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주의를 권하다 -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하는 당신에게 내 인생에 지혜를 더하는 시간, 인생명강 시리즈 5
이진우 지음 / 21세기북스 / 202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의 말처럼 21세기의 메가트렌드는 의심할 여지 없이 개인화individualization가 되었다. 개인주의는 근대의 발명품인 ‘낭만적 사랑과 연애’의 전제 조건이다. 21세기에 다시 유행하는 건 더이상 몰개성적 집단주의와 전체주의가 설 자리를 잃었다는 반증이 아닐까. 특히 코로나 감염병이 가져온 비대면, 비접촉 시대의 생존 방식으로 개인주의가 확고하게 자리 잡을 거라는 예상은 어렵지 않다. 그간 숱하게 쏟아져 나온 개인주의 예찬과 독려에 이진우가 힘을 보탠다. 제목처럼 개인주의는 권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이제는 생존을 위한 옵션이 아니라 자기 삶의 기본값으로 설정해야 한다. 니체와 한나 아렌트를 소개하며 방송을 탄 저자의 말솜씨는 글솜씨 못지않다. 기막힌 문장을 쓰는 작가의 어눌한 말투에 놀란 적도 있고 달변가의 쓰디쓴 문장을 읽어본 적도 있다. 말과 글을 두루 갖추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강의라도 한 문장씩 자신의 속도와 호흡에 맞춰 ‘읽는’ 행위는 불특정 다수를 향한 말을 ‘듣는’ 행위와 분명하게 차별화된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오디오북이라는 말이 생경하다.

주변 사람들을 관찰하고 그들의 말과 행동을 분석해보면 내면의 욕망과 지향점은 물론 자존감과 콤플렉스까지 고스란히 들여다보게 된다. 오래 사귀고 깊이 아는 관계는 그만큼 불편하기도 하고 감내해야 할 것들이 적지 않다. 적당한 거리 두기는 코로나 시대 이전부터 사람과 사람 사이에 꼭 필요한 최소한의 예의다. 자기감정을 쏟아내는 친구, 배려와 헌신을 요구하는 연인, 사랑과 봉사를 원하는 가족, 우리가 남이냐고 묻는 선후배, 가족처럼 지내자는 직장 동료 등 선을 넘는 오지라퍼들은 타인의 불편함보다 자신의 만족감이 우선인 것처럼 행동할 때가 많다. 참견과 조언은 백지 한 장 차이다. 관심과 스토킹은 받는 자가 판단한다. 사적인 질문과 호기심을 친근감으로 포장하지 말아야 한다. 상대방의 불편함을 고려하지 않는 모든 말과 행동은 폭력이다. 침묵은 금이 아니라 때때로 무시와 분노의 표현이다. 이 모든 말과 행동이 ‘개인주의’라는 이름으로 허용된다는 착각이 개인주의에 대한 오해다.

