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곳에 가면 그 여자가 있다
김현아 지음, 유순미 사진 / 호미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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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읽고 나서 사람들의 반응은 제각각이다. 나에게 책을 읽고 난 후의 느낌을 물었을 때, 좋은 책은 가슴이 먹먹하도록 울림이 큰 책이라고 말한다. 물론 인간의 감성을 자극하는 문학 작품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철학이든 역사든 사회든 어떤 분야를 막론하고 카프카의 말대로 정수리에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의식의 한 부분을 일깨우는 책은 이성의 한 부분을 자극하는 깨달음의 책이 된다. 문학이든 아니든 이성과 감성을 나눌 필요도 없이 오랜 향기와 여운으로 가슴에 남는 책이 좋은 책이라는 데 동의한다면 김현아의 <그 곳에 가면 그 여자가 있다>는 보기 드물게 머리와 가슴을 모두 어루만지는 책이다.

  이 책은 기행문 형식의 글들을 모았다. 문학적 답사라고 해도 좋겠지만 얄팍한 흥미 위주의 책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다고 해서 머리 아프고 난해하게 이야기를 풀어 놓지도 않는다. 난삽하게 수다스럽지도 않고 부산스럽게 치장하지도 않았지만 그 깊이와 고민들은 단순한 기행과 답사의 결과물로 볼 수만은 없다. 웅숭깊은 흑백의 사진과 더불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고 현실을 벗어난 초월적 공간을 산책하는 듯하다.

  지나가 버린 시간들에 대한 단순한 경외나 이 세상을 떠난 사람들에 대한 아쉬움을 표현하기 위한 책도 아니다. 그녀들의 삶과 문학은 오롯이 현실이 되었고 수만 가지의 고리들은 인과 과정을 거쳐 현실 속에 살아 숨 쉰다. 다만 우리는 그것들을 쉽게 알아채지 못한다. 멀리 신라의 박제상 부인, 선덕여왕과 진덕여왕을 거쳐 조선의 허난설헌과 신사임당 그리고 매창을 만나고 20세기의 김일엽과 나혜석과 조우하며 마지막으로 고정희로 마무리 된다.

  그 지난한 세월 속에서 여성의 삶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진지한 고민과 학문적 성찰보다도 오히려 그들이 남긴 자취를 더듬어 보고 현장에 남아 있는 흔적들을 통해 그녀들을 반추하는 일이 우리에게 더 큰 의미로 다가온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인류의 절반인 ‘여성’은 어떤 존재인가 반문해 본다. 미래의 화두로 여성과 환경을 제시한 이윤기의 말을 빌지 않더라도 이제 수 천 년을 숨죽여 온 여성성의 재발견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새삼스럽게 거론할 필요도 없다. 우리는 이제 그런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경주에는 치술령과 분황사터, 선도산과 여근곡이 있다. 그곳에 가면 박제상의 부인과 선덕여왕과 진덕여왕을 만날 수 있다. 강릉 초당리와 오죽헌에 가면 허난설헌과 신사임당을 만난다. 부안 채석강과 곰소에 가면 매창을 볼 수 있고 수덕사에 가면 김일엽과 나혜석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해남에 들러 고정희의 시를 읽어본다.

  한반도의 좁은 땅을 뒤져 이 나라의 역사에서 명멸했던 여성들의 삶을 만나는 일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의 삶을 돌아보는 일이다. 여성 해방 운동의 선구자로서 대표적인 인물들을 탐방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삶의 주체로서 올곧은 그녀들의 영혼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남성, 그들만의 리그에서 배제되고 소외되었던 여성들의 삶은 그녀들의 것이 아니었다. 그녀들은 ‘여성’이라는 이름이 아니라 그저 한 ‘인간’의 삶을 선택한 것이다.

  시대를 앞서 생각하거나 살아가는 일은 모질고 고통스럽다. 무엇보다도 외로움을 선택해야 하는 일이다. 지금 우리의 시대정신을 미래는 무엇이라고 정의할까 궁금하다. 자본의 욕망이나 경쟁의 논리로 무장한 사람들의 피폐한 삶을 미래는 어떻게 한 줄로 정리할 것인가. 과거의 상식이었을 평범을 거부했거나 소수자였던 그녀들의 삶의 궤적을 쫓는 일은 즐겁고 행복한 산책이 아니었다. 이 책을 읽는 일은 인류의 역사, 아니 우리들의 과거를 아프게 돌아보는 것이고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작은 화두를 발견하는 일이다.

