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고 트릭 - ‘나’라는 환상, 혹은 속임수를 꿰뚫는 12가지 철학적 질문
줄리언 바지니 지음, 강혜정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2년 4월
평점 :
품절


나 자신이라고 부르는 것 속으로 아주 깊이 파고들 때면,

늘 이런저런 지각, 이를테면 열기나 냉기,

빛과 그림자, 사랑과 증오, 고통과 쾌락, 색깔 혹은 소리 등과 마주친다.

나는 이런 특정 지각과 구분되는,

오롯한 나 자신을 결코 포착하지 못한다.

데이비드 흄, <인간 본성에 관한 논고>에서

 

로버트 드 니로가 열연했던 <숨바꼭질>이라는 영화를 보다가 시작한지 5분 만에 주인공의 실체를 짐작해 버린 경험이 있다. 해리성 인격장애를 겪는 주인공이 범인을 보이지 않는 존재를 추적하는 내용의 영화로 결말을 짐작했으니 영화를 보는 내내 긴장감 없이 지루하게 머릿속으로 결론을 끼워 맞추고 있었다. 영화의 소재로 자주 등장하지만 이 질병을 앓는 사람은 흔하지 않다. 그러나 우리가 다중인격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은 자아에 대한 관심 때문이다. 흔히 정체성이라는 말을 즐겨 사용하지만 철학과 심리학 그리고 뇌과학의 관점에서 자아란 무엇인지 명쾌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도대체 자아란 무엇이며 나 자신은 어떤 존재인가.

 

영국의 철학자 줄리언 바지니는 전작 유쾌한 딜레마 여행으로 처음 만났다. 쉽고 재미있는 글이 인상적이었던 줄리언의 신작 자아 트릭은 그의 전공 분야에 해당한다. ‘개인적 정체성으로 학위를 받았으니 이 책은 그의 관심 분야이기도 할 터이고 그간 여러 권의 책을 쓰면서 쌓인 내공도 살펴볼 수 있는 책이다. 제목 그대로 우리가 알고 있는 자아는 수많은 트릭을 사용하고 있으며 우리는 자아라는 트릭 속에 갇혀 그것을 오해하고 있다. 막연한 개념으로만 존재하는 자아에 대해 한번쯤 깊이 고민해 보는 것은 어떤가. 때때로 타인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 궁금하지 않은가.

 

자아란 무엇이며 자아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그리고 미래의 자아는 어떨까에 대한 고민을 풀어낸 이 책은 단순히 철학적 관점으로 인간의 사유 방식을 점검하고 분석하는 책이 아니라 실제 생활에서 접할 수 있는 사례를 중심으로 심리학과 신경과학을 동원하고 있어 다양하고 즐거운 뷔페를 즐길 수 있다. 우리가 책을 읽는 목적은 다양하다. 목적과 방법에 따라 한 권의 책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내게 다가오고 그 결과 또한 천양지차다. 마치 사람을 대하는 목적과 방법에 따라 그 관계와 양상이 달라지는 것과 비슷하다. 실용적 목적으로 가볍게 접근할 수 있는 책과 달리 인문학 분야의 책들은 대부분 깊은 사유와 다양한 관점이 필요하다. 그것은 자신만의 빛깔과 향기로 다가와 내적 성숙을 이루어 또 다른 자아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는 변화된 자아를 확인하고 때때로 나 자신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되며 그런 의문을 갖는 자신조차 예전의 자아와 달라졌음을 확인한다. 끊임없이 생성되고 소멸되는 체세포만큼이나 인간의 생각도 변화한다. 육체적 존재는 물론이고 영혼마저 과거의 와 다른 존재라면 나 자신은 무엇이며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줄리언 바지니는 육체와 자아와의 관계 그리고 뇌와 자아의 관계를 통해 자아를 규명한다. 그것은 기억과 영혼의 문제로 귀결되지만 다중 자아, 사회적 자아로 나아가면 문제는 복잡해진다. 왜냐하면 자아는 끊임없이 속임수(트릭)를 쓰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가는 세 가지 명제를 제시한다. 첫째, 자아의 통일성은 심리적 속임수가 만든 결과물이다. 둘째, 우리는 물질에 불과하지만 단순한 물질 이상이다. 셋째, 속성 자체가 변하기에 정체성은 중요하지 않다.

