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인 7색 - 일곱 개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일곱 개의 세상
지승호 지음 / 북라인 / 2005년 11월
평점 :
절판


인터뷰는 형식과 내용면에서 깊이가 없을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인터뷰어의 질문과 의도에 따라 대화가 진행되고 인터뷰이는 미리 준비하거나 깊게 생각할 여유가 없다. 깊이 고민하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서 글을 쓰는 것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을 수도 있는 위험성을 내포한다. 그래서 나는 인터뷰를 좋아하기도 하고 싫어하기도 한다.

  솔직하고 생생한 느낌과 역동적인 현장의 목소리를 직접 전달받는 느낌으로, 제 3자의 시선으로 들여다보는, 혹은 엿듣는 호기심 가득한 독자가 되는 일은 즐겁다. 전문 인터뷰어로서 꾸준한 성과를 보이고 있는 지승호의 <7인 7색>은 분명한 색깔을 띠고 있다. 7명의 인터뷰이의 이름을 보고 거부감 없이 주문한 책이다. 인터뷰이들의 면면이 궁금했다기보다는 사람들이 지승호가 던지는 질문에 어떤 반응을 보일지가 궁금했고 지승호가 준비한 질문들이 궁금했다. 그런면에서만 궁금했으니 내게 특별함이나 새로움을 주지는 못했다.

  워낙 친숙하고 그들의 면면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한 권의 책에서 만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즐겁게 읽었다. 철저한 준비와 인터뷰이에 대한 꼼꼼한 분석으로 최근의 이슈가 됐던 사건이나 생각의 단면들을 여지없이 보여주도록 하는 지승호의 인터뷰는 분명한 특성과 깊이를 가지고 있다. 인간에 대한 단순한 호기심 차원의 문제에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현상에 대한 문제를 접근하는 방식과 인터뷰이의 개성과 특성을 드러내는 능력이 탁월하다. 지나치게 딱딱하거나 일률적인 내용으로 흐를 위험성을 피해가며 인터뷰이가 선명한 색깔을 드러내도록 도와준다.

  ‘나는 모든 지배와 권위에 반대한다’는 제목으로 박노자에 대한 인터뷰가 처음으로 실렸다. ‘진정한 아나키스트’로 명명된 박노자는 분명 한국인이지만 국적과 인종을 초월한 그의 세계관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갖가지 문제점을 비추어보는 거울의 역할을 한다. 그간 박노자가 쓴 책들과 칼럼들은 우리 사회의 현주소를 가장 정확하고 날카롭게 보여준다. ‘다름을 인정하는 개인주의자’ 이우일은 색다른 만화가다. 키취적 감성과 인디적 매력을 모두 가진 특별한 만화가다. 그가 세상에 대해 보여주는 냉소와 삐딱함은 독자들을 열광케했고 여전히 그의 만화를 기다리게 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만화를 특정 장르로 묶어두는 것은 곤란하다. 다양한 내용과 또 다른 방법으로 독자들에게 다가갈 일러스트레이터이자 만화가인 이우일의 개인주의는 이기적이거나 치기어린 돌출행동과는 분명히 구별되는 면을 가지고 있다.

  ‘낭만주의를 포기한 낭만주의자’라는 이름이 조금 어색한 유시민. 지승호의 최근작인 <유시민을 만나다>에서 소셜리버럴리스트라고 명명한 유시민이 이번엔 낭만주의자라는 이름으로 소개된다. 현실 정치에 대한 꿀꿀함을 쿨하게 털어버릴 수 있는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는 유시민에 대한 지지자들이 애증을 보일만한 내용이다. 앞의 책에서 그의 생각과 면면들을 자세하게 소개했기 때문에 이 책에서는 근황과 최근 정치 현실, 변화된 어법에 대한 생각들을 편안하게 살펴볼 수 있다. 손석희에 맞서 SBS에서 시사 프로를 진행하는 ‘광대의 철학자’ 진중권의 인터뷰도 흥미롭다. ‘나는 고상함 대신 장바닥에서 싸움질을 마다하지 않겠다’는 한마디가 그를 대변한다. 항상 흥미로운 또는 투사같은 느낌으로 상대의 속을 뒤집거나 그 반대편의 사람들의 속을 시원하게 해주는 탁월한 능력의 소유자. 거침없는 언변으로 싸움닭의 모습을 보여주는 그가 라디오 프로 진행자로서의 장단점을 들려준다.

