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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수 클리볼드 지음, 홍한별 옮김 / 반비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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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우리가 주변 사람의 자살을 막을 수 있을까? 냉정하게 말하자면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 다수의 전문가들이 누누이 지적하듯이, 이는 복잡하고 다양한 요소들에 의해 각기 다르게 결정되는 것이지, 어느 누구의 잘잘못이 아니다. 흔히 하는 말로, 'case-by-case'인 셈이다. 그리고 과연 우리가 정말로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우리는 그 사람을 속속들이 전부 다 알 수 있을까?

 

여기 한 사람의 엄마가 있다. 다른 모든 평범한 엄마들처럼, 자식을 진심으로 사랑했고 "세상에는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이 있다"고 가르쳤다. 어릴 때부터 아이 돌보는 아르바이트를 했으며, 대학에서는 아동발달과 아동심리를 전공했고, 직장에서는 아이들과 어른들을 가르치는 일을 오래 했다. 그래서 자신은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 거라고 철석같이 믿었다.

 

하지만, 1999년 4월 20일 이후 그녀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열세 명의 사망자와 스물네 명의 부상자를 낸 미국 콜럼바인 학살 사건의 가해학생 두 명 중에 한 명이 바로 자기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수 클리볼드, 2016)는 화목한 중산층 가정의 엄마가 학교 총기 난사 사건의 범인이 된 아들(딜런 클리볼드)을 어떻게든 이해해보려고 애쓴 16년간의 처절한 기록이다.

 

"딜런 클리볼드는 내 아들이다. 그날 일어난 일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내 목숨을 바칠 것이다. 그날 죽은 사람 한 명의 목숨과 내 목숨을 바꾸자고 하더라도 기꺼이 그렇게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는 것도 안다. 내가 무슨 짓을 하고 무슨 말을 하더라도 학살을 속죄할 수는 없다. 그 끔찍한 날 뒤로 16년이 흘렀다. 그 열여섯 해를, 나는 아직도 여전히 알 수 없는 일을 이해하려고 애쓰는 데에 바쳤다."

- 수 클리볼드

 

 
일반적으로 우리는 아이가 범죄를 저지르면, 뭔가 부모에게 문제가 있을 거라 생각한다. 부모가 자식을 가장 잘 안다고 여기며, 정상적인 부모라면 자식의 결함을 미리 알아채고 조치를 취할 수 있을 것이라고도 말한다. '가해자의 엄마' 수 클리볼드 역시 가장 많이 들은 얘기가 "어떻게 그걸 모를 수 있어요?"였고, 본인도 스스로에게 밤낮으로 이 질문을 던졌다.

 

저자는 10년 넘게 수많은 전문가들과 깊은 대화를 나누며 끊임없이 고민했고, 그 과정에서 얻은 깨달음을 세상에 공유한다. 물론 이런 시간들 자체가 엄마에게는 너무나 고통스럽고 힘겨웠다. 같은 학교 아이들을 학살한 자기 아들의 삶 전체(그런 삶을 만드는 데 기여한 자신의 인생)를 처음부터 끝까지 반추해 보는 지난한 작업이었으며, 평범한 일상 속에서 자신이 놓쳤던 부분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었고, 서서히 눈이 뜨이며 마주하게 된 불편한 진실을 정면으로 응시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가해자의 엄마는 아들을 향한 사랑과 피해자들에 대한 속죄의 마음으로 이를 하루하루 계속해나간다. 미칠 것 같은 공황발작이 수시로 찾아오고, 때론 잠자리에서 일어나는 데에만 네 시간이 넘게 걸릴 정도로 우울증이 심각한 상황(우울증의 가장 흔한 증상 중 하나가 바로 침대에서 일어나기조차 힘든 것이다)에서도 수 클리볼드는 자식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뭔가 세상에 도움이 되고자 하는 의지를 바탕으로, 자신의 가족과 일 그리고 자기가 이제까지 평생 믿고 살아온 모든 것을 걸고 최선을 다해 이 문제에 천착한다.

 

그래서 17살에 총기 학살범이 된 딜런과 그의 엄마 이야기를, 사건이 발생하고 17년이 지난 다음에 우리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저자는 굉장히 섬세하면서도 솔직하게 자신의 삶과 딜런의 탄생부터 자살까지의 과정을 통찰력 있게 기록하고 있으며, 감정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관련 전공자답게 실제 있었던 일과 전문적인 내용을 적절히 조합하여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잘 설명해주고 있다.

 

무엇보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수 클리볼드가 일관되게 견지하고 있는 '균형감각'이다. 이런 부류의 글은 자칫 잘못하면 그저 한풀이에 그치거나 이미 지나간 일에 대한 변명으로 점철되기 쉬운데, 저자는 값싼 용서를 구하기보다는 스스로 깊은 참회의 길을 걸어간다. 또 한편으로는 객관성이라는 허울 뒤에 숨어서 가식적인 사죄를 통한 면피를 시도하고 싶은 유혹에 빠질 수도 있었을 텐데, 수 클리볼드는 이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표현하는 데에 주저함이 없다.

 

설사 그것이 일부 독자들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킬 위험성이 있을지라도, 원제 <A Mother's Reckoning: Living in the Aftermath of Tragedy>처럼 "비극의 여파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발버둥치는 "한 엄마의 응보"가 보여주는 진짜 모습이기 때문에, 우리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가 있는 것이다. 물론, 책 곳곳에 언뜻 보면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내밀한 감정선들이 드러나는 부분들도 있다. 바로 '엄마'이기에 할 수 있는 솔직한 얘기들인데, 이마저도 측은지심을 가지고 근원적인 인간성의 관점에서 보면 충분히 납득이 되는 내용들이다.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를 찬찬히 읽다 보면, 저자가 자신의 아픔을 동력으로 삼아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주려는 노력을 꾸준히 한 흔적을 여기저기에서 발견할 수 있다. 가히 '인류애'가 느껴지는 부분들인데, 오랫동안 지역사회와 언론으로부터 집중적인 책임 추궁을 당했던 이가 어쩌면 이토록 완고하게 '희망'을 지켜올 수 있었는지 참으로 놀라울 따름이다.