  기획과 출판 의도를 뛰어넘는 저자 김현아의 글과 류의 사진들이 결합하여 이 책은 누구에게나 선물하고 싶고 읽히게 하고 싶은 책이 되었다. 때로는 답사의 과정을 생생하게 묘하하기도 하고 때로는 작은 흔적들을 통해 그녀들의 생을 돌아보는 저자의 감각적인 문장과 사색들을 따라가다 보면 류의 사진을 만나게 되고 사진 안에서 다시 그녀들을 만나게 된다.

  그 곳에 가면 그 여자의 살았던 시대가 있고 그 여자의 삶이 있고 아직도 살아 숨쉬는 그 여자의 영혼과 만나게 된다. 역사는 반복된 미래일 수도 있겠다. 이 책에 소개된 곳에 모두 가보았지만 어렴풋이 역사의 흔적들만 돌아보았다. 아니, 어쩌면 나는 그곳에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것은 아닐까?

  배낭 속에 책 한 권 집어넣고 사진기 둘러메고 떠나라고 끊임없이 충돌질하는 문장들을 견디기 힘들었다. 이제 ‘그 곳’에 갈 때는 ‘그 여자’를 만나기 위한 준비를 해야겠다. 어디서든 볼 수 있겠지만 이 책에 소개된 곳은 특별한 시선으로 돌아보게 될 것이다. 어쩌면 다른 모든 곳에서도 ‘그 여자’를 찾아보라는 저자의 숨은 의도를 발견하지 못할 뻔 했다.

  나무와 숲 사이로 사라져 버린 그 수많은 길들처럼 ‘그 여자’가 사라졌지만 세상은 또 다른 ‘그 여자’들로 가득하다. 우리 모두는 ‘그 여자’를 기억할 것이고 그녀들의 삶을 통해 더 많은 ‘그 여자’를 지금 여기에서 만나게 될 것이다. 저기 멀리 서 있는 소외된 타자가 아니라 삶의 주체로서 우뚝 선 ‘그 여자’를 위해 이 책이 쓰여졌다고 믿는다.


08043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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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8-05-01 2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궁금해지네요...

sceptic 2008-05-04 18:06   좋아요 0 | URL
문학적 기행문...여성들의 삶에 대한 기억들...을 더듬고 싶을 때, 혹은 여기 소개된 동네에 가시기 전에 한번 읽고 가시면 다른 의미가 전해지지 않을까 싶어요...

키도 2008-05-13 2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혜석의 죽음 뒤에 붙는 불운한 그림자를 걷게 해준 책이지요.
누가 누구의 죽음을 제단할 수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경주와 고정희가 있는 해남.
제 경험속에도 상실과 희망이 교차하는 곳이어서
참, 울림이 컸습니다.

앞으로 님의 서재에 자주 오게 될 것 같네요.^^

sceptic 2008-05-15 13:12   좋아요 0 | URL
시간과 공간에 대한 기억과 그리움이 진하게 배어 있는 책이었습니다.

무이님도 많이 공감하셨다니 이 책은 독자들에게 충분히 생각의 기회를 제공한 듯 하네요.

가끔 오세요...^^
 
김광석, 그가 그리운 오후에... - 사진하는 임종진이 오래 묻어두었던 '나의 광석이 형 이야기'
임종진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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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읽는 하루 동안 나는 젖어 있었다. 오래된 조작적 기억과 얄팍한 감상과 지금의 나 사이에서 한참을 헤매다가 돌아오곤 했다. 창밖에 나무들이 보여주는 연녹색의 아름다움을 알지 못하던 시절을 더듬어야 했다. 동부전선 비무장 지대 GP에서 김광석의 자살 소식을 들었다. 천지 사방 끝없이 쏟아붓는 눈과 아득한 백두대간의 능선들 사이로 봄은 꿈도 꿀 수 없었던 1월 6일이었다. 마지막 GP생활이었고 이 겨울만 견디면 지긋지긋한 곳을 탈출할 수 있다는 희망의 시간이었다. 전방 초소에 올라가 근무 중인 소대원들과 킬킬거리다 체육관에 돌아오니 TV를 보던 병장 하나가 건네준 소식이었다. 나는 믿을 수가 없었다. 누군가의 죽음은 그렇게 비현실적으로 갑작스럽게 다가온다. 내 죽음도 그러하겠지만.

