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보는 한국여자 - 우리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상의 심리학
문은희 지음 / 도서출판 니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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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부터였을까, 여자와 남자가 달라진 때가. 아니, 처음부터 전혀 다르게 만들어진 건 아닐까? 경험적으로 여자와 남자가 다르다는 것은 모두 안다. 이론적 바탕도 논리적 설명도 필요없다. 선입견일 수도 있지만 생물학적 지식보다 선험적 인식이 그것을 증명한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결정된 성의 차이 즉, 남자와 여자라는 이름을 평생 간직하고 살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이런 생물학적 성(sex)과 사회문화적 성역할에 의해 자신이 인식하는 성(gender)은 차이가 많다. 눈에 보이는 차이와 보이지 않는 차이만큼 간격이 큰 sex와 gender.

  세상의 모든 여자는 우리의 어머니이고 누이가 아닐까 싶다. 여자를 무조건 사회적 약자로 분류하기에는 문제가 있지만 차별적 시선과 의식이 남아있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문화적 차이 때문에 남자와 전혀 다른 존재로 인식되는 여성의 역사는 야만의 역사라고 볼 수도 있다. 차이와 차별을 구별하지 못하고 다름과 틀림을 인식하지 못하는 편협한 시선 때문에 우리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고 있는가. 과격한 페미니스트의 주장에 모순과 문제가 많긴 하지만 그들이 견뎌온 굴종의 시간과 아픔을 생각하면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다만 여성의 문제를 감정적, 온정적 태도에 의지해서 안 된다는 것은 분명하다. 여성학은 이제 하나의 학문으로 자리 잡아 여성의 정체성과 사회적 역할 등에 깊이 탐구한다. 본격적인 여성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럽게 남자와 다른 여자의 심리에 대한 관심으로 나아간다.

  통일 운동과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 되어버린 문익환, 문동환의 여동생 문은희. 오빠들에 가려 유명인사라고 볼 수는 없지만 문은희는 이 땅의 여성들의 상처와 아픔을 보듬어주고 치유하는 일에 일생을 바친 듯하다. 의대에 입학했지만 결국 심리학 박사로 끝난 특이한 이력이 주목을 끈다. 저자는 할머니라고 불릴 만한 나이가 되었지만 그의 목소리는 맑고 푸르다. 그의 영혼은 청년을 보는 듯하다. 생물학적 성(sex)이 아닌 사회적 성(gender)이 여성들에게 어떤 의미이며 또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한 가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부드럽게 알려준다.

  ‘우리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상의 심리학’이라는 부제를 단 문은희의 『눈치보는 한국여자』는 사단법인 알트루사(국제여성단체)의 집단상담모임에서 심리 치유를 목적으로 쓴 글들을 모았다. 이 책에서 특이한 점 한 가지는 여성을 ‘니’라고 표현한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언니, 어머니, 할머니, 아주머니’ 등 여성명사에 ‘니’라는 접미사가 흔히 사용된다. 한자말 대신 사용한 ‘니’가 친근하고 다정하게 다가온다. 말하자면 이 책은 니의 가슴 속에 맺힌 응어리와 니를 중심으로 한 관계 양상을 풀어낸 책이다.

  짤막한 글들이지만 결국 그 무게와 깊이에 비례하지는 않는다. 준엄한 가르침도 정교한 논리도 아닌 따뜻하고 고운 우리말의 힘을 느끼게 해준다. 이론과 합리적 근거가 없는 감정적 위로라는 말이 아니다. 순 우리말의 사용과 어려운 이론적 잣대를 들이밀지 않고도 그렇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오랜 세월에서 길어올린 지혜는 요란하지 않고 담담하다. 화려하지 않지만 멋스럽고 소박하다. 문은희의 글이 그러하다. 전체 4개의 장으로 구성하여 ‘나’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나는 여자라는 사실을 자각한다. 하지만 결국 나를 넘어서야 하며 관계 속에서 나는 완성된다. 사회적 의미를 획득하기 위해 ‘나는 시민이다’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햐 한다. 저자는 이 말의 차이와 간격들을 잘 알고 있다.

  두려워하는 사람은 앞으로 나갈 수가 없다. 자신의 분야가 어떤 곳이든 조금씩 발을 디뎌야한다. 지금까지 그 자리에 있던 사람의 허명과 똑같이 반복되는 패턴으로 자리만 지키는 것은 현상 유지가 아니라 퇴보이다. 문은희는 한국여자에 ‘눈치보는’이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눈치를 본다는 것은 ‘나’를 찾지 못했다는 말이고 다른 사람의 시선과 뜻에 따라 나의 말과 행동이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이다. 자신의 의지와 무관한 삶은 결국 불행하고 무의미한 일상을 낳는다. 한국 여자들이 눈치보는 대상은 무엇이며 무엇일까?

  출판사를 만들어 도서출판니로 이름붙였다. 책 한 권을 만드는 일이 쉽진 않겠지만 200여 페이지를 읽다가 만난 하얀 백지는 내 머리를 비우게 했다. 파본은 있을 수 있지만 전혀 표나지 않는 백지 - 그것도 무려 7페이지 - 는 읽는 사람을 황당하게 했다. 실수를 줄이고 조금 더 신경써서 책을 만드는 기회로 삼았으면 좋겠다. 책의 내용 뿐만 아니라 형식에도 신경써야 하는 이유는 때때로 형식이 내용을 규정하기 때문이다.

우리들 일상에서도 마찬가지다. 문은희가 들려주는 한국여자 이야기는 슬프다. 조금 더 자신을 찾고 스스로와 대면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상황과 환경을 탓하지 말고 그것을 앞세워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말고 일단 스스로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이유과 근거를 마련하자. 그래야 다른 사람에게 당당하게 이야기 할 수 있다. 나는 한국여자라고. 이 땅의 모든 여성들에게 던지는 희망의 메시지가 아니라 아픔과 슬픔을 달래주는 위안과 평화의 책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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