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가 묻고 성경이 답하다
차준희 지음 / 도서출판CUP(씨유피)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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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게 믿다"는 히브리어로 '아만'이다.

'아만'하지 않으면 '아만'을 경험하지 못한다.

즉 "아멘을 해야 아멘을 경험할 것이다"라는 말이다(38).

구약신학의 권위자이자, 명강의로 유명한 차준희 교수님의 흔치(!) 않은 설교집을 만나볼 수 있어서 반갑고 감사했습니다. 이 책, <성도가 묻고 성경이 답하다>는 "설교로 하나 되는 시간 : CBS 올포원"에서 방송된 설교 원고를 다시 다듬은 것이라고 합니다. 워낙 강의뿐 아니라 설교가로서도 학생들에게 인기가 높았는데, 여기에서도 명쾌한 성경 본문 해설은 물론이고, 교수님 특유의 유머와 듣는 이들의 기억에 메시지를 각인시켜 주는 톡톡 튀는 표현, 그리고 말씀을 생활로 가지고 오는 따뜻하고 탁월한 적용까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말씀을 들었습니다!

신학적인 탁월함을 지향하는 학자들 중에는 논쟁을 불러일으킬 만한 것이나, 신앙의 근간을 뒤흔드는 주장을 즐기는 분들도 많은데, 차준희 교수님은 오히려 냉정한 신학적 기반 위에서 진리가 가져다주는 뜨거운 불꽃에 늘 집중하시지요. 그런 뜨거운 불길이 이 책 안에서도 활활 타오르고 있습니다. 감히 교수님의 설교를 평할 수 있다면, 탁월한 지성과 감성과 영성으로 영혼을 울리는 이 시대의 성경신학자라고 한 줄 적어보고 싶습니다. "이런 까닭에 마틴 루터는 그리스도인을 가리켜 '이상한 새'라고 불렀나 보다. 도무지 노래할 형편과 처지가 아님에도 노래 부르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이다"(47). <성도가 묻고 성경이 답하다>는 그리스도인들의 정체성을 '아무 때나 노래하는 이상한 새'라고 정의하는데, 이 표현이 제 가슴을 다시 한번 울렸음을 고백합니다.

우리의 시선이

하나님께서 쓰시는 '하나님의 종'이 아니라,

그 종을 사용하시는 '종의 하나님'을 향하게 하소서(110).

<성도가 묻고 성경이 답하다>는 신앙의 기본기부터 삶의 현장에서 맞닥뜨리는 신앙의 문제까지 다양한 질문들에 답하고 있습니다. 그 대답이 매우 성실하며 깊이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좋았던 점은, 매번 성경을 더 깊이 이해하고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몇 가지가 있는데, 그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여호수아'라는 이름은 "성경에 등장하는 이름들 가운데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인 야웨와 연결된 최초의 이름이다"(115)는 것과, "삼손에 대한 평가에서 큰 오해를 주는 본문이 있다"(123)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말 개역개정 성경의 잘못된 번역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을 다스린 까닭에 삼손이 틈을 타서 블레셋 사람을 치려함이었으나 그의 부모는 이 일이 여호와께로부터 나온 것인 줄은 알지 못하였더라"(사사기 14:4)

"삼손이 틈을 타서 블레셋 사람을 치려함이었으나"는 히브리원문에 의하면, 주어가 '삼손'이 아니라 '그'이다. 이 문맥에서 그는 삼손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다. 즉 블레셋을 칠 기회를 찾고 있는 분은 삼손이 아니라 야웨 하나님이시다. 적어도 사사기 14장 4절에서 삼손은 등장하지 않는다(123).

