사를 들여다보는 일이다. 특히, 변함없는 인간의 욕망을 대하는 태도와 시각의 차이는 지금도 앞으로도 흥미로운 주제가 될 것이다.

  에로스에서 출발하여 타나토스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욕망을 생의 주제로 본다면 종교와 부딪히게 된다. 그것이 어떤 이름의 욕망이든. 삶의 목적과 생을 바라보는 관점과 태도는 단 한순간도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까? 그것이 미학적 관점이 아니더라도 일상에서 우리가 부딪히는 이 잡다한 욕망들과 억압의 기제는 삶의 또다른 형태가 아닐까 싶다.

  미셸 푸코의 말처럼 우리들에게 ‘금지’는 더 큰 쾌락을 위한 욕망의 경제학은 아니었을까?


2005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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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주의와 바로크 라루스 서양미술사 7
피에르 카반느 지음, 정숙현 옮김 / 생각의나무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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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반개혁 사실주의는 카라바조의 혁명으로부터 시작된다. ‘성 마태의 소명’에서 보여주는 광선에 의한 뚜렷한 화면분할과 명암의 대비는 관객의 시선을 단번에 잡아끈다. 그만큼 강렬하지만 성직자는 즉각 거절해 버린다. 그의 또다른 작품 ‘성 바울로의 개종’은 건장한 말의 입체감과 더불어 빛에 의해 말에서 떨어진 기사의 몸짓을 강조하고 있다.

  프랑스 고전주의를 대표하는 루이14세의 영광, 베르사유의 궁전 예술은 인류가 만들어 낸 가장 사치스럽과 화려한 공간을 보여준다. 권력으로 치장된 예술은 높은 경지에 이르렀으나 그것에 값하는 당시 시민들의 삶이 어떠했을지는 쉽게 짐작이 가지 않는다. 루이 14세의 질투를 일으켰다는 ‘루이 르 보, 보-르-비콩트 성’은 인간의 건축 양식에 대한 경외감이다. 당시의 사회․역사적 배경을 떠난 예술을 이해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절대주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개별 건축과 회화들의 아름다움은 본능적 충동에 가깝다.

  A. 하우저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와 같은 저작은 주변 상황과 이성적, 철학적 배경의 의미를 고찰하고 있지만 라루스 출판사의 <서양미술사>시리즈는 이 처럼 시대별로 각기 다른 저자가 국가별 시대별 대표적인 예술장르와 개별 작품을 중심으로 그 의미를 분석하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하나의 맥락과 흐름으로 서양 미술사를 일괄할 수는 없으나 보다 구체적인 개별 작품들을 이해하고 작가의 역할과 특히, 종교와 신화 그리고 권력자와 밀착되어 있던 당대의 사실들을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데 충실하고 있다. 그것은 예술 자체에 대한 흐름과 이해를 위해서는 꼭 필요한 과정이라고 믿는다. 한 작품을 가지고 다양한 방식으로 분석하고 해석하는 일은 물론 한 사회의 예술에 대한 안목이며 미래의 발전에 대한 밑거름이 되겠지만, 유키 구라모토의 ‘여행의 나날들(2002)’을 들으며 과거로의 시간 여행을 떠나는 것이 더욱 값진 일일 것이다.

고전주의와 바로크 양식이라는 두 가지 경향은 서로 우열을 가릴 수 없다.
하나는 경제와 이성의 양식이고, 다른 하나는 음악과 풍부함의 양식이다.
전자는 중엄하며 지속적인 형식을 선호하고, 후자는 퍼져나가는 뒤틀어진 형식을 우선적으로 여긴다.
이 두 경향 사이에는 쇠퇴도 변질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들은 영원한 감각성을 갖는 두 가지 형식들이다. - 외제니오 도르스

  위에서 인용한 말은 고전주의와 바로크라는 두 양식의 특징을 가장 극명하게 설명해 준다. 스페인, 플랑드르 그리고 네델란드의 예술이 보여주는 특징들을 집약한 설명이다. 들라크르와가 “회화의 호메로스다.”라고 평가한 루벤스의 천재성은 17세기 플랑드로 지방의 회화에 통일성을 부여한다. 16세의 소녀와 결혼한 53세의 화가 루벤스는 ‘사랑의 정원’으로 그 행복의 절정을 헌사했으며 풍부한 색감과 빛의 의한 명암대비, 인물들의 자연스런 표정은 그에게 내려진 모든 찬사를 갈음한다.

