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정신의 지도 - 당신이 지극히 정상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발칙한 정신분석학
만프레드 뤼츠 지음, 배명자 옮김 / 21세기북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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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과의사가 수술 방법을 배우려면 2년이 걸린다. 그리고 수술을 하지 말아야 할 때를 아는 데에는 20년이 걸린다. - P. 9

인간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특히 인간의 정신에 관한 한 아무도 정확히 들여다 볼 수 없는 것이 아닌가 싶다. 사람은 누구나 육체와 영혼이 조화를 이루는 건강한 삶을 기대한다. 하지만 기계도 고장이 나듯이 나약한 인간의 몸과 마음은 때때로 이상이 생긴다. 워낙 정교하고 복잡하게 진화해 온 탓이기도 하고 문명이 발달하면서 점점 더 인간의 육체는 약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특히 인간의 정신을 관장하는 뇌는 말할 수 없을 만큼 예민하고 신비롭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세계를 뇌가 조정하는 과정에서 가끔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렇게 인간의 영혼을 다루는 정신과의사이자 심리치료사인 만프레드 뤼츠의 『위험한 정신의 지도』의 원제는 ‘Irre!(미쳤다!)’이다. 이 말은 두 가지 의미를 함께 내포한다. 정신이 나갔다는 의미로도 사용되기도 하지만 정상의 범주에서 벗어난 양극단을 모두 의미한다. 중의적 의미를 내포하기 언어 유희적 성격을 띤 제목이다. 심리학 서적에 어울릴 것 같지 않다. 하지만 저자는 이 한 마디 말로 ‘평범’한 사람들이 ‘미친’ 사람들보다 얼마나 더 위험한지 미쳤다는 것의 범위와 한계는 무엇인지를 묻고 있다.

시대에 따라 그리고 과학과 의학의 발달에 따라 정신병에 대한 인식도 달라진다. 그렇다면 정상인이 더 문제가 아닐까? 이런 도발적인 질문으로 시작되는 만프레드 뤼츠의 정신병 이야기는 외람된 말이지만 재미있다. 정상에서 벗어난다는 것을 결코 반가워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정상에서 벗어난 특별함을 원하기도 한다. 우리가 정신병으로 분류하는 특성을 가진 사람들이 무조건 위험하거나 나쁜 사람들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정신병에 대한 지나친 혐오가 공포를 가지고 있다. 왜 그럴까? 그것은 몸이 아픈 것과 다른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 아닐까. 인간은 여전히 알 수 없는 미래와 보이지 않는 세계 때문에 절망한다.

그러나 저자는 인간의 정신세계를 한 권의 책에 담아내려는 대담한 시도를 한다.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많은 관심을 갖고 연구되어온 분야가 바로 인간의 영혼이다. 보이지 않고 만질 수 없는 세계는 실험과 관찰이 거의 불가능하다. 그만큼 발전 속도가 더디다. 저자는 이런 세계를 ‘웃음’으로 극복한다. 거시적인 안목에서 보면 우리 주변에는 골빈 사람들이 훨씬 많다는 주장이다. 극히 정상적인 정신박약자들을 비롯해서 수많은 편견과 아집, 극단적인 이기심을 가진 사람들을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정말 문제는 정상인이라는 저자의 말에 공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미치도록 정상적인 사람들(‘스탠더드패스’ - 작가가 사이코패스를 빗대어 만들어낸 신조어), 골빈 사람들이 우리의 삶을 결정하고 우리의 삶을 지옥으로 만든다. 사람들은 늘 비범한 인물을 기대하지만 언제나 평범한 인물을 얻을 뿐이다. - P. 61

이 말에 공감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서글프다. 특별한 영웅을 원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삶을 지옥으로 만드는 미치도록 평범한 사람들 때문에 현실은 요지부동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자신의 치료법 즉, ‘만프레드식 치료법’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정신병을 소개하거나 치료하는 데 중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정신질환에 대한 잘못된 편견과 상식에 대한 도전을 시도한다. 유쾌한 문장과 발랄한 상상력 재치있는 표현으로 다소 무거울 수 있는 주제를 가볍고 즐겁게 만는 책이다. 후반에서 보여주는 자신만의 치료법은 특수한 비법을 내놓았다기 보다는 현상에 대한 정확한 분석과 사람들이 가진 정신병에 대한 편견을 걷어내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우리는 정상인가? 그렇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어느 부분이 얼만큼 잘못 됐는지도 모르는 것은 아닐까? 이 책을 읽는 동안 독자들은 자신의 현재와 과거 그리고 미래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저자의 말대로 정신과의사들이 행복을 보장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스스로 점검하고 타인을 돌아보는 과정에서 ‘위험한 정신’의 신호를 감지할 지도 모른다. 정상이다, 미쳤다라고 하는 말 속에 숨은 뜻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정신분석학의 갖고 있는 모순과 위험을 포착할 수 있을 것 같다.