성경을 읽을 때마다,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었는데, 명쾌하게 풀어주니 침침했던 눈 앞에 환해지는 느낌입니다! 성경 말씀이 명쾌하게 풀어질 때마다, 우리의 시선을 하나님께로 향하게 만드니, 명설교임에 틀림없습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가인아,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성도가 묻고 성경이 답하다>의 가장 큰 유익을 하나만 꼽으라고 한다면, 성경적 통찰력으로 우리 삶을 해석하는 눈을 키워주는 것이라고 대답하고 싶습니다. 이 책을 통해 또 한번 눈이 열렸던 부분은, 하나님께서 모든 인류에게 주신 두 가지 질문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두 가지 질문은 오늘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이 두 가지 질문에 대해 매일 매일 답을 채워가는 삶을 사는 것이다. 오늘도 하나님 앞으로 한 걸음 더 다가가고(경건), 내 이웃 앞으로 한 걸음 더 다가가는 삶을 살아야 한다(돌봄). 경건과 돌봄. 우리가 모두 하나님 앞에 설 때 아마도 이 두 가지가 심판의 기준으로 주어질 것이다"(204).

<성도가 묻고 성경이 답하다>는 '진리'가 내 안에서 깨우쳐지는 기쁨과 함께, 하나님의 이야기에 내 삶을 조율하도록 인도해줍니다. 탁월한 설교는 탁월한 성경 이해에서 나온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됩니다. 신앙의 기본기를 다지면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하나님의 불꽃으로 뜨거워지고 싶은 성도들에게 이 책의 일독을 권하고 싶습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말씀에 빠져 들게 되리라고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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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의 영성 게리 토마스의 일상영성 4
게리 토마스 지음, 윤종석 옮김 / 도서출판CUP(씨유피)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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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성만이 아닌 존재의 변화,

고백만이 아닌 체험의 변화,

신봉만이 아닌 실존의 변화!

거룩함의 정의는 시대마다 달랐는데, 한때 교회는 거룩함의 극치를 신앙을 위해 죽는 것(순교)이라 여겼고, 그 몇 세기 후에는 금욕적인 삶이 거룩함으로 통했고, 중세에 이르면 거룩함은 '기적을 행하는 사람'과 동의어가 되었으며, 그보다 몇 백 년 더 지나서는 '지극히 거룩한 사람들'이란 강력한 전도 사역을 펼친 사람들이었습니다(289-290). 현대는 어떨까요? 게리 토마스는, 거룩함을 보는 현대의 시각은, 다분히 도덕성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고 꼬집으며, 다음과 같이 '거룩'의 진정한 의미를 새롭게 일깨워줍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금주, 순결, 책임감 있는 재정 관리 등에 매료되도록 설계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우리를 그분께 매료되도록 지으셨다. … 우리는 한낱 순종 자체가 아니라 뜨거운 관계로 부름 받았다. … "모든 영적 승리의 비밀은 유혹과 장애물을 바라보지 않고 주 예수를 바라보는 것이다." 사춘기 취향으로 들릴 위험이 있지만, 이 아름다운 싸움의 기초는 그리스도께 확실히 미치는 것이다"(293).

게리 토마스의 <거룩의 영성>은 우리 삶에 우호적으로 침입하시는 '승천하신 그리스도'를 체험하는 것이며,이렇게 우리 영혼에 행하시는 하나님의 활동에 의해 우리는 세상 가운데 하나님을 보여 주는 영광을 누리게 되는데, 이때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와 지혜와 능력이 더 잘 드러나도록 우리를 열어드릴 책임이 있다고 강조합니다. 이러한 삶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 삶을 뚫고 들어오는 '변화'가 수반될 수밖에 없는데, 게리 토마스는 <거룩의 영성>을 통해,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의 동의어는 바로 '변화'임을 일깨워줍니다. 그리고 이 아름다운 '변화'야말로 주님이 의도하신 '거룩'이라고 정의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확장에, 아름다운 싸움에 동참할 수 있다. 그러려면 이 땅에 계실 때의 그분의 삶을 본받는 것뿐만 아니라 지금 우리 안에 계시며 삶을 변화시켜 주시는 그분의 역동적인 임재에 복종해야 한다. 우리가 보고 듣고 생각하고 느끼고 말하고 섬기는 방식이 그분을 통해 달라져야 된다"(66).

