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 했다
하완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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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매중지


뭔가 묘하게 위로가 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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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뭐랄까, 우리를 둘러싼 현실 중에서 어느 한 부분을 압축해서 보여주는 책이자, 동시에 삶의 면면을 스케치하듯 묘사하는 책이기도 하다. 간단하게 말하면 '한승태의 노동에세이', 저자가 농장에서 겪은 경험담 정도겠지만.

 

책은 꽤 두툼한 편인데(총 460여 페이지) 저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말이야, 농장에서 일 좀 해봐서 말하는 건데…" 하는 태도가 거의 없다. 전혀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오히려 "내가 돌이켜 보니 그땐 이런 오만한 생각을 갖고 있었고, 한심한 태도를 보였네."라며 성찰할 줄 안다. 특이한 점은 뭘 어떻게 하자는 혹은 해야 한다는 주장도 없다는 거다. 아니, 책을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우리가 야기하는 고통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서"(455쪽) 노력해야만 하는 게 아닌가 싶어진다. 정말 놀랍다. 고기를 먹지 말자는 것도 아니고, 외국인 노동자들의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는 것도 아니고, 음식 쓰레기를 좀 줄이자는 것도 아니고, 이익에만 눈이 멀어서 동물과 노동자의 고통을 나몰라라 하는 농장에 벌을 주자는 것도 아닌데. 어쩐지 읽다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불편하다. 저자는 서문에서 인간과 사회에 대한 발언이 "끊임없이 사람들을 불편하고 불안하게 만드는 무언가였으면 좋겠다"(9쪽)고 했는데, 그렇다면 저자의 발언은 내게 목적을 충분히 달성한 것 같다.

 

이 책을 한두 줄로 요약하는 건 내 능력 밖의 일이다. 여러 부분들이 아직도 머릿속을 맴돌고 있고 마음을 헤집고 있다.

 

"나도 그게 잘못됐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빨리 끝마치고 쉬고 싶다는 생각에 무시해버렸다."(226쪽)

"그러니까 사람들이 원하는 건 그냥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 둬라 이거야. 아, 개고기 못 먹게 해봐. 음식 쓰레기만 문제야? 농장은 말할 것도 없고 그 많은 식당들 문 닫고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 실업자 되면 나라에서 감당할 수 있어? 지들도 그걸 생각해보니까 골치 아프거든. 그러니까 그냥 내버려두는 거야."(404쪽)

 

문제는 그런 거다. 문제가 있는데 그걸 해결하려니까 다른 문제가 나오고, 그 다른 문제를 해결해 보려 하니까 또 다른 문제가 걸려 있고… 너무 복잡하고 골치 아프고 피곤하니까 그냥 내버려 두는 거다. 처음이랑 똑같다. 아니, 문제는 점점 악화된다.

 

이 책을 동물 보호의 차원에서 읽든 노동 환경의 차원에서 읽든 채식 동기 부여 차원에서 읽든 농장 현실을 탐구하는 차원에서 읽든, 어떤 시각으로 읽든 생각해 볼 지점이 다양한 책이다. 심지어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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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이 즈음이었나? 대선이 끝나고 좀 지나서였는데. 구독중이던 일간지, 주간지, 월간지, 계간지 중에서 두 개만 남기고 모두 끊어버렸다. 여러 이유가 있었다. 일단 육아 때문에 스트레스가 최고조에 달했던 시기이기도 했고, 매일 매주 매월 매계절마다 집으로 배달되는 그 모든 것들이 더 이상 기다려지지 않았다. 흡사 빚독촉을 받는 것처럼 마음이 무거웠다. 어디 가서 내 의견을 개진할 것도 아니고, 브리핑할 것도 아니고, 보고서나 논문을 쓰고 있던 것도 아니고... 그것들만 읽어도 다른 책을 볼 시간이 부족했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이 한심하고 시끄럽고 부정의한 세상의 모습을 왜 돈까지 내면서 보고 있는 건지, 갑자기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돈이 필요했다.

잡지(?) 구독 대학살에서 살아남은 두 개는 대단한 내용을 담고 있어서라기보다는, 구독 만료가 얼마 남지 않았거나 구독 취소를 해도 건질 게 없어서였다. 두 개 모두 구독연장을 했다는 게 함정이지만.