 

결국 자아는 뚜렷한 실체도 정체도 알 수 없는 어떤 묶음, 가상의 덩어리에 불과하며 끊임없이 변하는 속성을 지닌다. 작가는 3부 미래의 자아에서 사후의 생이나 자아의 디스토피아아를 우려한다. 우리는 생각하는 생존기계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스스로 믿는 자유의지라는 것이 과연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지 가만히 생각해 보자.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만 자아 정체성을 확인할 수밖에 없다는 자아 인식은 또 어떤가.

 

하이데거는 삶이 결국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과정에 불과하다고 했지만 여전히 우리는 나 자신이 누구인지 묻고 있다. ‘자아라고 명명된 보이지 않는 실체에 대한 호기심은 나의 레종 데트르(Raison D’etre)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이다. 삶의 목적과 방향이 흐릿할 때마다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관계가 틀어지고 생이 힘겨울 때마다 우리는 자신을 돌아본다. 그 오래된 질문들은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내내 계속 될 것이다.

 

카를 마르크스(Karl Marx)의 말을 살짝 바꿔보자. 지금까지 철학자들은 자아를 해석만 해왔다. 이제 문제의 핵심은, 만약 한다고 하면, 과연 어떻게 자아를 변화시킬 것인가이다.(“지금까지 철학자들은 세계를 다양하게 해석하려고만 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일이다.” 마르크스의 <포이어바흐에 대한 테제(Thesen uber Feuerbach)>에 나오는 구절이다.) - 299

 

 

120429-03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eBook] 나를 만나는 스무살 철학 - 혼돈과 불안의 길목을 지나는 20대를 위한 철학 카운슬링
김보일 지음 / 예담 / 2011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일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유행어가 있다. 일등이 모든 것을 갖는 게임의 법칙에서 이등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 생태계에서 경쟁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적자생존의 법칙은 냉혹한 현실세계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남들보다 더 열심히 노력하고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며 그 결과는 많은 사람들의 부러움을 산다. 그러나 우리들의 삶을 순위로 결정할 수 있을까.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유도 은메달리스트 왕기춘 선수는 눈물을 흘리며 부모님께 죄송하다는 소감을 밝혔다. 금메달 유망주였던 이원희 선수를 이기고 당당하게 올림픽에 출전해서 국민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왕기춘 선수의 부담감은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갈비뼈 부상을 무릅쓰고 지구에서 두 번째로 유도를 잘한다고 인정받았는데도 눈물을 흘린 왕기춘 선수는 여자 펜싱부문 최초의 은메달리스트가 된 남현희 선수가 보여준 환한 미소와 비교되었다. 상황에 따라 은메달의 의미가 달라질 수도 있지만 이등을 하고도 눈물이 나는 현실은 우리들의 각박한 삶을 돌아보게 한다.

한 평생을 살아가면서 는 무엇을 꿈꾸고 있는지 가만히 생각해 보자.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는 말 대신 성적으로 모든 것이 결정된다는 믿음을 갖게 되는 순간 불행이 시작된다. 전교 1등을 해도 다른 학교 전교 1등과 경쟁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게 아닌데라고 생각하지만 꽃들에게 희망을의 애벌레처럼 우리는 정상에 오르기 위해 오늘도 쉬지 않고 공부하고 스펙을 쌓기 위해 잠자고 꿈꿀 시간도 없다. 하지만 철학은 이런 현실에 대해 여전히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어떻게 살 것인가? 나는 누구인가?

