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윤리를 말하다 - 유전학적으로 완벽해지려는 인간에 대한 반론
마이클 샌델 지음, 강명신 옮김 / 동녘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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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대를 풍미하는 책은 나름의 이유를 갖고 있다. 최근 『정의란 무엇인가』로 서점가를 휩쓸고 있는 하버드 대학의 마이클 샌델 교수의 책은 제목으로 이 시대를 웅변한다. ‘공정사회’를 부르짖는 사회의 불공정성은 악취를 풍길 정도라는 걸 모두가 안다. 감사원의 지적을 받은 정부 각 부처의 결과를 공개한 최근 국감 자료는 우리 사회의 공정성을 방증한다. 이처럼 한 권의 책은 유행가를 포함한 다양한 문화 현상의 일부로 시대를 측정할 수 있는 리트머스 역할을 한다.

『정의란 무엇인가』에 앞서 『생명의 윤리를 말하다』를 읽어본다. 이 책의 부제는 ‘유전학적으로 완벽해지려는 인간에 대한 반론’이다. 짧은 논문에 나타난 저자의 생각은 부제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롤스의 정의론 비판으로 27세에 하버드대 교수가 된 석학의 말하기 방식은 공감과 이해에 바탕을 두고 있다. 유전학적 강화와 자연발생적 선택에 대한 지극히 자극적인 도입부는 관심을 집중시킨다. 청각장애 부부가 5대째 청각장애인 가족에서 정자 공여자를 찾아 청각장애 아들을 고뱅을 얻었다. 이것은 도덕적으로 그른가?

부모가 아이를 고른다는 생각이 잘못되었다면 프리미엄 난자를 구하기 위한 광고나 장애아 검사 등에 대한 도덕적 논란도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근육 강화, 기억 강화, 신장 강화, 성 감별 등에 대한 서로 다른 기준과 잣대가 아니라 ‘생명’ 자체에 대한 윤리적 합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과연 가능한가? 종교, 인종, 문화적 차이에 따라 도덕적 기준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마이클 샌델도 첨단 과학인 생명공학에 대한 윤리적 기준을 제시하는 것에 대한 한계를 토로한다. 배아세포에 이용에 관한 서로 다른 기준과 견해는 이 논쟁의 출발이다. 무엇을, 어디서부터 생명으로 볼 것인가. 이 이야기는 에필로그에서 다루고 있지만 이 책의 전제에 해당하는 내용이다.

생체공학적 운동선수와 자녀를 디자인하는 부모 그리고 우생학에 대한 자유주의와 공동체적 관점을 다룬 본문의 내용들은 철학적, 윤리적 논란에 대해 어렵지 않게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이 논란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고 논점에 대한 문제를 제시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저자의 이러한 말하기 방식은 생명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다양한 시선을 이해할 수 있으며 그것이 단순히 기능적 관점이나 종교적 관점이 아닌 인간사회의 보편타당한 윤리적 관점에서 해결할 수 있음을 우회적으로 비판한다.

뉴욕 맨해튼에 있는 아이비와이즈사가 최상류층을 상대로 대학 입학과 관련된 지원에 2년 동안 3만 2995달러가 드는 ‘플래티넘 패키지’를 출시했다. 창업자 캐서린 코헨은 “나는 대학 지원만 도와주는 게 아니에요. 인생 설계를 도와주죠”라고 말한다. 한국의 맞춤형 고액과외, 입학사정관제 관리 프로그램 등과 다를 바 없다. 저자는 아이를 과도하게 공부시키는 일에 대한 예를 들어 우생학과 어떻게 구별될 수 있는지 묻고 있다. 아이들의 자발적 선택이 아니라 부모의 선택에 의한 것이라면 도덕적으로 별반 다르지 않다는 주장일 것이다.

