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화의 모험 - 표상문화론 강의
고바야시 야스오 지음, 이철호 옮김 / 광문각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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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의 목표는 역사입니다. 회화의 역사 자체가 질문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 화가가 진정으로 창조적이라면, 반드시 그전까지의 모든 회화의 역사적 사실을 받아들이고, 또 그 받아들임을 통해서 그전까지는 없었던 '회화의 가능성'을 세상에 끌어낼 수 있게 됩니다. 어떤 의미에서 창조적인 화가는 그전까지의 모든 회화의 역사를 통해 다시 '회화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듣고, 거기에 독자적인 방식으로 대답할 수 있는 것입니다. … 회화의 역사가 갱신되고 구성되는 것은 그러한 실천적인 사고를 통해서입니다"(33).

이 책은 서양 미술사 강의,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탈리아 르네상스 전후부터 시작된 서구 회화 '역사'에 대한 강의입니다. 약 700년간의 서구 회화 역사를 탐구하며 이 책이 주목하는 것은 회화의 역사가 '갱신'되고 '구성'되는 변이의 과정, 즉 그 변이의 '동기'와 '원인'은 무엇인가 하는 점입니다. 이를 더 단순화하면, '서구 회화의 역사 운동체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정리해볼 수 있겠고, 이를 통해 독자는 '회화를 이루는 존재'가 어떻게 새롭게 바뀌는지를 흥미롭게 지켜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제가 이해한 것이 맞는다면"이라는 전제를 붙여야만 할 것 같습니다. (눈치채셨겠지만) 이 책은 읽어내기 꽤 까다로운 전문서적이기 때문입니다. 이 책을 읽는 감정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도교대학의 '표상문화론'이라는 '어마무시한' 강의를 (책을 통해) 직접 듣는다는 어떤 '긍지'와 비슷한 호기심이고, 다른 하나는 나(일반 독자)에게는 너무 어려운 강의라는 좌절감입니다. 

"그것은 아카데미라는 권위 있는 체제가 붕괴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제는 하나의 지배적인 회화와 '철학'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화가가 각각의 '회화 철학'을 탐구해야만 합니다. '회화는 어디서 왔는가, 회화란 무엇인가, 회화는 어디로 갈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져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20세기 회화의 격률입니다. 회화가 스스로를 다시 정의합니다. 화가는 화가로 있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철학자'가 되어야만 한다라는 뜻입니다"(306).

이 책을 알려면 <표상문화론>이란 무엇이며 <표상>이란 무엇인가를 알아야 할 터인데, <회화의 모험>은 그 부분에서 그리 친절하지 않다 싶었는데, 을 읽어보니 이 책이 말하는 모든 내용이 바로 <표상문화론>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회화의 역사가 갱신되고 구성되는 700년 간의 <회화의 모험>은 "회화이기 때문에 가능한 공간에서의 사건"이 어떠한 역동의 과정을 거쳐 "이제 3차원의 공간을 속임수 그림처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독자적 기능을 갖춘 독특한 표상체임을 오히려 노골적인 방법"(334)으로 드러내게 되었는지를 보여줍니다. 

솔직히 <표상문화론>이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했다고는 자신있게 말할 수 없지만, <표상문화론>의 관점으로 그림을 보니 해석이 더 풍부했졌다는 것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예를 들면, 지오토의 <애도>라는 작품에서는 다음과 같은 해석이 그림에 대한 눈을 새롭게 열어주는 듯 했습니다. "표상의 중심은 예수와 마리아가 아니라 그들의 두 얼굴 사이에 가까운 거리감, 바로 그 공간에 있는 것이며, 그것에 회화의 의미가 동적으로 수렴되어 갑니다. 가까운 거리감이지만, 그것은 결코 뛰어넘을 수 없는 거리감, 삶과 죽음을 가르는 거리감이며, 그것이 바로 비애이자 통곡을 나타냅니다"(49).

또 다른 예를 들면, '사진'이라는 새로운 표상 기술과의 치열한경쟁 관계에 놓이게 된 (인상파) 회화가 어떻게 스스로를 갱신했는지를 설명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회화는 (스스로 부정하는 것까지 포함해서) 표상을 산출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근적인 질문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른바 각각의 화가가 각각의 방법으로 인간에게 표상이란 무엇이며, 그 '완성'이란 무엇인가를 대답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 완전히 감각적인 방법으로, 그러나 다양한 '철학'이 실천되고 있습니다. 그것에 전율할 만한 감각을 지니지 않고 모더니티 회화를 보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단언해 두겠습니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표상이라는 차원에서 '기계'에 대항하며 '인간'을 어떻게 다시 정의하고, 또다시 확보할지에 관한 중대한 질문이 타오르고 있는 것입니다"(257). 이런 설명과 함께 "결코 환원될 수가 없는 살아 있는 시간"(263)을 포착한 모네의 <개양귀비꽃>을 보면 이전과는 전혀 다른 감상이 느껴집니다. 

평범한 일반 독자로서 소화하기에는 '너무 어려운 강의'였지만, 그림이 조용하지만 격렬하게 아찔할 정도로 광대하게 어떤 '모험'을 하고 있다는 사실(그 역사)을 '어렴풋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는 데 '큰' 의의를 두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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