성인이 되는 데 필요한 자제는 모든 삶 속에 있다. 사용하기만 하면 된다. … 꼭 나무 위에 달려야만 십자가형이 아니다. 근거 없는 비방을 온유하게 받아 주는 것도 십자가의 죽음이다. 꼭 나환자에게 입을 맞춰야만 자기훈련이 아니다. 지독히 싫은 사람에게 친절하고 따뜻하게 대하려는 진실한 노력도 그런 훈련이다. 꼭 이교 판사 앞에서 순교를 당해야만 혹독한 시험이 아니다. 느닷없는 욕을 겸손히 받아들이거나 부당한 일을 즉각 진심으로 용서하는 것도 그런 시험이다(R. 소머셋 워드, 357).

우리가 '거룩'을 오해할 때, 신앙생활은 무거운 짐이 되고, 하나님의 법은 지루하고 답답한 금기가 되고, 교회는 매력을 잃은 집단이 되고 맙니다. 그러한 거룩은 추구하면 추구할수록 오히려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지 못하는 종교인을 배출하고, 결국 그리스도 없는 그리스도인의 삶에 빠지게 만드는 치명적인 덫이 되고 맙니다.

게리 토마스의 <거룩의 영성>은, 내가 무엇을 조심하고, 무엇을 하지 않아야 하느냐, 무엇을 해내야 하느냐 보다,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며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 통치하시고, 행동하시고, 말씀하시고, 인도하시며, 자신의 교회를 세우고 계시는 일에 집중하게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추구해야 하는 거룩의 영성은, '나'를 통해 자신을 나타내시는 승천하신 그리스도를 체험하는 일이며, 게리 토마스의 표현대로 하면, 이것은 "하나님의 영광의 물벼락을 맞는 일"입니다. "우리를 그분처럼 되게 하려고 그분이 우리처럼 되셨다"(아타나시우스, 38).

"이것은 참으로 달려 볼 가치가 있는 유일한 경주입니다"(딤후 4:7, 메시지성경)

변화의 주체는 하나님이시지만, 우리도 변화시켜 주시는 하나님께 자신을 맡길 책임이 있는데, <거룩의 영성>을 이것을 '아름다운 싸움'이라고 소개합니다. 하나님의 '거룩'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싸움이 달라질 것입니다. 나 자신의 열심과 능력을 의지하여 무엇인가 보여 주려고 애쓰는 싸움을 할 것인가, 아니면 그리스도의 임재와 지혜와 능력에 나 자신을 열어 드리는 싸움을 할 것인가! 이 두 싸움은 천국과 지옥만큼이나 다른 싸움입니다. 한 싸움이 결과가 탈진과 좌절이라면, 다른 싸움의 결과는 하나님의 영광의 물벼락을 맞는 일이니까요!

게리 토마스의 <거룩의 영성>은 우리를 통해 세상을 만지시는 하나님을 더 의식하게 만들어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에 우리를 온전히 내어드리고자 할 때, 우리 삶에 더이상 '평범한' 사건과 '평범한' 관계는 없다는 사실을 기쁘게 깨닫게 해줍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모든 사건과 모든 관계가 하나님을 더 잘 드러낼 수 있도록 우리의 성품을 빚으시는 하나님의 신비로운 도구임을 인식할 때, '날마다' 하나님의 능력과 임재를 체험하는 영광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 일을 위해 부름받았다는 사실 앞에 전율합니다!

"당신의 삶 속에 찾아올 하나님의 시원한 영광의 물벼락들을 맞을 준비가 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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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블 톡톡! - 성경 해석의 힘을 길러 주는 8가지 팁
신성욱 지음 / 두란노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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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지상 최대의 보고'이며 '인류 최대의 베스트 & 스테디셀러'이면서,

'가장 안 읽히는 책'이라는 불명예를 동시에 갖고 있다.