윤리학의 관점에서 ‘생명’의 문제는 과학의 발달을 따라가는 형태로 발전할 수밖에 없다. 논란은 가열되지만 기술의 진보는 철학을 앞선다. 서로 다른 생각들이 합의되지 않은 상태에서 생명 윤리를 논하는 것은 그것 자체에 대한 위험부담을 넘어 우리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인간은 완벽하지 않다. 어쩌면 영원히 그 꿈을 향해 노력하는 것이 인간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유전학적으로 완벽해지려는 인간의 욕망을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가. 마이클 샌델은 이 문제에 대한 공개적인 토론을 제안 한 듯하다. 정답이 없다고 해서 피해갈 수 없는 문제이다. 다수결로 결정할 수도 없다. 그렇다고 해서 윤리학자들의 논리가 정답일 수도 없다.

이 책은 이러한 수많은 논쟁과 서로 다른 관점에 대한 성찰과 당면한 생명공학에 대한 제문제를 꼼꼼하게 살피고 있다. 짧지만 강렬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완벽하고 근사한 이론을 제시하고 훌륭한 대안을 찾을 수는 없다. 하지만 생각의 방향과 일관성 없는 윤리적 기준들에 대한 현실적인 문제들을 돌아보게 한다. 우리는 지금도 여전히 수많은 가능성에 도전하면서도 도덕적 가치와 과학적 발전의 욕구 사이에서 갈등할 것이다. 인간이란 무엇이며 생명은 어떻게 시작되어 끝을 맺어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철학적 반성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수많은 담론들은 풍성한 말잔치에 불과하다.

우리 사회의 윤리적 기준과 도덕적 잣대가 ‘생명’이라고 해서 비껴갈 수는 없다. 정교하고 흔들리지 않는 법과 제도를 만들 수는 없겠지만 우리 사회의 기준과 원칙을 세워나가고 그것을 지켜나가는 것이 건강한 대한민국의 출발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은 ‘생명의 윤리’ 뿐만 아니라 넓은 의미에서 ‘삶의 윤리’를 생각해 볼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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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한다는 것 - 고병권 선생님의 철학 이야기 너머학교 열린교실 1
고병권 지음, 정문주.정지혜 그림 / 너머학교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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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찰나에 불과한 내 삶을 돌아보면 느리고 답답하게 보인다. ‘철이 든다’는 말은 세상에 대한 판단력, 사람들에 대한 이해, 삶에 대한 목표 등이 생겼다는 말이다. 아울러 생에 대한 가치관이 정립되고 사회역사적 안목이 생겼으며 삶에 대한 태도와 방법을 주체적으로 결정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그런 측면에서 살펴볼 때 나는 여전히 사춘기 소년에 불과한 지도 모른다. 영원히 철들고 싶지 않다는 꿈을 꾸고 때묻고 물들지 않겠다는 자신감을 내비치며 청년정신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 스스로 다짐한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이런 생각들은 겨우 서른이 넘어서야 제대로 자리를 잡은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직접 경험은 물론 간접적인 경험과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보기도 하고 세상사를 관찰하고 고민하는 과정에서 나름대로 정리된 생각들이 지금의 나를 규정한다. 상식과 합리의 기준이 다르고 이성과 논리의 힘을 개인의 이익과 자기 합리화를 위해 사용하지 않는다면 어렵지 않게 우리가 나아갈 방향과 목적이 보일 것도 같은데 사람들의 생각은 조금씩 다르다. 이 생각은 도대체 어디에서 온 것일까? 홍세화는 『생각의 좌표』를 통해 그 이유를 묻고 우리들이 생각하는 방향에 대해 반성을 촉구한다. 그러나 어른들의 경우 이 생각을 바꾸는 것은 산을 옮기는 것만큼 어렵다. 그렇다고 학교에서 ‘생각하는 방법’을 가르치지도 않는다. 그러면 아이들은 어디에서 배워야 하는 것일까.

  너머학교에서 나온 고병권의 『생각한다는 것』은 십대를 위한 철학이야기 책이다. ‘철학’이라는 말만 들으면 딱딱하고 어렵다고 생각한는 친구들이 많지만 사실 철학은 생활이며 실천이다. 책 속의 어려운 개념이나 철학자들의 고리타분한 대화가 아니라 실제 삶을 위한 도구이며 행복한 삶을 위한 준비물이다. 사람이 행복하게 살기 위해 하루하루 열심히 노력하는 것이라면, 자신의 삶이 행복해지기를 바란다면 ‘공부’와 ‘돈’만으로 해결될 수 있을까? 어른들은, 학교에서는 왜 행복과 삶에 대해 진지하게 가르치지 않는걸까? 경쟁에서 이기는 방법, 공부 잘하는 방법, 돈버는 방법에 대한 관심과 이야기는 넘쳐난다. 대형서점도 학습법과 재테크, 자기계발서들이 점령한지 오래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만큼 여유있고 행복해지고 있는 걸까.