  불연속적 세계관을 무장한 한국인의 사고방식으로 죽음은 영원한 이별이며 존재의 소멸을 의미한다. ‘있던’ 김광석이 없어진 것이다. 그는 가고 노래만 남았다. 밤과 낮을 바꾸어 살아야했던 시간들이기 때문에 소형 카세트와 라면 박스로 배달되던 책들이 지루한 시간들을 꾸역꾸역 메우고 있었다. 김광석의 테입들은 하품하듯 늘어지기 시작했고 GP안의 책들도 바닥이 나고 하루 한 갑씩 피우던 담배도 말라가고 있었다. 30명 가까운 소대원 전체가 길고도 지루한 겨울을 나고 있었다. 망망대해의 섬처럼 GP는 비무장 지대의 외로운 섬이다. 그 안에서 광석이 형의 죽음을 맞았다.

집 떠나와 열차타고 훈련소로 가던 날
부모님께 큰절하고 대문밖을 나설 때
가슴 속에 무엇인가 아쉬움이 남지만
풀 한포기 친구얼굴 모든 것이 새롭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생이여

친구들아 군대가면 편지 꼭 해다오
그대들과 즐거웠던 날들을 잊지않게
열차시간 다가올 때 두손 잡던 뜨거움
기적소리 멀어지면 작아지는 모습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꿈이여

짧게 잘린 머리가 처음에는 우습다가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이 굳어진다 마음까지
뒷동산에 올라서면 우리 마을 보일런지
나팔소리 고요하게 밤하늘에 퍼지면
이등병에 편지를 고이 접어 보내오


  김광석의 목소리 만한 가수의 목소리를 들어보지 못했고 앞으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그 목소리와 어우러진 노래는 가슴을 후비고 영혼을 울린다. 그의 노래를 듣다보면 눈은 자연스레 하늘을 향하게 되고 가슴 깊은 곳에서 한숨이 흘러나온다. 잠시 동작이 느려지고 사물이 멀게 보이면서 눈가에 이슬이 맺히기도 한다. 감상적인 인간의 전형을 보여준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니 그의 노래는 때때로 폐부를 찌르는 알콜이나 니코틴처럼 혹은 보이지 않게 가슴까지 스미는 커피 향처럼 치명적일 때가 많다.

  사진하는 임종진의 <김광석, 그가 그리운 오후에…>는 오롯이 광석이 형에게 바치는 추모곡이다. 흑백 사진 속에 묻혀버린 그를 추억하며 그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놓은 임종진의 이야기를 듣다가 울컥. 그가 찍은 사진들을 보다가 또 잠시 동작을 멈추었다. 책을 보는 동안 내내 이어폰으로 그의 노래를 들었다. 죽음은 망각으로 비로소 완성된다면 그는 아직 죽지 않았다.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내뿜은 담배연기처럼

작기만한 내 기억속에
무얼 채워 살고있는지

점점 더 멀어져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줄 알았는데
비어가는 내 가슴속엔
더 아무것도 찾을수 없네

계절은 다시 돌아오지만
떠나간 내 사랑은 어디에
내가 떠나 보낸것도 아닌데
내가 떠나온것도 아닌데

조금씩 잊혀져간다
머물러 있는 사랑인줄 알았는데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있구나
매일 이별하며 살고있구나


점점 더 멀어져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줄 알았는데
비어가는 내 가슴속엔
더 아무것도 찾을수 없네

계절은 다시 돌아오지만
떠나간 내 사랑은 어디에
내가 떠나 보낸것도 아닌데
내가 떠나온것도 아닌데

조금씩 잊혀져간다
머물러 있는 사랑인줄 알았는데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있구나


  한참이나 시간이 흘렀지만, 잉게보르그 바하만의 <삼십세>와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로 1년을 보냈던 스물 아홉. 청춘이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사라졌음을 어느날 문득, 깨달아버렸다. 임종진의 넋두리처럼 ‘서른 즈음에’는 마흔이 다 되어서야 더 가슴에 와 닿는 건 아닐까?

