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오게네스와 아리스토텔레스
박홍규 지음 / 필맥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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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서양의 철학자는 지금의 우리들과 전혀 다른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지식과 학문의 상대성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그들의 생애와 사상은 오롯이 박제된 철학에 불과하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에게 가장 강력한 영향을 미치며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되는 사유의 단초를 제공하는 철학자들을 우리는 외면할 수 없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이후에 모든 철학의 근간이 되어 수많은 해석과 분석을 낳았다. 동양의 공자와 맹자 그리고 노자처럼 문제적 철학자들의 사상은 세계를 바라보는 창문의 역할을 했으며 인류 역사의 사상적 토대를 제공해왔다.

그러나 세계의 철학사는 그들의 재해석에 머물러있다는 비판을 가하는 사람도 있다. 과연 그런가? 인류의 지난한 역사, 과학문명의 발달은 새로운 세계와 인간에 대한 끝없는 의문을 가져왔고 그것을 해명하는데 노력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력과 자본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아직도 왜곡되고 편협한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자명한 현재적 삶이 되었지만 더 나은 삶을 꿈꾸는 사람들의 희망은 여전히 미래를 위해 준비되어 있다.

사상적 은사 중 한 사람이 되어 준 박홍규의 『디오게네스와 아리스토텔레스』는 또다시 기존의 질서와 관성적 사고에 제동을 건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스승이며 서양철학의 중심축인 아리스토텔레스를 디오게네스와 견준다는 사실 자체를 통념상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러나 저자는 디오게네스를 ‘자유’의 철학자로 아리스토텔레스를 ‘예속’의 철학자로 선언하며 그들의 철학을 비판적 시선으로 꼼꼼하게 분석한다.

세계를 정복한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필요한 것을 묻자 햇빛이나 가리지 말고 비키라고 말한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스스로를 개에 비유했다. 반면에 아리스토텔레스는 국가, 정의, 정치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하는 철학자다. 두 사람은 삶의 방식과 후대에 미친 영향이 비교될 수 없을 정도로 차이가 난다. 그래서 저자의 비교는 다소 억지스러워 보일 수도 있다. 대표적 저작을 통해 디오게네스의 철학을 논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뚜렷한 흔적을 남긴 철학자도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의 목소리는 선명하고 두 철학자를 비교하는 동안 우리가 간과했던 부분들을 다시 생각해 보는 기회를 제공하는 책이다.

『정의란 무엇인가』의 열풍을 어떻게 볼 것인가는 차치하고서라도 이 시대의 ‘정의’에 대해서는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하는 것이 아닐까? 한 사회가 지향하는 목표가 무엇인지 합의되지 않은 채 살아남기 위해 치열하고 경쟁하고 오로지 ‘돈’이 꿈이 되어버린 시대의 비애는 단순히 감상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민주시민으로서 행복을 추구하고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한 근본적인 고민은 윤리 시간에 외운 철학자들의 사상을 암기한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는다.

저자의 고민도 여기에서 출발한다. 여전히 정의롭지 못한 사회에서 살아가야하는 시민의 슬픔이 묻어 있다. 포스터에 쥐, 불온한(?) 사상이 적힌 책, 나와 다른 생각과 주장들 때문에 잡혀가는 나라의 국민으로 살아야 하는 아픔으로부터 이 책의 고민은 시작된다. 민주주의의 원류로 이해되는 폴리스의 사회와 정치 그리고 그 시대의 사상가들을 살펴보고 디오게네스의 삶과 사상을 복원한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라는 인물을 탐구하고 그의 국가, 정의, 정치에 관한 사상적 근원을 탐구한다.

이 책을 통해 저자는 두 철학자를 비교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재적 관점에서 당대를 비판하고 당대의 사상으로 현재를 고찰한다. 하나의 사상은 특별한 엘리트의 창조적 산물이 아니다. 사회와 역사적 존재로서 나와 너 그리고 우리를 통해 만들어지는 하나의 세계 해석 방법이다. 디오게네스와 아리스토텔레스는 기원전 아테네에서 살아가는 방식이 달랐고 인간과 세계에 대한 해석이 달랐다.

비교될 수 없을 것 같은 두 철학자가 비교되는 것은 그들의 사상이 보여주는 간극만큼이나 현실세계의 비극을 반증한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서양철학사에서 주목받지 못하는 디오게네스에 대한 관심을 가질 필요는 없다. 저자는 디오게네스라는 철학자에 대한 오해와 숨겨진 그의 철학사상을 밝히는데 목적을 두고 있지 않다. 『소크라테스 두 번 죽이기』, 『플라톤 다시보기』, 『그리스 귀신 죽이기』 등을 통해 보여준 것처럼 우리 굳게 믿고 있는 지식과 사상에 대해 의심을 가져보자는 것이다. 이미 잘 알려진 사실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온 것들이 과연 모두 진실일까?

2,500여 년을 거슬러 저자와 함께 시간여행을 하다보면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을 돌아보게 된다. 짐작도 가지 않는 시간동안 인류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서양의 철학자들과 그들의 사상을 조금 더 깊이 있게 들여다보고 우리들의 삶을 성찰하는 일은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기 위한 또 하나의 중요한 의무는 아닐는지.

110327-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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