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는 요즘 사랑에 빠져 있다.
나이 든 남자가 사춘기 소년처럼 달떠서 연애하는 모습은 어쩐지 귀엽다. 사랑을 하는 동안은 '정말로 살아있다는 것'을 특별히 실감하는 순간이 아닐까. 앓는 소리를 하는 순간에도, 사실은 온몸으로 그 사람은 '생기'를 내뿜는다.
그 친구와 나는 성격이 정반대여서, 술자리에서 나한테 친구들이 짖궂게도 자꾸만 조언을 해주라고 난리다. 그러나 나는 남에게는 조언이나 충고를 하기 싫다. 남의 사정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사정을 모르는 남의 충고는 빗나간 조언이기 십상이다.
----------------
사랑이나 연애는 어차피 개인적인 일이다. 뜻한대로 잘 되지 않고 불확실해서 삶일 것이다. 당사자는 절실하고, 그러므로 고민한다. 그에 비해 구경꾼은 한가하고, 충고는 언제나 쉽다. 쉽게 하는 충고들이 얼마나 소용이 있겠는가.
살면서 겪게 되는 불안한 상황들, 결과를 알지 못하면서도 선택하게 되는 수많은 행위들, 그러나 온전히 자신의 개인적인 선택이라면 그가 말해주는 것을 들을 뿐이다. 무엇을 더 물어보고 싶지 않고, 들어도 오래 기억하지 못한다. 남이 내 일에 간섭할 수 없다고 생각하듯이, 나중에라도 무슨 결과론 따위는 말하지 않기로 하는 편이다.
다만 마음으로, 이래도 응원하고, 저래도 응원할 따름이다. 어떻게 사느냐. 사는 것에 관한 것은 결국 그 자신의 문제다. 남에게 왜 그렇게 사니? 라고는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그 결과는 결국 자신이 감당하는 것이므로. 남의 인생 책임질 것도 아니지 않는가.
모든 사랑하고 있는 사람들이 내겐 사랑스럽게 보인다. 그것이 비록 힘든 사랑이거나, 못내 상처받는 사랑이 될지라도, 나로서는 모든 연인들에게, 사랑하는 모습이 좋아보인다고 말해주고 싶다.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하든 각자의 선택을 '이해하고 싶은' 마음인 것이다.
-------------
다만 일반론적인 나의 생각을 말하자면, 나는 오히려 그녀 편이다. 둘의 통화를 엿들어 보면 분명 끌려다니고 있음에도^^ 그러나 친구들 앞에서는 자꾸만 큰 소리를 치는 녀석이다. 틈만 나면 내 친구는 짐짓 화를 내거나 자기 성질을 보여주려 하지만, 아마도 그녀는 눈 하나 깜짝 안 할 것이다. 신경 쓰고 목을 매는 친구의 속마음이 내가 보기에도 너무나 드러나 보여서다.
그녀는 뜻대로 되지 않고 내 친구는 몸이 달아 있다. 큰소리 치는 것과는 달리, 계속 그녀/전화에만 신경이 가 있으니 말이다.
허세가 뻔히 보이는데도, 남자들은 기회만 되면 남들 앞에서 자신의 성깔을 어필하고 싶어한다. 함부로 화를 내거나 성질을 보여주려 한다면, 못나게 힘자랑을 하려고 한다면, 전에도 말했듯이 만약 내가 여성이라면 말없이 조용히 아웃이다. 여자가 무슨 80년대 (천장지구의)오천련인 줄 아느냐 말이다.
연애를 하는 이상 끊임없이 말을 하고 싸워야 하지 않겠는가. 앞으로도 한동안은 밀당이 격렬할 것이다. 연애는 결국 의사소통 과정이다. 자기를 표현하고 자기 의지를 관철하고 수용하며 서로의 존재를 확인해 나가는 지난한 과정인 것이다. 길게 본다면 연애 역시 결국 나를 이해시키고 믿게 하는 것이다.
