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록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 - 철학자 황제가 전쟁터에서 자신에게 쓴 일기 현대지성 클래식 18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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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신에 속한 모든 것은 강물처럼 흘러가 버리고, 호흡에 속한 모든 것은 꿈이고 신기루다. 인생은 전쟁이고 낯선 땅에 머무는 것이다. 우리 인생에서 마지막으로 남는 것은 망각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우리를 호위해서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안내해 줄 수 있는가. 오직 한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철학이다"(52).
건물 벽에 걸린 커다란 현수막을 보고 올해 선거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환한 표정으로 웃고 있는 낯선 후보자는 자신이 얼마나 믿을 만한 정치인인가를 보여주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무엇으로 그들을 판단할 수 있을까요? 온갖 좋은 것들을 다 갖다 붙여놓은 허울뿐인 공약이 아니라, 그들이 어떤 철학을 가진 자인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뻔뻔스러울 정도로 천박한 내면을 가진 자에게 계속 권력을 쥐어주는 어리석음을 반복하지는 말아야 할텐데 말입니다. 

"로마 제국을 다스리는 일과 이민족과의 전쟁이라는 외적인 압박감과 무거운 짐으로부터 물러나서 자기 자신 속으로 들어가서 흐트러질 수도 있는 자기 자신을 다스리기 위해 스스로에게 들려주고 있는 교훈들을 기록한 책을 마주하고 있다"(9).
<명상록>은 로마 황제가 전쟁터에서 자신에게 쓴 '철학 일기'입니다. 그냥 일기가 아니라 철학 일기라 함은, 황제 자신이 철학자였기 때문이요, 또 이 일기는 단순히 하루 동안의 기록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다스리기 위해 시끄러운 세상으로부터 자기 자신 속으로 물러나 인간과 세계에 대해 치열하게 성찰하는 사색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너의 생각에 화려하고 그럴듯한 옷을 입히지 말라. 말을 많이 하지 말고, 많은 일을 벌이지 말라. 네 안에 있는 신이 너를 이끌어 나가게 하여, 맹세나 그 누구의 증언이 없어도 한 사람의 로마인이자 한 사람의 통치자로서 너의 자리에서 네게 맡겨진 국사를 원숙하고 담대하게 처리하다가, 이 세상에서의 삶으로부터 퇴각하라는 신호가 나면 아주 기꺼이 물러나라. ... 다른 사람이 주는 편안함을 물리치고 스스로 서라"(59).
<명상록>을 읽으며 충격적일 정도로 감동적이었던 것은, 우리가 도덕 교과서에서나 보았던 이상적인 통치자의 모습이 역사에 살아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정말로 이런 통치자가 실제로 존재했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입니다. 이 황제는 전쟁터에서조차 혹독할 정도로 통치자로서 자신의 내면이 어떠해야 하는지 살피고 또 살피며, 지키고 또 지키며, 단련하고 또 단련하려고 노력합니다. 

"교묘한 언변이나 수사학을 익히는 일에 빠져서 열을 올리지 않아야 하고", "메추라기를 싸움 붙이는 놀이를 하지 않고 그 같은 일들에 열광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해 주는 솔직한 말들을 막지 말고 귀 기울여 잘 들어야 한다는 것", "잘잘못을 따져 훈계하는 연설을 삼가려 하고", "사람들에게 금욕주의자나 자선사업가처럼 보이려고 하지 않고", "멋있는 건물을 짓는 것에 애착을 보이지 않으며", "하찮고 덧없는 명예욕이 자신을 사로잡아 잘못된 길로 들어서게" 하지 않도록 주의하며, "각각 자신의 분야에서 탁월한 것에 합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도와주려" 노력하는 황제입니다. 

마치 '갑질'을 하기 위해 권력도 쥐고 재물도 모으는 사람처럼, 작은 권력이라도 쥐고, 남보다 조금이라도 더 가졌다는 생각이 들면
'갑질'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그것을 가진 자의 특권이라도 생각하여 속된 말로 "사람들로 하여금 진땀 나게 만드는" 일을 즐기는 그런 부류의 사람, 어쩌다 재물을 얻고 권력을 얻었지만 철학은 없는 그런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스스로 경계하고 또 경계하며 모든 일에 교훈을 얻기 위해 그는 철학을 하고 스스로에게 일기를 썼습니다. "시기심이 많고 변덕스러우며 위선적으로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폭군의 특징이라는 것, 우리 가운데서 귀족의 지위에 있는 자들 중에는 인정이 없는 자들이 많다는 것을 배웠다"(32).

정치를 꿈꾸는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의 일독을 권하고 싶습니다.
스스로를 살펴서 적어도 "치세하는 동안에 대중의 온갖 환호와 온갖 아부에 재갈을 물릴 줄 알고, 국정을 돌보는 일에 밤낮으로 노심초사하며, 나라의 재정을 아끼고 지혜롭고 관리하고, 거기에 따른 불편을 기꺼이 감수하며, 정의롭고 공동체의 유익에 기여하는 것이라는 확신으로 행하고, 마음이 만족을 얻는 것보다 더 선한 것을 발견한다면 마음과 목숨을 다해 그것을 행하려는" 마음이 있어야 그 길을 갈 수 있는 것 아니겠냐고 반문해보기를 바랍니다. 

그와 같은 황제는 되지 못했을지라도 이 책을 일 년에 두 번은 꼭 읽는다는 빌 클린턴이 다시 보입니다. 권력을 바라보는 자가 아니라, 권력의 정점에 선 자가 스스로에게 이런 책을 썼다는 것이 참 놀랍습니다. 철학하는 힘을 잘 보여주는 책입니다. 철학이 없는 인생이 얼마나 위태로운지도 생각하게 해주는 책입니다. 마음이 선하게 정리되고 늘 새롭게 인생을 마주하기 위해 여러 번 읽어야 할 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너를 비롯한 모든 사람은 오직 현재라는 아주 짧은 순간만을 살아갈 뿐이고, 다른 모든 시간은 지나간 과거이거나, 네가 살게 될지조차 불확실한 미래라는 것을 기억하라. 그러므로 너의 인생은 극히 짧고, 네가 발을 딛고 살아가는 땅 조각도 아주 작다"(6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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