이진우는 일상에서 맺는 모든 관계의 출발을 ‘자기 사랑’이라고 본다. 심리적 생존을 위해 ‘미니멀 자아minimal self’를 제안한다. 그러나 한국은 개인이 없는 사회다. 산업화와 민주화 과정을 거치면서 근대사회에 비해 개인화되었음에도 진정한 개인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진정한 개인’이란 권리의 주체로서 사회적 책임 의식을 가진 사람이다. 사회학자 송호근은 우리가 아직 성숙한 시민사회를 발전시키지 못했다고 말하면서 “시민사회의 시대에 한국에는 ‘비시민’이 넘쳐난다”고 진한단다. 시민 정신이 없는 시민은 사적 영역에 웅크린 이기적 인간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한국에는 ‘개인’이 보편화되어야 사회가 더 높은 단계로 발전할 수 있다.(90쪽) 그러니까 우리가 흔히 이기주의의 포장지로 사용하는 ‘개인주의’는 권리의 주체로 사회적 책임 의식을 가진 사람과 거리가 멀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어떤 사람은 자신을 찾으려고 이웃에게로 가고, 또 다른 사람은 자신을 잃고 싶어서 이웃에게로 간다. 그대들 자신에 대한 그대들의 그릇된 사랑은 고독을 감옥으로 만든다.”라고 말했다. 고독을 감옥으로 만들지 않으려면 코로나 이후, 즉 비대면, 비접촉 시대의 개인주의는 이웃과의 교류에 자기만의 방식과 타인에 대한 배려, 역지사지의 태도가 반드시 필요하다. 인스타에는 불행이 없다. SNS는 언제나 정의롭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을 타고 흐르는 지식과 정보는 오히려 개인의 눈과 귀를 가린다. 이진우는 생각하는 나를 ‘이성적 사고의 산물로 계획하고 구상하는 콘셉션concetion’으로, 느끼는 나를 ‘자기 자신과 만나는 가장 원초적인 방식인 지각인 퍼셉션perception’이라고 표현했다. 대체로 인간관계는 퍼셉션으로 결정되며 중요한 선택과 판단의 순간에도 콘셉션이 오류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노멀크러시normal crush’를 꿈꾸는 사람은 희망이 있다고 믿는다. ‘평범한 것에 반발하다’는 의미지만, 숨은 뜻은 ‘사회가 정한 기준을 따르기보다 소소하고 평범한 일상을 즐기는 것’이다. 과시적 소비 욕망이나 보여주기 위한 컨셉이 아니라면 개인주의자는 특별함과 평범함의 가치를 전복하는 사람이다. 이진우는 ‘모난 돌이 먼저 정 맞는다’는 속담을 “정상성에서 벗어나 조금이라도 특출나고 다르면 한국 사회에서는 그 태도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둥글둥글하고 모나지 않은 조약돌 같은 사람만이 집단에 수용된다. 개성을 추구하다가는 당장 타인의 시선에 걸려 배제되고 매도되며 경멸당한다.”라고 해석한다. 튀지 마라, 왜 너만 그러느냐,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 왜 남 생각은 안 하느냐, 너가 그러면 우리는 뭐가 되느냐…… 일상에서 개인을 죽이는 말로 활용되는 수많은 조언과 충고를 견뎌낼 자신이 없는 사람에게 과연 이진우가 권하는 ‘개인주의’는 얼마나 효용 가치가 있을까, 싶은 생각이 앞섰다. 밤하늘을 보며 잠시 생각해 보자. 누구나 알고 있지만 쉽게 바뀌지 않고, 누군가 고쳐줬으면 내가 나서기는 싫은 일들에 대해.

압축 성장이 만든 기형적 한국 사회에서는 시민사회가 이중적인 형태로 나타났다. 대한민국은 겉으로는 오랜 시간 민주화 운동을 거치며 시민이 주인이 되는 사회를 이룩한 것 같지만 실제로는 시민이 없는 국민국가 형태다. 시민이란 행위에 책임을 지며 공공의 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구성원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의 구성원 대부분은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할 뿐 공공의 가치나 이익에는 별 관심이 없다. - 개인주의를 권하다, 194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왜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가 21세기를 위한 새로운 인본주의 1
마르쿠스 가브리엘 지음, 김희상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깜깜한 밤하늘에 별을 보며 저 별은 어디서 반짝이고 있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한 건 아마 일곱, 여덟 살 무렵이 아니었을까 싶다. 겨우 수백만 년 전 털 없는 원숭이에 불과하던 호모사피엔스가 현대 문명을 이루며 사는 2022년이지만 모든 인간은 ‘개체 발생은 계통 발생을 반복한다.’는 진화 과정을 단기간에 증명한다. 부모의 보호와 양육 없이 생존할 수 없는 느릿한 인간의 성장 과정은 슬프지만 아름답기도 하다. 돌이 지날 무렵 두 발로 땅을 딛고 서 호모 에렉투스의 삶을 시작한 순간의 환희를 선물한 기억으로 부모는 평생 자식을 바라본다. 애착 관계를 지나 사춘기에 접어들며 독립된 개체로 세상 속으로 나아갈 무렵 인간은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자각하고 세계에 눈을 뜬다. 나는 누구이며 어디에서 왜 태어났을까.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 것인가. 세상은 어떤 곳이며 세계는 어떻게 구성되었는가. 너무나 자연스런 생각의 갈피를 접으며 인간은 조금씩 성장한다. 밤하늘의 별이 뜬 곳이 궁금하다가 어둠은 어디에서 시작됐는지, 저 어둠은 어디까지 계속되는지, 반짝이는 별이 있는 곳은 어디인지 생각하다 잠이 들었다.

