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두 챕터 읽고 내일 다시 오세요 - 책으로 처방하는 심리치유 소설
미카엘 위라스 지음, 김혜영 옮김 / 책이있는풍경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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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책을 읽는 게 아니다.
자신을 발견하기 위해서든 자신을 통제하기 위해서든
책을 통해 스스로를 읽어내는 것이다.
- 로맹 롤랑, <스피노자의 섬광>


'도대체 책으로 어떻게 나를 구해준다는 거지?'(14).

<이 책 두 챕터 읽고 내일 다시 오세요>는 책을 통해 상처난 삶을 치유해가는 독서 치료사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독서 치료사 알렉스는 상담할 사람들을 직접 만나러 가거나 사람들이 그를 찾아오는 방식으로 일을 하는데, 내담자에게 "말을 건네줄 소설이나 시"(알렉스는 문학만을 고집합니다)를 찾아 제공합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에게 맞는 책을 골라주는 것이 독사 치료사로서 알렉스의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 직업은 너에게 말을 해줄 수 있는, 네가 생각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글을 찾는 거야. 네 상황에 대해 알게 되면서 이 소설을 고르게 된 거야"(134). 그렇다고 단순히 책을 골라주기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독서 치료는 공동작업입니다. 책을 공유하고 이야기를 나눔으로, 작품의 텍스트가 사람들 속으로 스며들도록 돕습니다. 작품이 말을 건네기 시작하면, 사람들을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구원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 독서 치료의 믿음입니다. 

<이 책 두 챕터 읽고 내일 다시 오세요>에서 알렉스가 진행하는 독서 치료는 총 세 건입니다. 6년 전 불의의 사고로 혀가 잘리고 끔찍한 모습으로 얼굴이 변한 뒤, 자기 자신을 작은 공간 안에 가둬버린 17살 '얀'을 돕기 위해서 그가 추천해주는 책은 장 콕토의 <사기꾼 토마>와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입니다. 존재 자체가 모욕이라고 느끼는 만신창이가 된 청춘. 의학적 치료는 얀에게 더 이상 해줄게 없을지 모르지만, 알렉스는 그를 불행에서 꺼내주고 싶어 합니다.

두 번째 사례는, 부유하고 유명하고 건강한 축구 선수 '안토니'의 독서 치료입니다. 알렉스는 "영웅을 찾는 사회에서 자신의 위치에 대해 자각하지 못한 채, 수많은 과제들에 짓눌려 있는" 안토니를 위해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를 처방합니다. 안토니가 바로 고대 영웅들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과 영웅을 만들어내는 건 바로 결점들이라는 것을 깨닫기를 바리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 내담자는, 늘 시간이 모자란다고 하는 시계 판매원 '로베르'입니다. 명품 시계를 파는 로베르는 번아웃 증후군 혹은 탈진 증후군을 앓고 있는데, 알렉스는 "자신의 시간을 되찾는 방법을 배우는 재교육의 의미에서" 이반 곤차로프의 <오블로모프>를 처방해줍니다. 

독서 치료에 가장 적극적이며 가장 만감을 반응을 보이는 건, "시간이 없어서 시간이 많이 드는 독서 치료"를 선택한 로베르입니다. 독서 치료에 집중하지 못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안토니'이고, 집중한 듯 보이지만 냉소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얀'이지요. 이들은 과연 책일기를 통해 구원을 얻을 수 있을까요? <이 책 두 챕터 읽고 내일 다시 오세요>는 '독서'가 만병치료제라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독서 치료라는 것이 참신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엄청나게 놀랍고 기적적인 해법을 제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의 결말은 다소 충격적이고, 문학적이고, 현실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끔은 문학으로 삶이 회복되는 경우가 있다"(24).

"문학의 텍스트는 얼마나 신비로운지!" 독서 치료사 알렉스는 "그 상황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문장(문학작품)"(40)을 떠올리는 능력을 가졌습니다. 이것은 곧 작가의 능력이기도 할텐데, 문학에 대한 그의 지식이 놀랍습니다. (작가가 이 책에서 인용한 작품들의 내용을 알았더라면 훨씬 더 흥미롭고 재미있었겠지만), 압도될 만큼 엄청난 독서량을 자랑합니다. 

<이 책 두 챕터 읽고 내일 다시 오세요>는 호불호가 갈릴 소설입니다. 문장이 지적이고, 환멸과 냉소를 유머러스하게 표현한 것이 살짝 '블랙코메디'스러운 느낌도 주는데, 표현력이 기가 막히다는 생각을 많이 하며 읽었습니다. 그러나 툭툭 튀어나오는 작품들이 누군가에는 흥미를 잃게 하는 요소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저는 재미있게 읽었지만, 재미있는 책이라고 누구에게나 막 추천하기에는 조금 망설여진다고나 할까요.

독서 치료라는 분야가 아직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프랑스(132)에서 알렉스가 독서 치료사라는 직업을 택한 것은 울림을 주는 글들을통해 알렉스 자신이 누구보다 강력하게 치유를 경험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문학을 통해 상황을 조금 더 선명하게 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그리고 (문학의) 아름다움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곧 치료라고 생각하니까요.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이 책 자체가 치유적인 책 읽기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 ('끔찍한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가진 독자는 또다른 방식으로 억눌렀던 분노가 표출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기도 합니다만.)

"돌이켜보니 잠시나마 내가 그에게 평안한 시간을 줄 수 있었던 것 같아 행복했다. 우리는 미소 짓고 도 웃을 수 있기 위해서, 함께 책을 읽었다. 가끔은 노인 병동에 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렸다. 우리는 글을 통해 먼 여행을 떠났다. 사샤 기트리와 그의 독버섯 이야기로 우리는 아름다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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