  연구공동체 ‘수유+너머’에서 활동하는 고병권은 다양한 철학적 탐구와 인문학적 사유를 통해 독자들과 만나왔다. 이 책은 십대를 위한 철학 입문서이다. 어깨에 힘을 빼고 짧은 글들을 통해 철학이 무엇인지 왜 필요한지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열린교실’ 시리즈의 출발에 서 있는 이 책은 이후에 출간될 책들에 대해서도 관심과 기대를 갖게 한다. 새로운 기획과 신선한 책들은 청소년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고 절실한 선물이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 것들을 책을 통해서라도 접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모두가 같은 꿈과 미래를 향해 부나방처럼 달려들지 않도록 다양성을 인정하고 차이를 이해하는 사람들의 생각의 변화가 우선이지만 아이들의 생각도 조금씩 달라질 필요가 있다. 결국 아이들의 생각은 어른들의 생각이 세뇌된 것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다.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 삶의 주인으로 우뚝 서는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그가 엄청난 범죄를 저지른 것은 아무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이히만의 경우를 보면, 악마란 악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이히만은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따져보지 않았던 거예요. 그냥 주어진 일을 기계처럼 무조건 했던 것이죠. 생각이 없으면 우리도 언제든 악마가 될 수 있는 겁니다. - 고병권, <생각한다는 것>, 50쪽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통해 ‘생각’의 중요성과 ‘철학의 의미’를 아주 쉽게 간단하게 설명하는 대목이다. 생각을 하지 않으면 왜 ‘악마’가 될 수 있는지 역사 속 인물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청소년들을 우리들의 미래라고 말하면서 우리는 그들을 어떻게 키우고 무엇을 가르치는지 생각해보자. 삶을 이해하고 세상을 따듯하게 해 줄 수 있는 생각과 판단력과 능력을 함께 길러주고 있는지 공부하는 기계가 되어 수능 성적표로 인간의 등급을 매기는 일에 몰입하고 있는지 말이다.

  아이들의 다양한 꿈을 스스로 찾아나갈 수 있도록 곁에서 도와주고 생각을 이끌어 주고 조금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땀흘려 일하고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어른인가 반성해본다. 다르게 산다는 것은 대충 산다는 말이 아니다. 굳이 남들처럼 살지 않겠다는 반항도 아니다.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고 이 길을 선택했는지에 대한 고민이며 이렇게 사는 것이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이고 내 삶이 행복해지는 길인가에 대한 반성이다. 그래서 생각한다는 것은 살아간다는 것이다.

‘생각한다’는 것은 ‘생각을 낳는 것’, 즉 ‘다르게 생각하는 것’이고, 그것은 또한 ‘다르게 살아가는 것’ 입니다. 철학은 ‘생각하는 기술’이지만, 그때 생각의 기술이란 ‘삶을 가꾸는 기술’이었잖아요. - 고병권, <생각한다는 것>, 76쪽

  수많은 경우의 수가 있는 십대에게, 모든 가능성에 도전할 수 있는 청춘에게 던지는 질문들은 그들을 행복하게만 하려는 것이 아니다. 때대로 불면의 밤을, 고통스런 고민을 안겨주기도 한다. 그렇게 ‘철학을 한다’는 것은 생각하고 공부하고 자유롭고 행복하다는 말과 다름없다. 조금 더 먼 미래를 보고 보다 나은 나를 위해 행복하고 즐거운 인생을 위해 철학 즉 생각한다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이 책을 통해 생각을 해야 하는 이유와 방법에 대해 한번쯤 고민해 보는 것은 어떤가.