이 책은 설교자들이 읽기에 불편한 책입니다. (성경을 잘못 해석하고, 잘못 적용하는) 설교자들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그대로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이유로 이 책은 누구보다 설교자들이 반드시 먼저 읽어야 하는 책입니다. '빈번하게' 잘못 해석되고, 잘못 적용되는 성경의 본문을 명쾌하게 바로잡아주며, 성경을 읽어내는 근본적인 통찰력을 키워주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이 먼저 읽고 설교자의 틀린(!) 설교를 듣는 경우가 없기를 바래봅니다.)

성경을 잘못 해석하는 책임, 잘못 적용하는 책임이 얼마나 클지를 생각하면 설교 강단에 서는 일이 참으로 두렵고 떨립니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가운데 아이러니하게도 '성경이 가장 안 읽히는 책'이라는 불명예를 갖게 된 것은, 설교자들의 탓이 크겠구나 싶습니다. 이제 더이상 설교자의 게으름을 방치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바이블 톡톡>을 읽는 것이 설교자에게 있어서는 '게으름으로부터의 돌이킴'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이 책을 누구보다 설교자들이 반드시 먼저 읽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평소 논란이 되는 성경 본문이나, 전문가들이라 할만한 신학자들도 관심을 가지고 논쟁 중인 본문을 다루어주기 때문입니다. 난제처럼 여겨지는 본문에 어떻게 접근해야 하고, 해석해야 하는지 이해하기 쉽게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는 눈이 열리며 복음의 본질을 발견하는 기쁨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쁨이요, 보물이지요.



성경 실력을 제대로 갖춘 설교자가 드물다.

사무엘상 6장에 등장하는, '벧세메스로 가는 소'를 본문으로 해서, '소보다 못한 인생'이 되지 말라고 설교했거나, 그런 설교를 들어본 적이 있다면, 이 책, <바이블 톡톡>을 읽어야 합니다. '삭개오'를 설교하며, 삭개오처럼 영적인 갈증이 있어야 하며, 삭개오처럼 주님을 간절히 사모해야 하며, 삭개오처럼 주님을 만나기 위해서라면 수치를 무릅쓰는 겸손한 자세를 보여야 한다는 메시지에 강조점을 두었거나, 그런 설교를 들어본 적이 있다면, 이 책, <바이블 톡톡>을 읽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고난주간 중에 저주하신 무화과나무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며, 저주받은 무화과나무의 '열매 없음'에만 초점을 두었다면, 반드시 이 책, <바이블 톡톡>을 읽어야 합니다.

요셉과 요셉의 형들의 관계에는 '용서의 차원'을 넘어서는 더 높은 차원의 적용이 있어야 함을 알고 싶다면, "세월을 아끼라"라는 성경 본문으로 설교를 하면서도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나에게만 부여된 결정적인 시간을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전한 적이 없다면, 요한복음 1장 16절의 "은혜 위에 은혜"라는 구절이 원어적으로는 "은혜를 대적한다"는 의미임을 제대로 깨닫기 원한다면, '영혼멸절설'의 문제가 무엇인지 알고 싶다면, 연자 맷돌을 '누구의 목'에 달아 빠뜨리라고 하셨는지 정확하게 알고 싶다면, 다니엘서를 강해하며 다니엘과 세 친구가 왕의 음식을 거부한 식단으로 오히려 살이 쪘다는 사실을 아직 모르고 있다면, 이 책 <바이블 톡톡>을 읽어야 합니다!

<바이블 톡톡>은 이러한 본문들을 다루면서, 동시에 성경 해석의 힘을 길러주는 8가지 중요한 원리를 가르쳐줍니다! 이 8가지 원리는, 설교자들이 쉽게, 그리고 흔히 범하기 쉬운 알레고리컬한 설교와 주석 없는 설교, 조건문의 율법적인 설교, 고정관념에 사로집힌 해석의 오류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길잡이가 되어줄 것입니다.

