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
베른하르트 슐링크 지음, 김재혁 옮김 / 이레 / 2004년 11월
절판


나는 매일 아침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 깨어났다.
어떤 때는 잠옷 바지가 축축하게 젖어 있거나 얼룩져 있었다.
내가 꿈에서 본 형상과 장면들은 이상한 것들이었다. 나는 내게 견진성사를 해주신 존경하는 신부님,어머니 그리고 어린 시절의 비밀을 고백했던 큰누나가 나를 꾸짖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애정이 듬뿍 담긴 걱정스런 말투로 나를 타이를 것 같았다.
그건 꾸짖는 것보다 더 나쁘다. 그런데 더 나빴던 건 꿈속에서 그 형상과 장면들이 저절로 꾸어지지 않으면, 내가 그것들을 적극적으로 상상했다는 것이다.-21-22쪽

그러나 요즘 들어서는 지금까지 내 인생에서 생각과 행동이 서로 조화를 이루거나 아니면 서로 어긋나곤 하는 현상의 표본을 당시의 사건에서 발견하게 된다.
나는 생각을 해서 결론을 이끌어내 결정을 내리고 나면 그 결론에 집착한다.
그러고 나서 깨닫는다.
행동은 별개의 것이며 결정은 따를 수도 있지만 반드시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하지 않기로 내린 결정을 행동으로 옮긴 경우도 많았고 또 하기로 내린 결정을 행동으로 옮기지 않은 경우도 아주 많았다.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것'이 행동한다.
'그것'이 내가 더이상 보고 싶지 않은 여자를 향해 차를 몰고 가도록 만들고, '그것'이 상관에게 사생결단을 작정한 듯한 말을 하게 하고, 비록 내가 담배를 끊기로 결정했지만 '그것'이 계속해서 담배를 피우게 하고, 그리고 '그것'은 내가 지금 담배를 피우고 있으며 앞으로도 담배를 피우게 되리라는 사실을 확인한 후에야 담배를 끊는다.

-23쪽

물론 나의 생각과 결정이 행동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행동은 그에 앞서 이미 충분히 생각하고 결정한 것을 단순히 그대로 수행하지 않는다. 행동에는 나름대로 원천이 있으며, 나의 생각은 나의 생각이고 나의 결정은 나의 결정이듯이 나의 행동 역시 독자적인 방식으로 나의 행동인 것이다.-23-24쪽

왜일까? 왜 예전에 아름답던 것이 나중에 돌이켜보면, 단지 그것이 추한 진실을 감추고 있었다는 사실 때문에 느닷없이 깨지고 마는 것일까? 상대방이 내내 그동안 애인을 감추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순간 왜 행복한 결혼 생활의 추억은 망가지고 마는 것일까? 그런 상황 속에서는 행복할 수 없기 때문일까? 하지만 그동안은 행복했는데!
마지막이 고통스러우면 때로는 행복에 대한 기억도 오래가지 못한다.
행복이란 영원히 지속될 수 있을 때에만 진정한 행복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고통을 잉태한 것들은 반드시 고통스럽게 끝날 수 밖에 없기 때문일까?
의식적인 고통이든, 무의식적인 고통이든 간에?
그러면 무엇이 의식적인 고통이고 무엇이 무의식적인 고통인가?-43쪽

우리가 서로를 열면
너는 너를 내게 그리고 나는 나를 네게,
우리가 깊이 빠져들면
너는 내 안으로 그리고 나는 내 안으로,
우리가 사라지면
너는 내 안으로 그리고 나는 네 안으로.