바로크 양식은 위대한 예술이 쇠퇴할 때마다 태어난다.
고전적인 표현 예술에서 요구사항들이 지나치게 많아지게 되었을 때에,
바로크 예술은 마치 하나의 자연적인 현상처럼 나타나게 된다. - 니체

  렘브란트의 ‘야간순찰’을 보면 3세기 동안 예술사가들이 의아하게 여기는 소녀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마치 수수께끼처럼 대위와 민간 경비대 소총수들 사이에서 어울리지 않는 복장과 표정으로 금빛 후광으로 끼어들어 있다. 화가만의 비밀스런 장치가 보는 사람들의 호기심을 더욱 자극했으니 그의 목적이 여기 있었을까? 네덜란드 회화의 관심은 베르메르에게 집중된다. 물론 나의 지극히 개인적인 관심이지만. 영화를 보기 전까지 베르메르라는 화가에 대해서는 아는바가 없었다.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라는 그림을 본 적은 있지만. 영화의 주인공으로 등장한 화가와 소녀는 실제 작품을 연상시키며 영화의 완성도와 더불어 그림에 대한 풍부한 상상력을 더해 주었다. 왼쪽 귀에 걸린 반짝이는 진주귀걸이와 맑고 큰 두 눈동자가 뒤를 돌아보듯 어깨 너머로 관객을 응시하고 있다. 그 표정과 눈빛을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르누아르가 루브르 박물관의 가장 아름다운 작품으로 꼽은 ‘델프트’의 노란 벽이 주는 시간의 영원성은 문외한인 나로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프랑스의 부셰와 영국의 게인즈버러를 위시하여 인간과 자연 그리고 이성에 대한 관심으로 이행되는 과정들을 살펴볼 수 있는 건축과 회화들 그리고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표방한 신고전주의를 소개로 이 책은 시대를 마무리 하고 있다. 이어질 낭만주의를 기대해 본다.


2005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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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주의 라루스 서양미술사 7
제라르 르그랑 지음, 박혜정 옮김 / 생각의나무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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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어떤 이름을 붙일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중세에서 르네상스를 거쳐 고전주의와 바로크에 이어지는 낭만주의까지 미술을 통해 살펴보는 역사는 인류의 고뇌와 삶의 양태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근대와 함께 출발한 낭만주의 미술은 다비드의 신고전주의를 극복(?)하면서 시작된다. 18세기 프랑스를 중심으로 전낭만주의와 충돌하면서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는 이 양식들은 이제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곳까지 숨가쁘게 넘어오고 있다. 1789년 회화가 논쟁의 중심에 있을 때 혁명은 시작되었다. 다비드는 혁명을 통해 그의 명성을 더했다.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가 거둔 성공은 ‘마라의 죽음’에서 절정을 이룬다. 정확한 구도와 과학적인 세부묘사, 은은한 채광과 단순한 색채의 조화, 마라의 표정은 실제 그림을 보았을 때의 감동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보나파르트가 권력을 잡게되는 1800년을 전후하여 전쟁과 혁명, 미술과의 관계가 예술가들의 갈등으로 직접 이어지지는 않았다. 지금처럼 현실 정치에 깊이 관여하지 못하는 사회적 배경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나름의 방식대로 그림의 주제에 영향을 미치고 추방을 당하거나 살롱과 아카데미를 장악하는 정도의 변화가 이어졌다. 다비드에 이어 그로가 선두에 나서 낭만주의의 선구자로 등장한다. 앵그르, 제라르, 퓌슬리의 그림들은 전시대와 구별되는 나름의 색깔을 분명히 한다. 그것은 개별 사건과 신화의 내용들을 주체적으로 변화시키며 예술가 나름의 해석을 더하기 시작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소외된 화가 고야처럼 악마와 뭉글어진 얼굴 형태의 그림들과 더불어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어낼 수는 없을 듯하다.