철학자가 아닌 우리들에게 철학은 학문의 대상이 아니라 삶에 대한 길잡이가 되어야 한다. 학교에서 오랫동안 학생들을 가르쳐 온 김보일 선생님의 나를 만나는 스무 살 철학은 청소년들의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담고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타율과 억압에서 벗어나 자유를 만난다. 대학생이 되거나 사회에 진출하는 스무 살은 성인을 의미하는 동시에 자신의 삶을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나이로 볼 수 있다. 내 삶의 주인이 되지 못하고 내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일등만 부러워할 수는 없다. 내가 가진 것만 좋다고 여기는 것도 문제지만 여우의 신포도처럼 다른 이의 삶을 부러워만 한다면 지는 거다. 삶의 목적과 방향이 없다면 일등도 불행한 현실에서 모든 청춘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 보면 세상에는 다양한 삶의 모습이 존재한다. 돈과 명예와 권력을 탐하지 않아도 행복하고 보람 있는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막연한 불안과 상실, 욕망과 혼돈의 시기를 겪고 있는 스무 살에게 김보일이 보내는 애정어린 충고와 철학적 조언은 가슴을 열고 진지하게 경청할 만한 가치가 있다. 이 책에는 어렵고 복잡한 철학 개념이나 철학자들의 삶은 소개되어 있지 않다. 대신에 스무 살로 상징되는 사춘기에서 이십대 초반의 청춘들에게 우리들의 삶에 철학이 왜 필요한가를 말해주고 있다. 철학을 공부하라고 권유하는 책이 아니라 불안, 선택, 고독, 욕망, 행복, 성공, 사랑 등 우리가 현실에서 부딪치는 문제들에 대해 함께 고민하는 책이다. 성공을 위한 지침서, 자기를 계발하라고 독촉하는 실용서가 아니라 철학적 사유와 고민 속에서 스무 살은 현재와 미래의 길을 찾을 수 있다. 스무 살의 불안은 희망의 다른 측면이라는 말을 기억하자.

상처받지 않을 권리리뷰보기

작가
강신주
출판
프로네시스
발매
2009.07.01

정신분석학자 라캉은 지금 당신이 욕망하는 것이 진정으로 당신이 욕망하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원하는 것이 내가 원하는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은 아닌가. 최신형 스마트폰과 MP3, 대한민국 1%라야 탈 수 있다는 자동차,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을 말해준다는 아파트……. 나의 욕망은 어디에서 시작되었고 언제 끝날 것인가. 철학자 강신주는 상처받지 않을 권리를 통해 우리들의 욕망에 대해 집중적으로 말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의 위력은 길게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이 수단이 아닌 목적이라면 강신주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 책에는 이상과 짐멜, 보들레르와 벤야민, 투르니에와 부르디외, 유하와 보드리야르가 등장하기 때문에 어렵고 딱딱하게 느낄 수 있지만 청소년들도 충분히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돈과 욕망, 유행, 도박, 불안, 허영, 소비와 교환 등 현대 사회의 면면을 알기 쉽게 풀어서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두툼한 분량이지만 재미있게 읽힌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강신주의 장점은 대상에 대한 정확하고 날카로운 분석 능력과 그것을 독자에게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는 글쓰기 능력이다. 낯선 사람의 이름이 등장한다고 해서 겁먹을 필요는 없다. 강신주의 안내를 받으면 철학과 현대 사회를 재미있게 들여다 볼 수 있다.

작가
헬런 니어링
출판
보리
발매
2002.07.30

21세기 첨단 사회를 살아가면서도 우리는 보다 편리하고 안락한 생활을 원한다. 그러나 그것을 거부하는 사람들도 있다. 극단적인 경우이긴 하지만 헬렌 니어링과 스코트 니어링의 조화로운 삶을 살펴보자. 미국에서 대공황이 최악이었던 1932년에 뉴욕에서 버몬트 숲 속으로 들어간 두 사람은 독립적인 경제와 건강, 사회를 생각하며 바르게 살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직접 집을 짓고 농사를 지으며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이 책은 일벌레로 살아가며 더 많은 것을 원하는 현대인들에게 전혀 다른 삶의 방식을 제안한다. 노동 시간을 절반으로 줄이고 나머지 시간에는 책을 읽고 산책을 즐기며 대화를 나누는 삶은 어떤가. 모든 사람이 물질문명 사회를 등지고 살수는 없지만 전혀 다른 삶의 방식을 선택한 두 사람은 온몸으로 삶의 철학을 말하고 있다.

결국 철학은 우리에게 삶의 목적과 방법을 고민하는 수단이어야 한다. 철학자가 아니더라도 모든 사람은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한다. 그 하나하나의 과정과 결과가 우리의 삶이 된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답을 얻고 싶다면 철학에게 길을 묻고 스스로 그 길을 찾아 떠나야 한다. 그렇게 철학은 우리들 삶의 동반자가 되어야 한다.