그러면
나는 나
그리고 너는 너-66쪽

한나의 모습들은 나의 기억속에 고스란히 저장되어 있다.
마음 속의 스크린에 투사하면 조금도 변하거나 마모되지 않은 채로 한나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다.
나는 그 모습들을 잊고 지낼 때가 많다.
하지만 그 모습들은 언제나 나의 마음속에 다시 떠오르고, 그러면 나는 여러 번에 걸쳐 차례차례 나의 마음속 스크린에 비추어 바라볼 수 밖에 없다.
그중 하나는 부엌에서 스타킹을 신고 있는 한나이다.
또 다른 모습은 욕조 앞에 서서 양팔을 활짝 벌린 채 큰 타월을 들고 있는 한나이다.
달리는 자전거 바람에 치맛자락을 휘날리는 한나도 있다.
그다음으로 아버지의 서재에 서 있는 한나가 있다.
그녀는 파란색과 흰색의 줄무늬 블라우스를 입고 있다.
당시에 일명 셔츠 블라우스라고 불리던 옷이다. 그 옷을 입은 그녀는 젊어 보인다. 그녀는 손가락으로 책등을 문지르며 거닐다가 창문을 바라보았다. 이제 내 쪽으로 몸을 돌린다.
몸을 돌리는 동작이 아주 민첩했기 때문에 치마가 잠시 그녀의 다리를 중심으로 활짝 펼쳐졌다가 다시 매끈하게 늘어진다. 그녀의 눈길은 피곤해 보인다.-70쪽

그 후 나는 그녀를 배반하기 시작했다.
한나와 나 사이의 비밀을 세상에 알렸거나 그녀를 웃음거리로 만들었다는 말은 아니다.
나는 내가 침묵해야 된다고 생각한 것은 어느 것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나는 내가 털어놓았어야 하는 것들도 일체 말하지 않았다. 나는 그녀를 안다고 인정하지 않았다.
나는 否認이 배반의 보이지 않는 한 변형임을 알고 있었다.
외부에서 보면 否認을 하는 건지, 비밀을 지키고 있는 건지, 심사숙고하는 건지, 난처함과 불쾌함을 피하려는 건지 구별할 수 없다. 그러나 자신의 의중을 드러내지 않는 본인은 잘 알고 있다.
그리고 否認은 배반의 다른 몇가지 떠들썩한 유형들과 마찬가지로 인간관계를 토대를 앗아가버린다.-82쪽

'그녀한테 물으시오',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그녀가 그 연약한 소녀들을 선발한 것이 그들이 어차피 집 짓는 일을 이겨낼 수 없었기 때문인지, 그들이 어차피 다음번 수송 때 아우슈비치로 후송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인지, 그래서 그들에게 마지막 한 달을 참을 만하게 해주기 위해서였는지 그녀에게 직접 물으시오. 한나, 어서 그렇게 말해. 당신이 그 여자들에게 마지막 한 달을 참을 수 있게 해주려고 그런 것이라고 말해.
그것이 당신이 연약한 소녀들을 선발한 바로 그 이유라고.
그 밖에 다른 이유는 없었다고, 그리고 있을 수도 없다고.'
그러나 그 변호사는 한나에게 묻지 않았고, 한나 역시 먼저 말하려 하지 않았다.-126쪽

그 때문일까? 그녀가 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했고, 또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기 보다는 차라리 나를 놀라게 하는 쪽을 택했다고, 나는 그렇게 이해했다.
회피하고, 방어하고, 숨기고, 위장하고 또 남에게 상처를 주는 행동의 근거가 되는 수치심에 대해서는 나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한다는 한나의 수치심이 법정과 수용소에서 보여준 그녀의 행동에 대한 충분한 근거가 될 수 있을까?
자신이 문맹이라는 사실이 노출되는 것이 두려워 범죄자임을 자백한다고? 자신이 문맹이라 사실이 알려질까 두려워 범죄를 저지른다고?
나는 당시에 그리고 그 이후로도 이와 똑같은 질문들을 나 스스로에게 얼마나 자주 던졌던가.
한나의 동기가 자신의 정체가 드러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었다면, 그녀는 왜 해로울 것 없는 문맹으로서의 정체 노출 대신에 범죄자로서의 끔찍한 정체 노출을 택했을까? 아니면 그녀는 어느 것도 노출 시키지 않고 위험을 모면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일까?
그녀는 그렇게 단순할 정도로 바보스러운 여자였나?
-142-143쪽