<바이블 톡톡>에서 흥미로운 에피소드를 읽었는데, 저자와 JMS 단체와 관련된 에피소드입니다. <한국의 이단 가운데 정명석이 교주인 JMS라는 단체가 있다. 여기에 '30개론'이라는 기초 성경 공부 과정이 있는데, 그중 '태양아 멈추어라!'라는 주제가 나온다. 오늘날 기성 교회 목사들이 여호수아가 기도해서 하늘의 해와 달을 거의 온종일 멈추게 했다(수 10:12-13)고 가르치는데, 그것은 과학의 기초도 모르는 무식한 처사라고 비판하는 내용이다. 태양이 지구를 도는 천동설이 아니라 지구가 태양을 도는 지동설이 맞는다는 게 과학적으로 판명된지 오래인데 태양더러 '멈추어라'라고 기도했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는 것이다(192).> 이에 대해 저자가 받아친 논리가 통쾌합니다. <성경은 독자들에게 과학을 가르치기 위해 기록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그들의 일상생활과 그들이 알고 있는 상식과 지식을 기초로 해서 진리를 전달한 책이다. … 당신은 일기를 쓸 때나 사람들과 대화를 할 때 '태양이 떠올랐다'라고 말하지 않고 '지구를 태양을 돌았다'는 식으로 표현하는가?(193)>

이러한 에피소드는 성경을 읽고 해석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겠지만, 무엇보다 목회자부터 성경의 읽어내는 실력을 키워야겠습니다. 문맥을 고려하지 않은 설교, 원어를 고려하지 않은 설교, 당시의 문화와 관습을 고려하지 않은 설교로부터 벗어나려면 설교자가 무척 부지런해야 하는데, 이런 책의 도움을 받을 수 있으니 이것 또한 하나님의 큰 은혜입니다! 내용은 전문가의 수준이지만, 누구나 재미있게 읽을 수 있으니, 다시 말하지만 누구보다 먼저 목회자(설교자)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습니다! 이왕이면 서둘러 읽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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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야 - 기도로 밤을 뚫다
이규현 지음 / 두란노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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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철야기도회가 한국 교회에서 사라졌다(16).

이제는 교회도 '메타버스'에 올라 타야 한다는 고민에 빠져 있던 중에 이 책을 읽었습니다. '철야', 너무 낡은 이야기가 아닐까, 시대를 역행하는 구습의 답습은 아닐까, 자꾸만 좋았던 옛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의 관성은 아닐까, 주저하는 마음이 컸습니다. 그러나 어두운 밤을 기도로 뚫어내던 <철야>가 어둡던 제 마음도 시원하게 뚫어내었습니다. 시대가 아무리 변해도 교회의 근간, 영성의 뿌리는 달라질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 뜨겁게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교회가 시대를 관통하기 위해 운행하려고 하는 메타버스의 엔진도 결국 기도일 테니 말입니다!

<철야>는 뜨겁기로 소문난 수영로교회의 금요철야기도회의 정신이 무엇인지를 담아낸 책입니다. 구체적인 운영 방안이나 노하우가 아니라, 왜 '철야'기도회여야만 하는지를 뜨겁게 호소하고 있습니다. <철야>는 먼저 한국 교회에서 사라진 '금요철야기도회'를 애통해합니다. '금요철야기도회'의 실종은 한국 교회의 영적 태만과 변질의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금요철야기도회'를 뜨겁게 이어가고 있는 수영로교회는, 한국교회가 금요철야기도회를 잃어버린 것은, 팽배해진 물질주의가 가장 큰 원인이라고 분석합니다(16). 가난했던 심령이 이제 물질로 배부르게 된 것입니다. 돈 버느라 정신이 없었던 세대는 이제 번 돈을 쓰느라 정신이 없고, 배부른 교회는 기도대신 이제 하품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고난이 깊을수록 하나님께 매달릴 수밖에 없었던 우리에게, 오히려 축복이 독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자리에 돈이 앉아 있고, 기도하기보다 돈으로 해결하는 일이 더 빠르고 편리해지니, 무엇보다 하나님을 절실히 찾아야 할 이유가 없어져버린 것입니다.

