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훑어본 책은 우리말 운동가인 최종규의 <사랑하는 글쓰기>(SB+). 이오덕 선생의 <우리 문장 쓰기>(FB+)의 2010년도 개정 요약본이라 할 만한 이 책은 흔히 잘못쓰기 쉬운 겹말(한문과 우리말을 섞어쓰는 데서 나오는 동어반복)문제를 중심으로 바른 한국어 문장을 쓰기 위한 간략한 지침을 제시하고 있다. <우리 문장 쓰기>가 그렇듯 이 책 역시 한 문장을 소개하고, 그 문장의 문제점을 지적한 뒤 자신이 다듬은 문장을 제시하고 있다.

소개한 문장들에 대한 그의 지적은 날카롭고, 크게 공감한 경우가 대부분이나 그런 지적을 거쳐 최종적으로 만들어낸 그의 새로운 문장들이 모두 만족스럽지는 않다. 이를테면 그가 "언어는 사람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도구이다"를 "말은 사람 생각과 느낌을 담아내는 그릇이다"(43)로 다듬을 때 별다른 이물감이 없으나 "학문을 출세의 도구로 삼고 싶지는 않다"를 "학문을 이름날릴 발판으로 삼고 싶지는 않다"(43)로 다듬을 때는 눈에 걸린다. 즉 그가 부러 꼬아놓은 문장이나, 쓸데없는 개념어의 남발, "~의" "~적" "~하는 것"등의 표현을 다듬을 때는 이견이 없지만 '언중'에 이미 정착된 표현들을 바꾸고자 할 때('광장'을 '너른터'로 바꾼다거나(51), '세대의 차이'를 '나이때가 다름'으로 바꿀 때)는 나는 반신반의한다. 이오덕 선생의 '순수주의'에 고종석이 (존경과 함께)슬며시 비판의 칼을 들이대듯, 최종규가 '언어민주주의'를 넘어 '순수'를 강조할 때 난 (고종석에 깃대어)이런저런 군말을 달고 싶어진다. 하지만 약간의 불평과 언어관의 차이를 들어 이 책이 지향하는 바와 쓸모까지 무시할 수는 없다. "비틀린 글버릇"(36)을 돌아보게 해주는 책은 그리 많지 않다. 이 책과 그의 다른 책인 <생각하는 글쓰기>를 사서, 두고 틈틈이 볼 참이다.
 


 

 

잠시 미루어두었던 <오픈북>도 일독했다. 다 읽어보니 "청소년들의 독서 지도에 어떤 힌트를 줄 수 있으면 좋겠다"(11)는 지은이의 희망이나 "미국의 대학생들이 어떻게 공부하는지 또 어떤 책을 읽는지, 무슨 문제로 고민하는지 등이 잘 다루어져 있어서 대학 생활에 도움"을 줄꺼라는 '옮긴이의 말'은 그냥 희망과 말로만 남겨둬야할 듯하다. 적잖은 책들과 저자들이 등장하지만 구체적으로 소년 더다에게 어떤 식으로 작용했는지 구체적으로 진술되어있지 않을뿐더러(구태여 읽어내자면 클리프트 패디먼의 '평생 독서 계획'이 그의 중학교 시절 중요한 독서 가이드였으며(159) 모티머 J.애들러의 '책에다 표시하는 방법'이라는 글을 읽고 책에 메모하는 법을 익혔다(230)는 것 정도?), 지은이가 입학한 대학(에벌린 칼리지라는 인문자유대학)과 그의 대학생활 당시 미국의 시대적 분위기(저 뜨거웠던 60년대!)는 오늘날 한국의 대학생들이 처한 상황과는 맥락이 달라도 한참 다르기 때문이다. "독서 가이드"라는 측면에서 이 책은 불품없다. 좋은 독서 가이드라면 "지혜와 세련됨에 대한 파우스트적 욕구"(109)가 어떻게 불러일으켜지고, 어떻게 다듬어져야하는지가 설명되어야 하나 이 책에는 그러한 설명은 빠져있다. 하지만 그러한 측면과는 무관하게 이 책은 빼어난 자서전이다. 자칫하면 폼재기 쉬운 자신의 인생-공장 노동자의 아들에서 일류대학을 나온 지성인으로의 성장기. 허다한 '자기계발서'들이 좋아할 법한 주제 아닌가-, 인생의 순간순간마다 함께 한 책들에 대한 애정을 이 책은 위트있게 기술한다.