  거실이 책장으로 채워지기 전, 한 밤에 홀로 불꺼진 거실에서 김광석의 DVD를 보며 홀짝였던 알콜 기운이 하루 종일 온몸을 감싸고 있는 것 같았다. 언제까지 김광석과 안치환과 정태춘만 듣게 될지 알 수 없으나 재즈나 피아노나 바이올린보다 크게 울리는 그의 목소리를 벗어나기는 힘들 것 같다. 돌고 돌아 그에게로 온다. 종착역은 아니지만 시골 마을의 간이역처럼 그에게 쉬었다 걷고 또 쉬게 될 것이다.

  김광석, 그가 그리운 오후에는 그의 노래를 듣는다. 정호승의 시에 백창우가 곡을 붙인 ‘부치지 않은 편지’처럼 사랑과 죽음의 자유를 만나 강물처럼 흘러가 버린 그대여, 이제 뒤돌아보지 말고 잘 가라.

풀잎은 쓰러져도 하늘을 보고
꽃 피기는 쉬워도 아름답긴 어려워라
시대의 새벽길 홀로 걷다가
사랑과 죽음의 자유를 만나
언 강바람 속으로 무덤도 없이
세찬 눈보라 속으로 노래도 없이
꽃잎처럼 흘러흘러 그대 잘 가라
그대 눈물 이제 곧 강물 되리니
그대 사랑 이제 곧 노래 되리니
산을 입에 물고 나는
눈물의 작은 새여
뒤돌아보지 말고 그대 잘 가라


080417-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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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 관용과 카리스마의 지도자
아드리안 골즈워디 지음, 백석윤 옮김 / 루비박스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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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류의 역사는 인간의 욕망의 역사와 그 궤를 같이 한다. 수많은 영웅이 탄생한 것은 시대의 요구와 변화 때문이다. 특별한 능력을 지닌 개인의 노력으로 인류의 역사가 바뀌는 것은 아니다. 정치적 상황과 군사적 힘을 지닌 사람들의 능력과 판단은 대단히 중요한 역사의 흐름을 결정한다. 하지만 운명적으로 탄생한 영웅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 사회와 정치적 상황을 배우고 익히며 권력과 힘의 논리를 적절하게 이용할 줄 아는 사람이 영웅이 된다. 인류 역사에 명멸했던 수많은 영웅호걸에 대한 우리의 판단과 예찬적 태도는 이미 확정된 결과에 대한 편향을 드러내는 심리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알렉산더와 더불어 유럽의 역사에서 가장 인상적인 영웅을 꼽으라고 한다면 누구나 카이사르를 떠올릴 것이다. 기원전 유럽의 역사를 풍미했던 카이사르는 우리에겐 문화와 역사적 상관 관계가 적어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적은 없겠지만 문명의 충돌과 교류 과정에서 간접적으로 그의 영향이 없을 수는 없다. 예를 들어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1년 365일인 달력을 처음 만들어 사용했던 카이사르력을 우리는 지금도 사용하고 있다. 중간에 수정보완 작업이 이루어지기 했지만. 카이사르가 제왕절개 수술로 태어났다는 어떤 증거도 발견되지 않았지만 우리는 그 유래를 카이사르에서 찾는다.

  어쨌든 한 시대를 주름잡았던 카이사르를 어떻게 규정지을 것인가는 역사가들의 몫으로 돌릴 수만은 없다. 지나간 시대와 인물들에 대한 객관적 평가가 불가능하겠지만 기원전에 살았던 인물에 대한 호기심과 그 시대의 사실에 대한 판단과 평가는 계속 될 것이다. 다만 문학가와 달리 역사가의 책은 가공의 사실을 흥미위주로 만들어 낼 수는 없는 것이다. 블랭크는 사실에 기초해서 메워질 것이며 앞뒤 상황 맥락이나 인과관계를 고려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에이드리언 골즈워디는 역사가이며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소설이 아닌 역사이다.