타협도 문제입니다. 당장 우리 교회만 해도 이름은 '금요철야기도회'인데, 밤 9시에 시작해서 늦어도 11시면 끝이 나니, 철야가 아니라 저녁기도회라 해야하겠지요. 그마저도 코로나19 여파로 가정예배로 전환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철야>를 읽으며 생각해보니, 한창 뜨거웠던(?) 시절에는 밤 9시에 시작해서 새벽 4시까지 이어지는 기도회를 우리는 '철야'라고 불렀고, '철야기도회'는 그렇게 드려지는 것이 당연했데 말입니다. 우리의 철야기도회가 어쩌다 추억이 되어 버렸는지, 하나님 앞에서 죄송할 따름입니다.



금요철야기도회는 파수꾼의 사명이다.

모두가 잠들어 있을 때 깨어 기도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깨어 있으려면 남들과 다르게 살아야 한다. 세상의 흐름에 역류해야 한다.

모두가 자는 밤에 일어나 기도하는 것은 일종의 역류다.

나만 깨어 있을 것이 아니라 자는 자들을 깨워야 한다.

깨어 있는 영성으로 공동체를 지키고 시대를 지켜 내야 한다(57).

<철야>가 던지는 호소 가운데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두 가지 문장이 있었습니다. "기도에 대해서 무관심해졌다면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것이 없다"는 것(42), "성도들도 어디를 가야 내 영혼이 살 수 있을지 방황하며 찾고 있다"(93)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굳이 '금요철야기도회'가 아니더라도, 새벽기도회, 수요예배 등 기도를 쉬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고 변명을 해보지만, 성도들이 영적 무기력증을 앓으며, 영적 패배주의자로 살아가고 있는 책임이 목회자가 먼저 편리와 타협하고, 시대와 타협한 탓이라고 하는 채찍질이 느껴졌습니다. 교인들이 기도 없이도 잘 수 있다고 믿고 있다면, 그것은 기도의 DNA를 깨우지 못한 담임 목회자의 탓이라는 사실에 온몸이 떨려옵니다. "야성을 가진 신앙인이 되려면 편안한 일상과 싸워야 한다"(54).

수영로교회의 <철야>는 말합니다. 시대정신에 저항력을 키우려면, <철야>만한 것이 없다고 말입니다. 밤을 새워 부르짖는 금요철야기도회는 죄의 열기로 뜨거운 세상에 기도의 열기로 맞붙을 놓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영적인 온도를 높이려면 시간에 구애를 받지 않는 <금요철야기도회>가 답이라고 말입니다.

따라서 교회는 하나님이 충분히 역사하실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만들어 놓아야 한다.

금요철야기도회는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하는 열린 공간이다(83).

한국 교회의 기도의 화력이, 세상 유혹을 다 떨치고 교회로 몰려들 만큼 세상보다 강력하기를! 다음세대를 집어삼키는 죄의 유혹으로부터 다음세대를 넉넉하게 지켜낼 수 있는 강력한 영적 보호막이 되기를! 이러한 간절한 소망을 품고 기도의 용사들과 함께 뜨겁게 일어나 외치고 싶습니다. "역류하자!"고 말입니다!

"금철 미룰 이유가 없다"는 <철야>의 외침이 저에게 성령님의 음성이 되어, 우리 교회도 2022년 4월 29일 다시 금요철야기도회를 연다고 선포했습니다. 기도회를 전진배치하는 것입니다. <철야>를 통해 한국 교회의 기도의 열기가 들불처럼 번져가기를 소망합니다. 우리의 금요일 밤이 기도의 열기로 다시 뜨거워져서, 교회가 영적 권세를 되찾고 도시의 영적 기선을 제압할 수 있기를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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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번 날게 하소서 - 이어령의 서원시
이어령 지음 / 성안당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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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에서 새해를 맞습니다.

우리에게 날 수 있는 날개를 주소서.

비상非常에는 비상飛翔을 해야 합니다.

벼랑 끝에서 날게 하소서.

