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된 악인, 유다 - 누가 그를 배신자로 만들었는가
피터 스탠퍼드 지음, 차백만 옮김 / 미래의창 / 2016년 12월
평점 :
절판


 


"그런데 유다라는 이 사내는 그리스도가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야. 

오히려 예수가 요한에게 배신을 당했다면 훨씬 감동적이면서 사실적이었을 거야. 

왜냐하면 요한이야말로 예수가 가장 아끼던 자였으니까."

- 데이비드 헤어의 연극 <유다의 입맞춤>(1988)에서 '오스카 와일드'의 대사(57)




"예수님의 열두 제자가 면접을 본다면"이라는 제목의 예화를 메모해 둔 것이 있습니다.


만약 한 회사가 유능한 신입사원을 뽑기 위해 예수님의 열두 제자를 대상으로 인물분석을 했다고 가정하자.

회사가 이들의 학력, 경력, 적성을 종합해 컴퓨터에 분석을 외뢰했다면 아마 이런 결과가 나왔을 지도 모른다.


야고보와 요한은 매우 이기적인 사람이다.

도마는 매사에 의심이 많고 부정적인 성경의 소유자다.

베드로는 성격이 급해서 실수할 가능성이 높다.

안드레는 너무 내성적이어서 매사에 추진력이 떨어진다.

야고보는 혁명가적인 기질이 있어 위험한 존재다.

세리 출신 마태는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이기적인 사람이다.


제자들 중 적격자는 가룟 유다뿐이다.

그는 학식과 경험을 겸비한 인물이며 실업가의 김각과 사교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기독교 역사를 변화시킨 사람은 실격자로 판정난 제자들이었다.

세상적 판단으로 가장 유능한 가룟 유다는 배신자로 낙인찍혔다.




<예정된 악인, 유다>는 독자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누가 그를 배신자로 만들었는가?" 다윗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골리앗의 이름을 알듯이, 예수의 이야기가 전해지는 곳에서는 역사상 가장 악명 높은 배신자 '유다'의 이름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예정된 악인, 유다>는 그 유명한 입맞춤으로 스승을 은화 30냥(노예의 한 사람의 몸값)에 팔아넘긴, 그리하여 역사장 가장 악명 높은 '배신자'로 낙인 찍힌, '유다 이야기'를 추적한 책입니다. '유다'가 아니라, '유다 이야기'라고 하는 것은 그에 관한 사료가 턱없이 부족할 뿐 아니라, 얼마 안 되는 기록물의 조각들도 서로 이야기가 맞지 않으며, 교회의 역사와 함께 덧입혀지고 가공되어져 왔다는 전제 하에 저자가 '유다의 이야기'를 재구성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유다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구체적 내용들은 수많은 역사적 렌즈와 선입견을 거치면서 어지러울 정도로 많은 해석을 낳는다. ... 유다의 경우에는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이야기가 지나칠 정도로 확대된 것이 사실이다"(33).


<예정된 악인, 유다>는 역사적 발자취를 추적하며 "유다 이야기"를 다각도에서 재조명하는데, 우선 유다는 전형적인 '희생양'이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묘사된 유다의 이야기가 "문화역사학자이자 인류학자 르네 지라르"가 지적한 희생양의 특징에 정확하게 부합한다는 것입니다. "마태가 유다의 죄를 조금이라도 덜어주려 했던 반면, 다른 복음서 저자들은 유다를 유대교 지도자와 같은 사악한 자로 묘사하는 데 조금도 주저함이 없다. 그들은 유다를 배신자로 낙인찍었고, 유다가 후회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희생양을 만드는 전형적인 과정을 밟은 셈이다"(119).


이런 이유를 들어, 사복음서에 기록된 유다가 허구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유다가 실존 인물이 아니라 그저 희생양이 필요해서 창조된 허구의 인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저자가 이의를 제기합니다. "만약 유다가 철저하게 가공의 인물이라면, 다시 말해 배신자나 희생양 역할을 맡기 위해 작가의 입맛에 따라 창조된 허구라면, 사대 복음서의 유다에 대한 기록은 심각할 정도로 내용의 일관성이 부족하다. 즉 유다를 사대 복음서 작가들의 창작으로 보기에는 구체성이 결여되어 있거나, 시기가 일치하지 않거나, 논리적 전개가 빈약하거나, 내용이 불일치한다"(126).


