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사적 소유, 국가의 기원 책세상문고 고전의세계 65
프리드리히 엥겔스 지음, 김경미 옮김 / 책세상 / 2007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가족 행복 시대를 내건 정동영은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 국가가 가족의 행복을 책임지겠다는 발상이 재미있다. 이 슬로건에는 일자리 창출이나 가정 경제에 국한된 문제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읽어낼 수 있지만 돈만 있으면 가족이 행복해질 수 있다는 발상이 위험해 보이기도 하다. 물론 오로지 ‘돈’ 때문에 불행할 수밖에 없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공감할 수 있는 공약이 될 수도 있겠지만 단순하게 접근할 수 없는 많은 문제들을 함의하고 있다.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19세기에 바라본 결혼과 가족은 어떤 의미였을지 잘 살펴 볼 수 있는 책이 <가족, 사적 소유, 국가의 기원>이다. ‘책세상’의 고전시리즈로 나온 이 책은 모건의 <고대사회>에 대한 엥겔스의 생각을 정리한 책이다. 역사적 관점에서 결혼과 가족의 형태가 어떤 변화 과정을 거쳤는지는 매우 중요하다. 인간과 사회를 이해하는 단서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국가의 최소 단위가 가족이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개인이 최초로 관계 맺는 사회는 가족이다. 엥겔스는 국가의 기원을 살펴보기 위해 최소 단위에 먼저 관심을 가졌다. 하지만 이 책은 전문을 번역한 책이 아니라 전체 9장 중에서 1장과 2장만을 싣고 있다. 3장부터 9장까지는 구체적이고 상세한 내용을 설명한 것에 불과하지만 제한된 분량과 시리즈의 특성을 감안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고전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토대를 마련하는 것은 결코 쉽지가 않다. 씨줄과 날줄처럼 얽혀있는 역사와 사회, 문화와 사상을 주유하는 일은 단순한 산책으로 여겨 즐겁기도 하지만 점점 복잡해지는 미로와 같이 느껴질 때도 있다.

  군혼 형태를 띤 혈연 가족은 원시 사회가 보여준 인류 최초의 결혼과 가족 제도의 모습이었다. 부모 자식 혹은 형제 자매 간의 성교 금지에서 출발한 푸날루아 가족과 대우혼을 거쳐 일부일처제로 정착하기까지 인류의 성의 역사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한 형태로 변모해왔다. 여성 중심의 모계 사회가 주류를 이루었고 자녀에게 재산 상속이 이루어질 수 없었던 시대에 비하면 결혼의 역사는 남성 권력의 강화와 여성 권위가 뒤바뀌는 상황의 연속이었다. 현재까지도 여전히 확고하게 굳어있는 가부장제와 차별적 시선들은 결혼과 가족제도의 왜곡된 변형 그리고 사유 재산 제도의 변천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18세기 계몽주의에서 물려받은 지극히 불합리한 관념 가운데 하나는 사회 발전의 초기에 여성이 남성의 노예였다는 점이다. 모든 야만인 그리고 낮은 단계와 중간 단계의 미개인, 부분적으로는 높은 단계의 미개인들의 경우에도 여성은 자유로울 뿐 아니라, 존경받는 지위에 있었다. - P. 77

  사적 소유를 부정하고 노동 해방을 꿈꾸었던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생각은 여성 문제에 대한 인식도 공유했다. 사회 발전 초기에 여성이 어떤 모습이었고 어떤 존재였는지 따져보는 일보다 중요한 것은 현실에서 여성의 모습이다. 일부일처제가 오로지 여자에게만 해당될 뿐이라는 인식은 엥겔스의 결혼과 여성에 대한 인식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실제 삶에서도 엥겔스는 부르주아적 일부일처제를 혐오했고 가족을 만들지도 않았으면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했지만 그는 신념을 행동으로 보여주었고 웅변보다 감동적인 실천이 무엇인가를 선언하듯 죽었다. 우리가 흔히 시대정신(Zeitgeist)이라고 말하는 것이 있다. 엥겔스가 살아가던 시대의 시대정신은 ‘혁명 정신’이었을 것이다. 사회의 변혁과 혼란 속에서 그것을 지켜보고 온몸으로 소용돌이의 중심에 서기도 했으며 좌절과 실패를 맛보기도 했지만 그들의 실천적 노력은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결혼과 가족 제도에 대한 견해와 그의 이론도 마찬가지이다.

일부일처제와 나란히 노예 제도가 존재한다는 것, 즉 남자의 처분에 맡겨진 젋고 아름다운 여자 노예가 존재한다는 점이 애초부터 일부일처제가 오로지 여자에게만 해당될 뿐, 남자에게는 그렇지 않다는 독특한 특성을 보여준다. 그리고 일부일처제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이러한 특성을 보인다. - P. 98

  군혼에 비해 단혼이 가지는 이익과 행복은 절반의 것이다. 현재 가장 보편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단혼은 최초의 계급적 억압을 초래했으며 노예제와 사적 소유와 함께 오늘날까지 지속되는 불합리한 제도라는 것이 엥겔스의 인식이다. 모든 진보는 상대적 퇴보이며 한쪽의 발전과 행복은 다른 쪽의 고통과 억압이라는 말은 지금 현재 우리들이 살아가는 시대 정신을 대변하는 것 같아 오래도록 가슴에 남는다. 

역사에 나타난 최초의 계급 대립은 단혼에서 남편과 아내의 적대의 발전과 일치하고, 최초의 계급 억압은 남성에 의한 여성 억압과 일치한다. 단혼은 위대한 역사적 진보 중 하나지만, 동시에 노예제나 사적 소유와 함께 오늘날까지 계속되는, 즉 모든 진보가 동시에 상대적 퇴보이며 한쪽의 행복과 발전이 다른 쪽의 고통과 억압으로 관철되는 시대를 열었다. - P. 102


071204-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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