제게 '이어령'이라는 이름을 각인시켰던 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독일의 절약 정신을 본받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던 시절이었는데, 그들은 얼마나 절약 정신이 강한지 담배를 피울 때도, 성냥개비 하나를 아끼기 위해 몇 사람이 모일 때를 기다렸다가 그제야 불을 붙인다는 것이었습니다. 모두가 이러한 독일을 칭송할 때, 이어령 선생님은 우리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했습니다. "불 좀 빌립시다"라는 한마디면 된다는 것이었지요.

이어령 선생님은 획일성에 갇혀 있는 사고의 문을 활짝 열어제끼며, 자유로운 생각의 힘이라는 것이 얼마나 강한 힘인지 가르쳐주셨던 '생각 선생님'이셨습니다. 무엇보다 익숙해서 미처 알아채지 못했던 '우리 것의 위대함'을 알아볼 수 있게 해주셨지요. 얼마나 감동이었던지요. 그리고 그러한 선생님의 가장 강한 무기는 바로 '이야기'였습니다. 어찌나 이야기를 재미있게 잘 하시는지, 선생님의 책을 읽으면 늘 시간가는 줄 몰랐습니다. 이야기를 통해 각인된 선생님의 교훈은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았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조금만 생각을 달리 하면, 보이지 않던 세계,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는 것을 늘 기억하려 애썼습니다. 비상(非常)에는 비상(飛翔)해야 한다는 선생님의 노래(시)처럼 말입니다.

'이어령의 서원시'라는 부제가 붙은 <다시 한번 날게 하소서>는 이어령 선생님이 어떤 분이셨는지를 가장 잘 설명해주는 책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어령 선생님이 일생 어떤 일을 해오신 분인지, 우리에게 들려주고자 하셨던 이야기가 무엇인지, 우리에게 무엇을 남겨주고 떠나셨는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또한 이어령 선생님은 우리의 교육이 세뇌가 아니라, 천 개의 빛을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반란, 상상력의 색깔을 만들어는 창조의 세계가 되기를 꿈꾸셨던 분임을, 이 책, <다시 한번 날게 하소서>가 증언하고 있습니다.

시인처럼 연인처럼 혹은 광기 어린 사람처럼 일상성에서 탈출하는 탈영병이 되어라(68).

<다시 한번 날게 하소서>라는 책을 통해 이어령 선생님이 남겨주신 이야기 중에서, 가장 위로가 되었고, 큰 힘이 되었던 이야기는 많이들 알고 있는 '우물에 빠진 당나귀'이야기였습니다.

당나귀가 빈 우물에 빠졌는데, 농부는 슬프게 울부짖는 당나귀를 구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마침 당나귀도 늙었고, 쓸모없는 우물도 파묻으려고 했던 터라, 농부는 동네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해 우물을 파묻기로 했습니다. 사람들은 제각기 삽을 가져와서는 흙을 파 우물 속으로 던졌습니다. 당나귀는 더욱더 울부짖었습니다. 그러나 조금 지나자 놀라운 광경이 벌어졌습니다. 당나귀는 위에서 떨어지는 흙더미를 털고 털어, 바닥에 떨어뜨렸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자기를 묻으려는 흙을 이용해 무사히 그 우물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이 이야기를 다시 한번 들려주시며, "사람들이 자신을 매장하기 위해 던진 비방과 모함과 굴욕의 흙이 오히려 자신을 살린다"(55-56)고 하십니다. 그러니 "나를 음해하는 진흙이 나를 구해주는 기적의 사다리가 된다"(56)는 것을 기억하라고 말이지요! '벽을 넘는 두 가지 방법'도 이 이야기와 맥락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벽에 의지하고 벽에 반발하는 앰비버런스ambivalence(모순)에서 회회가 생겨난다. 그림은 벽에 뚫어놓은 마음의 창이기 때문이다. 창을 벽의 상처라고 말하듯, 그림 또한 피가 흐르는 벽의 상처인 것이다"(69).