정신과의사들이 행복을 보장하지는 못한다. 독일 철학자 오도 마르크바르트의 말이 여기에도 적용된다. “인간이 무의미하다고 버린 것은 늘 의미가 있다.” 만약 전국의 조언자들과 삽화가들이 인간의 정신과 심리에 대해 멈추지 않고 중얼거린다면 언젠가는 이 영역에서도 올더스 헉슬리Aldous Huxley가 전체 의학에 경고했던 일이 실제로 벌어질지도 모른다. “의학이 너무 발전해서 건강한 사람이 아무도 없다.” - P. 269

인간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얼마나 될까. 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의 극히 일부분이라도 우리는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걸까. 끝없이 이어지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구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여전히 인간의 생각과 행동은 변화하고 있는데 우리의 고민과 연구 방법, 치료 방식은 정체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싶어진다. 상황에 따라 급변하는 사회에서 인간은 얼마나 지치고 힘든 영혼을 달래가며 살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그래서 ‘미쳤다’는 말은 병으로 진단할 때 사용하는 의미를 이미 오래 전에 벗어난 것인지도 모르겠다.

만약 정상인이 문제라는 이 책의 명제에 당신도 동의한다면 바로 당신 때문에 인류는 희망이 있다. - P. 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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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치보는 한국여자 - 우리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상의 심리학
문은희 지음 / 도서출판 니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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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부터였을까, 여자와 남자가 달라진 때가. 아니, 처음부터 전혀 다르게 만들어진 건 아닐까? 경험적으로 여자와 남자가 다르다는 것은 모두 안다. 이론적 바탕도 논리적 설명도 필요없다. 선입견일 수도 있지만 생물학적 지식보다 선험적 인식이 그것을 증명한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결정된 성의 차이 즉, 남자와 여자라는 이름을 평생 간직하고 살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이런 생물학적 성(sex)과 사회문화적 성역할에 의해 자신이 인식하는 성(gender)은 차이가 많다. 눈에 보이는 차이와 보이지 않는 차이만큼 간격이 큰 sex와 gender.

  세상의 모든 여자는 우리의 어머니이고 누이가 아닐까 싶다. 여자를 무조건 사회적 약자로 분류하기에는 문제가 있지만 차별적 시선과 의식이 남아있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문화적 차이 때문에 남자와 전혀 다른 존재로 인식되는 여성의 역사는 야만의 역사라고 볼 수도 있다. 차이와 차별을 구별하지 못하고 다름과 틀림을 인식하지 못하는 편협한 시선 때문에 우리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고 있는가. 과격한 페미니스트의 주장에 모순과 문제가 많긴 하지만 그들이 견뎌온 굴종의 시간과 아픔을 생각하면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다만 여성의 문제를 감정적, 온정적 태도에 의지해서 안 된다는 것은 분명하다. 여성학은 이제 하나의 학문으로 자리 잡아 여성의 정체성과 사회적 역할 등에 깊이 탐구한다. 본격적인 여성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럽게 남자와 다른 여자의 심리에 대한 관심으로 나아간다.

  통일 운동과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 되어버린 문익환, 문동환의 여동생 문은희. 오빠들에 가려 유명인사라고 볼 수는 없지만 문은희는 이 땅의 여성들의 상처와 아픔을 보듬어주고 치유하는 일에 일생을 바친 듯하다. 의대에 입학했지만 결국 심리학 박사로 끝난 특이한 이력이 주목을 끈다. 저자는 할머니라고 불릴 만한 나이가 되었지만 그의 목소리는 맑고 푸르다. 그의 영혼은 청년을 보는 듯하다. 생물학적 성(sex)이 아닌 사회적 성(gender)이 여성들에게 어떤 의미이며 또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한 가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부드럽게 알려준다.