네 언어의 한계의 세계의 한계라는 비트겐슈타인의 말 한마디에 발이 묶여 아주 오랫동안 비틀거렸다. 결국, 한 인간이 인식하는 세계는 오감에 의한 감각적 세계가 아니라 언어로 명명된 대상 너머로 확장될 수 없는 것인가. 언어가 없는 세계는 인지할 수 없다는 말인가. 눈 앞에 맹점에 존재하는 대상은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세계를 구성하는 범위와 한계를 밝히는 과학 이론은 증명할 수 없는 실재 세계를 어떻게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 세계 너머에는 어떤 어둠과 빛이 있을까. 진화론, 양자역학, 불확정성 원리, 엔트로피 법칙이 말하는 세계의 진실은 생명의 미시적 영역부터 세계의 구성 방식을 이야기하지만 인간의 호기심과 존재론적 의미를 말해주진 않는다.

명민한 철학자 마르쿠스 가브리엘은 당신과 우주에서 시작해 유물론과 구성주의의 한계를 지적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을 지나 이제는 새로운 리얼리즘의 관점으로 세계를 바라보라는 요구는 낯설지 않다. 철학사의 핵심을 전달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자기만의 생각을 주장하기 위한 이야기도 아니다. 왜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가에 대한 응답은 철학적 증명이 아니라 자기 존재에 대한 의심과 확인에서 비롯돼야 하기 때문이다. 자연과학의 세계관으로 세계를 본다고 해서 정답을 얻을 수도 없다. 종교와 예술의 측면에서도 이 문제에 접근하지만 이제 모든 철학의 제문제를 해결했다는 비트겐슈타인의 발언 이후에도 여전히 우리에게 남은 문제는 절대 해결되지 않는다. 그것은 주체적 삶이 가능하도록 ‘나도 너도 스스로 도는 힘을 위하여’온몸으로 밀고 나가야 하는 반성과 성찰의 삶이 필요하기 때문이 아닐까.

한 살 더 나이를 먹고 세월이 흐른다고 해서 현명해지거나 어떤 깨달음을 얻을 거라는 착각 때문에 사람들은 점점 더 편협한 세계에 갇히고 자기만의 기준이 더 단단해진다. 의심과 질문이 없는 삶은 쓰레기가 된다는 발언에 반감이 생긴다. 바로 저것이 문제라며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면 ‘just look up’이 아니라 《돈 룩 업don′t look up》을 외치며 현실에 안주하고 선악을 판단하며 선전선동에 속는다. 강물에 손가락으로 금을 긋듯 지나가는 시간을 구별하기 위해 나이와 연도를 새기고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는 인간의 삶을 한 발 떨어진 자리에서 살펴보면 엄청난 희극이다. 가까이 다가가 각자의 비극을 확인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원근 조절에 실패하고 거리 두기를 평생 몸에 익히지 못한다. 진화심리학이 안내하는 자연선택과 변이의 간극을 메우지 못한 채 오늘도 각자 발밑에 땅바닥만 툭툭 차기 일쑤다. 그러다 어느 순간‘툭’하고 끈이 떨어진다. 마르쿠스 가브리엘의 “실제로 인간은 상당히 많은 부분에서 오류와 착각에 빠져 살아간다. 우리는 자신의 무지함이 어느 정도인지조차 가늠하지 못한다. 대개의 경우 자신이 무얼 모르는지도 알지 못한다.”라는 말이 뼈에 사무치는 이유다.

