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랑 소설집 『옥상에서 만나요』 수록 소설

「효진」 2회


내가 사는 방은 도로변 건물의 5층인데, 내진 설계 때문에 조금 큰 트럭만 지나가도 흔들려. 피곤한데도 좀처럼 잠들 수가 없어. 여전히 못 믿겠지? 그렇게 죽은 듯이 자던 내가 자꾸 깨. 그런 밤에는 여러가지를 생각해. 고등어 낚시를 나갔다가 참다랑어 떼를 잡았다는 뉴스 속 어부 아저씨들이 계속 럭키하기를 바라기도 하고, 병뚜껑이 목에 걸려서 죽었다는 테네시 윌리엄스의 마지막 기분을 가늠해보기도 하고, 뜻은 잘 모르지만 「Iko Iko」를 부르기도 해. 특히 가을에는 돼지풀 알레르기가 심해서 더 못 자. 숨을 못 쉬겠어. 서울에선 없었는데 도쿄에 아마 돼지풀이 더 많은 거겠지. 이름도 안 예쁘고 생긴 것도 안 예쁜데 꽃가루를 엄청 날리나봐. 어차피 고생할 거면 조금 분위기 있어 보이는 풀이었으면 해. 하고많은데 돼지풀이라니.


아르바이트가 세개면 어떻게든 잠들어야 하기 때문에 한두가지 방법을 체득했어. 아무 상관이 없는 단어들을 연달아 생각하면 다시 잠들 수 있을 때가 있어. 이를테면 단추, 래브라도 레트리버, 오간자, 쇄빙선, 고무나무, 분무기, 그리스정교회, 줄자, 파인애플, 열풍기, 나방, 슬리퍼…… 연관성이 없고 패턴이 없어야 해. 그러면 뇌가 지루해지는지 잠들어.


그래도 잠들지 않으면 피곤한 발에 새 신을 신는 상상을 반복적으로 하는 거야. 아주 푹신한 새 신이어야 해. EVA 아웃솔에 라텍스 인솔이라서 신는 순간 신음이나 탄성이 나올 정도로 편한 종류 말이야. 그런 신발을 상자에서 꺼내 처음으로 신는 상상을 계속 계속하면 좋은 꿈을 꿔. 혹시나 잠이 잘 오지 않으면 해봐.



너도 그렇니? 밤늦게 오는 연락, 이젠 잘 없잖아. 아빠만 여전해. 술에 취해서 새벽에 메시지를 보내지. 워낙에 그런 사람이니까. 내 이름을 효도 효에 다할 진으로 지은 것부터가 이기적이지 않아? 신생아에게 그런 명령어를 입력하다니 너무하잖아. 자발적으로 효도할 마음은 전혀 생기지 않는 이름이야. 심지어 효나 진이 항렬자인 것도 아냐. 오빠한테는 항렬자를 써놓고 나는 새로 지었어. 아빠 때문에 메신저 프로그램을 지웠다 다시 깔았는데, 그러고 보니 무음 기능이 있더라.


아빠는 술만 먹으면 ‘사방 백리 안쪽의 남자만 진짜 남자’랬어. 나머지들은 뼈대가 약하고 피가 흐려 계집애나 다름없다는 게 일관된 주장이었지. 오빠에게라면 몰라도 계집애인 나한테 그런 얘기를 해봐야 어쩌란 건지, 자라는 내내 그랬지.