  일단 책의 외모를 살펴보자. <잊혀진 병사>라는 두툼한 책을 본 적이 있는데 루비박스의 의도는 분량과 단행본 그리고 책의 가격을 모두 고려해야 하는 고민을 했을 것이다. 860여페이지에 달하는 두툼한 분량의 책을 국판(152×218mm)보다 조금 작게 만들었다. 어쩌란 말인가. 책을 겨우 한 손에 거머쥐고 책장을 넘기기도 힘들다. 전체 3부로 이루어져 있으니 팔릴만한 책이면 얇고 가볍게 세 권으로 분권을 했겠지만 그 정도의 대중성을 확보하기는 힘들다고 판단했는지 외모가 조금 빠진다. 지나치게 두껍워 부담스러웠고 이럴 경우 책등이 갈라지는 현상은 필수적이다. 이에 대한 대책은 없어보인다. 갈라지면 갈라지는대로 그냥 봐야한다는 단점이 있다. 책은 일단 내용이 중요하지만 외모도 무시할 수 없다. 가독성을 고려해서 판형과 종이의 두께와 재질이 결정되고 디자인과 커버를 고려해야 한다. 개인적인 취향일 수 있겠지만 담고 있는 내용에 알맞은 외모도 겸비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 책은 편년체로 기술되어 있다. 한 인물의 평전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카이사르라는 인물을 정점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들이 마치 한 편의 거대한 장편 서사시를 보는 듯하다. 워낙 극적인 생애와 이력을 지닌 인물이기 때문에 카이사르의 행적 자체가 하나의 역사서로 손색이 없을 정도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책들이 나와있고 앞으로도 이 책이 마지막은 아닐 것이다. 그만큼 풍부하고 다양하게 해석되고 재조명을 받고 있다는 것은 카이사르라는 인물에 대한 중요성을 입증하는 예가 된다. 카이사르가 하지도 않은 “브루투스 너마저도……”라는 말을 만들어낸 세익스피어의 희곡도 카이사르에 대한 하나의 해석일 뿐이다. 정치인으로서 그리고 장군으로서 그를 판단하는 것은 주어진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당시의 역사적, 정치적, 군사적 상황을 정확하게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카이사르 스스로 쓴 <갈리아 전기>나 키케로의 저작들, <내전기> 등 다양한 인물들이 쓴 당시의 역사와 전쟁과 사료들을 모아 카이사르의 일대기를 구성하는 일은 힘겹고 어려웠을 것이다.

  저자는 이 지난한 과정들을 훌륭하게 극복했다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집정관이 되기까지 기원전 100년부터 59년까지를 1부로, 갈리아의 전쟁시기인 기원전 58년부터 50년까지를 2부로, 내전을 거쳐 독재관이 되기까지 기원전 49년부터 암살당하는 44년까지를 3부로 나눠 서술하고 있다. 실제 사건과 객관적 정황들을 각종 사료에 의해 제시한 다음 이에 대한 해석과 평가를 중간중간 삽입하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다소 어색하고 딱딱한 느낌을 주기도 하는 것이 이 책의 특징이다. 하지만 앞서도 언급했듯이 카이사르의 삶 자체가 주는 극적인 긴장감과 다양한 변주들이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길고도 험난한 한 로마인의 이야기는 유럽의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영웅의 고뇌와 당시의 정치적 상황들 그리고 부족간의 갈등과 알력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한 인물에 대한 보고서이면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전쟁 서사시이며 시대를 뛰어넘는 인간의 욕망에 대한 참고서이다.

  파르살루스 전쟁장면과 루비콘 강을 건너는 장면 그리고 클레오파트라와 강을 따라 남쪽으로 배를 타고 여행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루비콘 강을 건너기 전까지의 카이사르의 고뇌를 수에토니우스는 “주사위는 던져졌다(iacta alea est)."(P. 622)라고 표현했다. 지나치게 정치적이고 군사적인 측면에서만 다루어진 면이 아쉽기도 하지만 한 사람의 남자로서 그리고 인생의 후반기에 접어들었을 나이에 그간의 힘겨웠던 시대와 세월을 따라 클레오파트라와 배를 타고 떠나는 카이사르의 심정이 어떠했을 것인지 조금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알렉산드리아 전쟁을 마치고 이집트를 떠나 카파도키아의 파르나케스를 속전속결로 처리한 후 개선식을 장식한 간결한 문구 ‘VENI VI야 VICI(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P. 732)는 대리인에게 보낸 편지를 내용을 인용한 것이었다. 