세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나는 존재하는가. 진화 과정에서 인간의 욕망과 행복은 매우 단순하게 세팅되었다. 생존과 번식을 위한 자연선택의 명령은 너무 단순하고 확실해서 반감을 일으킨다. 존재론적 질문과 철학적 사고가 어쩌면 인간의 본성과 너무 동떨어진 듯 보이지만 궁극적으로 인간에 대한 오해를 이해로 바꾸는 지름길이 아닐까 싶어진다. 나를 이해하지 못한 채 타인을 알고 싶다는 생각은 오만에 불과하다. ‘인생의 의미는 인생 그 자체, 곧 무한한 의미와 대결을 벌여 가는 일이며, 우리는 다행스럽게도 여기에 참여할 수 있다. 우리가 항상 운이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결국 자기 운을 스스로 만들어 가는 사람이 있고 인생의 무한한 의미와 무의미 사이에서 길을 잃는 사람도 있지 않은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에고 트릭 - ‘나’라는 환상, 혹은 속임수를 꿰뚫는 12가지 철학적 질문
줄리언 바지니 지음, 강혜정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2년 4월
평점 :
품절


나 자신이라고 부르는 것 속으로 아주 깊이 파고들 때면,

늘 이런저런 지각, 이를테면 열기나 냉기,

빛과 그림자, 사랑과 증오, 고통과 쾌락, 색깔 혹은 소리 등과 마주친다.

나는 이런 특정 지각과 구분되는,

오롯한 나 자신을 결코 포착하지 못한다.

데이비드 흄, <인간 본성에 관한 논고>에서

 

로버트 드 니로가 열연했던 <숨바꼭질>이라는 영화를 보다가 시작한지 5분 만에 주인공의 실체를 짐작해 버린 경험이 있다. 해리성 인격장애를 겪는 주인공이 범인을 보이지 않는 존재를 추적하는 내용의 영화로 결말을 짐작했으니 영화를 보는 내내 긴장감 없이 지루하게 머릿속으로 결론을 끼워 맞추고 있었다. 영화의 소재로 자주 등장하지만 이 질병을 앓는 사람은 흔하지 않다. 그러나 우리가 다중인격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은 자아에 대한 관심 때문이다. 흔히 정체성이라는 말을 즐겨 사용하지만 철학과 심리학 그리고 뇌과학의 관점에서 자아란 무엇인지 명쾌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도대체 자아란 무엇이며 나 자신은 어떤 존재인가.

 

영국의 철학자 줄리언 바지니는 전작 유쾌한 딜레마 여행으로 처음 만났다. 쉽고 재미있는 글이 인상적이었던 줄리언의 신작 자아 트릭은 그의 전공 분야에 해당한다. ‘개인적 정체성으로 학위를 받았으니 이 책은 그의 관심 분야이기도 할 터이고 그간 여러 권의 책을 쓰면서 쌓인 내공도 살펴볼 수 있는 책이다. 제목 그대로 우리가 알고 있는 자아는 수많은 트릭을 사용하고 있으며 우리는 자아라는 트릭 속에 갇혀 그것을 오해하고 있다. 막연한 개념으로만 존재하는 자아에 대해 한번쯤 깊이 고민해 보는 것은 어떤가. 때때로 타인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 궁금하지 않은가.

 