자신의 정체가 노출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범죄자가 될 만큼 그렇게 허영에 차고 사악한 여자였나?
그 당시에 그리고 그 이후로도 나는 늘 이것을 부인해왔다.
아니다-나는 내게 말했다-한나가 범죄자가 되기로 결정을 내린 것은 아니다. 그녀는 지멘스에서 승진하는 것을 포기하고 그냥 여자 감시원이라는 직업을 택한 것이다.
그리고 아니다. 그녀는 연약한 여자들이 그녀에게 책을 읽어주었기 때문에 그들을 아우슈비츠로 후송시킨 것이 아니다.
그녀가 그들을 선발한 것은 어차피 아우슈비츠로 갈 수 밖에 없는 그들에게 마지막 한 달 동안 그나마 괜찮은 생활을 베풀어주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아니다. 법정에서 한나는 문맹의 정체가 드러나는 것과 범죄자의 정체가 드러나는 것을 두고서 저울질하지 않았다.
그녀는 계산하지 않았으며 전략을 쓰지도 않았다. 그녀는 해명에 대한 재판부의 요구를 받아들였으며, 단지 그 밖의 정체가 더 노출 되는 것을 원치 않았을 뿐이다.-143-144쪽

그녀는 자신의 이익을 좇은 것이 아니라 자신의 진실과 자신의 정의를 위하여 싸운 것이다.
자신을 늘 약간 위장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에, 그녀는 완전히 솔직해질 수 없었다.
그리고 완전히 자신을 드러내 보일 수 없었기 때문에, 그것은 안타까운 진실이요, 안타까운 정의가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녀의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한 싸움이 그녀의 싸움이었다.-144쪽

한나의 나의 고향 도시를 떠났을 때 그녀의 진짜 관심사와 그 당시 내가 그녀에 대해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그렸던 것 사이의 괴리가 나의 마음을 이상하게 흔들어놓았다.
나는 내가 그녀를 배반하고 부정했기 때문에 그녀가 내게서 떠나버렸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런데 사실 그녀는 단지 전차 회사에서 자신의 약점이 노출될까 봐 두려워 도망친 것이었다.
하지만 내가 그녀를 쫓아버린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내가 그녀를 배반했다는 사실을 바꾸어 놓지는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여전히 유죄였다.
그리고 범죄자를 배반하는 것이 죄가 되지 않으므로 내가 유죄가 아니라고 해도, 나는 범죄자를 사랑한 까닭에 유죄였다.-144-145쪽

그녀는 또한 내가 그녀의 형량을 몇 년이라도 줄이기 위해서 그녀가 만들어 놓은 자신의 이미지를 매도하는 것도 원치 않을 것이다. 그런 거래라면 그녀도 직접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녀는 그것을 원치 않은 것이다.
그녀에게는 자신의 이미지가 감옥에서 보낼 세월 이상의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148쪽

그는 내게 개인과 자유 그리고 품위에 대하여, 주체로서의 인간에 대하여 그리고 인간을 객체로 보아서는 안 된다는 점 등에 대해서 가르쳐주었다.-152쪽

우리는 지금 행복이 아니라 품위와 자유에 대해서 말하고 있어.
넌 아주 꼬마였을 때부터 그 차이를 잘 알았잖니. 엄마의 말이 늘 옳은 것이 네겐 별로 마음 편치 않았잖아.-153쪽

죄를 지은 사람들을 손가락으로 가리킬 수 있다고 해도 우리 가슴속을 수치심으로 가득 채웠다.
죄를 지은 사람들을 손가락으로 가리킨다고 해서 우리가 수치심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렇지만 우리는 손가락질을 함으로써 적어도 수치심으로 인한 고통을 극복할 수 있었다.
손가락질은 수치심의 수동적인 고통을 에너지와 행동과 공격심리로 전환시켜주었다.
그리고 죄를 저지른 우리 부모들과의 대결에는 엄청난 에너지가 소모되었다.-181쪽

내가 책을 읽어주는 것은 그녀에게 이야기하는 그리고 그녀와 내가 이야기하는 내 나름의 방식이었다.-201쪽

나는 그녀의 얼굴에서 기대감을 보았으며,
나를 알아보는 순간 그녀의 얼굴이 기쁨으로 환하게 빛나는 것을 보았고,
내가 다가가자 나의 얼굴을 어루만지는 그녀의 두 눈을 보았고,
무언가를 찾고 묻는 그녀의 두 눈에 불안과 아픔의 빛이 서리는 것을 보았으며,
그녀의 얼굴빛이 꺼지는 것을 보았다.
내가 그녀 옆으로 다가서자 그녀는 다정하면서 피곤에 젖은 미소를 지었다.-206-207쪽