120401-02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에우티프론, 소크라테스의 변론, 크리톤, 파이돈 - 플라톤의 네 대화 편
플라톤 지음, 박종현 엮어 옮김 / 서광사 / 2003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람의 눈은 일차적인 정보를 받아들이고 판단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시각은 촉각이나 후각과 달리 가장 중요한 감각이다. 한 시간만 눈을 가리고 생활해 보자. 코나 귀, 입을 막고 생활하는 것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불편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눈은 우리에게 그만큼 중요한 감각 기관이다. 그렇다고 해서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시각적 이미지가 사물의 진면목을 드러낸다고 볼 수 없고 세상의 진실을 보여주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철학도 이와 마찬가지다. 눈에 보이는 현상대신 숨은 진실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관점이 필요하다.

위의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자. 관점에 따라 다른 동물로 보인다. 이 그림은 20세기의 가장 명민했던 분석철학의 대가 비트겐슈타인이 그린 오리-토끼그림이다. 어떤 동물인지는 보는 사람마다 해석의 틀에 따라 달라진다. 우리들의 생각도 이렇게 단순하고 일방적일 때가 많다. 굳어버린 생각, 편향된 시각은 경주마처럼 우리들의 시야를 점점 좁게 만든다. 많은 사람들이 삶의 목표를 이라고 말한다.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수단이긴 하지만 이 인생의 목표가 될 수 있을까. 돈만 있으면 저절로 행복하게 살아지는 것일까. 행복한 인생을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넓고 깊은 통찰력과 다양한 관점이다.

서양철학의 기원이 되는 소크라테스의 죽음은 2,500여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다.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민주적 절차에 의해 법을 지키고 재판 결과를 받아들여 독배를 마신 소크라테스를 우리는 위대한 철학자로 기억한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단 한 줄의 글도 남기지 않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소크라테스의 철학은 그의 제자 플라톤에 의해 전해질 뿐이다. 이렇게 알고 있는 소크라테스를 우리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박홍규의 소크라테스 두 번 죽이기는 소크라테스를 전혀 다른 측면에서 살펴본다. 소크라테스는 과연 민주주의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가. 그는 아테네의 시민들과 민주적인 절차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었는가. 죽음에 직면한 소크라테스는 왜 탈옥을 거부했는가. 이 책은 수천 년간 소크라테스의 철학만큼 관심과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그의 죽음에 관한 새로운 성찰이다.

박홍규의 책을 읽기 전에 플라톤이 쓴 <소크라테스의 변론>을 먼저 읽어야 한다. 원전을 해석한 플라톤의 네 대화편 에우티프론, 소크라테스의 변론, 크리톤, 파이돈(박종현 역주, 서광사, 2003)은 분량이 많고 쉽게 읽히지 않는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를 처음 시작하는 사람이라면 이종훈이 편역한 소크라테스의 삶과 죽음이 좋다. 이 책은 가장 최근에 번역된 책으로 소크라테스의 변론크리톤만을 알기 쉽게 정리하고 요약해 준다. 플라톤의 네 대화편을 모두 읽는 것이 좋지만 원전에 부담을 느끼는 독자에게 입문서로 적당한 분량과 내용을 갖추고 있다. 1소크라테스의 변론1, 2차 변론과 최후 진술을 모두 담고 있으며 2크리톤은 크리톤이 면회와 탈옥을 권유하는 내용과 소크라테스가 약속을 지켜야 하는 이유를 주장하는 내용 그리고 아테네 법률의 논고를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제자 플라톤이 스승인 소크라테스의 이야기를 대화형식으로 기록했기 때문에 당시의 재판과정과 소크라테스의 논리만을 담고 있다. 마치 동전의 한 면만을 보는 것과 같다.

박홍규는 소크라테스 두 번 죽이기에서 민주주의 사회였던 고대 그리스에서 민주주의에 반하는 언행을 한 소크라테스의 반민주적 행위는 응당 비판받아 마땅하다.”라고 말한다. 소크라테스의 언행을 플라톤과 전혀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크세노폰의 소크라테스 회상과 호메로스, 소포클레스의 저작 그리고 민주주의에 관한 투키디데스의 전쟁사, 헤로도토스의 역사등 충실한 자료 분석을 통해 독자들을 설득한다. 저자는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민주주의라는 관점에서 평가한다. 소크라테스 재판에 대해 우리가 알아야 할 재판 제도와 방식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는 이 책은 그리스 민주주의가 어떻게 전개 되었는지 꼼꼼하게 살펴보고 소크라테스에 대해 구체적인 분석을 시도한다. 소크라테스의 삶과 죽음의 의미는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오리일 수도 있고 토끼일 수도 있는 그림처럼 소크라테스 역시 위대한 철학자일 수도 있지만 궤변론자일 수도 있다.