자아란 무엇이며 자아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그리고 미래의 자아는 어떨까에 대한 고민을 풀어낸 이 책은 단순히 철학적 관점으로 인간의 사유 방식을 점검하고 분석하는 책이 아니라 실제 생활에서 접할 수 있는 사례를 중심으로 심리학과 신경과학을 동원하고 있어 다양하고 즐거운 뷔페를 즐길 수 있다. 우리가 책을 읽는 목적은 다양하다. 목적과 방법에 따라 한 권의 책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내게 다가오고 그 결과 또한 천양지차다. 마치 사람을 대하는 목적과 방법에 따라 그 관계와 양상이 달라지는 것과 비슷하다. 실용적 목적으로 가볍게 접근할 수 있는 책과 달리 인문학 분야의 책들은 대부분 깊은 사유와 다양한 관점이 필요하다. 그것은 자신만의 빛깔과 향기로 다가와 내적 성숙을 이루어 또 다른 자아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는 변화된 자아를 확인하고 때때로 나 자신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되며 그런 의문을 갖는 자신조차 예전의 자아와 달라졌음을 확인한다. 끊임없이 생성되고 소멸되는 체세포만큼이나 인간의 생각도 변화한다. 육체적 존재는 물론이고 영혼마저 과거의 와 다른 존재라면 나 자신은 무엇이며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줄리언 바지니는 육체와 자아와의 관계 그리고 뇌와 자아의 관계를 통해 자아를 규명한다. 그것은 기억과 영혼의 문제로 귀결되지만 다중 자아, 사회적 자아로 나아가면 문제는 복잡해진다. 왜냐하면 자아는 끊임없이 속임수(트릭)를 쓰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가는 세 가지 명제를 제시한다. 첫째, 자아의 통일성은 심리적 속임수가 만든 결과물이다. 둘째, 우리는 물질에 불과하지만 단순한 물질 이상이다. 셋째, 속성 자체가 변하기에 정체성은 중요하지 않다.

 

결국 자아는 뚜렷한 실체도 정체도 알 수 없는 어떤 묶음, 가상의 덩어리에 불과하며 끊임없이 변하는 속성을 지닌다. 작가는 3부 미래의 자아에서 사후의 생이나 자아의 디스토피아아를 우려한다. 우리는 생각하는 생존기계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스스로 믿는 자유의지라는 것이 과연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지 가만히 생각해 보자.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만 자아 정체성을 확인할 수밖에 없다는 자아 인식은 또 어떤가.

 

하이데거는 삶이 결국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과정에 불과하다고 했지만 여전히 우리는 나 자신이 누구인지 묻고 있다. ‘자아라고 명명된 보이지 않는 실체에 대한 호기심은 나의 레종 데트르(Raison D’etre)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이다. 삶의 목적과 방향이 흐릿할 때마다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관계가 틀어지고 생이 힘겨울 때마다 우리는 자신을 돌아본다. 그 오래된 질문들은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내내 계속 될 것이다.

 

카를 마르크스(Karl Marx)의 말을 살짝 바꿔보자. 지금까지 철학자들은 자아를 해석만 해왔다. 이제 문제의 핵심은, 만약 한다고 하면, 과연 어떻게 자아를 변화시킬 것인가이다.(“지금까지 철학자들은 세계를 다양하게 해석하려고만 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일이다.” 마르크스의 <포이어바흐에 대한 테제(Thesen uber Feuerbach)>에 나오는 구절이다.) - 299

 

 

120429-03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eBook] 나를 만나는 스무살 철학 - 혼돈과 불안의 길목을 지나는 20대를 위한 철학 카운슬링
김보일 지음 / 예담 / 2011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일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유행어가 있다. 일등이 모든 것을 갖는 게임의 법칙에서 이등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 생태계에서 경쟁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적자생존의 법칙은 냉혹한 현실세계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남들보다 더 열심히 노력하고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며 그 결과는 많은 사람들의 부러움을 산다. 그러나 우리들의 삶을 순위로 결정할 수 있을까.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유도 은메달리스트 왕기춘 선수는 눈물을 흘리며 부모님께 죄송하다는 소감을 밝혔다. 금메달 유망주였던 이원희 선수를 이기고 당당하게 올림픽에 출전해서 국민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왕기춘 선수의 부담감은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갈비뼈 부상을 무릅쓰고 지구에서 두 번째로 유도를 잘한다고 인정받았는데도 눈물을 흘린 왕기춘 선수는 여자 펜싱부문 최초의 은메달리스트가 된 남현희 선수가 보여준 환한 미소와 비교되었다. 상황에 따라 은메달의 의미가 달라질 수도 있지만 이등을 하고도 눈물이 나는 현실은 우리들의 각박한 삶을 돌아보게 한다.