나는 그 누구도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 누구도 내가 누구인지 그리고 그 무엇이 나로 하여금 이런저런 일을 하게 만들었는지 알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았어. 그리고 넌 알거야 널 이해하지 못하면, 그 누구도 너한테 해명을 요구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야.
그렇기 때문에 법정 역시 나한테 해명을 요구할 수 없었어.
하지만 죽은 사람들은 내게 그것을 요구할 수 있어. 그들은 나를 이해하거든.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법정에 있을수는 없었지.
하지만 그들이 그곳에 있었다면, 그들은 나를 특히 잘 이해했을거야.
이곳 교도소에서 그들은 나하고 자주 같이 있었어.
그들은 내가 원하든 원치않든 매일 밤 나를 찾아왔어.
재판을 받기 전에는 나는 그들이 나한테 오려고 하면 쫓아버릴 수 있었어.-210쪽

그녀는 당신과 함께 글 읽기를 배웠어요.
그녀는 도서관에 가서 당신이 카세트에 녹음한 책들을 빌려와 귀로 들은 내용을 낱말 하나하나, 문장 하나하나 그대로 좇았어요.-218-219쪽

오랫동안 들여다보고 있자니 죽은 얼굴에서 살아 있는 얼굴이 떠올랐다. 늙은 얼굴에서 젊은 얼굴이 말이다.
늙은 부부에게도 이와 같은 일이 생길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여자에게는 늙은 남자의 모습 속에 젊은 남자의 모습이 보존되어 있을 것이고,
남자에게는 늙은 여자의 모습 속에 젊은 여자의 아름다움과 우아함이 신선하게 보존되어 있을 것이다. 왜 나는 일주일 전에 이러한 모습을 보지 못했던 것인가?-222-223쪽

우리의 인생의 층위들은 서로 밀접되어 차곡차곡 쌓여 있기 때문에 우리는 나중에 것에서 늘 이전의 것을 만나게 된다. 이전의 것은 이미 떨어져 나가거나 제쳐 둔 것은 아니며 늘 현재적인 것으로서 생동감 있게 다가온다. 나는 이 사실을 이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가끔 그것이 정말로 참기 어렵다고 느낀다.
어쩌면 나는 우리의 이야기를 비록 그것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에 썼는지도 모른다.-2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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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자 X의 헌신 - 제134회 나오키상 수상작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3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억관 옮김 / 현대문학 / 2006년 8월
구판절판


죄를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은혜를 갚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모녀는 생뚱맞게 생각할 지도 모른다. 그래도 좋다. 사람은 때로 튼실하게 살아가는 것 자체만으로도 다른 사람을 구원해 줄수 있는 것이다.-393쪽

추리 소설에는 늘 인간의 욕망이 있다. 글을 읽으며 사건의 진상을 추적하는 독자는 자신이 가진 욕망의 모습을 따라가는 작업을 벌이고 있는 셈이다.-40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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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이화
조두진 지음 / 예담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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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물 중 가장 읽기 불편한 시대는 일제강점기때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게는 그렇다.
꼭 그 시대가 아니래도 일본과 연결되는 역사는
일제강점기 그때로 읽혀진다. 


지금은 하늘 나라에 가 계신 우리 할머니가 견뎌낸 시대이기도 해서
"정말 그때 사람을 막 죽이고, 함부로 끌고 가고 그랬어?"라고 물어보면
너무 너무 먹을게 없어서 성씨 바꾸는 것 뿐만이 아니라
죽는거 말고는 시키는 대로 다 할수 있을 것 같더라는 대답을 들려주셨다.

그래도 타국 군인들이 자기 나라 땅에 함부로 들어와서
주인 행세 하는데 대항하지도 않는건 수치스럽다고 말했더니
그저 덤덤한 눈길로 나를 보면서

니 애비랑 굶지 않고 하루에 한끼만이라도 먹을 수 있었다면 그게 행복했다고
배 곯는게 세상에서 젤 싫다고... 너무 배고파 죽고 싶다가도 배고파 죽는게 싫어서 죽기 싫었다고
니 애비 굶기는게 젤로 서러웠다는 할머니 말씀이 당시에는 그다지 이해가 되는건 아니었다.