‘철학을 한다’는 말은 참으로 여러 말과 통하는 것 같네요. 행복하게 산다는 것, 생각한다는 것, 공부한다는 것, 자유롭다는 것, 친구를 만든다는 것, 이 모든 말들이 ‘철학을 한다’는 말과 통하는 것 같습니다. - 고병권, <생각한다는 것>, 123쪽


100606-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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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 고병권이 쓴 '민주주의'
    from 그린비출판사 2011-05-25 15:43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무엇인가’를 묻는 책들이 태풍처럼 출판계를 흔들어놓고 있다.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바람이 채 가라앉기 전에, 뒤를 이어 유시민의 『국가란 무엇인가』 바람이 불고 있다. 이제 여기에 다시 고병권의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바람을 추가해야 한다. 그러나 고병권이 몰고 올 바람은 일시적으로 불고 지나갈 바람이 아니라, 끊임없이 반복해서 되돌아올 바람이다. 그것은 한국의 정치·사상 지형에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파열을 내는 이...
 
 
 
행복의 정복
버트란트 러셀 지음, 이순희 옮김 / 사회평론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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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 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복’이란 말이 내게 만들어준 이미지는 청마 유치환의 「행복」이라는 시의 첫 구절이다. 통영여중에서 그녀를 처음 본 순간 사랑에 빠진 청마. 딸 하나를 둔 채, 스물 한 살에 청상이 된 이영도를 사랑하게 된 청마. 그는 철벽같은 현실 앞에 좌절했을까? 건널 수 없는 강 같은 그리움에 행복했을까?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니라’는 기막힌 아이러니는 ‘오늘도 그대를 사랑하는 일보다 기다리는 일이 더 행복하였습니다’는 정호승의 「또 기다리는 편지」조차 청마의 「행복」에 대한 변주로 들린다. 우리에게 행복이란 무엇인가?

  해가지고 을씨년스런 겨울 하늘과 아파트 지붕의 경계 사이를 날아오르는 새떼들의 날개짓을 바라보는 이 푸른 시간이 어쩌면 내게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루시드 폴의 ‘날개’를 들으며 밝음과 어둠의 경계를 내다볼 수 있는 이 작은 평화 외에 무엇이 필요할까?

  버트런드 러셀의 『행복의 정복』은 ‘행복이 당신 곁을 떠난 이유’와 ‘행복으로 가는 길’을 알려준다. 플라톤은 ‘고통이 없는 상태’라는 최소한의 조건을 제시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행복은 또한 많은 사람들에게 공통되는 것일 게다. 탁월성을 획득하는 데 아주 불구이지 않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어떤 종류의 배움과 노력을 통해 행복을 성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라는 말로 작은 배움과 노력으로 성취할 수 것이 ‘행복’이라고 말했다.

  70년 전에 러셀은 ‘경쟁, 권태, 자극, 피로, 질투, 피해망상, 죄의식, 여론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행복이 우리의 곁을 떠난다고 이야기한다. 그에 비해 ‘열정, 사랑, 일, 폭넓은 관심, 노력’ 등이 우리를 행복으로 안내한다고 말한다. 어찌보면 단순하고 간단한 행복론이다. 그러나 러셀의 이야기는 시대에 뒤떨어졌거나 뻔한 관점으로 말할 수 있는 깊이와 넓이를 뛰어넘는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종교적인 계명에 순종하거나 세상의 기준에 맞추어서는 행복할 수 없는 자명한 진리에 도달한다. 자신의 욕구와 관심에서 벗어나서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불행의 원인을 ‘세상’에서 찾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나의 생존을 지탱해주고 나에게 행복의 기회를 제공하는 외부세계에 대한 열정과 관심을 통한 교류 없이는 행복한 삶은 불가능하다.

  당신은 행복한가? 우리는 한 번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을 배운 적도 없고 훈련을 받은 적도 없다. 평생 우리를 지켜줄 행복에 대한 관점을 만들고 가치관을 세우는 일이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일이 아닐까 싶다. 네모난 틀에 갇혀 내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다른 사람과 끊임없이 비교하며 경쟁에서 이긴다고 해서 행복해지지는 않는다.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가 바로 행복하게 사는 것에 대한 고민이다.