 

게다가 수 클리볼드는 이제 '우울증 조기 발견 및 자살 예방에 관한 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다고 하니(저자는 가해자의 엄마로서, 특별히 '자살'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이유와 과정을 책 본문의 상당 부분을 할애해 아주 설득력 있게 서술하고 있다), 극심한 슬픔 속에서도 아들에 대한 사랑을 더 확장하고 정말 더 나은 방향으로 도약한 삶이 아닌가 싶다. 분명히, 이 책에는 한 인간의 희생 정신이 저변에 면면히 흐르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는 사실 아름다움보다는 '불편함'을 더 많이 느낄 수밖에 없는 책이다. 기본적으로 우리는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의 입장에 공감하고, 특히 아이들이 피해자일 경우 가해자는 거의 '괴물' 취급을 당하는 게 보통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범죄를 저지른) 자식을 가장 잘 아는 건 부모라고 생각하며, 괴물을 키운 엄마는 일반적으로 비판의 대상이다. 제대로 된 부모라면 사건을 미연에 방지할 수도 있었을 거라는 '판타지'에 기반해서, '아들을 잘못 키운 엄마'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다.

 

하지만, 인간이 원래 그렇게 단순하지 않듯이 이런 문제도 절대 단순할 수가 없다. 가해자라고 해서 항상 거짓말과 변명만 하는 건 아니며, 피해자라고 무조건 진실만 말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괴물로 단정 짓고 범인을 '타자화' 하는 동안, 나의 바로 옆에서 그와 유사한 범죄의 씨앗이 자라나고 있을 수도 있다. 그것이 결국 외부로 폭발하면 '살인'이 되고, 내부로 추락하면 '자살'이 된다. 살인과 자살은 생각처럼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역사상 최악의 총기 난사 학살범 딜런 클리볼드는 왕따도 아니었고, 말썽꾸러기도 아니었으며, 사이코패스는 더더욱 아니었다. 뭔가 취약한 부분이 있긴 했지만, 그것 자체가 완전히 일반인과 구별될 만큼 어떤 심각한 결함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 이 정도 취약성은 우리 주변에서 평범하게 살아가는 누구에게라도 그리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랬기 때문에 수 클리볼드는 "어떻게 그걸 모를 수 있어요?"의 대답을 찾기 위해 무려 16년 동안이나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헤맸고, 현재의 독자들은 이 책을 읽으며 비로소 '불편한 진실'을 목도하게 된다.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는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에 대해 근원적 질문을 던지고, 취약한 이들의 자살방지를 위해 우리가 진짜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며, 정말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근본적으로 필요한 게 뭔지를 끊임없이 탐구한다(물론 인생에 정답이 없듯이, 이 책도 단정적으로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그래서 자살률 세계 1위인 우리 사회에서도 참 의미가 있고, 중요한 시사점이 많은 책이다. 감히 말하건대, 교육 문제가 전 세계에서 최악이라고 할 정도로 무척이나 심각한 한국의 부모들이 꼭 한번은 읽어봤으면 한다. 자녀와 함께 읽은 다음에 같이 진지하게 대화를 나눠보면, 분명히 뭔가 얻는 게 있을 것이다.

 

"부모가 그 무엇보다도 받아들이기 힘든 진실, 세상에서 나만큼 더 잘 아는 부모가 없을 진실이 있다. 바로 사랑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거다. 나는 딜런을 무한히 사랑했지만 그래도 딜런을 지키지 못했고 콜럼바인 고등학교에서 살해된 열세 명도, 그 밖에 상처 입고 고통받는 사람들도 구하지 못했다 ... 내 이야기를 최대한 충실하게 들려주면, 나는 발가벗겨진 기분일지라도, 다른 부모들이 아이들 얼굴 너머에 있는 것을 보고 만약 도움이 필요하다면 줄 수 있도록 도와줄 빛을 비출 수 있지 않을까 한다."

- 수 클리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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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 사회 - 플라스틱을 사용하지 않고 단 하루라도 살 수 있을까
수전 프라인켈 지음, 김승진 옮김 / 을유문화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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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리가 수도 없이 사용하는 '플라스틱(plastic)'이란 단어의 어원은 그리스어 'plassein'인데, '주물하다' 혹은 '형태를 만들다'라는 뜻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이 그리스 어원이 형용사나 동사로 쓰일 수는 있지만 명사로 쓰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플라스틱이 마치 어떤 사물인 것처럼 얘기하지만, 사실 플라스틱은 천연물질과 달리 특정한 성질을 갖지 않는다.

 

나무나 돌, 금속이나 광물 등의 천연물질은 원래부터 특정한 성질을 갖고 있어서 우리는 이를 보면 대충 그것의 가공법이나 용도를 짐작할 수 있다. 나무를 보면 톱과 대패를 떠올리고, 돌을 보면 망치와 정을 찾는다. 우리는 금이 녹슬지 않는다는 걸 알고, 다이아몬드는 가장 단단하다는 것도 안다. 이렇듯 천연물질은 그 자체의 특성을 갖고 있으며, 바로 이 정체성을 기반으로 우리는 그 물질과 관계를 맺는다.

 

반면에 플라스틱은 이런 내재적 특성이 없다. 예를 들어, 플라스틱으로 만든 다양한 포장재들은 각기 성질이 다르다. 강도·내구성·투명성·유연성·탄력성 등이 다 천차만별이고, 별다른 설명 없이 플라스틱 자체만 봐서는 우리가 그것의 쓰임새를 알아차리기 힘들다. 물론 각 플라스틱을 만들 때에 어떤 특정한 성질을 부여하긴 하지만, 그건 '가소성(plasticity, 다양한 변신 가능성)'의 활용이지 본질적 특성이라고 할 순 없다.

 

20세기 초부터 본격적으로 발달하기 시작한 플라스틱은, 인류가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으로든 변신시킬 수 있는 능력을 상징한다. 신은 각각 고유의 특성을 지닌 천연물질을 창조했지만, 인간은 오직 가소성만을 가진 플라스틱을 만들었다. 플라스틱 덕분에 인류는 비로소 세상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는 힘을 갖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이후 수십 년간 사람들은 플라스틱에 열광했고, 결국 우리는 지금 플라스틱의 시대에 살고 있다.