그렇게 잘 지내왔는데 최근 갑자기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모르겠는 거다. 티비도 없고 인터넷 기사도 안 보니까 진짜 도심에 사는데도 벽지에 사는 것처럼 그랬다. 신랑이 전하는 뉴스들을 듣긴 했지만 그게 좀... 아이와 관련된 사건사고거나 유럽 축구 소식, 갑질하는 사람들 소식이 전부라서 뭔가 세상이 점점 나빠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 이거 시사 주간지라도 봐야 하나, 일간지는 너무 쌓이니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전에 구독하던 주간지 두 개를 샀다. 둘 다 보려니 벅차서 둘 중 더 재밌는 것으로 구독할 심산이었다. 둘 다 별로면 말고.

<시사인>. 참 재밌게 봤었는데. 받자마자 펼쳐보던 코너가 사라졌더라. 난 <시사인>을 뒤에서부터 보는데, 그야 물론 뒤쪽에 배치된 코너를 더 좋아하기 때문인데, 근데 그 부분의 재미가 크게 줄어든 것이었다. 설마 격주로 연재되는 건가 싶어서 굳이 검색해서 다음호 목차도 살펴봤는데, 없다. <시사인> 특유의 집중 취재랄까, 끝장을 보는 특성이랄까 그런 건 여전한 듯 했다. 표지에도 실린 저 MB문건을 보라. 그러나 그걸 단독 입수한 건 참 대단하다 싶으면서도, 그 문건을 정리해서 보여주는 부분. 그러니까 기사화 한 부분이 복잡해서, 가독성이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이 느낌은 예전에도 가끔 가졌는데, ‘급하게 썼나‘ 싶은 느낌이다.

<한겨레21>. 예전엔 좀 답답하게 생각한 적도 있다. 어려운 용어를 아무렇지도 않게 써서 검색하며 읽었던 기억이 난다. 어려운 용어, 라는 것이 인터넷에서 자주 쓰는 말이나 유행어 같은 거였는데 내가 잘 모르니까 그게 참 어려웠다. 어르신들 심정 이해가 되더라. 어쨌든 그것 말고 문화 부분 컨텐츠가 좀 약한 것도 불만이었는데, 최근 호를 보니까 지난해와는 달라진 것도 같다. 문화 부분 컨텐츠가 늘었다기보다는 조금 다양해졌구나, 정도. 복병이었던 어려운 말도 이젠 괄호 안에 친절하게 설명까지 붙여놓았네. 사회적 약자의 문제를 다룬 기사들은 여전히 좋고 <한겨레21>의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두 주간지 모두 여전히 지방이나 농촌, 생태 등등의 주제는 잘 다루지 않는다. 속상하다.

최근 호를 기준으로 더 끌렸던 <한겨레21>을 구독신청했다. 청소년 자해를 다룬 특집 기사를 마저 읽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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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똑바로 마주하고 - 최현숙의 사적이고 정치적인 에세이
최현숙 지음 / 글항아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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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삶을, 타인을, 지금을, 여기를 똑바로 마주하기.
내게 그런 용기가 있었으면 좋겠네.

저자의 글은 치열하고,
단어 마다, 문장 마다 갈아넣은 느낌이 든다. 그게 무엇이든.
나도 이렇게 치열할 수 있을까? 나에 대해서.

˝(...) 최현숙은 힘을 아끼는 법이 없다. (...) 신중하지만 단호한 문장으로 이 책은 빛난다. (...) 이번에 쓰지 못하고 삼킨 말이 얼마나 많을지 훤하다. 그 모든 이야기를, 또 다른 책을, 벌써부터 손꼽아 기다린다.˝ (이다혜 작가)

나도 손꼽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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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저히 속도가 안나는, 속도를 낼 수 없는 책이다. 문장을, 상황을, 감정을 곱씹느라 내 마음도 혼란스럽다. ‘예순이 넘은 페미니스트의 글‘이라는 걸, 나는 처음 접해보는 것처럼 놀랍고 새롭고 황홀하기까지 하다. 대체 뭣 때문에?

˝나는, 멀었다.˝(40쪽)
˝자괴는 공소시효도 없이 무의식에 달라붙어 있다가, 일상을 꼬투리 삼아 느닷없이 머리끄덩이를 틀어쥐고 돌려세워, 내 면상에다 수치스러운 나를 들이미는구나.˝(47쪽)
그 밖에도, 여러 문장들에서 자꾸 걸려 넘어져 겨우 50쪽을 읽었다.

좋다기보다... 나를 보게 된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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