  ‘유연한 사회주의자’ 노회찬은 대중의 호감을 위하여 사회주의자인 나의 정체를 숨기지는 않겠다고 이야기하는 솔직함과 부드러움을 가진 정치인이다. 그의 삶과 정치인으로서 태도는 가장 정직해 보인다. 숱한 어록을 남기며 제도권 정치에 진입한 민노당 의원 노회찬은 아직 드러나지 않은 면이 많다. TV에서 보여지는 단편적인 모습이 아니라 그가 준비하고 있다는 책들을 만나 좀 더 많은 생각들이 대중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노동자 세상을 꿈꾸는 인도주의자’ 하종강은 설명이 필요 없는 사람이다. 20여 년간 같은 일들을 반복하며 노동자의 편에서 일하고 있는 그의 생각과 이야기가 보다 많은 사람들에 전해지길 바란다. 스스로 노동자이면서도 노동자인줄 모르는 사람들과 노동운동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노동자는 선이고 노동 운동은 사회에 유익하다는 사실을 모르는 많은 사람들에게 보다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길 바란다 ‘타인을 부끄럽게 하는 좌파’ 김규항의 인터뷰로 이 책은 마무리 된다. <나는 불온한가>가 나오기 전에 인터뷰한 내용이어서 출판에 관한 이야기도 간단하게 언급다. ‘자본주의를 넘어서지 않고는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는 일관된 관점을 가지고 이야기 하는 김규항은 유일하게 인터뷰어 지승호에게 반말을 하는 사람이다. 개인적인 친분때문인지 몰라도 어색하거나 거부감이 들기보다는 나름대로 색다른 느낌이 든다.

  일곱 명의 면면이 너무 뚜렷하고 개성적이어서 <7인 7색>이라는 제목을 붙였겠지만 ‘따로 또 같이’ 묶일 수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세상을 사랑하는 나름의 방식을 가지고 있으며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대답만큼은 확실하게 얻은 사람들처럼 보인다. 흔들림 없이 자기 갈 길을 걸어가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길을 만들어 주고 있다. 그것이 비록 정치적으로 반대편에 서 있는 사람들이라도 인간적인 면을 떠나 그들이 행하는 방식과 지향점을 한번쯤은 들여다 볼 수 있는 책이다. 이렇게 사는 것은 어떤가? 혹은 이것이 나의 신념이고 내가 살아가는 이유다라는 이야기들을 담아내고 있는 책이다. 각 분야의 전문가일 수도 아닐 수도 있는 사람들이지만 선명하고 아름다운 색깔로 빛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임에는 틀림없다. 나는 일곱명 모두에게 평소 깊은 관심과 호감을 가지고 있다. 애정이 없는 인물들에 대한 인터뷰를 읽을 이유가 없다. 당연하지만 지승호의 이 책은 인터뷰어의 훌륭한 기록중 하나로 남을 것이다. 지승호의 다음 인터뷰도 기다려진다.

  살아가면서 세상을 안다는 것은 사람들의 세상살이를 알아간다는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만큼 지루하면서도 아름다운 것은 없다. 한 분야에서 혹은 자신의 일에 열정과 보람을 느끼며 살아가는 사람들, 어렵고 힘들지만 새로운 길을 만들어가는 사람들, 즐거움과 열정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면면을 들여다 보는 일은 나를 돌아보는 좋은 기회가 된다.


2005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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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 권력과 싸우다 - Kafka Franz
박홍규 지음 / 미토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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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징벌
  - 카프카, 나의 카프카 12