  ‘우리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상의 심리학’이라는 부제를 단 문은희의 『눈치보는 한국여자』는 사단법인 알트루사(국제여성단체)의 집단상담모임에서 심리 치유를 목적으로 쓴 글들을 모았다. 이 책에서 특이한 점 한 가지는 여성을 ‘니’라고 표현한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언니, 어머니, 할머니, 아주머니’ 등 여성명사에 ‘니’라는 접미사가 흔히 사용된다. 한자말 대신 사용한 ‘니’가 친근하고 다정하게 다가온다. 말하자면 이 책은 니의 가슴 속에 맺힌 응어리와 니를 중심으로 한 관계 양상을 풀어낸 책이다.

  짤막한 글들이지만 결국 그 무게와 깊이에 비례하지는 않는다. 준엄한 가르침도 정교한 논리도 아닌 따뜻하고 고운 우리말의 힘을 느끼게 해준다. 이론과 합리적 근거가 없는 감정적 위로라는 말이 아니다. 순 우리말의 사용과 어려운 이론적 잣대를 들이밀지 않고도 그렇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오랜 세월에서 길어올린 지혜는 요란하지 않고 담담하다. 화려하지 않지만 멋스럽고 소박하다. 문은희의 글이 그러하다. 전체 4개의 장으로 구성하여 ‘나’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나는 여자라는 사실을 자각한다. 하지만 결국 나를 넘어서야 하며 관계 속에서 나는 완성된다. 사회적 의미를 획득하기 위해 ‘나는 시민이다’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햐 한다. 저자는 이 말의 차이와 간격들을 잘 알고 있다.

  두려워하는 사람은 앞으로 나갈 수가 없다. 자신의 분야가 어떤 곳이든 조금씩 발을 디뎌야한다. 지금까지 그 자리에 있던 사람의 허명과 똑같이 반복되는 패턴으로 자리만 지키는 것은 현상 유지가 아니라 퇴보이다. 문은희는 한국여자에 ‘눈치보는’이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눈치를 본다는 것은 ‘나’를 찾지 못했다는 말이고 다른 사람의 시선과 뜻에 따라 나의 말과 행동이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이다. 자신의 의지와 무관한 삶은 결국 불행하고 무의미한 일상을 낳는다. 한국 여자들이 눈치보는 대상은 무엇이며 무엇일까?

  출판사를 만들어 도서출판니로 이름붙였다. 책 한 권을 만드는 일이 쉽진 않겠지만 200여 페이지를 읽다가 만난 하얀 백지는 내 머리를 비우게 했다. 파본은 있을 수 있지만 전혀 표나지 않는 백지 - 그것도 무려 7페이지 - 는 읽는 사람을 황당하게 했다. 실수를 줄이고 조금 더 신경써서 책을 만드는 기회로 삼았으면 좋겠다. 책의 내용 뿐만 아니라 형식에도 신경써야 하는 이유는 때때로 형식이 내용을 규정하기 때문이다.

우리들 일상에서도 마찬가지다. 문은희가 들려주는 한국여자 이야기는 슬프다. 조금 더 자신을 찾고 스스로와 대면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상황과 환경을 탓하지 말고 그것을 앞세워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말고 일단 스스로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이유과 근거를 마련하자. 그래야 다른 사람에게 당당하게 이야기 할 수 있다. 나는 한국여자라고. 이 땅의 모든 여성들에게 던지는 희망의 메시지가 아니라 아픔과 슬픔을 달래주는 위안과 평화의 책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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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연장통 - 인간 본성의 진짜 얼굴을 만나다
전중환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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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살아나는 다윈의 ‘진화론’

  2009년은 다윈 다시보기의 해였다. 탄생 200주년이자 『종의 기원』 출간 150주년을 맞아 ‘진화론’은 새로운 르네상스를 맞은 듯하다. 다양한 학문적 논의들이 활발하게 진행되는 것은 물론이고 여전히 유효한 다윈의 진화론이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시대적 상황, 사회적 변화에 따라 아전인수식으로 오해되거나 잘못 해석됐던 이론에 대한 정치한 논의도 진행되고 있다. 과연 다윈의 진화론이 21세기에도 주목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진화론은 ‘인간’을 중심에 둔 이론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본질적인 측면에 대한 고민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도 계속될 것이다. 인간은 어디서 왔는가, 어떤 존재이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하는 고민은 철학과 종교 이전의 문제이다. 200년 전, ‘창조론’에 가려 목소리조차 낼 수 없었던 불온한 사상 ‘진화론’. 창조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종교적 관점이므로 논외의 문제이다. 역사는 진보하고 인간은 진화한다. 우리는 항상 지극히 상식적인 생각이 불온하게 비난받아야 하는 시대를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불온한 사상가 다윈의 생각은 이제 인간의 현재와 미래를 위한 새로운 이론으로 재탄생하고 있다.