  로마의 문화와 구체적인 생활모습 등의 내용을 생략하고 카이사르라는 한 인물에게 초점을 맞춘 이 책은 철저하게 그리고 상세하게 한 인물의 생애를 추적하는 것으로 잡다한 인물에 대한 평가를 대신한다. 너무나 잘 알려져 있고 반복되어 온 인물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평가라는 측면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한 인간의 삶을 추적함으로써 ‘카이사르의 관용’과 카이사르라는 인물 자체에 대한 오해와 편견들을 풀어내고 있다. 독자들이 개인적으로 그려놓았던 카이사르에 대한 평가가 어떠하든 이 책은 아주 비교적 객관적이고 냉정한 시선으로 카이사르의 행동과 삶을 다양하게 언급하고 있다. 알 수 없는 흔적들과 그 시대를 살았던 인물들의 대한 서로 다른 평가에 대한 판단은 독자들의 몫으로 남겨질 수밖에 없고 이 책 이후의 책에 기대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080124-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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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지 않는 사람들 - 20세기를 온몸으로 살아간 49인의 초상
서경식 지음, 이목 옮김 / 돌베개 / 2007년 9월
평점 :
절판


  세기가 달라졌기 때문에 달라지는 변화는 없다. 인위적인 시간 구분일 뿐이지만 우리가 20세기를 돌아보는 이유는 두 세기에 걸쳐 살아가는 행운(?)을 누리는 특권 때문은 아닌지 모르겠다. 역사적인 맥락에서 현실을 바라보는 행위는 구체성을 띠기보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접근하는 방식을 취하게 된다. 전체적인 맥락과 흐름을 파악할 수 있고 전후 관계와 사정을 알게 된다. 시간의 흐름은 모든 것을 포용하며 많은 것들을 반성하게 한다. 물론, 과거를 바라보는 눈도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만, 객관적 거리라는 것이 불가능 할 수도 있지만 지나간 시대를 돌아보는 일은 현재와 미래를 알 수 있는 가장 좋은 척도일 수도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지나간 기억들을 더듬게 된다.

  서경식의 <사라지지 않는 사람들>은 지난 세기를 온몸으로 살아냈던 사람들을 저자 나름의 주관적 기준으로 뽑았다. ‘20세기를 온몸으로 살아간 49인의 초상’이라는 부제는 적절해 보인다. 시인 로르카부터 서승과 서준식의 어머니 오기순에 이르기까지 당대를 뒤흔들었던 역사적 사건들 속에서 묵묵히 혹은 치열하게 신념을 지켰던 사람들이 첫 번째 기준이 된 듯하다. 20세기는 기억할 만한 여러 가지 사건들이 있었다. 특히 1936년 스페인 내전과 1973년 칠레의 쿠데타가 이 책에서 자주 언급된다. 지금도 카탈루냐 자치 문제는 스페인에서 진행형으로 이어지고 있지만 1936년 프랑코의 반란과 1973년 피노체트의 군사쿠데타는 지금까지도 아물지 않는 상처로 남아있다. 자연사할 때까지 장수한 피노체트나 5.18의 주역으로 전 재산 29만밖에 없는 전두환이나 우리는 여전히 부끄러운 역사 속을 거닐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아는 게 별로 없다. 그래서, 알고 싶어서 오늘도 읽는다.

  ‘육성으로 듣는 열정의 20세기’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장석준의 <혁명을 꿈꾼 시대>는 기억할 만한 연설을 중심으로 23명을 내세워 20세기를 정리하고 있다. 지난 세기의 역사를 정리하는 또 하나의 방법으로 읽을 만 했던 책이다. 서경식의 <사라지지 않는 사람들>과 함께 읽기 좋은 책이다. 두 책에서 겹치는 사람은 딱 세 사람이다.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 파블로 네루다, 살바도르 아옌데가 바로 그 사람들이다. 초점이 다른 책이므로 중복된 사람들이 큰 의미가 없을 수 있지만 관심을 갖고 보아야 할 부분이 분명히 있겠다. 피델 카스트로와 함께 쿠바 혁명을 이끌고 볼리비아 혁명을 뛰어든, 사르트르로부터 ‘20세기의 가장 완전한 인간’이라는 평가를 받은 체 게바라는 말할 것도 없고 1936년의 스페인과 1973년의 칠레 쿠데타를 경험한 파블로의 네루다와의 인연 그리고 체 게바라처럼 의사 출신으로 칠레의 인민 정부를 이끌다가 카스트로의 선물인 기관총을 들고 대통령 궁에서 총에 맞아 죽은 살바도르 아옌데의 삶을 들여다본다. 20세기를 기억해야 하는 많은 것들 중에서 사건이 아니라 사람을 중심으로 생각한다면 우리는 누구를 손에 꼽을 것인가?