  “그림과 감정은 같은 사물을 표현하는 두 개의 다른 단어이다”라고 말한 컨스터블의 말처럼 1817년 루이 18세가 완전히 파리로 돌아오자 공포정치의 희생양들에 대한 인식과 평가가 달라진다. 체제의 변화는 그 안에 숨쉬는 예술가들의 사상과 활동에 영향을 직접적으로 미치게 된다. 개선문에 새겨진 ‘라 마르세예즈’를 조각한 뤼드의 작품이나, 다비드 당제의 부조 작품들은 조각에서 또다른 생동감을 보여주고 있다. 군주제에 대립하는 경향의 대변자가 되는 제리코의 ‘메두사호의 뗏목’은 정치적 해석을 배제하고서라도 어두운 색조와 인물들의 동선과 표정에서 우러나오는 감동을 느끼게 한다. 실제 250명이 탄 메두사호가 침몰하고 150명 중에 겨우 15명만이 구조된 사건을 배경으로 한 그림이다. ‘사르다나팔루스의 죽음’과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을 보면 외젠 들라크루아의 명성을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프랑스에서 출판된 원본을 볼 수 없으나 책의 가격과 화보의 수를 고려하면 생략된 화보가 있을 듯한 아쉬움을 지울 수가 없다. 앵그르의 ‘앙젤리크를 구하는 로제’에서 보여주는 선명함은 여전히 사슬에 묶여있는 여성의 몸의 곡선에서 배어나오는 관능미를 감출 수 없어 보인다. 폴 위에의 ‘황혼의 트루빌 해변’은 강력한 빛으로 야생의 거친 면모를 보여준다. 데생을 무시했기 때문에 ‘성실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들라크루아를 비난한 앵그르는 대다수 아카데미 비평가들에게 끊임없이 공격을 당했다. 그 이유는 ‘비극성’이 부족하고 절충주의를 권유한다는 것이었다. ‘해안으로 들어오는 배’를 통해 형태를 색채로 분산시키는 놀라운 능력을 보여주는 윌리암 터너의 영국과 독일, 스페인에서 몇몇 화가들이 이 시기의 특징들을 보여준다. ‘단장하는 에스더’를 그린 사세리오, ‘붉은 옷을 입고 독서하는 소녀’를 그린 코로 ‘돈키호테’를 그린 도미에 등 시대를 풍미했던 화가들의 그림은 이제 서서히 근대의 폭넓은 개념으로 우리를 이끌고 있다.

  그것은 슐레겔이 “낭만주의는 여전히 생성되고 있다. 그리고 영원히 생성될 수 밖에 없다는 점에 그 본질이 있다”고 말한 것에서 찾을 수 있듯이 예술의 시대구분으로서의 협의의 개념이 아니라 여전히 진행되고 있는 인간의 본질적인 특성들을 반영해 주는 개념으로 이해된다. “나는 ‘내 예술과 인류에게 봉사하는 것’을 알고 있을 뿐이다”라느 칼스텐스의 말은 낭만주의 예술가의 강령으로 통할 수 있을 것이다.

  1789년 프랑스 혁명을 전후하여 1800년 나폴레옹의 등장과 1817년 루이 18세의 왕정복고가 이루어지는 시기는 우리나라의 그것처럼 민중들에게는 더없이 혼란스런 시기였고 신산스런 삶의 고통스런 현장이었으리라. 당대 사회를 반영하는 거울로서 미술은 어떤 모습으로 자리매김되고 그 역할을 다했는가는 예술 외적 논의의 대상만으로 치부해 버릴 수는 없다. 본격적으로 ‘소설’이라는 장르가 시작되는 시대, 그래서 ‘로망스(romance)’와 ‘노블(novel)’이 탄생하고 다양한 장르의 현대성이 잉태되었던 척諛?바로 여기쯤이 아닌가 싶다. 빅토르 위고의 ‘크롬웰’ 서문과 ‘에르나니’ 논쟁으로 서서히 근대의 문이 열리는 시대, 미술비평의 독보적 위치를 차지하며 시인의 명성도 얻은 보들레르의 이야기들은 미술사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뭐라 특징 지을 수 없을지도 모르는 19세기의 미술과 근대, 현대 미술이 다가오고 있다. 맛있게 음미해 볼 일이다.


2005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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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미술 라루스 서양미술사 7
니콜 튀펠리 지음, 김동윤.손주경 옮김 / 생각의나무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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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와 함께해야 하고, 눈에 보이는 것을 그려야 한다’는 모더니티에 대한 디드로의 선언으로 19세기 미술은 문을 연다. 1848년 제2공화국 선언부터 세잔이 사망하는 시기까지의 미술을 중점적으로 다루는 있는 이 책은 급격히 다양해지고 팽창하는 유파들을 이전시대처럼 명명 지을 수 없고 <19세기 미술>이라고 묶었다.

  사실주의, 인상주의, 상장주의, 후기 인상주의, 아르누보, 아르데코 등이 혼재했던 시기였다는 것은 그만큼 예술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의미하기도 한다. 종교와 권력에 복무하던, 권위와 신화에 종속된 예술이 아니라 화가의 시선과 자연의 빛이 주는 느낌과 역할이 중요해지기 시작한다.

  현대 예술을 창조하기로 마음먹은 최초의 화가 쿠르베는 ‘올랭피아’, ‘아틀리에’ 등을 통해 현대성을 말한다. 특히 ‘오르낭의 장례식’는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작품속에 등장하는 현실속의 소시민, 노동자들의 모습을 통해 사실주의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마네의 ‘풀밭 위의 식사’는 정장 차림의 남자들 옆에 나체의 여성을 그림으로서 부르주아 전원풍 목가의 불순함을 그려내고 있어 충격을 주었다.