  러셀은 이 책에서 어려운 철학적 용어를 사용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수다스런 말로 행복해지는 법을 달콤하게 말하지도 않는다. 깊은 자기 성찰과 세상에 대한 통찰로부터 길어 올린 사색의 결과는 독자들에게 깊은 울림과 감동을 전해준다.

행복한 인생이란 대부분 조용한 인생이다. 진정한 기쁨은 조용한 분위기 속에만 깃들기 때문이다. - P. 75

사람을 상하게 하는 것은 과로라고 하지만, 실제로 사람을 상하게 하는 것은 과로가 아니라, 특정한 종류의 걱정이나 불안이다. - P. 82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고 자신이 몸담고 있는 세상을 완전히 인식하면서 느끼는 행복이야말로 진정한 충족감을 주는 행복이다. - P. 119


  문장 하나하나가 벽에 붙여두고 음미할 만한 금언처럼 읽히는 책이다. 수학자이며 철학자로 행동하는 지성으로 진보적인 지식인으로 세상의 모순과 문제점들을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냉철하게 인식했던 20세기의 가장 명민한 인간이었던 러셀은 노벨문학상을 수상할 만큼 이성과 감성을 갖춘 글쓰기의 전형을 보여준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과 타인과의 관계, 세상과의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나에게 러셀이 전해주는 불행의 원인과 행복의 조건은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것을 권유한다. 하루에 3천 단어 이상을 사용해서 매일 글을 썼다는 러셀의 글은 깊고 아름답다. 나를 돌아보고 삶을 반성하게 하는 『행복의 정복』은 누구에게나 권할 만한 책으로 손색이 없다. 깊은 겨울, 한 해를 돌아보고 다가올 새해를 맞이하면서 사색의 시간이 필요한 모든 사람에게 꼭 필요한 책이 아닐까 싶다.

올바른 기분 전환 방법은 사고 작용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사고를 새로운 방향으로 돌리거나 적어도 현재의 불행과는 거리가 먼 방향으로 돌리는 것이다. - P. 246


091208-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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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이상학 책세상문고 고전의세계 71
아리스토텔레스 지음, 김재범 옮김 / 책세상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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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다보면 가끔씩 무모한 도전을 할 때가 있다. 뻔히 질 줄 아는 게임을 하기도 한다. 무모한 도전이지만 신념과 가치 때문에 개인적 이익과 안전을 포기할 때도 있다. 인간적인 갈등이야 없을 수 없지만 부끄럽게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책도 마찬가지다. 가끔 무리수를 둘 때가 있다. 주로 철학책이 그러하다.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서문>이 그랬고, 비트겐슈타인의 <청갈색 책>이 그랬다. 하지만 끓어 넘치는 호기심과 궁금증을 참을 수가 없다. 번번히 보기좋게 나가떨어져도 포기할 수는 없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그래도 좀 나았는데, <형이상학>은 얼마나 이해하고 그 핵심을 만져보기나 했는지 의심스럽다. 책에 대한 평가는 어불성설이고 아리스토텔레스와 직접 만난다는 설렘만으로 만족해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완역판이 아니라 발췌본을 먼저 대할 생각으로 가벼운 분량의 책세상문고 ‘고전의 세계’ 시리즈를 선택했지만 역시 만만치 않았다.

  ‘철학아카데미’나 ‘연구공간 수유+너머’에서 배우고 익히고 싶다는 생각은 현실을 핑계로 훗날로 미루고만 있다. 함께 생각하고 앎을 나누는 공동체는 현실에 있음에도 쉽게 행동에 옮기지 못하는 것은 순전히 나의 게으름 탓이리라. 살아가는 이유와 방법은 어쩌면 선택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안다는 것과 모른다는 것이 삶의 목적이 될 수도 수단이 될 수도 있다. 나에게 철학은 도대체 무엇인가.

  사물을 바라보는 것은 내가 있음으로 시작된다. 나와 대상이 있다면 있음은 본질과 형상으로 구분된다. 보여지는 것의 실체와 운동 개념을 통해 아리스토텔레스는 존재를 설명한다. 내 존재의 근원과 삶의 가치를 성찰하기 위해 가장 밑바탕이 되는 사유의 토대를 마련한 사람이 바로 아리스토텔레스이고 그 생각의 과정을 논리적으로 서술한 책이 <형이상학>이다.