  2009년에 출간된 『21세기 다윈 혁명』은 각 학문 분야의 다윈 혁명을 확인할 수 있는 책이다. 이런 흐름을 뒤이어 나온 전중환의 『오래된 연장통』은 진화심리학에 관한 국내 저자의 최초 저작이다. 전중환은 학부에서 생물학을 전공하고 행동생태학으로 석사, 데이비드 버스 교수 지도로 심리학 박사 과정을 마친 최초의 진화심리학자이다. 자, 이 책을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진화심리학 맛보기

인간의 마음은 경제적 이득을 최대화하게끔 설계되지도, 이성이 자신의 궁극적인 목표를 역사 속에서 실현하게끔 설계되지도 않았다. 인간의 마음은 인류의 진화사를 통해 지속적으로 맞닥뜨려야했던 여러 현실적인 문제들을 잘 해결하게끔 자연선택에 의해 설계된 수많은 심리 기제들의 집합이다. - P. 37

  사회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의 『통섭』을 국내 소개한 최재천은 학문 간 경계를 허물고 자연과학과 인문과학의 대통합을 이루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통섭원’을 운영하고 있다. 최재천 연구실에 행동생태학을 공부하고 전중환은 『욕망의 진화』로 국내 독자들에게 알려진 데이비드 버스 지도를 받아 진화 심리학 본격적으로 연구했다. 저자의 이러한 이력은 『오래된 연장통』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이 책은 진화심리학에 관한 입문서이다. 데이비드 버스의 저작과 다른 진화심리학 서적들을 탐독한 독자라면 읽을 필요가 없다. 하지만 진화심리학이 무엇인지, 어떤 영역을 연구하는 학문인지, 우리에게 왜 진화심리학이 필요한지, 향후 어떤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인지 궁금한 독자에게는 좋은 안내서로 추천할 만하다. 과학도서의 경우 학문 영역인 아카데미즘과 대중적인 저널리즘의 경계를 허물기가 쉽지 않다. 먼저 저자의 글쓰기 능력이 뒷받침되어야 하고, 흥미 있는 소재를 쉽고 재미있게 소개할 수 있어야 하며, 지적 호기심이나 실용적 관심을 유발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책은 이 모든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다.

  진화심리학은 인간의 모든 행동과 심리적 기제를 진화론적 관점에서 다루고 있는 학문이다. 자연선택에 의해 우리 유전자에 새겨진 본능에 충실하도록 설계된 인간의 심리를 어떻게 볼 것인지 독자들이 판단하며 읽어 볼 일이다. 이 책을 통해 스티븐 핑거의 ‘빈 서판’ 이론 등 이 분야에서 주목할 만한 이론과 성과를 확인할 수 있고 문제점까지 살펴볼 수 있다. 입문서로 손색이 없다는 것은 알기 쉬운 사례 중심의 글쓰기 방식 덕이다. 저자는 연예인과 실생활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사례를 중심으로 진화 심리학적 분석을 시도한다. 인간의 행동과 심리를 중심으로 한 학문이기 때문에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지만 재미있고 즐겁게 자신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학문적 성과를 대중들과 함께 나누는 노력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학자들의 이런 노력은 앞으로도 계속되어야 한다.


분석이 아니라 해석과 실천의 학문으로!