  이 시기는 니세포르 니엡스에 의해 최초로 사진이 발명됐던 시기로 미술에 또 다른 영향을 미친다. 드가나 로트렉은 사진을 통해 크로키나 동작의 목록의 역할 뿐만 아니라 시선의 포착과 인간의 인식 작용 사이에 놓인 간격을 가늠했다. 또한 사진은 일본판화와 같이 프레임, 앵글, 원경, 전경 등 새로운 공간구도를 구성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 시기의 일본 미술은 인물과 인물의 배치법인 화면 공간구성법과 배색법은 모네, 드가, 반 고흐, 고갱 등에게 영향을 끼쳤다.

  풍경화 장르가 전성기를 이루었던 19세기 후반은 프랑스에서 혁신적인 작업이 이루어졌다. 프랑스의 자크 루소, 샤토브리앙, 생피에르, 영국의 조지프 터너, 존 컨스터블 등의 풍경화가 인상적이었다.

  ‘인상, 떠오르는 태양’으로 유명한 클로드 모네의 그림을 보면 “풍경이 자아내는 감각의 측면에서 인상주의적이다”라고 한 카스타냐리의 말로 표현된다. 피사로, 세잔, 기요맹, 바지유, 모네, 르누아르 등의 인상주의 화가그룹은 본격적인 현대성을 발현하기 시작한다.

  빈센트 반 고흐의 ‘까마귀 떼 나는 밀밭’은 그의 마지막 작품으로 죽음을 예견한듯 보인다. ‘해바라기’의 작가로, 생 레미 프로방스 정신병동에 감금된 채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한 그는 동시대와 20세기 화가들에게 복잡한 영향을 끼쳤다. 야수파에게 생생한 터치를 인상주의에는 색채의 상징적 역할을 전수했다고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난과 고통스런 질병 속에서 그가 빚어낸 예술혼이 그의 그림을 빛나게 하고 있다. 십수년 전에 읽었던 그의 평전의 감동이 아직도 생생하다. 대중적인 그림일 수 없으나 경외감을 가지고 그의 그림을 대하게 되는 이유는 단지 그의 생애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의 그림이 보여주는 강렬한 색감과 붓의 터치는 미술에 문외한인 나에게도 더할 수 없는 여운을 주었었다.

  폴 세잔은 현대 예술, 특히 큐비즘과 야수파의 문을 연 프랑스 회화의 거장이다. 야수파는 색채를, 피카소와 브라크의 큐비즘은 구성을 중시했다. ‘생트 빅투아르 산’과 ‘사과와 오렌지’ 등을 통해 색채와 형태의 엄격한 균형에 바탕한 그의 특징들을 살펴볼 수 있는데 큐비즘과 야수파는 여기에서 비롯되었다고 평가된다.

  이 시기의 또 하나의 특징인 상징주의 화가들은 사물의 보이는 모습을 넘어서 숨겨진 현실을 표현하고자 하였다. 윌리엄 헌트, 로세티, 존스, 드샤반 등이 여기에 속한다. ‘천국의 문’과 까미유 클로델과의 연인으로 너무나 유명한 오귀스트 로댕의 조각들은 사랑과 삶에 대한 염세주의적 개념은 보들레의 ‘악의꽃’에서 영향을 받고 있다. 폴 고갱의 <백마>는 색채 사실주의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움을 선택한 그림으로 평가 받는다. 타이티에 말년을 보낸 고갱의 그림에서 보여주는 원시적 상징성은 후세에도 많은 논란이 되었다.

  건축에서 보여주는 절충주의와 예술의 총체로서 ‘아르누보’라 명명되는 세기말 징후는 당연해 보인다. ‘예술과 사회를 엮어줄 삶에 보탬이 될 수 있는 예술을 창조하려는 생각’이 아르누보를 단정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 영국의 ‘아츠 앤 크래프트’, 프랑스의 ‘성찰적 미학’ 그리고 개인 주택으로까지 발달되는 과정들이 이 시기 만물과 만인을 위한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아쉬운 것은 스페인의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의 소개가 간략하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건축가로 그의 건축 화보집을 보다가 스페인으로 뛰어가고 싶었던 적이 있었는데 소개가 미흡해서 아쉽다.

  이렇게 폴 고의 죽음과 더불어 19세기는 막을 내리고 20세기 시작되었다. 고갱은 원시적 예술표현의 문을 열어줌으로써 큐비즘 형성에 근본적인 역할을 하게될 아프리카 가면의 ‘발견’에 화가들이 민감하도록 만들었다. ‘인간은 어디에서 왔는가, 인간은 누구인가, 인간은 어디로 갈 것인가’라는 그의 그림은 미술의 영역이 존재론적 측면에서 자신을 반성하고 20세기 미술의 성찰을 예견하고 있다.



2005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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