 

 

플라스틱 사회 - 플라스틱을 사용하지 않고 단 하루라도 살 수 있을까
수전 프라인켈 (지은이) | 김승진 (옮긴이) | 을유문화사 | 2012 | 원제 Plastic (2011)

 

우리는 아침에 플라스틱 매트리스에서 일어나 플라스틱 변기 뚜껑을 열며 하루를 시작한다. 칫솔은 물론이고, 치약 튜브와 뚜껑 역시 플라스틱이다. 샴푸, 폼클렌징, 바디워시, 로션 등등 다 플라스틱 통에 들어 있다. 전기 주전자와 냉장고 손잡이, 반찬통과 주걱, 빵 봉지와 쓰레기통.. 주방에서는 그냥 플라스틱이 아닌 걸 찾는 게 훨씬 더 빠를 것이다. 우리의 일상복 중 상당수도 플라스틱 섬유이고, 가전제품은 대부분 플라스틱이며, 자동차 내부 역시 마찬가지다.

 

그리고 우리의 스마트폰을 비롯한 컴퓨터. 만약 플라스틱이 없었다면 도대체 컴퓨터는 어떻게 존재할 수 있을까? 온종일 우리는 스마트폰을 쓰고, 일하는 동안에도 쉴새없이 컴퓨터를 사용한다. 점심을 먹고 계산할 때 손에 드는 신용카드도 플라스틱이며, 버스나 지하철 손잡이도 그렇다. 가방이나 신발도 플라스틱으로 만든 게 많고, 저녁에 집으로 돌아와서 제일 먼저 누르는 전등 스위치도 플라스틱이다. 하루의 끝, 우리는 다시 플라스틱 매트리스에 눕는다.

 

현실적으로, "플라스틱에 전혀 닿지 않은 채로 일상생활을 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는 미국의 저명한 과학 저널리스트 '수전 프라인켈(Susan Freinkel)'도 마찬가지였고, 그는 이 말도 안 되는 '실험'을 통해 자신이 플라스틱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플라스틱 사회(원제 Plastic: A Toxic Love Story, 2011)]를 쓰게 되었고, 이 책의 한국어판 부제도 "플라스틱을 사용하지 않고 단 하루라도 살 수 있을까"다.

 

저자는 플라스틱 이야기를 알기 쉽게 풀어가기 위해 여덟 가지 물건을 골라서 각 한 챕터씩 총 8개 주제로 이 책을 구성했다. 이 물건들을 통해 수전 프라인켈은 플라스틱의 역사와 문화, 플라스틱 물건의 제조 과정, 플라스틱을 둘러싼 정치적 사안들, 인조 합성물질이 건강과 환경에 끼치는 영향,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플라스틱을 제조하고 처분하기 위한 노력 등을 깊이 있게 다룬다.

 

 

1. 머리빗 - 플라스틱의 역사와 문화적 격변

 

빗은 인간이 사용해 온 가장 오래된 도구에 속하고, 인류 역사 내내 사람들은 어느 것이든 빗의 재료로 사용했다. 수많은 천연물질들이 빗의 재료로 사용됐고, 당연히 각 물질의 내재적 특성 및 재료 공급상의 제약이 뒤따랐다. 이는 곧 '희소성'을 뜻했고, 그와 동시에 사회계층을 구분했다. 19세기 말 최초의 인조 플라스틱 등장은 소비의 대중화와 문화적 민주주의를 이끌었으며, 20세기 초반 전 세계의 실험실에서는 진입 장벽을 낮춘 각종 '신물질'들이 쏟아져 나왔다.

 

플라스틱의 출현에는 오랜 세월 자원의 제약을 극복하기 위해 고군분투한 수많은 발명가와 혁신가들의 노력이 있었고, 플라스틱은 인간들에게 적은 비용으로 풍부함을 누리게 해주겠노라 약속했다. 하지만 플라스틱의 원료는 대부분 석유와 천연가스 정제 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이며(화석연료에 의존하는 경제와 석유화학업체의 이해관계), 플라스틱의 급격한 확산은 인류의 심사숙고 끝에 결정된 게 아니었다. 그저 2차 세계대전과 베이비붐이 기폭제가 된 거였고, 결과적으로 물건의 범람과 낭비적 문화를 불러왔다.

 

2. 의자 - 플라스틱 디자인 윤리와 극단적 효용성

 

의자는 인류와 가장 친밀한 가구이면서, 또한 무척 많은 요구사항을 충족시켜야 하는 가구다. 역사적으로 의자는 각 시대와 문화를 반영했고, 예술 표현의 장이기도 했다. 오랫동안 의자는 가구 디자인계의 애베레스트 산이었으며, 창조적인 영혼들은 형태와 기능을 결합하는 혁신적인 방법을 탐구하면서 좋은 의자를 만들기 위해 계속해서 도전했다. 플라스틱의 출현 이후 이러한 혁신의 상당 부분은 바로 이 신물질로부터 영감을 받아 이뤄졌다.

 

 [플라스틱 디자인 역사에 길이 남은 판톤 의자와 루이고스트 의자. ⓒ Pantonstolen, Kartell]

 

현대 디자인이 지향하는 평등주의(좋은 디자인은 비용이 많이 들 필요가 없어야 하며, 가장 평범한 일상의 물건도 아름다울 수 있다)와 '마야 원칙(가장 앞서 가면서도 가장 널리 받아들여질 수 있어야 한다: MAYA, most advanced yet most acceptable)' 등은 새로운 플라스틱 의자에 한 차원 높은 목적을 불어 넣었다. 그러나 이런 디자인 윤리가 극단적 효용성(플라스틱의 장점을 극대화한 대량 생산)에 압도 당하면서, 혁신적이었던 일체 주조 의자는 결국 싸구려 플라스틱 물건의 대명사가 되고 말았다.