<다시 한번 날게 하소서>는 세상을 읽어내고 해석하는 이어령 선생님의 방식을 가장 잘 보여주는 책이기도 합니다. 그것을 대부분 서양의 것과 우리의 것과의 차이를 통해 선명하게 드러날 때가 많은데, 이 책에서도 선생님 특유의 그러한 은유가 가득합니다. 예를 들면, 양옥과 한옥이 집을 올리는 방식의 차이가 그렇습니다. 왜 한옥은 벽을 터도 무너지지 않지만, 양옥은 집 전체가 무너지고 마는지를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또한 우리나라에서는 왜 "국물도 없다"는 말이 욕이 되지도요.

<다시 한번 날게 하소서>에 담긴 이어령 선생님의 이야기들은 '관계론적 사고'의 중요성을 가르쳐주고 있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거북선'이라는 실체론적 사고에만 갇혀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거북선의 위대함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을 가지고 싸우려고 했던 일본의 배가 어떤 것이었는지 알아야 하는 것이지요. 이순신 장군의 위대함은, '적'을 알 때 더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이어령 선생님은 이러한 사고를 '관계론적 사고'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관계론적 사고는 함께 어우러짐의 삶의 철학으로 구현되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소음(노이즈)을 제거하는 방식의 서양 음악과 소음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이고 포용할 때 완성하는 우리 음악의 차이, 재고 따지고 계산해서 정확한 치수로 만들어지는 양복과 재지 않고서도 평안하게 입을 수 있도록 디자인된 한복 바지의 차이, 넣을 물건이 있을 때나 없을 때나 그 자체로 독립적이며 자기주장이 강한 가방과 이에 비해 물건의 부피에 따라 커지기도 하고 작아지기도 하며 쌀 것이 있을 때는 존재하다가 쌀 것이 없으면 하나의 평면으로 돌아가 사라져버리는 보자기의 차이, 서양의 침대와 한국의 이불(요)의 차이, 사방이 박힌 지하실의 벽과 가변적이고 신축인 우리나라 병풍의 차이, 코스별로 나오는 서양식 상차림과 우리의 한 상 차림의 차이가 그것을 말해주고 있음을 알 수 있지요.

이어령 선생님의 <다시 한번 날게 하소서>는 우리가 신축성, 융통성, 어우러짐, 그리고 그 안에서 빚어진 합리성이라는 위대한 날개를 가진 사람들임을 다시 한번 일깨워줍니다. 이어령 선생님의 서원시처럼, 우리에게 생각의 날개를 주고 싶었던 선생님의 꿈이 오롯이 전해집니다.

요즘 전세계적으로 K-팝, K-브랜드, K-세일 등 K-문화라는 이름으로 K-열풍이 심상치 않는데, 아마도 이런 K-문화의 힘을 통찰하고, 예견하고, 선도했던 시원에 이어령 선생님이 계시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모두에게 이 책의 일독을 권하고 싶지만, 특히 (어떤 상황, 환경에 갇혀 있다고 느끼는) 청년들에게 이 책의 일독을 꼭 추천해주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달걀 꾸러미를 반만 감싸는 방식으로 포장했던 우리 선조들의 위대한 지혜, 그 놀라운 이야기를 꼭 들어보라고 당부드립니다! 달걀 포장 이야기는 창의적인 분야에서 일하는 분들에게 놀라운 통찰력을 제공해줄 것이라 믿습니다.

이어령 선생님은 웃으며 이렇게 경고합니다. "견고한 틀과 사고로 무장한 사회와 조직은 생사람을 잡아요"(19). 갇힌 사고에서 나오는 신념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위험하고 폭력적일 수 있습니다. 유연한 생각의 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할 수 있고요. 우리가 맹신하는 돈의 힘보다 훨씬 강하다고 믿습니다. 그러니 어려울수록, 아니 벼랑 끝이라는 비상 상황일지라도, 하늘 보고, 바람 맞고, 꽃을 보고, 날아가는 새를 보면서, 이 책 한 권 읽어보자고, 먼저 읽은 독자로서 기쁘게 청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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