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는 온갖 물이 넘쳐흐른다. 비만 왔다 하면 잠결에도 ‘찰랑찰랑’ 소리가 들릴 정도로 경쾌하게(!) 역류해 들어오는 하수도 구정물, 살아 있음에 지긋지긋해하면서도 살아 있는 것이라면 길고양이 한 마리만 봐도 비어져나오는 눈물, 악으로 깡으로 살아내겠다고 버둥대느라 흘린 줄도 모르고 흘려버린 핏물...... 오열하고 출혈하며 써내려갔을 그녀의 마음이 느껴져서 한 문장 한 문장이 예사롭지 않았다. 장맛비에 떠내려가는 가재도구를 구해내는 심정으로, 핏물과 눈물과 생의 오물이 뒤섞인 강물에 둥둥 뜬 단어들을 하나하나 건져가며 읽었다. 그녀도 울고 나도 울고, 젊음이 울고 가난이 울고. 지극히 사실적이되 건조하지 않다. 관찰자의 눈으로 본 르포가 아니라 체험의 문학이다. 구질구질한 가난을 소재로 하였지만, 척박하지 않고 따뜻하다. 그녀는 참 예쁘다. 겉만 보면 세 보이고 싸늘해 보이고, 특히 연애에선 항상 얼음공주처럼 갑질만 해왔을 것처럼 생겼다. 그러나 그녀가 시크하게 한 번 씨발, 이라고 내뱉는 말 속에 배어 있는 슬픔은 얼마나 깊고 깊은지. 그렇게 깊은 슬픔이 쌓여왔을 세월을 생각하니, 너무 아득하고 막막해서 가슴이 저미는 것 같았다. 인간으로 존엄을 지키면서 목숨을 부지한다는 것이 얼마나 씁쓸하고 쪽팔리고 치사한 일이더냐.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걸 모른다. 그들은 겉으로 나오는 ‘씨발’ 소리밖에 듣지 못한다. 가난한 년이 무슨 하이힐에 원피스냐, 아직 배가 덜 고팠구나. 그게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방식이다.
얼마 전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이란 긴 이름으로 활동하던 이름 없는 가수가 세상을 떠났다. 나는 그를 좋아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달빛요정이 떠올랐고, 오랜 만에 그를 다시 들었다. 다시 들어도 역시 좋았다. “입금하라”라고 외치는 힘찬 목소리. 그 목소리를 다시 들을 수 없다고 생각하니 서글펐다. 김현진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글 나부랭이나 쓰고 현학적인 말을 주절대는 것보다 “입금”이 최선의 동지애라고 생각해서 기륭전자 투쟁에 참여하게 됐다는, 대충 그런 요지의 이야기. 그녀가 단식투쟁할 때 살 빼고 싶은 김에 쇼하는 거라고 빈정대던 된장녀들도 여럿 보았다. 그녀에겐 팬 못지않게 적도 많아 보인다. 적들이여, 제발 이 책 사서 읽지 말아라. 내가 저자라도 그런 드러운 돈 안 바란다. 자기들 한 끼 식사값도 안 되는 돈 주고 책 한 권 샀다는 이유로, 마치 글쓴이의 인격까지 짓밟아도 되는 권리를 얻은 양 함부로 주둥아리를 놀리는 인간들. 내 귀중한 돈을 주고 니 책을 사줬으니까, 넌 내가 무슨 말을 하든지 다 감지덕지 받아 처먹어야 해. 손님은 왕이 아니고 소비는 천부인권이 아니다. 손님의 반대편에는 접대하는 사람이 있으며, 소비자의 반대편에는 생산자가 있다. 그러나 화폐는 그 단순한 사실을 망각하게 만든다. 화폐가 교환가치를 지니고 있다 해서, 화폐를 매개로 하는 모든 거래가 등식인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거래는 부등식이다. 우리는 천 원 한 장 주고 티셔츠를 사지만, 그 티셔츠를 생산하기 위해 치러야 하는 비용이 천 원밖에 안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보이지 않는 대가를 더 많이 치르고 있는데도, 교환수단으로 돈 천 원을 치렀으니 그저 천 원을 기준으로만 생각하는 것이다. 즉 천 원짜리 생각밖에 하지 못한다. 화폐를 가진 사람은 투명망토를 입고 남의 땅에 오줌을 싸지르듯이, 남의 마음에 사악한 말을 잘도 싸지른다. 그 말들에서 얼마나 지독한 지린내가 나는 줄도 모르고.
다시 달빛요정 이야기로 돌아가면, 누군가는 그의 줄기찬 자학이 지겹더라고도 했다. 솔직히 나는 그 말이 야속했다. 자학의 미학을 알려야 알 수 없는 건들건들한 팔자가 좀 부럽기도 했고. 아니 실은, 자학이란 말 자체에 동의하지 않았다. 나는 그가 “나는 개”라고 부르짖거나 “나는 무겁고 안 예쁘니까 뭘 해도 마찬가지”라고 뇌까릴 때도, “라면만 먹고는 못 살아 든든해야 노랠하지”라며 고기반찬 먹고 싶다고 거의 발광(!)을 할 때도 한 번도 그걸 자학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사심 없이 유쾌하게 웃었고 웃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다. 그는 본인이 처한 삶의 조건에서, 자기 삶의 꼴을 더하지도 빼지도 않고 노래했을 뿐이다. 있는 그대로의 꼴을 보여줬을 뿐인데 꼬라지나 꼬락서니라고 비하해서 듣는 건 듣는 사람의 시각이지, 그가 바란 바는 아니었을 것이다. 나는 그가 수도 없이 절망하고 절룩거렸을지언정 자학의 포즈를 취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왜냐하면 그는 언제나 유머를 잃지 않았으니까. 그는 자학의 습관이 아니라, 해학의 재능이 있는 뮤지션이었다.