 

3. 프리스비 원반 - 플라스틱의 생산 방식과 열악한 노동 환경

 

프리스비(던지기 놀이용 원반)는 미국에서 오랫동안 베스트셀러 장난감이었고, 1957년 시장에 나온 이후로 1억 개도 넘게 팔렸다. 이 유명한 플라스틱 장난감도 요즘 우리가 쓰는 대부분의 플라스틱과 마찬가지로,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신물질'들의 다양한 기능이 알려지면서 개발된 제품이다. 종전 이후 원료 비용이 낮은 플라스틱(화석연료 정제 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은 베이비붐을 타고 현대 장난감 산업의 근간을 이루게 된다. 값싸고 가볍고 유연한 신재료들은 업계의 이윤폭을 크게 높였고, 플라스틱 산업의 급격한 발달과 함께 생산량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그리고 이제는 다른 산업과 동일하게 '가격경쟁력'이라는 이름 아래, 전 세계 장난감 다섯 개 중 네 개는 중국에서 제조되고 있다. 특히 장난감 업계는 긴 노동 시간과 적은 임금으로 악명이 높은데, '세계의 공장' 중국에서 일하는 수많은 이주노동자들의 삶은 잔혹할 정도로 고단하다. 에어컨도 없는 공장에서 쉴새없이 돌아가는 플라스틱 사출성형 기계의 뜨거운 열기로 프리스비 원반은 만들어지고, 장난감 피크 시즌에 맞추기 위해 노동자들은 몇 주일을 쉬는 날 없이 하루 10~14시간씩 일한다. 잘 사는 나라의 거대 업체들이 싼 가격에 플라스틱 상품을 계속 공급할 수 있는 것은, 못 사는 나라의 이주노동자들에게 낮은 임금과 열악한 노동 환경이 강요되기 때문이다.

 

4. 링거백 - 현대 의학의 기적과 플라스틱의 역설

 

서양의학에서 의료 행위의 필수품이라고 할 수 있는 링거백(체액의 대용으로 쓰이는 생리적 식염수를 담은 용기)과 혈액백은 원래 유리병 형태였지만 여러 가지 불편함이 있었고, 이의 해결을 위해 '폴리염화비닐(PVC)'이라는 특정한 플라스틱을 이용하게 된다. 그 시작은 미 육군이 한국전쟁 중에 새로운 PVC 혈액백을 사용한 것이었고, 이후 다양한 의료용 액체를 담는 용기와 튜브의 제조에는 유리 대신 PVC가 광범위하게 활용된다. 하지만 폴리염화비닐은 '악마의 수지'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우리의 건강과 환경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PVC는 분자 구성에 염소가 필수적인 물질인 탓에 제조 과정에서 유독한 염소 기체에 노출될 우려가 있고, 소각하면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강력한 발암물질 중 하나인 다이옥신이 방출된다. 현대 의학의 기적은 대부분 플라스틱 덕분에 가능했는데, 이를 이용해 질병을 치료하는 행위 자체가 건강에 악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는 사실(의료 장비 제조에는 수많은 화학물질이 첨가되고, 우리는 병원에서 수많은 플라스틱에 무방비로 노출된다). 이는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플라스틱 사회가 보여주는 이득과 위험, 바로 그 역설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5. 라이터 - 지속 가능하지 않은 일회성 플라스틱 문화와 자연 환경

 

플라스틱의 시대는 일회성의 시대이기도 하다(오늘날 생산되는 플라스틱의 절반은 '일회용품'에 사용된다). 플라스틱은 사람들이 집에서 만들거나 고칠 수 있는 물질이 아니고, 재사용할 수 있는 경우도 많지 않다. 플라스틱 라이터는 한 번 쓰고 버리는 문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물건인데, 다 쓴 이후에는 다른 용도로는 사용할 수 없고 연료 때문에 재활용하기도 힘들다(결국 어쩔 수 없이 잠깐 쓰고 버리는 쓰레기가 된다). 플라스틱 라이터는 전혀 지속 가능하지 않은 목표, '내구적이면서도 버리기 좋은' 물건의 전형이다.

 

가볍고 강한 플라스틱은 자연계에서는 저절로 분해되지 않기 때문에, 인류가 이제껏 생산한 모든 플라스틱이 어떤 형태로든 아직도 우리와 함께 존재하고 있는 셈이다. 전 세계 각지의 해변 조사에서 수거된 쓰레기의 내용물을 보면 플라스틱 쓰레기가 일관되게 60~80%를 차지한다. 플라스틱을 삼킨 동물은 지구 전역에서 발견되고, 결국 이들은 먹이사슬의 다음 단계인 우리 인간이 잡아먹는다. 지금 이 순간에도 셀 수 없이 많은 수의 플라스틱 조각들이 전 세계 해변과 대양에 퍼지고 있으며, 이런 플라스틱 쓰레기들은 언제고 우리 밥상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

 

 [동물 사체 속 플라스틱. ⓒ그린피스, The 5 Gyres Institute]

 

6. 비닐봉지 - 플라스틱 관련 정책과 그 이면의 진실

 

현재 생산되는 총 플라스틱의 3분의 1 가량은 포장재에 사용된다. 우리가 일상에서 소비하는 대부분의 물건은 플라스틱으로 포장되어 있고, 많은 사람들이 그걸 또 비닐봉지에 담아서 운반한다. 워낙 흔해서 우리는 비닐봉지가 제조공학적으로 얼마나 놀라운 물건인지 종종 잊지만, 사실 비닐봉지는 방수가 되고 오래가며 깃털처럼 가볍고 자신의 무게보다 수천 배는 더 나가는 것도 거뜬히 담을 수 있는 굉장한 물건이다. 그러나 다른 모든 플라스틱과 마찬가지로 비닐봉지의 제조와 폐기가 유발하는 악영향은 환경적인 측면에서 골칫덩어리다.