너를 한번도 고향집에 초대하지 않은 건 아빠 때문은 아니야. 아빠는 손님 대접은 또 잘해. 그보다는 재미도 없고 풍경이 빼어난 것도 아니고 특산물도 없는 동네여서였어. 심지어는 외식을 할 수 있는 식당이 두세군데밖에 안되었는데 모조리 맛이 없었어. 가장 오래된 가게는 동태찌개집이었는데 맛도 맛이지만 가끔 고기 안쪽이 차가울 때가 있었어. 경양식집의 돈까스는 부직포 행주를 씹는 것 같았고. 가끔 친구들이랑 동네를 가장 먼저 뜨는 사람이 그 식당들의 문을 열어젖히고 더럽게 맛없다고 외치고 떠나자고 약속할 정도였어. 그런 약속을 다섯번쯤 했지만 떠날 때가 되어선 다들 말없이 떠나거나 아예 떠나지 못했지. 볼거리가 하나쯤은 있지 않겠냐고? 아, 오래된 절이 하나 있긴 했는데 고려시대에는 꿋꿋하게 삼국시대 불상을 만들고 조선시대에는 꿋꿋하게 고려시대 불상을 만들어서 미술사적으로 의미는 있다더라. 절 뒤의 절벽에 부조로 새긴 관세음보살의 얼굴마저 대자대비함과는 거리가 멀게 완고했어. 여차하면 크게 혼낼 것 같은, 무언가를 끝없이 거부하는 표정이었지.


어릴 때 나는 내내 소포만 기다렸어. 서울로 시집을 간 이모들이 사촌들이 다 읽은 전집을 보내줄 때마다 과자 세트도 보내줬거든. 서울에 흩어져 살던 세 이모는 각자 다른 과자점에서 오래가는 쿠키 박스를 골랐어. 무슨무슨 당이라는 오래된 가게도 있었고 프랑스 장군의 이름을 딴 가게도 있었고 당시엔 유행했지만 지금은 없어진 체인점도 있었어. 가끔은 남대문 수입상가에서 샀을 외국 과자들도 있었고. 방학이 되면 서울에 직접 가기도 했어. 이모들과 아빠가 크게 싸우기 전까지는 말이야. 서울에 가지 못하게 된 후로는 소포를 더 간절히 기다렸어. 책도 반가웠지만 열자마자 쿠키를 맛별로 하나씩 골라뒀지. 아빠와 오빠가 쿠키 몬스터처럼 먹어치울 테니까 미리 확보해둬야 했어. 종이 박스가 아니라 양철 캔이면 내 차지였기 때문에 그 예쁜 통들은 보물이 되었어.



이미 먹은 지 한참 된 과자의 맛을 복기하면서, 자랄수록 어떻게든 서울에 가겠다고 반복해서 결심했어. 어느 순간부터는 사투리도 쓰지 않았어. 혀가 먼저 서울에 갈 준비를 했던 것 같아. 다행히 재수하지 않고 한번에 붙었지. 재수를 하면서, 집에만 있으면서 그 동네에 머무는 건 상상하기도 싫었기 때문에 절박했거든.


그런데 대학에 보내주지 않겠다고 했어. 내내 준비하고 지원하고 논술과 면접을 보러 서울에 다녀온 것까지 다 봐놓고는 아빠가 딴소리를 했어. 돈 때문은 아니었어. 물론 버거운 돈이긴 하지만 아빠는 할아버지가 물려준 벽돌공장 터가 비싸게 팔려서 여유가 있을 때였거든. 오빠만 해도 부족함 없이 세시간 거리 대도시에서 대학생활을 하고 있었고. 오빠보다 공부를 잘했던 게 아빠의 어딘가를 자꾸 건드렸던 걸 몰랐던 건 아니지만 그렇게까지 나올 줄이야. 아무래도 서울은 아닌 것 같다, 통학할 수 있는 학교로 내년에 다시 봐라, 그보다 대학을 꼭 가야 하겠냐. 나는 구운 머랭처럼 하얗게 굳어서 앉아 있었지. 울며불며 패악을 떨어볼까 했는데 그럴 힘도 나지 않았어. 아빠가 어깃장을 놓기 시작하면 끝도 없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아빠의 눈에는 내가 온전한 한 사람이 아니란 걸 터득한 지는 벌써 오래여서 결국 오빠한테 전화를 걸었고, 소환되어 온 오빠가 나 대신 싸웠어. 건성으로 싸웠는데도 아빠를 설득해냈어. 오빠의 결정적인 한마디는 ‘남들이 흉본다’였지. 어릴 때 내내 때리고 괴롭혔던 걸 그 설득으로 갚았다고 생각해.