사랑은 상대방에 온통 관심이 쏠리는 것인데, 그러니 연인은 말을 많이 하게 되고 상대방의 말에 신경을 쓰게 된다. 그러나 말로 해도 안 될 때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동물이 될 것인가? 그렇지 않다면, 결국 말로써, 행동으로써 보복이나 응징을 할 수단이 있어야만 할 것이다. 화를 내거나 상처를 주거나 상대방을 아프게 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화를 내는 모습을 남발해서는 곤란하다. 점점 더 크게 화를 내야 하기 때문이다. 전화를 받지/하지 않겠다, 안 만나겠다, 이러한 카드는 최후의 수단이 되어야 한다. 카드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젠가는 모험처럼 극단적인 상황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올 것이다. 나는 친구가 그러한 선택을 충동으로써 하지 않길, 속으로 바란다. 해야 한다면 보다 냉정하게 하길 바란다. 충동적인 선택은 쉽게 후회되고, 끝내 일관성을 지니기 어렵기 때문이다.
사랑에 있어서도 필요한 것은 우선 자기의 통제라고 생각한다. 상대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충동을 조절할 필요가 있다. 정말로 사랑한다면, 자기 감정을 통제하는 노력은 어느정도는 예의다.
전화를 안 하겠다고 말했으면 정말로 하지 말아야 한다. 헤어지자고 했으면 정말로 헤어질 각오를 해야만 한다. 온다고 했으면 와야 하고, 간다고 했으면 가야 한다. 온다는 믿음이 있어야 기다릴 것이고, 진짜 가버릴 것 같아야 조심할 것이다. 말과 행동이 같아야만 상대방이 내 말을 신뢰하게 된다. 앞으로도 내 말을 믿게 하려면, 말과 태도가 일관되어야 한다.
내가 정치인이나 지식인을 보는 기준도 그것이다. 사회에서 가장 근본이 되는 것도 말의 신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게 안 되므로 악다구니를 써야 하고, 결국 폭력을 쓰게 된다.
부모는 아이에게 자꾸만 소리 지르고 화를 내게 된다. 그러면 아이들은 부모를 무시하고 반항기만 심해져서 어른과 아이가 마치 지겨운 친구처럼 맨날 싸우게 된다. 문제는 그렇게 싸워봐야 아무런 '효과'가 없다는 것이다. 아내는 남편에게 이제는 말을 해봐야 소용이 없다고 생각한다. 어느 순간부터는 소통을 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상점에서도 극장에서도 길거리에서도 우리는 매일 소리 지르고 싸워야만 한다. 목소리가 큰놈이 이기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왜 우리 사회는 조용히 말로 해서 되지 않는 것일까? 결국 사람 사는 곳에서 필요한 것은 말의 신뢰일 것이다.
신뢰할 수 있는 말과 행동은 일시적이거나 계획적인 것이 아니다. '그러한 방식으로 마음상태가 지속되는 굳어진 습성'이어야 한다.
---------------
그렇다고 해도, 전화하고 싶고, 신경 쓰이고, 보고 싶은 마음을, 자신의 의지로만 참는 것은 사랑에 빠진 사람에게는 참으로 어려운 요구다. 무조건 연인으로 향하는 마음이 사랑일 테니 말이다. 참는 것이 그처럼 쉽다면 아마도 충분히 사랑에 빠지지 않아서일 것이다. 누구보다 나부터 의지가 박약한 인물이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할까. 뭔가 다른 일에 몰입하는 방법도 좋을 것이다. 그녀를 생각하는 것을 의도적으로 '멈추는' 것이다. 사랑한다면, 습관적으로 그녀를 잊어버려야 한다. 일이든 놀이든 몰입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좋을 것이다. 혹시 게임에 빠져서 중요한 일을 잊어버린 일이 없는가? '시간'을 잊어버리는 것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