  이제, 과학은 현상을 분석하는 것으로 만으로는 부족하다. ‘종교는 피할 수 없는 부대 비용’에서 저자는 팔레스타인 청년들의 자살폭탄 테러를 ‘반사실적 세계’에 대한 믿음으로 해석하고 있다. 자살폭탄 테러와 종교가 상관관계 일수는 있지만 인과관계로 보기는 어렵다. 인간을 중심으로 한 진화심리학은 결국 인간과 인간의 관계 양상, 더 나아가 사회를 보는 하나의 관점을 제시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중립적인 가치와 객관적 증거를 제시하는 것이 기본적인 학문의 자세이다. 하지만 진화심리학은 가치중립적 태도로 인간의 심리와 행동을 분석하기 힘들어 보인다. 실용적 학문으로 현 정부를 슬쩍 언급하는 대목도 엿보인다. 진화심리학의 현재와 미래는 학문적 성과뿐만 아니라 현실에의 적용 가능성에 달려 있을 것이다. 실용성이 학문 발전의 기준이 되는 시대는 불행하지만 새로운 학문 분야가 외면 받지 않고 설득력을 얻으려면 필요성과 존재 이유를 분명히 해야 한다. 심리학을 대체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충만한 저자의 패기가 신선하고 활기찬 학문의 발전으로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그 풍성한 결과를 독자들은 조용히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 책은 사회생물학, 진화심리학의 성과들을 살펴보고 미래를 전망해보는 기초가 되는 책이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응원은 학문을 발전시키는 토대가 된다. 보다 다양한 분야에서 학문과 교류가 이루어지고 그 결과를 공유한다면 학문간 통섭은 자연스럽게 이루지지 않을까 싶다. 인간에 대한 이해와 믿음은 바로 이런 학문적 노력들에 기대고 있는지도 모른다.

생물학이 다른 자연과학을 토대로 한 단계 도약했듯이, 인문학이나 사회과학, 그리고 우리 삶을 둘러싼 다른 모든 지식 분과들은 진화생물학을 토대 삼아 한 단계 더 도약하게 될 것이다. - P. 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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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은 힘이 세다 - 죽어있는 일상을 구원해줄 단 하나의 손길, 심미안
피에로 페르치 지음, 윤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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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1.

  작지도 크지도 않으며 깊지도 넓지도 않은 강이 흐르면서 돌들과 부딪치는 소리. 짐승이 웅크린 것처럼 거대한 산 능선이 만들어낸 실루엣. 희뿌윰한 달빛과 드문드문 박혀 있던 몇 개의 별빛. 버드나무 벤치 아래 그 광경을 잊을 수 없겠다고 생각하던 순간 그녀가 처음 말을 건넸다. 거짓말처럼 소나기가 퍼붓기 시작했다.

장면 2.

스무 살. 강릉 경포에서 버스로 한참을 더 가다가 바닷가 민박을 보고 내렸다. 민박집 방에 비스듬이 기대면 미닫이 유리문을 통해 하늘, 바다, 모래가 3분의 1씩 보였다. 그렇게 멍하게 창밖을 바라보다 죽으려던 순간이 있었다.

장면 3.

수색중대의 겨울, 비무장지대(DMZ)의 15시간 매복 작전. 영하 20도가 넘는 칼바람과 긴장. 완전한 어둠속에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촘촘하게 밤하늘에 박혀있던 별들. 파랗게 밝아오는 새벽과 함께 철수. GOP 통문을 향해 산등성이를 오르다 뒤를 돌아본 일출. 해발 1,000고지가 넘는 능선 아래 안개는 강물처럼 일렁이고 산봉우리들은 군데군데 섬처럼 떠 있는데 붉은 해가 솟구치던 찰라, 이 순간은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살아가는 동안 기억에 남는 몇 가지 장면을 떠올린 것이 아니라 아름답고 기막힌 경험에 대한 이야기다. 그 장면, 그 상황, 그 느낌은 경험하고 있는 모든 사람마다 다르다. 개별적인 아름다움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런 ‘심미안’은 공통적인 부분이 있고 그것을 보고 느낄 수 있는 능력은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축복이다.

  사람은 누구나 아름다운 것을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태어난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아름다운 것과 추한 것을 구별한다. 이것은 유아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심리 실험을 통해 증명된 사실이다. 물론 아름다움에 관한 선호는 시각적인 것에 한정시킬 수는 없다. 아름답다는 것도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아름다움은 사물이 아니라 존재의 방식이다. - P. 23

  피에로 페루치는 <아름다움은 힘이 세다beauty and the soul>는 아름다움이 아니라 우리들의 ‘존재 방식’에 관한 책이다. 정신분석과 명상법을 통해 종합심리요법의 권위자라는 저자의 이야기는 깊고도 정교하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거나 확인할 수 있는 단순한 사실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아름다움이 갖는 특별한 효과에 대해 광범위하게 살펴보고 있는 책이다.