  사물의 실체는 형상과 질료로 구성되며 그것은 플라톤이 말한 이데아처럼 분리될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유를 통해서만 그 본질에 접근할 수 있다는 스승의 한계를 뛰어넘으로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이 실재론과 유명론 사이에서 접점을 찾고자 하지만 내게는 아직도 손에 잡히지 않는 구름처럼 모호하고 아득한 개념들의 유희들로 비춰진다. 철학을 한다는 것이 개념을 밝히고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것인데 추상적 사고를 위한 사고 훈련이 턱없이 부족한 탓일 게다.

  겸손한 마음으로 보다 잘 소화된 2차 저작들을 먼저 섭렵하고 다시 도전해 볼 일이다. 책을 통해 얼마나 지적 훈련과 사유의 폭을 넓힐 수 있을지 알수 없으나 스스로 노력하는 만큼의 성과는 분명히 얻어질 것이라고 믿는다. 가끔씩 삶의 목적이 모호하고 분명하지 않은 미래와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맥없이 허공을 바라보며 ‘존재의 근원’에 대해 성찰하고 싶은 욕망이 넘칠 때 또다시 도전하게 될지도 모를 철학자들의 이야기를 뒤로 미룬다.

  ‘들어가는 말’에서 이 책을 옮긴 김재범의 이야기가 가슴에 와 닿아 중간에 책장을 덮을 수가 없었다. 천신만고 끝에 이 책을 내놓은 저자의 노력과 학문적 열정 그리고 삶을 대하는 진지한 태도가 나를 이끌었다. 짧지만 진정성이 묻어나는 모든 저자와 번역자의 수고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세상 만물의 근원과 본질에 대한 호기심 내 존재에 대한 질문들은 곧 우리들 삶에 대한 질문이다.

  ‘A. 원리와 원인에 관한 앞 철학자들의 이론’이라는 첫 장은 최초의 철학사라고 불린다. 제 1 장 앎에 관한 탐구 첫 문장은 ‘모든 인간은 본성상 알고 싶어하는 속성을 지닌다. 그리고 감각적인 앎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함이 이것을 입증한다’는 문장은 아리스토텔레스가 <형이상학>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의 출발점이다. 서로 생각이 다른 철학자들의 주장은 눈에 보이는 형상과 그것의 재료 사이의 관계와 운동 사이에 놓여있는지도 모른다. 인간이 가진 감각의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시도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철학적 삶의 태도가 아닐지도 모른다. ‘왜 사냐건 웃지요’라고 말한 어느 시인의 말처럼 그것은 철학적 사유나 언어 이전의 문제일질도 모른다. 종교적 관점에서 살펴볼 수도 있겠으나 밤하늘에 떠 있는 희뿌윰한 달빛처럼 모호할 뿐이다. 내가 사는 이유와 방법이 타인에게 강요될 수 없다는 자명한 진리 앞에 우리는 번번이 절망한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도 깨우치지 못한 삶의 진리 혹은 존재의 근원에 대해 외면하지 않는 자세일지도 모른다. 어쩌겠는가 여기까지가 나의 한계인 것을. 그리고 그 한계를 뛰어 넘으려는 자세만큼은 유지하고 살아야 한다는 사실만이라고 자각해야 할 것이다.


090630-0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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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콘서트 2 철학 콘서트 2
황광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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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의식은 보수적이다. 젊은 날 한번 익힌 사유와 가치의 체계는 평생 간다. 보수적인 당파의 사람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진보적인 인사라 자처하는 사람들도 그러하다. 한번 지어놓은 사유의 집을 부수어버리고, 그 폐허의 자리에 새로운 사유의 집을 짓는 일은 매우 두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인간이란 특정의 사유 체계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지독한 두려움을 견딜 수 있는 사람, 그가 곧 철학자다. - P. 113