한 평생을 살아가면서 는 무엇을 꿈꾸고 있는지 가만히 생각해 보자.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는 말 대신 성적으로 모든 것이 결정된다는 믿음을 갖게 되는 순간 불행이 시작된다. 전교 1등을 해도 다른 학교 전교 1등과 경쟁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게 아닌데라고 생각하지만 꽃들에게 희망을의 애벌레처럼 우리는 정상에 오르기 위해 오늘도 쉬지 않고 공부하고 스펙을 쌓기 위해 잠자고 꿈꿀 시간도 없다. 하지만 철학은 이런 현실에 대해 여전히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어떻게 살 것인가? 나는 누구인가?

철학자가 아닌 우리들에게 철학은 학문의 대상이 아니라 삶에 대한 길잡이가 되어야 한다. 학교에서 오랫동안 학생들을 가르쳐 온 김보일 선생님의 나를 만나는 스무 살 철학은 청소년들의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담고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타율과 억압에서 벗어나 자유를 만난다. 대학생이 되거나 사회에 진출하는 스무 살은 성인을 의미하는 동시에 자신의 삶을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나이로 볼 수 있다. 내 삶의 주인이 되지 못하고 내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일등만 부러워할 수는 없다. 내가 가진 것만 좋다고 여기는 것도 문제지만 여우의 신포도처럼 다른 이의 삶을 부러워만 한다면 지는 거다. 삶의 목적과 방향이 없다면 일등도 불행한 현실에서 모든 청춘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 보면 세상에는 다양한 삶의 모습이 존재한다. 돈과 명예와 권력을 탐하지 않아도 행복하고 보람 있는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막연한 불안과 상실, 욕망과 혼돈의 시기를 겪고 있는 스무 살에게 김보일이 보내는 애정어린 충고와 철학적 조언은 가슴을 열고 진지하게 경청할 만한 가치가 있다. 이 책에는 어렵고 복잡한 철학 개념이나 철학자들의 삶은 소개되어 있지 않다. 대신에 스무 살로 상징되는 사춘기에서 이십대 초반의 청춘들에게 우리들의 삶에 철학이 왜 필요한가를 말해주고 있다. 철학을 공부하라고 권유하는 책이 아니라 불안, 선택, 고독, 욕망, 행복, 성공, 사랑 등 우리가 현실에서 부딪치는 문제들에 대해 함께 고민하는 책이다. 성공을 위한 지침서, 자기를 계발하라고 독촉하는 실용서가 아니라 철학적 사유와 고민 속에서 스무 살은 현재와 미래의 길을 찾을 수 있다. 스무 살의 불안은 희망의 다른 측면이라는 말을 기억하자.

상처받지 않을 권리리뷰보기

작가
강신주
출판
프로네시스
발매
2009.07.01

정신분석학자 라캉은 지금 당신이 욕망하는 것이 진정으로 당신이 욕망하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원하는 것이 내가 원하는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은 아닌가. 최신형 스마트폰과 MP3, 대한민국 1%라야 탈 수 있다는 자동차,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을 말해준다는 아파트……. 나의 욕망은 어디에서 시작되었고 언제 끝날 것인가. 철학자 강신주는 상처받지 않을 권리를 통해 우리들의 욕망에 대해 집중적으로 말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의 위력은 길게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이 수단이 아닌 목적이라면 강신주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 책에는 이상과 짐멜, 보들레르와 벤야민, 투르니에와 부르디외, 유하와 보드리야르가 등장하기 때문에 어렵고 딱딱하게 느낄 수 있지만 청소년들도 충분히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돈과 욕망, 유행, 도박, 불안, 허영, 소비와 교환 등 현대 사회의 면면을 알기 쉽게 풀어서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두툼한 분량이지만 재미있게 읽힌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강신주의 장점은 대상에 대한 정확하고 날카로운 분석 능력과 그것을 독자에게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는 글쓰기 능력이다. 낯선 사람의 이름이 등장한다고 해서 겁먹을 필요는 없다. 강신주의 안내를 받으면 철학과 현대 사회를 재미있게 들여다 볼 수 있다.