"저녁이 절반쯤 지나갔을 때, 어머니가 한구석에 처박혀 책을 읽는 나를 발견하고서 코카콜라와 부드러운 호밀빵에 달콤한 피클을 얹은 햄 샌드위치를 가져다 주었다. ...옆에서는 주방 테이블 위에 떨어지는 5센트와 10센트의 동전소리들이 은은하게 들려왔고 이모들은 선물들로 밝게 장식된 거실에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들의 자녀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것은 워즈워스가 말한, 인생의 기력을 회복시키는 '한 점의 시간'이었고, 잡티가 전혀 들어있지 않은 완벽한 행복의 시간이었다"(99)

""미국적 생기가 곧 천재의 시금석이었던 휘트먼의 이 땅에 대한 증언. 완전판" 광고가 이렇다 보니 삭제된 불완전판을 산다는 것은 야만적인 일이었다"(161)

"파리에서 처음 발간된 올림피아 판의 무삭제 판본이라는 설명은 음란 서적임을 확인해 주었다. '무삭제'와 '파리'같은 무한히 암시적인 말은 이 책을 집으로 가져가야겠다는 내 마음을 굳혀주었다"(241)

"고2가 지나가고 고3이 시작되었는데도 나는 여학생 문제라면 손을 한 번 잡은 것 이상의 진전이 없었다. ...나는 교사들을 비웃었고 내 성적표의 D를 개의치 않았고, 나 자신을 비순응주의자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런 내가 얼었단 말인가? 결코 그럴 수 없었다. ...어쩌면 나는 약간 두려워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햄릿처럼 우유부단하게 행동하면서 결승점을 향해 나아가는 용기를 자아내지 못한 것일 수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11월 6일, 17번째 생일을 맞이하기 전에 부드러운 살을 가진 어린 여자의 입술에 키스를 하겠다고 스스로 맹세했다"(251)

"...거시 경제학은 나처럼 꿈많은 학생에게 아주 매력적인 과목이었다. 나는 헨리 조지와 단일세에 대한 리포트를 제출했는데, 이런 논평과 함께 내게 돌아왔다. "더다군. 당신은 헨리 조지처럼 글을 잘씁니다. 그러나 당신이나 조지나 경제학은 잘 알지 못하는 것 같군요"(318)

지은이는 "처음의 실패 뒤에 반드시 성공하려는 충동, 존경하는 스승의 반복적인 등장, 특정 이야기들에 대한 선호, 새로운 작가, 장르, 문학에 대한 집착, 로레인, 오벌린, 멕시코, 유럽으로 점점 넓어지는 지평"(381)을 통해 자신이 어떻게 오늘의 성숙한 모습에 이르렀는지를 다루되 결코 자신의 과거를 부러 볼품없게 다루거나 깎아내리지 않는다. 혹은, 그 성숙함을 바탕으로 자신이 '오독'한 과거와 화해한다.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자신의 과거를 담담히 곱씹어보기, 그리하여 다시금 성숙해지기. 이 책이 오늘날 학생들에게 하나의 도움을 줄 수 있다면 바로 이런 측면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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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1-11-15 0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하는 글쓰기>나 <생각하는 글쓰기>에서 '순수'를 이야기한 적 없어요. '다른 길'을 이야기했을 뿐이에요. 여느 제도권교육을 받고 제도권언론을 듣는 사람들한테 익숙한 말투를 그대로 쓸 수 있겠지만, 이와 달리 이야기하면서도 살아갈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책을 잘 살피시면, 모든 '다듬은 글' 맨밑에 '...(말줄임표)'를 넣었어요. 일러두기에서도 밝히지만, 글쓴이가 밝힌 '다듬은 글'이 가장 좋은 '다른 길'은 아니기 때문에, 이 책을 읽는 사람 스스로 '더 낫다고 여길 글다듬기'를 하기를 바라면서, 보기글마다 '...(말줄임표)'를 하나씩 꼭 넣었습니다.

이오덕 님 또한 '언어 민족주의나 언어 순수주의'가 아니에요. '이렇게 써 볼 수 있지 않겠느냐' 하는 새로운 길을 하나하나 열었을 뿐이에요. 이러한 새 길로 더 많은 사람이 즐거이 걸어갈 수 있기도 할 테지만, 새 길이 그닥 내키지 않을 때에는 사람들마다 또다른 새 길을 낼 수 있겠지요. 말과 글을 다듬는 일은 '순수'나 '민족'이 아닌 '대안'을 찾는 새로운 삶이랍니다.

우리 말이 한 자리에 고여 썩지 않도록 하고 싶은 꿈이에요.

Viator 2011-11-15 08:13   좋아요 0 | URL
좋은 말씀 새겨두고 읽겠습니다.