  우리가 철학을 알아야 하는 이유이고 실천해야 하는 이유이다. 철학을 한다는 말은 의미 자체가 모순일지 모른다. 철학한다는 것은 앎의 세계로 나아간다는 것이고 그것을 실천한다는 것을 말한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이해한다. 철학은 어렵고 머리 아프다고 생각하는 것은 용어에서 비롯되는 두려움이다. 개념을 이해하고 사유 과정을 통해 철학의 방법을 익혀야 하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이유는 철학사에 관한 지식이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로 이어지는 트라이앵글에 갇혀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때가 많다. 모든 학문의 아버지인 아리스토텔레스와 그의 스승 플라톤의 차이를 안다고 해서 우리 삶이 풍요로워지는 것은 아니다. 앎의 태도와 방법은 그 연원을 밝혀 알아야 하는 것이 기본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의 사고를 규정하는 모든 것들 속에는 오랜 시간에 걸쳐 축적된 인류의 사상이 반영되어 있다. 그것들을 더듬다보면 반드시 철학자들과 만나게 된다.

  인간이 인간인 이유를 사람들은 여러 가지 이유에서 찾아내지만 그 바탕에는 반드시 생각하는 힘이 전제되어 있다. 생각하는 방법, 생각의 대상, 생각을 실천에 옮기는 삶 등 우리는 여전히 2500여 년 전의 철학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고민 속에서 살고 있는지 모른다. 다만 지식의 범위와 크기가 조금 커졌을 뿐이다. 다람쥐의 쳇바퀴처럼 비슷한 일상과 생활 환경 속에서 눈앞에 보이는 것들에만 관심을 가지며 살아간다.

  철학은 단순하게 말하면 살아가는 이유와 목적에 대해 고민하는 학문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와 타인과의 관계는 어떠한가, 그리고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을까에 대한 호기심에서 출발한다. 그것이 정신이든 물질이든, 사람이든 자연이든 사회든. 돈에 소외되어 내 삶의 주인이 되지 못하는 불행한 현실에서 인간답게 살기 위한 고민과 몸부림은 계속된다. 누구나.

  안다고 해서 현실이 바뀌지는 않지만 왜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는지, 우리는 언제부터 이렇게 생각해 왔는지에 대해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학교는 여전히 헤게모니를 장악한 그들의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한다. 억압과 구속의 습속을 철저하게 길들이고 있다. 일제고사를 부활시켜 전 국민을 한 줄로 세워 등급과 계층을 고착화하고 내면화한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괴감과 좌절감을 통해 자신의 한계와 위치를 인정한다. 입시가 끝나고 학교 정문에 내걸린 부끄러운 현수막에 이름이 오르지 못한 모든 졸업생은 행복하지 못하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어떻게 이런 현상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우리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그래서 우리는 철학자가 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영어 단어를 외우고 수학 공식을 암기하며 김소월 시의 특징을 정리한 참고서를 통해서만 지식을 습득해야 하는 이 땅의 청소년들은 얼마나 불행한가. 교육의 방법과 목적과 방향에 대해 개떼처럼 떠들어대지만 현실은 완고하다. 결과는 참담하다. 점점 불행지며 점점 억압되고 점점 길들여진다. 모두 순종하라, 모두 한 줄로 서라, 20을 위해 80은 희생하라. 경쟁에서 이기지 못하면 인생의 낙오자가 된다. 모두 공부만 해라. 수능 성적이 계급이다. 대학 간판이 평생을 좌우한다. 이것이 현실이다. 돈이 최고다.

지식은 인류 사회 전체에 이득을 준다. 물질적 자산은 남에게 주면 줄어드나 무형의 지적 자산은 남에게 준다고 없어지지 않는다. 부와 권력은 유한하나 지식은 무한하다. 육체는 죽지만 지식은 영원하다. 지식의 기본은 타인을 배려하는 데 있다.(피타고라스) - P. 27

  피타고라스가 자다가 벌떡 일어나 통탄할 일이다. 황광우의 <철학콘서트 2>는 이렇게 시작한다. 수학책에서 이름을 얻어 들은 피타고라스에 대한 새로운 관점으로 시작하는 이 책은 저자의 관점이 훌륭하다. 단순히 철학적 지식을 씹어 뱉어주는 친절한 안내자의 역할이 아니다. 피타고라스부터 공자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사람들을 통해 그들의 생각과 노력들을 점검한다. 그것들이 지금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것들은 무엇인지 꼼꼼하게 살펴보고 있다.

