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아렌트와 토크빌을 읽었다 하는가 - 한국 인문학의 왜곡된 추상주의 비판, 비평정신 1
박홍규 지음 / 글항아리 / 2008년 8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기본적으로 토크빌의 <미국의 민주주의>와 아렌트의 <전체주의의 기원>을 읽기 위한 안내다. - P. 19

  나라 안에서 고도의 자율성을 갖는 지역사회와 집단이 존재해야 민주주의에서 자유를 지킬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자유와 자치의 인간이 존재해야 하고, 그 인간들로 자유와 자치를 추구하는 사회가 구성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자유와 자치의 인간과 사회는 자연 속에서 자연과 조화롭게 살아가야 한다. - P. 491


  첫 번째 문장과 책의 마지막 문단이다. 한 권의 책을 읽으면서 가장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설명하지 않아도 충분할 것이다. 저자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첫 문장을 시작한다. 이 책을 쓰게 된 이유나 목적을 분명히 밝히기도 하고 가장 기초적인 전제를 제시하기도 한다. 책의 마지막에서는 전체를 마무리하기도 하고 마지막 장의 정리이기도 하다. 어쨌든 첫 문장과 마지막 문단의 인상과 중요성은 책 전체를 일괄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박홍규의 <누가 아렌트와 토크빌을 읽었다 하는가>는 흥미로운 책이다. 이전에 박홍규의 사상적 배경을 알고 있거나 다른 저서를 읽어온 사람이라면 일독을 권한다. 더구나 이상 열풍처럼 우리에게 아렌트가 전해지고 그녀의 책을 접한 사람이라면 놓칠 수 없는 책이다. 나는 첫 문장에서 제시한 두 권의 책을 읽어보지 못했다. 순서대로 읽어야 할지 박홍규의 안내서로 만족할 지 망설이고 있지만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읽은 인연으로 충분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170여 년 전에 출판된 토크빌의 <미국의 민주주의>와 50여 년 전에 출판된 아렌트의 <전체주의의 기원>이 어떻게 묶일 수 있고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 현실 정치를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다. 저자는 이 두 사람의 생애와 사상 그리고 두 저서에 나타난 민주주의와 전체주의의 본질을 구체화시키고 있다. 역사적 관점에서 그들이 살았던 시대정신을 읽어내고 그들의 계급적 위치와 사상적 배경을 살펴봄으로써 두 권의 책에서 주장하는 내용을 이해하고 해석하며 우리의 현실과 비교하고 점검하는 책이다.

  들불처럼 타올랐던 광화문의 촛불이 ‘자유와 자치의 민주주의’로 어떻게 꽃 필 수 있어야 하는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진정한 민주주의라고 바라볼 수 있는지 반성적 관점에서 살펴볼 수 있는 책이다. 시대를 보는 안목과 정치를 바라보는 눈은 사람마다 다른 것이 아니다. 시민 혹은 국민으로 명명되어온 사람들의 생각과 삶의 양식은 권력자의 생각과 다를 수밖에 없었고 조작된 욕망과 가치는 세상을 미혹케 한다.

  이 책은 내게 2008년의 대한민국을 위한 망원렌즈와 같은 역할을 했다. 현실의 한 복판에서 개인이 서 있는 정치 지형도를 점검하고 정치와 경제, 사회를 통찰할 수 있는 안목은 그 기준에 따라 얼마든지 다르게 받아들여질 것이다. 전망과 성찰이라는 관점에서 박홍규의 주장과 논의는 보다 활성화되고 다양한 비판과 쟁점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박홍규는 아렌트를 번역, 소개한 이들의 실명을 거론하며 거침없이 비판하며 그들의 모호하고 추상적인 태도에 일격을 가한다. 한국 인문학의 왜곡된 자화상에 대한 도전이며 당찬 주장들이 여과없이 전개된다. 조금은 위험스러워 보이는 표현들이 특유의 논리와 일관된 주장으로 펼쳐진다. 그 모든 저자의 주장이 진리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21세기에 토크빌과 아렌트가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또 그들을 어떻게 읽어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제기로는 충분한 깊이와 반성의 기회를 제공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토크빌의 사상이 아렌트에게 얼마큼 영향을 미쳤는지 점검하고 있으며 아렌트의 보수주의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두 사람의 공통점이 우리사회를 돌아볼 수 있는 중요한 시금석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동일한 정치체제로 인식하고 있는 우매함에서 벗어나 지속가능한 미래 사회의 모습을 상상해 보기 위해서도 적절한 논의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두 사람의 생애와 사상은 물론 그들의 저서를 꼼꼼하게 읽어나가며 인용하고 비판하고 해석하며 이전의 논의들에 대한 비판을 빼놓지 않고 있다. 또한 각 장은 두 사람의 주요 저서와 핵심 개념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저자의 개인적인 독법과 두 사람의 주저에 대한 평가 그리고 현실 정치에 대한 적용 문제는 주관에 치우친 면이 없지 않다. 하지만 나에게는 존경하는 인문학자의 용기로 비춰졌다.

  평등을 중심으로 한 민주주의와 자유를 중심으로 한 민주주의는 어떻게 다른 것이며 그것이 자본주의와 결합하여 현실정치에서 실현될 때 무엇이 문제인지, 그것이 우리에게는 어떤 모습으로 드러나는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겠다. 다양한 사상가들의 예지력과 탁월한 안목을 시대를 넘어 현실의 문제를 점검하는 잣대가 된다. 두 사람에게 주목해야 하는 이유를 찾지 못하거나 하이예크처럼 민주주의는 자본주의가 낳는 것이고, 세계화에 의해 민주주의는 불가피하게 된다는 주장에 동의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은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될 것이다.

  비평정신 총서 1권으로 이 책 뒤에는 이택광과 김영민의 책들이 기다리고 있다. 기다려진다. 세상은 어떤 곳인가를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어떤 모습으로 살아지는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그들처럼 계속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080817-09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