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 우리는 우리말로 된 성경을 읽을 수 있게 되었을까?
언제부터 하나님이 우리가 가장 이해하기 쉬운 우리말로 말씀하시기 시작했을까?
<그리스도의 길이 되다>는 2천 년 기독교사에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특별하게 우리나라에 부어주셨던 은혜를 추적한 책입니다. 보통은 선교사님들이 먼저 들어가서 그 나라 언어를 배우고 문화를 익혀 성경을 번역하는 것이 일반적인 선교의 과정인데, 우리나라는 선교사님보다 한글로 번역된 성경이 먼저 들어온 이상한(!) 국가였음을 상기시킵니다. 선교사님들이 들어왔을 때는 (선교사를 통해 성경공부를 한 것도 아닌데) 이미 성경을 읽고 변화받은 사람들이 세례를 받기 위해 줄을 서 있을 정도였다니, 정말 기이하고도 기이한 역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언더우드 선교사님은 이렇게 고백했다고 합니다. "나는 한국에 복음의 씨를 뿌리러 왔는데 열매를 거두기에 바쁘다"(156). 그것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였는지, 존 로스의 동료였던 웹스터도 이런 기록을 남겼습니다. "한 명의 선교사도 찾아온 일이 없는 이곳에, 다만 선양에 와서 진리의 영향을 받았던 몇 사람의 개적인 증언과 함께, 로스에 의해 준비되고 보내진 복음서와 소책자들이 이 놀라운 결과를 일으킨 도구들이었다. 우리가 본 일들은 우리를 겸손하게 하였다. … 우리는 다만 가만히 서서 하님의 구원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146).
언제부터 우리는 우리말로 된 성경을 읽을 수 있게 되었을까요? <그리스도의 길이 되다>는 우리말로 된 성경이 우리나라에 들어오기까지의 과정을 추적하며, 우리가 당연하게 누려왔던 그 일 속에 얼마나 크고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가 부어져 있는지를 일깨워줍니다. 우리말로 된 성경 번역 작업은 전혀 다른 두 지역, 만주와 일본에서, 거의 비슷한 시기에 번역되어 이 땅으로 흘러 들어왔습니다. 만주에서는 중국 땅에 와 있던 선교사와 의주 상인들을 통해 한글(누구나 읽을 수 있는 쉬운 언어)로 된 성경이 번역되었으며, 일본에서는 일본 땅에 와 있던 선교사와 일본 수신사로 파견된 이수정을 주축으로 처음엔 한문성경에 토를 다는 형식으로, 나중엔 국한문 혼용체를 택해 식자층이 반길만한 성경으로 번역되었다고 합니다. 배운 사람이든 못 배운 사람이든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수 있도록 섭리하신 것을 볼 때, 하나님께서 얼마나 우리에게, 우리말로 말씀하고 싶으셨는지 깨달아지며, 그 하나님의 열심에 전율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길이 되다>는 우리가 얼마나 말씀을 사랑하는 민족이었는지를 기억하게 합니다. 전 재산을 잃고, 목숨의 위협을 받으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던 사람들, 오직 말씀을 읽고 배우기 위해 모든 일을 중단했던 사경회의 유래, 말씀 공부를 하는데 일어났던 놀라운 회개운동과 그 일이 이 땅에 어떤 부흥을 가져왔는지, 그리고 그렇게 복음을 받은지 20여 년만에 노회(총회)가 조직되고, 놀랍게도 총회가 조직되자마자 처음으로 한 일이 선교사 파송이었다는 이야기까지 가슴 벅차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중국으로 파송된 3명의 선교사 이야기를 읽으며 펑펑 눈물을 쏟기도 했습니다. 나라를 읽은 작은 나라에서 왔다고 중국인들에게 무시를 당하고, 병원을 짓고 학교를 세우며 선교를 하는 서양 선교사들은 이 가난한 선교사들을 파트너로도 여기지 않았다는데, 성경책 하나 가슴에 품고 그 척박한 땅에 하나님의 말씀을 심겠다는 오직 그 한 가지 목표로 나아간 우리 선조들의 이야기에 가슴이 뜨거워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스도의 길이 되다>는 이 땅 가운데 부어진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 그 은혜의 첫 단추는 한글성경 보급에 있었음을 기억하게 하며 아직 우리에게 사명이 있음을 일깨웁니다. 이렇게 놀라운 유산을 가졌으면서도 모르고 산다는 것은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지 모릅니다. 복음과 함께 이 놀라운 하나님의 이야기도 전해지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더불어, 극성스러울 정도로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했던 그 열심이 이 책을 통해 다시 회복되어지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