  저자는 우선 추상적인 개념의 아름다움에 대해 필요성과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어떻게 아름다움을 느끼고 그것은 우리들의 인생에서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확인시켜 준다. 주관적 인식을 토대로 한 개별적 취향이 아름다움은 아닐까?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아니, 아름다움을 통해 우리들의 삶을 이야기하고 싶어한다. 아름다움에 관한 책이 아니라 사람과 인생에 관한 책인 것이다.

아름다움을 즐기기 위해서 교양이 있거나 똑똑할 필요는 없다. 종종 교양이나 지성이 도움이 되기는 하지만. 미학적 경험이 강하고, 진실되고,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려면 오히려 자신의 판단에서 자유로워져야 한다. 아름다움과 점차 친밀해지면서 자신과의 접촉을 계속하는 것이 중요하다. - P. 95

  사실 정신분석, 명상, 심리 등은 모두 인간의 마음을 알고자 하는 호기심에서 비롯된다. 저자는 아름다움이라는 도구를 통해 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을 보여주고 있다. 아름다움의 힘은 무엇인지 살펴보는 것이 이 책의 시작이다. 자아를 발견하는 과정, 치유와 구원, 관계와 공감, 인식의 창이라는 장들을 통해 저자는 독자들에게 조용한 명상의 시간을 제공한다.

  마치 혼자 산책을 하며 눈에 보이는 것들에 대해 생각하고 미소 지으며 아름다운 삶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을 마련해 주는 듯하다. 나는 누구이며 아름다움은 무엇인가. 영혼과 무의식의 세계에 신비한 힘을 가져다주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호소하는 듯하다.

감정이 승리하면 우리는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된다. 반면에 이성이 승리하면 냉혹하고 단절된 사람이 될 위험이 있다. - P. 273

  나는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지만 상처받지 않기 위해 본능적으로 이성에 기대게 된다. 아름다운 것이 감정적인 것이라는 말은 아니다. 다만 이성이 냉혹하고 단절된 사람을 만들기 쉬운 것처럼 보이는 아름다움과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 사이에는 넓은 간극이 존재하는지도 모르겠다.

  촛불을 켜 놓은 채 조용한 음악을 들으며 나를 돌아보고 세계를 관찰하는 일이 아름다운 명상의 시작은 아닐까. 비밀스런 의식이나 환상적 종교체험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에서 나를 돌아보고 지극한 아름다움을 통해 맑은 영혼을 가꾸어가는 일이 중요하다. 그것은 바로 지금 이 순간에 시작되어야 한다.

예술은 ‘경험의 절정’ 혹은 ‘몰입’으로 쉽게 인식을 확장시킨다. 또 예술은 학습 동기를 자극한다. 협동심만큼 독립심도 키워준다. 사회성을 향상시키고, 분석과 통합 같은 지적 능력과 문제 해결 능력을 훈련시켜준다. - P. 280

아름다움과 지식이 연관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또 다른 예가 있다. 바로 신념이다. 신념은 아름답다. 신념은 아주 중요하고, 많은 사람의 인생에 도달할 수 있고, 사람들을 발전시키기 때문이다. 신념은 문명의 안내자다. - P. 281


  예술만큼 아름다운 것이 신념이다. 신념만큼 위험한 것도 없지만 영혼을 팔아 개인적 이익이나 현실적인 욕망을 얻는 사람만큼 불쌍한 사람이 있을까. 책을 읽고 나서도 아름다움의 힘을 실감하거나 심미안의 중요성을 인식한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것을 지킬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했다. 무엇이 아름답고 그렇지 않은 지는 누구나 안다. 다만 그것이 사라져가는 현실, 우리 안의 건조한 바람이 문제는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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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재구성
하지현 지음 / 궁리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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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의 진정한 죽음은 망각이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질 때 존재는 소멸하고 만다. 육체적 죽음과 별개로 사람들 사이의 관계와 의미망에서 잊혀지면 그 사람은 비로소 더 이상 이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된다. 거꾸로 살아있다고 해도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지만 어느 누구와도 관계를 맺고 있지 않다면 그 사람을 온전한 사람으로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이처럼 우리들 삶에서 타인과의 관계는 나의 존재 의미를 확인하고 또한 정체성을 확인하는 첫 번째 단계가 되기도 한다. 가족, 학교, 직장, 지역사회, 동호회, 각종 커뮤니티 안에서 자신의 위치와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곧 한 사람의 삶이고 그 사람의 정체가 된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보다도 ‘관계’를 중요하게 여긴다. 사람은 누구나 가족이나 친구와 같은 1차적 관계도 있고 직장동료 같은 사회적 관계도 맺고 있다.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관계가 없다. 많은 사람들은 이 관계 안에서 충만한 사랑과 행복을 찾기도 하고 인생의 비극을 맛보기도 한다.