  우리에겐 한일합방과 일제 강점기, 해방과 한국전쟁, 5.16 군사쿠데타와 5.18이 있다. 한 세기를 몇 개의 역사적 사건으로 정리하는 것은 얼마나 허망한가. 개별적인 사건들 속에 깃들인 한과 눈물은 현재 진행형으로 계속되고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그것을 외면하며 살아가고 있다. 우리의 현대사를 정리하는 것은 많은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계속 될 것이다. 20세기에 기억할 만한 한국인을 중심으로 지난 세기를 정리해 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겠다. 누가 떠오르는지 헤아려보자.

  한국 사람이지만 일본에서 살아온 서경식은 20세기 후반에 이 작업을 시작했다. 49명은 세계사의 관점이나 일본의 역사를 중심에 놓고 볼 때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사람들만을 엄선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사에키 유조, 아이미쓰, 가모이 레이, 마키무라 고우, 오구마 히데오, 하라 다미키, 가네코 후미코 등등 일본인 들은 처음 들어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에 비해 안중근, 김구, 홍범도, 김산, 윤동주, 김지하, 박노해 등은 우리에게 너무 익숙하다. 그 밖에 파블로 카잘스, 바실리 칸딘스키, 에리히 케스트너, 안네 프랑크, 프리모 레비 등 세계사를 중심으로 한 인물들이 있다. 한국과 일본 그리고 유럽의 인물로 3분할 수 있으나 크게 의미는 없다. 일본의 상황과 입장에서 일본 사람들에게 읽힐 목적으로 쓴 짧은 글들이기 때문에 대표성에 의문을 제기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다만 인물들의 면면을 들여다 보며 우리가 지난 세기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갖는 것이 의미가 있다.

  회한과 한숨으로 가득한 비극의 세기라고 밖에 말해질 수 없는 질곡의 세월을 견뎌왔다. 21세기에는 사람이 사람답게 존중받고 전쟁이 없는 평화만이 가득한 세기가 될 수는 없을까 하는 상상은 공상에 가깝게 느껴진다. 9.11 테러로 21세기의 문을 열었고 이라크에 대한 침략 전쟁은 계속되고 있으며 팔레스타인과 가자지구, 코소보 사태는 암울한 미래를 예견한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야만의 역사는 우리에게 계속되고 있다.

  사람들은 언젠가는 죽는다. 그러나 <사라지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하는 저자의 말은 선명하게 가슴에 남는다.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시대를 두 눈으로 쳐다본 사람들이다. 우리의 기억 속에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사람들은 이 밖에도 더 많다. 그들을 기억하는 것은 같은 실수와 비극을 반복하지 말자는 뜻이기도 하다. 사람이 사람답게 산다는 것, 세상은 누군가에 의해 변화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믿음을 가질 수 있다면 저자의 바람은 이루어진 것이 아닐까 싶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모두 ‘사라진 사람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070928-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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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29 11: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9-28 22: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sceptic 2007-10-02 15: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짧은 평전 모음 같은 느낌인데...다시 한번 정리하기에 좋은 책인것 같습니다...덕담 나눠주시니 제가 감사하죠...
 
광기와 천재 - 루소에서 히틀러까지 문제적 열정의 내면 풍경
고명섭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7년 7월
평점 :
품절


  스스로 천재가 아니라는 사실에 절망해 본 사람들은 모른다. 박제가 된 천재가 바로 당신이라는 사실을. 생물학적 기준으로 높은 IQ와 수학과 과학에 관한 문제 해결 능력이 천재의 조건은 아니다. 삶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열정과 광기에 가까운 집념으로 거탑을 쌓은 사람들은 모두 천재라고 불러도 좋겠다. 최소의 노력으로 최대의 효과를 거두는 사람이나 노력하지 않는데도 높은 성과를 거두는 사람이 천재는 아니다. 주변에서 흔히 만나게 되는 모든 수재와 영재와 천재들은 유전적인 요소에 의해 태어난 머리 좋은 바보인 경우도 많다.

  고명섭의 <광기와 천재>는 슈테판 츠바이크의 전기 작품 <천재와 광기>에서 제목을 빌려왔다. 하지만 저자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생물학적으로 뛰어난 지능이나 능력의 소유자에 대한 감탄과 경외와는 거리가 멀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사회적 관점에서 주목받았던 인물 탐구에 불과하다. 혹여 그들이 가지고 있었을지 모를 천재성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각 인물들에 대한 간략한 전기와 생의 절정에서 벌어진 상황들을 그들의 성장배경이나 내면의 풍경들을 되짚어 보는 관점에서 살펴보고 있다.