 1

어둠이었습니다. 세상은
열리지 않는 門 이었습니다

어둠 한 조각 도려내어
한 줄기 길을 트려 하였습니다
눈빛만 벼렸습니다. 새파랗게

 2

거미줄 迷路
내 손바닥에 펼쳐져 있습니다

 3

눈이 아픕니다
죽도록 벼려온 어둠의 칼
나 이제 허덕이며
엎디어 받습니다

나 아직도
門 앞에 있습니다 무쇠門 앞에

  94년 여름 민음사에서 나온 독문학자 전영애 시집 <카프카, 나의 카프카>를 오랜만에 꺼내본다. 이 시집 이후 그녀가 계속 시를 쓰고 있는지 어떤지 난 알지 못한다. 박홍규의 <카프카, 권력과 싸우다>를 읽다가 거론된 그녀의 이름 때문이다. 이 시집을 산 이유는 오로지, 제목 때문이었다. 그녀가 카프카에 대해 가지고 있는 열망은 ‘글쓰기’에 대한 다른 표현이었을 뿐이었다. 카프카를 전공했고 프라하에 다녀온 그녀의 이야기는 오로지 ‘카프카’를 위해 바쳐져 있다. 얄팍하고 빛바랜 그녀의 시집은 오래된 카프카에 대한 기억의 조각을 꺼내게 했다.

  카프카 전집 발간사에 소개된대로 카프카는 ‘불안과 고독, 소외와 부조리’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인식되어 있다. 박홍규는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간 전영애와 같은 독문학자들과 문학을 전공한 사람들에게 분석되어진, 혹은 규정되어진 카프카를 재해석하기 위해 이 평전을 썼다. 저자의 초점은 분명해 보인다. ‘권력과의 투쟁’이 그것이다. 가깝게는 가부장적 권위에서부터 멀게는 국가 권력에 이르기까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권력’을 거부하는 ‘아나키스트’로서의 면모를 찾아내는데 역점을 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법을 전공한, 글쓰기를 병행하는 박홍규 교수가 카프카에 대해 느끼는 동질감과 개인적 애정은 각별할 수 밖에 없어 보인다. 어쨌든 ‘평전’이라는 형식은 객관화될 수 없다는 점을 전제로 해야 한다면 또 다른 시각에서 카프카를 조망해 볼 수 있는 책이다.

  카프카는 주목받지 못한 비운의 생을 마감했고 모든 원고를 태워달라고 부탁한 친구 브로트에 의해 빛을 본 작품들도 많다. 1937년과 1957년 두 차례나 그의 평전을 썼던 친구에 의해 말해지는 카프카의 모습은 일반적으로 카프카를 이해하는 출발점이 된다. 그가 남긴 수많은 작품들과 그를 바라보는 여러 가지 시선들은 나름의 의미를 지닐 것이다. 그것이 종교적 입장이든 사회주의적 시각이든 심리학적 분석이든 간에 카프카는 20세기에 가장 주목받은 텍스트가 되었다. 체코인으로 태어나 프라하에서 거의 전 생애를 마감한 그의 생은 같은 유태인이면서 20세기의 천재로 추앙받는 아인슈타인이나 프로이트, 마르크스와 더불어 플러스 알파가 되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엔 공감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모든 평전이 그러하겠지만 500페이지가 넘는 평전을 한 장 한 장 넘겨가며 카프카의 생을 음미해보고 작품을 이해하며 깊은 관심과 애정으로 무장하지 않는다면 읽을 필요가 없다.

  더구나 카프카의 작품을 분석하기 위한 평론가의 평전은 표현론적 관점에서 작품과 그의 생애를 직접 연결시켜 분석하려는 태도를 벗어나기 어렵다. 그러나 박홍규는 순수한(?) 카프카에 대한 애정과 관심으로 쉽고 단순하게 카프카를 표현한다. ‘나의 친구’라는 표현이 그렇다. ‘불안과 고독’이나 ‘소외와 부조리’가 아니라 끊임없이 세상을 관찰하고 모든 권력에 대한 거부의 몸짓으로 그의 작품들을 읽어내는 것도 또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의 의견에 이의를 제기해야 할 부분들도 많이 있으나 구체적으로 반론을 제기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스스로 밝히고 있듯 전공을 위한 것도 평론이나 작품 분석을 위한 것도 아닌 한 인간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가장 적극적으로 표현한 책이기 때문이다.