  한 권의 책에서 10명을 다루다 보니 <철학콘서트>에서 보여준 것과 같은 약점을 극복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일관되게 인류의 역사와 현재의 삶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치열하게 살았던 사람들의 생애와 사상에 대한 선입견을 지우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충분한 가치가 있다. 학교에서 배운 것이 없는 사람들은 책을 통해서 배워야 한다. 청소년들을 위해 쓰인 이 책은 몸만 어른이 되어 버린 사람들에게도 훌륭한 철학 입문, 교양서로 손색이 없다. 언제나 그러하듯이 중요한 것은 생각의 방향이다. 그리고 열린 마음이다. 순종적이고 긍정적인 생각을 하라고 학교에서 가르친대로 살고 있는 사람은 유의해야겠다. 그것이 길이요, 진리요, 빛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위험한 책들이 더 많이 읽혀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 대상이 인간이건 자연이건, 영웅은 투쟁한다. 그리고 정복한다. 투쟁과 정복, 그 이면에 있는 부정negation의 정신, 이것이 서양인의 정신적 특질의 원형이 아닐까?
…… 불의 앞에서는 목에 칼이 들어오더라도, 저항하라. 저항 정신은 자유인의 권리이자 덕목이다. - P. 37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가르침이 사실은 거짓이다. 영웅이 되자는 말은 아니다. 다만 저항할 줄 모르고 비판 정신이 없는 사람은 자유인이 아니다. 노예와 같은 삶이 아니라 스스로 주인되는 삶을 살고 싶은 사람들은 철학자들에게 한 수 배울 수 있다. 그대로 살 순 없다. 적어도 그들이 무슨 생각을 가지고 살았으며 그러한 삶이 어떤 삶인지에 대해서는 한 번쯤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그러한 철학자들을 소개하며 그들의 주저에 대한 해석과 영향을 밝히고 있다. 더 좋은 태도는 이 책을 통해 그들의 저서를 직접 만나는 일이다. 메모로 끝나지 않도록 해야겠다. 제목이야 어떠하든 철학은 우리의 삶에 등대처럼 오롯한 불을 밝혀 주기를. 평생 살아가면서 자신의 삶을 반성하고 주변을 돌아보고 행복을 찾고 싶다면 왜 사는지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해야 한다. 우리의 진정한 즐거움은 어디에서 오는가? 물론 철학자의 이름을 모른다고 해서 불행하지는 않다. 주변에는 이미 깨달음을 얻은 사람들이, 학문적 업적을 통해서가 아니라 진정 행복한 삶과 즐거움을 찾고 나누는 사람들이 있다. 배움은 어디에나 있고 책은 최후의 수단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여전히 저자가 말한대로 내게는 책은 참 희한한 물건이다. 그래서 또 다시 시간 여행을 떠난다. 물론 현실 속에서 불가능한 꿈을 꾸며.

책이란 희한한 물건이다. 사람의 뇌에서 이상한 전류가 흘러, 그 전류가 사람의 손끝에서 글자로 바뀌고, 글자들이 모여 인간의 감정과 사상을 담아낸다. 책이란 정신의 물질화다. 알라딘이 양탄자를 타고 하늘을 날듯, 우리는 책이라는 독특한 물건을 타고 과거 속으로 들어가는 시간 여행을 즐긴다. - P. 235


09022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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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회전, 혹은 혁명 revolution [철학콘서트 2권]
    from 사필귀정 2010-08-16 01:53 
    혁명revolution이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그리고 믿는다. 그런데 정작 영어 단어 revolution의 유래는 잘 몰랐다. 그 유명한 코페르니쿠스가 꺼낸 말이었구나. 책을 보고나서 알았다. 언론이며 광고에서 발상의 전환이니, 생각을 뒤집니 하면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이라는 말을 상용어구 처럼 사용해서, 뭔가 흔하다고 생각했나보다. 흔하디 흔한(?) 위대한 과학자. 그러니까, 대단하다는 의식이 보편적이라서 오히려 나의 의식은 이 대단한 코페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