  아돌프 히틀러, 세르게이 네자예프, 조제프 푸셰는 정치인으로 장-자크 루소, 나쓰메 소세키, 프란츠 카프카는 작가로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마르틴 하이데거, 미셸 푸코는 철학자로 묶었다. 전체 9명의 천재 아닌 천재들에 대한 이야기는 담박하다. 기자인 저자가 직업의식에 투철하게 객관성과 공공성을 담보로 쓴 책은 아니다. 하지만 지나치게 감상적이지도 않고 해석의 과잉이 없다. 비교적 객관적인 사실들을 나열하고 해석하며 감각적인 문장으로 그들을 평가한다. 어떤 책도 객관적일 수 없다. 다만 저자의 입장에서 바라본 풍경일 뿐이고 그의 설득력과 목소리를 독자가 얼마나 공감할 수 있느냐에 문제만 남는다고 본다면 고명섭의 이야기는 충분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 <지식의 발견>을 통해 나는 고명섭을 발견했다. 녹녹치 않은 독서와 꼼꼼한 내공은 이 책을 통해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 책은 단순하게 천재성을 발휘한 사람들에 대한 특징을 나열하거나 보통 사람들과 다른 부분들에 대해 찬사를 보내거나 맹목적으로 비난하는 내용이 아니다. 9명 모두 그들이 살아내야 했던 시대와 상황을 예견할 줄 알았던 혜안과 뜨거운 가슴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이라는 사실은 틀림없다.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세르게이 네차예프의 이야기가 특히 흥미로웠으며 동성애자였던 푸코의 삶이 그의 사상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 확인할 수 있었으며 나치에 적극적으로 동참했던 하이데거의 행적들은 씁쓸했다. 히틀러나 카프카, 비트겐슈타인의 경우는 다른 책이나 밝혀진 사실들에 대한 정리와 해석일 뿐 특별한 내용은 없었다.

  이들이 한 권의 책으로 묶일 수 있었던 것은 ‘광기’일 것이다. 태생적인 성격이 아니라 생의 어떤 순간, 선택의 시점에서 보여준 무모한 혹은 냉정한 판단과 추친력은 이 책의 성격을 보여준다. 극한 상황까지 자신을 밀어 올리며 내면의 욕망과 절망과 희망이 교차하는 인물들의 모습은 그대로 한 편의 영화처럼 역동적이다. 유럽 역사의 트라우마가 되어버린 히틀러나 신경쇠약에 가까울 정도의 감수성과 내면의 풍경을 보여주었던 소세키는 그 영향력 면에서 비교될 수 없다. 하지만 상반된 인물들이 가진 성장 과정과 갈등 상황을 풀어 나가는 방식들은 우리가 단순히 천재 혹은 천재성을 지닌 인간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광기는 천재성의 발현이며 천재는 광기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책에 소개된 9명이 인류의 역사에서 주목받아 마땅한 천재들이 아닐 수도 있다. 물론 그 밖에 더 뛰어난 두뇌의 소유자나 훨씬 더 중요한 학문적 성과를 이룩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책 제목에서 밝히고 있듯이 ‘광기’는 불행한 의식이다. 끊임없는 모험과 투쟁을 통해 자신을 이겨냈거나 그 능력의 한계치를 확인한 사람들의 내면은 외롭고 쓸쓸했다. 가장 인간적이면서도 욕망의 극한을 확인하거나 절망의 바닥을 보여주거나 때로는 작은 희망을 보여주었던 우울한 천재들의 모습은 우리 인류가 걸어온 길에서 만난 특별함으로 기억될 것이다.

  시대가 요구하는 천재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각자에게 주어진 그 천재성을 길어 올리고 삶에 대한 뜨거운 열정과 광기에 가까운 치열함으로 즐길 수 있는 무엇인가를 발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나에게 혹은 우리 모두에게 그것이 무엇인가를 확인하는 일은 지루하고 고통스러울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을 발견하지 못했거나 확인하고도 외면했기 때문에 버려진 천재성이 훨씬 더 많은 곳에 숨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070807-0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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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04 11: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sceptic 2007-10-02 15: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퍽퍽한 건 내용때문인것 같고...뭔가 부족한 것에 대한 느낌은 있는데 새롭고 신선한 것이 아니라...기존의 것들에 대한 재해석과 관점의 차이 정도가 아닐까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