이렇게 다양한 관점과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좀 더 다양한 철학자들의 생각을 들어보자. 오가와 히토시는 철학의 교실을 통해 열 네 명의 철학자를 소개한다. 하이데거와 헤겔, 칸트를 비롯해서 마르크스, 사르트르, 니체에 이르기까지 주로 현대 철학자들이 직접 등장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철학교실에는 고등학생과 직장인, 주부까지 모여 수업을 듣는다. 이 책에 등장하는 철학자들은 자신의 핵심적인 철학 사상을 알기 쉽고 간략하게 설명해준다. 대화 형식으로 이루어져서 이해하기 쉽고 요점 정리까지 해 주는 것이 이 책의 특징이다. 어려운 철학 개념과 용어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해도 인간과 삶에 대한 다양한 철학자들의 관점을 파악할 수 있는 책이다.

2009년 용산 참사를 바라보는 여러 개의 시선이 존재한다. 철거민의 입장, 경찰의 입장, 국민의 입장, 정부의 입장이 서로 다르다. 그 죽음에 대한 원인도 책임도 제각각 다르게 말한다. 2,500여년 전 소크라테스의 죽음처럼 말이다. 하나의 사물, 하나의 사건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시선과 주장 속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 하나의 시선이 아니라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통찰력과 인간과 사회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다. 우리들 주변에는 그런 일이 또 없는지 잘 살펴보자. 생각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 생각이 내가 누구인지를 말해준다. 생각의 힘을 기르면 다양한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갖게 된다. 고정관념을 버리고 타인과 세상을 살펴보자.

 

120312-023~02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를 찾습니다 - 나를 탐험하는 방법 청소년을 위한 세상읽기 프로젝트 Why Not? 6
마르틴 라퐁 지음, 파스칼 르메트르 그림, 신성림 옮김 / 개마고원 / 2011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나이를 앞세운 책들은 독자들에게 주목을 끌기 쉽다. 막연하게 청소년이 아니라 열일곱이나 스물 혹은 서른이나 마흔을 내세운 책들은 보다 구체적이라는 느낌을 준다. 지금-여기 바로 나의 문제를 진단하거나 내게 필요한 책이라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특정한 시기에만 책을 읽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현재가 중요하다. 즉흥적이고 순간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 아니라 과거든 미래든 지금 이 순간의 삶에 미친 영향과 방향에 대해 고민한다는 뜻이다.

 

철학은 말할 필요도 없다. 철학자들의 먼지 묻은 책상 위에 놓인 책도 좋고 대중적인 철학서도 좋다. 다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내 삶의 방향과 목적을 돌아볼 수 있는 책이다. 어려운 개념서를 일반인들 입장에서 쉽게 이해하고 접근할 수는 없다. 자발적인 모임이나 각종 아카데미를 찾아다니며 강의를 듣는 방법도 있겠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래서 사람들은 대중적인 철학서를 뒤적인다. 내 생각의 힘을 키울 수 있는 책, 다른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책, 내 앎의 범위를 넓힐 수 있는 책…….

 

한겨레신문 다음 주제가 철학이다. 분야별로 네댓 개 주제를 정해 글을 쓰다 보니 따로 또 같이 묶일 수 있는 주제의 책들을 찾고 읽기가 쉽지 않다. 유사성과 차별성을 통해 책의 특징을 드러내고 주제를 적절하게 드러낼 수 있는 책들이어야 하는데 지금까지 읽은 책과 비어있는 공간들을 메울 수 있는 책들을 선별해서 읽는 일이 쉽지 않다. 요즘은 열심히 청소년들의 눈높이에 어울릴 만한 철학서를 추리고 미처 읽지 못한 책들을 찾아 읽고 있다. 손에 잡히는 대로 읽은 책 몇 권을 정리한다. 마르틴 라퐁의 나를 찾습니다, 김성우의 스무 살에 만난 철학 멘토, 안광복의 열일곱 살의 인생론이 그것이다.