  익히 알고 있듯이 전방위적 독서와 폭넓은 인문학적 지식으로 무장한 박홍규의 ‘카프카’ 이야기는 결코 가볍고 만만하지 않다. ‘들어가는 말’에서 밝히고 있듯이 카프카와 그의 작품을 좀 더 깊이 있게 그리고 알기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 카프카가 살았던 시대의 사회, 문화적 배경에 대해 소상하게 밝혀 적고 있다. 카프카의 생애와 사상은 그가 살았던 시대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은 당연한 지적이다. 특히, ‘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를 인용하면서 자세히 밝히고 있는 가정환경과 가족관계는 그의 작품들을 분석하고 카프카의 문학세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가 사랑했던 은 여인들과 41세의 젊은(?) 나이로 죽을 때까지 독신으로 살았던 이유는 고스란히 문학에 대한 열정과 작품 세계에 반영되어 나타난다. 다만 개별적인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사건들에 대한 해석과 평가는 별개의 문제다. 당연히 저자는 카프카에 대한 진한 애정과 깊이 있는 관련 문헌들에 대한 꼼꼼한 분석으로 카프카를 다른 방식으로 독자들에게 선보인다.

이미 열 다섯 살의 카프카는 엄청난 독서가이고 격렬한 토론가이며 게다가 당시로서는 가장 위험한 사상으로 여겨진 사회주의자였다. - P. 189

  저자가 카프카를 이해하는 단초가 되는 문장이다. 카프카에 대한 평가는 그 개별적인 의미를 넘어 다양성이란 측면에서 충분히 의미있는 작업이었다고 볼 수 있다. 전문가들의 난해하고 어려운 해설과 감상의 길잡이 때문에 오히려 어렵고 딱딱한, 이해하기 힘든 작가로 여겨지는 카프카를 다시 만나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는 책이다. 카프카의 일기와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 전하는 다음 구절은 ‘문학’과 ‘독서’에 대한 주먹질로 이 평전을 통해 오래 기억될 것이다.

“문학이란 문학사의 문제라기 보다도 민중의 문제다”(1911년 12월 25일 일기) - P.271

“우리가 읽는 책이, 우리들의 머리에 주먹으로 일격을 가해서 각성을 시켜주지 않는 것이라면, 우리는 무엇 때문에 책을 읽겠는가? … 한 권의 책, 그것은 우리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하네.”(바겐바하, <카프카>, 51-52쪽 재인용) - P. 274


06021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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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 - 유학과 서학의 창조적 종합자 e시대의 절대사상 5
금장태 지음 / 살림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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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벽한 하나의 사상이 태어났다는 가정은 거짓이다. 기준이 없는, 비교 대상이 존재하지 않는 완벽함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세상에 전해지는 사상이나 제도가 완벽해지는 날은 없을 것이다. 무수히 많은 인간들이 명멸했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통해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도저히 답이 없을 것 같은 지협적인 문제에 목숨걸고 사소한 사건에 생의 전 존재를 거는 무모함 뿐이다. 그것이 삶이다. 모두가 그렇다.

  안개 자욱한 하늘 아래 강진에서 세상을 바라보던 다산 정약용은 200여년전에 어떤 생각을 하며 바다를 보았을까 생각해본다. 중국의 경서를 꼼꼼하게 해석하는 것을 학문의 근본으로 삼았던 유배지에서의 삶이 어떠했을지 짐작만 간다. 신영복 선생처럼 감옥에 갇혀 있지는 않았지만 두 분이 똑같이 18년이라는 긴 세월을 세상에서 유배당했다. 학문적으로 154권 76책이라는 방대한 분량의 저서를 남긴 다산은 유학과 서학의 ‘창조적 종합자’라는 부제에 어울린다. 75년이라는 짧지 않은 삶을 살아가면서 사람들과 생에 대한 관점도 생각도 많은 변화를 겪었을 것이다. 그것은 단지 신유년 벌어진 종교적 탄압이나 지인들의 죽음이라는 트라우마만으로 설명될 수 없는 또 다른 상처와 개인적 고통을 전제로 한다. 남인 시파인 자신의 정치적 배경의 불리함을 극복하기 위해 천주교의 부당한 측면을 스스로 비판해가며 살아남은 자의 슬픔과 고뇌를 평생 간직했을 것이다. 그의 생애와 사상을 들여다보는 일은 19세기 초 조선 사회의 단면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기예론이나 탐진촌요와 같은 빙산의 일각으로 다산에 대해 수많은 이야기를 찌껄이며 살아온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뒤늦게 만나게 될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들이 더 간절해지는 이유다. 이 책의 저자 금장태는 다산의 삶과 사상의 핵심과제, 그리고 현재의 유용성에 대해 정리한 후 2부에 다산의 글들을 실어 한 권의 책으로 묶었다. 살림 출판사의 ‘e시대의 절대사상’ 시리즈가 어떤 목적으로 시작되었든 깊이와 넓이를 확보할 수는 없었지만 피상적으로 혹은 장님이 만지던 그것이 코끼리가 확실했다는 증거 정도는 제시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다산에 대한 저자의 평가 몇 가지를 살펴 본다.