작가
헬런 니어링
출판
보리
발매
2002.07.30

21세기 첨단 사회를 살아가면서도 우리는 보다 편리하고 안락한 생활을 원한다. 그러나 그것을 거부하는 사람들도 있다. 극단적인 경우이긴 하지만 헬렌 니어링과 스코트 니어링의 조화로운 삶을 살펴보자. 미국에서 대공황이 최악이었던 1932년에 뉴욕에서 버몬트 숲 속으로 들어간 두 사람은 독립적인 경제와 건강, 사회를 생각하며 바르게 살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직접 집을 짓고 농사를 지으며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이 책은 일벌레로 살아가며 더 많은 것을 원하는 현대인들에게 전혀 다른 삶의 방식을 제안한다. 노동 시간을 절반으로 줄이고 나머지 시간에는 책을 읽고 산책을 즐기며 대화를 나누는 삶은 어떤가. 모든 사람이 물질문명 사회를 등지고 살수는 없지만 전혀 다른 삶의 방식을 선택한 두 사람은 온몸으로 삶의 철학을 말하고 있다.

결국 철학은 우리에게 삶의 목적과 방법을 고민하는 수단이어야 한다. 철학자가 아니더라도 모든 사람은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한다. 그 하나하나의 과정과 결과가 우리의 삶이 된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답을 얻고 싶다면 철학에게 길을 묻고 스스로 그 길을 찾아 떠나야 한다. 그렇게 철학은 우리들 삶의 동반자가 되어야 한다.

120401-02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플라톤의 네 대화 편 - 에우티프론, 소크라테스의 변론, 크리톤, 파이돈 헬라스 고전 출판 기획 시리즈 3
플라톤 지음, 박종현 엮어 옮김 / 서광사 / 2003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람의 눈은 일차적인 정보를 받아들이고 판단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시각은 촉각이나 후각과 달리 가장 중요한 감각이다. 한 시간만 눈을 가리고 생활해 보자. 코나 귀, 입을 막고 생활하는 것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불편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눈은 우리에게 그만큼 중요한 감각 기관이다. 그렇다고 해서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시각적 이미지가 사물의 진면목을 드러낸다고 볼 수 없고 세상의 진실을 보여주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철학도 이와 마찬가지다. 눈에 보이는 현상대신 숨은 진실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관점이 필요하다.

위의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자. 관점에 따라 다른 동물로 보인다. 이 그림은 20세기의 가장 명민했던 분석철학의 대가 비트겐슈타인이 그린 오리-토끼그림이다. 어떤 동물인지는 보는 사람마다 해석의 틀에 따라 달라진다. 우리들의 생각도 이렇게 단순하고 일방적일 때가 많다. 굳어버린 생각, 편향된 시각은 경주마처럼 우리들의 시야를 점점 좁게 만든다. 많은 사람들이 삶의 목표를 이라고 말한다.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수단이긴 하지만 이 인생의 목표가 될 수 있을까. 돈만 있으면 저절로 행복하게 살아지는 것일까. 행복한 인생을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넓고 깊은 통찰력과 다양한 관점이다.

서양철학의 기원이 되는 소크라테스의 죽음은 2,500여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다.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민주적 절차에 의해 법을 지키고 재판 결과를 받아들여 독배를 마신 소크라테스를 우리는 위대한 철학자로 기억한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단 한 줄의 글도 남기지 않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소크라테스의 철학은 그의 제자 플라톤에 의해 전해질 뿐이다. 이렇게 알고 있는 소크라테스를 우리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박홍규의 소크라테스 두 번 죽이기는 소크라테스를 전혀 다른 측면에서 살펴본다. 소크라테스는 과연 민주주의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가. 그는 아테네의 시민들과 민주적인 절차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었는가. 죽음에 직면한 소크라테스는 왜 탈옥을 거부했는가. 이 책은 수천 년간 소크라테스의 철학만큼 관심과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그의 죽음에 관한 새로운 성찰이다.