"5세기부터 15세기까지 중세를 지배했던 시각에서 보면, 유다를 대표하는 이미지는 사탄의 대변인이나 악의 화신처럼 누가복음과 요한복음에서 그려낸 모습이었"고, "중세 시대에 유다의 이미지는 열두 제자에 포함되어 언제든 구원을 받을 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끝내 사탄에 항복한 자였"습니다(159). 그러나 시대가 변하면서, 유다의 성격과 배반의 동기, 죄에 대한 해석도 마찬가지로 변모했"습니다. "심지어 유다가 정말로 죄인인지에 대해 의문을 품는 이들도 생겨났"습니다(272). "유다를 사탄의 도구나 배신자로 보지 않고, 그저 잘못된 선택을 한 인간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유다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세 가지 서로 다른 시선이 혼재합니다. 유다가 타고난 악인이었기에 자발적으로 죄를 저절렀다는 시각, 신이 예비해둔 계획에 따라 사용된 것일 뿐이라는 시각, 악마에 사로잡혀 그랬다는 시각이 그것입니다. <예정된 악인, 유다>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며 시대별로 유다에 대한 해석과 이미지가 어떻게 달려져 왔는지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유대는 배신이 본인의 책임이기에 오랜 세월을 거치도록 저주를 받아 마땅한가? 아니면 유다는 신이 예비한 계획과 사탄의 계약에 의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선과 악의 대결에서 희생된 꼭두각시에 불과한 것인가?"(85)


아마도 유다가 돈궤를 맡은 자로서 탐욕스러운 제자였다는 이미지를 가진 교인이라면, 유다가 본래 선한 사람이며, 예수가 보기에는 다른 모든 제자보다 '더 뛰어난 제자'였고, 유다가 예수를 배반한 이유는 악의나 탐욕 때문이 아니라 우정과 존경 때문이었으며, 유다는 그저 예수가 명한 바를 충실히 따랐을 뿐이었다는 주장이 충격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유다의 배신은 세속적인 것과 천상의 것 간에 존재하는 장벽을 허무는 과정을 돕는 행위로 봐야 한다. 한마디로 유다는 신이 자신에게 부여한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예수를 돕고 있는 셈이다"(149). 심지어, 유다의 자살이 예수의 용서를 얻기 위한 지름길이었다는 주장도 소개됩니다. "유다가 목을 매었던 밧줄이 체념한 유다의 도피 수단이 아니라 속죄의 도구로 활용되었다"는 것입니다. "유다는 (마태의 기록에 의한 시간 순서로 볼 때) 예수가 죽기 전에 스스로 목을 매달아 죽었다. 따라서 예수가 부활하기 전에 지옥에 들러서 모든 고통 받는 영혼을 구원했을 때, 이미 유다도 지옥에 있었던 셈이 된다"(273).


<예정된 악인, 유다>의 저자는 유다를 악인으로 보는 시간과 반대로 그저 어쩔 수 없이 악역을 수행해야만 했던 인물로 보는 시각을 동시에 보여주지면, 저자 자신이 그리 객관적인 입장은 아니라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저주받은 제자를 축복받은 제자로 복원하고 싶은" 저자의 욕망이 스며 있다고나 할까요? "유다는 교회는 물론이고, 그 반대파도 각자의 목적을 위해 휘둘렀던 무기이자 희생양이다. 또한 유다는 사탄의 도구이면서 동시에 신의 대리인이다"(376). 


가장 사악하면서도 불행한 자, 유다! 유다에 대한 동정심을 갖는 것이 신앙에 위배되는 일은 아닐 것입니다. <예정된 악인, 유다>는 전형적인 유다의 이미지에 익숙했던 독자(성도)에게는 상당히 충격적인 이야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교회 제자훈련 때에 유다가 지옥에 간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는 한 분 때문에 교회에 큰 논란이 일었던 적이 있는데, 책 한 권을 읽고 신앙이 흔들릴 정도의 믿음이라면 이 책은 신앙성장이 그리 유익하지 않은 책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비판적 책읽기가 충분하고, 세상에 회자 되는 이야기에 열린 마음으로 경청할 준비가 된 독자(성도)들에게는 보다 다양한 시각과 다각도의 성경(인물) 연구를 위한 좋은 자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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