어떤 생활을 영위하는게 아니라 그저 생존하기 위해
짐승과 다를바 없는 수모를 받아들여야 한다니... 풍요로운 시대의 <나>는 못 견딜거라고 생각한다. 

[유이화]는 일제강점기 보다는 더 이전의 임진왜란 때의 이야기지만
우리 할머니가 들려주신 그때의 시절의 아픔이 그대로 배여나온다. 


[유이화]의 주인공 이화는 반듯한 이마가 무척이나 고운,
성정마저 그러한 이마를 닮은 여인이다.

그러한 여인이 폭력으로 인간의 존엄성을 강탈당하고
성적으로 유린당하지만 살아 남는다.
그런 일을 당하고도 살아 남은게 허물이라고 한다면
그런 짓을 저지른 짐승보다
그걸 허물이라 떠드는 입달린 인간들의 입을 박음질 해버리고 싶다.

이화를 다시 만난 철영이 그런다.
아주 대범한 척 허물을 덮어주겠노라고,
이화가 화를 낸다, 내게 그러한 허물은 없다고.

그녀가 인정하는 허물은
자기 아들의 마지막을 외롭게 보낼 수 밖에 없었던 그일 밖에는 없을거다.
그외에 그녀는 잘못이 없다.
오히려 너무나 많은 상처와 고통 속에서도
그래도 어머니로서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다
아이를 품는다.
세상에 등 돌리지 않고 어머니로서 선다.

그녀는 조선의 어머니도, 일본의 어머니도 아니다.
그저 그녀 아이들의 어머니다.

밤낮 없이 일해도 지새끼 배를 든든하게 채우지 못한게
젤로 서글픈... 그저 누구나의 어머니이기도 하고,
오로지 이 세상의 단 한분인 어머니이기도 하다.

철영도 남편으로서, 조선인으로서는 화를 품었다치더라도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그녀를 이해할 수 있었던것 같다.
그가 지키지 못했던 아들의 아버지로서 말이다.  


다만 자기 아내를 찾기 위해 이국땅에 와서 애쓰던 그의 노력에
처음 그의 유교적 남성상에서 비쳐졌던 비호감이 어느새 측은하게 느껴질 정도로

그 역시 고통의 시대를 견디면서 살아 남은, 생명 가진 한 사람일뿐이라는거.
히로키에게 당신의 처는 어떤 사람인가를 묻는 마지막 그의 모습은
그래도 따뜻함을 잃지 않은 한 여자의 남자였다는게 조금은 슬프고 많이 기뻤다. 

어쩔수 없이, 강압적으로 조국을 떠나고, 고향으로 되돌아 오지 못하는 사람들의 한을 내가 감히 가늠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작가의 말처럼 그네들이 살아가야할 그곳에 몸은 두더라도 마음은 내려 놓지 못하는 조선인들이 답답하기 보다는 고향을 엄마의 품으로 여기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민족적 정서 때문이지 않을까싶다.

결국은 조선은 철영이 그렇게 찾아 헤매던 그의 아내이자 그의 아들의 어머니이던 이화이기도 한것 같다. 

나중에 다시 조선으로 돌아갈 방도가 생겨도  이화가 더이상 그의 아이의 어미가 아니고, 아내가 아니듯이
그가 돌아갈 조선은 영원히 잃어버린게 아닌가 싶다.

돌아갈 고향이 있다는건 무척이나 큰 행복이다.
거기다 밥 뜸들이는 냄새가 늘 함께하다면 더욱이나...


끔찍한 시절을 회상하면서 끝맺는 말로는 항상
너희들은 그런 세상을 다시는 겪지 않아야 된다고,
배고픈 고통이랑 아예 몰랐으면 좋겠다는 할머니의 물기 마저 말라 버려서 건조하던 그 눈에 어리던,멀고도 가까운 그 시절에 겪은 고통을 기억하던 그 눈빛을 잊지는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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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 Martin & Jhon 마틴 앤 존 1
박희정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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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 표지 보다 더 좋네요. 표지가 예술.물론 내용도 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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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9-04-01 15: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1권만 두 권인데 구판 어디 들어가 있는지 못 찾고 있어요. 실수로 한 권 더 샀는데 그게 개정판 표지였어요.ㅋㅋ
 
매월 1일, 신한 카드

유용한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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