 

그래서 비닐봉지 사용을 금지하고 종이봉투를 쓰게 하는 법이 지구촌 곳곳에서 시행되었지만, 여러 연구 결과에서 확인해 주고 있듯이 종이봉투는 비닐봉지보다 더 심각한 환경 영향을 초래할 수도 있다(벌목, 화학물질을 이용한 펄프화 공정, 강력한 표백, 많은 양의 물 사용 등등). 이는 플라스틱에 관한 잘못된 정치적 논쟁이 얼마나 문제의 핵심을 크게 벗어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사실 근본적인 문제는 비닐봉지냐 종이봉투냐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일회용품에 대한 의존성을 줄여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의 내용에서도 드러나듯이, 그저 정치적으로 손쉬운 방법을 선택하고 지지하는 건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우리는 분명히 명심해야 한다. 좀 오래 걸리고 더 복잡하며 다소 힘든 방향이더라도 사람들의 사고방식이나 태도 자체를 변화시킬 수 있는 결정을 하는 게 중요하다. 단순히 비닐봉지를 금지시키는 것보다는 이 물건의 사회적 비용을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봉지세(plastax)'가 좀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이와 함께 사람들이 일회용품 사용하는 습관을 버리고 '재사용 가능한 장바구니'를 가지고 다니도록 유도하는 게 필요하다. 언제나 다른 그 무엇보다 진실에 바탕을 두고 근본적 변화를 지향하는 것, 이게 어느 한 인간이나 물건을 악마화하고 혐오를 양산하는 것보다 훨씬 더 인류에 도움이 되는 길 아닐까?

 

7. 페트병 - 플라스틱 재활용을 둘러싼 모순과 선순환의 진정한 의미

 

우리가 플라스틱 재활용의 대명사로 생각하는 페트(PET, 폴리에틸렌 테레프탈레이트)병은, 실제로는 그다지 많이 재활용되지도 않고 재활용과 관련된 각종 모순이 한데 응축되어 있는 물건이다. 생수병에서부터 각종 음료수와 요리재료 등이 담긴 용기로 어딜 가나 흔하게 페트병을 볼 수 있지만, 매일같이 엄청난 양이 소비되는 이 물건이 과연 제대로 재활용되고 있는지에 대해서 우리는 잘 모른다. 바로 이 부분에 대하여 과학 저널리스트 수전 프라인켈은 수많은 자료와 실증적인 취재를 통해서 제대로 정리해 준다.

 

저자는 기본적으로 자발성에 의존하는 재활용 제도의 결함과 함께, 그 참여율을 높이기 위해 도입된 단일 수거 방식(유사한 재활용품들을 일단 하나의 통에 다 넣는다)이 결국 재활용의 질을 떨어뜨리는 문제도 지적한다. 또한 '닫힌 고리 재활용 체계(플라스틱 병은 다시 플라스틱 병으로 만든다는 개념. 물건을 만드는 데 들어가는 자원의 필요량을 줄이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서, 환경적으로 최선의 방식)'와 '병 보증금 제도'의 도입과 운영에 대해서도 상당한 분량을 할애한다.

 

 [대표적인 생산자 책임 재활용 제도인 유럽의 '그린 도트(Green dot)' 시스템 로고]

 

너무나 당연하게도, 진짜 쓰레기를 줄이려면 애초에 쓰레기가 만들어지는 원천에서 그 발생을 막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재활용의 책임을 소비자에게서 생산자로 옮기는 '생산자 책임 재활용 제도(Extended Producer Responsibility, EPR)'가 생겼다. 수명이 끝난 제품들을 수거하고 처리하는 비용을 생산자들이 책임지도록 하면, 처음부터 이들은 덜 낭비적인 물건을 만들게 될 것이다. 자사의 제품을 재활용하는 비용을 스스로 부담해야 할 경우, 그들은 애초에 재활용이 더 용이하도록 제품을 디자인하고 재활용에 적합한 물질을 원료로 선택하게 된다. 이런 시스템은 자발성에 의존하는 재활용 제도의 한계를 뛰어넘어 근본적인 선순환 고리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8. 신용카드 - 단순하지 않은 친환경 플라스틱 문제와 근원적 변화

 

거의 모든 신용카드는 '독약 플라스틱'이라고 불리는 '폴리염화비닐(PVC)'로 제작된다. 가공하기 쉽고, 견고함과 유연함이 딱 알맞게 섞여 있으며, 평균 유효기간인 3~5년간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내구적이기 때문이다. 평소에 신용카드 광고를 봐서 알겠지만, 이 네모난 플라스틱 카드는 그저 현금 대용이기만 한 게 아니라 일종의 문화적 취향을 드러내는 도구다. 어떤 신용카드를 보유하고 있느냐가 그 사람의 경제적 지위를 나타내기도 하고, 각종 제휴와 혜택의 종류에 따라 사회적 욕망 더 나아가 시대정신을 엿볼 수 있는 창이 되기도 한다.

 

요즘처럼 '친환경'이란 말이 전가의 보도처럼 이용되는 시대에는 신용카드를 만드는 재료도 친환경 플라스틱을 사용하는 경우가 점점 늘고 있다. 신용카드 사용자들에게 '친환경 카드'라고 광고하며 주목을 끌고, 뭔가 개념 있는 소비자의 이미지를 덧씌우는 것이다. 하지만 친환경 플라스틱 문제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말 그대로 '정말 환경 친화적인가?'라는 기본적인 물음부터, '과연 마케팅의 목적을 제외하면 이를 통해 실질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무엇인가?'까지 여러 복잡한 질문들이 나올 수 있다.

 

그리고 친환경 플라스틱의 가장 대표적인 요소로 받아들여지는 '재생 가능한 원료' 또는 '천연재료'에 관한 부분도 사실은 그리 간단치 않다. 친환경 플라스틱 중에는 식량작물을 활용한 경우도 많은데, 전 세계적으로 굶어 죽는 사람들이 엄존하는 상황에서 플라스틱을 만들기 위해 식량작물을 재배한다는 건 비판받을 소지가 있다(식량 가격의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 게다가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한 대규모 재배와 광대한 토지 점유, 어마어마한 양의 물과 화학비료 사용, 더 나아가 유전자 조작 이슈까지 더해질 수 있다. 이 외에도 제조단계의 화학첨가물이나 폐기시점의 생분해 정도도 친환경 플라스틱 문제를 복잡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그렇다면 정말 해법은 없는 걸까? 수전 프라인켈이 말하듯이 오늘날의 세계에서 정답은 없다. 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향을 선택하고 꾸준히 노력할 수는 있다. 이는 우리 삶의 터전에서 지속가능성을 차츰 높이는 계속적인 '과정'의 측면에서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근본적으로 우리가 플라스틱과 맺는 관계를 재정립해야 하고(한 번 쓰고 버리면 곧장 쓰레기가 되는 일회성의 낭비적 플라스틱 감축), 애초에 사람들이 걱정을 할 필요가 없도록 관련된 법과 규정을 전면적으로 바꿔야 한다(이를 위한 '정치적 실천'도 요구된다).