  정약용은 우리 사회의 여러 영역에서 전통적 사유방식과 제도를 관찰하면서, 곳곳에 배어 있는 불합리하고 비능률적인 사유의 관습과 허위성을 철저히 성찰하여 깨뜨리고 있다. - P. 106

  정약용은 실학적 사유의 새로운 세계관을 정립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사상조류를 수용하고 있으며, 그 가운데 서양의 과학기술이 지닌 합리성과 효용성의 자연과학적 사유를 폭넓게 받아들이고 있다. - P. 107

  정약용의 경학에는 성리학적 해석에 대한 비판적 평가는 물론이요, 양명학 ․ 고증학 ․ 서학의 다양한 이론과 방법의 섭취를 통해 독자적 세계가 유감없이 발휘된 것으로, 실학파 경학의 결정판을 이룬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P. 112

  인간과 인간의 만남이란 바로 인간의 사회적 관계를 이루는 것이다. 따라서 정약용은 인간 존재의 근원을 하늘로 인식하면서도 인간관계의 사회적 규범인 인륜이 바로 천명(天命)임을 확인하고, 인간 존재의 실현이 바로 인간관계의 사회적 실현을 통해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 P. 118

  그는 “나에게는 소망하는 바가 있다. 온 나라가 양반이 되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온 나라에 양반이 없게 될 것이다”라고 하여, 차별적 신분제도를 전면적으로 타파하고 인간의 사회적 평등을 확립하는 이상을 자신의 소망으로 밝히고 있다. - P. 129

  학자로서 혹은 한 인간으로서 다산의 면모를 살펴보는 일은 다른 누구와도 마찬가지겠으나 현재적 유용성 때문이다. 책 속에 묻혀버린 수많은 과거의 인물들과 박제된 역사가 아니라 시대를 초월해서 우리의 반성적 태도를 확인하게 하는 시금석이 된다. 신분제도가 타파되었으나 여전히 계급은 존재하며, 인간 존재의 실현이 사회적 실현을 통해서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이 지금 우리의 현실이다. 합리와 능률을 중시하고 사유의 관습과 허위성을 깨뜨릴 수 있는 성찰의 시간이 필요하다.

  다산의 전 생애를 통해, 특히 유배지에서 보낸 18년 동안 노자의 말을 빌어 “겨울에 시내를 건너는 것처럼 신중하게 하고(與), 사방에서 나를 엿보는 것을 두려워하듯 경계하라(猶)”는 뜻의 여유당을 지은 뜻은 해석이 다양할 수 있다. 신중하고 경계하는 태도가 현실 정치에 몸담았던 사람으로 실현 가능성을 염두해 둔 자세였는지 불가피한 선택이었는지 알 수 없으나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다양한 해석과 접근 방식이 아니라 다산의 저작을 직접 읽어 볼 일이다.


060214-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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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 - 네그리가 말하는 네그리, 안느 뒤푸르망텔과의 대화
안토니오 네그리.안느 뒤푸르망텔 지음, 윤수종 옮김 / 이학사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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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토니오 네그리와 토니 네그리는 다른 사람이라고 믿고 싶어하는 것은 타인이 아니라 네그리 자신이다. 사회적 가면과 본질적 자아 사이의 충돌은 누구에게나 벌어지는 상황일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네그리를 persona와 anima의 대립과 갈등으로 살펴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행간에 녹아 있는 네그리의 내적 갈등과 고민의 깊이에 공감할 수 있다는 가정 하에서 하는 말일 뿐이다.