집을 떠나면서 나는 명절에도 돌아가지 않는 애가 되겠다고 마음먹었어. 띄엄띄엄 돌아갈 때마다 마음이 누그러지기는커녕 거기가 내 집이 아니란 것만 더 확실해졌어. 스무살 때부터 나의 끝없는 불효가 시작된 셈이야. 입학하자마자 너를 만나서, 너와 같이 살면서 완벽한 파트너까지 얻었지. 내 목표는 두가지였어. 하나는 서울의 가장 탁월한 디저트들을 한번씩 먹는 것. 계절 따라 꽃처럼 피었다가 사라지는 가게들을 놓치지 않고 추적해서 대표 메뉴와 숨은 메뉴를 다 먹어보고 기억하겠다고 말이야. 나머지 하나는 아빠가 그렇게 무시하는 타 지역에서 서울로 몰려든, 포장지가 다르고 알맹이가 다른 남자애들을 모조리 만나보는 것이었어. 만나보고 맛보기. 나는 그렇게 팔도 컬렉터가 되었고, 너는 계획적이었던 건 아니지만 경험 없는 남자애들만 계속 만나서 체리 컬렉터가 되었으니 우린 정말 딱 맞는 콤비였다고 생각해.


내가 가장 많이 좋아했던 남자애는 섬에서 온 아이였구나. 근이가 자란 곳은 전복 양식장으로 유명한 섬이었고 거기서도 가장 큰 양식장 집 아들이랬지만 처음엔 전혀 몰랐지. 나는 근로장학생이라 도서관 출입구에서 추위에 떨고 있었고, 너는 논술 과외를 하며 학생들이 800자짜리 길쭉한 원고지를 채우는 동안 졸곤 하던 2학년 때였어.


근이를 만난 건 학기 초였어. 아직 익숙하지 않은 시간표를 착각해서 수업에 늦었는데, 횡단보도 가운데 하필 맨홀 뚜껑이 있었고 키튼 힐의 굽이 딱 끼어버렸지. 중심을 잃은데다 당황해서 어정쩡하게 서 있는데 뒤에서 오던 근이가 그걸 빼주었어. 속도를 멈추지도 않고 아주 빠르고 단호한 손으로 굽을 빼주고는 그대로 가버렸지. 어찌나 효율적으로 움직였는지 5미터 바깥에서 내게 닥친 작은 재앙을 미리 알아챈 것 같았어. 눈이라도 맞추고 생색이라도 냈다면 반하지 않았을 텐데 한번 쳐다보지도 않고 가버렸어. 감사 인사도 제대로 듣지 않고 말이야. 어쩐지 그게 좋았어. 생색의 시옷 자도 모르는 넓고 차가운 어깨가, 헤어라인이 명확한 목덜미가. 보폭이 큰 아이였기 때문에 나는 겨우 근이가 들고 있던 책 제목만을 확인할 수 있었지. 학교 도서관 도장이 찍혀 있어서 얼른 봤거든. 좀 멋진 책이면 좋았을 텐데 당시 유행하던 가벼운 자기계발서였지만 그래도 대출 정보를 조회할 수 있었던 게 어디야. 네명이 그 책을 대출 중이었지만 남자 이름은 근이뿐이었기 때문에 이름과 과와 학번을 알 수 있었어. 그 과 다른 사람을 통해서 근이의 시간표를 알아냈고 교양 강의를 같이 들으며 우리는 천천히 근이를 포획했지. 한 학기를 통째로 쏟아부은 작전이었어.



웅, 용, 근 같은 너무 수컷 이미지를 풍기는 이름은 싫다고 투덜거리면서도 너는 함께 그물을 쳐줬어. 매번 근이와 가까운 자리를 확보했고, 나 대신 조별 과제를 함께하자고 시큰둥하게 말을 건넸지. 근이는 아마도 여전히 우연하게 친해졌다고 믿고 있을 거야. 발표를 같이 해서, 나이가 같아서 친해졌다고 그렇게.