 

일상생활에서는 물건을 살 때마다 항상 "이것이 정말 필요한가?"라는 물음을 던져야 하며, 과다하게 포장된 상품이나 재사용·재활용이 안 되는 제품은 구매를 보류하면 된다(이렇게 한 사람 한 사람의 힘이 모이면 시장을 움직일 수 있다). 그리고 상당 부분 플라스틱 섬유에 의존하는 '패스트패션(Fast fashion, 단기적인 최신 유행을 따라 저가격의 의류를 짧은 주기로 대량 생산하는 SPA 브랜드의 사업 방식)'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값싼 플라스틱 장난감과 마찬가지로 낮은 원료비용 및 저임금 노동 하에서만 낭비적인 패스트패션은 존재할 수 있고, 이로 인해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플라스틱 의류 쓰레기 역시 지구 환경에 부담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원론적으로 봐도, 어차피 일반적인 플라스틱은 화석연료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경제 하에서만 대량 소비가 가능하다. 화석연료라는 건 어쨌든 유한한 자원이고, 언젠가는 마구 사용할 수 없는 시대가 오기 마련이다(인류의 역사 전체로 보면, 화석연료의 혜택을 누린 기간은 무척 짧고 아주 예외적인 시기였으며 오직 한 번만 있을 수 있는 특별한 사건). 그래서 전 세계 국가들은 태양열이나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 비율을 어떻게든 높이기 위해 애쓰고 있으며, 최근에는 재생에너지 생산 비용도 획기적으로 낮아지고 있다. 결국 장기적으로 화석연료는 꼭 필요한 상황에서 꼭 필요한 만큼만 사용하게 될 테고, 이는 플라스틱도 마찬가지다.

 

플라스틱처럼 유용하고 편리한 물질을 우리는 지금까지 마구 낭비해 왔다. 이 책에서 수전 프라인켈이 균형감 있게 지적하듯이, 플라스틱은 낭비되기엔 너무나 가치 있는 물질이다. 인류 역사 내내 사람들은 물질을 재사용하고 재활용했는데(인류 역사 대부분의 기간 동안 사람들은 거의 쓰레기를 만들지 않았다), 도대체 왜 플라스틱은 그러지 않는가? 이제 지구 생태계에도 한계가 왔고, 더 이상 '쓰고 버리는 문화'는 유지될 수 없다. 바로 이 순간 플라스틱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플라스틱 사회]를 읽고, 과연 미래의 플라스틱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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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중고서점 수유점 오픈

 

커피프랜차이즈보다 중고서점이 더 좋은 이유.

 

요즘 거리에서 가장 흔한 게 바로 커피 프랜차이즈 매장이다. 1999년에 처음으로 국내 상륙한 이래, 2007년까지만 해도 2,300개 정도였던 매장수가 작년에는 거의 50,000여 개에 달하며 폭발적 증가세를 보여주고 있다(지금 어딜가나 눈에 띄는 편의점 점포수를 전국적으로 다 합쳐도 채 3만 개가 안 된다).

 

단 16년 만에 편의점보다도 훨씬 더 많은 점포수를 자랑하게 된 커피 프랜차이즈 매장은 유동인구가 많은 도심지에서 특히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한국 사람들은 평균적으로 1인당 매주 12번 넘게 커피를 마신다고 하며(김치보다 더 자주 먹는단다), 커피 수입량은 매년 최대치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이제 커피는 단순 신드롬을 넘어 하나의 문화로 확고히 자리를 잡았고, 앞으로도 사람들은 밥을 먹는 것만큼이나 커피를 자주 마시며 살아갈 것이다. 커피 프랜차이즈 매장에는 커피를 마시며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와 함께 책을 보는 사람들도 흔하게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맛있는 커피를 마시며 일도 할 수 있고 책도 볼 수 있는 도서관 형태의 매장이 교통 편리한 도심 곳곳에 생긴다면 어떨까?

 

 

인터넷서점 알라딘의 O2O 서비스, 중고서점

 

예전에 이 세상의 모든 일은 오프라인(offline)에서 이뤄졌다. 인간이 직접 상점에 가서 물건을 샀고, 매장마다 상품을 진열해 놨다. 그러다가 인터넷의 발달로 온라인(online) 사업이 출현했고, 사람들은 굳이 상점에 가지 않고도 가상공간에서 쇼핑을 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이제는 'O2O(online to offline)' 서비스가 급속히 발달하고 있다.

 

한마디로 '온오프라인 연결 비즈니스'가 바로 O2O인데, 주로 온라인에서 주문이나 조작으로 오프라인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만든 걸 의미한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배달주문앱이나 택시호출 애플리케이션 등이 이에 해당한다.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오프라인의 활동으로 온라인 서비스 이용)도 역시 넓은 의미에서 O2O 서비스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세계 최대 온라인쇼핑몰인 아마존(Amazon)은 오프라인서점 '아마존북스'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기존에는 온라인에서만 책을 팔았지만, 이젠 오프라인 매장에서도 아마존 회원들은 책을 구매할 수 있게 됐다. 이건 그냥 우리가 예전부터 흔히 봐오던 길거리 서점이다. 다만, 이곳은 아마존의 어마어마한 빅데이터를 이용한 O2O 서점이라는 게 다르다.

 

아마존은 온라인쇼핑몰을 통해 확보한 엄청난 양의 빅데이터를 활용해서 최적의 서점 입지를 선정하고, 온라인에서 반응이 좋은 책들을 엄선해서 오프라인에 진열한다. 아마존 북스는 애플 스토어와 같이 아마존기기를 경험해볼 수 있는 장소의 역할도 하고, 당연히 물류거점의 기능도 갖는다. 아마존은 장기적으로 300곳이 넘는 오프라인서점을 개장할 예정이라고 한다.

