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법을 만나다 - 예술의 자유와 법의 구속을 말한다
박홍규 지음 / 이다미디어 / 201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법과 예술은 삶의 갈등이라는 동일 현상을 함께 다루고, 위대한 예술 작품은 법이 지향해야 할 인권의 신장을 지향한다. 그런 예술이 우리에게 없는 것은 예술가들의 사고와 경험 및 시야가 좁기 때문이고, 사회 전반의 지적 수준과 폭, 법치가 후진성을 띠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인권의식이 낮은 탓이다. - P. 44

  우리 사회에서 예술가는 정치가나 법률가의 역할과 활동범위보다 좁다. 이렇게 단정적으로 말하는 것은 예술가들에 대한 비난과 냉소를 넘어 모욕에 가깝다. 자유롭게 사유하고 활동할 수 없는 사회적 상황과 역사적 맥락을 탓하기 이전에 기존 질서에 온몸으로 저항하는 몸짓이 부족했다는 점을 반성해야 할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하지만 누구나 할 수 생각과 아무나 할 수 있는 행동을 하는 것은 예술이 아니다.

  적어도 예술은 네모난 틀에서 벗어나 규범과 기존 질서에 의문을 던지고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미적 성취를 이뤄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인간이 본능적으로 미의식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하지만 순수한 미적 감동은 오로지 자연과의 조화로움에서 기인한다. 순응적 질서와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이끌어 내는 안일한 역할은 조금만 노력하면 누구나 도달할 수 있는 경지가 아닐까. 기술이 아닌 예술은 모방이 아닌 창조여야 하며 새로운 질서와 낯선 아름다움을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사람이 살아가는 사회는 완고한 질서와 규범이 자리 잡고 있으며 예외적인 일탈 행동과 틀에서 벗어난 생각을 좀체로 용납하지 않는다. 마치 학교교육처럼. 하지만 예술가는 바로 이런 틀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무질서한 세계에 새로운 질서를 부여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따라서 법과 예술은 상충될 수밖에 없는 운명에 놓여 있는 것이다. 박홍규의 『예술, 법을 만나다』는 화해할 수 없는 둘의 관계를 조망하는 책이다.

  『예술, 정치를 만나다』에서 예술가도 사회를 떠나 살 수 없는 정치적 인간임을 확인한 저자가 이번에는 전공인 법과 예술의 관계를 파헤친다. 평소 폭넓은 인문학적 사유를 바탕으로 하나의 주제를 꼼꼼하게 짚어나가는 저자 특유의 솜씨를 확인할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은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예술과 법의 충돌을 이야기한다. 자유분방해야 하는 예술과 빈틈과 오차를 허용하지 않을 것 같은 법은 한 이불을 덮을 수 없다. 법과 예술의 행복한 만남은 애당초 불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책의 목적은 예술과 법의 조화로움을 추구한다. 두 세계는 불행하게 만났고 지금도 여전히 서로의 영역에 대한 이해 부족과 자신의 영역에 대한 고집으로 불편한 관계일 수밖에 없다. 이 불편한 공존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 것인지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저자가 가진 예술에 대한 깊은 이해와 인문학에 대한 해박한 지식은 이 책을 단순히 예술과 법의 충돌과 화해에 그치지 않고 즐거운 예술사, 폭넚은 인문학의 성찬으로 만들고 있다.

  프롤로그에서 정의의 여신상과 법의 정의를 일갈하고 1, 2장에서 법과 예술의 행복한 그리고 불행한 만남을 역설한다. 이후에는 영화 속에 나타난 법의 모습을 살펴본다. 인권과 영화, 재판 영화는 물론 현실에서 법으로 금지된 영화에 이르기까지 현실의 법과 영화 속의 법을 함께 돌아본다. 그리고 호메로스에서 괴테, 19세기, 20세기 문학과 법을 살펴본다. 음과 법, 미술과 법은 물론이다. 이렇게 크게 영화, 문학, 음악, 미술과 법의 관계를 고찰하는 동안 독자들은 자연스럽게 예술이 인간을 떠나 존재하기 힘들 듯이 인간과 가장 멀고도 가까운 법 또한 예술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결국 인간이 법의 테두리 안에서 사는 존재이고 예술은 그 인간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법은 예술의 영원한 주제이면서 인간의 존재 양상을 살피는 도구가 된다. 현실적으로 억압의 도구가 되고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며 예술가들의 상상력을 제한하는 부정적 역할을 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인간과 법의 관계를 살피고 억압과 구속의 고리를 끊고 어두운 이면을 드러낼 수 있는 것 또한 예술의 중요한 역할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한없이 자유로운 사회를 꿈꾼 예술가가 없듯이 법과 질서를 통해서만 행복한 사회가 이루어질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준다. 조화와 균형은 기준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으로 우리를 재단한다. 그것이 예술이든 법이든 마찬가지일 것이다. 예술은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유희 본능에서 출발한다. 일차원적인 욕망을 통제하고 질서를 부여하는 법은 그 무분별하고 이기적인 욕망을 제한한다. 그래서 어쩌면 서로 다른 얼굴을 한 두 세계가 공존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두 세계는 끊임없이 서로를 욕망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자유와 구속의 화려한 이중주, 위험한 줄타기가 바로 예술과 법이 만날 수 있는 자리가 아닐까 싶다.

법학이란 기본적으로 어떤 다툼에 어떤 법을 적용하는 기술에 불과하다. 말자면 컴퓨터의 키보드 같은 것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그 기술을 사용하기 전에 가져야 될 가치 판단의 능력이다. 그런데 그 판단 능력은 법학이라는 기술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법이 다루는 여러 현상에 대한 공부로부터 얻어질 수 있다, - P. 168

그래서 저자는 법을 이렇게 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대단한 권력을 가진 법률가들에게 던지는 통렬한 자기 반성의 촉구가 아닐 수 없다. 기술자가 아니라 인간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존엄을 가지려면 법학 지식이 아니라 그 법이 다루는 인간과 현상에 대한 깊은 고뇌와 폭넓은 지식으로부터 출발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대한민국의 만연한 법치(?)의 정신을 진정한 법의 역할과 권리로 착각할 지도 모른다.

 “모든 규칙, 모든 규범은 죽음을 낳는다.”(앙소르) - P. 426


100510-04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