  하지현의 『관계의 재구성』은 바로 이런 관계들을 조망해 보는 책이다. 복잡하고 어려워 보이는 관계망 속에서 절대 빠져나올 수 없는 우리의 삶은 큐브의 한 조각과 같다. 상하, 좌우 서로 다른 색을 맞추고 정확한 위치를 찾아 제 몫을 해내야 한다. 변신로봇처럼 대상과 상황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신하기도 한다. 페르소나를 통해 사회적 관계가 유지되기 때문에 힘겨울 때가 많다. 저자는 우리 주변에서 피할 수 없는 관계 양상들을 점검하고 그 관계의 특징들을 면밀하게 검토한다. 상처받는 이유와 문제의 원인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독자들은 자신의 상황이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다.

  먼저 그 우리가 맺고 있는 관계들을 살펴보자. 우리 인생의 출발인 부모와의 관계다. 유년기에 맺은 부모와의 관계는 일생을 지배한다. 최초의 신뢰 대상이며 세상을 보는 창의 역할을 하는 부모는 나의 의식을 형성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특히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어머니와 딸의 관계는 가장 중요한 인간관계의 기초를 형성한다. 형제라는 거울을 통해 다양한 페르소나를 익히고 친구를 통해 비밀을 공유하며 나의 또 다른 자아를 확인한다. 성장한 후에는 결혼을 통해 부부라는 인생의 가장 중요한 관계를 형성한다. 인생의 주연에서 조연으로 밀려나는 중년에 일어나는 제 2의 사춘기는 현실의 벽을 인정하고 남은 후반생을 준비하는 기간이다.

  이렇게 우리는 일생을 살면서 사랑, 공감, 후회, 상실 등 다양한 감정을 통해 기쁨과 행복, 좌절과 절망을 경험한다. 이 모든 과정을 통해 한 인간은 성장하며 삶에 대해 깊은 통찰력을 얻게 된다. 따라서 ‘관계’는 우리들이 살아가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의 시작이며 결과이기도 하다. 저자는 이 관계와 감정들을 하나씩 풀어본다. 상황에 따라 또는 나이에 따라 어떤 감정이 일어나는지 그 관계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지 확인해준다. 우리는 저자의 이야기를 들으며 미처 생각해보지 못한 부분들을 점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정신과 의사인 저자가 이 문제를 풀어가는 도구로 사용한 것은 ‘영화’다. 그는 영화감독이었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았다고 밝히고 있다. <굿 윌 헌팅>, <캐치 미 이프 유 캔>을 통해 유년시절 부모와의 관계가 한 인간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확인하고 <스타워즈>와 해리포터> 시리즈를 통해 아버지와 아들의 정체를 밝힌다. <냉정과 열정 사이>, <봄날은 간다>는 사랑과 돌봄의 차이를 밝히는 도구가 되며, <나비효과>, <박하사탕>을 통해 후회라는 감정을 다룬다. <마이너리티 리포트>와 <아들의 방>은 영원한 이별과 살아남은 자의 슬픔인 상실이 주는 고통을 말해준다. 이 밖에도 다양한 영화 속의 관계를 빌려 실제 상황에서 벌어질 수 있는 다양한 관계 양상을 설명한다. 때로는 동일시를 통해 또 때로는 감정이입을 통해 울고 웃었던 영화들을 재해석하는 재미는 이 책이 주는 특별한 즐거움이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항상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내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돌아보고 앞으로 살아가면서 관계 맺을 사람들에 대해 간접 경험을 해 볼 수 있는 책이다. 비록 영화 속 인물이지만 또 다른 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거나 유사한 상황을 맞이하게 될 지도 모르는 일이다. 책을 읽는 동안 관계 맺고 있는 모든 주변 사람들을 생각해 보자. 복잡한 수학 문제를 하나씩 풀어나가듯 그 원리와 근본적인 대책을 생각해 보는 것은 우리들 인생에서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나를 알고 타인과의 관계 양상을 파악하면 주어진 숙명을 이해하고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관계를 맺어나갈 수 있는 힘을 얻게 될 것이다.


090828-0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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