 

 

국내의 인터넷서점인 알라딘도 아마존북스와 성격은 조금 다르지만, 중고서점을 통해 나름의 O2O 비즈니스를 펼치고 있다. 알라딘의 오프라인 중고서점은 맛있는 커피를 마시며 일도 할 수 있고 책도 볼 수 있는 도서관 형태의 매장이다. 책의 순환이라는 중고서점 자체의 긍정적 의미와 함께, 직접 가보면 누구나 그렇게 느끼겠지만 웬만한 커피 프랜차이즈 매장보다 환경이 더 낫고 또 웬만한 작은 도서관보다 더 다양한 책들을 볼 수 있다.

 

올해 5월에 새로 개장한 알라인 중고서점, COFFEE 수유점

 

알라딘 중고서점 수유점은 5월에 개장했다. 수유역 2번 출구 바로 앞에 위치해 있는데, 수유역(강북구청도 여기에 있다)에 와본 사람들은 다 알듯이 이 주변은 유동인구가 많은 강북의 대표적 도심지다.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도서관은 역세권에서 좀 떨어져 있는 경우가 많은데, 알라딘 중고서점 수유점은 지하철역 출구와 진짜 가깝다.

 

 

얼마나 가깝냐 하면, 비가 오는 날도 수유역 2번 출구에서 우산 없이 중고서점으로 뛰어 들어갈 수 있을 정도다. 절대 길을 헤맬 염려가 없고, 지하철만 타면 금방 도착할 수 있다. 아마 서울 시내에 있는 그 어떤 도서관보다 교통이 더 편리하지 않을까 싶다.

 

 

알라딘 중고서점 COFFEE 수유점은 2층에 있고, 개점 시간은 오전 9시 30분부터 밤 10시까지다. 건물 입구로 들어가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벽에는 윤동주, 김유정, 이상, 헤밍웨이, 버지니아울프, 카뮈 등의 초상화와 함께 유명한 문장들이 줄지어 붙어 있다.

 

 

건물 2층으로 올라가면 흰 문이 활짝 열려 있고, 깔끔한 매장과 계산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들어가자마자 왼쪽에는 센스 있는 안내판이 붙어 있으며, 오른쪽에는 매장내에서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바구니가 놓여 있다. 매장에 들어서는 바로 이 순간부터 알라딘 중고서점의 세심한 배려에 한껏 놀라게 된다.

 

 

 

예전에 중고서점에서는 책 찾는 게 그리 녹록지 않았지만, 알라딘 중고서점에서는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 요즘의 대형서점과 마찬가지로 편한 검색 시스템이 완비되어 있고, 스마트폰으로 검색해서 원하는 책을 찾을 수도 있다. 역시 인터넷서점에서 출발한 O2O 서비스의 진가가 여기서 발휘된다.

 

 

그리고 공식 명칭에 중고서점과 COFFEE가 함께 들어간 것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알라딘 수유점의 가장 큰 특징은 '도서관+카페'다. 카페만큼 분위기도 좋고, 가격대도 딱히 더 비싸지 않다. 그냥 혼자만의 생각일지 모르겠지만, 일반 커피 프랜차이즈보다 중고서점 카페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더 친절하고 표정이 밝은 것 같다.

 

 

 

특히, 커피 또는 음료 주문시 쿠키 1개를 같이 준다는 게 참 마음에 들었다. 이곳은 그 특성상 책을 읽으면서 차를 마시는 사람들이 많을 텐데, 그러다 보면 오랜 시간 앉아 있는 경우가 자주 있을 것이다. 덤으로 주는 쿠키는 이를 위한 특별한 배려 아닐까.

 

 

 

다른 커피 프랜차이즈와 마찬가지로 주문을 하면 알림벨을 주는데, 알라딘 램프가 새겨진 게 아주 귀여웠다. 아마도 알라딘의 이름을 내걸고 직접 운영하는 카페여서 가능한 일일 테고, 책을 보는 사람도 아무런 눈치를 볼 필요 없이 마음 편하게 앉아 있을 수 있다.

 

 

주문한 카모마일 차와 함께 멋진 트레이(아는 사람은 다 안다는 '알라딘 굿즈'다)에 담긴 쿠키가 나왔다. 갓 구운 쿠키라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참 맛있었다. 돈을 지불하고서라도 더 먹고 싶을 정도로 맛이 괜찮은 쿠키였고, 여름의 시원한 카모마일도 좋았다.

 

그 자리에서 조금만 고개를 돌리면 채광이 일품인 넓은 창이 보인다. 알라딘 중고서점 COFFEE 수유점은 지하가 아니라 2층이어서 채광이 특히 훌륭하고, 해가 지면 지하철역을 분주히 오가는 도시인들의 저녁도 구경할 수 있을 테다.

 

 

각 자리에는 모바일시대에 걸맞게 일반 콘센트 충전구와 USB 충전단자가 다 설치되어 있다. 간혹 커피 프랜차이즈 매장에 가도 제대로 설비가 갖춰지지 않은 곳들이 있는데, 이번에 새로 개장한 알라딘 중고서점은 이런 부분까지 다 세심하게 신경을 써놨다.

 

 

그리고 중고서점 본연의 역할에도 충실하게 책마다 정가와 중고 판매가가 친절하게 다 붙어있다. 자기가 원하는 책을 검색해서 찾은 다음에 바로 옆에 있는 카페에서 읽을 수 있고, 또 그 자리에서 곧장 가격을 확인해서 구입할 수 있는 편리한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다.

 

 

어쨌든 시작은 중고서점이라 카페에는 좀 소홀할 수도 있을 텐데, COFFEE 수유점은 '오늘의 커피'까지 제공하는 꼼꼼함을 보여준다. 아마도 처음 기획단계에서부터 커피 프랜차이즈 못지 않은 서점을 준비한 게 아닌가 싶고, 확실히 맛있는 커피를 마실 수 있는 도서관 콘셉트는 탁월했다.

 

 

인터넷서점의 O2O 서비스답게, 중고도서의 구매 및 매입은 적립금과 직결된다. 내부 카페에서 차를 마셔도 간단한 회원 확인 절차를 거치고, 여타 온라인 서비스와 마찬가지로 본인의 이메일을 통해 이용 내역을 알려준다. 바로 이런 부분들이 앞서 말한 '온오프라인 연결 비즈니스'의 대표적인 형태인 셈이다.