휘적휘적 사라지던 뒷모습만큼이나 앞모습도 보기 꽤 괜찮았고, 잘생긴 얼굴에서 나오는 어마어마한 사투리가 더 매력이었어. 나는 그때 이미 사투리가 오히려 어색하게 들렸는데, 근이는 전혀 고치지 않았어. 그후의 직업 선택을 생각하면 근이야말로 사투리를 일찍 고쳤어야 했는데 말이지. 근이는 뭘 해도 자연스러운 사람이었어. 너는 근이의 그런 면에 대해서 억눌린 데나 뒤틀린 데가 없다고, 사랑받고 속 편하게 자라서 그렇다고 했지. 나같이 오류가 많은 여자애는 그렇게 내부구조가 단순한 남자애를 만나는 게 맞을 거라고도 했어. 오류가 많다니, 살짝 발끈하면서도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나.


니는 지금 이해를 하나도 못허고 있다아. 교수님 말씀을 듣기는 허냐. 갑갑하다아. 근이가 말하는 것도 좋았고, 네가 근이 흉내를 너무 잘 냈기 때문에 그것도 끊임없이 우리를 웃게 했어. 근이가 방학 때 아버지 차를 몰래 타고 나왔다가 빗길에 전복시켜버렸을 때도, 그 상황에서 서울에 있는 나에게 전화해 우쩐다냐아, 우쩐다냐아, 하고 노래 부르듯이 길게 말했기 때문에 참지 못하고 웃어버렸어. 어떻게 근이와 관련된 모든 일에는 즐거울 수 있었을까. 기본적으로는 돈 때문이었을까? 근이 지갑엔 반으로 접히지 않을 만큼 현금이 많이 들어 있었잖아. 언제나 두꺼웠지. 5만원권이 나오기 전이라서 더 그랬겠지만 놀라울 만큼 두꺼웠어. 전복은 비싸니까. 비싼 조개니까. 돈이 있다고 누구나 주변에 베푸는 건 아닌데 근이는 정말 기분 좋게 돈을 썼어. 전복의 안쪽 같은, 그런 무지개 같은 분위기가 근이에게 있었어. 조개껍데기 돈을 쓰는 것처럼 호쾌했지. 가난한 친구들을 매일 거둬 먹이면서도 보답을 바라거나 치사하게 군 적은 한번도 없었어. 우리가 먹고 난 자리에는 조개 무덤이 생길 것 같았잖아. 바구미가 생긴 묵은 쌀만 먹다가, 근이와는 포식을 했으니.


-다음화에 계속-


에게 설레는 이름이 된 작가 정세랑 첫 소설집!

“적당히 차가운 곳으로 도망쳐 잠시 숨을 고르는 것,

거기서 얻는 것들은 분명히 있어. 옥상에서 만나, 시스터.


장편소설 『이만큼 가까이』로 창비장편소설상을, 『피프티 피플』로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하며 한국 장편소설에 새로운 활력을 더해준 작가 정세랑이 드디어 첫번째 소설집을 출간한다. 2010년 작품활동을 시작한 이래 8년 만에 선보이는 이번 소설집은 결혼과 이혼, 뱀파이어, 돌연사 등 다양한 소재를 통해 신선하고도 경쾌한 상상력을 펼쳐놓는다. 보이지 않는 폭력과 부조리에 맞서는 매력적인 인물들은 정세랑 특유의 명랑한 필치에 실려 지금 이곳에서 함께 견디는 이들에게 따듯한 연대의 힘을 보여준다. 이번 소설집은 또한, 표지 일러스트를 맡은 『며느라기』 수신지 작가와의 컬래버레이션으로 기존 독자들의 기대를 한층 높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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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랑9 2018-11-13 14: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곤조곤 말하는 듯한 문체가 좋아요. 재밌게 읽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