  내가 처음 만난 안토니오 네그리는 안토니오 그람시와 닮았다. 20세 초 파시즘이 극에 달할 무렵 이탈리아 공산당을 이끌었던 그람시의 생애와 사상이 안토니오 네그리를 통해 20세기 후반으로 이어지는 듯한 착각을 하게 한다. 치열한 삶에 대한 대가는 이기적 욕망과 거리가 멀다. 모든 이데올로기가 개인의 사회적 욕망의 확대라고 해석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아집과 독선과 구별하기 위한 사회적 삶은 때때로 숭고하게 느껴진다. 옥중에서 사망한 그람시와 이제 겨우 자유의 몸이 된 네그리는 이탈리아라는 공통된 조국을 배경으로 시대를 달리하는 숭고한 힘으로 느껴진다.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안경너머의 네그리의 눈빛은 무엇을 응시하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입가에 머문 미소는 의미 심장해 보인다. 갑자기 왠 관상인가.

  이 책은 네그리를 읽기 위한 전채 요리쯤 되겠다. 네그리 스스로가 말하는 생애와 사상이 솔직하고 담백하게 대담 형식을 통해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안느 뒤푸르망텔과의 대화를 통해 네그리를 읽을 수 있다. 막연한 주제와 인터뷰 형식이 아니라 알파벳 A(무기arme, 습격attentat, 미래avenir…)부터 Z(엘레아의 제논zenon d''Elee)까지 분명한 어휘와 주제를 가지고 대화를 이끌어가고 있기 때문에 자유스러우면서 선명한 이야기들이 오고 간다.

  네그리의 가장 큰 장점은 이탈리아 투쟁의 선봉에 선 경험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체계적인 생각들이다. 폭†좇?철학적 지식을 배경으로 이론과 실천의 조화가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게 한다. 편견과 좁은 시야로 오로지 한가지 목적에 매달리는 맹목성도 아니고 통합주의를 주장하는 위험한 줄타기도 아니다. 분명한 자기 목소리를 내기 위한 이론과 실천은 쉽게 접근하기 힘든 점이 있다. 좀 더 읽고 파악해야 할 부분으로 남겨진다.

  행동하고 투쟁하는 것이 창조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그의 목소리는 ‘진보’에 대한 확고한 신념에서 비롯된다. 그것이 과격한 ‘혁명’이나 온건한 ‘개혁’이냐의 문제는 시대와 나라를 초월해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사회적 갈등이다. 우리의 문제도 다르지 않아 보인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사회적 갈등과 모순들은 해법이 다르다.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니 처방이 다를 수 밖에 없다. 모두가 동의하는 대안이 불가능하겠지만 네그리를 통해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들은 무엇일까 깊이 반성해 볼 일이다. 

진리는 결코 중립적이지 않기 때문에 진영을 선택하는 것에서 벗어난 진리는 없습니다. 사람들이 과학이 중립적이라고 주장할 때, 사람들은 과학이 무력하다고 비난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삶이 중립적이라고 주장할 때, 사람들은 삶이 무기력하다고 비난하는 것입니다. 전투적 태도, 그것은 사람들이 진리의 즐거움과 삶의 쾌락에 접근할 수 있는 형식입니다. 전투적 태도는 충만한 열정에 일치하는 언어적 장을 발전시키고, 삶의 살을 특이한 신체로 변형시킵니다. - P. 57

  진리는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는 전언이 오래 기억에 남을 것이다. 현실에서 진영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면 진리는 각기 다른 형상을 하게 된다. 진리 이전의 문제를 고민하는 상황에서 ‘전투적 태도’야 말로 네그리 사상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선택과 갈등은 삶의 한 양상이니 그리고 전투적 태도와 투쟁이야말로 삶을 이끌어 나가기 위한 도구이자 분명한 방편이라는 사실에 동의한다.

  안토니오 네그리가 안토니오 그람시와 닮았다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삶은 바로 세계를 변화시키고 세계를 변형하고 세계를 발명하는 것입니다. 세계를 혁명하는 것입니다. - P. 240


060218-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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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신동엽
김응교 지음, 인병선 유물 보존.공개.고증 / 현암사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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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엊그제가 신동엽이 세상을 떠난 지 37년 되는 날이었다. 신동엽의 살아 있다면 일흔 여섯이다. 바보같은 상상일 수도 있겠지만 그가 여전히 살아 있다면 구상이나 고은처럼 노년을 맞이했을 동시대 인물이다. 재작년에 돌아가신 구상처럼 질곡의 역사를 온몸으로 살아내기에는 버거웠을까? 1930년에 태어나 39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등진 신동엽의 시는 여전히 살아 있다. 신동엽이 죽기 바로 전인 1968년에 김수영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을 때 이미 간암 판정을 받은 신동엽은 자신의 죽음도 예감하고 있을 것이다.