 

 

 

 

알라딘 중고서점 COFFEE 수유점에서는 책뿐만 아니라 각종 음반과 DVD·블루레이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 알라딘이 직접 매입하고 관리하기 때문에 그 상태도 퍽 준수하고, 꽤나 다양한 상품들이 구비되어 있다. 밝은 매장에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는 중고 물품들은 일단 믿음이 간다.

 

 

알라딘의 전매특허, 다양한 알라딘 굿즈도 현장에서 직접 살펴보고 구입할 수 있다. 알라딘을 이용해 본 사람들은 익히 알고 있겠지만, 알라딘 굿즈는 그 퀄리티가 남다르고 굉장한 인기를 얻고 있다. 그저 대충 만들어 사은품으로 끼워주는 허접한 물품들과는 비교 자체를 불허한다. 오죽하면 알라딘 굿즈를 받기 위해(매달 증정 이벤트가 열린다) 인터넷으로 얼마 이상의 책을 구입하는 이들도 있을 정도다.

 

 

 

그리고 알라딘 중고서점의 섬세함이 또한번 빛을 발하는 지점이 있다. 중고책 팔기가 생소한 이들을 위해 관련 안내 표지도 붙어 있고, 매장 한 쪽에 전용 창구가 마련되어 있다. 은행에서처럼 순번대기표까지 받을 수 있으며, 중고책 구입과 판매가 원활히 이뤄질 수 있도록 일반 대형서점 수준의 직원들 여러명이 계산대에서 도움을 준다.

 

 

여기까지는 COFFEE 수유점의 좋은점만 얘기했지만, 물론 옥의 티도 있다. 매장 끝에는 편하게 책을 읽을 수 있는 긴 테이블이 있고, 그 뒤편에는 화장실이 보인다. 그런데 전반적으로 세심한 배려가 돋보이는 이곳에서 유독 화장실만은 상당히 불편했다. 매장 규모에 비해 너무 작았고, 바로 앞에 책 읽는 테이블이 있는데도 문이 열려 있었다.

 

 

화장실을 이용하기 전까지는 전부 만족스러운 이미지였는데, 이용 후에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정말 하나 하나 다 섬세하게 신경을 쓴 흔적이 역력했지만, 비좁은 화장실만은 칭찬을 해줄 수가 없다. 중고서점에서 오랜 시간 책을 보고 차를 마시다 보면 당연히 화장실을 가게 될 텐데, 수유점의 화장실은 향후에라도 어떤 식으로든 개선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커피 프랜차이즈만큼이나 중고서점이 많이 생긴다면?

 

알라딘 중고서점 COFFEE 수유점을 이용하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됐다. 일단 가장 먼저 든 생각은 한마디로 참 잘해놨다는 거다. 전체적으로 웬만한 커피 프랜차이즈보다 나은 환경이었고, 각종 도서와 음반 및 블루레이까지 저렴하게 구입하고 팔 수 있으니 사실 훨씬 더 장점이 많은 셈이다. 그리고 책의 순환을 이루는 중고서점 본연의 유익함도 있다.

 

커피 프랜차이즈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여기서도 모두 다 할 수가 있다. 하지만 커피 프랜차이즈에서는 도서관처럼 책을 찾아서 볼 수는 없지 않은가? 반대로 도서관에서는 일반적으로 책을 보면서 차를 마실 수는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도서관 내의 카페테리아로 자리를 옮겨야 하고, 보던 책은 그 자리에 그대로 둬야 한다.

 

게다가 기존 도서관에 비해 교통도 훨씬 편리하고, 채광이나 인테리어 등 내부 환경도 더 나은 편이다. 물론 규모 면에서는 그리 만족할 만한 수준이 못될 수도 있지만, 인터넷서점의 특성상 최근에 나온 책의 상대적인 비중은 별로 부족하지 않을 듯하다. 그러니 알라딘 중고서점은 커피 프랜차이즈와 도서관의 장점을 모아놨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이런 상상도 한 번 해봤다. 만약 도심에 커피 프랜차이즈만큼이나 중고서점이 많이 생기고 사람들이 자주 이용한다면? 위에서 말한 바대로 편의점보다 점포수가 더 많은 게 커피 프랜차이즈인데, 이렇게 엄청나게 많은 매장들이 중고서점의 역할도 한다면 뭔가 사회가 달라질 수도 있지 않을까? 어쩌면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수준이 좀 높아질 수도 있을 것이다.

 

단순히 책을 많이 읽자는 게 아니라 하나의 문화로서, 도심지 카페가 그저 커피만 마시기보다는 평소에 쉽게 보기 힘든 다양한 책을 접하는 장소로 변모할 수도 있지 않은가? 어차피 비싼 임대료에도 불구하고 한 건물 건너 하나씩 커피 프랜차이즈가 자리잡고 있는데, 극심한 포화상태에 이른 현재 상황에서 그 방향성 자체를 좀 전환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금 O2O 서비스는 첨단의 IT 흐름이고, 앞으로도 더욱 확대될 것이다. 알라딘의 중고서점과 같은 사업모델이 더 발달해서 곳곳에 유사한 매장들이 생길 수도 있고, 책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다른 문화콘텐츠를 편하게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더 많아진다면 우리 모두에게 긍정적인 일 아닐까? 알라딘 중고서점을 통해 그런 가능성을 엿볼 수 있어서 좋았고, 앞으로도 COFFEE 수유점에 자주 방문할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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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스트 Axt 2015.7.8 - 창간호 악스트 Axt
악스트 편집부 엮음 / 은행나무 / 2015년 7월
평점 :
품절


한국문학을 거의 읽지 않는 2015년에 이런 책이 나왔다는 게 놀라움.
특히, 매번 표지로 등장하는 작가와의 흥미로운 인터뷰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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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건 부두로 가는 길 - 조지 오웰 르포르타주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 한겨레출판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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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으로는 되지만, 취향으로는 안 된다는 것의 의미. 소위 말하는 강남좌파의 맹점이 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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