김현진에게서도 그런 해학의 재능이 느껴진다. 유서 깊은 흥부의 사례에서 보듯이 가난이란 게 본디 해학이 발아하기 쉬운 온상이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녀의 재능은 특별해 보인다. 진짜 구르고 자빠져본 사람만이 구사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유머. 진실의 장점은 기억하기 쉽다는 것뿐 아니라, 가장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가장 아름답지는 않을지 몰라도. <드링킹>도 열광하면서 읽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자주 캐롤라인 냅이 연상되었다. 화려한(?) 알코올 편력 때문이기도 하지만, 자신이 자란 강북의 과거를 담담히 회고하는 문체 속에서 저널리스트적인 균형감각이 얼핏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마르그리트 뒤라스처럼 자기 삶을 갈아마셔서라도 진실된 글을 써내고야 말겠다는 활활 불타는 문학적 의지도 엿보였다. 언젠가 소설을 쓰고 싶다던데, 아마 소설가로서도 근사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 밑줄 긋고 싶은 부분이 굉장히 많았지만, 그 중에서도 나랑 아주 많이 닮은 것 같아서 격하게 공감했던 부분을 옮겨볼까 한다. 아주 많이 따뜻하고 눈물 나게 선한 이야기.
-책 속에서 P.175-178
그 침대야말로, 조촐하다 못해 누추한 집을 반짝거리는 신혼살림답게 해주는 유일한 물건이었다. 다른 데 쓸 돈은 없더라도 종일 거친 하루에 지친 몸을 꼭 껴안고 잠들 때의 세간만은 신경 쓰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이 역력한, 그런 반질반질한 침대였다. (중략) 침대가 반질반질한 만큼 이불도 새것 티가 나게 고왔다. 침대에서 문 사이의 그 좁다란 공간에 침대와 이불처럼 반질반질하고 고운 얼굴을 한 신혼부부가 무릎을 웅크린 채 나란히 앉아 있었다. 얼굴들은 하도 이불처럼 새것 티가 나게 반질반질 고와서, 게다가 어떤 사람들만이 풍길 수 있는 정결함 때문에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신혼부부구나, 하고 눈치 챌 수 있었다.
그런데 이런 세상에 맙소사. 내 친구는 그 고운 침대 위의 고운 이불 위에 사지를 뻗고 콜콜 잠들어 있었다. 무릎을 안고 나란히 그 좁다란 틈에 앉아 있던 고운 부부는 우리를 보자 반가운 얼굴로 얼른 일어났다. 나는 술은 완전히 깼지만 우리에게서 풍기는 막걸리 냄새가 몹시 부끄러웠다. 할 수 있다면 그 자리에서 까무러치고 싶었지만 몸이 그렇게 편리하게 굴어줄 리 없고 생각 같아서는 엎드려 빌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더 주정뱅이로 보일 게 뻔해서 그저 허리만 깊이깊이 숙였다. (중략)
이렇게 친구들이 데리러 와서 정말 다행이라고 웃는 새댁의 얼굴은 말갛고 곱고 눈부셨다. 그리 덩치가 크지 않은 신랑은 어떻게 평소보다 몇 배 무겁기 마련인 술 취한 사람을 업고 예까지 왔는지 장군처럼 늠름해 보였다. (중략)
아침에 깨어난 친구에게 네가 어제 정결한 신혼살림을 침탈한 것을 아느냐며 당장 구멍가게로 달려가 주스라도 한 통 사가지고 석고대죄한 후 감사의 뜻을 표하지 못하겠느냐, 그 귀인들이 아니었다면 너는 지금쯤 윤간 후 토막이 나 매봉산 어느 자락에 버려져 있을지 모를 일이다 기타 등등 각종 호통을 쳤지만 친구는 머리를 감싼 채 아악, 하고 소리를 지르며 차마 부끄러워서 못 가겠다고 했다. 하긴 나라도 그 정결한 침대를 생각하면 도저히 가서 감사할 용기가 날 것 같지 않았다. 그렇게 정결한 침상을 낯모르는 주정뱅이 아가씨에게 선뜻 내주는 이렇게나 정다운 이웃이 있을 수가. 그렇게 남에게 침대를 내주고 침대와 방문 사이의 조그마한 틈새에 나란히 앉아 있던 네 개의 다정한 무릎을 떠올릴 때마다 복 받으실 거예요, 잘 사세요, 하고 간절히 빌었다. (중략)
막걸리 냄새 풀풀 풍기는 우리가 그 친구를 떠메고 사라진 다음에는 참 다행이라고 웃다가, 황당한 일도 있다고 다시 한 번 웃다가, 서로 오늘 고생했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다가 곱고 정결한 이불 잘 펴고 그 침대에 누워 꼭 껴안고 다정하게 잠이 들었을 것이다. 그 집 앞을 지날 때면, 남자 잘 만나 어떤 호화로운 대접 받고 사는 여자보다 자그마한 살림이라도 반질반질한 침대와 말간 얼굴 가진 남자와 정답게 사는 그녀가 부러워서, 그래서 더 외로워져 목 메일 때도 있었고, 그러면 하는 수 없이 막걸리로 씻어 내렸다. 그런 정결함은 아직 나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이었고 앞으로도 기약 없다. 그저, 부디 그들이 그 침대가 떵떵거리며 제 자리 찾아 위용을 자랑할 수 있는 몇 십 평짜리 넓은 집에서 잘 살기를. 레미안이니 브라운스톤이니 이런 데 가서 여봐란 듯이 살라고 세속적으로까지 빌어주고 싶을 만큼 참 정다운 무릎을 가진 부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