  시인의 죽음은 영원한 미완성의 시로 남는다. 생전에 그가 남긴 시는 아직도 살아 있다. ‘껍데기는 가라’,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종로 5가’, ‘산에 언덕에’ 같은 명편들과 서사시 ‘금강’으로 기억되는 시인 신동엽의 육필 원고를 책을 통해 만났다. 그의 생애를 통해 시를 들여다보는 일은 시 자체에 대한 이해를 돕는 작가론의 의미를 넘는다. 당연하게도 그는 시대의 아픔을 온몸으로 겪어낸 인물이기 때문이다. 한 인간의 죽음이 신화가 될 수는 없다. 하지만 한 사람이 남긴 글과 생각들이 시대를 담아내는 정제된 언어라면 단순한 삶을 넘어선다. 먼저 인물의 전형성이다. 사법서사(현 법무사)의 아들로 태어나 일제 식민지를 경험했고 문인으로서 평범한 길을 걸었던 신동엽의 직업은 국어교사였다. 전주사범을 거쳐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한 신동엽의 삶은 어렵고 가난했던 현대사의 격변기를 조용히 대변한다.

  동숭동에 가면 짚풀사 박물관이 있다. 같은 건물에 전국국어교사모임 사무실이 세들어 있어 우연한 기회에 인병선 여사를 만나 뵙고 신동엽에 관한 이야기와 짚풀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스물 네 살 청년 신동엽이 이화여고 3학년이었던 인병선을 만난 것은 사람들이 말하는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 서울대에서 철학을 공부하던 인병선은 3학년 때 신동엽과 결혼한다. 아들 둘과 딸 하나를 남기고 죽은 남편의 원고 시작 노트들을 고스란히 정리 보관하며 평생 그의 흔적과 그늘 속에서 살아온 인병선의 삶은 어떠했을까. 오히려 신동엽이 행복한 건 아닐까?

  신동엽의 시세계는 완성되지 않은 채 끝나버렸다.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로 등단해서 간암으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동학 농민 혁명과 갑오개혁, 4․19 정신을 토대로 민중들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던 시인의 죽음은 갑작스러웠다. 서사시 ‘금강’ 이후 ‘임진강’을 준비하던 중이었던 시인의 나이는 시인으로서 절정에 달한 시기였다. 시에 대한 개인적인 관심과 시인에 대한 존경을 떠나 현대시의 새로운 흐름이 끊겨버린 느낌이다.
 
  현암사에서 펴낸 <시인 신동엽>은 인병선이 공개한 유물과 고증을 통해 김응교가 소개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심장은 탄환을 동경한다>는 책을 통해 한 번 만난 적이 있는 김응교의 글은 신동엽에 대한 애정으로 가득하면서도 시인의 삶의 궤적을 따라 담담하게 독자들을 안내한다. 흥분하거나 안타까운 목소리를 숨기고 그의 유물과 육필 원고들을 사진으로나마 감상하는 기회를 제공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물론 인병선의 꼼꼼한 정리와 보존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이제 가족의 보존에 기댈 것이 아니라 문학관의 건립이 필요한 시점이 되지 않았나 싶다.

  시인 신동엽을 기억하고 싶은 사람이나 각별한 애정이 있는 사람이라면 꼭 읽고 소장해야 할 책이다. 전체가 개나리색 표지에 신동엽이란 글씨로 가득 메운 겉장은 그가 떠난 4월을 기억하는 듯하다. 오랜만에 신동엽 전집을 뒤적이다가 떠나기 1년전인 1968년 ‘창작과비평’ 여름호에 실린 ‘그 사람에게’가 눈에 들어온다.

그 사람에게

아름다운
하늘 밑
너도야 왔다 가는구나
쓸쓸한 세상세월
너도야 왔다 가는구나.

다시는
못 만날지라도 먼 훗날
무덤 속 누워 추억하자,
호젓한 산골길서 마주친
그날, 우리 왜
인사도 없이
지나쳤던가, 하고.


060409-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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