 

, 중학생 정도면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나를 찾습니다는 재미있는 그림이 곁들여져 쉽게 읽힌다. 짧은 분량과 친근한 그림으로 독자들을 편하게 해주는 장점이 있지만 내용은 그렇게 쉽게 풀어내지 못한 단점이 있다. 너 자신을 알라, 자기를 아는 방법, 알 권리 등 3부로 나누어져 있지만 소크라테스, 몽테뉴 등 철학자들의 개념과 이론들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에 아주 쉽고 단순하다고 볼 수만은 없는 책이다. ‘why not?’ 시리즈 중 여섯 번째로 나온 이 책은 철학의 시작인 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자신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이 철학의 시작이고 삶의 출발이다. 나이, 성별, 고향, 학교, 직업, 재산, 지역이 나를 말해줄까. 나는 누구일까. 하루에도 수없이 타인을 입에 올리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어려울 질문일까. 당신은 누구인가. 자신에 대해 말해보라. 어쩌면 가장 어려운 질문에 대한 고민이 철학의 시작은 아닐까.

 

그에 비해 스무 살에 만난 철학 멘토는 철학자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놓은 책이다. 사르트르와 푸코, 니체와 하이데거, 베버와 헤겔, 마르크스와 롤스가 런닝 파트너로 달린다. 김성우는 각 철학자의 삶을 이야기하면서 사상적 토대를 설명한다. 그것이 우리들의 삶과 어떻게 연결되며 현실에서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 이야기한다. 두 명의 철학자를 하나의 주제로 묶어 이해하는 방법은 어떤 분야에서도 자주 사용하지만 그만큼 유용하다. 인류의 오래된 지혜를 전해주는 철학의 고전들을 대신 읽어주는 이 책은 철학적 개념에 대한 이해를 돕고 내 삶의 문제를 진지하게 성찰할 수 있는 책이다. 더불어 내가 살고 있는 사회는 어떻게 만들어 진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함께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안광복의 열일곱 살의 인생론은 열다섯 개의 주제에 대한 철학적 물음에 답하는 책이다. 현장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부딪치는 고민과 자신의 경험을 편안하게 풀어내고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자신의 문제를 고민하게 만든다. 일상생활에서 겪게 되는 수많은 일들을 떠올려 보면 항상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주체적 생각과 비판적 판단능력이 없이는 세상을 살아가기 어렵다. 라캉의 말대로 남이 가진 것이나 부러워하며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철학자를 몰라도 좋고 철학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도 좋다. 문제는 삶의 목적이다.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 것인가. 자기만의 철학이 없이는 살아가기 힘들만큼 복잡한 세상이다. 김훈은 신념이 강한 자를 믿지 않는다고 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신념이 아니라 의문이다. 스스로에 대한 질문 세상에 대한 의문들에 답을 찾기 위한 과정이 삶은 아닐까. 가볍지만 꾸준히 생각도 연습이 필요하다. 철학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늘 우리와 함께 있다. 손 내밀고 철학자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자.

 

120221-015~01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철학카페에서 시 읽기
김용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폴 리쾨르가 갈파했듯이, 하나의 작품을 해석한다는 것은 그것을 통해 자신의 새로운 존재가능성을 찾는 일입니다. ‘텍스트 앞에서의 자기 이해를 얻는 것이지요. 그것은 텍스트를 향해 자신의 고유하고 한정된 이해 능력을 주입시키는 것이 아니라, 텍스트 앞에 겸허히 나서는 일입니다. 그럼으로써 텍스트에서 더 넓어진 자기를 얻는 것입니다. - 10

 

영화 <일 포스티노>를 본 적이 있는가. 햇빛에 반짝이는 감청색 바다와 수평선, 살아 숨 쉬는 사람들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어촌, 밤바다의 별똥별과 부서지는 파도……. 영상매체가 주는 감동은 문자 언어와 사뭇 다르다. 세계적인 시인 파블로 네루다를 주인공으로 삼은 것이 아니라 그의 전용 우체부 마리오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칠레 출신 작가의 소설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를 영화화 한 작품이지만 배우들의 연기와 아름다운 자연이 만들어내는 영상이 환상적이었다.

 

이 바닷가에 사는 청년 마리오는 시인을 만나 은유를 배우게 된다. 그리고 시를 가슴에 품게 되고 아름다운 여인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 시는 힘이 세다. 이 영화는 결국 네루다도 마리오도 아닌 가 주인공인 셈이다. 우리는 왜 시를 읽어야 하며 어떤 시를 읽어야 하는 것일까? 학창시절에 배운 밑줄 쫙~’이나 참고서의 깨알 같은 해석이 우리를 시에서 멀어지게 한 것은 아닐까. 시를 읽지 않고 도대체 무슨 책을 읽는다는 말인가.

