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름다운 이웃 - 박완서 짧은 소설
박완서 지음 / 작가정신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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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옥의 불편함과 함께 이웃간의 그런 비밀 없음을 얼마나 싫어하고 경멸했던가. 그러나 낯선 동네의 낯선 사람들의 무관심에 담박 주눅이 든 나는 이사도 오기 전에 벌써 구식 동네의 그런 촌스러운 풍습과의 결별이 아쉽게 여겨졌다"(386, '나의 아름다운 이웃' 中에서)

<나의 아름다운 이웃>은 박완서 작가의 짧은 소설을 모은 책입니다. 박완서 작가가 "문단에 나오고 나서 10년 안에 쓴 것들"이며, 이야기는 197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기업들의 사보에 청탁을 받아 쓴 '콩트'라고 하는데, 친근한 이웃들의 일상적인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면서도 시대를 꿰뚫어보는 신랄함이 통렬하여 역시 '박완서 작가구나' 하는 탄성을 자아내게 합니다.

"그때 그 시절" 우리가 일등 신랑감이라고 생각했던 인물은 어떤 인물이었는지, 그러면서 결혼은 개인의 선택이라지만 사랑이라는 낭만보다는 결혼의 '조건'이 중요해지기 시작했다는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고, "그때 그 시절"에는 여성들이 가정 안에서 어떤 지위에 있었는지,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어떤 권력 관계에 있었으며, 그 권력은 어떤 식으로 만들어지고 유지되었는지, 또 결혼한 여성에 대한 사회의 차별이 어떠했는지를 실감나게 읽을 수 있습니다. 또 자녀에 대한 부모의 기대는 무엇이었는지, '아파트'라는 주거 형태가 어떻게 우리의 삶과 꿈을 바꾸어 놓았는지, 그 삶의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잃고 무엇을 얻었는지를 조금은 씁쓸한 뒷말을 느끼며 돌아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결명했던 '촌스러운 풍습'이지만, 이제는 다 지나간 옛일, 즉 '구식'이 되었다고 믿고 있지만, 사실은 그 촌스러운 풍습과 완전히 결별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일등 신랑감임을 증명해보이기 위해 스펙을 쌓고, 조건을 따져 결혼은 하지만 비밀스럽게 일탈을 꿈꾸며, 여성의 지위가 많이 높아졌다고 하지만 사회와 가정 안에서 차별이 이제는 옛일이라고 말할 수 없으며, 여전히 어느 지역의 몇 평 대 '아파트'가 우리의 꿈이고, 권력이며, 공부 잘하는 자식이 곧 부모의 성공이요, 자랑이 되는 우리네 삶이 과연 그때 그 시절보다 세련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나의 아름다운 이웃>은 문명(발전)과 교양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펼쳐지는 위선과, 그리하여 우리가 잃어버리고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를 소리없이 보여줍니다. 그때 그 시절 이야기이지만 지금 여기에 살고 있는 우리의 초상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필력의 위대함을 새삼 다시 느낍니다. 우리에게 이런 소설가가 있고, 이런 소설가의 책을 많이 읽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삶은 훨씬 지혜롭고, 다정할 수 있다는 것을 아쉬운 마음으로 마음에 새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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