박홍규의 책을 읽기 전에 플라톤이 쓴 <소크라테스의 변론>을 먼저 읽어야 한다. 원전을 해석한 플라톤의 네 대화편 에우티프론, 소크라테스의 변론, 크리톤, 파이돈(박종현 역주, 서광사, 2003)은 분량이 많고 쉽게 읽히지 않는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를 처음 시작하는 사람이라면 이종훈이 편역한 소크라테스의 삶과 죽음이 좋다. 이 책은 가장 최근에 번역된 책으로 소크라테스의 변론크리톤만을 알기 쉽게 정리하고 요약해 준다. 플라톤의 네 대화편을 모두 읽는 것이 좋지만 원전에 부담을 느끼는 독자에게 입문서로 적당한 분량과 내용을 갖추고 있다. 1소크라테스의 변론1, 2차 변론과 최후 진술을 모두 담고 있으며 2크리톤은 크리톤이 면회와 탈옥을 권유하는 내용과 소크라테스가 약속을 지켜야 하는 이유를 주장하는 내용 그리고 아테네 법률의 논고를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제자 플라톤이 스승인 소크라테스의 이야기를 대화형식으로 기록했기 때문에 당시의 재판과정과 소크라테스의 논리만을 담고 있다. 마치 동전의 한 면만을 보는 것과 같다.

박홍규는 소크라테스 두 번 죽이기에서 민주주의 사회였던 고대 그리스에서 민주주의에 반하는 언행을 한 소크라테스의 반민주적 행위는 응당 비판받아 마땅하다.”라고 말한다. 소크라테스의 언행을 플라톤과 전혀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크세노폰의 소크라테스 회상과 호메로스, 소포클레스의 저작 그리고 민주주의에 관한 투키디데스의 전쟁사, 헤로도토스의 역사등 충실한 자료 분석을 통해 독자들을 설득한다. 저자는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민주주의라는 관점에서 평가한다. 소크라테스 재판에 대해 우리가 알아야 할 재판 제도와 방식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는 이 책은 그리스 민주주의가 어떻게 전개 되었는지 꼼꼼하게 살펴보고 소크라테스에 대해 구체적인 분석을 시도한다. 소크라테스의 삶과 죽음의 의미는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오리일 수도 있고 토끼일 수도 있는 그림처럼 소크라테스 역시 위대한 철학자일 수도 있지만 궤변론자일 수도 있다.

이렇게 다양한 관점과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좀 더 다양한 철학자들의 생각을 들어보자. 오가와 히토시는 철학의 교실을 통해 열 네 명의 철학자를 소개한다. 하이데거와 헤겔, 칸트를 비롯해서 마르크스, 사르트르, 니체에 이르기까지 주로 현대 철학자들이 직접 등장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철학교실에는 고등학생과 직장인, 주부까지 모여 수업을 듣는다. 이 책에 등장하는 철학자들은 자신의 핵심적인 철학 사상을 알기 쉽고 간략하게 설명해준다. 대화 형식으로 이루어져서 이해하기 쉽고 요점 정리까지 해 주는 것이 이 책의 특징이다. 어려운 철학 개념과 용어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해도 인간과 삶에 대한 다양한 철학자들의 관점을 파악할 수 있는 책이다.

2009년 용산 참사를 바라보는 여러 개의 시선이 존재한다. 철거민의 입장, 경찰의 입장, 국민의 입장, 정부의 입장이 서로 다르다. 그 죽음에 대한 원인도 책임도 제각각 다르게 말한다. 2,500여년 전 소크라테스의 죽음처럼 말이다. 하나의 사물, 하나의 사건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시선과 주장 속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 하나의 시선이 아니라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통찰력과 인간과 사회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다. 우리들 주변에는 그런 일이 또 없는지 잘 살펴보자. 생각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 생각이 내가 누구인지를 말해준다. 생각의 힘을 기르면 다양한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갖게 된다. 고정관념을 버리고 타인과 세상을 살펴보자.

 

120312-023~02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