 

라고 철학자 김용규는 말한다. 철학카페에서 문학읽기의 연작으로 보이는 제목의 철학카페에서 시읽기한국의 움베르토 에코라는 수식이 지나치지 않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알도와 떠도는 사원, 다니를 통해 그런 명성을 얻었다고 하지만 철학적 사유의 깊이를 전달하는 문학을 통해 독자들을 사로잡지 않더라도 설득의 논리학이나 영화관 옆 철학카페등으로 이미 대중과의 소통을 지속해 온 저자의 신작은 이름만으로도 믿고 읽을 만하다.

 

최근 거센 바람을 일으키는 강신주의 철학적 시읽기의 즐거움과 비교하며 읽는다면 또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책이다. 비교가 능사는 아니나 각각의 빛깔과 특징이 뚜렷한 철학자들의 대중과의 만남은 지속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깊이와 넓이를 통해 다양한 방식의 문화읽기가 가능해진다고 믿는다. 철학은 할 일이 많고 나름의 영역을 확보한 철학자는 많지 않다. 게다가 글쓰기 능력을 겸비한, 대중적인 철학자와 동 시대를 살아간다는 것은 우리에게 행운이라고 말하고 싶다.

 

철학카페에서 시읽기는 두 가지 측면에서 재미있다. 하나는 저자의 스토리텔링 능력이다. 하나의 주제를 편안하게 풀어내고 소리 없이 밀고 나가는 힘은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책장의 속도로 감지된다. 이유를 알 수 없이 재미있게 빠져들었다면 그 능력은 증명되는 셈이다. 또 하나는 시에 대한 애정과 시를 해석하는 깊이다. 철학적 관점에서 시를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생각하면 이성과 논리를 바탕으로 분석주의 관점으로 이해하기 쉽다. 하지만 김용규는 가슴으로 받아들인 시를 친절하고도 애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본다. 철학과 시의 만남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철학자가 시를 어떻게 읽어내느냐가 문제다. 이 책은 그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책이다.

 

베아트리스를 온통 뒤흔들어 마리오를 사랑하게 만든 시의 기본적인 힘은 메타포(은유)’. 봄날, 서점에서 시집을 안 사면 뭘 사느냐고 묻는 김용규의 목소리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 책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편안한 마음으로 시의 즐거움을 맛보고 싶은 독자에게 맞춤한 이 책은 저자의 바람대로 젊은이여, 시를 읽자고 외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최승자의 청파동을 기억하는가에서부터 정호승의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를 거쳐 신경림의 을 지나 진은영의 ‘70년대과 오규원의 가끔은 주목받는 생이고 싶다에 이른다. 김수영을 비롯해 김혜순, 정현종, 강은교, 마종기의 시에 이르기까지 한국 현대시의 대표적인 시인들의 시를 통해 에리히 프롬부터 들뢰즈까지 수많은 철학자를 만나게 되는 책이다. 마치 화려한 백화점에 진열해 놓은 명품들만 모아 놓아 눈이 부실 정도다. 자칫 시적 허영(이런 말이 성립될지 모르겠으나)에 들뜬 사람들에게는 더 없는 성찬이 될 것이다. 기막힌 뷔페에서 여유있게 즐기는 만찬을 누가 마다하겠는가.

 

하지만 이 책은 수동적으로 남이 읽어주는 시를 즐기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궁극적으로 스스로 시를 읽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어야 한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평생 시심 가득한, 메타포를 가지고 놀 수 있는 삶이 된다면 저자가 이 책을 쓴 목적은 충분히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문학은 슬픔의 미학이다. 기쁘고 행복할 때 시집을 들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은 없다. 슬프고 외로울 때 삶의 목적과 방향을 잃었을 때 수천 년간 고민해 온 철학자들의 고민만큼이나 시인은 우리에게 다양한 삶의 문제들을 풀어놓고 타인과의 관계, 사물의 본질, 사회의 모순을 이야기한다. 언어가 만들어내는 이미지의 세계, 리듬이 전해주는 보이지 않는 울림까지 읽고 느끼고 즐길 수 있는 독자가 되는 것은 우리들의 몫이다.

 

시는 우리의 삶과 세계를 새롭게 바꿔놓는 위대한 일을 수행합니다. - 53

 

120214-0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